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03화 (403/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03화>

쾅! 쾅!

종혁의 주먹이 때릴 때마다 기역 자로 꺾이는 샌드백.

누군가를 찢어발기려는 듯 매서운 눈을 한 종혁이 마지막 펀치를 날린다.

꽈아앙!

“후아!”

“어디 전쟁이라도 나가요? 아주 사람 죽이겠네.”

“아.”

종혁은 다가온 트레이너를 향해 피식 웃어 보였다.

오늘부터 외사국에 정식으로 출근을 한다.

회귀 전 후 모두 합하여 미지의 장소인 외사국.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몸과 정신을 재무장할 필요가 있었다.

‘거기다 곧 러시아도 넘어가야 하고.’

“그럼 수고해라. 난 간다.”

“옙! 오늘도 뺑이 치십쇼!”

빡!

최재수처럼 꼭 한마디를 더 하는 얄미운 후배의 뒤통수를 후려친 종혁은 집에 돌아와 씻고 나서 어머니 고정숙에게 들렸다.

그리고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다녀올게요.”

“……아들, 평소대로 해.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죽어.”

“에이 씨.”

“후후. 그래. 잘 다녀오고.”

“옙!”

주차장 관리인인 SVR 요원에게도 인사를 한 종혁은 새 근무지 정식 출근의 기분도 낼 겸 얼마 전 구입한 부가티 베이론을 끌고 도로에 올랐다.

그와 동시에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양옆으로 비켜나는 차들.

종혁은 출근길임에도 뻥 뚫리는 도로를 거침없이 누볐다.

-대한민국 정부가 아프간에서 피랍되었다가 구출된 대명 대학교 대학생들에게…….

뉴스를 듣던 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죄다 방조죄로 구속되다 못해 정부가 그들을 구하기 위해 쓴 금액 전부를 청구한 달란트의 대학생들.

이로 인해 언론에서는 그래도 너무 과한 거 아니냐는 쪽과 가지 말라는 곳에 갔다가 피해를 끼쳤으니 당연한 거 아니냐는 쪽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이길 수밖에 없지.”

선례를 남겨선 안 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도 작정하고 덤벼드는 이번 소송.

이제 달란트 대학생들은 전과자가 되다 못해 개인당 백억 이상의 빚을 지게 되는 일만 남았다.

입술을 비틀던 종혁은 다음 뉴스에 눈을 빛냈다.

-어젯밤 박명후 후보가 러시아에서 전해진 보물의 소유자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이야, 이 양반 이걸 이제야 터트리네.”

하긴 영국에서 돌아온 이후 며칠 안 되어 피랍 사건이 터졌으니 타이밍이 어긋나긴 했다.

-박명후 후보는 이 보물을 통해 그동안 협상을 했으면서도 지지부진 미루기만 했던 프랑스와의 유물 반환을 재추진할 것이라 밝히면서…….

“앞으로 지지율이 쭉쭉 오르겠네.”

프랑스에서 가져올 조선시대의 유물.

가장 유명한 건 바로 1782년 정조가 강화도에 설치하고 병인양요때 프랑스가 약탈해 간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총 297권의 의궤, 왕실 주요 행사를 기록한 의궤다.

회귀 전 프랑스는 영구 대여라는 뻔뻔한 소리를 해 댔지만, 이젠 그럴 수 없을 거다. 박명후의 손에 프랑스 왕실의 보물들이 들려 있으니 말이다.

자유와 혁명으로 그 왕실을 무너트린 게 현재의 프랑스라지만, 프랑스의 보물과 타국의 보물을 저울질하는 멍청한 짓을 하진 않을 거다.

“아니, 유럽의 망나니인 프랑스니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네.”

미간을 좁히던 종혁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 양반이 알아서 잘하겠지.”

자기 것은 기가 막히게 챙기는 박명후이니만큼 기를 쓰고 보물들을 반환시킬 것이다. 그게 지지율과 연관될 테니 말이다.

신경을 끈 종혁은 때마침 도착한 본청 안으로 진입했다.

“자, 잠깐! 함부로 들어오시…… 하, 차를 또 바꾸셨네. 부럽습니다, 최 팀장님.”

“큭큭. 그래, 박 순경도 수고.”

그르릉!

첫 주행이라서 그런지 더 달리고 싶어 들썩이는 차를 진정시키며 주차를 한 종혁에게 사람들이 모여든다.

“워 씨. 이거 국내에 단 두 대만 있다고 한 차 아냐?”

“캬. 부럽다. 부러워.”

“이런 건 얼마나 해, 최 팀장?”

“하하. 좋은 아침입니다, 선배님들.”

“오늘부터 외사국 출근이라며? 잘해 봐.”

“예! 선배님들도 오늘 하루 뺑이 치십쇼!”

“저런 썩을!”

분노한 선배들을 피해 로비로 진입하던 종혁은 누군가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뭐야, 네가 여기 왜 있어? 너 경기청 홍보부로 간 거 아니었어?”

“엇?! 팀장님!”

옛 부하이자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의 팀원.

박종명의 경찰청장 취임 이후 홍보담당관을 비롯한 홍보부도 물갈이가 됐는데, 눈앞의 팀원은 경기청으로 특별인사이동이 되었다.

“아, 그게 도중에 백턴 했습니다. 저 말고도 그때 멤버들 모두.”

“엥? 그게 가능해? 아니, 왜?”

“버거워하던데요?”

“아, 확실히 그럴 수 있겠네.”

철밥통 공무원들의 안일하고 무성의한 홍보 방식에서 벗어났던 게 종혁이 조직했던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이다. 그리고 그 기조는 이들이 홍보부에 흡수되면서 홍보부도 180도 바꿔 버렸다.

즉, 새로 온 홍보 인력들이 기존 업무에 적응할 수 없으니, 해체시킨 팀원들을 부랴부랴 복귀시킨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도…….’

새로이 홍보담당관으로 임명된 고위 간부의 생각이 대단하다.

‘박종명 청장…… 마냥 제 식구를 챙기는 게 아니라는 건가.’

자리에 앉혀도 실력이 있는 사람만.

종혁은 박종명 청장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넌 이 시간에 여기 왜 있어?”

아직 오전 8시다. 눈앞의 팀원 같은 사무직은 이제야 집에서 나설 시간이었다.

“그게…… 아, 도착한 것 같네요.”

“음?”

고개를 돌린 종혁은 본청으로 진입하는 한 대의 밴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어째 번호판이 낯익은 것 같은데…….”

같은 게 아니라 맞았다. 본청 건물 앞에 멈춰 서며 우르르 내리는 소녀들 중에 아는 얼굴이 있었다.

“우와! 여기가 경찰 대빵들만 있는 곳이에요?”

“건물 멋지다-!”

“어? 삼촌? 삼촌-!”

“아저씨!”

종혁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윤아와 리나의 모습에 고개를 돌려 팀원을 봤다.

“그 며칠 전 협상단 귀국 때 쟤들 노래가 전파를 탔잖습니까. 쟤들 요새 인기 최고예요.”

“설마 경찰 홍보대사냐?”

“네.”

“미친. 야, 쟤들 신인 그룹이야. 쟤들한테 뭔 사연이 있을 줄 알고 홍보대사로 임명을 해?”

“저도 모르겠습니다. 부장님께서 까라니 까는 거죠.”

“지랄 났네.”

그렇게 말했지만, 종혁은 대충 어떻게 된 사연인지 눈치를 챘다.

‘나랑 윤아와의 관계를 눈치 깐 거네.’

“제법 깜찍한 짓을 해 주시는구만?”

종혁은 본청에서 가장 높은 곳, 경찰청장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너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다는 박종명의 의지가 절절히 느껴졌다.

“삼촌!”

빡!

종혁은 자신에게 와락 안기는 최윤아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악! 왜, 왜!”

“홍보대사 됐다면 미리 말을 해 줘야 할 거 아냐.”

“노, 놀라게 해 주려고 한 건데…… 아파. 히잉.”

“시끄러워. 일 끝나면 연락이나 해. 밥이나 먹게.”

“아, 그게…….”

종혁은 윤아가 눈치를 보는 매니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가능하죠, 매니저님?”

“옙! 가능합니다!”

잔뜩 얼어 대답을 하는 매니저.

종혁은 어떻게 된 거냐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쳐다보는 윤아를 무시하며 김리나를 봤다.

“다시 한번 데뷔한 거 축하한다, 리나야.”

그런 험한 일을 겪었음에도 원래 데뷔 멤버로 예정되어 있던 다른 소녀와의 경쟁에서 이겨 내고 결국 9인조 걸그룹의 멤버가 된 그녀.

“가, 감사해요, 아저씨.”

“그럼 이따가 보자. 난 출근해야 돼서……. 야, 얘가 내 조카거든? 함부로 대했다가는…… 알지?”

“공주님처럼 모시겠슴돠!”

“오냐.”

손을 흔든 종혁은 돌아섰고, 김리나는 그런 종혁의 등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 순간이었다.

턱!

김리나와 최윤아의 어깨에 얹어진 작고 앙증맞은 손들.

“응?”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 주실까? 응? 저 멋지고 잘생기고, 몸도 좋은 미남이 누군지부터!”

최윤아와 김리나는 눈에 호기심이 만빵인 악동들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었다.

한편 외사국 외사수사과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종혁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을 든다.

“충성. 경정 최종혁 지금 막 신고식을…….”

빵! 빠바방!

“뭐, 뭡니까!”

갑자기 터지기 시작한 폭죽에 깜짝 놀란 종혁.

“어서 와, 최 팀장!”

“최 팀장, 왜 이렇게 늦었어! 출근하느라 힘들었지? 국장니임-! 최 팀장 출근했습니다!”

“뭐어?! 지금 간다-! 최 팀자앙-!”

‘이건 또 뭔 시추에이션이야?’

종혁은 이쪽으로 달려오는 외사국 형사들의 모습에 눈을 껌뻑였다.

*   *   *

결론만 말하자면, 외사국이 열렬한 환영 인사를 한 건 이번 달란트 구출 사건 때문이었다.

달란트 대학생들을 구하는 데 외사국 소속인 종혁이 혁혁한 공을 올리다 보니 대통령부터 시작해 높으신 분들의 칭찬과 격려가 쏟아졌고, 그것도 모자라 외사국 예산 증대와 외사국 전체에 특별 상여금이 내려졌다.

“내가 대통령님의 칭찬 전화까지 받다니, 크으으!”

“하하.”

‘이렇게 기뻐해 주니까 좋네.’

첫 출근부터 자신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 준 함경필 국장. 그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았다는 것에 종혁은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뭔가 좀 미진하다. 외사국 전 대원들이 폭죽을 터트리기에는 말이다.

그런 종혁의 기색을 눈치챈 건지 함경필이 음흉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킨다.

“흐흐. 따라와 봐.”

“음?”

고개를 모로 기울였던 종혁은 이내 순순히 함경필의 뒤를 따랐고, 외사국 사무실을 빠져나온 함경필은 복도 끝에 있는 문 앞에 섰다.

“최 팀장, 혹시 여러 사람들끼리 시끄럽게 부대끼면서 일하는 거 좋아해? 아니면 독립적인 공간에서 일하는 걸 좋아해?”

“둘 다 좋아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독립적인 공간…… 아, 설마?”

“흐흐. 따라라라, 딴! 따라라란!”

함경필 국장은 전 국민이 아는 BGM을 흥얼거리며 문을 열었고, 종혁은 안의 풍경에 깜짝 놀랐다.

꽤 익숙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약 20평정도 되는 제법 넓은 공간.

“이, 이건…….”

“최 팀장 이렇게 꾸미는 거 좋아한다며?”

그랬다.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빼다 박은 공간이었다.

“아아, 너무 감동하진…….”

“국장니임-!”

저 멀리서 외사수사과의 백이도 과장이 손을 젓는 함경필의 말을 끊으며 달려온다.

“아니, 이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제 부하 사무실은 과장인 제가 알려 줘야죠!”

“누가 하면 어때! 알려 주기만 하면 되지!”

“뭐요? 하! 내가 당신의 그 음흉한 속내 모를 줄 알고?! 당신이 먼저 알려 줘서 우리 최 팀장의 존경을 한 몸에 받겠다는 거잖아!”

“인마! 나 국장이야!”

“국장이라서 좋겠수다! 형수님한테도 그렇게 소리쳐 보지?!”

“여기서 내 와이프가 왜 나와!”

“아, 됐으니까 비키기나 해요!”

“억?!”

정말로 함경필을 옆으로 밀어 버린 백이도가 종혁에게 다가와 손목을 붙들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최 팀장, 우리 최 팀장이 쓰는 커피머신이 이거 맞지?”

“예. 그, 그렇기는 합니다만…….”

커피머신뿐만 아니다. 책상이나 의자까지 모두 종혁이 애용하는 것들이다. 아마 종혁 자신이 거쳐 온 수사팀을 돌며 브랜드를 알아 왔을 터.

이들의 세심하고도 과분한 배려에 살짝 감동을 드는 한편, 부담스럽기도 하다.

굴러온 돌이 굴러 오자마자 독립적인 사무실을 선물로 받았다. 박혀 있던 돌들이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저 죄송하지만…… 과장님?”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아. 하지만 걱정 마. 흐흐흐. 다른 팀들도…….”

“비켜!”

“억?!”

백이도를 집어 던진 함경필이 종혁의 손을 잡는다.

“최 팀장 팀을 시작으로 다른 팀들도 다 이런 사무실을 가지게 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아, 이래서 폭죽을…… 대체 얼마나 추가 편성이 됐기에…….”

순간 음흉하게 웃은 함경필이 손가락 하나를 든다.

“진짜 큰 거 한 장.”

“천억이요?!”

“……아니, 그것보다 좀 작은 거.”

“백억이요?”

“그렇지. 허, 우리 최 팀장은 정말 통이 크구나. 응…… 크으! 이리 와! 우리 복덩이 한번 안아 보자!”

함경필은 종혁을 껴안았고, 종혁은 이 예산 추가 편성을 한 박종명 경찰청장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이 양반 진짜 다시 보게끔 만드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사무실을 둘러볼까?”

함경필은 이것들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어필했고, 마지막으로 최신형 TV까지 켜서 유선 채널까지 달았음을 보여 주었다.

-실시간 미국 증시 소식입니다.

“오! 정말로 나오네! 최 팀장, 혹시 주식 관심 있어?”

종혁은 피식 웃었다.

“관심 많죠.”

“오, 진짜? 잘됐네! 최 팀장도 알다시피 주식이란 게 말이야 잘만 투자하면 꽤 쏠쏠한…….”

“이봐요, 국장님.”

“아, 또 왜!”

“최 팀장 부자예요. 주식은 국장님보다 더 잘 알걸요?”

흠칫!

깜짝 놀란 함경필은 종혁을 봤고, 종혁은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 들어갔다 하면 반토막부터 내고 시작하는 양반이 주식은 뭔 주식입니까?”

“……최 팀장, 주식 잘 알아? 혹시 추천할 만한 종목 있을까?”

얼마 전 아내 몰래 모아 둔 비상금을 모두 날려 버린 함경필은 꽤 간절했다.

“삼전전자랑 대현자동차가 좋죠.”

마음 같아선 권&박 홀딩스를 소개시켜 주고 싶지만, 아직 그렇게까지 믿음을 가지진 못했다.

“에이, 그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우리 최 팀장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삼전 있지? 거기도 다 옛말이야. 지금 나오는 핸드폰 봐. 다 거기서 거기잖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아닌데.’

지금은 그렇지만 몇 년만 지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 사서 10년만 묵혀 놔도 최소 10배는 남겨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위상이 달라질 테니까.

대현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는 대한민국 대표 대장주이자 안전주. 장기로 보면 무조건 번다.

“뭐, 전 말해 드렸습니다.”

어깨를 으쓱인 종혁은 뉴스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곧 터질 때가 됐는데…….’

미국을 저 밑바닥으로 처박아 버릴 폭탄.

신이 온다고 해도 막지 못할 폭탄.

이미 그 전조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었다.

종혁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순간이었다.

“저 여기가…… 아, 팀장님!”

“오, 우리 최 경장! 최 경장도 어서와! 얼른 들어와!”

“힉! 추, 충성!”

종혁은 함경필이 있는 것에 하얗게 질리는 최재수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TV를 응시했다.

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일단은 한 2주일 정도 시간을 줄 테니까 업무부터 파악하자. 그래야 파트를 나누지.”

외사국은 국내 파트와 해외 파트로 나뉘어 있다.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를 튀는 놈을 쫓는 해외 파트,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외국인을 쫓는 국내 파트.

정식적으로 나뉜 건 아니지만, 언제나 인력이 부족한 게 경찰이다 보니 범인을 보다 효율적으로 쫓기 위해서 자체적으로 나누게 됐다.

종혁은 백이도 과장의 말에 볼을 긁적였다.

“음. 둘 다 하면 안 됩니까?”

“어휴. 안 될 게 어디 있어. 우리 최 팀장이 그래 준다면 나야 땡큐지.”

종혁이 양쪽 파트의 일을 조금만 분담해 줘도 다른 형사들의 숨통이 트인다.

“그런데 힘들지 않겠어? 팀원 숫자도 적잖아.”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어휴. 우리 최 팀장 말까지 이렇게 예쁘게 하면 반칙 아냐?”

“아하하.”

본청 근처의 중국 레스토랑. 함께 따라온 외사수사과 형사들의 표정이 썩어 갔다.

“뭐, 이 자식들아? 뭐?”

“……야, 최 팀장. 너 조심해라. 이 양반 처음엔 이렇게 살살 꼬드기다가 좀 친해졌다 싶으면 막말하는 게 특기거든?”

“과장님이 주말에 등산가자고 하지? 그건 네가 뭔 실수를 했다는 거야. 그땐 일단 사과부터 박아. 그래야 산다.”

“암, 암. 백 과장이 좀생이 같은 면모가 있지.”

“모함하지 마, 이 자식들아!”

“나 국장이라고, 이 자식아!”

“아, 형님은 좀 가라고요! 외사수사과 식구들끼리 식사 좀 하면서 우애를 다지겠다는데, 늙은이가 눈치 없이 끼어들고 말이야!”

“이 새끼가! 그래. 쳐라, 쳐! 말로 치지 말고 주먹으로 쳐, 새꺄!”

고개를 저은 종혁은 일행이 아닌 척 옆으로 물러났고, 그건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삼촌, 여기야! 여기…….”

종혁이 오늘 점심시간 전부를 전세 냈는지라 아무도 없는 2층에 뻘쭘하게 앉아 있다가 손을 들었던 윤아가 슬그머니 구겨진다.

종혁은 의아하게 쳐다보는 백이도와 함경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요새 한류가 대세잖습니까. 제가 지분을 좀 가지고 있는 SN엔터의 신인 걸그룹인데, 이번에 경찰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혹여 해외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불러 봤습니다. 이를테면…… 위장?”

범인을 쫓는데 경찰이라고 밝히고 다니면 되겠는가.

그럴 때 필요한 게 위장 신분이다. 엔터와 범죄자가 뭔 연관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있는 게 좋다.

종혁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들은 형사들의 눈빛이 돌변한다.

“참고로 쟤는 제 조카고요. 윤아야, 인사해. 삼촌 상사 되시는 분들이랑 직장 동료들. 이쪽은 삼촌 팀원인 오택수 경감과 최재수 경장.”

“헉! 하나둘!”

“안녕하세요!”

벌떡 일어나 그룹명을 밝히며 인사를 하는 소녀들의 박력에 깜짝 놀랐던 형사들이 이내 곧 아빠미소를 짓는다.

“어이구, 예. 외사국 국장 함경필입니다.”

“우리 최 팀장이 가장 존경하는 상사, 과장 백이도입니다. 뭣들 해! 매니저님 모시지 않고!”

“옙! 어이, 거기 매니저님. 우리 좀 볼까요?”

일개 직원인 걸그룹과 이야기를 나눠서 뭐하겠는가. 이야기를 나눈다면 관리자인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예? 예예…….”

종혁은 살려 달라는 매니저의 눈빛을 외면하며 빈자리에 앉았고, 윤아와 리나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 그 무서운 매니저가 왜 저렇게 저자세냐는 듯 종혁을 응시했다.

“삼촌이 너희 회사 주식을 좀 사서 그러는 거야. 쉽게 설명하자면, SN의 대주주인 거지.”

종혁이 의결권을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 SN엔터로서는 상당히 피곤해질 수도 있을 만큼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헉! 진짜?”

“그래. 그러니까 회사에서 함부로 굴리면 언제든 전화해. 아주 혼쭐을 내 줄 테니까.”

“응……!”

“응이 아니라 네, 이 자식아.”

“네! 히히! 언니들 들었지? 우리 삼촌이 이런 사람이야! 그러니 나한테 잘하란 말야!”

“끄흐응. 그, 그래. 아이고, 우리 윤아. 옷에 뭐가 묻었네.”

“악! 아, 아파! 꼬집지 마, 리나 언니!”

“어휴. 얘가 이상한 말을 하네?”

종혁은 살려 달라는 윤아의 눈빛을 이번에도 외면하며 2층 입구에 서 있는 종업원을 향해 손을 들었다.

“여기 주문 받으세요.”

“내, 내가 나중에 꼭 산다. 최 팀장, 나 믿지? 나 막 얻어먹고 입 닦는 사람 아니다?”

“하하. 예, 기대하겠습니다.”

“아니, 기대까진 하지 말…….”

쭈구리가 되는 백이도 과장을 일견한 종혁은 배를 통통 두드리는 윤아를 보며 흐뭇이 웃었다.

“배, 배 안 나왔어!”

“그래. 뭐 맛있게 먹었으면 됐지.”

“아, 아니라니까요!”

“아무튼 잘 가고. 다음에 또 연락하자. 리나도.”

“네……! 삼촌도 일 잘하고요!”

“몸조심하세요, 아저씨!”

“애, 애들아, 가자!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우르르 몰려 나가는 윤아들을 응시하던 종혁은 과장을 봤다.

“그럼 저희도 들어가시죠.”

“어우. 이놈의 점심시간은 왜 이렇게 짧은지. 아, 최 팀장은 이만 퇴근해. 첫날부터 무리하는 거 아냐. 대신 시말서는 써 오고.”

제아무리 종혁이 피랍 사건에서 혁혁한 공을 올렸다지만, 그래도 절차와 체계를 무시하고 아프간으로 날아갔다. 그에 대한 시말서를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징계와 과한 배려가 섞인 조기 퇴근.

“끙. 예. 알겠습니다. 충성.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 내일 봐.”

종혁은 손을 흔들며 떠나는 과장들을 응시하다 오택수와 최재수를 쳐다봤다.

“과장님 말대로 여기서 퇴근하고 내일 보죠. 시말서 써 오고요.”

“옙!”

“어이.”

그렇게 둘마저 떠나자 종혁도 차키를 빼 들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네. 최종혁입니…….”

-보, 보스!

‘터졌군.’

“지금 가겠습니다.”

종혁은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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