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22화>
아직 불야성이 잠들지 않은 저녁.
탐정에게 감시를 의뢰하고 집으로 돌아온 종혁이 마른세수를 한다.
“내일부터 시작한다라…….”
뉴욕에서 한 손가락에 꼽힐 만큼 유명한 탐정 의뢰소.
그만큼 가격이 비쌌지만, 그래서 잭이 혹여 도움을 요청할 때 구할 수 있다면 아깝지 않았다.
“잭, 부디 너에게 행복한 길이 무엇이지만 생각하렴.”
마음이 더 망가지기 전에, 돌이킬 수 없기 전에 부디 손을 뻗어 주길 바랐다.
“후우.”
뜨거워지는 눈가를 어루만진 종혁은 이내 노트북을 통해 NYPD에 등록된 수배자 명단을 확인하다 혀를 내둘렀다.
“뭔 놈의 범죄자 새끼들이 이렇게 많은지…….”
수배자로 등록된 이들의 수가 무려 4만 명.
그런데 이게 주차 위반, 과속 등 단순 경범죄를 저지르고 벌금을 내지 않은 이들을 제외한 숫자였다.
무려 4만 명이 넘는 중범죄자들이 뉴욕시를 돌아다니고 있는 셈이었다.
더 놀라운 건 이것이 NYPD의 관할 영역인 뉴욕시에 등록된 범죄자들에 한해서라는 점이다.
뉴욕주, 그를 넘어 미국 전역까지 더하면 그 수가 몇이나 될지 눈앞이 막막해질 정도였다.
연수가 끝날 때까지 다 외우면 다행인 수준.
“지랄 맞네.”
혀를 찬 종혁은 커피를 마시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달칵! 달칵.
“아, 씁.”
커피를 마시느라 고개를 들었더니 다른 카테고리로 넘어간다.
얼른 다시 수배자 명단으로 돌아가려던 종혁은 이내 눈에 틀어박히듯 들어오는 카테고리 명에 잠시 손을 멈췄다.
“실종 아동 명단이라…….”
실종된 당시의 사진과 이후 아이가 무사히 자랐을 때를 예측해 가상으로 그려 낸 3D 몽타주.
“얘들은 이걸 벌써 도입하고 있었나.”
한국도 머지않은 미래에 도입하는 시스템이다.
다만, 경찰 같은 수사기관이나 행정기관에서 먼저 차용하는 게 아니라 민간기업에서 먼저 차용해서 지랄이지만 말이다.
“이것도 체크해야겠네.”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고쳐야 할 부분들.
3살짜리 여자아이가 어엿한 성인 아가씨가 되어 버린 걸 본 종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 잠은 다 잤네.”
이런 걸 봤는데, 어찌 잠을 잘 수 있을까.
종혁은 다 마신 커피를 리필하고자 몸을 일으켰다.
* * *
다음 날 아침, 수사계의 탕비실.
존이 한 손에 도넛과 다른 손엔 커피를 든 동료 형사들을 붙잡고 열변을 토한다.
“최는 정말 이상하다니까요?”
마약 중독자로 추정되는 아빠. 분명 아이에겐 나쁜 부모고, 올바르게 성장하기에 몹쓸 환경이다.
하지만 딱 그 정도다.
이 뉴욕에 있는 마약 중독자가 몇 명이던가.
통계상 뉴욕 시민 20명 중 한 명은 대마 같은 마약을 접해 봤을 정도로 뉴욕 시민에게 있어 마약은 일상에 가깝다.
이 경찰국 안에도 마약 중독자 부모를 가진 사람이 족히 50명은 될 텐데, 고작 그것만 가지고 뉴욕에서 한 손가락 안에 꼽히는 그레이스 탐정 사무소에 의뢰를 했다.
돈이 썩어 넘치는 게 분명했다.
“경찰이, 그것도 형사가 그 짜증 나는 놈들을 이용한다는 게 말이 돼요?”
그러면서 자신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던 그 눈빛.
이제 고작 형사 4년 차, 존 자신보다 경력이 1년이나 적은 애송이가 보일 모습이 아니었다.
그게 열 받아 종혁의 인사파일을 뒤져 본 존이었다. 기본적인 정보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 존의 모습에 형사들이 눈을 가늘게 뜬다.
확실히 존의 말은 일리가 있다.
그들 경찰로서는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존재인 탐정.
오직 의뢰인의 의뢰를 위해 움직이기에 가끔 경찰이 확보해야 되는 증거나 가해자, 피해자를 먼저 확보해 의뢰인에게 넘기기 때문에 상극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뭐야. 아침부터 왜 이렇게 몰려 있어요?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있어요?”
덩치가 크고 탄탄한 대머리의 삼십대 흑인 형사가 의아해하며 다가오자 형사들이 반긴다.
“오, 다리우스! 휴가는 잘 다녀왔어? 휴고 씨는 어떻고?”
“걱정해 주신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휴고 씨도 괜찮아요.”
휴고는 그의 파트너로서 얼마 전 범인을 검거하다 총에 맞아 병원에 입원 중이다. 그에 다리우스도 이참에 휴가를 떠났었다.
다리우스는 당연하다는 듯 도넛을 입에 물며 커피를 따랐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아, 그게…….”
한 형사가 어젯밤 존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존은 다리우스를 보며 눈을 빛냈다.
“데릭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난 그 최라는 친구가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네? 왜, 왜요! 그냥 부모에게서 애를 떼어 놓으면 되는 거잖아요!”
미국은 아동학대가 의심될 때 부모에게서 자식을 떼어 놓을 수가 있을 정도로 법이 강력하다.
그러면 모두 끝날 일이었기에 존은 종혁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다리우스와 형사들은 그런 존을 어이없다는 듯 응시했다.
“왜요!”
“흠. 조니, 잘 생각해 봐. 그렇게 애를 떼어 놓으면? 앞으로 그 애의 인생은 어떡할 거지?”
“예? 그게 무슨 말인지…….”
“조니, 넌 정말 보육 시설이 그 아이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다리우스는 무슨 말이냐는 듯한 존의 표정에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넌 보육 시설 출신인 애들이 어떤 차별을 받는지 몰라.”
부유한 중산층 백인 부모 밑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사립을 다니며 부족함 없이 자란 존.
살아온 세상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그가 보육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백인, 히스페닉, 흑인, 동양인. 이 좆같은 인종 차별 순서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는 게 바로 부모 없는 아이들이야.”
이렇게 차별받는 아이들은 대부분 엇나갈 수밖에 없고, 그런 아이들이 다수 몰려 있는 보육 시설에 있으면 그에 물들기도 쉽다.
그러다 여차해서 범죄라도 저지르면 그때부턴 밑바닥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보육 시설 출신의 전과자를 취직시켜 줄 정신 나간 천사는 거의 없으니까.
“내가 살았던 할렘에서도 부모가 있는 것과 없는 건 큰 차이였어.”
“이건 데릭의 말이 맞지.”
“음. 그러고 보면 최라는 친구도 꽤 구른 형사인가 본데? 어려 보였는데 대단하네. 이런 것도 알고.”
“맞아, 맞아. 이런 거 쉽지 않은 건데.”
이래서 선뜻 나설 수가 없는 거다. 거지 같은 부모라도 그 보호막이 사라졌을 때 사회가 얼마나 냉혹해지는 지 아니까.
그렇기에 아동학대가 정말 심각한 수준이 아니고선 선뜻 구할 수가 없는 거다. 아이가 간절히 바라지 않는 이상 말이다.
“얼마 전 은퇴하신 네 파트너가 여태껏 뭘 가르쳤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경찰로서 기본이어야 해, 조니.”
훌륭한 경찰이 되기 위해선 기본이어야 한다.
이걸 못하는 경찰이 많지만 말이다.
“하, 하지만…….”
존이 배운 건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이는 부모에게서 떼어 놔라 뿐이었고, 매뉴얼에도 그렇게 명시되어 있었다.
‘최가 아니라 내가 잘못된 거라고? 내가 이걸 몰라서 그렇게 한심하게 쳐다본 거고?’
머리가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쾅!
“좋은 아침입니다!”
양손에 도넛을 가득 든 채 사무실로 들어서던 종혁은 탕비실에 모여 이쪽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또 뭐? 왜?’
찔린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는 존을 보니 대충 상황이 짐작되긴 했지만, 종혁은 무시하기로 했다. 존처럼 머리가 꽃밭인 경찰은 잘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었으니까.
그러다 종혁은 이내 낯이 익은 흑인을 발견하곤 눈을 크게 떴다.
“데릭?”
“……최?”
놀라 두 사람을 쳐다보는 사람들.
그때였다.
쾅!
방금 전 종혁처럼 문을 박차며 폴슨 계장이 들어온다.
“자자, 주목! 오, 최. 어제 뉴욕 관광은 제대로 했나? 아, 그런데 그거 도넛이야?”
“10분 전 막 구워 낸 놈들이죠. 하나 드실래요?”
“한 박스만 줘.”
종혁에게 박스를 받아 든 폴슨은 정말로 온기가 가시지 않은 도넛을 한 입 크게 베어 물곤 입을 열었다.
“빌어먹을. 역시 방금 구워 낸 도넛은 더럽게 맛있군. 자, 주목! 오늘부터 뉴욕시가 마약에 대한 집중 단속에 들어가는 걸 모두 알 거다!”
뉴욕에 산재한 경찰서와 자치 경찰, 그리고 FBI까지 동원되는 대규모 단속.
“그래서 우리 계에서도 최소 6명 이상은 차출해야 되는데…….”
중간 관리 1명에 현장 지원 5명.
총괄 관리는 FBI에서 담당하기로 했다.
그 말에 형사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다.
“야! 진짜 이럴래!”
“크흠. 저희도 지원 가고 싶지만…….”
안 그래도 사건이 밀려 있는데, 단속 기간인 일주일 동안 지원을 나가야 한다?
단속으로 실적을 올린다고 해도 지옥이 펼쳐질 거다.
“음. 제가 지원을 가겠습니다.”
“데릭, 네가?”
“아직 제 파트너가 병가 중이니까요.”
“그렇게 나서 주면 나야 고맙지.”
흡족히 웃는 폴슨의 말에 종혁은 눈을 빛냈다.
“저도 지원을 나가겠습니다.”
“오오, 그래. 최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겠어! 그럼 조니까지 같이 가야 하니까…….”
세 명 남은 거다. 폴슨은 얼굴을 와락 구기는 존을 무시하며 남은 셋을 무작위로 찍었다.
“아니, 계장님!”
“불만 있으면 나보다 계급이 높던가!”
“……fuck.”
“좋아. 그럼 이렇게 지원 나가는 걸로 하고, 용무 끝. 농땡이 부리지 말고 업무 시작해!”
그렇게 외친 폴슨은 도넛을 입에 물며 계장실로 향했고, 형사들을 투덜거리며 컴퓨터 앞에 앉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사무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종혁은 존을 힐끔 쳐다봤다.
‘넌 아무래도 좀 굴러야겠다.’
그래야 형사로서의 관찰력이 키워질 것 같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듯, 형사가 어설프면 피해자가 죽기에 일단 함께하는 동안에라도 좀 가르쳐야 할 것 같았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최.”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다리우스 덤벨. 2000년 시드니올림픽 미 유도 국가대표이자 90kg의 강자였던 인물이다. 물론 종혁 자신이 손수 키운 한국 대표에게 발렸지만 말이다.
“너 경찰 됐었어?”
“나도 나이가 있으니까 2004년 아테네 이후로 관뒀지. 나도 건너건너 네가 경찰이 됐단 소리를 듣긴 했는데…….”
당시엔 미쳤다고 생각했다. 무제한의 제왕, 초살의 몬스터가 세계에 군림할 생각을 안 하고 경찰이 되었다고 하니까.
“뭐 그렇게 됐어. 그런데 비계는 왜 이렇게 늘었어? 요새 운동 안 해? 너 그러다 나중에 당뇨로 고생한다.”
“빌어먹을. 닥쳐. 안 그래도 요새 심란하니까. 뭐 그보다 커피 한잔 어때? 오랜만에 옛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눌 겸.”
“오, 여기에 미 국가대표들이 많나 봐?”
“운동 쪽은 거의 경찰 아니면 소방관이 되니까. 자자, 시간 없으니까 얼른 가자고.”
다리우스는 종혁의 등을 떠밀었고, 그런 둘을 바라보던 존은 얼굴을 구겼다.
“씨이. 쪽팔리게.”
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 * *
쾅!
아래층에서 들리는 현관 문 닫히는 소리에 슬그머니 방문을 연 잭이 아래층을 향해 귀를 기울이다 복도를 향해 발을 내딛는다. 아침부터 시끄럽게 굴었다가는 방금 막 잠이 든 아빠에게 얼굴을 맞을 수 있기에.
‘안 돼. 그러면 또 선생님이 전화를 할 거야.’
그러면 엄마가 울면서 때린다. 미안하다고 울다가 저녁에 더 심하게 때린다.
맞는 건 상관없다. 언제나 맞았으니까.
하지만…….
‘엄마가 우는 건 싫어.’
나쁜 엄마보다 싫은 게 슬픈 엄마다.
그렇기에 잭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1층으로 내려 온 잭은 드르렁 코고는 소리가 들리는 안방을 봤다가 더 소리를 죽여 부엌으로 향했다.
“어?”
있어야 할 게 없다.
식탁 위를 살펴 본 잭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가 까먹었나 보다.”
무슨 치료 프로그램 때문에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마트에서 일을 해야 하는 엄마. 일을 하지 않으면 자신과 헤어져야 한다고 했었다.
그 때문에 엄마는 도시락을 챙겨 줄 수 없다며 언제나 부엌 식탁에 돈을 놓고 나가셨다. 그러다 어제처럼 목을 조르거나 때린 다음 날에는 미안하다며 더 많은 돈을 올려놨다.
잭은 그 돈으로 점심을 사 먹어 왔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굶어야 할 것 같았다.
“내일은 잊지 말아요, 엄마.”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가방을 고쳐 메고 집을 나선 잭은 집 앞에 쪼그려 앉아 스쿨버스를 기다렸다.
“히힛. 애들한테 자랑해야지.”
어제 엄마가 사 준 깨끗한 옷을 만진 잭은 행복하게 웃었다.
누가 자신을 지켜보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잘 가렴.”
“내일 봐요!”
부르릉!
떠나는 노란색 스쿨버스의 운전사와 친구들을 향해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던 잭의 얼굴이 돌연 우울해진다.
혼자가 되어 버리자 온몸을 감싸는 공허함.
아직 어린 잭으로선 이게 무슨 감정인지 알지 못했고, 오늘도 찾아온 이 감정에 그는 어깨를 늘어트리며 조용한 집을 응시했다가 몸을 돌렸다.
마트에서 퇴근해 한참 술을 마시고 있을 엄마. 그리고 지금쯤 일어날 아빠.
지금 들어갔다가는 맞을 걸 알기에 잭은 근처의 버려진 집으로 향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무서워서 오지 못하는 곳이지만, 잭에게 있어선 밤이 될 때까지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끼익! 끽!
먼지가 가득 쌓인 거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먼지가 없는 소파로 다가간 잭은 혹여 새 옷에 먼지가 묻을까 조심스럽게 앉으며 숙제를 꺼내 들었다.
집에선 못하니까, 엄마의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걸리면 애써 하던 숙제가 갈기갈기 찢길 수 있기에 여기서 다 하고 가야 했다.
꼬르륵!
“……배고파.”
찢어질 듯 주린 배를 움켜쥔 잭은 억지로 배고픔을 잊으려 짧은 연필을 들었다.
후두둑!
“어?”
갑자기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에 당황하는 순간이었다.
쿵쿵쿵!
화들짝 놀란 잭이 현관문을 보며 숨을 죽인다.
‘누, 누구지?’
“잭! 잭 무어 있어요?”
‘나?!’
눈을 데구루루 굴리던 잭은 슬그머니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빼꼼 열었다가 놀랐다.
파란 옷을 입은 사십대 백인 남성.
“누, 누구세요?”
“오, 네가 잭이니? 네 앞으로 배달된 거란다.”
“제, 제게요? 왜요?”
“나도 모르겠구나. 네게 배달해 달라는 말만 들었거든. 그럼 맛있게 먹으렴?”
잭의 머리를 쓰다듬은 사내는 매서운 눈으로 안을 훑어보곤 몸을 돌렸고, 잭은 멍하니 뭔가가 든 커다란 종이 봉투를 응시했다.
‘누가? 왜?’
꼬르륵!
“누군지는 모르지만 감사합니다.”
의문을 이겨 내기엔 봉투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가 너무 강렬했다.
* * *
어둠이 내려앉은 밤.
잭이 졸음이 밀려오는 눈을 비비며 집으로 향했다.
이전 같았으면 지금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어야 하지만, 어느 천사 같은 분 덕분에 덜 배고파 행복한 잭이 입가에 미소를 그린다.
“히힛. 남은 건 내일 점심이랑 모레 점심에 먹으면 되겠다.”
천사가 준 선물은 무려 햄버거 세트였다.
그것도 무려 3개. 거기다 스프까지 있었다.
‘이렇게 용돈을 아껴서 선물을 사 드리면 엄마가 좋아하겠지?’
상상만 해도 행복한 꿈에 몸을 떤 잭은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얼른 2층으로 가자.’
지금쯤 아빠는 밖에 일하러 나갔을 테니 엄마만 조심하면 된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일주일에 2번은 저녁에 일을 나가는 아빠. 오늘은 그 일을 하러 나가는 날이다.
불이 켜진 TV 앞 거실 소파에 앉아 잠든 엄마를 응시한 잭은 숨소리마저 죽이며 발을 뗐다.
‘엄마가 깨기 전에…….’
“잭.”
“헉! 아, 아빠?”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엄마가 아니라 아빠 올리버였다.
“이제 집에 들어오냐?”
“네, 네.”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잭의 전신을 훑었다.
묘하게 평소와 뭔가 다른 모습.
‘이 새끼가 왜 이렇게 깨끗…… 아.’
“그게 어제 산 옷이었던가?”
“네! 엄마가 골라 준 옷이에요!”
“흠. 옷이 깨끗한 게 좋으려나…….”
“응?”
“아니다. 올라가서 가방 내려놓고 와. 아빠랑 데이트하러 가게.”
“……?!”
데이트.
잭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