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95화>
[긴급 속보! 피랍된 한국인 또 한 명 사살!]
콰작! 치직치지직! 뻐어엉!
리모컨이 틀어박힌 TV가 폭발하는 것을 본 종혁은 얼굴을 쓸어 올렸다.
“푸흐…….”
무력하다.
‘차라리 몰랐다면…….’
회귀 전처럼 아무것도 몰랐다면 이렇게까지 무력감을 느꼈을까.
“푸흐흐. 그래, 내가 잘못 생각했네.”
답지 않게 남에게 미뤄 두기만 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렇게 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 선은 이미 넘었지.”
눈에서 감정이 사라진 종혁은 린치가 준 서류 가방을 열었다.
달칵! 달칵!
쿵쿵쿵!
“야, 최 팀장! 무슨 소리야! 문 열어 봐, 새꺄!”
달칵!
서류 가방을 열자 드러나는 두 자루의 권총과 방탄복.
방탄복을 입고 권총을 홀더에 끼운 종혁은 정장 재킷을 걸치며 문을 열었다.
“야! 최 팀…… 큭큭. 빡쳤냐?”
“막을 겁니까?”
“아니.”
또다시 젊은 피가 살해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신을 먼저 생각할 정도로 좆같은 형사 생활은 하지 않았다.
입술을 비튼 오택수와 최재수가 비켜서자 종혁은 자말을 봤다.
종혁의 몸에서 넘실거리는 살의에 놀란 그녀.
“막을 겁니까?”
“……총이 부족하지 않나요?”
폭발 소리에 반사적으로 들고 나온 소총과 권총을 보여 주는 자말. 종혁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당신, 멋진 여자야.”
입술을 비튼 종혁은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자말에게 총을 넘겨받은 오택수와 최재수가 목을 꺾으며 그 뒤를 따랐다.
“최재수, 망설이지 말고 쏴라.”
“걱정 마세요, 씨발. 이 개새끼들…….”
스르릉! 띵!
열리는 엘리베이터의 문을 통해 내린 종혁들은 무심히 로비를 가로질렀다.
그 순간이었다.
후다닥!
“씨발! 이럴 줄 알았지! 멈춰, 최 교관!”
종혁은 자신들을 막아 세우는 국정원 요원들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왜? 막게? ……니들 따위가?”
“더 움직이면 징계야! 옷 벗고 싶어?!”
“벗기려면 벗겨 보시든지.”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는데도 참아야 한다?
“그딴 개짓거리를 할 거면 경찰을 왜 해? 비켜. 안 비키면 2계급 특진이다.”
2계급 특진, 순직시켜 주겠다는 말에 국정원 요원들은 이를 악물었다.
“제발! 최 교관!”
종혁은 애원하다시피 말리는 그들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후……!”
이들을 때려눕힌다고 한들 달라질 게 있을까. 그저 애먼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아아악!”
상처받은 짐승의 포효가 로비를 꿰뚫었다.
“후우. 얼만데?”
“뭐, 뭐가?”
“그 개새끼들이 대한민국에 원하는 액수가 얼마냐고.”
“……천만 달러.”
“아, 그래?”
회귀 전과 다를 게 없는 액수.
그러나 이 액수는 일주일 뒤 두 배로 뻥튀기가 된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뒤에 또 두 배로 뻥튀기.
모두 박노형 대통령이 악수를 두기 때문이다.
“대통령님 의지는?”
“후. 일단 인질들의 위치를 모두 알아내지 못한 만큼…….”
종혁의 눈이 실망으로 물든다.
“됐어.”
더 이상 들어 보지 않아도 됐다.
“너희들 생각도 됐어. 이 액수를 듣고도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면 니들이 병신이니까. 아니, 협상단이고 대책반이고 죄다 병신들만 있는 거지.”
“이봐, 최 교관!”
“한 번만 더 교관 이 지랄하면 진짜 교관으로 복귀한다.”
“…….”
“꺼져. 더 이상 병신 바이러스 옮기지 말고. 아, 샤리프인지 나발인지 그 새끼 근처엔 얼씬도 안 할 테니까 꺼지라고!”
“믿는다, 최 교…… 아니 최 팀장. 여기까지는 봐줄 테지만…….”
“아, 진짜!”
종혁은 황급히 멀어지는 국정원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린치가 종혁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이대로 포기할 거냐는 린치의 물음에 종혁은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도 놈들은 대학생을 죽였어. 왜지?’
무리의 수장, 교수부터 죽이는 게 충격과 파장이 더 클 텐데도 새벽의 등불은 다시 대학생을 죽였다.
‘왜일까, 왜지?’
종혁은 이놈들의 심리를 추측해 갔다.
“흠.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는데요…….”
잠시 생각을 멈춘 종혁이 최재수를 본다.
“이 테러범들은 왜 인질을 두 명, 세 명씩 죽이지 않는 걸까요?”
“야. 너 솔직히 말해. 중경에서 교육받을 때 잤지?”
“무, 무슨……! 저 상위권 성적이었거든요!”
“지랄. 그런 새끼가 인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걸 모른다고? 어휴. 새끼야. 대가리! 대가리 좀 굴리라고, 새끼야!”
“악! 악!”
종혁은 최재수를 타박하는 오택수를 멍하니 응시했다. 머리를 강타한 충격 때문이다.
“잠깐.”
“왜? 더 때리라고?”
“잠깐만요. 인질범들이 인질을 마구잡이로 죽이지 않은 이유가 뭐였죠?”
“하, 너까지 왜 그러냐. 인질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순간…….”
“이쪽은 남은 인질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무력을 투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막말로 가만두면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까.”
그렇기에 인질을 구출하는 입장에선 뭐라도 해야 한다. 그게 설혹 인질을 모두 죽일 수 있는 구출 작전이라도.
“그러면 그 말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언제나 소수인 인질범들은 다수의 무력이 무서워 함부로 인질을 죽일 수 없다?”
“빙고.”
맞다. 다수가 투영할 무력이 무서워서다.
물론 순교를 외치며 무차별 테러를 벌이는 미친놈들도 있지만, 인질을 잡고 돈을 요구한 순간 저들은 이미 이쪽을 무서워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거다.
린치의 눈이 빛났다.
“뭔가 생각나셨나 보군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어떻게 하긴요. 내 방식대로 해야지.”
마침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씩 웃은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네, 나탈리아. 납니다. 빚 하나 까고 싶은데요.”
린치는 갑자기 언급된 나탈리아에 눈을 부릅떴다.
* * *
한편 협상단으로 향하는 국정원의 차 안.
“와. 최 교관이 그렇게 폭주할 거란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팀장님?”
방금까지 대거리했던 팀장이 팀원의 말에 혀를 찬다.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니까.”
나이도 어린놈이 뭐 그리 측은지심이 많은지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는 꼴을 못 본다.
“넌 좀 늦게 합류해서 모르겠지만, 최 팀장이 훈련 교관을 할 때 프랑스 파트에서 왕따 사건이 터졌어.”
그리고 그걸 종혁이 본 거다.
“그, 그래서요?”
“왕따 주범자들 전부 은퇴당했다.”
사지와 갈비뼈가 모두 부러져서 은퇴를 당했다.
처음엔 종혁도 주의를 주고 상부에도 건의를 했다. 그런데도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종혁이 직접 나서서 은퇴를 시켜 버렸다.
“그것도 차장님들이 모두 계신 자리에서.”
“……그, 그걸 가만뒀다고요?”
“40명. 당시 최 팀장을 말리기 위해 달려든 숫자야.”
그런데 그들 모두 종혁에게 제압을 당했다.
“미친…….”
국정원은 그 미친 피지컬과 전투 능력을 배우기 위해 그 사건을 묻었고, 결국 그건 잘한 선택이었음이 증명되었다.
“하, 씨발.”
“왜?”
“최 팀장이,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일개 경찰일 뿐인 최 팀장이 저렇게 빡친 걸 보니 좀 그래서요.”
샤리프가 새벽의 등불의 조직원이라는 걸 밝힌 것도 종혁이고, 감시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것도 종혁이다.
자신들 국정원은 지금까지 뭘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거기다 씨발, 아프간 정부도 그래요.”
아프간을 위해 피를 흘리며 싸워 주는 한국의 국민이 아프간 내에서 피랍을 당했는데도 저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지 않고 있다. 한국이 요구하면 그제야 들어주는 상황.
“이런 취급을 당할 거면 그동안 왜 대신 싸워 준 건지…… 씨발.”
“어쩔 도리가 있냐.”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양국 간에는 이미 예전부터 한국군 철수가 논의되고 있던 상황이다. 남의 나라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피를 계속 흘릴 수 없다는 한국 내 여론 때문이다.
평화와 화합을 중시하는 박노형 대통령은 그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고, 결국 그런 논의가 진행되다 못해 가시화되고 있던 상황에, 이제 점진적 철수를 하겠다는 발표만 남겨 놓은 상황에 이런 피랍 사건이 벌어진 거다.
지독히도 운이 나빴다고 볼 수 있었다.
“어차피 떠날 놈들이라 이거지. 그러니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고.”
미적지근한 대응을 하는 아프간 정부는 심지어 한국군이 쓰던 무기를 모두 기부하고 가라는 개소리까지 지껄였다. 아니면 한국군 철수를 백지화시키든지.
“하, 씨발. 아프간 정부만, 아니 군대만이라도 적극적으로 움직여 줘도 뭐가 달라지긴 할 텐데…….”
팀장도 동감이었다.
그렇게 압박을 할 수 있다면 인질범들도 겁을 먹을 터.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오를 수가 있었다.
“아, 흠. 그런데요.”
“또 뭐?”
“아까 최 팀장이 한 말 말입니다.”
천만 달러라는 액수를 듣고도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면 니들이 병신이라는 말.
“이거 단순히 저희를 까기 위해서 한 말일까요? 그 인간 성격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 그건 아닐 거야.”
종혁은 누군가를 이유 없이 까는 부류가 아니다.
“천만 달러면 한화로…… 어, 잠깐.”
팀장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왜요?”
“잠깐, 정말 잠깐만. 야, 미국이 아프간에서 탈레반 애들 몰아낼 때 어떻게 했었지? 정확히는 북부동맹 애들을 움직였을 때!”
현재 아프간의 정권을 잡고 있는 당시의 북부동맹.
미국은 이들과 손잡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몰아냈다.
“어…… 글쎄요?”
“씨발, 너 자료 안 읽었지?!”
당시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최대 군벌에 500만 달러를 약속하며 끌어들였다.
“와, 최 팀장이 이걸 어떻게 알았지?”
“어, 어. 그래도 당시 북부동맹은 어떻게든 탈레반을 몰아내야 했던 상황이었잖아요!”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지.”
정말 새벽의 등불 요구대로 한국군이 물러나게 된다면 누구의 손해일까? 아프간의 손해다.
그러나 마냥 손해라고 볼 수 없는 게, 한국군이 먼저 철수를 하겠다고 말을 꺼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 아프간이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주지 않아 물러나는 거라고 바꿀 수만 있다면?
그땐 아프간의 국제 신용도가 추락한다.
자국을 위해 싸워 주는 국가의 국민조차 보호하지 않는 나라. 속사정이 어찌 됐든 그땐 아프간의 강력한 방패인 미국도 고개를 젓게 될 거다.
즉, 어차피 떠날 놈들이라 제대로 협력하지 않았고, 또 그런 이유 때문에 한국도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 요구를 할 수 없었던 아프간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명분이 생기는 거다.
아니, 어떻게든 그렇게 만들어야 했다.
설혹 그게 말도 안 되는 억지에다 사기라도.
‘최 팀장 말이 맞네!’
이 간단한 걸 떠올리지 못한 협상반이고, 대책 본부고 모두 병신이 맞았다.
“씨발! 뭐해! 밟아!”
“예!”
* * *
그날 오후, 수도 카불의 한 버려진 교회 앞.
“됐습니다!”
그 앞을 스쳐 지나가던 종혁이 누군가의 외침에 멈춰 서며 돌아선다. 그런 종혁에게 다가온 러시아계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는 분이네요. 최종혁입니다.”
“우리 러시아의 친구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런데…….”
SVR 요원은 어느새 종혁의 옆에 서 있는 미국인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고, 남성은 킬킬 웃었다.
“좋은 건 나눠 먹자고, 불곰.”
“하이에나 같은 얌생이 놈들.”
혀를 찬 SVR 요원은 종혁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럼 시작할까요?”
“……후우. 그러죠.”
“너무 긴장하지 마십시오. 주사보다 살짝 더 아플 뿐입니다.”
“그래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후후. 시작해.”
꽈아아앙!
종혁은 몸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