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96화 (396/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96화>

대명대학교 기독동아리 달란트 피랍 사건의 협상단이 머무는 카불의 어느 호텔 미팅룸.

협상단을 이끄는 외교부 장관이 담배를 문다.

“그러니까 아프간이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주지 않아서 한국군을 철수시킨다고 아프간 정부를 협박한다? 새벽의 등불인지 촛불인지 하는 테러단체의 위협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건가, 차장?”

국정원 중동 파트 차장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예! 엄연히 팩트잖습니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된 아프간 정부에 이번 협상에 쓸 돈을 슬그머니 건넨다.

어르고 달래는 작전.

이건 먹힐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시나리오 좋군.”

외교부 장관은 감청이 불가능한 핸드폰을 봤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님?”

-음…… 빈대 하나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건 아닌가 모르겠군요.

너무 과한 무력을 동원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또 그로 인해 새벽의 등불이 미친 척 인질을 모두 살해한다면?

그 여파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 것인가.

박노형 대통령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대통령님, 어떻게든 피랍당한 시민들을 구해 내야 하는 저희 정부 입장에선, 또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저희 입장에선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맞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래요. 일단 그렇게 한다 칩시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아프간 정부군을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반발하지 않겠습니까?

“외통수다 보니 적극적이지는 않더라도 움직이는 시늉은 하게 될 거란 게 저희 외교부의 판단입니다.”

‘그러니 제발 승인해 주십시오!’

오늘 낮 새벽의 등불이 대학생 한 명을 더 죽이면서 박노형 대통령이 한국군 철수의 생각을 굳히게 됐다.

일단 저들을 달래고 뒤에서 인질들이 사로잡힌 장소를 알아내자는 게 박노형 대통령의 생각.

하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다. 한국군 철수라는 카드를 내놓는 순간, 한국과 미국 사이의 외교에 큰 마찰이 생길 거다.

박노형 대통령이 방금 한 말처럼 빈대 잡자고, 아니 대학생 몇 명 구하겠다고 몇 조, 몇 십조의 손해를 볼 순 없었다.

이런 외교부 장관의 마음이 전해진 건지 박노형의 표정이 진중해진다.

-후우. 명분은 어떻게 만들 겁니까? 현 상황에서 그런 억지를 쓴다면 누구든 우리의 편을 들어 주지 않을 텐데요.

“한국 내에서 여론을 형성시키고, 국제 사회에 호소를 하면 됩니다.”

테러단체의 협박에 굴해서가 아니다, 협조하지 않은 아프간 정부에 실망해서라고 말이다.

지독한 억지지만 이 방법밖에 없었다.

-……일단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

“아니, 대통령님!”

‘이건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게 아니란 말입니다!’

인질이 구금된 장소를 알아내지 못한 이상, 시간을 줄수록 새벽의 등불에 유리해질 뿐인 이번 협상.

벌컥!

외교부 장관은 얼굴을 구겼다.

“뭐하는 짓이야! 회의 중엔 누구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차장! 부하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너 이 자식!”

“자, 잠시만! 잠시만요!”

안으로 난입한 국정원 요원은 얼굴이 외교부 장관과 국정원 차장의 얼굴이 구겨지는 게 보이지 않는지 얼른 리모컨을 들어 미팅룸 한구석에 있는 TV를 켰다.

“지금 뭐하는…… 흡?!”

외교부 장관뿐만 아니라 국정원 차장도 러시아 국영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긴급 속보에 눈을 부릅뜬다.

[속보! 러시아인, 아프간 카불에서 폭탄 테러에 휘말려!]

“무, 무슨!”

외교부 장관과 국정원 차장은 다급히 요원을 봤고, 이미 하얗게 질려 있는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피, 피해자 신원이 드바 로마노프의 이사라고 합니다. 그, 그것도 메드베제프 총리의 사촌이라는…….”

“……누구?”

메드베제프 총리. 러시아 국영가스기업 가즈프롬의 이사장이자 명실상부 러시아의 이인자.

그런 엄청난 거물의 사촌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폭탄 테러에 휘말렸다.

이는 러시아가 오랜 잠에서 깨어난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이곳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벌인 경험이 있는 소련을 그대로 계승한 러시아가.

미팅룸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그들이 경악할 소식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타다다닥!

“소, 속보입니다!”

갑자기 난입한 다른 요원의 행동에 국정원 차장의 얼굴이 구겨진다.

“메드베제프 총리의 사촌이 테러에 휘말렸다는 소식이라면 하지 마.”

“아, 아닙니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TV를 봐 주십시오!”

너무도 다급한 외침에 다시 TV를 봤던 사람들은 이내 다시 기겁했다.

이번엔 미국의 CNN 방송.

[속보! 18세 소년 빌 헨리, 폭탄 테러에 휘말려!]

툭!

사람이 너무 놀라면 말을 잊어버린다고 할까.

지금이 딱 그 꼴이다.

볼펜을 떨어트린 외교부 장관은 자신의 볼을 꼬집으며 부디 이것이 꿈이길 빌었다.

“그, 그리고 그 자리에 최, 최 팀장도 있었다고 합니다.”

“뭐?”

[미국인 사업가 해리 모하메드 빈 살만도 테러에 휘말려!]

“해리 모하메드…… CIA에서 최 팀장에게 제공한 위장 신분입니다.”

쿠웅!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

*   *   *

꿀꺽!

TV 앞에 모여 앉은 새벽의 등불 조직원들이 마른침을 삼킨다.

“대, 대체 누가……. 어떤 미친놈들이…….”

미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테러한 걸까.

심지어 피해자 중에는 미성년자 소년과 러시아 이인자의 사촌이 있었다.

이번 테러를 일으킨 신원 미상의 테러단체는 미국과 러시아의 보복으로 처참하게 괴멸될 것이 분명했다.

오싹!

“이, 이거 잘못하면 우리가…….”

현재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혁명 조직이 어디인가. 바로 자신들 새벽의 등불이다.

불과 오늘도 한 나라의 파견군을 철수하라고 외치며 세계를 뜨겁게 달군 새벽의 등불.

“아, 아니야! 우리 아니잖아! 맞지?!”

카라랑! 카라랑!

갑자기 울린 전화에 화들짝 놀란 그들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너희냐?

“아니야! 우린 아니야! 너희 쪽 아니야?

-우리도 아니야!

파미르는 혼란과 공포에 빠지는 형제들을 보며 혀를 찼다.

‘겁쟁이들 같으니.’

미국과 러시아가 분노한다고 한들 그게 자신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지레 겁먹고 당황하는 꼴을 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든든했던 동료들이 맞나 싶다.

갑자기 같은 공기조차 마시고 싶지 않은 불쾌한 기분.

‘그나저나 운이 나쁘군.’

누군지 몰라도 참 운이 나쁘다.

미국과 러시아를 건드렸으니 아마 조직이 뿌리 뽑히지 않는 이상 피가 멈추지 않을 거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고.”

이 폭탄 테러로 인해 임팩트가 줄어들었다.

어쩌면 자신들이 아예 묻혀 버릴지도 몰랐다.

“골치 아프게 됐어.”

이런 일은 태풍처럼 몰아붙여 얻어 내고자 하는 걸 얻어 내야 하는데, 미국과 러시아의 분노로 인해 제동이 걸려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괜히 목소리를 냈다가는 불똥이 튈 수도 있을 터.

“대체 어떤 멍청한 형제들인지…….”

“그 멍청한 형제들에게 알라의 천벌이나 내렸으면 좋겠군.”

“아, 지도자님.”

파미르가 다급히 몸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속보! 카불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새벽의 등불로 추정?]

쿠웅!

“……뭐?”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는다.

그와 동시에 TV 화면이 전환되며 메드베제프가 등장한다.

-감히 이 나라의 국민을 해한 테러단체여. 난 너희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러시아는 어떻게든 찾을 것이다. 그리고 섬멸하기 전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꿀꺽!

-그러니 동맹과 동지들에게 요청한다. 길을 열고 협조하라. 우리 러시아의 분노를 맛보고 싶지 않으면!

“미, 미친!”

파미르와 지도자는 다급히 서로를 응시했다.

*   *   *

-간악한 미국과 러시아는 들으라!

“응. 아니야. 안 들려.”

환자복을 입은 채 병실 침상에 누운 종혁이 다급히 실시간으로 성명을 발표하는 새벽의 등불을 보며 킬킬 웃고, 옆에서 사과를 깎던 자말이 그런 그를 경이롭다는 듯 응시한다.

지이잉! 지이잉!

종혁은 냉큼 전화를 받았다.

“네, 나탈리아.”

-마음에 드시나요, 최?

“굉장히요.”

마음에 들다 뿐일까.

이로써 새벽의 등불은 고립무원이 될 터.

‘어쩌면 고립시킬 뿐만 아니라, 직접 새벽의 등불 가져다 바치려는 놈들이 나올지도 모르지.’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성년자의 폭탄 테러에 미국 또한 분노했다. 곧 미국 대통령 대변인도 성명을 발표할 것이 예정된 상황.

탈레반이라 할지라도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의 분노를 한꺼번에 받아 낼 수는 없었다.

탈레반을 비롯한 테러단체들이 미국과 러시아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새벽의 등불이 소탕당할 때까지 침묵하거나, 새벽의 등불이 소탕되도록 만드는 것.

사면초가.

동지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도 쫓기게 될 테니, 이제 세상에서 새벽의 등불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 너희들이 무서워하는 걸 보여 줬다.

소수인 인질범들이 두려워하는 다수의 무력.

‘이제 어떻게 나올래?’

종혁의 눈이 흉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 너희를 도와줄 곳이 하나 있긴 하구나?’

딱 한 곳 있다.

그곳은…….

-최?

“아. 그런데 메드베제프 씨가 발표를 한 건 너무 과한 거 아니에요?”

솔직히 메드베제프가 이번 일에 나서 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거 빨대 한번 제대로 꽂으시는구만?”

이번 일을 빌미로 아프간 정부를 제대로 벗겨 먹으려는 러시아와 미국.

너희가 미적거리며 새벽의 등불을 처리하지 않았기에 결국 자국민이 다쳤다는 명분도 있으니, 아프간으로서는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라도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후후. 그래서 싫은가요?

“전혀.”

종혁의 눈빛이 순간 차가워진다.

“그들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피땀을 흘린 타국의 국민이 납치를 당했는데도 미적거렸으니 그 대가는 치러야겠죠. 그동안 고생한 한국 파견군분들을 위한 몫만 제대로 쳐주세요.”

이것이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종혁 사이의 거래였다.

-그건 걱정 마세요, 최.

“나탈리아.”

-말하세요, 최.

“전쟁은 안 됩니다.”

러시아와 미국은 어디까지나 분노한 시늉만 하는 거다.

군대를 파견하되 소탕 작전을 벌이는 게 아니라 무력시위로서 공포를 심어 주는 것. 인질을 구출하는 건 어디까지나 한국군이어야 한다.

얄미운 놈들 구하고자 이번 일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이들의 목숨이 날아가면 정말 견딜 수 없을 테니까.

여기까지가 종혁이 요구할 수 있는 한계이자, 이번 거래의 모든 조건이다.

-그것도 걱정 말아요, 나의 최. 모두 당신의 뜻대로 될 테니까요.

“고마워요, 나탈리아. 이 은혜 꼭 갚을게요. 곧 할 말도 있고요.

-은혜가 아닌 정당한 거래였는데……. 그래도 꼭 듣고 싶네요.

“큭큭. 아, 미국 대통령 대변인이 나오네요.”

TV의 화면이 전환되며 미국 대통령의 대변인이 단상에 선다.

그때였다.

“잠시만요!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비켜!”

“응?”

종혁은 최재수를 매달며 들어오는 국정원 중동 파트 차장과 외교부 장관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일어섰다.

“끊을게요. 오셨어요?”

“최 팀…… 장.”

자말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는 차장과 외교부 장관.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곧 그들의 눈이 샐쭉하게 떠진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미 예상한 질문.

종혁은 미리 준비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러니까 드바 로마노프가 아프간을 시작으로 중동에 진출을 하려는데 마침 최 팀장이 카불에 있어서 만나러 왔다? 그 인권운동가 소년은 우연히 그 근처를 지나다 휘말렸고?”

아프간 여성들의 인권 상장을 위해 카불을 찾은 인권운동가 소년 빌 헨리.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장난해! 어린아이도 안 믿을 이야기를 나보고 믿으라고!”

외교부 장관의 분노에 종혁은 어깨를 으쓱였고, 그런 그를 보던 국정원 차장은 눈을 가늘게 떴다.

“최 팀장, 이거 설마 최 팀장이 짠 판이야?”

종혁은 날카로운 그의 눈빛에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허…… 이 양반이 낮술을 잡쉈나. 그런 판타지 소설은 집에 가서 쓰세요.”

“왜? 최 팀장 이런 거 잘하잖아. 이렇게 판 짜는 거.”

“하아. 그래요. 내가 그랬다고 칩시다. 치자고요. 그런데 그렇게 판을 짠 내가 이렇게 다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환자복 상의를 벗은 종혁은 등짝을 보여 줬고, 국정원 차장과 외교부 장관은 신음을 흘렸다.

마치 등판 전체가 괴사라도 된 듯 새까맣게 멍이 든 종혁의 등.

다시 환자복 상의를 입은 종혁은 국정원 차장과 외교부 장관을 향해 냉소를 보냈다.

“헛소리에 시간 낭비할 생각 말고, 움직이기나 하세요.”

사면초가에 고립무원이 됐으니 새벽의 등불이 취할 제스처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인질들을 모두 죽이고 숨든가, 아니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든가.”

“빙고.”

현 상황에서 새벽의 등불을 도와줄 수 있는 곳은 역설적으로 한국뿐이다. 아마 이제 새벽의 등불은 인질을 모두 석방할 테니 중재를 해 달라는 뻔뻔한 요구를 해 오게 될 것이다.

“씨발! 최 팀장, 너 맞잖아!”

“아니라니까 그러네! 애초부터 그 정도의 인맥도 없지만, 혹여 있다고 한들 그 얄미운 새끼들을 구하기 위해 소중한 인맥을 쓸 것 같습니까? 씨발, 내가 미쳤어요?!”

“끙. 그건 맞는데…….”

“아, 좀 가시라고요, 가!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 전에!”

정말 새벽의 등불이 협상을 해 온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이 그저 두 나라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한 거다. 이는 한국이 힘이 없다는 걸 드러내는 꼴밖에 안 된다.

이미 당해 버린 망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마, 맞아! 그, 그 전에 움직여야지!”

미국과 러시아가 아프간에 발을 딛기 전에 이번 사건을 종결시켜야 한다. 그래야 체면치레라도 한다.

“아, 알았어! 우린 먼저 간다! 어! 나 차장인데! 샤리프인지 오마샤리프인지 그 새끼 확보해! 지금 당장!”

종혁은 부리나케 달려 나가는 그들을 보다 한숨을 내쉬며 침상에 누웠다.

“아으으.”

이제 정말 할 만큼은 다했다.

‘남은 건 놈들의 면상을 보는 것뿐이지.’

자신들이 한 일 없이 미국과 러시아의 힘만으로 사건이 해결된다면 골치 아픈 건 아프간 정부도 마찬가지. 이제 한국과 아프간은 한 몸이 되어 놈들을 쫓는 데 사력을 다하게 될 거다.

“진짜 이젠 좀 보자, 이 개새끼들아.”

“저…….”

“응?”

종혁은 병실 문 앞에 서 있는 아흐메트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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