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81화 (381/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81화>

이 박물관이 지어진 지 무려 100년.

그동안 총 열두 번의 침입 시도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뚫린 적이 없었던 박물관.

물론 마지막 침입 시도가 20년 전이긴 했지만, 그런 박물관이 털려 버린 거다.

이 박물관에서 무려 30년을 일한 애덤 스미스는 이 끔찍하고도 지옥 같은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경찰들이 다시 현장을 보고 싶다기에, 그것도 TV에 꽤 자주 나오는 가드너 교수가 보고 싶다기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왔던 스미스는 다급히 경찰들을 헤치며 종혁의 앞에 섰다.

처음엔 가드너 교수의 조수인 줄 알았던 종혁. 그런데 대화를 주도하는 걸 보니 범상치 않은 인물임이 분명 했다.

종혁은 어떤 기대감을 품고 있는 그를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혹시 근래에 직원들 중 갑자기 장기 휴가를 떠났거나 그만둔 직원이 있습니까?”

“예? 아, 아뇨.”

“그러면 채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은 몇 명이나 됩니까?”

“다들 10년 이상씩 근무했던 사람들뿐입니다.”

성실함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기에 근무 태도가 불성실한 이들은 진작에 해고됐다.

“흠, 그런가요……. 혹시 보안업체와 계약은 되어 있지 않으셨던 겁니까?”

상당한 고가의 보석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경찰의 출동은 장난 신고로 인해 늦어졌다 하더라도, 보안업체까지 대응이 없었다는 점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20년째 계약을 맺었던 곳이 있었습니다만, 작년에 계약을…….”

해지했다는 말이었다.

이 박물관이 고가의 보석을 전시하는 곳이긴 하지만, 그 수익은 굉장히 적다. 입장료로 근근이 먹고사는 실정.

무려 20년간 침입 시도 자체가 없었으니 보안업체에 들어가는 돈이 아까울 만도 했다.

“보석 중 한 점이라도 팔아서 운영비를 마련해 볼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작품들은 옛 왕실과 황실, 귀족들이 착용하던 것들이란 말입니다!”

그것도 이 영국이 아니라 유럽 각국 왕실과 황실, 귀족 등이 착용하던 것들이다.

“예, 예. 알겠습니다.”

경찰에게 현장 사진을 봐도 그래 보였다.

누가 봐도 아주 옛날 방식의 디자인들. 현대에선 쪽팔려서라도 절대 착용하고 다닐 수 없을 만큼, 아니 골동품이라 부를 정도로 구린 디자인이었다.

“그래서 진실은요?”

종혁의 날카로운 눈에 우물쭈물하던 스미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매입하시려는 분들은 꾸준히 있었지만, 모두 세트로만 구매하시길 원하셔서 판매할 수 없었습니다.”

목걸이, 반지, 귀걸이 이런 세트가 아니라 어느 귀족가, 어느 왕실, 몇 대 왕이 착용했던 것들을 한꺼번에 구입하려고 해서 팔지 못한 거다.

물론,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그 또한 고려를 해 보아야겠지만…….

“이 박물관의 설립자께서 한 사람에게 전부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팔지 말라며 유훈을 남기기도 하셨고요.”

전부 아니면 전무.

한 사람에게 모두 팔 수 있는 게 아니면, 그 모든 수익은 영국에 귀속된다는 유언장을 남긴 거다.

개인이 아닌 박물관에 판매하는 것도 불가.

그런데 이 많은 작품을 구매할 개인이 있을까.

취향 차이를 생각하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또 이 유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즉시 이 박물관의 모든 것은 영국에 귀속시킨다는 유언도 남겼다.

즉, 작품을 팔려고 해도 팔 수 없는 상황이란 소리였다.

박물관의 현 소유주에게 있어 여긴 그냥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씨발. 이거였네.”

보안에 공을 들이지 않은 이유가 말이다.

한숨을 푹 내쉰 종혁은 보관대를 가리켰다.

“그러면 저것도 설립자의 유훈 때문입니까?”

은행의 개인 금고 형태도 아닌 진열대처럼 생긴 보관대. 심지어 그마저도 강화플라스틱이 아니라 일반 유리라는 점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예. 보물은 숨겨서 보관할 때도 빛을 발할 수 있게 보관해야 된다고……. 하, 하지만 외벽의 두께가 30센티라서…… 죄송합니다.”

‘돌겠네. 진짜.’

종혁은 이마를 잡았다.

“……아뇨. 죄송할 건 없죠.”

애물단지에게 이 정도 공을 들였다면 나름 최선을 다한 거다.

상식적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말이다.

종혁은 경찰들에게 넘겨받은 현장 사진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놈들에게 털리지 않은 것들 중에 털린 것보다 더 비싼 게 있습니까?”

“아, 예! 있습니다!”

“그것들의 위치는요?”

“여깁니다!”

스미스는 어깨높이 위로 쭉 늘어서 있는 닭장처럼 생긴 보관대들을 한 팔로 쓱 훑으며 설명했다.

“이것들이 저희 박물관에서 최고가를 자랑하는 보석들입니다. 박물관이 폐관을 하면 제가 전시하고 있던 것들을 다시 이쪽에 옮겨 보관하고 있죠.”

“……그 보관대에 등을 대고 서 보세요.”

“예, 예.”

스미스는 의아해하면서도 종혁의 지시를 따랐고, 그 순간 여태까지 종혁의 머리 한구석을 간질거렸던 모든 의문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찰칵!

“하! 맞네. 이 새끼들.”

CCTV를 보면서 세웠던 가설 중 하나가 맞아 떨어졌다.

헛웃음을 터트리며 담배를 문 종혁은 가드너를 바라봤다. 종혁과 같은 답에 도달했는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

“최, 혹시 이거…….”

“예. 이 새끼들 빠르게 털고 튀기 위해 팔을 머리 위로 안 든 게 아니라 그냥 못 든 겁니다.”

CCTV가 흑백으로 비춰질 만큼 어두웠지만, 보관대에 딱 붙어 작업했던 놈들이라면 결코 지나칠 수 없을 높이에 이 박물관에서 최고로 비싼 보석들이 있다.

진입부터 퇴각까지 거침없을 만큼 이곳에 대해 잘 연구한 놈들이 그 값어치를 알아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허어.”

마침 종혁과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인지 가드너는 허탈해했고, 런던 경찰들은 같은 걸 보고 있음에도 자신들만 모르는 데서 오는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교수님! 대체 어떤 단서를 발견한 거냐고요!”

같이 알자며 외치는 그들의 모습에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이 새끼들 모두 오십견에 걸린 늙은 놈들이라고요!”

내부 거래는 아직 의심에 불과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강도 셋이 공교롭게 한꺼번에 어깨를 다쳤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 오십견이 백 퍼센트라고 봐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종혁의 계산보다 보석을 털고 차량을 탑승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점이나 출입문을 뜯어내는 데 과하게 빠루질을 한 점까지 설명이 됐다.

쿠웅!

런던 경찰들은 입을 떡 벌렸다.

*   *   *

딸랑!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는 오후, 방금 막 구운 빵이 담긴 봉투를 들고 나서는 칠십대 노인을 향해 인사를 한 이십대 종업원이 카운터에 턱을 괴고 있는 주인을 향해 슬그머니 묻는다.

“저분이 옛날에 유명했다면서요?”

“콜린 씨? 유명했지.”

대도로 유명했다.

부자나 귀족들의 집을 털어 가난한 자들에게 적선을 했던 대도 콜린.

하지만 그런 그도 결국 돈의 마력을 이기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한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콜린은 마트나 일반 가정집을 터는 도둑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다른 동네를 털었기에 이 동네에 발붙이고 사는 거야. 아니었다면 그냥…….”

“또 거너이기도 하고요?”

축구구단 아스날의 팬을 일컫는 말, 거너.

“정답.”

토트넘 팬이었으면 이미 쫓겨났을 것이다.

“너도 명심해. 한탕 노리다가는 늙어서 저 모양 저 꼴이 되는 거야.”

풍족해야 될 아침 식사와 저녁 식사를 고작해야 빵으로 때우는 인생. 국가에서 지급하는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인생.

그저 거지보다 조금 더 나을 뿐인 하찮은 인생이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라고. 알았어?”

“아, 알았어요. 거 우리 엄마보다 더 잔소리가 심하시네.”

“뭐야?!”

“그럼 전 청소하겠습니다!”

주인은 다급히 걸레를 드는 종업원의 모습에 혀를 차며 비가 그치기 시작한 창밖을 바라봤고, 그들의 대화 주제였던 콜린은 멈추기 시작한 비에 우산을 걷으며 무릎을 주물렀다.

“오늘은 더 이상 비가 안 오려나.”

무릎이 욱신거리지 않는 걸 보니 그럴 것 같다.

“좋은 저녁입니다, 콜린 씨.”

신문이나 담배 따위를 파는 작은 마트의 주인이 아는 체를 하자 콜린도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그래요, 좋은 저녁입니다.”

“석간신문이 나왔는데 한 부 가져가시겠습니까? 꽤 흥미로운 뉴스가 실렸더군요.”

“그래요?”

“며칠 전 헤프너 재단의 보석 박물관이 털린 건 기억하시죠?”

“아직 기저귀를 찰 나이는 아닙니다, 주인장.”

“하하. 그런 말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오늘 그 박물관에 가드너 교수님이 왔다고 하더군요!”

움찔 몸을 굳힌 콜린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가드너? 그 해리 가드너 교수를 말하는 겁니까? TV에 자주 나오는 범죄학자?”

“예! 하, 그분께서 현장을 둘러보셨으니 곧 범인들도 잡히겠죠?”

“음. 아마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신문 한 부 주세요.”

“하하. 예,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되십시오, 콜린 씨!”

손을 저으며 발을 뗀 콜린은 방금 전까지 느긋하게 걷던 것과 달리 걸음을 재촉하며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동네 외각에 위치한 허름하고 낡은 주택.

던지다시피 거실 테이블에 빵 봉지를 던진 콜린은 얼른 신문을 펼쳐 기사를 살폈다.

[가드너 교수,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다!]

웬 동양인 남성들과 함께 찍힌 해리 가드너.

학자 주제에 가끔씩 경찰 일에 개입해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들을 해결하며 이 시대의 셜록 홈즈라고 불리는 존재.

하지만 별명은 셜록의 앙숙인 모리아티 교수다.

“아, 이게 문제가 아니지.”

콜린은 빠르게 기사를 읽어 갔다.

[한국에서 온 경찰들과 함께 현장을 재검토한 가드너 교수는 범인들이 30대에서 40대의 남성일 확률이 높다고…….]

“푸핫!”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던 콜린은 다시 기사를 마저 읽었다.

[그에 맞춰 경찰들은 장물시장 및 예술 경매품 시장을 예의주시하기로 하였으며, 고미술품을 소유하고 있는 개인 및 법인에게도 협조를 구해…….]

“빌어먹을!”

신문을 구긴 콜린은 얼른 소파 앞 테이블에 놓인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렉스, 나야! 오늘 석간신문 봤어? 뭐? 아직 안 봤다고? 톰과 더글라스는? 내가 그걸 왜 묻는지는 석간신문부터 보고 말해! 지금 거기로 갈 테니까 끊어!”

쾅!

거칠게 전화기를 내려놓은 콜린은 던져 놨던 빵 봉지를 보며 갈등하다가 이내 집어 들며 다시 집을 나섰다.

*   *   *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마친 가드너 교수는 기자들에게 거짓된 정보를 전달하게 만든 종혁을 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이게 현장의 방법입니까?”

“꽤 먹히는 방법이죠.”

이제 범인들은 자신들이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에 마음을 놓으면서도 판매처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게 될 것이다.

훔친 물건들을 팔아야 하는데 팔 수 없으니 짜증에 미쳐 버릴 거다.

그럴수록 빈틈이 생길 터.

현재 런던 경찰들이 오십견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강도 전과가 있는 범죄자들을 추려내고 있으니 곧 용의자가 좁혀질 거다.

짝짝짝.

“훌륭합니다. 정말 멋지군요. 고작 그 말 몇 마디에 그런 의도가 숨어 있다니…….”

“하하.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잔머리만 늘더라고요.”

“그런 걸 잔머리라고 할 수 있나요. 지혜라고 해야죠.”

“아하하.”

“흠. 그럼 저 애덤 스미스는 용의선상에서 제외된 겁니까?”

박물관 관계자 애덤 스미스.

“용의선상에서 제외시킨 건 아닙니다.”

“아, 감시를 하려는 거군요.”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한화로 1000억원대 도난 사건이다.

당연히 영국 경찰들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현 시간부터 애덤 스미스는 전화부터 이메일까지 모두 감시를 당하게 될 거다.

“그럼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종혁은 한숨을 내쉬는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한숨은 쉬었어도 눈은 이쪽의 반응을 살피는 듯 의미심장하다.

“꽤 장난기가 많으시네요.”

“하하. 나이가 드니 장난기도 많아지더군요.”

“예, 예. 교수님 생각처럼 아직 한 가지의 가능성이 더 남아 있습니다. 바로…….”

“자작극일 가능성.”

쿵!

종혁의 곁에 있던 최재수는 눈을 부릅떴지만, 종혁과 오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쩌면 이 사건…… 저 박물관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자작극을 벌인 걸지도 모릅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

도난되지 않은 작품들까지 합하면 물경 한화로 3천억대. 사람이라면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액수다.

박물관을 응시하는 종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