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26화 (426/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26화>

    타다다닥!

    병원 복도를 내달려 응급실에 도착한 종혁이 아직도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은 잭의 모습에 다리우스의 멱살을 잡는다.

    “뭐하는 거야! 왜 얘가 아직도 여기에 있는데!”

    “그게…….”

    “보호자 되십니까?!”

    종혁은 다급히 끼어들어 존을 보는 의사에 얼굴을 구겼다.

    잭의 몸에 난 아동학대의 흔적을 본 건지 분노가 담겨 있지만, 그보다 더 간절함이 큰 의사의 눈빛.그러나 종혁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뭐하는 겁니까! 어서 잭을 수술실로 옮기지 않고!”

    “선생님, 어서 이쪽으로! 아이의 혈액이 부족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병원에 혈액이 왜 부족해요!”

    “내장 파열이 너무 심각하여 수술에 혈액이 많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검사 결과, 잭의 혈액형은 Rh- AB형이었다.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는 Rh- 혈액형 자체가 희귀한 편에 속하진 않지만, AB형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미국에서도 Rh- AB형이라면 1%에 속하는 희귀한 혈액형이었다.

    물론 병원에 보존하고 있던 혈액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술을 끝마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의사의 설명이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쿵!

    순간 눈앞이 깜깜해진 종혁은 애써 정신을 다잡았다.

    “이 사람은 아이의 아빠가 아닙니다.”

    “……그럼 아이의 아빠는 어디 있습니까. 엄마는!”

    “아빠는 마약중독자고, 엄마는 알콜중독자입니다.”

    “맙소사…….”

    종혁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의 혈액은 쓸 수 없었다. 도리어 감염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절망한 의사가 떨리는 눈으로 잭을 바라봤다.

    이대로라면 이 아이를 살릴 방도가 없었다. 섣불리 수술에 들어갔다가는 출혈이 감당하지 못한 채 수술대 위에서 눈을 감을 터였다.

    종혁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의사의 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일단 수술에 들어가세요. 혈액은 제가 30분 내로 구해다 드릴 테니까!”

    종혁의 굳은 눈을 본 의사는 이를 악물었다.

    “……알겠습니다! 간호사!”

    “예!”

    종혁은 잭이 누워 있는 침대를 붙잡는 의사와 간호사를 보며 핸드폰을 들었다.

    “핸리! 지금 보고 계시죠?! 부탁…….”

    -일단 확보된 혈액을 헬기로 이송 중입니다! 더 알아보는 중이니까 너무 걱정 마십시오, 최!

    “감사합니다! 이 은혜 꼭 갚을게요!”

    전화를 끊은 종혁은 존과 다리우스를 봤다.

    “혹시 모르니까 존은 올리버 그 개새끼 데려오고, 데릭은 주소 알려 줄 테니까 그 씨발년 데려와요.”

    자식이 마약을 팔러 가는데도 묵인한 메디슨.

    그런 년에게 엄마란 단어는 사치다.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피가 부족하다면 올리버나 메디슨의 피를 써야 할 수도 있었다.

    쓰지 말아야 할 혈액이지만, 일단 그렇게라도 살려야 했다.

    “어?”

    “뭐해요! 빨리!”

    “아, 응!”

    “헉! 맞아, 올리버! 거기 간호사! 의사! 빌어먹을, 누구든 따라와요! 환자들을 옮겨야 하니까!”

    종혁에 의해 얼굴뼈가 박살 난 올리버와 잭을 중상에 빠트린 마약 거래자.

    종혁은 재빨리 움직이는 그들을 일견하곤 어느새 저 멀리 달려간 잭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잭! 정신 차려, 잭! 야, 인마! 내 목소리 들려?! 들리면 반응 좀 해-!”

    종혁의 외침이 병원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   *   *

    불이 켜진 수술실.

    그 앞에 앉은 종혁이 양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한다.

    부디 무사하기를.

    부디 수술이 잘되기를.

    타다닥!

    “최!”

    종혁은 다리우스와 그 뒤에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메디슨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씨발년.’

    “오, 잭. 안 돼…… 안 돼……. 안 된다고, 올리!”

    ‘정상인 모드네.’

    알콜중독자가 아주 가끔씩 보이는 술에서 깬 정상적인 모습.

    한숨을 내쉰 종혁은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쓰는 메디슨을 잡아 뒤로 끌어냈다.

    “놔! 놓으라고!”

    “진정하세요. 경찰입니다.”

    “아…….”

    멍하니 종혁을 본 메디슨의 눈이 초점을 찾는다.

    “어, 어떻게 된 건가요! 대체 어떻게……!”

    종혁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주먹을 쥐었다.

    “댁의 남편께서 아드님을 마약 거래에 이용했습니다.”

    쿵!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뜬 메디슨을 향해 종혁을 차가운 진실을 이어 갔다.

    “그러다 마약을 사러 온 중독자에 의해 잭은 폭행을 당했고, 내장이 파열되는 바람에 현재 수술중입니다. 그리고 귀하의 남편 되는 올리버 무어 씨 역시 검거 도중 반항을 하는 바람에 크게 다치셔서 수술 중이고요.”

    “아아…….”

    “다행히 잭의 혈액이 부족하진 않게 됐지만, 혹시 모르니 혈액 검사를 받을 준비를 하세요. 어쩌면 그게 당신이 잭에게 줄 수 있는 작별 선물일 테니까.”

    앞으로 몇 년, 메디슨은 알콜중독이 완치가 될 때까지 잭을 보지 못할 거다.

    “그게 무슨……!”

    “아동학대를 하셨죠?”

    철렁!

    심장이 내려앉은 메디슨이 그대로 주저앉는다.

    “난…… 난…….”

    “메디슨 무어 씨, 당신을 아동학대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미란다의 원칙을 읊으며 메디슨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종혁은 그녀를 존에게 넘기곤 병원을 빠져나와 담배를 물었다.

    “하, 좆같네.”

    찰칵! 치이익!

    사각에서 내밀어진 라이터에 살짝 놀랐던 종혁은 라이터의 주인을 보곤 피식 웃었다.

    “바쁘실 텐데 뭘 오고 그러세요.”

    CIA 동아시아 담당 헨리 스미스.

    현재 잭이 수술에 들어간 지 2시간이 지났으니 아무래도 사건이 터지자마자 제트기를 타고 온 것 같다.

    “누구 때문에 잠이 모두 깨 버려서 말이죠. 그보다 불부터 붙이시죠. 뜨겁습니다.”

    “아!”

    담배에 불을 붙인 종혁은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내곤 헨리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혈액이 부족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신세를 졌네요.”

    “신세가 아니라 우리 미국이 이제야 최에게 진 빚을 일부나마 갚은 거죠. 아주 일부나마.”

    기존의 빚도 크지만, 그보단 이번에 진 빚이 너무 크다.

    나날이 값이 떨어지는 미국의 부동산.

    집과 돈을 뺏기고 거리를 내몰리는 국민들.

    종혁이 이번 사태의 주범에 대해 친절히 설명을 해 줬는데도 사태가 바로잡힐 생각을 하지 않는다.이런 상황에서 종혁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베팅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종혁이 러시아를 막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지금쯤 미국은 파산을 했을지도 몰랐다.

    이 빚이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커지는 중이었다.

    “그러니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우린 친구잖습니까.”

    “……그거 압박 맞죠?”

    “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야 고맙죠.”

    “하하.”

    덕분에 잠시 기분이 좋아진 종혁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그때부터 1년입니다, 헨리. 저도 그 이상은…….”

    “……걱정 마십시오. 그 전에 무조건 이 사태를 바로잡을 테니!”

    1년 안에 수습을 못한다?

    그땐 미국이 파산해도 할 말이 없는 거다.

    인과응보. 가슴이 찢어질 테지만 미국은 무분별한 돈놀이의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거다.

    “미안합니다, 헨리.”

    “아닙니다. 아, 그보다 잭이란 아이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면 술이나 한잔할까요? 저 하루 휴가를 내고 온 겁니다.”

    “이런. 내일은 조퇴를 해야겠네요.”

    “하하핫! 역시 최는 화끈합니다!”

    종혁도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이었다.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예, 조니. 무슨…… 하.”

    “최?”

    돌연 한숨을 내쉰 종혁이 얼굴을 쓸어내린다.

    “지랄났네, 진짜.”

    이를 간 종혁은 몸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지금 갈게요. 메디슨이, 잭의 엄마가 화장실에서 손목을 그었답니다.”

    그녀가 처한 상황이 상황이기에 배려를 하고자 수갑을 앞으로, 그것도 좀 헐렁하게 채웠더니 이 사단이 났다.

    “……같이 가시죠.”

    “아악! 씨발!”

    종혁은 계속 꼬이는 상황에 악을 지르며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상황이 더 꼬인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   *   *

    작별 선물.

    동양인 형사가 말한 그 말이 메디슨의 귓가를 계속 맴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자신이 알콜에 중독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성실하고 착했던 올리버가 마약에 빠지는 걸 막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잭을 때려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세 번이나 유산을 했다고 하늘이 주는 벌일까.

    ‘그런 것도 아니면 내, 내가 잭을 데려왔기 때문…….’

    “흐.”

    메디슨은 불이 켜진 수술실을 응시하다 더 이상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화장실로 도망쳤다.

    타악!

    “흑!”

    문을 닫자마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

    문밖으로 터져 나오는 울음에 그녀를 뒤따랐던 다리우스가 잠시 몇 발자국 옆으로 물러섰다.

    “흐어어어엉! 왜! 대체 왜……!”

    가슴을 치며 오열하는 메디슨.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을 때까지 울고 또 운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누구지?’

    거울에 낯선 사람이 있다. 퉁퉁하고 피부가 거칠고 사나운 인상을 지닌 마녀가 있다.

    “나야? 이게 정말…… 나?”

    그녀는 깨달았다.

    이래서다. 이런 마녀가 되어 버렸기에 천벌을 받는 거다.

    “하하! 아악! 꺼져-!”

    챙그랑!

    주먹으로 거울을 후려친 메디슨은 그 파편을 움켜쥐며 손목에 가져갔다.

    “무어 씨! 미친! 잠깐, 잠깐만 기다려요! 안 됩니다, 무어 씨!”

    메디슨은 흑인인데도 하얗게 질리는 다리우스를 향해 서글피 웃었다.

    “잭과 올리에게 미안하다고 전해 주세요.”

    콰각!

    “무어 씨! 빌어먹을! 간호사! 간호사-!”

    ‘아냐. 애초부터 난 마녀였어.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마녀. 잭, 엄마가 널 진짜 부모에게서 함부로 데려와서 미안해. 네가 누렸어야 할 진짜 행복을 뺏어서 미안해……. 그리고 당신의 불운이 돼서 미안해, 올리…….’

    메디슨은 몸에서 빠져나가는 온기에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   *   *

    “음?”

    나란히 중환자실에 누운 올리버와 메디슨에게 수갑을 채우러 들어온 종혁의 눈이 병상에 걸린 기본적인 프로필을 발견하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띠이! 띠!

    심장 박동음이 종혁의 귀를 괴롭힌다.

    “이거…… 뭐지? 환각인가?”

    올리버 A형, 메디슨 A형.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마찬가지다.

    이 둘에게 수갑을 채우러 왔던 종혁은 다급히 뒤를 스쳐 지나가는 의사를 붙잡았다.

    “서, 선생님. 이거 정확한 겁니까? 두 사람 모두 A형인 게 확실한 겁니까?”

    Cis-AB형이라든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혈액 유전과는 다르게 혈액형을 갖고 태어나는 경우는 분명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니 종혁이 기억하는 미래에서도 A형과 A형 사이에서 AB형이 태어났다는 사례는 학계에 보고된 바가 없었다.

    잭이 골수이식을 받아서 후천적으로 혈액형이 바뀐 게 아니고서야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이 여성분께서 외도를 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종혁은 흔들리는 눈으로 저 멀리에 누워 있는 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부모와 닮은 구석이 단 하나도 없는 잭.

    세 번의 유산을 할 때까지 산부인과에서 진료나 치료를 받은 기록이 있는데도 잭을 가졌을 땐 그런 기록이 전혀 없는 메디슨.

    ‘에, 에이. 아니겠지.’

    아닐 거다. 아무리 이런 범죄가 흔한 미국이라도 이건 아닐 것이다.

    정말 아니어야 했다.

    “으음.”

    메디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다급히 고개를 돌린 종혁이 마취에서 깨어나는 그녀에게 다가섰다.

    “여기는…….”

    “의사 선생님, 잠시만요.”

    메디슨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의사를 멈춰 세운 종혁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중환자실입니다, 메디슨 씨.”

    “아…….”

    종혁은 초점이 흐려지는 그녀의 눈빛에 입술을 깨물었다.

    “메디슨 씨, 정신 차리세요. 지금 잭의 혈액이 부족합니다. 잭의 진짜 아빠는 어디 있습니까. 그분의 혈액이 필요합니다.”

    “최, 지금 무슨 말…… 읍?!”

    뭔가를 눈치챈 다리우스는 쓸데없이 입을 놀리는 존의 입을 다급히 막았고, 종혁은 떨리는 눈으로 그녀의 표정 변화를 빤히 살폈다. 그러며 자신의 추측이 어긋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진짜…… 아빠? 올리?”

    몽롱하게 풀린 눈이 의아함을 머금는다.

    “아뇨. 올리버 씨 말고 진짜 아빠요.”

    “올리버가…… 아빠……?!”

    순간 초점이 뚜렷해지는 메디슨의 눈에, 갑자기 공포가 서리기 시작한 그녀의 눈에 종혁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까드득!

    “야. 아, 아니지? 당신 진짜로 잭을 납치한 거 아니지?”

    “흡!”

    “아니라고 해. 아니라고…….”

    삐! 삐삐!

    울상이 되어 가던 종혁은 급격히 치솟는 심장 박동에 그대로 무너졌다.

    “야, 이 씨발년아-!”

    종혁의 억장도 함께 무너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