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80화>
뻐어억!
“컥! 커허억!”
숨을 못 쉰다는 게 이런 걸까.
눈앞이 새 하얗게 물든 노정봉은 마치 오함마가 후려친 것처럼 아픈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숨을 쉬기 위해 발악을 했고, 종혁은 그런 그의 사정 따윈 봐주지 않겠다는 듯 그의 머리를 꺾었다.
“억?!”
“노정봉 씨, 당신을 김복순씨와 노승운씨에 대한 사기 및 존속유기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체포구속적부심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셨죠?”
‘아, 안…….’
안 된다. 이제 성공할 일만 남았는데 체포라니.
“놔! 놔아! 놔, 이 씨발!”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 쳤고, 종혁은 머리를 잡힌 채 퍼덕거리는 노정봉의 턱을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
쩌억!
“컥!”
맞는 순간 축 늘어지는 노정봉.
침을 탁 뱉은 종혁은 얼굴을 구겼다.
“공무집행 방해도 추가다, 씹새끼야.”
철컥!
수갑이 맞물리는 소리가 집 안과 복도에 울려 퍼졌다.
“어이구, 또 이렇게 팼네. 좀 적당히 패라니까.”
“오 경감님이면 손대중이 되겠어요?”
“미쳤냐? 씨발 옛날이었으면 이 새끼 밥숟가락 놨어.”
“그 변호사, 아니 브로커 새끼는요?”
“걔는 영국 애들한테 넘겼어. 재수가 같이 따라갔고.”
“아, 그래요? 잘하셨어요. 그런 경험도 해 봐야 느는 거죠.”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보다 잠깐 비켜 봐. 저년 좀 잡게.”
“아, 맞아. 예, 다녀오세요.”
“어야.”
노정봉을 타고 넘어 노정봉 부부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됐을 공간으로 무자비하게 진입한 오택수는 하얗게 질려 있는 노정봉의 아내를 향해 씩 웃어 줬다.
“아이고. 많이 놀라셨죠. 김순임 씨? 당신도 같은 혐의니까…….”
“나, 난 아니에요. 난 몰랐어요…… 다, 다 남편이…….”
“예예. 그건 한국에 가서 이야기하시고요.”
“씨발, 난 몰랐다고-!”
방금 전 노정봉처럼 도망치려는 듯 몸을 돌리는 아내.
훌쩍 발을 내디딘 오택수는 방금 전 종혁처럼 노정봉 아내의 머리채를 사정없이 낚아챘다.
뿌득!
“꺄아악!”
“너도 좀 맞자, 쌍년아.”
오택수의 주먹이 노정봉 아내의 입술에 틀어박혔다.
빠아악!
그렇게 새로운 시작, 행복의 단꿈은 젖어 들기도 전에 깨어 버리고 말았다.
“놔! 놔아-! 유기?! 말도 안 돼! 그냥 깜빡했던 것뿐이라고!”
“맞아! 곧 데려오려고 했단 말야!”
깨어나자마자 개소리를 태연하게 지껄이는 노정봉 부부.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런 새끼들이 3일간 한국에 연락을 안 했다고? 니들 핸드폰에 한국으로 연락한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 한 번 봐 볼까? 어-?!”
움찔!
“……나, 나 이거 한국 가서 정식으로 제소할 거야! 니들 다 과잉진압으로 옷 벗겨 버릴 거라고!”
얼굴을 구긴 종혁은 오택수를 봤다.
“오 경감님, 쟤들 그냥 템즈강에 던져 버리고 갈까요?”
흠칫!
“강보다는 산이 낫지 않겠냐? 그냥 확 파묻어 버리면 찾을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그렇죠?”
종혁은 어느새 입을 다문 노정봉 부부를 향해 싱긋 웃었다.
“어떻게 할래? 여기서 이민법 위반으로 바퀴벌레 나오는 교도소에서 한 십 년 썩다가 한국으로 송환될래, 아니면 한국 가서 재판 받을래?”
솔직한 심정으론 템즈강과 야산을 선택해 주길 바랐다.
“이, 이민법?”
“에이, 선수끼리 왜 이래. 너희가 하려던 이민 그거 사기잖아. 그래서 그 변호사도 경찰에 잡혀간 거고.”
그동안 예의주시를 하고는 있었지만, 마땅한 증거가 없어서 검거할 수 없었던 브로커. 영국 경찰들이 고맙다고 목례까지 하며 데려갔다.
“이거 영국에서 걸고넘어지면 너희 좆된다?”
브로커도 한인이고, 돈을 준 사람도 한국인이다.
영국정부에서 너희는 무슨 사기꾼만 있냐며 한국 정부에 항의를 하는 순간 이들은 무조건 법정 최고형에 괘씸죄 추가다.
오싹!
“……하, 한국으로 가겠습니다.”
“가, 갈게요! 가면 되잖아요!”
“오케이. 뭐해, 얼른 차에 안 타고.”
“네, 넵!”
그들은 다급히 차에 올라탔고, 종혁은 그제야 가드너를 응시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허허, 아닙니다. 그럼 이제 볼일은 다 끝난 겁니까?”
“예. 이제 내일 비행기로 송환만 하면 됩니다.”
공항에 외사국 직원이 나와 있을 예정이었다. 이런 쓰레기들을 전용기에 태울 수는 없었다.
그에 가드너가 눈을 빛냈다.
“그럼 여유가 좀 있겠군요.”
꽤 의미심장한 말.
종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티 브레이크를 가져야 할 정도인가요?”
순간 가드너의 낯빛이 흐려진다.
“후. 도난 사건입니다. 무려 6천만 파운드의…….”
쿠웅!
종혁은 눈을 부릅떴지만, 아직 가드너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실행 시간은 6분.”
딱딱하게 굳었던 종혁은 이내 입술을 비틀었다.
“이거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내일 애프터눈 티타임까지는 함께 있어야 하겠군요.”
“하하하핫! 역시 최! 감사합니다. 가시죠. 내가 쿠키를 기가 막히게 굽는 가게를 알고 있습니다!”
* * *
방금 막 구운 것인지 딸기잼을 바른 따끈한 스콘이 입안에서 부서지며 옥수수의 고소함과 버터의 달큰한 맛이 폭발하듯 피어오른다.
“와아.”
“호오.”
씹으면 씹을수록 더 진해지는 스콘의 향.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침에 범벅된 잔흔이 입안을 텁텁하게 할 때 베르가못향이 흠뻑 적셔진 씁쓸한 얼그레이가 입안을 행구며 방금 전 뭘 먹었냐는 듯 다시 식욕을 돋운다.
절로 행복해지는 기분.
뺏기고 싶지 않은 시간이고 싶지만, 이 카페의 테이블에 앉은 종혁들은 아쉬움을 접으며 노트북 속 화면을 응시했다.
흑백의 CCTV 안에 드디어 복면을 쓴 강도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처럼 비싼 보석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반지나 목걸이 등이 전시된 박물관.
규모는 그리 크지가 않다.
저녁 11시쯤 CCTV 안으로 3명의 강도가 정문에서 1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직원용 출입구를 부수며 훅 하고 들어온다.
이후 거침없이 복도를 걸은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망치나 오함마로 보관대를 부수며 마구잡이로 보석들을 쓸어 담았고, 단 3분 만에 한화 1000억 상당의 보석을 훔쳐 CCTV 밖으로 사라진다.
이후 바깥에 세워 둔 차량에 올라타 사라지기까지 단 6분. 고작해야 6분 만에 1000억 상당의 보석이 사라진 것이다.
이후 3분 뒤 경찰차가 도착.
가드너 교수가 영상을 종료하자 종혁과 오택수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와, 이 새끼들 꾼인데?”
“네. 완전 제대로 배운 새끼들이네요.”
한두 번 털어 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솜씨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예술. 전과 10범쯤은 되어야 나올 수준이다.
“특히나 동선에 낭비가 없어요.”
“어? 그래?”
종혁은 의아해하는 가드너의 모습에 영상을 다시 처음으로 돌려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 보시면 놈들이 진입하는 순간부터…….”
“마치 순서를 정해 놓은 듯 차례로 들어왔죠. 그리고 곧바로 흉기를 꺼내 들어 보관대의 유리를 부쉈습니다.”
종혁은 정답이라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동선에 낭비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잘 보세요. 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헛?!”
CCTV 영상을 다시 틀어 확인한 가드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신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그들은 서로의 움직임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일말의 어긋남도 없는 화음을 보는 듯했다.
서로 합을 맞추어 도둑질을 한 지 꽤 오래된 게 분명해 보였다.
가드너는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군요. 거기다 박물관을 빠져나간 후 차에 올라탈 때의 모습도…….”
“거침이 없죠.”
티끌만큼 작은 망설임도 없다. 혹여 누군가 뒤통수를 치는 게 아닌지 주변을 경계하지조차 않는다.
“보통 이런 다인조 작업에서 가장 경계하는 게 그 부분임에도 이들은 냅다 차에 올랐습니다.”
“그 말은 서로에게 믿음이 있단 소리겠죠.”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운전수까지 네 사람, 이들 모두 강도질을 하기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일 가능성이 크겠죠.”
“친구 사이라…… 확실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역시 현장을 겪은 사람의 눈은 날카롭군요.”
범죄학의 권위자인 가드너마저도 무심코 놓쳤던 사소한 부분.
‘아무래도 내가 무의식중에 편견을 가졌나 보군.’
가드너는 반성을 하며 옅게 웃었다.
“이거 런던 경찰들에게 해 줄 말이 생긴 것 같습니다.”
어디 이렇게 실력까지 갖췄으면서도 친구 사이인 4인조 강도단이 흔할까.
아주 작지만 수사에 진전이 생긴 거다.
‘역시 최.’
가드너는 따뜻한 눈으로 종혁을 봤지만, 종혁은 CCTV를 보느라 그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무슨 일인지 자못 심각한 종혁의 표정.
‘문제는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는 건데…….’
강도단의 행동에 작은 모순이 있다. 정확히는 보관대를 부수는 행동에 말이다.
“왜 그러세요, 팀장님?”
“아니, 그게…….”
종혁은 말할까 말까 고민했고, 가드너는 그런 종혁의 모습에 입술을 비틀었다.
“아무래도 최 역시 저와 같은 부분이 거슬리는가 보군요.”
“예. 그건…….”
“목 위쪽의 보관대를 건드리지 않은 점.”
“어깨 위로 팔을 들지 않은 점.”
마치 닭장처럼 생겨 천장까지 닿아 있던 보관대.
그리고 망치질을 하면서도 결코 어깨 위로 팔을 올리지 않았던 세 명.
동시에 말한 그들은 서로를 보며 씩 웃더니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현장을 둘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후, 영국인로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러야 한다니…….”
애프터눈 티는 영국인에게 있어 거의 신성 그 자체의 시간.
하지만 사건이 먼저였다.
몸을 일으킨 그들은 사건이 벌어진 보석 박물관으로 향했다.
* * *
며칠 전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아직까지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는 박물관.
한참 범인을 쫓아야, 아니 찾아야 하는 시간에 불려 나왔음에도 이번 사건을 담당한 경찰들의 얼굴엔 기대감이 가득하다.
해리 가드너 교수가 정식으로 이번 사건의 자문을 맡아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문을 맡겠다는 연락과 함께 그가 보내온, 4인조 강도단이 오랜 친구 사이일 수도 있다는 정보.
이 작지만 큰 단서에 런던경찰청이 뒤집어진 상태였다.
“가드너 교수님이 현장을 보면 더 많은 단서를 얻을 수 있겠지?”
“그렇겠지! 그 가드너 교수님인데!”
호들갑을 떠는 경찰들의 모습에 일부 형사들이 혀를 찬다.
“잘한다, 잘해. 경찰이라는 것들이 스스로 찾아볼 생각을 해야지, 남에게 기댈 생각만 하고.”
“맞는 말이야. 가드너 교수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학자로서의 능력을 말하는 거지.”
“나 때는 저러지 않았는데…… 쯧.”
이론과 현장은 다른 법.
일부 형사들은 고개를 저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니, 이 4인조 강도단을 쫓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뺏고 있기에 짜증마저 내보이며 담배를 뻑뻑 피웠다.
“오셨습니다!”
부르릉! 끽!
멈춰 선 블랙캡에서 내리는 가드너 교수와 종혁들.
경찰들은 인사를 하기 위해 가드너에게 다가갔다가 갑자기 어딘가로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뭐, 뭐야?’
‘그, 글쎄?’
그들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가드너의 뒤를 따랐다.
그런 가드너가 걸음을 멈춘 곳은 차량이 세워진 장소였다.
“여기인 것 같군요.”
“예. 여기네요.”
가드너 옆에 멈춰 선 종혁은 주위를 주욱 둘러봤다.
단층 혹은 2층의 붉은색 벽돌 건물들이 주욱 늘어선 보석상 거리.
“4차선 삼거리 교차로임에도 CCTV의 숫자가 두 개. 저 CCTV가 차량을 찍은 CCTV겠군요.”
삼거리 교차로와 딱 붙어 있는 박물관 옆 전봇대에 설치된 CCTV. 이리저리 엉켜 있는 전선들에 가려져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을 정도다.
“왜 하필 여기에 주차를 한 것 같습니까?”
놈들은 박물관 바로 옆, 그러니까 CCTV 사각에 세운 게 아니라 CCTV가 훤히 보이는 박물관 맞은편에 차를 세웠다.
박물관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도로를 건너야 하는 귀찮음을 감수해야 되는데도 말이다.
그 말에 종혁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교수님은요?”
“저 CCTV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CCTV에 찍혀야 할 이유가 있거나.”
서로를 보며 싱긋 웃은 둘.
뒤를 따라온 경찰들의 눈이 부릅떠진다.
종혁은 차량이 도주한 방향이 아니라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과 저쪽으로 가면 어디로 나옵니까?”
“그게…….”
가드너 교수는 귀를 쫑긋 세우는 런던 경찰청의 경찰들을 응시했고, 그 시선에 당황했던 경찰들은 얼른 입을 열었다.
“바, 방금 말한 곳들은 모두 런던 외곽으로 빠지는 길입니다.”
놈들이 도주한 방향만이 도심으로 향하는 도로.
종혁은 혀를 찼다.
“디코이네. 개새끼들.”
“역시 차량을 갈아탔을 확률이 높겠군요.”
“가방 세 개만 옮기면 될 테니 번거롭지도 않겠죠.”
종혁은 박물관을 향해 발을 떼며 입을 열었다.
“최재수, 여기서부터 보석 박물관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 재.”
“옛!”
종혁은 놈들처럼 거침없이 걸음을 옮겨 박물관 앞에 섰다.
“몇 초?”
“12초 43! 12초입니다!”
“차에 올라타 출발하기까지 걸린 시간 9초. 총합 21초. 놈들의 보폭을 감안한다고 해도 시간 30초. 기록해.”
“옛!”
종혁은 부서진 채 방치된 직원용 출입구를 봤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수천억 상당의 보석을 전시하는 박물관임에도 강력하고 두꺼운 금속제 문이 아니라 일반 금속제 문이다.
전자 도어락에 외부 자물쇠까지 총 삼중의 잠금장치가 되어 있지만, 해제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20초 정도였다.
물론 이 금속제 문과 전자 도어락이라는 것 자체가 좀도둑들 입장에서 봤을 때 심리적으로 다가가기 힘든 성질의 것이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멍청한 좀도둑 입장이다.
이번 사건의 범인들처럼 간 큰 도둑들이라면 지금처럼 빠루 하나로 다 뜯어 버린다.
“이 동네는 무슨 안전 불감증이라도 있는 겁니까?”
“큼. 이거 할 말이 없군요. 전통이 마냥 좋은 것이 아니란 건 알지만…… 여기엔 참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좋게 말하자면 과거 영국이 가장 찬란했던 때를 보존하고자 하는 거고, 나쁘게 말하자면 고리타분한 생각에 사로잡혀 옛것을 계속 고수하려는 거다. 아직 쓸 만하니까. 문제가 없으니까.
그렇다 보니 영국엔 지어진 지 백 년이 넘은 건물들이 즐비하고, 그걸 쉽게 고치지 않는다.
보석 박물관을 비롯해 이 거리에 있는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보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에 금속제 문을 설치한 거다.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건 뭐 나 잡아 잡수라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고개를 저은 종혁은 CCTV에서 본 것처럼 빠루를 쥐곤 출입구에 꽂아 뒤로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
“콱! 쩍, 쩍쩍! 덜컹. 총 열네 번. 왜 열네 번이지?”
뜯겨 나간 문의 흔적을 보면 놈들은 단숨에 치명적인 부위에 빠루를 꽂아 넣었다. 이 부위를 공략하면 금고가 아닌 이상 대여섯 번 젖히면 문은 쉽게 박살 나 버린다.
‘흠.’
일단 의문을 뒤로한 종혁은 놈들이 진입한 루트를 쫓아 다시 걸음을 옮겼다.
뿌드득, 뿌드득.
구두에 짓밟혀 뭉개지는 유리 파편들.
가드너와 런던 경찰들은 잰걸음으로 종혁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보석이 보관된 장소에 도착한, 손잡이가 부서진 문 안으로 들어간 종혁은 잠시 걸어온 복도를 둘러봤다.
“최재수, 내부 거래 및 놈들이 이곳의 직원으로 일했을 확률이 있다. 체크.”
“옛!”
오는 길에 문들이 총 6개가 있는데 편액이 붙은 문이 없다. 즉, 어느 곳이 보석을 보관하는 곳으로 연결되는지는 직원 말고 알 수가 없다는 거다.
‘그런데도 놈들은 거침없이 다가와 이 문 앞에 서서 망치를 들었지. 그리고 이 손잡이를 박살 내고 진입할 때도 그냥 망치를 들고 들어갔어.’
문을 박살 낸 놈 외의 두 놈도 문이 열리자마자 망치부터 꺼내 들었다. 그건 이 안의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증거였다.
시선을 돌린 종혁은 사건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 된 현장을 둘러봤다. 털리지 않은 보석들은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는지 보관대가 모두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한 놈은 이리로, 두 놈은 이리로.”
한 명은 마치 금은방에서나 볼 수 있는 기다란 사각형 보관대로 향했고, 나머지 둘은 닭장처럼 생긴 유리 보관대로 향했다.
“그리고 3분 동안 쾅, 쾅쾅. 우수수…….”
종혁은 런던 경찰을 봤다.
“이 동네에서 신고가 접수되고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몇 분 걸립니까?”
“대, 대략 5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날은 10분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여기 보석상 거리 아니에요?”
“비교적 뒤늦게 형성된 거리라서…….”
파출소를 이전하지 않았다는 거다.
거기다 사건이 발생하던 시각에 유난히 장난 신고가 많아서 순찰 병력이 모두 외부에 나가 있었다.
‘지랄 났다. 누가 영국이 선진국이라고 했어?’
보통 이런 중요한 거리는 따로 관리 순찰하는 병력을 빼놓는 게 기본이었다. 물론 상황이 상황인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총체적 난국이었다.
“최재수, 놈들이 거짓으로 신고했을 확률이 높다. 체크.”
“옛!”
“현장 사진이랑 여기 담당자 좀 봅시다.”
“아, 예예! 혀, 현장 사진은 여기 있습니다. 누가 박물관 관계자 좀 불러와!”
누군지는 모르지만, 가드너 교수와 동급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다. 동양인이거나 어린 나이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됐다.
“저도 여기 있습니다!”
종혁은 앞으로 나서는 관계자를 보며 눈을 빛냈다.
내부자 거래 및 놈들이 이곳의 직원으로 일했을 확률이 높은 이 사건.
다급히 경찰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서는 저 관계자도 용의선상에 올려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부자가 정보를 넘긴 것 같은데 말이야.’
그게 아니면 놈들의 동선을 설명할 수 없었다.
종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