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07화 (407/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07화>

    “하, 더워.”

    “그늘에 있어도 덥네. 이 여름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그럼 우리 방학도 끝나.”

    “우리가 언제 방학 같은 거 따졌어?”

    “그건 맞지.”

    어느 아파트 앞, 놀이터.

    교복을 입거나 반팔, 반바지를 입은 여학생들이 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피하면서 아파트의 한 집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연세가 지긋한 경비가 그런 그들을 스쳐 지나간다.

    “쯧쯧쯧. 더위 먹기 전에 얼른 집에 돌아가라, 이것들아!”

    DYP인지 뭔지 하는 회사에 소속된 웬 남자 가수 놈들이 이 아파트에 온 이후 찾아오기 시작한 여학생들.

    어르고 달래고 화를 내 보기도 했지만, 그때뿐이라 이 아파트의 경비들도 모두 포기한 상태다.

    참 못된 아이들이지만, 모두 손녀뻘이라 이 더운 날 헛고생하는 게 마음에 쓰여 한 소리를 했던 경비는 혀를 차며 멀어졌고 여학생들은 얼굴을 구겼다.

    “뭐래. 영감탱이가.”

    “아, 짱나.”

    투덜거리면서도 늙은 경비가 무서워 큰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녀들.

    그때 통이 넓은 7부 청바지와 화려한 형광색의 오버사이즈 티셔츠, 목걸이 줄에 패셔니블한 모자까지, 소위 김윤희 패션을 한 통통한 체구의 소녀가 그녀들을 향해 다가섰다.

    “호호. 너흰 아직도 그렇게 후줄근하게 다니니?”

    “어?! 지현 언니!”

    “이것 좀 마시면서 해.”

    “와아!”

    그녀들은 소녀, 박지현이 내미는 봉지 속 아이스크림에 환호성을 지른다. 하지만 모두 기뻐하는 건 아니었다.

    “어머, 지현아. 너 스타일 많이 변했다? 솔직히 몰라봤잖아.”

    얼짱 김윤희 패션을 한 또래의 여성이 다가오자 박지현이 눈을 빛낸다.

    “김소연.”

    오빠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집 앞에서 대기하는 팬들 중 한 무리를 이끄는 김소연.

    “와, 쌍꺼풀도 집은 거야? 설마 우리 오빠들 버리고 연애하는 거니? 그런데…… 너무 티 난다, 얘.”

    “어머. 짭같이 보여? 하긴 만날 짭만 입고 다니는 네 눈에는 다 그렇게 보이겠지.”

    “뭐야?!”

    그들이 좋아하는 보이그룹의 멤버 숫자는 총 다섯.

    그중 박지현과 김소연은 한 멤버를 좋아하기에 이렇게 날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자, 이래도 짭 같니?”

    박지현은 오는 길에 샀던 원피스와 구두 영수증을 보여 주었고, 그걸 본 김소연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그건 그녀와 함께 온 다른 소녀들도 마찬가지다.

    총액이 무려 230만 원. 그녀들로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거금이었다.

    “……호호. 그랬구나. 오빠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그동안 알바했구나. 몸 팔았니?”

    움찔!

    ‘이년이?!’

    울컥했던 박지현은 이내 푸근히 웃었다.

    “어머. 내가 아이돌 그룹 데리고 다니면서 우리 현중 오빠 만난 건 몰랐나 보네?”

    “아, 맞아. 렉카차인지 렉카인지 코디로 방송국 들어갔다는 소식은 들었어. 그런데 코디 월급으로 그런 걸 살 수는 있는 거니?”

    “풉! 소연아, 지금 너 추해. 왜? 넌 평생 가도 못 살 옷을 입고 오니 쫄려? 내가 현중 오빠 사랑 독차지할까 봐?”

    “야!”

    “왜!”

    “이익!”

    김소연은 박지현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중저가 브랜드인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차원의 명품들.

    거기에 기가 눌린 김소연은 부들부들 떨다가 콧방귀를 뀌며 돌아섰고, 박지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이것이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오빠들이 아닌 다른 아이돌 그룹의 옷을 골라 주는 치욕을 참아 냈던 거다.

    그동안 중저가 브랜드지만, 자신들은 엄두도 못 내는 가격대의 옷을 입고 다니며 같은 처지의 팬들을 업신여겼던 김소연.

    거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비싼 옷을 입어서 그런지 현중 오빠의 시선을 제법 받았고, 박지현은 그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이제 옷 가지고 재는 건 끝이다, 이년아.”

    ‘오빠의 시선도 이제 내 차지라고!’

    “와아, 언니 짱!”

    “저 소연 언니를 뭉개다니……. 진짜 멋져요. 언니.”

    선망이 가득한 소녀들의 모습에 박지현의 콧대가 절로 솟는다.

    ‘이래서 쟤가 패거리를 데리고 다니는구나?’

    마치 몽롱하고 붕 뜬 것 같은 기분에 그녀의 미소가 커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언니, 그럼 그동안 SN5 까는 건 관두셨던 거예요? 안티카페도 문 닫으셨어요?”

    소위 사생이면서 극성 안티이기도 한 그녀는 회원수 만 명의 대형 안티카페의 카페장이기도 했다.

    즉, 박지현은 하루의 반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뒤를 쫓고, 나머지 반은 SN5를 욕하는 데 썼었다.

    “내가? 미쳤니?”

    겨우 1, 2년 일찍, 그것도 소속사 지원 다 받아서 데뷔해 성공한 거 가지고 선배니 어쩌니 하는 게 얼마나 눈꼴시었던가.

    거기다 방송에선 자신의 오빠들과 SN5를 라이벌 구도로 만들기에 더 기분이 더러웠다.

    SN5에게 악의가 가득 담긴 편지와 선물을 보내는 것으로 SN5의 기분이 더러워지고 컨디션이 나빠져, 애정하는 오빠들이 더 잘나 보일 수 있다면 하루 수백, 수천 통이라도 보낼 수 있었다.

    “그럼 난 이제 올라가 볼게. 오빠들한테 선물을 전해 줘야 하거든. 그럼 좀 있다가 보자?”

    웃음을 흘린 박지현은 아파트의 입구로 걸어갔다.

    “어? 어? 잠깐, 아가씨!”

    “806호에 놀러 왔어요.”

    “806호? 으음…… 방금 저 잡것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던디……. 낯짝도 굉장히 익숙허고…….”

    너도 저 사생들과 같은 부류 아니냐는 경비원의 의심 가득한 시선에 박지현은 한껏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친구 집에 놀러 왔는데, 웬 이상한 애들이 있기에 한 소리 했어요. 왜요? 그런데 여긴 경비가 친구 만나러 오는 사람도 막나 봐요? 이거 불편해서 친구 집 오겠어요?”

    “아, 아닙니다. 들어가세요잉.”

    “네, 수고하세요.”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자리에 앉는 경비를 일견하며 돌아선 박지현의 입이 좌우로 주욱 찢어진다.

    ‘뚫었다!’

    드디어 뚫었다. 이렇게 쉽게 뚫릴 것을 그동안 왜 그렇게 추위와 더위에 떨었는지 몰랐다.

    띵!

    8층에 멈춰 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녀는 계단으로 10층까지 올라갔다.

    “후아.”

    1006호 앞에 서며 잠시 숨을 고르는 그녀.

    드디어 사랑하는 오빠를 만난다는 생각에, 그 숨결을 코앞에서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거칠게 뛰는 심장을 다독인 그녀는 조심스레 벨을 눌렀다.

    띵동!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아랫집 사람인데,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에요? 맨날 저녁, 새벽 가리지 않고 쿵쾅쿵쾅! 방금도 쿵쾅쿵쾅! 사과 좀 듣고 싶으니까 문 좀 열어 봐요!”

    -헉! 네, 네! 잠시만요? 리더 형!

    ‘현중 오빠!’

    이 그룹의 리더, 강현중. ‘현중♡부인’이 아이디인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다시 심장이 거칠게 뛰고 숨이 거칠어진다.

    그렇게 영원 같던 찰나가 지나며 문이 열리자 박지현의 눈이 동그래진다.

    처음이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만 내밀어도 입술이 닿을 거리에서 오빠를 보게 된 건.

    오빠의 오똑한 코, 오빠의 사슴 같은 눈, 오빠의 달콤한 숨결, 그리고 오빠의 매력 가득한 목소리.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좀 더 조심하겠…….”

    “오빠!”

    결국 참지 못한 박지현은 강현중을 와락 껴안았고, 눈을 부릅떴던 강현중의 낯빛이 파랗게 질린다.

    “으아아악!”

    공포에 질린 외침이 아파트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   *

    해가 모두 저문 저녁.

    어느 주택가에 들어선 박지현이 히죽 웃는다.

    “히히히.”

    다시 오빠를 껴안았다. 그것도 쉽게 보기 힘든 생얼 상태인 현중 오빠를.

    그 단단한 가슴과 아찔했던 채취.

    비록 현중이 뿌리치기도 하고, 지난 두 달간 고생을 한 목적을 모두 이뤄 도망치듯 빠져나와 좀 아쉽기는 했지만 모두 만족스럽다.

    “이제 현중 오빠는 날 절대 잊을 수 없겠지.”

    오늘 깜짝 선물을 주기도 했고, 자신을 진짜 사랑해 주는 여자의 몸도 알게 해 줬으니 현중은 아마 평생토록 자신을 잊을 수 없을 거다.

    “오늘부터 내가 보고 싶어 잠을 설치겠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하아.”

    지이잉!

    달뜬 신음을 내던 그녀는 자신을 방해하는 문자 알림에 핸드폰을 열어 보았다가 얼굴을 구겼다.

    -딸, 일은 잘하고 있는 거지? 밥은 먹었어? 날이 많이 더워. 꼭 에어컨 근처에 있고. 엄마가 돈이 있었다면 우리 딸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미안해. 사랑해.

    “……지긋지긋해.”

    핸드폰을 닫은 그녀는 잠시 하늘을 봤다.

    “독립할까?”

    공부 따윈 옛 저녁에 때려 치고 공부했던 코디.

    모두 현중 오빠를 자주 만나기 위해서였지만, 렉카의 매니저가 매달리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자신에게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래. 독립하자.”

    연예계 일을 하다 보면 현중 오빠를 더 자주 만나게 될 터.

    “그러다 나중에 오빠 코디로 들어가서 친해지고 결국 결혼을 하는 거야!”

    팬픽에서도 코디로 일하던 여주가 애정하는 오빠랑 결혼하지 않던가.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전율이 흐르는 계획이었다.

    “그래! 이제부터 제대로 일해 보는 거야!”

    다른 돈벌이 수단도 있으니 금세 부자가 될 거다.

    그럼 이 구질구질한 인생도 안녕이었다. 이 한여름에도 에어컨 살 돈이 없어 무더위 열대야에 고생하는 삶은 말이다.

    그렇게 박지현이 행복의 단꿈에 젖는 순간이었다.

    “박지현 양?”

    “누, 누구세요?!”

    갑자기 전봇대 그림자 뒤에서 걸어 나오는 거대한 사내의 모습에 박지현은 한 발 크게 물러선다.

    종혁은 그런 그녀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누구긴 누구겠어. 경찰이지.”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박지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내가 왜 왔는지 알지?”

    알다 뿐일까.

    ‘대, 대체 어떻게 안 거지?’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일단 도망쳐야 했다.

    박지현은 주춤주춤 물러나다 그대로 돌아섰고, 종혁은 그런 그녀의 머리카락을 콱 움켜쥐었다.

    콰득!

    두피가 찢어지는 듯한 아득한 고통.

    “아악! 꺄아악!”

    “그래, 알아야지. 야, 우리 할 이야기가 참 많겠다. 그치? 박지현, 너를 최상민 씨 상해 혐의 및 절도 혐의로 체포한다. 넌…….”

    미란다 원칙을 읊기 시작한 종혁은 손으로 휘감은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흔들며 키득키득 웃었다.

    *   *   *

    “형사님!”

    종혁의 사무실 안으로 최상민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그런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는 박지현.

    몸을 일으킨 종혁이 최상민을 맞이한다.

    “쟤, 쟤가…….”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소녀가 정말 자신에게 피를 먹인 안티일까.

    “일단 정황상 그렇게 판단되고 있습니다.”

    최상민이 가져온 보온병에서 나온 지문과 박지현의 지문이 일치했다.

    정황 증거상 그녀가 범인이 확실했다.

    “익!”

    울컥한 최상민은 박지현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다 멈췄다.

    “이익!”

    참 때려 주고 싶었다.

    왜 이렇게 날 괴롭히냐고,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멱살을 잡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막냇동생 또래의 소녀를 보니 차마 그럴 수가 없다.

    꽉 쥐어졌던 최상민의 주먹에서 결국 힘이 빠져 버린다.

    “그래요. 잘 참으셨습니다.”

    “후우. 감사합니다. 감사…… 흑!”

    수많은 안티 중 한 명이지만, 그동안 누가 누군지 알 수조차 없었던 안티. 이제야 안티가 진짜 현실의 사람인 걸 알게 되니 뭔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솟는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찾아온 건 안심이다.

    이제 최소한 저 한 명은 날 괴롭히지 않겠구나.

    그런 안도감이 그의 눈에 눈물을 채운다.

    종혁은 그런 그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어깨를 두드리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곧 중앙지검 특수부에서 저 용의자를 시작으로 대대적인 안티 및 사생 박멸에 나설 겁니다.”

    “네?!”

    고개를 번쩍 든 그의 모습에 종혁은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러려면 상민 씨의 피해 사실을…….”

    “할게요. 뭐든 다 말할게요.”

    “……협조 감사합니다. 사건이 종료되면 연락드릴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셔서 한잔하시고 푹 주무세요. 내일 하루는 휴가를 줄 수 있죠, 매니저님?”

    “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자, 상민아. 이런 곳에 오래 있어 봤자 안 좋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흐윽! 흐으윽!”

    안티와 사생이 박멸된단다.

    최상민은 끝내 눈물을 쏟아 내면서도 연신 허리를 숙이며 사무실을 떠났고, 곧이어 음식 냄새를 가득 풍기는 중년 여성이 사무실로 들어온다.

    “지현아!”

    그 외침에 다시 놀랐다가 방금 전처럼 시선을 피하는 박지현.

    “아이고, 지현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종혁은 최재수에게 시선을 주었고, 최재수는 몸을 일으켜 박지현의 모친을 막아섰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 저희 딸이 대체 무슨 죄를 저지른 건가요? 아니요! 모두 제가 한 겁니다, 제가! 그러니까 처벌을 하시려거든 저를……!”

    “일단 진정하시고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그렇게 최재수가 중년 여성을 사무실 한쪽의 소파로 데려가자 종혁은 그제야 박지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 이제 보호자도 오셨으니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박지현 씨는 현재 최상민 씨에 관한 상해 혐의와 절도 혐의로 임의동행된 겁니다.”

    거기다 방금 전 일산 경찰서에 접수된 신고가 있는데, DYP엔터테인먼트에서 런칭한 보이그룹의 리더가 사생에게 크게 당했다고 한다. 그 범인의 인상착의가 박지현과 굉장히 흡사했다.

    “어차피 이미 정황 증거도 다 나온 상황이니 좋게 끝냅시다. 그렇지 않으면 저도 지금까지 잡아들인 다른 범죄자들과 똑같이 취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길 원하진 않으시죠?”

    섬뜩!

    차갑기 그지없는 눈에 박지현이 그대로 얼어붙는다.

    아득한 공포가 그녀의 심장을 옥죄며 후회란 감정을 샘솟게 한다.

    대체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

    세상에 맨몸으로 던져진, 이제야 세상의 쓴맛을 제대로 맛본 박지현은 아이가 되어 버렸다.

    “자, 잘못했어요, 경찰 아저씨. 제가 잘못…….”

    “그래. 잘 알아들은 것 같네. 이름.”

    “바, 박지현이요.”

    “나이랑 주민번호.”

    “열아홉 살이요. 주민번호는…….”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될 거면서 왜 그딴 짓을 하고 다니는지…….’

    이렇게 겁을 먹은 이유가 뭐겠는가.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범죄를 저질렀다는 거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난다.

    ‘그런데 얜 대체 뭔 돈이 있어서 이런 옷을 산 거지?’

    작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종혁은 일단 그걸 뒤로 미뤄 놓았다.

    “말해 봐. 네가 어떻게 SN5의 대기실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러기 위해 뭘 했는지 모두 다. 아, 그 전에 여기다 네가 인터넷에서 쓰는 아이디랑 비밀번호 적고. 활동하는 사이트도. 다 알고 있으니까 하나라도 빼먹으면 진짜 혼난다.”

    모두 파악했다는 말에 화들짝 놀란 박지현은 심각하게 갈등하다가 결국 아이디와 비밀번호, 활동하는 사이트를 모두 적었다. 자신이 만든 안티카페까지도 말이다.

    “그, 그게…….”

    박지현은 떠듬떠듬 다 말했고, 그걸 들은 종혁과 오택수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본인의 입으로 들으니 더 어이가 없었다.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배달부나 스태프로 위장을 한다는 건 들었어도 안티 짓을 하기 위해 진짜 취직을 하다니.

    “어? 야, 최 팀장. 잠깐.”

    종혁이 넘겨준 박지현의 아이디로 박지현이 말한 사이트들에 접속하던 오택수는 어이없다는 듯 종혁을 봤고, 그걸 본 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죽어라.

    -죽여 버리고 싶다.

    -이렇게 죽이는 건 어떨까?

    박지현이 작성한 게시글 안에는 세상 모든 악의가 담겨 있는 듯했다.

    쾅!

    책상을 내려친 종혁은 와락 얼굴을 구겼다.

    “후. 야. 너 진짜 안 되겠다.”

    “네, 네?!”

    “박지현, 넌 최상민 씨 등 SN5에 관한 살해 협박, 명예훼손죄, 범죄 모의도 추가다. 범죄단체결성 혐의는 차차 검토하고.”

    방금 전 종혁이 말한 죄목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엿됐음을 직감한 박지현의 얼굴이 공포에 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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