<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29화>
100. 부서진 꿈
곳곳엔 부품이 모두 뜯긴 차와 수거되지 못한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고, 한 집 걸러 살기 가득한 고함들이 터져 나오는 거리.
“제발 죽어!”
“꺼져!”
뉴욕에서 가장 위험한 동네 경찰조차 무서워 하루 한 번이나 겨우, 그것도 단단히 무장을 한 채 순찰을 하는 할렘가.
그런 할렘의 한 주택에서 욕설이 튀어나온다.
“빌어먹을!”
캉! 캉캉!
벽에 부딪쳐 튕겨 나온 빈 맥주캔이 바닥을 뒹군다.
“여길 떠날 때만 해도 다신 오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치익! 딱!
다른 맥주캔을 딴 빌 머레이는 이를 간다.
“올리버 무어, 이 개새끼……!”
이번엔 다 마시지도 않은 맥주캔을 던져 버린 빌 머레이는 숨겨 뒀던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
-빌!
“상황은 좀 어때?”
-아직까진 조용합니다.
“……창녀 거래는?”
마그마 록의 산하 패밀리, 빌 머레이의 머레이 패밀 리가 운영하는 사업 중 하나인 창녀 거래.
마약 사업 다음으로 돈이 되던 사업으로, 빌 머레이에게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돈줄이었다.
그러나 올리버 무어가 검거되며 피신을 한 탓에 예정된 거래가 어그러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신용에 금이 가게 된 빌 머레이에게 계속 사업을 맡길 만큼 마그마 록은 호락호락한 단체가 아니었다.
-컴즈 패밀리가 넘겨받기로 했습니다.
“하필!”
빌 머레이의 머레이 패밀리와 라이벌 관계인 컴즈 패밀리.
“수, 숙소까지?”
창녀들의 숙소 건물. 그것도 머레이 패밀리의 자산이었다.
-……예.
“대가는?”
-컴즈가 관리하던 업소 두 개와 맞바꾸기로 했습니다.
“음.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보스는 무슨 생각으로 컴즈 그 자식에게!’
보스가 빌 머레이 자신의 라이벌에게 사업체를 넘겼다. 빌 머레이로서는 안 좋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빌?
“후우. 알았어. 몸 조심해.”
-예. 빌도 조심하십시오.
통화가 종료되자 다시 핸드폰 전원을 끈 빌 머레이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빌어먹을 컴즈 자식!”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지금쯤 창녀 사업을 넘겨받고 웃고 있을 컴즈를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다.
빠드득!
“그렇게 웃는 것도 잠시뿐이다, 컴즈. 내가 복귀만 한다면…….”
컴즈 패밀리를 모조리 씹어 먹을 거다.
그리고 컴즈의 아가리에 총구를 박아 넣고, 그의 사업체를 모두 흡수할 거다.
“그럼 보스도…….”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터.
그럼 마그마 록의 고위 간부가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고위 간부라…….”
넓은 수영장이 있는 저택에서 몸매 죽이는 미녀들을 옆구리에 끼고 경찰 고위 간부들과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고위 간부. 그에겐 꿈이자 목표와 다름이 없는 세상.
“흐흐흐.”
쿠당탕!
옆집에서 들리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그가 이곳 은신처에 온 다음 날부터 들리기 시작한 소리다.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돌린 빌 머레이는 혀를 찼다.
“진짜 저건 뭔 미친놈인지.”
뭐하는 미친놈이기에 이 거지 같은 동네에, 모든 주민이 벗어나고 싶어 안달인 이 거지 같은 동네에 제 발로 기어 들어온 걸까.
“쯧.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그는 앞에 놓인 위스키를 들고 일어서 2층으로 향했다.
한 번 시작되면 두 시간은 시끄러우니 2층에 있는 방에서 방금 전 하던 핑크빛 미래나 다시 그리며 술에 취해 자려는 것이었다.
“아, 오늘 보스턴 그 개자식들과 클리블랜드의 경기였던가?”
그가 응원하는 뉴욕 양키스를 이기고 진출한 보스턴 레드삭스.
빌 머레이는 이를 갈며 2층으로 향했고, 그의 옆집에서 헌 가구를 집 밖으로 던지고 쪼개던 흑인 남성은 빌 머레이의 집을 보며 눈을 빛냈다.
* * *
부우우웅!
도로를 내달리는 FBI SWAT(Special Weapons Assault Team).
그 뒤를 따르는 검은색 방탄 SUV에 탄 종혁이 혀를 내두른다.
“미국은 이게 좋단 말이지.”
범인 검거에 위험요소가 있을 거라고 판단되자 곧바로 SWAT과 함께 출동할 수 있게 해 주었다.
SWAT을 출동시키려면 온갖 절차와 서류, 심사를 받아야 하는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간편화된 시스템.
“시발. 이래야 현장에서 죽어 나가는 경찰들을 살리지.”
안 그래도 부족한 경찰, 범인을 검거하려다 순직하는 경찰이 한 해에 몇 명이던가. 정말 부러운 시스템이었다.
혀를 찬 종혁은 빌 머레이의 신상 정보를 읽어 내렸다.
“10살부터 폭행이라…….”
그뿐만 아니라 특수폭행, 집단폭행, 강간미수, 마약 소지, 투여, 판매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른, 그것도 이 모든 범죄를 고작 12살 이하의 나이에 다 저질렀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받은 형량은 총합해야 겨우 3년.
구제불능의 개새끼였다.
다 읽어 내린 종혁은 뒷자리에 앉은 요원에게 파일을 넘겼고, 곧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지이잉!
차창을 내린 종혁은 담배를 물며 하늘을 응시했다.
“우라지게 맑네.”
이제 곧 11월이라서 그런지 날씨도 살벌해질 만큼 추워지고 있다.
“창문 올려. 곧 할렘에 도착하니까.”
여차하면 경찰도 쏴 버리는 할렘의 갱들. 그렇다고 한 들 감히 FBI를 건드리진 못할 테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운전대를 잡은 요원의 그 말에 불도 붙이지 못한 담배를 수습한 종혁에게 뒷좌석에 앉은 요원이 말을 걸었다.
“정말 빌 머레이 이 개자식이 그 집에 있는 거 맞지?”
“우리가 출발하기 전까지는 그렇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잠시만요.”
종혁은 빌 머레이의 옆집에 있을 탐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의뢰인.
“빌 머레이는요?”
-방금 전까지 포스트 시즌에서 뉴욕 양키스를 이긴 보스턴 레드삭스를 저주하다가 잠든 것 같습니다. 열화상 카메라에도 그가 2층에 있는 걸로 나오고요. 빌 머레이 외에 다른 인물은 집에 없습니다. 찾아온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종혁은 망설이는 탐정의 행동에 미간을 좁혔다.
-아무래도 빌 머레이가 포주 짓도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의 통화에서 창녀 거래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 곧 도착하니까 수고해 주세요.”
-예. 그리고 이런 환경을 제공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의뢰인.
잠복을 할 집과 도청 장치, 열화상 카메라 모두 종혁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구입한 거다. 의뢰인의 의뢰를 완수하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하는 그들조차도 처음 받는 대우.
“뭘요. 그럼 끊습니다. 2층에 있답니다. 그사이 찾아온 사람은 없고요.”
“알았어.”
운전대를 잡은 요원은 무전기를 들어 SWAT에게 변경된 사항을 전달했고,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씨발 새끼가 별걸 다 하네.’
마약 거래로 모자라 성매매까지. 헛웃음만 나왔다.
“최, 무장 점검해. 1분 후에 할렘에 진입할 거야.”
“예.”
품 안에서 권총을 꺼낸 종혁은 약실을 확인하며 방탄복을 두드렸고, 이윽고 그들이 탄 차는 할렘에 진입했다.
그 순간 차 안에 있음에도 확연히 달라지는 공기.
한 집 걸러 한 집, 높다란 철조망이 담벼락을 대신해 쳐져 있고, 마치 일광욕을 하려는 듯 어느 집 앞의 마당에 앉아 있던 흑인들이 권총과 소총을 꺼내 들며 경계 어린 눈빛을 보내온다.
“방금 전 그 흑인들은 로먼 패거리야. 여기 할렘을 지배하는 놈들 중 하나지.”
“아, 그래요?”
종혁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SWAT까지 함께하는 작전이지만, 여차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 방금 전 그 흑인들을 보니 더 그렇게 느껴진다.
긴장감이 샘솟듯 솟기 시작했다.
-도착 10초 전!
부아아앙!
끼이익!
선두 SWAT 차량이 브레이크를 밟으며 대원들이 뛰어내리자 종혁도 차에서 내려 언제든 총을 쏠 자세를 취했다.
후다다닥!
소총을 앞세우며 빠르게 빌 머레이의 집을 포위하는 SWAT.
쿵쿵쿵!
“FBI다! 문 열어!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문 열어! ……부숴!”
SWAT 대장이 물러나며 외친 말에 둥근 쇠기둥을 든 요원들이 현관문을 향해 쇠기둥을 부딪친다.
그러자 단숨에 부서지는 문.
“진입! 진입!”
쿠당탕! 우당탕!
SWAT 대원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며 소음을 일으키자, 종혁은 다른 FBI 요원들과 함께 2층 빌 머레이의 방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이것이 검거 시의 매뉴얼.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쿵쿵쿵!
“FBI! OPEN UP!”
번쩍!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에 기겁하며 눈을 뜬 빌 머레이가 바닥을 응시한다.
쾅, 쾅, 콰직!
“MOTHER FUCK!”
‘대체 어떻게 여길?!’
순간 온갖 생각이 떠오르는 그.
하지만 이내 고개를 털은 빌 머레이는 다급히 권총을 꺼내 들며 이를 악물었다.
후다다닥! 쿵쿵쿵쿵!
FBI가 2층으로 올라오는 소리에 빌 머레이는 더 다급해졌다.
“빌어먹을!”
‘도망쳐야 해!’
하지만 도망칠 곳이 있을까.
이대로 문을 방문을 여는 순간 벌집이 될 게 분명한 상황.
발을 동동 구르던 빌 머레이는 방문 외에 유일한 출입구인 창문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어쩔 수 없지!’
단 1초라도 좋다. 집 안으로 난입한 FBI를 따돌릴 수만 있다면 말이다.
결단을 내린 그는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빌 머레이의 눈에 들어오는 마당의 풍경.
이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FBI 요원들의 모습에 그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빌어먹을…….’
콰장창! 쿠웅!
“크헉!”
바닥에 떨어진 충격에 순간 숨이 멎었던 그는 도망을 치기 위해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철컥!
“움직이지 마. 대가리에 구멍 뚫린다.”
“……Fuck.”
빌 머레이는 관자놀이에 겨눠진 총구에 양손을 들며 엎드렸다.
그렇게 그가 그렸던 핑크빛 미래는 박살 나고 말았다.
* * *
번쩍! 번쩍!
파랗고 빨간 불빛을 번쩍이는 차에 타 있는 빌 머레이를 일견한 종혁은 집 안에서 발견한 장부들을 훑어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마약 거래 장부에 뇌물 장부, 화대 장부까지.
심지어 어디서 몇 시에 마약 거래를 했고, 여성들의 숙소는 어디이며, 그녀들의 신분증과 여권도 다 있었다.
이것만 증거물로 제출해도 거의 20년 형이 확정이었다.
“얼씨구? 누가 고객이었는지까지 다 적어…… 응?”
친절하게 고객 이름이나 회사 이름까지 적어 놓은 화대 장부를 읽어 내리던 종혁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1만 8천 달러? 2만 달러?”
하룻밤 화대로 생각하기엔 너무도 과한 액수.
콜걸 조직 소탕 작전에서 콜걸을 부를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최고급 멤버십에서 부른 여성이었어도 4천 달러 수준.
“이건 뭐지?”
“최, 이만 철수하자고. 이 동네에 오래 있는 건 바람직하지…… 음?”
종혁에게 다가왔던 FBI 요원이 종혁과 똑같은 것을 발견하고는 눈을 비빈다.
“뭐, 뭐야. 이 금액은?!”
FBI도 놀랄 액수. 순간 종혁의 머릿속에 아까 전 탐정에게 들은 창녀 거래라는 단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아, 씨발. 좆같네.”
얼굴을 구긴 종혁은 차로 걸어가 빌 머레이의 멱살을 잡았다.
“컥?!”
“야, 똑바로 말해. 너 여자들을 팔아넘긴 거냐?”
“흡?!”
경악하는 그의 얼굴이 대답이었다.
이를 간 종혁은 철수 준비를 끝마친 SWAT을 향해 크게 외쳤다.
“잠깐! 미안한데 한탕만 더 뜁시다!”
여성들의 숙소도 급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 * *
스프링이 드러난 침대 위.
알몸의 여성이 깜빡이는 전등을 멍하니 응시하다 문 쪽을 바라본다.
“……없네.”
얼마나 말을 하지 않은 건지 갈라지는 목소리.
갈증을 느낀 그녀가 마실 것을 찾는다.
하지만 마실 것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캔콜라 하나와 수돗물이 반쯤 담긴 더러운 물병뿐.
습관적으로 콜라를 향해 손을 뻗었던 여성은 순간 멈칫했다.
모델을 꿈꿨던 옛날엔 꿈도 꾸지 못했던 콜라.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케이티 모스, 지젤 번천 등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런웨이를 누비는 톱모델들에게 반해 그들처럼 되고자 상경한 뉴욕.
시골 소녀였던 그녀에게 있어 뉴욕은 참 냉혹하고 삭막한 도시였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등록하게 된 록 모델스쿨.
그곳에서 모델에 대한 것을 전문적으로 배우며 그 꿈을 더욱 부풀려 갔고, 록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었을 땐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그러다…… 그러다 파티에…….’
록 에이전시의 사장 보셀리 피에트로가 개최하는 파티에 갔고, 거기서 마약에 중독되어 버렸다.
“딱 한 잔 마셨을 뿐인데…….”
누군가 권한 칵테일 한 잔을 마시고 정신을 잃었고, 록 에이전시는 마약을 했다는 이유로 위약금을 청구했다.
잡지 모델조차 되지 못한 그녀로선 감당할 수 없는 금액.
그때, 록 에이전시가 은밀히 이 일을 권해 왔고…….
“결국 이 모양 이 꼴이 됐지.”
거기까지 생각한 여성은 약에서 깨어 있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난다며 코웃음을 쳤다.
이미 몸도 마음도 다 망가졌는데 이깟 콜라가 문제일까.
꿀꺽꿀꺽!
“끄으윽!”
찰칵! 치이익!
담배에 불은 붙인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후우우.”
‘난 이제 어디로 팔려 가는 걸까.’
콜걸에서 길바닥으로, 길바닥에서조차 상품 가치가 떨어진 여성은 다른 지방으로 팔아 버린다는 머레이 패밀리에 넘겨졌으니 아마 버스조차 잘 오지 않는 시골에 팔려 가서 가랑이를 벌리다 누구 씨인지 모를 아이를 낳고 그 지방에 정착하게 될 거다.
그게 마그마 록에 소속 된 밑바닥 창녀의 말로.
그것이 이 지옥 같은 삶의 에필로그라는 건 그녀도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어디든…….”
달칵! 스으윽!
저 빌어먹을 약만 있으면 좋았다.
작게 열린 문틈 사이로 들어온 쟁반을 보며 눈을 빛낸 그녀는 마치 먹잇감을 낚아채는 맹수처럼 네 발로 달려가 약봉지부터 집었다.
“스으읍! 하아아!”
다시 오색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한 세상.
그 순간 어떤 음성들이 두꺼운 문을 뚫고 그녀의 귀에 닿는다.
“이년은 어디에 판다고 했지?”
“펄 메리호였던가? 원양어선일걸 아마?”
“오우, 쉣.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거기서 정액이나 받다가 뒈지는 거지.”
‘뭐?!’
몽롱하게 풀리던 눈이 커진 여성은 다급히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와우. 머레이 패밀리는 여태껏 이렇게 장사한 거였어?”
“거의? 그나마 시골로 팔려 가는 년들은 살 가망성이 있지만, 저렇게 배로 팔려 가는 년들은 바다에…….”
‘바다에? 바다에 뭐!’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여성은 다급히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약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손.
문을 툭하고 힘없이 두드리는 손에 여성의 정신이 아득해진다.
‘죽는다고? 죽어?’
먼저 머레이 패밀리로 넘겨진 친구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다 죽었다고?’
샐리, 메리, 클로이…….
시골에서나마 살아갈 거라 여겼던 친구들.
안 된다.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
“나가서 알려…….”
하지만 이젠 정신마저 약물에 젖어 사라져 간다.
‘안 돼…….’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콰과광!
“크악!”
“막아!”
갑자기 시끄러워지는 바깥.
여성은 혀를 깨물고 허벅지를 때리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신은 점점 아득한 곳으로 잠수해 갔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덧 총격이 멈췄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벌컥!
“……봐요! ……찮아요?!”
귓가에서 웅웅거리는 목소리.
여성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손을 뻗었다.
“구해…… 줘…….”
팔려 간 친구들을.
지금도 자신들의 끝을 모른 채 지옥에서 살고 있을 친구들을.
종혁은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그녀의 간절한 절규에 낯빛을 딱딱하게 굳혔다.
* * *
띠이! 띠!
종혁이 방금 막 다시 잠든 여성의 볼을 쓰다듬는다.
애나 모리츠. 28세. 모델이 되고자 12년 전 가출해 뉴욕에 상경한 여성.
눈앞에 있는 여성의 프로필이다.
그리고 이런 그녀가 전한 처참하고도 참혹한 진실.
부서져 버린 꿈.
빠드드득!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문 종혁은 병실을 빠져나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앤드류 깁슨입니다.
“미안합니다, 깁슨.”
-……설마, 최? 잠깐. 왜 미안…….
“당신들은 당신들 하던 거 하세요. 난 나대로 움직일 테니까.”
-잠깐, 애송이!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다시 울리는 핸드폰의 배터리를 뽑아 버리며 캘리 그레이스를 응시했다.
“막을 겁니까?”
“……그럴 리가.”
빠득!
이놈들은 인간이 아닌 놈들이다.
절대 가만 놔둘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떡하려고?”
“내가 잘하는 거 해야죠.”
돈지랄.
몸을 돌리는 종혁의 눈이 살의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