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14화 (414/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14화>

    부우우웅…….

    울혼섬의 선착장이 가까워지자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 종혁의 요트.

    “그러면 8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백이도 과장을 힐끗 본 종혁이 오택수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돌아서고, 낯빛이 살짝 굳었다가 펴진 오택수가 손을 젓는다.

    “최재수, 너 여기서 사고치면 죽는다!”

    “에이 씨.”

    둘은 어젯밤의 일을 떠올렸다.

    내일의 스케줄을 위해 모두가 곯아떨어진 저녁.

    달칵!

    노트북을 통해 선유 컴퍼니의 전 직원 명단을 살피는 종혁의 표정이 굳는다.

    다시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멤버가 달라.”

    심지어 규모도 다르다.

    회귀 전 죄다 초짜들로 구성되어 있던 바이칼호 보물선 인양 사기 사건. 이르쿠츠크 공무원들을 죄다 구워삶았는데도 모두 초짜였던 사건.

    당시 사건 파일로 봤던 사기꾼들 명단과 선유 컴퍼니 직원들 명단 중 겹치는 인물이 러시아 현지에서 고용한 발굴 전문팀을 제외하면 몇 명밖에 없다.

    그 몇 명조차도 한국에 있는 상황.

    즉, 도경수와 박재현은 회귀 전엔 이번 사건에 얽혀 있지 않았던 이들이란 뜻이었다.

    ‘모두 나 때문이겠지.’

    그동안 종혁이 놈들에게 입힌 피해가 얼마던가.

    놈들은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작정을 하고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음이 분명했다.

    실제로도 그런 양상을 보였다.

    은밀히 사람을 불러 모았던 회귀전과 달리 제법 열정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여전히 기관 투자는 제외됐지만, 회귀 전과 투자 모집 양상부터가 달랐다.

    그렇다면 이번 일에 종혁이 알지 못하는 어떤 변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걸 감안해서 작전을 짜긴 했지만……’

    찰칵! 치이익!

    “후우우.”

    “안 자냐?”

    “아, 한국에서 투자 설명서가 날아와서요.”

    종혁은 슬그머니 노트북을 닫으며 오택수를 반겼다.

    “졸부도 열심히 사시는구만.”

    “몰랐어요? 부자일수록 바쁘게 사는 법입니다.”

    “지랄.”

    안으로 들어온 오택수는 종혁에게 맥주를 건넸다.

    챙!

    허공에서 부딪치는 맥주병.

    종혁은 오늘 밤의 마지막 맥주로 타는 목을 달랬다.

    “그래서?”

    종혁은 오택수를 봤다.

    “또 뭘 꾸미는 건데?”

    오택수의 눈이 어느새 서늘히 가라앉아 있다.

    ‘하여튼 저놈의 촉은.’

    피식 웃은 종혁은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어둠에 물들어 버린 세상에서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이 종혁의 얼굴을 때린다.

    “수십조랍니다. 저기에 묻힌 게.”

    “그럼 그렇지. 시발.”

    돈이라면 차고 넘치는 게 종혁이다. 그가 돈 때문에 이곳에 왔을 리는 없을 터.

    즉, 저곳에 수십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사건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의심이죠. 그래서 말 안 한 거고.”

    “난 뭘 하면 되겠냐?”

    “아무것도?”

    현재까진 뭘 할 필요가 없다.

    흘러가는 상황이 다 알아서 해 줄 테니 말이다.

    “……쯧. 알았다.”

    단숨에 맥주를 모두 들이켜고 일어난 오택수는 손을 저으며 방을 빠져나갔고, 종혁은 타들어 가는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문제는 이 사건 뒤에 있는 인간들인데…….’

    회귀 전, 당시 바이칼호 보물선 인양이 사기로 밝혀지면서 한국이 들썩였음에도 경찰은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곧이어 터진 연예인 스캔들 때문에 대중의 관심이 돌려졌다.

    여기까지는 어쩔 수 없다 치지만, 경찰의 대처가 종혁을 의심스럽게 했다.

    당시 초짜들만 가득했던 바이칼호 보물선 인양 사기 사건.

    당연히 수사팀은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더 파 보려고 했지만, 윗선의 압력에 의해 불발로 끝났다.

    그리고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들은 1년 후부터 차례차례 한직으로 좌천됐다.

    ‘그때 고위 간부와 현재 고위 간부들 중 겹치는 인간이…… 일단 본청만 놓고 보면 인사과의 박 과장. 교통국의…….’

    한참을 생각하던 종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그리고 함경필 국장을 비롯해 외사국 간부 전원.’

    본청만 이 정도고, 서울 경찰청으로 넘어가면 훨씬 더 많다.

    이렇듯 어디에 놈들이 숨어 있을지 모르기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만 했다.

    “아, 거지같네.”

    같은 식구를 의심해야 된다는 건 언제나 거지 같은 일이었다.

    한편 건물을 빠져나온 오택수는 담배를 물었다.

    “그나저나 어떤 무당이 용하더라…….”

    어떻게 수사기법에 관한 포럼에 참가했다가 사건에 휘말리는 걸까.

    물론 진짜 사건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의심일 뿐인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테지만, 이건 분명 종혁에게 뭐가 씌여도 단단히 씌인거다.

    아무래도 이번엔 정말 굿판을 벌여야 할 것 같다.

    “하늘은 겁나 예쁘네.”

    마치 별로 이뤄진 대륙과 강이 흐르는 듯한 아름다운 밤하늘.

    그곳으로 향하는 담배 맛이 참 썼다.

    “진짜 사랑해, 최 팀장! капитан! погнали!(선장! 갑시다!).”

    부르르릉!

    종혁은 점점 뒤로 빠지는 배를 응시하다 돌아섰다.

    “최재수, 해장 겸 아점으로 보르쉬에 보드카 어때?”

    생태 및 자연 보존을 위해 개발이 허가되지 않는 울혼섬에도 식당은 있었다.

    “……저 팀장님.”

    “음?”

    “선유 컴퍼니 있잖아요.”

    “선유 컴퍼니가 뭐?”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호오?’

    종혁은 놀란 눈으로 최재수를 봤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아니, 수십조 원의 규모라면 조금 더 제대로 투자를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개인 투자자를 모집한다는 것도 그렇고…….”

    ‘그건 또 언제 알아본 건지.’

    살짝 웃음이 삐져나온다.

    “보드카에 맥주가 좋겠네.”

    드디어 최재수에게도 형사로서의 촉이란 게 생기는 것 같다.

    아무래도 축하를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이제야 그간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 같음에 종혁은 기분이 좋아졌다.

    *   *   *

    “푸후!”

    수면 아래서 솟구친 다이버 중 한 명이 저 멀리 점처럼 찍힌 뭔가를 보며 미간을 찌푸린다.

    ‘거슬리게 하네, 저놈들.’

    20분 전 나타나 뭍과 가까운 곳에 정박해 있는 놈들.

    “빨리 올라와서 몸 풀어! 나중에 고생한다니까?!”

    걱정이 가득한 러시아인의 재촉에 수경을 벗으며 배 위로 올라선 다이버는 박재현에게로 다가갔다.

    “박 대리님, 저놈들 계속 놔둘 겁니까?”

    박재현은 질문을 던진 다이버를 보며 피식 웃었다.

    “대형 프로젝트 참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

    “그렇습니다만…….”

    “그럼 티 내지 마, 유 사원. 혼난다?”

    “죄,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사원일 때는 다 그렇지.”

    힘든 인턴 생활을 지나 정식 사원이 됐으니 뭐라도 된 것 같고,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해 보고 싶고. 그래서 사원일 때 이렇게 질문이 많아진다.

    “그래도 입은 닫고 배울 생각만 해. 본사가 기회를 줬으면 기회를 살려야지. 안 그래?”

    “죄송합니다.”

    “아니라니까? 자자, 담배 피우지?”

    다이버의 입에 담배를 물려 준 박재현은 저 멀리 보이는 배에 눈빛을 가라앉혔다.

    ‘나도 알고 싶다. 저 새끼들이 누군지…….’

    박재현도 저들이 거슬린다.

    느낌상 올라프도 어찌할 수 없는 모스크바의 거물이 보낸 트레저 헌터팀이 이쪽을 염탐하는 것이 분명 하지만, 확신은 금물이었다.

    ‘하. 이르쿠츠크에 있는 놈들은 대체 뭐하는 거야? 또 저 새끼들 확인하러 간 놈은 왜 연락이 없고? 거기다 또 최종혁은 왜 안 오는 거고?’

    모스크바를 떠난 후 행적이 묘연해진 종혁.

    놈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기에 박재현은 초조해졌다.

    지이잉! 지이잉!

    “쯧. 빨리도 알아본다. 예, 박재현 대립니다.”

    -대리님, 알아봤는데 그쪽 배가 아니랍니다. 이르쿠츠크 항구에서 나온 배도 아니고요.

    “……그럼?”

    -아, 잠시만요? 뭐? 알았어! 대리님! 놈입니다!

    “놈?”

    의아해하던 박재현은 눈을 부릅떴다.

    -예! 최종혁이요! 방금 전 확인을 했는데 백이도와 오택수가 낚시를 하고 있답니다!

    그 말에 다급히 고개를 든 박재현은 해안도로를 스쳐 지나가는 차를 보며 눈을 빛냈다.

    ‘역시 왔구나, 이 개새끼. 그래, 정말 냄새를 맡았다는 거냐?’

    “최종혁은? 확인됐어?”

    -최재수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배 돌리라고 할까요?

    “……한 번만 더 그렇게 해 보고 확인되지 않으면 그냥 철수해. 끊어.”

    통화를 종료한 박재현은 다이버에게 쉬라는 듯 어깨를 두드리곤 도경수를 찾아 움직였다.

    배 후미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도경수 차장.

    “차장님, 떴습니다.”

    “씨발놈. 빨리도 온다. 물건은 준비됐지?”

    “예.”

    “챙겨서 따라와. 총도 챙기고. 명심해. 우린 어디까지나 염탐을 하는 다른 트레저 헌터팀을 쫓아내기 위해 접근하는 거다.”

    “예! 김 사원! 박 사원! 총 챙겨서 따라와!”

    그들은 빠르게 다른 배로 넘어가 종혁의 요트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후욱!

    “또 왔구나!”

    거의 직각으로 휘는 낚싯대를 잡아당긴 백이도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아차 하면 함께 빨려 들어갈 듯한 묵직함.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해진 낚싯줄.

    이번에도 대물이다.

    “나도 왔구나!”

    옆에서 들리는 오택수의 외침에 슬쩍 아이스박스를 본 백이도는 입술을 깨물었다.

    현재까지 스코어 8:8.

    아쉽게도 동률이다.

    ‘쯧. 앞설 줄 알았는데.’

    백이도는 베테랑 낚시꾼의 스킬을 최대한 발휘하며 물고기를 끌어 올렸다.

    ‘올라온다. 올라와!’

    물이 얼마나 투명한지 물고기가 올라오는 게 눈에 보인다.

    ‘3자? 4자?’

    아무튼 이번에도 대물임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어?”

    시야 밖에서 갑자기 나타난 검은 그림자 하나.

    “어? 어?”

    놈은 망설임도 없이 백이도의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의 옆구리를 단숨에 물어 챈다.

    “이런 썩을! 야, 인마!”

    “악! 뭐, 뭐야. 이 새끼! 야, 아가리 열어! 안 열어, 새꺄!”

    “STOP!”

    불같이 솟구치는 둘의 혈압을 단숨에 잠재우는 선장의 외침.

    “천천히 올려! 천천히!”

    둘은 뭔가 급한 듯한 선장의 모습에 천천히 릴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물고기를 문 채 따라 올라오는 검은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엥?”

    “뭐, 뭐야?! 물범이 여기 왜 있어?!”

    그랬다. 그들의 소중한 대물을 낚아챈 건 바로 세상에서 유일하게 민물에서 사는 물범, 바이칼호에 사는 바이칼물범이었다.

    “저 개구쟁이들이 놀러 왔군. 잠시 쉬는 게 좋겠어. 백, 오.”

    선장의 어설픈 영어에 둘은 눈을 껌뻑였다.

    “저, 정말 물범이 맞는 겁니까?”

    “물범이지. 우리도 저놈들이 왜 이곳에 사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바이칼호의 마스코트지. 저놈들이 돌아갈 때까지 오믈이나 구워 먹자고.”

    바이칼 호수 대표 어종인 오믈, 소금을 살살 뿌려 막 구워 낸 오믈에 보드카를 섞은 맥주 한 잔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괜히 관심 주면 사람 손 타서 안 돼.”

    “아니…… 허어.”

    “꾸우?”

    어느새 수면 밖으로 고개를 삐쭉 내민 물범의 모습에 자신들도 모르게 입가가 느슨해졌던 그들은 슬그머니 핸드폰을 꺼냈다.

    찰칵! 찰칵!

    “옳지. 그렇지. 어이구, 예쁘다.”

    “갈 때 저놈 인형이나 사 갈까요? 애들 주게?”

    “그럴까?”

    “백! 오!”

    “오케이!”

    요트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들어가자마자 귀를 때리는 소리와 폭발하듯 풍겨 오는 압도적인 향기에 군침을 꿀꺽 삼키며 홀린 듯 부엌으로 향했다.

    촤르르르르!

    프라이팬을 반쯤 채운 기름에서 튀겨지듯 익어 가는 오믈.

    서로를 본 오택수와 백이도는 냉장고에서 김치와 맥주를 꺼내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저놈들은 또 뭐야.”

    가스레인지 위로 뚫린 작은 창문을 통해 이쪽을 향해 접근하는 배 한 척.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웃은 선장은 권총을 뒷춤에 찔러 넣으며 밖으로 향했고, 눈을 데구루루 굴린 오택수와 백이도도 얼른 그 뒤를 쫓았다.

    그리고 이내 깜짝 놀랐다.

    “어? 선유 컴퍼니?”

    “어? 형사님들?”

    백이도와 도경수는 서로를 보며 눈을 껌뻑였다.

    “아, 아니 선유 컴퍼니가 여길 왜……. 그런데 설마 그거 총입니까?”

    순간 눈빛이 차가워진 백이도가 습관적으로 옆구리 쪽으로 손을 가져간다. 그에 도경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야, 야! 얼른 총 치워! 하하. 죄송합니다. 저흰 염탐을 하러 온 다른 트레저 헌터들인 줄 알고……. 그런데 형사님들께선 어쩐 일로?”

    “낚시를 하러 왔습니다만…… 아, 맞아. 바이칼에서 보물선을 찾는다고 하셨죠? 그게 이 근처신가 봅니다?”

    “하하. 예, 그렇죠. 저깁니다. 그런데 두 분뿐이십니까?”

    “예. 최 경정과 최 경장은 울혼섬 관광을 갔습니다.”

    “……아, 그래요?”

    ‘정말 관광을 갔다고?’

    박재현에게 슬쩍 눈짓을 한 도경수는 박재현이 선미쪽으로 향하자 옅게 웃었다.

    “울혼섬. 참 좋은 섬이죠. 먹을거리 많고요.”

    “아, 그렇습니까?”

    “하하. 아무튼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음?”

    배를 돌리라고 외치려던 도경수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다가오는 박재현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바, 받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올라프 씨입니다.”

    “올라프 씨?”

    ‘이 새끼가 이 시간에 왜?’

    의아해하며 핸드폰을 받아 든 도경수의 귓가로 싸늘한 올라프의 음성이 울린다.

    -설명해.

    “예? 그게 무슨…….”

    -왜 내 보물이 다른 쪽에서 발견된 건지 설명해 보라고!

    “헉!”

    도경수는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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