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17화 (417/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17화>

    그날 밤, 종혁의 별장.

    “와. 빅토르 그 양반, 성깔 있데?”

    빅토르가 내뿜는 기세에 수많은 범죄자를 겪으며 담력이 세진 백이도도 숨통을 옥죄는 압박을 느꼈다.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뭐, 삼전의 김 회장 같은 포지션이 아니겠습니까?”

    “와. 우리 팀장님은 그런 회장님과 친구라는 거죠?”

    “……그래. 넌 뇌가 청순해서 좋겠다.”

    “싸우자, 인간아.”

    ‘풉.’

    두런두런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방을 보며 웃음을 삼킨 종혁은 빅토르와 함께 어둠에 몸을 숨겼다.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기에 안심하고 움직인 둘이 도착한 곳은 허름한 펍처럼 꾸며진 공간으로, 울란우데에 만들어진 FSB의 안가였다.

    “최종혁 씨.”

    흐릿한 노란 조명 아래, 보드카를 홀짝이던 김경후가 몸을 일으켜 맞이하자 종혁이 박수를 친다.

    “오늘 좋았습니다.”

    “하하. 오랜만에 하는 연기라 어색하진 않았나 걱정했는데 괜찮았다니 다행이군요.”

    괜찮다 뿐이었을까. 놀란 빅토르의 얼굴이 그 증거다.

    “한국인이었습니까?”

    김경후가 꼼짝없이 러시아인이라고 착각했던 빅토르. 그만큼 그의 러시아어와 행동은 사소한 포인트까지 완벽했다.

    해명을 해 달라는 그의 모습에 종혁은 아차 했다.

    “아, 그 부분을 깜빡했네요. 미안해요, 빅터.”

    “끙. 최…….”

    고개를 저은 빅토르는 김경후가 마시던 보드카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빅토르입니다.”

    “바실리라고 불러 주십시오, 회장님.”

    고개를 끄덕인 빅토르는 종혁을 봤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김경후도 눈을 빛내며 종혁을 본다.

    그에 종혁은 담배를 물며 러시아어로 말했다.

    “후우. 선유 컴퍼니와 아진 소코로비쉬의 보물은 둘 다 진짜로 판명될 겁니다.”

    놈들과 SVR이 작정하고 만든 가짜다. 분석기 정도는 너끈하게 통과할 거다.

    “아니요. 회사라면 수작을 부릴 겁니다. 어쩌면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위해 국과수 원장님을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

    한두 푼도 아니고 수십조 원이 걸린 일이다. 김경후가 겪은 회사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죠.”

    보물을 넘기는 순간 국과수 원장은 아진 소코로비쉬의 보물부터 분석을 해 주기로 했다. 길어 봤자 한나절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제가 원장님 곁에 붙어 있을 테고요.”

    그러며 누가 국과수 원장을 압박하는지 알아낼 거다.

    “풉. 새끼들, 똥줄 타겠군요.”

    보물이 둘 다 진짜다. 놈들이 짜 놓은 판이 모두 어그러지는 거다.

    동감이라는 듯 웃음을 흘린 종혁은 돌연 낯빛을 굳혔다.

    “하지만 나는 거기까지입니다.”

    이후 놈들은 또다시 훼방을 놓은 종혁 본인을 이번 사건에서 어떻게든 떨어트려 놓을 거다.

    “그게 무엇일지는 예측이 되진 않지만, 난 아마도 더 이상 이 일에 공식적으로 간섭할 수 없을 겁니다.”

    백이도 과장과 오택수, 최재수 모두 그렇게 될 거다.

    그리고 놈들의 조력자가 이번 사건을 맡게 될 거다.

    “그렇게 날 떨어트려 놓은 놈들이 무슨 짓을 할 것 같습니까?”

    종혁의 차가운 시선에 김경후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절 제거하려 들겠죠. 그리고 보물들도.”

    키릴 굴라쉬도 사고로 위장해 제거하든, 아니면 약점을 알아내 물러나게 하든 극단적인 수를 쓸 거다.

    김경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 공격을 막아 내서 최대한 놈들을 끄집어내는 거다.

    종혁이 원하는 게 그것이다.

    김경후는 걱정과 우려를 표하는 종혁의 눈빛에 피식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쉽게 죽어 줄 생각은 없으니까!”

    거기다 종혁이 옛 KGB 요원들과 퇴역한 스페츠나츠를 붙여 주지 않았던가. 본사의 처리조가 온다고 해도 충분히 막아 낼 자신이 있었다.

    “키릴 굴라쉬를 통해 중화기들이 전달될 겁니다.”

    “푸흐. 죽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종혁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회사가 자신에 의해 또다시 피해를 입는다?

    그렇지 않아도 종혁 탓에 그동안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회사가 이번 프로젝트까지 실패한다?

    설령 그 거대한 회사라 할지라도 휘청거릴 거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철옹성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럼 난 뭘 해야 합니까?”

    “키릴 굴라쉬를 비호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됩니다.”

    오늘 보여 준 모습이 있으니 놈들은 절대 빅토르를 해하지 못할 거다. 그러면 키릴 굴라쉬를 제거하는 것도 신중해질 터.

    그렇게 시간을 끌수록 상황은 놈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거다.

    “……그렇게 되면 무리를 하겠군요.”

    “아뇨.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김경후가 다급히 태클을 걸자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그 둘 모두 내가 원하는 결과입니다.”

    둘 중 뭐가 되었든 상관없다. 종혁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놈들을 전부 색출해 그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

    무리를 한다면 새로이 놈들의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포기를 한다면 놈들의 새로운 연수원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 거다.

    “프로젝트를 실패한 이들은 연수원에서 얼굴을 뜯어고쳐야 할 테니까요.”

    섬뜩!

    순간 종혁의 몸에서 폭발하는 살기에 옛날 일이 떠올라 심장이 아파진 김경후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이러니 내가 당했지.”

    아니, 회사가 당한 거다.

    “하하.”

    종혁은 자신처럼 살기등등한 미소를 짓는 빅토르를 향해 미소를 지어 줬다. 이전에 그에게 사기를 치려 했던 놈들이라고 말하자 이번 일에 적극 협조해 준 빅토르.

    “이번에 수확할 열매도 달콤할 겁니다. 저번의 다단계 투자 사기 때처럼.”

    씨익!

    “좋군요. 그럼 우리 건배할까요?”

    채챙!

    세 개의 잔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리고 다음 날, 종혁은 보물을 들고 한국으로 향했다.

    *   *   *

    “뭐?”

    “최종혁이 국과수 원장을 지키고 있답니다.”

    “빌어먹을! 이 새끼가 또……!”

    제2기획실장은 결국 재떨이를 집어 던져 버렸다.

    “어,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회의 준비부터 해!”

    계획이 다시 어그러졌으니 다시 설계해야 됐다.

    “최종혁, 이 개새끼!”

    제2기획실장은 여태까지 얽혀서 좋은 꼴을 보지 못한 최종혁을 떠올리며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거기 가서 콱 뒈져 버렸으면 좋겠군!’

    제2기획실장은 간절히 바랐다.

    *   *   *

    다음 날 국립과학연구소.

    “후우. 최 팀장, 나 모교보다 최 팀장을 선택한 거 알지?”

    ‘어차피 스케줄상 힘드셔 놓고.’

    “하하. 제가 이 은혜 꼭 갚을게요. 그럼 나머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근데 이건 시간 좀 걸릴 거야.”

    스케줄 때문이다. 종혁의 부탁 때문에 있는 스케줄도 취소하며 분석에 매달렸던 국과수 원장.

    “최대한 빠르게만 부탁드릴게요. 그럼 수고하십쇼.”

    “그래. 최 팀장도 수고해.”

    그렇게 국과수를 나선 종혁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한국대학교 의과대학 장동선 교수라…….”

    종혁이 귀국하기 하루 전 갑작스럽게 국과수 원장에게 연락해 법의학교실 특별 강의를 부탁했던 장동선 교수.

    제자의 간곡한 부탁이라 국과수 원장은 많이 고민했었다. 결국 종혁 때문에 포기했지만 말이다.

    “한 놈 나왔군.”

    장동선이 놈들의 조력자인지, 아니면 조력자에게 이용을 당한 건지 몰라도 일단 한 놈 나왔다.

    얼굴이 기괴하게 뒤틀어진 종혁은 핸드폰을 들며 본청으로 향했다.

    “예, 나탈리아.”

    *   *   *

    그르릉!

    거친 소리를 내며 멈춘 스포츠카에서 내린 종혁이 본청 건물을 응시하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종혁 자신은 이제 이번 사건에 간섭을 할 수 없게 될 거다.

    ‘누구냐. 누가 내 등에 칼을 꽂을 거냐.’

    담배를 물며 전의를 가다듬은 종혁은 마지막으로 숨을 길게 내쉬곤 본청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 최 팀장님!”

    “아, 동수야.”

    옛날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의 팀원 중 한명.

    “뭐야, 왜 죽상이야? 뭔 일 있어?”

    “아, 그게…… 하. JYK에서 나온 걸그룹 아시죠?”

    무슨 말인지 단숨에 알아차린 종혁은 혀를 찼다.

    “왜? 광대짓 하래?”

    이 시기 대한민국을 강타한 열풍이 하나 있다. 거의 한국 플래시 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열풍이다.

    십대 애들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 걸그룹의 춤을 췄던 열풍.

    “저희도 계속 안 된다고 말했지만…….”

    “절대 하지 마.”

    이때 경찰은 몇 박자 늦게 이 열풍에 참가했다가 두고두고 욕을 먹었다.

    “지금이야 친숙한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경찰이 무능해 보이는 사건이 터지면? 국민들은 이걸 가지고 씹을 거야. 이딴 거 할 시간에 훈련이라도 더 하라고 말이야.”

    “제 말이요! 그런데 씨알도 안 먹혀요!”

    정말 겨우겨우 막아 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다.

    “흠. 그럼 홍보 영상 만들어서 그 걸그룹 노래를 노출시키는 걸로 계획을 짜 봐. 자체 다큐 만들어서 그 노래가 계속 노출되도록 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경찰도 이런 노래를 듣는 친숙한 존재라고 말이야. 이번 일의 요지는 그거잖아. 친숙한 경찰.”

    “아, 그런 수가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아냐. 그럼 수고.”

    “옙! 충성!”

    손을 흔들며 돌아선 종혁은 혀를 찼다.

    옛날 부하 때문에 전의가 좀 흐트러졌다.

    심호흡을 하며 다시 가다듬은 종혁은 외사국이 있는 층에서 열리는 엘리베이터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 순간이었다.

    “최 팀장!”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달려온 함경필 국장.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그의 칭얼거림에 종혁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무슨 일? 있지. 흐흐. 아주 큰 게 있지.”

    ‘결국 왔군.’

    종혁은 심호흡을 했다.

    “준비됐습니다.”

    “흐흐흐. 최 팀장, 축하해.”

    “예?”

    “미국으로, 그것도 NYPD로 연수 가게 된 걸 축하한다고-!”

    쿠웅!

    ‘……미친.’

    “캬! 드디어 우리 최 팀장도 본격적으로 간부 코스를 밟는구나!”

    마치 나 잘했지, 라는 모습에 뒤통수가 얼얼해진다.

    미국의 중심, 아니 세계의 중심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뉴욕의 치안을 책임지는 뉴욕 경찰국, NYPD(New York Police Department).

    평상시라면 마다하지 않을 좋은 기회이지만, 타이밍이 너무 공교로웠다.

    ‘일단 이 양반은 아닌 것 같고…….’

    “하하. 누굽니까?”

    “응?”

    “누가…… 저보고 미국에 가라고 한 겁니까?”

    “어? 인사과 박 과장이 말하긴 했는데…….”

    “아, 박 과장님이요.”

    순간 종혁의 눈이 번뜩인다.

    공교로워도 이렇게 공교로울 수 있을까.

    회귀 전 바이칼호 보물선 인양 사기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팀에게 압력을 넣어 수사를 흐지부지하게 만들고, 1년 후 한직으로 좌천시킨 게 아닌가 의심하던 인물 중 한 명인 박병철 과장.

    최기룡 전 경찰청장과 박종명이 무슨 거래를 했는지 모르지만, 최기룡이 경찰청장이었던 시절부터 인사과를 담당하고 있던 인물이다.

    다만 여태껏 경무과, 교육정책과, 복지정책과, 인사과 4개 부서의 업무를 총괄 관리를 하는 경무인사기획관이 최기룡과 이택문의 사람이기에 여태까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설마 너냐?’

    다만 타이밍이 공교롭다곤 해도 확실치는 않았다.

    “이거……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응, 응. 그래. 경무인사기획관님에게도 인사드려. 그 양반이 결재하지 않았다면 이 일이 통과됐겠어?”

    ‘그 양반도 있고.’

    함경필 국장의 말처럼 박병철 과장이 수십만 경찰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고 한들 경무인사기획관의 결재가 없으면 이런 일은 불가능했다.

    ‘더욱이 해외 연수는 인사과가 아니라 경무과의 영역이지.’

    뭔가 이치에 맞지 않았다.

    “하하. 옙. 그럼 전 업무 시작 전에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응! 다녀와!”

    해맑게 웃으며 손을 젓는 함경필을 뒤로한 종혁은 선물을 준비해 인사과로 향했다.

    똑똑!

    “어?”

    깜짝 놀라는 인사과의 수장이자 인사담당관인 박병철 과장의 모습을 본 순간, 종혁의 마음속에서 살의가 꿈틀거린다.

    그저 의혹만으로도 통제를 벗어나려는 살의.

    하지만 종혁은 어수룩하게 웃으며 들고 온 선물을 내밀었다.

    “덕분에 NYPD로 연수를 가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어이구. 뭘 이런 걸 다…….”

    작은 크기의 종이봉투에 약간 실망했던 박병철은 그 안에 든 시계 케이스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 종혁을 봤다.

    “크흠. 다들 봤지? 이게 상부상조의 정신이야!”

    “인사과는 뇌물을 받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과장님?”

    “이게 뇌물이냐? 감사의 선물이잖아! 에이!”

    박병철은 담배나 피우자며 종혁의 등을 떠밀며 옥상으로 향했다.

    “전 과장님이 절 이렇게 생각해 주시는 줄 몰랐습니다. 그런 줄 알았다면…….”

    “크흠. 그래도 기뻐하니까 다행이네. 나도 내 새끼들을 위해 어렵사리 확보한 TO를 양보하는 거니까 가서 잘 배우고 와.”

    ‘그런 거였나.’

    이제야 한 가지 의문이 해소된 종혁을 바라보며 박병철이 눈을 가늘게 뜬다.

    “크흐흠. 최 팀장은 잘 모르겠지만, 이번 연수 때문에 말이 좀 많았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박병철이 목소리를 깐다.

    “갑작스럽게 정해진 연수라서 더 심했지.”

    ‘갑자기라…….’

    종혁은 일단 더 듣기로 했다.

    “그랬습니까?”

    “그럼. 경정이 어디 한둘이야?”

    해외 연수 TO는 1년에 몇 없는 귀중한 자리다. 일단 다녀오기만 하면 총경은 무조건 진급한다고 할 만큼 고위 간부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

    그렇다 보니 경위 이상 간부들은 이 해외 연수에 선택되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거기다 최 팀장은 아무래도 우리랑 파벌이 다르잖아?”

    “에이, 그런 게 어딨습니까. 경찰이 범인만 잘 때려잡으면 되지.”

    “좀 배워라, 배워. 최 팀장도 이제 곧 고위 간부가 될 건데 사내 정치는 해야지. 고작 총경에서 끝낼 거야?”

    “아하하.”

    “하아. 최 팀장은 다 좋은데 그 정치 감각이 부족해. 하, 진짜 갈 길이 멀다. 뭐 그러니 나나 청장님도 더 눈에 밟히는 걸 테지만.”

    순간 종혁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청장님이요?”

    ‘갑자기 박종명 청장이 여기서 왜…….’

    “아, 몰랐어? TO를 최 팀장에게 양보하라고 하신 게 바로 청장님이시잖아.”

    쿠웅!

    ‘박종명 청장이라고? 박 청장이 날 해외로 보내는 거라고?’

    순간 뒤통수가 얼얼하다 못해 눈앞이 아득해진다.

    아니다. 이것도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하. 그랬습니까? 이거 청장님께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당연히 그래야지! 아, 지금쯤이면 출근하셨겠다. 얼른 가 봐.”

    “예!”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경찰청장실로 향했다.

    “……박 과장의 입이 싸군.”

    경찰청장의 비서와 다름이 없는 총경이 혀를 차며 전화기를 든다.

    “청장님, 최종혁 팀장이 찾아왔습니다.”

    -들여보내.

    “들어가.”

    “하하. 감사합니다.”

    종혁은 문을 열고 경찰청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충성. 경정 최종혁. 청장님께 용무 있어서 왔습니다.”

    “왔군. 앉아.”

    “그런데 왜 접니까?”

    권한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을 던지는 종혁의 모습에 박종명이 소파에 앉으며 다리를 꼰다.

    “설마 불만인가? 난 분명 좋은 기회를 준 것 같은데 말이야.”

    단기라지만 종혁에겐 아주 좋은 기회다. 안 그래도 탄탄대로인 종혁의 승진가도에 큰 영향을 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여쭙는 겁니다. 그 기회, 청장님의 사람이 아니라 제게 주시는 이유를 말입니다.”

    “최 팀장이 그 내 사람이 되라고 보내는 거야.”

    박종명의 눈가에 그려지는 따뜻한 욕심.

    “으음. 이번에 러시아에서 생긴 일에 대해선 들으셨을 겁니다.”

    “그래. 그래서 더 보내는 거지.”

    경찰이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사건에 개입했다.

    종혁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분명 이걸 걸고넘어질 터. 그땐 박종명도 종혁을 커버해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가 도중에 물러나면 분명 말이 나오게 될 겁니다.”

    “그 부분은 내가 그들에게 양해를 구해 놓지.”

    “그게 통하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박종명은 눈살을 찌푸렸고, 종혁은 그런 그의 표정 변화를 유심히 살피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앞으로 외사국이 러시아에서 수사를 할 때 큰 도움을 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못 가겠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모르나?”

    “압니다. 청장님께서 얼마나 어려운 결정을 하셨는지 압니다. 하지만…… 후, 죄송합니다. 저를 위해 어려운 결정을 하셨지만…….”

    “하!”

    박종명은 자신이 이렇게 기회를 줌에도 고사를 하려는 듯한 종혁의 모습에 혀를 찼다.

    성격대로라면 때려치우라고 외쳤을 테지만, 일단 종혁을 한국에 없게 하는 게 중요했다.

    “이거 좋은 일을 하면서도 애원을 해야 될 판이군. 그래, 생각해 보니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일에 대한 선물을 주지 않았군. 영국에서의 일에도.”

    “예?”

    ‘쌍욕이 날아와야 하는데도 애원을 한다고?’

    의심이 점점 확신으로 기운다.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빛나기 시작했다.

    ‘만약 맞다면…….’

    종혁은 그걸 확인하기 위해 낚싯대를 던지기로 했다.

    “으음. 그렇지 않아도 드리고 싶었던 말이 있긴 했는데…….”

    “최 팀장답지 않군. 평소처럼 해.”

    “……그럼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 보겠습니다. 제게 프리롤 포지션을 허락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프리롤?”

    잠시 이해 못한 박종명이 미간을 좁힌다.

    “아, 광수대 같은 수사과를 설립해 달라는 건가?”

    “그건 차차 해 나갈 테니 그런 팀을 구성하고 싶습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게 있는 것 같군. 계속해 봐.”

    그 말에 종혁의 눈빛이 진지해진다.

    “수사에 관련된 모든 절차를 생략한 수사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상사에게 보고는 할 거고, 결재도 받을 겁니다.”

    박종명은 단숨에 종혁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차렸다.

    “미국의 FBI 같은 수사팀을 만들고 싶은 거군.”

    여태껏 종혁처럼 생각한 경찰이 한둘일까.

    박종명도 현역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다만 당시의 여건상 포기했지만 말이다.

    “FBI 같은 수사팀이라…….”

    “방금 전 청장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일에 대한 선물을 주신다고 생각하시면 변명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생각에 잠기던 박종명은 이어진 종혁의 말에 피식 웃었다.

    “외통수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일로 청와대로 불려 가서 박노형 대통령의 칭찬을 받았던 박종명.

    거기다 종혁은 영국에서의 일로 현재 강력한 대권 주자인 박명후 후보와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그래, 이게 너지.’

    이렇듯 상대를 외통수로 몰아넣어 제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게 바로 최종혁이란 놈이었다.

    그러나 너무 무리한 요구다.

    ‘이걸 들어주게 되면…….’

    깊게 갈등을 하던 박종명은 마치 방금의 조심스러운 모습은 마치 연기였다는 듯 느긋이 차를 마시는 종혁의 모습에 혀를 찼다.

    들어주지 않으면 미국으로 가지 않을 모양새였다.

    ‘차라리 좌천이라도 시킬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종혁이 이뤄 놓은 게 너무 많았고, 명분도 없었다.

    더욱이 그런 결정을 했다간 종혁을 영영 잃게 될 터.

    “쯧. 그러지. 연수를 다녀오면 최 팀장이 마음에 드는 사람들 골라서 데려가.”

    약간의 인사권까지 부여하는 통 큰 결정.

    그러나 종혁의 눈빛은 더 차가워졌다.

    ‘하? 이걸 이렇게 쉽게 허락한다고?’

    왜 그동안 이런 형태의 수사팀이 없었겠는가. 한국 경찰에겐 그만큼 절차라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너 맞구나?’

    그 조직의 일원인 것인지, 아니면 조력자에 불과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했다.

    ‘만약 조력자라면…….’

    무언가 그만한 대가를 약속받았을 터.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아마 머지않은 미래에 알게 될 거다.

    “감사합니다! 충성!”

    “벌써 가려고? 차라도 더 마시고 가지그래?”

    “미국에 가려면 정리해야 될 게 많아서 말입니다. 충성.”

    몸을 돌린 종혁은 경찰청장실을 빠져나갔고, 그 모습을 응시하던 박종명은 혀를 찼다.

    “저놈 때문에 큰 손해를 보게 됐군.”

    없는 연수 자리를 만드느라 미국에 아쉬운 소리를 했다.

    그것도 모자라 안 그래도 미국 연수 때문에 부하들 사이에서 말이 나오던 상태인데, 이런 수사팀까지 만들어 줘야 한다.

    부하들을 달래는 데 꽤나 애를 먹을 것 같았다.

    한편 계단의 벽에 등을 기댄 종혁이 웃음을 터트린다.

    “푸하!”

    ‘미치겠네.’

    참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경찰 공권력 향상에 이바지하려기에 억지로나마 믿어 보려고 했던 자신이 병신이었다.

    ‘그래. 내가 병신이었어.’

    회귀 전 결국 당시 경찰청장에 의해 무기명채권 사기 사건이 어그러졌음에도 그래도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이기에, 최기룡과 이택문이 그래도 믿고 넘긴 박종명이기에, 수십만 경찰조직의 가장 윗물이기에 믿어 보려고 했는데 그 기대가 이렇게 배신으로 돌아왔다.

    종혁은 뜨거워지는 머리를 쓸어 올렸다.

    ‘월척이네.’

    예상하지 못한 일격이라 꽤나 아팠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하루라도 빨리 경찰 조직 내에서 암약하는 버러지가 누군지 알게 됐으니 말이다.

    만약 훗날 놈들을 칠 때, 이제 파멸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조희구를 검거할 때 박종명이 뒤통수를 쳤으면 어떻게 됐을까. 꼼짝없이 당했을 거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당분간 지켜보려고 했었던 이번 일.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숨겨진 몸통이 보여질 테니 종혁은 놈들의 발악이 정점에 이를 때까지 기꺼이 기다려 주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드러낼 줄이야.’

    몇 번 튕기는 모습을 보였으니 이제 놈들은 종혁 본인에 대한 의심과 감시를 거둘 터.

    ‘그럼 난 자유를 얻는 거지. 여기에 장동선 교수까지 생각하면…….’

    종혁은 나른하게 웃으며 담배를 깊게 빨았다.

    어찌 보면 놈들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꼬리만 드러낸 꼴.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인물을 드러냈다.

    ‘그래, 계속 이렇게만 드러내 주라. 아주 싹 다 뽑아 버리게.’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순간 살의가 폭발한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오 경감님, 저 짐 쌉니다.”

    -씨발! 결국 가는 거냐!

    “어쩌겠습니까. 가라는데.”

    종혁은 담배를 던지며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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