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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04화 (404/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04화>

여의도에 위치한 권&박 홀딩스에 도착한 종혁은 곧바로 회의실로 향했다.

“보스!”

“최!”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것인지 다급한 얼굴을 한 나탈리아.

그 옆에 있던 린치가 달려와 멱살을 잡는다.

“너……! 너 알고 있었지!”

순간 차갑게 가라앉는 종혁의 눈.

“그걸 모르는 게 병신 아닌가? 내가 왜 바이 차이나에 너희 미국을 끼워 줬다고 생각하는 거지? 단순히 미국이 잘나서?”

움찔!

종혁은 힘이 빠지는 린치의 손을 뿌리쳤다.

“지금 너의 이 행동이 미국의 입장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겁니까?”

종혁은 회의실 정면, 커다란 모니터에 나타나 있는 CIA의 동아시아 지부장 핸리 스미스를 응시했다.

-미안합니다, 최. 제 부하의 실수를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린치.

“예!”

-닥치고 앉아 있어.

“죄, 죄송합니다. 미안하다, 최. 내가 너무 놀라서…….”

“어떻게든 면피해 보려는 건 이해하겠지만, 다음에도 이러면 우리 관계를 다시 생각해야 될 거야.”

종혁의 옆에 딱 붙어 있었음에도 이번 일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린치는 징계를 받지 않으려고 종혁의 멱살을 잡았던 것이다.

“두 번은 없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미스터 최.”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박태규를 봤다.

“어디서부터 터졌습니까?”

“프랑스입니다!”

미국에서 발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결국 프랑스의 BNP 파리바로 하여금 자산유동화증권(ABS)에 대한 지급 중지를 선언하게 만들었다.

그게 고작 20분 전.

한계를 모르고 치솟다 작년부터 제동이 걸린 미국 부동산 시장이 본격적으로 붕괴되고 있단 소리였다.

이 발표 이후 한국 증시, 아니 미국 부동산에 투자한 모든 나라의 증시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종혁은 핸리 스미스를 쳐다봤다.

“어느 정도로 예상하십니까?”

-……현재로선 닷컴 버블 붕괴엔 미치지 못하지 않나 예측되고 있습니다.

종혁은 냉소를 터트렸다.

“틀렸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공황이 닥칠 겁니다.”

꽝!

-무, 무슨……!

“최!”

사람들은 기겁했지만 종혁의 눈은 차가웠다.

1987년 미국의 경제 대공황 블랙 먼데이, 그리고 2001년 닷컴 버블 붕괴.

모두 미국을 궁지로 몰아넣은 경제 대공황이다.

하지만 결코 이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아마 미국은 이번 일로 인해 파산을 할지도 모릅니다.”

-최!

“당신들이 닷컴 버블을 운운하기에 더욱더. 당신들은 월가의 괴물들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멍청한지를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

이를 악문 핸리가 한숨을 쉰다.

-내 선에서 해결할 일이 아닌 것 같군요. 새로운 참가자가 등장하는 걸 허락하겠습니까?

“얼마든지.”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핸리는 누군가에게 자리를 권하며 비켜섰고, 곧 노신사 한 명이 자리에 앉는다.

잔잔하게 웃는 눈 속에 범상치 않은 매서움이 숨겨져 있는 노인.

-CIA 국장 허먼입니다. 우리 미국의 친구, 미스터 최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움찔 몸이 굳는 나탈리아를 일견한 종혁은 입술을 비틀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계속 미국의 친구가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최종혁입니다.”

-저런. 미국이 신뢰를 주지 못했나 보군요.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일 이야기로 넘어가죠.

친구라는 단어를 들먹여 동정심을 자극하려는 수작이 실패했음에도 CIA 국장 허먼은 능구렁이처럼 화제를 바꿨다.

속으로 피식 웃은 종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한 가지 말하자면, 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발발시킨 MBS와 CDO, 특히 CDO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저도 3분의 1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번 사태를 발발시킨 주범, 모기지 저당증권 MBS(Mortgagen Backed Security).

MBS는 자산유동화증권의 한 종류로 모기지대출을 해 준 은행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저당권을 담보로 다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금융 상품을 섞어서 만든 파생 상품, 부채담보증권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1차적인 금융 상품의 위험을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주로 ABS 등의 신용 위험을 전가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 역시도 이번 사태에 굉장히 깊게 관여하고 있다.

-……그건 놀라운 말이군요.

저 종혁이 다 파악하지 못했다는 말에 허먼의 안색이 바뀌었다.

-그 정도로 복잡하다는 겁니까?

“단순하게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카지노에서 딜러와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는데, 구경꾼도 그 둘의 게임에 베팅을 할 수 있죠.”

-플레이어가 이기느냐, 딜러가 이기느냐.

“예. 그런데 현재 이 상황을 불러일으킨 CDO는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 구경꾼이 따느냐 마느냐, 또 거기에 베팅한 그 구경꾼이 따느냐 마느냐, 또 그 구경꾼이 따느냐 마느냐…… 이게 무한대로 증식된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초기의 구경꾼을 A라고 봤을 때, 알파벳과 전혀 상관없는 한글 가나다라가 A에 투자하고, A가 또 저기 러시아어에 투자할 만큼 서로가 얽혀 있다.

또 월가는 그걸 하나로 뭉쳐 놓아 새로운 파생 상품을 계속 만들어 냈다. 파생 상품에서 파생되는 파생 상품에, 또 거기서 파생되는 파생 상품.

거미줄보다 몇 백 배, 몇 천 배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결정적으로 월가는 이 MBS를 담보로 한 CDO의 발행했습니다. 그것도 미국을 무너트릴 만큼 다량으로.”

이런 종혁의 말을 듣고서야 사태를 어렴풋이 파악하게 된 허먼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진다.

대체 뭐가 단순하다는 말인가.

-워, 월가 이 미친놈들이 결국……!

“미국 전역에서 신용 불량자들이 발생할 것이고, 주택을 뺏긴 실업자들이 미 전역에서 살려 달라 외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 피해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가겠죠.”

CDO는 위험도가 높은 것을 기초 자산으로 삼았기 때문에 수익률이 상당히 높았고, 미국의 부동산 경기가 좋았을 때에는 30, 40퍼센트까지 수익을 냈었다.

그렇기에 너도나도 투자를 했던 상황.

일부 공산국가를 제외한 어느 나라에서건 통용되는 부동산은 불패라는 말이 사람들을 현혹시킨 거다.

이는 해외도 마찬가지였다.

해외의 투자은행들은 너무도 매력적인 이 MBS로 이루어진 풀에 대규모 투자를 했는데 지금처럼 미국의 주택 가격이 하락하면서 MBS가 부실화되고 고스란히 그 손해를 물려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BNP 파리바가 ABS에 대한 지급 중지를 선언한 거죠. 내가 쓴소리 좀 해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죠, 최.

“당신들. 닷컴 버블 붕괴 때 대체 뭘 배운 겁니까?”

투자가 아니라 투기에 미쳐 있었던 2001년 닷컴 버블 사태.

나사나 못을 제조하는 회사라도 회사명 뒤에 .com만 붙으면 두 배, 세 배 열 배까지 주가가 치솟던 그 미쳤던 투기 열풍. 그때랑 지금이랑 전혀 달라진 게 없다.

한 번 망할 뻔했으면 배우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 누구도 배운 게 없다.

-할 말이 없군요. 미국인을 대신해 사과하겠습니다.

“제게 사과할 일이…… 하, 넘어가죠.”

양해를 구한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그래서, 미 정부가 현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까?”

-최, 최……!

“보스!”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님에도 끼어드는 박태규와 권아영.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종혁은 이 거대한 판에 베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허먼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사람처럼 다급히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번 바이 차이나 사태로 미국이 벌어들인 돈이 1년 국방부 예산이다.

이는 진짜 1년 국방비 예산이 아니라 한국에서 미국을 속되게 부르는 말처럼 천조국, 그 이상을 벌어들인 거다.

러시아도 그만큼 벌었고, 종혁도 그 반절 정도는 벌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예측되고 있다.

그런 종혁이 참전하지 않는다는데 이보다 다행일 수 있을까.

“서로 너무 흥분한 것 같으니 잠시 티타임을 가지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최!

다급히 몸을 일으킨 허먼은 영상 밖으로 뛰쳐 나갔고, 종혁은 할 말이 많지만 참는 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 커피면 되나요?”

“달달한 것도요. 머리에 당분이 좀 들어가야 할 것 같네요. 나탈리아도 괜찮죠?”

“난 언제나 괜찮답니다, 최. 할 말도 좀 있고요.”

“할 말?”

고개를 모로 기울이는 종혁의 모습에 나탈리아의 미소가 살짝 날카로워진다.

움찔!

‘뭐지? 내가 뭘 잘못한 거지?’

“후후. 그보다 먼저 아프간에서 제게 할 말이 있다는 게 이거였나요?”

“예.”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탈리아의 눈빛이 낮아졌다.

‘최는 러시아가 이번 판에 끼어들지 않기를 원한 거야.’

그러자 왜? 라는 의문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말할 타이밍이 아니다. 허먼은 화면 밖으로 사라졌지만, 저 화면은 이쪽의 상황을 모두 녹화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흐음. 뭐 일단 넘어가죠.”

“하하, 감사…….”

“그런데 CIA 현지 요원과 하룻밤을 보내셨다고요?”

“뭣!?”

박태규와 권아영이 다급히 종혁을 본다.

어떻게 된 거냐는 듯한 추궁 어린 시선.

“자, 잠깐…….”

“실망이에요, 최. 우리 러시아에도 미녀가, 그 요원보다 훨씬 대단한 미모를 지닌 요원들이 많은데 말이죠. 그 요원들은 다 뿌리쳐 놓고…….”

“잠깐! 그건 오해입니다!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아오!”

할 말이 있을 리가 없다.

거기다 작정하고 놀리려고 한국어로 말하는 그녀이니 여기서 변명을 해 봤자 더 깊은 수렁에 빠질 뿐이다.

종혁은 소영이는 어떻게 하고 그랬냐는 듯 매섭게 노려보는 권아영과 부러움이 가득한 박태규의 시선에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죠.”

“할 이야기가 참 많을 것 같네요, 보스.”

“알았으니까 단것 좀 가져다줘요. 제발.”

이 짧은 사이에 폭삭 늙은 종혁은 원망을 담아 나탈리아를 노려봤지만,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받아쳤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허먼이 다시 화면 안으로 나타났다.

-바, 반년! 아니, 8개월이면 됩니다!

종혁은 남은 커피를 들이켜며 일어섰다.

“1년을 드리죠.”

-오오, 최!

“하지만, 그 이상은 저도 어렵습니다. 저의 이 말을 명심하세요. 정확히 1년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최. 그 전에 사태를 진정시킬 테니!

-국장님.

-아, 그리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종혁은 지금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이득을 포기한 거다. 마땅한 보답을 해 주지 않고선 스스로를 그의 친구라 칭하기에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뭐 적당히 챙겨 주십시…… 아.”

순간 뭔가 떠오른 종혁이 입술을 비튼다.

“가능하면 한국 수사 체계에 대해 비판을 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FBI의 시스템을 차용해 볼까 하거든요.”

-최의 뜻대로 될 겁니다. 언제 한번 미국에 오시죠. 아, 외사국에 들어가셨다니 FBI와 교류를 해도 되겠군요. 제가 날짜를 잡을 테니 언제든 연락만 주십시오! 하하!

“예. 그럼 그때 보도록 하죠.”

-그럼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당신에게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글쎄…….’

미국에 신이 있다면 자신에게 천벌을 내리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속으로 애매하게 웃은 종혁은 작별 인사를 건넸고, 이내 다시 나타난 핸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화상 통화를 종료했다.

그 순간 종혁의 얼굴에서 사라지는 웃음.

“미국은 절대 1년 안에 해결 못할 겁니다.”

폭탄은 한 번 더 터지게 될 거다.

“그것도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이 폭탄을 설계한 월가조차도 자신들이 어떤 걸 만들었는지, 어디까지 얽혀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외부의 그 누가 이 위험한 폭탄을 해체할 수 있을까.

폭탄은 무조건 터진다고 봐야 했다.

통화가 종료되자 종혁에게 말을 걸려던 나탈리아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보이는 구멍은 막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은 막지 못하겠죠. 그리고…… 이번 사태는 그 보이지 않는 게 전부고요.”

싸늘한 권아영의 말에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눈치챘기에 아까 종혁에게 반항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그녀. 일종의 연기였다.

“맞습니다. 한 번 금이 간 댐은 보수를 한다고 해도 결국 터져 버리고 말죠.”

보이지 않는 곳, 숨겨진 곳에서 크랙이 생기기 때문이다.

덩치가 커도 너무 큰 미국. 미국은 자신들 몸에 있는 크랙을 다 찾아내지 못할 거다.

회귀 전처럼 월가 전부가 머리를 조아리며 읍소를 하지 않는 이상, 내년에 폭탄은 결국 터질 것이다.

종혁은 권아영과 박태규를 봤다.

“지금부터 바이 아메리카 스탠바이에 들어갑니다. 결시일은 내년 이 시각. 대신 우린 딴 돈의 절반만 가져갑니다.”

미국과의 우호를 위해서다.

이번 사태를 통해 벌어들일 돈보다 더 가치있는 그들과의 관계.

“최대한 따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판이 될 텐데 한번 죽어 봐야죠, 뭐.”

맞는 말이다. 앞으로 최소 10년 안에는 이런 판이 열리지 않을 텐데 반절만 가져가야 한다면 최대한 벌어야 했다.

“이래서 러시아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제 배려가 마음에 드십니까, 나탈리아?”

“……무척이나.”

온몸을 내달리는 전율에 나탈리아의 입에 파르르 떨린다.

“이로써 미국이 우리 러시아에게 빚을 지게 된 거네요.”

“그것도 아주 큰 빚이죠.”

어쩌면 미국 한 해 예산에 버금갈지도 모르는 수익을 러시아가 포기했으니 미국으로선 앞으로 저자세가 되어야 할 터.

그게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마워요, 최. 역시 당신은 언제나 제게 믿음을…….”

“나탈리아. 아니, 러시아.”

순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탈리아의 표정이 굳는다.

“맹주가 되십시오.”

“……예?”

“주위 모든 것을 아우르는, 동아시아를 비롯한 유럽 전부를 아우르는 맹주. 가만히 배를 깔고 누워 있어도 결코 그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배부른 사자가 되세요.”

그러면 러시아는 끝없이 발전하게 될 것이다. 굳이 다른 나라를 침략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말이다.

결국 부족한 게 있기에 하는 것이 전쟁.

종혁은 그걸 경고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저 미국처럼.’

종혁은 그렇게 되길 바라며 그동안 러시아와 함께했던 것이다. 러시아가 인면수심의 욕심쟁이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 어떤 때보다 진지한 종혁의 모습에 나탈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언제나 저희를 깨우쳐 줘서 고맙습니다, 최. 우리 러시아의 친구, 최. 당신의 충고 명심하겠습니다. 우리 러시아는 그 말을 지키려 노력할 것입니다.”

종혁은 자신이 본 것 중 가장 진지한 그녀의 대답에 싱긋 웃었다.

“자, 그럼 상황도 일단락됐으니 술이나 한잔하러 갈까요?”

시말서는 내일 아침에 후딱 써도 됐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시간이 흐른 후.

종혁과 헤어져 러시아 대사관으로 복귀하는 차에 오른 나탈리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다.

“배부른 사자……. 대체 어디까지 내다본 것인가요, 최.”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괴물은 대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까. 대체 무슨 그림을 그렸기에 현재 물밑에서 논의만 된 일을 눈치챈 걸까.

하지만 옳은 말이다. 아니, 훌륭하기 그지없는 생각이다.

‘맞아. 러시아는 예로부터 맹주였어.’

“돌아가자마자 대통령님과 대담을 할 거야. 그거 준비하고, 최에게 보낼 여성 요원들 추려.”

“예, 지부장님.”

차창을 내린 나탈리아는 담배를 물었다.

‘우리 러시아는 언제나 당신에게 받기만 하는군요.’

서울의 밤공기가 오늘따라 상쾌하게 느껴졌다.

*   *   *

“흐아, 죽겠다.”

오늘 하루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 시간까지 스케줄을 소화한 그녀들.

불러 주는 거야 감사하지만 이러다간 정말 쓰러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스케줄을 모두 마쳤는데 안무 연습을 하러 회사로 왔기에 더욱.

“아, 윤아야!”

“넹?”

“정말 그 멋지고 잘생기고 돈도 많고 몸도 좋으신 경찰 오빠가 너희 삼촌 맞아?”

뭔가 수식어가 늘은 것 같았지만, 무시한 윤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삼촌이 아니라 증조할아버진데…….’

“네. 먼 친척 삼촌이세요! 왜용?”

“저, 정말? 나, 나이는?”

순간 흥분하는 언니들의 모습에 윤아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마흔다섯이요.”

“응?”

“우리 삼촌이 좀 동안이에요.”

“……하하. 우리 윤아 거짓말이 많이 늘었네? 아이코, 오늘 많이 힘들었지? 목 마르지 않아? 자, 여기 음료수좀 마셔 봐.”

콧방귀를 뀐 윤아는 고개를 팩 돌렸고, 언니 라인의 소녀들은 그런 윤아를 달래기 위해 어깨도 주무르고 다리도 주무르며 살살 구슬렸다. 거기엔 리나도 껴있었다.

그에 ‘언니까지?’ 하며 충격을 받은 윤아.

그런 그들에게 한 남성이 다가선다.

“저 애들아…….”

“어? 선배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그래, 안녕? 방금 윤아 아시는 분이 경찰이라고 하던데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니?”

윤아는 초췌하기 그지없는 남자 선배의 모습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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