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82화 (382/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82화>

런던의 한 펍.

하루의 일을 끝마치고 몰려든 사람들이 한 잔의 맥주와 함께 시름을 잊는다.

꿀꺽, 꿀꺽!

“크아!”

“하!”

시원하게 목구멍으로 넘어가 위장을 후끈하게 데우는 고소한 맥주. 입안을 가득 채우는 풍미에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하지만 묘하게도 힘이 없어 보이는 그들의 모습.

“하, 요즘 왜 이렇게 우울하지?”

“축구를 안 봐서?”

“그게 정답이었군? 이봐, 주인장. 맨유 재방송이라도 틀어 봐!”

“눈깔이 청어 눈깔인가? TV 안 보여?”

“오, 내가 오늘 너무 피곤했나 보군!”

낄낄낄 웃으며 TV를 보는 사람들.

벌써 몇 번이나 본 경기임에도 웃고 떠들며 술을 즐긴다.

그 사람들 사이에는 콜린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썩 표정이 좋지 못한 콜린.

텅!

“크으.”

맥주가 반쯤 남은 컵을 내려놓은 그는 신경질적으로 빵을 뜯어 입에 가져가며 펍의 출입문을 응시했다.

딸랑!

때마침 열리는 펍의 출입문.

안으로 들어오는 노인을 발견한 콜린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늦어, 알렉스!”

“오, 맙소사. 친구, 자네 정말 괜찮아? 대체 배가 얼마나 고팠던 거야?”

그 본연의 맛으로도 훌륭한 맥주에 빵을 곁들여 먹다니.

말도 안 되는 괴식이다. 지나가던 꼬마아이가 경멸을 해도 하소연도 못할 수준.

후덕한 덩치의 알렉스는 친구 콜린에게 치매가 찾아온 건 아닌지 심각하게 걱정을 했다.

“지금 이딴 게 문제야?”

뭐라도 씹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은 기분.

만약 눈앞에 엿 같은 장어 젤리가 있어도 콜린은 얼마든지 씹어 줄 용의가 있었다.

그런 콜린의 눈빛에 알렉스는 낯빛을 굳혔다.

“그건 맞지.”

지금 닥친 상황과 비교하면 맥주에 빵을 곁들여 먹는 건 별거 아닌 일이다.

경찰이 장물 시장과 예술 경매품 시장을 단속하고, 고미술품을 소유하고 있는 개인 및 법인에게도 협조를 구해 소유하고 있는 미술품을 확인한다고 한다.

이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들까지 나선다고 하니, 그들로서는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이 난리가 일어나는데 과연 판매처를 찾을 수 있을까.

“톰과 더글라스는?”

“오는 길일 거야.”

“빌어먹을. 오다가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겠군.”

지팡이를 짚을 정도로 쇠약한 건 아니지만 다들 나이가 나이다.

이십대 한창 혈기 넘칠 때 교도소에서 만나 친구가 된 그들. 때론 2명이서, 또 어쩔 땐 4명이서 대영제국이 좁다며 부자들의 담벼락을 넘곤 했다.

딸랑!

“아, 저기 있군. 친구들 이게 어떻게…… 오, 맙소사. 콜린, 괜찮나?”

콜린과 알렉스는 지팡이를 짚고 오는 작고 마른 체구의 톰을 보며 깜짝 놀랐다.

지팡이를 짚은 톰과 그런 그를 부축하는 더글라스.

“뭐야, 어떻게 된 일이야?”

“아, 이거?”

톰은 씩 웃으며 지팡이를 던졌고, 더글라스는 으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깜짝 놀랐지?!”

“여보세요? 거기 심장은 거기 계신가요?”

“……이 빌어먹을 자식들!”

씩씩거린 콜린은 남은 맥주를 들이켰고, 그걸 보며 끌끌 웃은 톰과 더글라스도 빈자리에 앉았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서늘하게 변하는 그들의 표정.

찰칵! 치이익!

담배를 문 톰이 이를 간다.

“빌어먹을 모리아티 같으니.”

해리 가드너 교수가 이번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훌리건의 행패조차 제대로 막지 못하는 런던의 바보 경찰들은 장물 시장과 예술 경매품 시장을 단속하는 걸로 끝냈을 것이다.

그런데 가드너가 개입을 하면서 돈 많고, 소유욕도 많은 부자들과도 접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희귀한 건 꼭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부자들.

장물이라 한들 전부 매입해 주었을 그들과도 거래를 하지 못하게 되자, 판매 루트가 완전히 꽉 막히게 되었다.

“그 돼지들 목록을 쫙 뽑아 놨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거기다 이번 범행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였던가.

은퇴식이었다. 한탕 크게 하고 편안히 노후를 즐기기 위한 은퇴식.

그런데 가드너가 그걸 망쳐 버린 거다.

쾅!

테이블을 후려친 톰은 펍의 주인을 향해 크게 외쳤다.

“여기 라거 세 잔!”

“예!”

톰은 금세 나온 라거를 쭉 들이켜며 콜린을 보았다.

“그래서 대책은?”

“있겠어?”

아마 못해도 2년은 죽은 듯 지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피쉬 앤 칩스가 눈앞에 있는데도 먹지 못하는 상황.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뭐, 어쩔 수 없지.”

셋의 시선이 콜린에게로 모인다.

빈 잔의 주둥이를 손가락으로 훑는 콜린.

그를 바라보는 셋의 눈에 기대감이 서린다. 콜린이 꼭 저런 행동을 할 때마다 기가 막힌 계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콜린은 담배를 물며 나른히 웃었다.

“녹이자고.”

들썩!

“잠깐,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나도 정말 나이가 들었나 보군. 환청이 들리는 걸 보니.”

콜린은 부정을 하는 친구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귀는 멀쩡하니 걱정하지 마.”

“아니, 왜……!”

소리를 버럭 질렀던 알렉스가 주위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춘다.

“그걸 녹이면 얼마가 되는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지금?”

제 형태를 유지해야만 6천만 파운드가 되는 이번 범행의 결과물들. 녹이는 순간 6백만 파운드라도 받으면 다행히 되어 버릴 거다.

그런 아까운 짓을 해야 한다니.

콜린을 제외한 셋은 부디 콜린이 다시 생각해 주길 바랐지만 콜린은 코웃음만 칠뿐이었다.

“다른 방법 있어?”

“……빌어먹을. 체크메이트군.”

“후, 어쩔 수 없나?”

6천만 파운드짜리라고 해도 계속 애물단지로 놔두느니 차라리 푼돈이라도 건지는 게 나았다.

“그리고 다들 정말 은퇴할 생각도 없었잖아?”

움찔!

몸을 굳혔던 세 사람은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막대한 돈으로 풍족하고 편안한 노후를 즐긴다고 해도 얼마나 갈까. 어차피 도둑질은 결코 제어할 수 없는 본능이었다.

“그 돈이 모두 떨어지면 또 다른 곳을 털면 되는 거야. 안 그래? 아직 쓸 만하다는 걸 다들 알게 됐잖아?”

몸이 삐걱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4명이 다시 뭉치니 열리지 않는 문이 없었다. 이번 범행이 녹슬어 가던 그들의 몸에 활력이 되어 주었다.

“우리들이 마음만 먹으면 세상 모든 돈이 우리들 것인데 뭐가 문제겠어?”

“……콜린이 오랜만에 맞는 소리를 하는군.”

런던 경찰이 들었으면 경악하고 절망했을 결정을 내린 그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후후. 이거 런던 경찰들에게 제대로 된 물을 먹일 수 있겠군.”

장물 시장을 단속하다 보면 언젠가 꼭 걸려들 거라는 행복한 꿈에 젖어든 런던 경찰과 해리 가드너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릴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몹시 기꺼운 그들은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그들과 달리 작은 우려를 나타냈다.

“흠. 우리의 마지막 친구와 상의를 하지 않고 그런 결정을 내려도 되는 걸까?”

움찔!

몸이 굳는 콜린과 알렉스, 톰.

그랬다. 이번 범행엔 그들 외에도 또 다른 친구, 그들을 도운 조력자가 있었다.

“흥. 이런 상황에서 그놈이라고 별다른 수가…….”

지이잉! 지이잉!

“타이밍 죽이는군.”

핸드폰을 들어 흔든 콜린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그래요, 콜린입니다.”

-신문을 봤습니다. 어떻게 할 생각 입니까?

“우리의 거래 조건은 N의 1이었습니다. 그건 무조건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판매처가 있단 말입니까?

순간 눈이 흔들린 콜린은 코웃음을 쳤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잠깐, 잠깐. 이 문제에 대해선 이따가 다시 통화하죠. 손님이 왔거든요. 혹시나 해서 경고하는데 그 작품들을 망가트릴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이봐요, 의뢰인. 분명 그것까지 우리에게 맡긴…….”

-그랬다간 장례식을 감옥에서 치르게 될 거야. 늙은이들.

섬뜩!

“…….”

-그럼 알아들은 걸로 알고 이만 전화를 끊도록 하죠. 내일 안으로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그럼. 오, 교수님!

전화는 뚝 하고 끊겨 버렸고, 콜린은 그런 핸드폰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이 개자식이?”

*   *   *

박물관의 소유주를 찾아 나선 종혁과 가드너 교수.

종혁은 런던 외곽 제법 큰 저택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한 3천평 정도 되려나.”

건평은 1, 2, 3층 모두 합해 천오백 평 정도 되어 보인다. 러시아와 미국에 있는 종혁 본인의 별장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잘사는 것 같다.

“헤프너 남작가. 꽤 오랜 기간 귀족이었던 가문으로 현재 보석 세공사와 미술가들을 지원하는 헤프너 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헤프너 재단이요?”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와 부동산을 바탕으로 실력이 좋지만 가난한 세공사나 미술가들을 지원하고, 그 수익의 일부를 돌려받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흠. 복지 재단이 아니라 일종의 투자회사네요.”

“하지만 그로 인해 빛을 본 사람들이 많으니 영국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죠.”

“그 외에는 부동산 임대업을 하고 있나요?”

“토지에서 산출되는 곡물을 판매하는 회사도 운영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재단까지 합해 연간 순이익이 2백만 파운드 이상일 겁니다.”

“응? 잘 아시네요?”

“헤프너 가문은 진짜 귀족이니까요.”

작위 서임이 흔해졌던 19세기 후반 이전에 서임이 된 세습 귀족가. 근대에 돈으로 작위를 산 신 귀족이 아니라 역사와 전통이 있는 진짜 귀족가다.

그리고 영국인들은 그런 진짜 귀족들을 좋아한다.

자신과 다른 것을 향한 선망.

그런 가문의 가주를 만나러 왔기에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가드너는 입에 구강청결제까지 뿌린 후에 벨을 눌렀다.

찌리링!

-누구십니까?

“2시간 전 전화로 접견을 신청한 해리 가드너 교수입니다.”

-오,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타앙.

제법 큰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자 종혁과 가드너는 저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들을 저택 입구에서 맞이하는 슈트를 입은 칠십대의 노인.

‘와, 집사다!’

“명망 높은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해리 가드너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이번 사건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한국에서 온 경찰, 종혁 최입니다.”

“대한민국 경찰청 외사국 외사수사과의 최종혁 팀장입니다.”

“오! 저희 가문에 도움을 주시는 분이셨군요. 반갑습니다. 그럼 두 분 모두 부디 이쪽으로.”

집사는 그들을 저택 안으로 안내했고, 종혁은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확 들어오는 커다란 샹들리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저거 꽤 비싼 건데?’

이번 바이 차이나 프로젝트에서 막대한 수익을 얻은 CIA가 준 별장에도 있는 것으로, 백만 달러 정도 한다고 린치가 생색을 낸 게 기억난다. 참고로 바이 차이나 프로젝트는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응? 저 작가 그림도 있네?’

역시 귀족은 달라도 다른 걸까. 복도에 걸린 수많은 전시품들에 눈이 제법 호강을 한다.

“근래에 제법 돈을 벌었나 본데?”

90년대 이후 이름을 알린, 현재 살아 있는 작가들의 미술품들이 많다.

“미술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군요.”

“아, 들으셨습니까? 하하. 직업이 직업인지라 미술 작품을 많이 보게 되어서요.”

“아.”

“죄송하지만 모두 잠시만 걸음을 멈춰 주시길 바랍니다.”

웬 초상화들 앞에 선 집사가 헤프너 가문의 초대 가주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해리 가드너 교수가 잠자코 듣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초대받은 손님의 통과 의례인 듯했다.

꽤 시간을 들여 설명을 한 집사는 다시 걸음을 옮겼고, 곧 두 사람을 어느 접객실로 안내한 후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삼십대의 사내가 다가온다.

벌컥!

“오, 교수님.”

방금까지 통화를 했는지 핸드폰을 갈무리하는 사내.

가드너와 악수를 나눈 헤프너 남작은 종혁을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이쪽은?”

“아, 이쪽은…….”

“대한민국 경찰청 외사국 외사수사과의 최종혁 팀장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호오……. 우리나라 말을 제법 잘하는군요. 그것도 우리 귀족들의 언어를……. 훌륭합니다.”

“남작님!”

마치 아이를 칭찬하는 듯한 말투에 가드너는 기겁했고, 종혁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 양반 보소?’

첫인사부터 인종 차별과 계급 차별의 주먹질을 날리고 있다.

“예. 뭐, 여기 가드너 교수께서 잘 알려 주시더라고요.”

“좋은 일을 하신 겁니다, 가드너 교수.”

“아니, 하아…….”

“하하하. 그럼 앉으시죠.”

종혁과 가드너는 헤프너 남작이 권한 소파에 앉았고, 맞은편에 앉은 헤프너는 시거를 들었다.

“제 가문의 저택은 어땠는지 묻고 싶군요.”

“……오랜만에 개안을 한 기분이었습니다.”

“오, 그래요? 그건 좀 안타깝군요. 오시는 길에 있던 작품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것들이 저택 곳곳에 있는데요.”

가드너가 흥미만 보인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구경을 시켜 줄 것처럼 흥분하는 헤프너 남작.

가드너는 그런 그를 향해 푸근히 웃어 주었다.

“다음에 초대해 주신다면 기꺼이 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아쉬워한 헤프너는 시거에 불을 붙이며 입을 열었다.

“교수의 위명은 신문을 통해 잘 보고 있습니다. 미들클래스 출신이 그렇게 똑똑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교수를 보자니 셜록 역시 실존한 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야. 이 새끼, 이거 개새끼네?’

지독한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간단히 타인을 자신의 아래로 두며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부류.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것인지 꽤 허세가 있다. 자세부터 몸에 걸친 것, 그리고 이 방 안에 있는 것들 전부 허세가 넘친다.

‘절반 이상이 길어도 50년이 안 된 것들인데?’

미술계에서 50년은 현대 작품으로 치부한다.

헤프너의 아버지가 구매한 건지, 아니면 헤프너가 구매한 건지 모르지만 꽤 돈을 썼다.

‘시계는 파텍.’

종혁이 알기로 현재 헤프너가 착용한 시계는 한화로 2억이 넘는 물건이다. 넥타이 역시 천만 원은 호가하는 물건.

종혁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진다.

‘연간 2백만 파운드 정도로 이 정도 사치를 할 수 있나?’

물론 못한다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부를 드러내기 위해 꽤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제게 묻고 싶은 게 뭡니까?”

대화를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서야 겨우 나온 본론.

“일단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후. 감사합니다.”

박물관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픈 건지 관자놀이를 누르는 헤프너 남작.

“듣기로 보안업체와의 계약을 손수 해지하셨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후우. 솔직히 말해 그 박물관이 저희 헤프너 남작가의 오랜 골칫덩이죠.”

직원들이야 입장료로 자신들의 월급을 충당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다. 헤프너 남작가에서 박물관을 위해 연간 20만 파운드를 지출하고 있었고, 그건 박물관의 유지 보수 및 보안업체 비용으로 쓰이고 있었다.

말이 20만 파운드지, 그게 10년만 쌓이면 200만 파운드. 헤프너 남작가의 1년 순이익이다.

그런 와중에 20년 동안 도둑 한 번 들지 않았으니 굳이 보안업체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이번에 도둑이 들면서 그게 큰 오판이었다는 게 드러났지만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계약을 해지하지 않았을 텐데……. 죽어서 선조님의 얼굴을 어떻게 봬야 할지 모르겠군요. 30대에서 40대 4인조 강도단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혹시 보험은 드셨습니까?”

순간 눈을 매섭게 빛내며 묻는 가드너 교수.

“……예의가 없군.”

감히 자신을 의심하는 거냐며 헤프너가 얼굴을 구긴다.

가드너가 그런 그를 살살 달랜다.

“단순한 절차니 너무 노여워하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쯧. 선조께서 박물관을 세울 당시 100만 파운드 상당의 보험을 들어 놓으신 게 있소.”

무려 100년간 갱신을 거듭하며 현재는 무려 보상액이 1억 파운드에 달했다.

“보상 조건은 무엇입니까?”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 중 20퍼센트 이상이 분실될 시 보험료를 지급받소. 됐소?”

“예,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이런 상황이라면 박물관에 있는 작품들의 처우는…….”

“됐다면 썩 나가 주시오. 그리고 이럴 시간에 도난당한 물건들을 찾을 궁리나 하시오!”

강력한 축객령에 가드너는 입맛을 다시면서도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협조 감사합니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런던경찰청으로 연락 주시길.”

“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헤프너는 방을 빠져나갔고, 종혁과 가드너는 어깨를 으쓱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들의 표정이 저택을 나서자마자 삽시간에 날카로워진다.

런던답지 않게 상쾌한 바람이 불어와도 표정이 펴지지 않는 그들.

“공교롭군요.”

“예.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구린 냄새가 풍긴다.

종혁은 코를 긁적이며 걸음을 옮겼고, 3층 복도에 서서 멀어지는 둘을 응시하던 헤프너는 핸드폰을 들었다.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반응이 심상치 않았던 종혁과 가드너 교수.

어쩌면 생각을 달리해야 할지도 몰랐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