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94화 (394/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94화>

    빠앙! 빵빵!

    오토바이와 차들로 번잡한 도로 위.

    허름한 택시에 앉은 택시기사, 하밀의 아버지 샤리프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크게 소리친다.

    “비키라고! 비켜! 도로 전세 냈어?! 하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뒤의 승객에게 웃어 준 샤리프는 다시 고개를 내밀곤 빽빽 소리를 지르며 클락션을 눌렀고, 택시는 거북이가 기어가는 것보다 느리게 나아가 겨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신의 은총이 형제님과 함께하길!”

    떠나는 승객에게 손을 흔들어 준 샤리프는 손에 쥔 지폐를 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공항이 좋긴 좋구나.”

    특정 택시회사의 특정한 기사들만 출입할 수 있는 카불국제공항. 원래부터 이 택시회사 소속이긴 했는데, 공항 출입을 허가받은 건 정말 우연이었다.

    ‘아니, 모두 지도자님께 선택을 받은 덕분이지.’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새벽의 등불에 가입한 이후부터 일평생 꼬여만 있던 운이 풀리고 있다.

    “신께서 나를 돌보심이니…….”

    지이잉! 지이잉!

    누가 감히 이 신성한 시간을 방해한단 말인가.

    거칠게 핸드폰을 꺼냈던 샤리프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다. 못난 자신을 만나 일평생 고생만 한 아내.

    -여보, 어디에요? 밥은 먹었어요?

    “곧 먹을 거야. 그런데 어디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아, 그게요…….

    아내 야스민은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했고, 샤리프는 눈매를 좁혔다.

    “청금석을 미국에 파는 사업가?”

    -네! 돈이 엄청 많아 보이는데 아내도 무척이나 예뻐요.

    “……한국인이야?”

    -아니요! 약사 아저씨가 말하길 아버지가 우리 아프간 사람이고, 어머니가 태국인이래요!

    “태국은 또 어디야?”

    -동남쪽의 어디라는데…….

    ‘중국 옆에 있는 나라인가?’

    “뭐 됐고. 애들은 어디 아픈 곳 없어?”

    -네. 저도 몸조리만 잘하면 된대요.

    “알았어. 끊어. 밥 먹어야 돼.”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은 샤리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매번 그러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말이 퉁명스럽게 나온다.

    ‘조금만 참아. 곧 알라의 뜻을 받드는 진정한 전사들이 다시 이 땅을 수복할 테니까.’

    저 간악한 미국에 의해 알라의 땅 아프간에서 물러나게 된 탈레반 형제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알라께서 자신들을 돌보심이니 이 아프간에도 다시 알라의 은총이 내리게 될 거다.

    ‘그땐 행복하게 살자. 그러니 조금만 참아 줘.’

    지금의 궁핍함은 내일의 풍족함으로 돌아오리니.

    현명한 아내라면 후에 자신의 이 행동을, 가족을 돌볼 수 없는 모습을 이해해 줄 것이다.

    지이잉!

    “또 누가…….”

    광고성 스팸문자.

    하지만 돌연 눈빛이 차가워진 샤리프는 차를 몰아 어느 식당으로 향했다.

    도심지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위치한 작고 허름하지만 손님들로 가득한 식당.

    “팔라우랑 와인 한 잔 주세요.”

    “예!”

    양고기와 쌀을 섞어 만든 아프가니스탄 전통 음식, 팔라우.

    주인이 내온 뜨거운 수건으로 손을 닦은 샤리프는 마치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마른세수를 했다.

    “저희 동네에 웬 사업가가 적선을 하고 있는 걸 제외하면 지금까진 별다른 일 없습니다, 형제여.”

    움찔!

    “사업가?”

    샤리프는 아내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전했고, 샤리프의 뒤에 앉아 등을 보이는 사내 파미르는 눈빛을 가라앉혔다.

    ‘CIA? 아니야. 그놈들은 아닐 거야.’

    한국이 협상에 응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극렬하게 반발했던 미국. 그런 미국이 한국을 위해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한국 정보기관이 자신들을 추적할 때 미국은 손을 거들지조차 않았다고 했다.

    ‘우리를 쫓기 바쁜 한국 정보기관은 당연히 아닐 거고…….’

    “흠. 혹시 모르니까 일단 알아봐요. 티 나지 않게.”

    이번 일의 진행에 있어서 작은 실수가 있었다.

    무함드를 이교의 무리 사이에 심을 때 지나치게 서두른 것.

    아마 정보기관들은 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샤리프를 감시하고 있을지 모른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언제까지 이교의 신을 입에 담아야 하는 겁니까?”

    “신이 형제를 부를 때까지.”

    그건 아마 이번 일이 끝난 후 아프가니스탄 내에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일 때일 것이다.

    이를테면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끙. 알겠습니다.”

    “신의 뜻이 형제와 함께하길.”

    “신의 뜻이 형제와 함께하길.”

    눈을 빛낸 파미르는 몸을 일으켜 뒷문으로 향했고, 샤리프는 어깨를 풀며 때마침 나온 팔라우를 한 손 크게 집어 입에 가져갔다.

    그런 샤리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빈민가에서 잔치가 열리고, 의료 봉사자들이 왔단 소식에 주위 동네 사람들까지 모두 몰려들자 잔치는 결국 밤늦게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웅성웅성. 왁자지껄!

    “해리 모하메드 사장님을 위해 건배!”

    “건배!”

    “감사합니다, 모하메드!”

    마치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는 듯 부어라 마셔라 하는 사람들.

    고작 칭찬 한마디로 퉁치려는 그 뻔뻔한 모습들에 풀썩 웃은 종혁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공터를 둘러보다 구석에서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잠든 하밀을 보며 씁쓸히 웃었다.

    아들이 아비를 신고했다.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괴로워했을까.

    가슴이 콱 막힌 듯 답답했다.

    정말 빌어먹을이었다.

    “아셨습니까?”

    “몰랐습니다.”

    종혁의 옆에 앉은 린치가 맥주병을 건넨다.

    심증조차 미비한 상황이라 잡아다 족칠 수도 없는 상황이고, 혹여 새벽의 등불과 연관되어 있다면 더 조심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얻어걸릴 줄은 몰랐다.

    “동양에선 이런 걸 두고 필연이라고 하던가요?”

    “그러게요. 그런 게 있긴 있나 보네요.”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혀를 내두른 종혁은 택시기사 샤리프를 떠올리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무슨 의도로 교인이 된 걸까요?”

    “아마…… 교회의 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일 때 테러를 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10년 전, 탈레반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홀연히 아프가니스탄에 넘어와 선교를 시작한 김오철 목사.

    당시 이교 탄압에 모든 종교인들이 아프간에서 추방되거나 사살이 됐는데도 김오철 목사는 꿋꿋이 버텼고, 현재는 아프간 기독교인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타깃으로 삼기에는 이만한 사람도 없었다.

    부르릉!

    “양반은 아니네.”

    린치는 저 멀리에 서는 택시 한 대와 그 안에서 내리자마자 이쪽으로 다가오는 샤리프의 모습에 싱긋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전 이만 가 보죠.”

    “수고하세요.”

    린치가 사라지고 잠시 후 종혁은 샤리프가 그의 아내랑 하밀과 함께 이쪽으로 다가오자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누가 봐도 이젠 돌아가려는 듯한 모습.

    그런 종혁의 앞을 샤리프가 막아선다.

    “제 아내와 아들이 오늘 당신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하더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저 변덕이었을 뿐이니까요. 앞으로 자식들 잘 키우세요.”

    “예, 예. 감사합니다. 아, 이 고맙다는 말을 당신나라의 말로 뭐라고 하죠?”

    “땡큐. 영어로 고맙다죠.”

    “……아, 땡큐. 감사합니다. 그럼 형제의 앞날에 신의 은총이 깃들길.”

    “형제의 앞날에도 신의 은총이 깃들길.”

    잠든 하밀을 안아 든 샤리프는 고개를 꾸벅 숙이곤 빈민가 안쪽으로 걸어갔고,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햐. 저 새끼 봐라?”

    하마터면 한국어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뻔했다. 종혁 자신이 한국인, 아니 국정원이 아닐까 물어본 게 분명했다.

    ‘대가리 좀 굴릴 줄 아는 놈이네……. 저런 놈들만 있다면 골치 아파지는데…….’

    종혁의 눈이 가늘어지는 순간이었다.

    “저…….”

    종혁의 곁으로 외과의 아흐메트가 다가온다.

    ‘아이고.’

    “아직 안 돌아가셨어요?”

    내일도 의료 봉사를 해야 하는 사람이, 그것도 의료 봉사단의 수장이 아직도 엉덩이를 뭉개고 있으니 종혁으로선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 전에 잠시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요. 미국에서 사업을 꽤 크게 하시나 봅니다.”

    종혁이 기부한 돈이 무려 10만 달러다.

    “왜 저들을 돕냐고요?”

    “예.”

    “불쌍하잖습니까.”

    아흐메트는 살짝 놀랐다. 보통은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하지 않는 말.

    “저들이 불쌍하게 느껴지십니까?”

    “그럼요?”

    교육 환경이 부족해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복지가 발달하지 못해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회 인프라가 발달하지 못해 가진 바 재능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 모든 건 가진 것을,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다.

    “전 세계적으로 90년대를 일컬어 격동의 시기라 부릅니다.”

    컴퓨터의 보급화로 인해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되었고, 인터넷으로 세상이 연결되며 모든 나라가 세계와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세계의 것을 차용해 자국에 도입시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나라는 그놈의 빌어먹을 전쟁 때문에 그 시기를 놓쳤죠.”

    아프간도 늦지 않았었다. 최소한 소련과의 전쟁이 끝난 이후 정신을 차리고 국가 성장에 주력했다면 아프간도 살 만한 나라가 됐을 거다.

    그런데 내전이 일어나고 탈레반이 정권을 잡으며 이슬람 국가와만 교류하고, 과거의 무슬림 사회로 회귀해 국민들을 우민화시켰다.

    각료들은 부패하고 국민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게 됐다.

    “우민화…… 샤리아…….”

    통렬한 비판에 아흐메트의 낯빛이 굳는다.

    “여성이 천대를 받는 사회, 계급이 나뉜 삶, 고리타분하다 못해 시대에 맞지 않은 꽉 막힌 교리 등등…… 그중 제가 가장 열 받는 게 뭔지 아십니까?”

    “뭡니까.”

    “사람들에게 의지가 없다는 겁니다.”

    쿵!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없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모두 열심히 노력해도 지금보다 나아진다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나라가, 사회가 그걸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탈레반과의 전쟁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전쟁 때문에 아프간 내에서 탈레반이 자라난다.

    “어차피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삶. 알라의 은총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탈레반 놈들의 말을 한번 믿어 봐도 좋지 않습니까? 그쪽은 최소한 희망을 주니까요.”

    쿠웅!

    “이런 게 불쌍하지 않으면 뭐가 불쌍할까요.”

    저들이라고 좋아서 빈민으로 사는 게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기에 빈민으로 사는 거다.

    양해를 구한 종혁은 담배를 물었고, 아흐메트는 그런 종혁을 떨리는 눈으로 응시했다.

    “그, 그럼 우리가 뭘 해야 할 것 같습니까?”

    왜 이런 걸 묻는지 몰라 잠시 의아했던 종혁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이 지긋지긋한 전쟁부터 끝내야겠죠.”

    “그건……!”

    “정말 불가능합니까? 그럴 의지가 없는 게 아니고요?”

    “…….”

    아흐메트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세상엔 중독이라는 말이 있죠.”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는 참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린 나라다.

    그런 그들에게 미국이라는 구원자가 나타났다.

    탈레반도 미국이 몰아내 줘, 무기와 병력도 지원해 줘, 피를 흘리는 것도 미국이다.

    “냉정히 말해서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이라는 방패에 안도해 버린 겁쟁이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버린 거다.

    이는 회귀 전의 일이 증명한다. 아프간은 미국이 철수하자 단숨에 탈레반에게 밀렸다.

    “이 나라의 젊은 청년들도 피를……!”

    “그게 보인다면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놈들부터 죄다 목을 쳐 버렸어야죠. 이 나라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국민이다.

    “그 국민을 지켜야 할 사람이 누굽니까?”

    군대고 정치인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각오와 애국심으로 불타는 아프간인들의 군대와 정치인.

    “대체 그동안 당신들이 한 게 뭡니까?”

    인프라도 제대로 개발되지 않아 먹고사는 것조차 힘든 이 나라를 어떻게든 뜯어먹어 보겠다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밖에 없다.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는 아프간의 내각.

    “이러니 탈레반이 만만하게 보고 테러를 저지르고 외국인을 피랍하는 겁니다. 패배해서 쫓겨난 개새끼들 주제에 계속 주인 행세를 하는 거란 말입니다.”

    “…….”

    신랄하다. 그런데 반박을 할 수가 없다.

    모두 옳은 말이기 때문이다.

    종혁은 그렇게 입을 다무는 그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에고, 폭주했네.’

    달란트 피랍으로 짜증도 나고, 저렇게 사는 빈민들의 모습도 답답해 결국 쏟아 내고 말았다. 아흐메트의 잘못이 아님에도 말이다.

    “큼. 뭐 제 생각은…….”

    “소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충격이 컸는지 아흐메트는 비틀거리며 멀어졌고, 종혁은 그 모습을 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에라이. 이놈의 오지랖.”

    솔직히 탈레반만 없다면 아프간도 굉장히 욕심나는 나라다.

    자원이 넘쳐남에도 도로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았기에 투자하는 족족 벌어들일 수 있을 테니까.

    “흠. 그런데 저 양반은 왜 온 거야? 분명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눈치였는데…….”

    그게 아니라면 저 나이에 지금까지 버틴다는 게 쉽지가 않다.

    의아해하던 종혁은 이내 생각을 거두며 낯빛을 굳혔다.

    “내일이면 사흘째지.”

    첫 번째 희생자가 나오고 사흘.

    회귀 전에는 첫 번째 희생자가 나오고 사흘 후 두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다.

    미적거리는 대한민국 정부를 독촉하기 위해 새벽의 등불은 두 번째 희생자를 만들어 내고, 대한민국 정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회귀 전과 상황이 다르니 내일 꼭 죽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죽는다면 견딜 수 있을까. 아마 택시기사 샤리프의 대가리부터 터트려 버릴지도 몰랐다.

    “후, 씨발.”

    종혁은 부디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술을 입속에 처박았다. 어둔 밤하늘의 별이 그런 그를 위로하듯 반짝였다.

    한편 집으로 돌아온 아흐메트는 무너지듯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희망이 없는 이 나라가, 이 사회가, 부정부패한 정치인들이, 이 나라 지식층이 탈레반을 만든다라…….”

    ‘그랬던 거였니?’

    몸을 일으킨 아흐메트는 거실 TV 옆에 뒤집어 놓은 액자를 들어 올리며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탈레반이 되어 버린 거니?’

    “파미르, 내 아들아.”

    어느 순간 샤리아 사상에 빠져들더니 죽음을 위장해 자신의 곁을 떠나 버린 아들 파미르.

    하지만 아비가 어찌 아들의 얼굴을 몰라볼 수 있을까.

    폭탄 테러의 주범이라고 TV에 나온 아들의 모습을 본 순간 그는 모든 걸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아들이 탈레반이 되어 버린 후에도 몰랐지만, 이젠 더 모르겠다.

    “겁쟁이……. 어느 순간 겁쟁이가 되어 버린 이 아비는 정말 모르겠구나.”

    이 나라의 지식층 중 한 명으로서 이 나라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던가.

    그는 환하게 웃는 아들의 얼굴을 쓸어내리고 또 쓸어내리며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   *   *

    새벽의 등불 아지트.

    파미르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의 반응은 어떻지?”

    가면을 쓴 사내의 말에 파미르가 공손히 대답한다.

    “똑같습니다, 지도자님.”

    겉으로는 계속 시간을 달라는 입장이며, 뒤로는 자신들을 쫓고 있다. 어렵사리 구한 정보에 의하면 한국인들을 납치할 때 썼던 차량이 모두 들통났다고 한다.

    물론 그것만 가지고는 자신들을 쫓을 수 없을 테지만, 그래도 섬뜩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개입한 흔적은?”

    지도자의 질문이 자못 예민하다.

    자국민 수천 명이 테러에 죽자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 형제들을 짓밟고 내쫒은 미국. 그때의 대통령이 아직도 대통령이다.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로선 없습니다만…….”

    말을 줄인 파미르가 눈을 가늘게 뜬다.

    샤리프의 빈민가에 온정을 베풀었다는 태국계 미국인 사업가가 아무래도 목에 걸린 가시처럼 거슬린다.

    ‘샤리프가 우리의 형제임이 들통난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겠지만…….’

    말단 조직원에 불과한 샤리프는 조직의 아지트가 어디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뭔가 걸리는 게 있나 보군.”

    “지도자님께서 신경 쓰실 만한 일은 아닙니다.”

    “……혹시라도 미국이 개입할 명분을 주면 안 될 거야.”

    미국이 옆에서 툭툭 건드려도 참아야 한다.

    미국이 분노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우리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담담한 파미르의 대답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지도자는 생각에 잠겼다.

    “답을 계속 미루는 걸 보면 한국이 시간을 끌려는 것 같군.”

    자신들을 찾을 때까지 말이다.

    “내일 아침에 한 명 더 죽여. 목사는 말고.”

    모든 원망을 받고 있다는 목사.

    알아서 자신들에게 올 원망을 대신 받아 주니 살려 두는 게 좋을 듯하다.

    그래야 인질들을 다루기가 더 쉬워질 테니 말이다.

    “예. 적당한 놈을 고르도록 하겠습니다.”

    “나가봐.”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파미르가 나가며 문이 닫히자 공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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