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01화>
“으하하하! 부어라! 마셔라! 죽어라!”
아프간 특수부대원들까지 슬그머니 끼어든 술자리는 난장판이었다.
희생자 한 명 없이 작전을 성공한 와중에 공짜 술이 주어졌으니 당연히 술이 꿀처럼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건 종혁도 마찬가지였다.
“최!”
“에휴…… 간다, 가.”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보며 종혁을 부르는 세브첸코와 존 대위.
그렇게 그들과 어울려 온종일 술을 푸던 종혁은 갑자기 조용해져 버린 연회장에 고개를 들고 둘러봤다가 혀를 찼다.
“뭐가 무박 휴가야…….”
죄다 술병을 끌어안고 장렬히 전사해 있다.
“야, 최재수. 오 경감님, 인나 봐요. 야, 오택수. 인나라고! 나 술 부족하다고!”
바닥에 붙인 전을 베개 삼아 혼절한 재수와 오택수의 볼을 후려치던 종혁은 고개를 저으며 일어섰다.
“에이. 방에 가서 마셔야겠네.”
씻고 맥주 한 잔만 더 하고 자야 할 것 같다.
종혁은 들고 있던 위스키를 입에 꽂아 넣었고, 그게 한계의 마지노선이었는지 갑자기 눈앞이 핑 돌며 바닥이 가까워졌다.
“어우, 안녕?”
와락!
“괜찮아요, 최?”
“어? 자말이다.”
완전히 풀려 버린 종혁의 눈이 배시시 웃는다.
“고마워요, 자말.”
흠칫!
“제가 한 게 있을까요?”
“왜 없어요. 엄청 많지.”
자말이 부인 역할을 완벽히 해내 주었기에 놈들이 끝까지 방심한 것이다.
만약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게 들통났다면 이번 작전은 아마 이렇게 쉽지 않았을 거다.
“즉! 이번 작전 성공은! 모두 우리 부인 때문이랍니다아.”
양팔을 퍼덕거린 종혁은 자말을 꼭 끌어안았다.
“정말 고마워요, 자말. 그러니…… 앞으론 당당하게 걸어요.”
자말과 함께 다닐 때 그녀는 언제나 종혁의 반 발자국 뒤에서 걸었다. 그렇게 연기를 해야 해서 그랬던 게 아니라 영혼에 각인되어 버린 오랜 습관처럼 그렇게 다녔다.
그런 종혁의 말에 자말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당신은 정말 다른 남자와 많이 다르네요.”
“그거 칭찬 맞죠? 내가 형사라서 주위를 좀 잘 살펴요.”
“마지막 말은 아웃. 후후. 가요. 데려다 드릴게요.”
“어우. 그럼 신세 좀 질게요.”
신세를 지지 않으면 기어서 엘리베이터를 탈 판이다. 아니, 엘리베이터로 가다가 복도에서 잠들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침대 앞에 도착한 종혁은 다시 자말을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웠어요. 아! 어우, 미안해요. 나 이런 남자 아닌데.”
그제야 자신이 상대의 동의도 없이 스킨십을 했다는 걸 깨달은 종혁은 황급히 물러나다 침대에 걸려 침대 위로 넘어졌다.
“어우 진짜 왜 이러냐. 그럼 조심히…… 가요. 내일…….”
침대의 포근함이 온몸을 감싸자 급격히 정신이 흐려진다.
그래서 그는 알지 못했다.
침대보다 더 포근한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감싸는 것을. 셔츠의 단추가 하나씩 풀리는 것을.
“그런 남자여도 돼요. 이런 상황에서 매너는 정말 나쁜 행동이거든요.”
“아…… 그래…… 요. 네…… 죄송…….”
종혁은 귓가에 닿는 뜨거운 숨결과 입속을 파고드는 그립고 물컹한 무언가를 느끼며 필름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
* * *
벌떡!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킨 종혁은 완전히 벗겨진 옷과 몸에 남은 타인의 흔적을 발견하곤 마른세수를 했다.
‘사고 쳤다.’
이후 일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진급을 위해 미쳤던 회귀 전과 후 모두 합해 거의 20여 년간 절제된 생활을 한 종혁.
그도 남자였다.
이성과 정신이 무장해제가 된 상태에서 자말 같은 미녀가 육탄 공격을 해 오는데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순간 소영, 이리나, 미진, 현희, 나탈리아 참 많은 여성의 얼굴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아니, 얘들이 왜 떠오르고 난리야!”
나탈리아라면 모르되 나머진 아니었다.
‘아니, 아닌 건 아니지만!’
종혁이라고 어찌 그녀들의 마음을 모를까.
“아오! 미치겠네!”
다급히 핸드폰을 찾았던 종혁은 핸드폰 밑에 깔린 쪽지를 보곤 굳어 버렸다.
[다음에 또 봐요, 최. 당신의 친구 자말이.]
부담 갖지 말고 친구로서 지내자는 그녀의 의지가 보이는 쪽지.
“후우.”
다시 마른세수를 한 종혁은 핸드폰을 들어 자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는 그녀.
“린치, 자말 좀 바꿔 주시겠어요?”
-오, 저런.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오늘 새벽에 다른 해외 지부로 이동이 됐다, 랭리로 돌아갔다 그런 거짓말을 하려는 건 아니죠?”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최. 그녀는 이번 작전 때문에 노출이 됐거든요.
아프간 정부에 노출된 게 치명적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프간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됐다.
“……하. 그럼 한마디만 전해 주세요. 당신은 나를 나쁜 남자로 만들었다고. 다음에 만나면 각오하라고.”
-후후. 얼마든지 전해 드리죠.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최.
종혁은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CIA 요원과 관계를 맺었다. 아마 린치 입장에선 너무도 바라던 상황이었을 거다.
“……에라이.”
답이 나오지 않는 찝찝한 상황에 몸을 일으킨 종혁은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다시 확인해 봐! 테러 조직을 소탕했는데 지도자의 신원이 불분명하다는 게 말이 돼?!”
전화기를 붙든 채 부하 직원을 향해 소리치는 국정원 중동 파트 차장의 모습을 바라보던 종혁은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새벽의 등불의 마지막 아지트에서 발견된 폭사되어 살점만 남은 시체.
종혁을 비롯한 이들은 그것이 지도자의 시체가 아닐까 추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국과수를 통해 DNA를 확인한 결과, 그 시체의 정체는 무함드였다.
설마 그가 지도자였던 것일까 싶어 새벽의 등불 조직원들에게 확인해 보았지만, 그들은 말도 안 된다면 고개를 저었다.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이들이 거짓을 털어놨을 리는 없을 터.
‘죽은 이들 중에서도, 체포된 이들 중에서도 지도자가 없다라…….’
“도망친 거네. 이 개새끼.”
문제는 어떻게 도망친 거냐는 것이었다.
비밀 통로가 하나 발견되긴 했지만, 그쪽으로 누군가 빠져나간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니면…….”
종혁은 들고 있던 아프간 신문을 응시했다.
새벽의 등불에 납치 됐던 아프간인! 무사히 생존!
“너 새끼가 지도자든가.”
당장이라도 모가지를 잡고 메다꽂아 심문을 하고 싶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종혁을 손을 떠나 버렸다.
미국과 러시아에게 조금이라도 덜 두들겨 맞기 위해서라도 자신들도 피해를 봤다는 걸 적극적으로 어필할 필요가 있는 아프간 정부는, 언론을 이용하여 이놈을 불쌍한 피해자로 조명하며 세상에 알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놈을 함부로 추궁했다가는 역풍을 받는다. 한국 정부가 기껏 아프간에 빚을 얹어 놓았는데, 그게 사라질 수가 있다.
피식!
“고맙네.”
눈앞에 범인으로 추정되는 놈이 있는데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종혁은 오히려 고마웠다.
놈이 머리를 굴려 줘서 정말 고마웠다.
종혁은 핸드폰을 들어 다시 린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린치, 탈레반에 대해 다 파악했어요?”
-……아무래도 우린 서로 같은 생각을 하나 보군요.
“부탁할게요.”
-걱정 마세요, 최. 우린 이런 일에 전문가니까!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수습한 종혁은 담배를 물며 입술을 비틀었다.
새벽의 등불이라는 테러 조직을 결성한 이유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조직의 수장이었던 놈이다.
“그런 네가 앞으로도 평범하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번 사건의 소요가 잠잠해질 때, 아프간 정부와 국민들이 자신에 대한 관심을 거둘 때 놈은 다시 테러 조직을 결성하기 위해 움직일 거다.
“그러기 위해선 자금이 필요하지.”
지도자가 머물렀던 방으로 추정되는 곳에선 한 병당 천 달러가 넘는 고급 위스키나 비싼 치즈 등 다른 새벽의 등불 조직원이 먹지 못했던 것들이 엄청나게 숨겨져 있었다. 심지어 이슬람에서 율법으로 금지하는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까지 있었다.
놈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어떤 종교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테러 조직을 결성한 것이 분명했다.
애초부터 태생이 불신자인 놈.
그러니 훗날 조직을 결성할 때 분명 남의 돈을 끌어다 쓸 거다. 아니면 그걸 빌미로 다른 탈레반 조직을 집어 삼키려 들거나.
“병신 새끼. 그냥 감옥에서 한 50년 썩으면 될 것 가지고, 50년 일찍 가게 생겼네.”
CIA가 놈과 연결될 탈레반을 족칠 텐데 과연 탈레반이 가만있을까. 놈은 산채로 찢겨 죽을 거다.
“나도 너 같은 새끼가 감옥에서 편하게 지내다 죽는 거 원하지 않거든? 미리 인사한다. 잘 가라, 씹새야. 내가 부조는 해 줄게.”
이로써 새벽의 등불에 대해 완전히 신경을 끄기로 한 종혁은 담배꽁초를 창밖으로 던지며 걸음을 옮겼다.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아, 대체 언제 도착하는 거야?”
“씨발. 분명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인천공항의 입국 게이트 앞에 진을 친 기자들이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입국 게이트를 응시한다.
피랍된 23명의 한국인 가운데 새벽의 등불에 의해 살해된 두 명을 제외한 인질 전원이 구출됐다.
그것도 이후 외교적 문제나 위협을 남길 수 있는 협상이라는 이름의 굴복이 아닌, 뛰어난 전술 능력으로 테러 조직을 제압하면서 말이다.
평화와 화합을 중시하는 박노형 대통령답지 않은 결단.
듣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은 기자들은, 그리고 지상파 방송 3사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입국 게이트를 응시했다.
“지, 지금 나옵니다! 모두 준비해 주세요!”
“라이브 돌려!”
“연결됐습니다! 송출 시작!”
“스탠바이!”
실시간 중계용 카메라로 입국 게이트를 비추는 언론사들.
입국 게이트 앞에 지대한 침묵이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사랑해! 이 느낌 이대로!
“……응?”
“아씨, 누구야?”
카메라에 희미하게 잡혀 버린 잡음.
방송 사고에 얼굴이 구겨지는 순간, 입국 게이트의 문이 열리며 왜인지 얼굴을 구긴 외교부 장관을 필두로 한 이번 구출 작전의 주역들과 구출된 인질들이 나온다.
“나왔다!”
“장관님-!”
순간 도떼기시장이 된 입국 게이트 앞.
살짝 놀랐던 외교부 장관이 환하게 웃으며 오른팔을 번쩍 든다.
“국민 여러분! 저희가 구했습니다!”
“와아아아아!”
한편 그런 그들에게서 슬그머니 빠져나온 종혁은 갑자기 울려 버린 핸드폰을 원망스럽다는 듯 노려봤다.
“어우씨, 식겁했네.”
“나도. 아니, 국장님은 그 순간 왜 전화를 하셨대?”
“그러게요. 좀 참으시지.”
하마터면 방송 사고가 터질 뻔했다.
방송 사고는 이미 터졌다는 걸, 윤아네 그룹의 데뷔곡이 전국에 송출됐다는 걸 종혁은 모르고 있었다.
‘하여튼 이 양반은 참을성을 좀 기를 필요가 있어.’
이런 모습도 함경필 국장의 매력이긴 하지만 말이다.
고개를 저은 종혁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교수와 대학생들을 보며, 그들이 들고 있는 명품 로고가 박힌 비닐백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엿이나 먹어라, 씹새끼들아.”
가지 말라는 곳을 기어코 간 것도 모자라 납치까지 당한 놈들이,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로 하여금 수천억을 쓰게 만든 놈들이 귀국 때 ‘명품 로고가 박힌 비닐봉지’를 들고 나왔다.
그들의 구출을 바라면서도 책임감 없던 그들의 행동에 욕을 하던 국민들이 가만히 있을까. 아마 마녀사냥이 시작될 거다.
‘니들이 아무리 청구액이 너무하다고, 이건 사기라고 외쳐도 먹히지 않을 거라는 거지.’
법적으로도, 여론으로도 그들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최 팀장님!”
“오, 조 팀장님! 어라? 다른 분들은 또 왜?”
그동안 인천공항에서 인연을 맺은 모든 이들이 종혁과 최재수, 오택수에게로 모여든다.
“괜찮아요?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어디 좀 봐요. 아 씨, 마른 것 좀 봐. 밥 좀 잘 챙겨 먹으라고 했잖아요!”
종혁과 오택수, 최재수는 느닷없이 잔소리부터 쏟아 내는 그들의 모습에 눈을 껌뻑였다.
‘대, 대체 왜?’
종혁은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하자마자 징계를 받을 것을 각오하고 아프간으로 날아간 자신들의 행동에 인천공항 직원들이 다시 감동을 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이, 최 팀장! 여기야, 여기!”
“어? 박 부장님? 최 부장님도 오셨어요?”
“잠시만요. 잠시만.”
사람들을 헤치며 다가온 오랜 인연인 박영일 사회부 부장과 다른 언론사의 부장 기자들이 종혁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최 팀장, 난 우리 인연이 참 깊다고 생각하거든?”
그제야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는 외교부 장관들을 따라나서지 않은 이들의 행동을 이해하게 된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편집본?”
“무, 무편집본도 있냐?”
“완전 무편집은 좀 어렵고, 살짝 각색한 건 어떠세요?”
“……살치살 콜?”
“여기 있는 인원들 다 사 주신다면요.”
“뭣!?”
종혁의 말에 놀랐다가 갑자기 눈빛이 돌변하는 수십 명의 직원 모습에 박영일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 아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까지는…….”
“아님 말고요. 내가 어디 말할 곳 없는지 아나.”
“에이씨! 그래, 콜! 나눠 내면 어떻게든 되겠지!”
“우와아아아!”
직원들은 만세를 외쳤고, 종혁은 얼른 가자며 기자들의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인천공항을 나서는 종혁의 입가에 후련한 미소가 매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