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92화>
죽었다.
정말 사람이, 친구가 목이 잘려 죽었다.
분수처럼 뿜어지던 피.
자신에게 닥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싸늘하게 식어 가던 친구의 눈.
그 눈이 말했다.
‘왜 나만…….’
“악!”
“헉!”
깊은 굴 속에 지어진 감옥.
마치 짜기라도 한 듯 기겁하며 깨어난 4명은 구석으로 달려가 눈물과 함께 오바이트를 쏟아 냈다.
“웨엑!”
“웩!”
지난 며칠간 먹은 것이라곤 삶은 감자 한 덩이와 물 몇 모금이 전부인 그들. 쓰디쓴 위액을 쏟아 낸 그들은 무릎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들의 눈에 설움이 차오른다.
“이, 이게 뭐야……. 이게 뭐예요, 교수님.”
“안전하다며…….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
이런 곳인 줄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꼴을 당할 줄 알았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이 말릴 때 들을걸…….’
협박까지 해 가며 말렸던 인천공항의 경찰, 종혁.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제자들의 죽일 듯한 눈을 본 교수는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이, 이 모두 주님께서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주님께서 우릴 지켜 줄 거라며!”
“닥쳐! 다 당신 책임이야! 승광이가 죽은 건 모두 당신 때문이라고!”
“모, 모두 진정하고! 이럴수록……!”
콰앙!
“꺅!”
사람들은 급히 귀를 막으며 몸을 웅크렸다.
뚜벅뚜벅!
이쪽으로 다가오는 군홧발 소리.
사람들은 감옥 철창 앞에 나타난 사람을 보곤 질겁했다.
“역시 배에 기름이 잔뜩 껴서 그런지 감자만 먹고도 힘이 넘치는군.”
알아듣지 못할 언어에 교수는 다급히 나섰다. 지금 항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제자들에게 맞아 죽게 생겼기 때문이다.
“대,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몸값을 받으려면 우리가 멀쩡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체 왜 승광이를……!”
철창을 잡고 흔드는 소리에 새벽의 등불 조직원들은 무함드를 봤고,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대충 왜 죽였냐는 말 아닐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거 아니었어?”
“조금. 영어도 조금.”
“하긴, 알라를 믿지 않는 자들의 말 따윈 알 필요가 없지.”
조직원 중 조장으로 보이는 사내, 파미르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이를 드러냈다.
“왜 죽였냐고? 말만 해서는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지.”
그리고 비밀리에 자신들을 찾고 있다는 정보도 입수됐다. 본보기였고, 승광을 고른 건 승광이 제일 젊고 제일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이걸로 우리의 뜻은 잘 알아들었겠지. 그럼…… 저거 끌고 나와.”
파미르가 여성, 해수를 가리키는 순간 해수와 조직원들의 표정이 극명하게 갈린다.
해수는 파랗게 질리고, 조직원들의 입가엔 함박미소가 걸렸다.
“예!”
철컹!
“아악! 안 돼!”
“따라와, 이교도 년아.”
“해수야!”
“아악! 꺄아악! 사,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교수님!”
머리채를 잡힌 채 짐짝처럼 끌려가는 해수.
그러나 나서는 이가 한 명 없다. 눈이 마주치자 다급히 고개를 돌릴 뿐.
파미르는 이번에도 동료를, 여성을 외면하는 그들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돼지 새끼들.”
코웃음을 치며 돌아선 파미르는 입을 열었다.
“나 잠시 카불에 다녀올 테니까 이놈들 잘 감시해. 산 어귀들도.”
“카불에? 무슨 일?”
“한국 놈들의 동향을 알아봐야지.”
“아, 그래. 알았어. 조심히 다녀와.”
“뭐 사다 줄 건 없어?”
그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멀어졌고, 남겨진 3명은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지금이라도 이 꿈에서 깨어나기를…….
누가 이 모든 게 거짓말이라고 해 주기를, 그들은 간절히 바랐다.
* * *
기이이잉!
카불의 국제공항.
-일단 장기 출장으로 돌려놓긴 했는데…….
“감사합니다, 국장님.”
-에혀. 아니다. 내가 최 팀장 마음 모르는 것도 아니고.
같은 경찰로서 종혁의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진짜 죽어도 되는 놈들이지만 그래도 죽었다. 그것도 말리고 말렸던 사람들이.
제정신이면 그게 이상했다.
-알았으니까 몸성히만 돌아와. 괜히 협상단 근처 얼쩡거리다가 꼬투리 잡히지 말고. 그땐 나도, 청장님도 커버 못 쳐 줘.
“돌아갈 때 선물이라도 사 갈까요?”
-됐어, 됐어. 그럼 나 배 터져 죽어.
“하하. 알겠습니다. 충성.”
-아, 잠깐! 최 팀장! 그런데 정말 영국에서 이렇게 많이…….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오택수와 최재수를 봤다.
“뭐래요?”
“몸성히만 돌아오래.”
“오. 역시 국장님.”
외사국에 온 지 채 보름도 안 됐는데, 역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좋은 함경필 국장.
“흠. 선물이라도 사 드려야겠네. 이 나라는 뭐가 유명하지?”
종혁은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뭐가 유명하죠?”
“청금석이나 보석이 유명합니다.”
흠칫!
최재수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정장을 입은 사십대 외국인의 모습에 깜짝 놀랐고, 외국인은 종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랭리에서 카불로 파견된 린치입니다.”
여기도 린치.
종혁은 이래서 CIA에는 정이 안 간다며 고개를 저었다.
“후후. 미스터 미라클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고, 사전에 차단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요. 제가 부탁한 건 어디까지나 감시였는걸요.”
그랬다. 종혁이 달란트의 감시를 부탁한 건 CIA였다.
아프간에 영향력이 높은 미국. 이 정도까지 해 준 것만으로도 이들은 할 일을 다 해 준 거다.
“오히려 무리한 부탁을 들어줘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미라클이요?”
“이 수식어로도 부족하죠.”
종혁이 개발한 특수한 훈련법으로 인해 미 정보기관뿐만 아니라 특수부대 대원들의 신체 능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향상되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암약 중인 CIA 요원들의 작전 성공률이 말도 안 되게 높아졌다.
종혁은 국가를 위해 장렬히 산화했을 CIA 요원들의 목숨을 살린 은인이었다.
‘알 카에다 소탕 작전에서도 그 도움을 톡톡히 받았지.’
거기다 이번 중국의 대폭락 사태로 인해 CIA가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현재까지 벌어들인 액수가 무려 미국의 1년 치 국방 예산.
중국이라는 나라는 성장의 동력을 잃고 있었다.
‘몬스터.’
종혁은 천재라는 겸손의 탈을 쓴 괴물이었다.
‘이로 인해 최가 예언자나 메시아가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지.’
심지어 회귀자나 외계인이라는 소리도 나왔다.
“끙. 그냥 최라고 불러 주세요.”
“하하. 가시죠. 차량을 준비해 뒀습니다.”
린치는 종혁을 공항 밖에 세워 둔 방탄차로 안내했고, 최재수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팀장님, 그런데 랭리가 어디예요?”
“CIA 본부가 있는 동네.”
“워, 씨. 오 경감님은 알았어요?”
“그, 그럼 새꺄. 그런 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 신문 좀 봐라.”
“……솔직히 말해. 당신도 몰랐지?”
빠악!
“몰랐지는 반말이고! 이 새끼가 요새 자꾸 기어오르네? 오늘 날 한번 잡아?!”
“그래! 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 어?!”
“그래, 붙자. 붙어. 너 이리와!”
오택수가 팔을 걷자 최재수는 단숨에 줄행랑을 놓았고, 종혁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선 좀 새지 말았으면 싶었다.
그렇게 차량에 오른 종혁은 CIA가 준비한 숙소로 향했고, 린치는 그런 그에게 몇 장의 서류를 넘겨줬다.
“새벽의 등불 내부 자료와 빈민가에서 봉사 포교를 하는 달란트를 주시하던 놈들입니다.”
가까이서 찍은 건지 얼굴 생김새가 뚜렷하게 찍힌 사진들.
“둘 다 이름은 불명이지만 이번 피랍 사건으로 드러난 놈들로, 칸다하르와 바미안에서 세 번의 폭탄 테러를 일으킨 걸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래서 칸다하르 인근에서 납치를 한 거군요.”
만약 칸다하르 시내에서 납치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땐 아프간 정부군과 미군들이 움직였을 거다. 벼르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약은 새끼들. 그런데 협상단이 놈들을 찾고 있다는 정보는 어떻게 새어 나간 겁니까?”
“이 나라에선 뇌물이면 안 되는 게 없죠.”
‘지랄 맞네, 씨발.’
대충 상황이 그려진다.
국정원은 놈들을 쫓기 위해 CCTV나 아프간 경찰의 상황통제실을 뒤집었을 거고, 거기서 정보가 새어 나갔을 거다.
“그리고 무함드…….”
“달란트에게 통역사로 붙은 놈이군요.”
“미리 알아차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종혁은 고개를 저으며 나머지 서류들을 살폈고, 이내 풀썩 웃었다.
“거 무쟈게 맛나 보였나 보네. 씨발.”
그 빈민가에 새벽의 등불뿐만 아니라 탈레반의 다른 조직들도 있었다.
종혁은 살펴보라며 오택수와 최재수에게 자료를 넘긴 후 린치를 봤다.
“그런데 자료는 이게 전부입니까?”
나머진 국정원에서 알아낸 자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저희도 인력 부족이란 게 있다 보니…… 라고 말하고 싶지만, 꽤 치밀한 놈들이더군요.”
겨우 4년 전에 생긴 신생 조직답지 않게 틈이 없었다.
어떻게든 조직 내부에 사람을 투입시키려 노력했지만, 그도 안 된다면 그냥 친분 관계라도 맺고 싶었지만 굉장히 폐쇄적인 놈들이라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솔직히 이번 피랍에 모습을 드러낸 놈들 모두 처음 보는 놈들이었다.
“그건 좀 신기하네요.”
어떤 조직이든 처음부터 완벽한 곳은 없다.
‘대체 뭐하던 놈들이지?’
“아! 혹시 이놈들에게 배경이 있습니까?”
린치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조직의 규모가 작다 보니 그동안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린치의 말에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새끼들 이름이라도 안다면 좋을 텐데…….’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이 자료들 협상단에게도 넘겨줬습니까?”
“하하. 최가 넘기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니요.”
종혁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정보를 넘겨줬는데도 보안을 지키지 못한 협상단이다. 그들은 종혁에게 신뢰를 잃었다고 봐야 했다.
“한국과 미국이 비즈니스 관계이니만큼 철저히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해야죠. 얻어 낼 게 있으면 얼마든지 얻어 내십시오.”
“……괜찮겠습니까?”
“전 한국이라는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거지, 정부를 사랑하는 건 아닙니다.”
“유의하겠습니다.”
‘그랬군. 최가 이런 사람이기에 우리 미국인으로 만들지 못한 거였어.’
국가와 국민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마음. 애국심. 사명감.
그는 종혁에게 사랑을 받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좀 부러워졌다.
그 순간이었다.
퍼어어엉!
“악!”
투다다다다당!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들.
“정부군과 탈레반이 한판 붙고 있나보군요.”
마치 일상이라는 듯 태연한 말투에 종혁은 질려 버리고 말았다.
‘……버라이어티하네, 씨발.’
“담배 한 대 피워도 됩니까?”
“창문만 내리지 마십시오.”
한숨을 내쉰 종혁은 담배를 물며 잔뜩 얼은 최재수의 뒤통수를 후려쳤고, 정신을 차린 최재수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물었다.
그러는 사이 차량은 목적지인 호텔에 도착했고, 린치는 종혁에게 세 개의 여권과 소위 007가방이라 말하는 가방을 내밀었다.
“여러분이 이곳에서 쓸 신분증과 서류입니다. 현재 아프간에선 한국인이 호텔에 출입을 할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마련해 봤습니다. 그리고 이 가방 안에 있는 건 가지고 다니시는 게 좋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내리시죠.”
차에서 내린 그들은 호텔 프런트로 향했고, 대신 체크인을 한 린치는 종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뭐…… 현장부터 둘러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협상단에 접근을 할 수도 없고, 혹여 접근을 할 수 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
그럴 바에는 뭐라도 하는 게 나았다. 형사의 방식대로.
차라리 CIA보고 도와 달라고 하면 좋겠지만 그건 무리였다. 이들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 마찬가지고, 무리를 하게 되면 CIA도 인명 피해가 발생하게 될 터.
“역시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현지 직원을 한 명 두고 갈 테니 호텔 밖으로 나가실 땐 꼭 이 직원을 대동해 주십시오.”
린치는 그러며 히잡을 쓴 아리따운 여성을 보았고, 앞으로 나선 그녀는 종혁의 소매 끝을 살짝 잡았다.
“반가워요, 자말 에르라히미예요. 나의 반쪽.”
“……?”
“아하하. 이슬람권에서 여자가 제약 없이 돌아다니려면 곁에 남편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나 이런 전쟁 국가에선 더욱더.”
종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 * *
쿠궁!
“끄으으!”
희미한 폭발음 소리에 눈을 뜬 종혁은 침대 끝을 잡고 몸을 거꾸로 세웠다.
구그그그!
깨어나는 근육들과 함께 다져지는 정신.
언제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기에 종혁의 눈매가 매섭게 굳어진다.
“푸하!”
이른 아침부터 땀을 한 바가지 쏟아 내며 운동을 마친 종혁은 옆방의 오택수와 최재수를 깨웠다.
“밤에 잠들은 잘 잤어요?”
“……어우씨, 이 동네 술 왜 이렇게 독하냐?”
“살려 줘요…….”
왠지 술이 아니면 잘 수 없을 것 같아서 어젯밤 아프가니스탄에서 판매하는 로컬 위스키를 한 병씩 마시고 기절하듯 잠든 그들.
끼익!
그때, 옆방의 문이 열리며 자말이 걸어 나온다.
“카불에서의 첫날은 어땠나요?”
“자말이 생각나서 잠이 잘 안 오더라고요.”
멈칫!
“당신은 여성에게 무서운 사람이었네요, 여보.”
“당신은 아침부터 아름답고요.”
“…….”
짓궂게 웃은 종혁은 그녀와 함께 레스토랑으로 향했고, 최재수는 그런 종혁을 보며 부러움에 몸을 떨었다.
‘나도…….’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한 미녀, 자말.
딱 최재수의 스타일이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그들은 준비를 마치고 바로 달란트의 대학생들이 봉사 및 포교를 한 빈민가로 향했다.
“김오철 목사입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 몰골이 말이 아닌 목사.
“최종혁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울컥!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억울함과 설움이 치솟는다.
“하, 진짜!”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그렇게 말리고 말려도 왜 그딴 짓을 해서 애꿎은 교인들을 힘들게 만드는 걸까.
자신들이 어떤 각오로 아프간에서 선교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체 왜! 왜! 왜!
‘너희들 마음 편하자고 한 짓 때문에 지금……!’
이들로 인해 최대한 온화하게, 진심으로 다가서려 했던 이들마저 배척을 받고 있었다.
이들이 벌인 행동은 이들의 문제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후우우.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목사님께서 죄송하실 건 없습니다. 모두 그들이 자처한 일인걸요.”
“아니…….”
종혁의 따뜻한 위로에 목사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진다.
한국 정부의 협상단이 왔을 때 불려 가서 왜 이 빈민가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했냐, 왜 말리지 않았냐 등 온갖 소리를 들어서 더 그랬다.
“저기에 저희 교회가 있습니다! 여긴 원래 저희가 매달에 한 번씩 봉사를 하던 곳이란 말입니다! 그동안 구호품을 나눠 주면서 주님께 감사하라는 소리도 안 했고! 교회에 오라는 소리도 안 했습니다! 그저…… 그저 저 힘들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힘내시라고 주님의 말씀만…….”
당신들이 이렇게 힘듦은 분명 신이 나중에 중히 쓰기 위해서다, 신에게 뜻이 있을 거다 그 정도의 말밖에 안 했다. 어떤 주님이라고도 말 안하고, 정말 딱 그 정도만…….
“으허엉!”
종혁은 결국 터져 버린 그의 어깨를 토닥였고, 한참을 울던 목사는 겨우 정신을 수습하곤 종혁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목례를 했다.
“그럼 무함드라는 놈과는 원래부터 알던 사이셨습니까?”
목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왜…….”
“저기 빈민가에 사는 저희 교회의 교인이 친구가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며 추천하더군요.”
그게 협박에 의한 거짓말이었다는 건 얼마 전에야 밝혀진 사실이다.
종혁은 눈을 빛냈다.
“그 사람도 혹시 달란트와 함께 봉사를 했습니까?”
“으음. 아니요. 그런 적은 없습니다. 그 형제님은 택시회사에 소속된 무면허 택시기사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운전을 하지 않으면 가족을 부양하기도 힘든 처지입니다.”
“……신기하네요.”
무면허인데도 택시회사에 소속된 건 그리 놀랍지가 않다. 지금 당장이라도 옆에서 폭탄이 터질 수 있는 나라인데 뭐가 정상적일까.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알고 접근한 거지?’
새벽의 등불, 무함드는 그 택시기사가 어떻게 교회의 교인이라는 것을 알고 접근했던 것일까.
코를 긁적인 종혁은 빈민가의 입구에 서서 안쪽을 주욱 둘러봤다.
“웅성웅성.”
“꺄르르르르!”
시궁창과 오물 냄새가 가득 풍겨 오는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듯 사람들이 자아내는 평온한 소란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다.
“와아아아!”
종혁은 다 낡은 축구공을 몰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아이들에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하지만…….
퍽!
“억?!”
풍경에 시선이 팔려 비켜서지 못한 최재수가 아이들과 부딪쳐 넘어진다.
“악!”
“헉!”
“죄, 죄송합니다!”
아프간의 언어인 다리어로 말하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
“아하하. 괜찮아. 돈 워리. 돈 워리. 너흰 어디 안 다쳤니?”
“어이구. 저것도 형사라고…….”
고개를 저으며 그들에게 다가간 종혁은 최재수와 부딪친 소년을 일으켜 세웠다.
“괜찮니?”
종혁의 능숙한 다리어에 깜짝 놀라는 아이들.
소년은 멍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뿌득!
“컥!”
소년과 그 옆 다른 작은 아이의 뒷목을 부숴 버릴 듯 강하게 움켜쥐는 종혁의 손.
“쟤 지갑은 내놓을래? 이 아저씨가 웬만하면 봐주는데, 요새 기분이 좀 더러워서 말이야. 품 안에 있는 칼 뺐다가는 죽는다.”
종혁의 눈이 맹수처럼 살벌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