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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73화 (373/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73화>

살짝 울렁거리는 시야에 머리를 툭툭 친 종혁은 좀 따가워진 입가를 손가락으로 긁었다.

그러자 엄지에 살짝 묻어나는 혈흔.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이게 얼마 만이더라…….’

맨손 싸움에서 피를 본 게 말이다.

아마 회귀 후 동체시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이후 처음일 거다. 즉, 거의 최소한 10년 만인 셈이었다.

종혁은 재밌다는 듯 나른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아야. 모기가 물었나.”

그에 삼겹살은 씩 웃었다.

‘불도저, 불도저 하더니 그럴 만하군.’

겨우 주먹 한 방에 시야가 흔들리고, 얻어맞은 턱이 부서질 듯 욱신거렸다.

지금껏 칼침이라도 맞은 게 아니고서야 고통을 느끼지 못했던 그로서는 생소한 경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삼겹살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불도저가 이런 물주먹이었나?”

“……푸흐. 새끼가 센 척은!”

종혁은 냅다 주먹을 휘둘렀고, 삼겹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하며 종혁의 턱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됐……!’

곧 있으면 주먹에서 느껴질 쾌감에 웃는 순간이었다.

쩍!

“크읍!”

주춤 물러난 삼겹살은 종혁을 멍하니 쳐다봤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분명 자신이 카운터를 꽂는 타이밍이었는데, 왜 피했다고 생각한 종혁의 주먹이 자신의 안면에 꽂힌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어를 세 단계나 올린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이걸 버티네?”

카운터에 카운터를 꽂는 역카운터.

무방비 상태로 체중이 실린 주먹이 꽂혔음에도 서 있을 수 있다니, 삼겹살의 맷집에 종혁은 혀를 내둘렀다.

“더 시간 끌지 말고 그만 끝내자.”

이젠 느려지다 못해 거의 멈춰 버린 시간 속, 발을 성큼 내디딘 종혁은 태클을 걸려는 듯 몸을 낮추는 삼겹살의 턱을 향해 주먹을 올려쳤다.

마치 비 오는 날 낮게 날던 제비가 솟구치듯 저 아래에서 날아와 솟구치는 어퍼컷.

땅을 박차려고 자세를 잡았던 삼겹살은 어느새 턱 아래 있는 주먹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쩌어억!

“크헉!”

턱뿐만 아니라 위로 젖혀지는 상체.

종혁은 그럼에도 여전히 쓰러지지 않는 삼겹살의 모습에 감탄하며 다시 한번 주먹을 내질렀다.

“죽어.”

빠아악!

“끄르륵!”

피투성이가 된 거구가 뒤로 넘어간다.

쿠우웅!

마른 먼지를 내뿜으며 쓰러진 삼겹살을 보던 종혁은 땀이 몇 방울 흐른 이마를 훔치며 혀를 내둘렀다.

“하, 새끼. 존나 맷집 좋네.”

웬만하면 거의 두 방으로 끝나는 주먹을 몇 대나 때린 걸까.

정말 덩치값을 하는 놈이었다.

“자, 그럼 김가람 씨? 당신을 일단 한강우 씨 납치 및 폭행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야, 자냐?”

툭툭!

수갑을 찬 삼겹살을 건드리던 종혁은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가 아차 했다.

“맞아. 네가 있었지?”

“힉!”

삼겹살의 부하이자 빛가람파의 간부로 추정되는 놈.

종혁은 도망치려는 듯 엉덩이를 뒤로 쭉 뺀 놈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자, 너도 이리 와서 수갑 차야지? 어? 어? 아니야. 그러는 거 아니…….”

“씨발!”

“개새끼!”

종혁이 몸을 돌리는 놈의 모습에 땅을 박차던 그때, 뒤늦게 도착해 그들을 지켜보던 광수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눈 뒤집힌 황소를 농락하는 투우사처럼 삼겹살을 가지고 놀다 눕혀 버린 종혁.

“예, 대장님. 최 팀장님이 메인 반찬까지 다 떠먹여 줬습니다. 삼겹살 뻗었어요.”

-……씨벌.

체면이 뭉개진 광수대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   *   *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빛가람파 일망타진!

전국 3대 조직 만득이파의 산하 조직 빛가람파!

엔터테인먼트 업체로 위장? NO! 연예계에 만연한 조폭들!

한 건 해낸 서울청 광수대! 배우 한 모 씨도 구해!

납치되어 폭행을 당한 한류스타 한 모 씨!

이택문 경찰청장, 조직폭력배들의 만행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

“흐흐흐.”

아무도 없는 VIP병실.

온몸에 붕대를 감싼 한강우가 신문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아야야.”

터진 입술에 얼굴을 구겼던 한강우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됐다. 다 끝났다. 이제 더 이상 빛가람파가, 김가람 대표가 자신의 발목을 잡을 일은 없었다.

똑똑!

“들어와!”

스르륵 열리는 문을 본 한강우는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정영탁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얼굴이 확 밝아진 그.

그럴 수밖에 없다. 정영탁이 줬던 황금만년필이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갑자기 자신이 서울 외곽으로 향하기에 전화를 해 봤는데 받지 않아 재빨리 경찰에 신고했다는 정영탁.

실시간으로 감시했다는 게 좀 거슬렸지만, 결국 그게 자신의 목숨을 살렸기에 한강우는 꾹 참기로 했다.

“오셨습니까, 정 대표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몸은 견딜 만하지만…….”

한강우가 얼굴 여기저기에 붙은 거즈를 만지려다가 멈춘다.

“아, 방금 전 의사를 만나고 왔는데 타박상이 좀 있을 뿐 흉터가 질 만한 상처나 뼈가 부러진 건 없다는군요. 얼굴 복원에 있어선 국내 최고의 권위자께서도 그렇게 말하셨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입니까?!”

“예. 빠진 이도 임플란트를 하면 감쪽같을 겁니다.”

“하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영탁과 그 의사에게 모두 감사했다.

배우, 아니 연예인에게 있어 최고 자산인 얼굴.

그제야 완전히 안심을 한 한강우는 몸에 힘을 풀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러다 순간 그의 몸이 들썩인다.

“흐흐. 이제 다 죽었어.”

조폭에게 사로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다 구출당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스토리란 말인가. 이제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자신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었다.

정영탁은 그런 한강우를 차갑게 응시하다 싱긋 웃었다.

“상황이 어떤지 파악을 하셨나 보군요.”

“예. 하지만 아무 예능이나 작품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게 당초의 계약이었으니까요!”

스케줄은 갑과 을이 서로 협의해 정한다.

계약석에 적힌 내용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저도 100억이나 주고 데려온 배우를 함부로 굴리고 싶지는 않으니. 그럼 가실까요?”

정영탁은 창밖, 아니 병원 앞에 진을 친 기자들을 가리켰고, 한강우는 얼굴을 구겼다.

“아니, 아직 씻지도 않았는데…….”

“그렇기에 더 그림이 되겠죠. 날것 그대로의 생생한 그림이.”

요새 한창 연예가를 장악한 단어인 야생 버라이어티.

대중은 더 이상 꾸며진 모습을 원하지 않았다.

“……역시 업계 1위에 오른 이유가 있으십니다.”

씩 웃은 한강우는 몸을 일으켰고, 그들은 병원 로비로 향했다.

“억! 한강우다!”

“한강우 씨! 괜찮으십니까!”

“한강우 씨!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벌 떼처럼 달려드는 기자들.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들이 곧 자신의 아름다운 스토리를 퍼트려 줄 사람들이라 한강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정영탁을 봤다.

마치 허락을 구하려는 듯한 모습.

정영탁은 고개를 끄덕였고, 한강우는 한숨을 내뱉으며 연기를 시작했다.

“저는…….”

한강우의 입이 열림에 사위가 고요해지는 순간이었다.

“한강우 씨?”

‘어떤 씹새가?!’

누군가 자신의 말을 끊자, 고개를 휙 돌렸던 한강우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난생처음 본 얼굴, 종혁이 다가와서다.

그러며 손에 채워지는 수갑.

철컥!

“어?”

한강우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멍하니 종혁을 본다.

“한강우 씨, 당신을 미성년자 성매매 및 음주운전, 김순임 씨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

“자, 잠깐! 이게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최 팀장님!”

아직도 멍한 한강우와 기자 대신 다급히 나선 정영탁.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뭐하는 짓이긴요. 공무집행 중이지.”

“즈, 증거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CCTV와 증인, 그리고 김순임 씨를 치어 버린 차까지 모두 확보했습니다.”

찰칵! 촤라라라라라!

순간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들.

그들을 본 정영탁은 속으론 피식 웃으면서도 겉으론 혀를 차며 물러났다.

“아, 그래요?”

‘어?’

한강우는 몸을 돌리는 정영탁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탁! 하고 쳐 내지는 한강우의 손.

“아?”

정영탁은 한강우를 경멸에 찬 눈으로 응시했다.

“300억, 1원 한 장까지 받아 낼 겁니다, 한강우 씨.”

“어? 아?”

“자, 그럼 우리 일을 계속 볼까요? 한강우 씨,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아, 아니야! 나 아니라고-!”

성공의 단 꿈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지옥에 처박힌 걸 환영한다, 개새끼야.’

*   *   *

치이익!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이 숯불 위에서 한우를 구워 주는 고급 한우집.

세 잔의 술잔이 테이블 위에서 부딪친다.

“자, 건배!”

“건배…….”

채재쟁!

“크. 쓰네…….”

빛가람파 일망타진으로 두둑한 인사고과와 특진 포인트, 상여금이 예약됐음에도 최철호의 낯빛이 흐리다.

김종두 과장은 그런 최철호의 등을 두드린다.

“기운 내, 인마! 어디 이놈하고 일할 때 이런 일이 한두 번인 줄 알아?”

발끈!

“그게 말이요, 방구요?!”

“그럼 네가 저 돈 지랄을 이겨 낼 만큼 능력이 좋든가. 아니, 돈지랄만큼 능력도 좋은 저놈을 무슨 수로 이겨 먹어?”

“……에이씨.”

맞는 말이다. 종혁은 돈뿐만 아니라 능력까지 좋은 별세계의 인간이었다.

“아무튼 고맙소. 덕분에 체면 좀 세웠소. 이건 그 대가로 사는 거니까 배 터지게 드쇼!”

종혁은 씩 웃었다.

“하하. 그러셨다니 다행입니다. 잘 먹겠습니다!”

“……진짜 욕심나네.”

“내 거다, 짜샤!”

“거 좋은 건 나눠 씁시다!”

종혁은 아옹다옹 다투는 그들을 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 그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인건가?’

마무리. 이제 정말 마무리만 남았다.

“해 저문 소양강에-!”

무엇이 그리 기쁜지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옛날 노래를 불러 대는 김종두와 최철호.

“종혁아! 3차 가자, 3차! 3차는 어디가 좋겠냐!”

“에이, 형님! 3차는 우리 집으로 가야죠!”

“무야? 집에 갈 거면 왜 너희 집으로 가! 그냥 우리 집으로 가!”

“에이씨. 몰라! 어디든 갑시다! 최 팀장! 최 팀장도 가야지!”

마음을 내려놓고 술을 마셔서 그런지 말을 편하게 하는 최철호.

“하하.”

‘전 사모님께 미움받기 싫은데요…….’

하지만 가지 않는다면 삐져 버린 저 둘을 감당할 수가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아, 잠시만요?”

정혁은 구세주의 전화를 얼른 받았다.

“예. 최종혁…… 엇. 충성? 예. 예, 지금 시간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거기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충성.”

전화를 끊은 종혁은 마치 배신자를 보는 듯한 둘의 시선에 활짝 웃었다.

“캬! 저도 사모님 손맛을 오랜만에 맛보고 싶은데, 홍보 담당관님이 부르시네요.”

“호, 홍보담당관님이?”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잘 마셨습니다, 대장님! 다음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 자, 잠깐!”

혹여 잡힐세라 전력으로 달려 큰 도로가로 나온 종혁은 얼른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   *   *

뚱뚱.

일본 전통 악기인 샤미센의 선율이 울리는 고급 일식집.

종업원이 열어 주는 문 안으로 들어간 종혁은 홍보담당관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헛?! 충성!”

홍보담당관 옆에 앉은 이택문 경찰청장과 그 맞은편에 앉은 정용진 과장. 세 사람이 함께 있는 그림이 썩 잘 그려지지 않았기에 종혁은 의아해했다.

“왔으면 앉지.”

“아, 예.”

빈자리에 앉은 종혁은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 정용진을 쳐다봤지만, 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에라이.’

“술을 마셨나 보군.”

“서울청 최철호 대장이 감사 인사로 사 주셔서 한잔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피차 늦은 시간이니 본론으로 들어가지. 곧 청소년 범죄자들과의 전쟁이 끝나는 걸 알 거야.”

조폭과의 전쟁이 발발해서가 아니다. 뽑아낼 놈들을 모두 뽑아냈기에 이쯤에서 마무리 지으려는 거다.

이번 청소년 범죄와의 전쟁에서 잡혀간 재력가의 자식만 해도 186명. 부모 빽 믿고 설치던 놈들부터 쓸려 나갔다.

“그런데 교육부에서 말이 좀 많아.”

경찰이 교육 환경을 정화했음에도 교육부는 자신들의 영역이 침범당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VIP께서도 사후 처리를 바라시고.”

“그게 저를 부르신 거와 무슨 상관이…….”

스윽.

종혁은 이택문 경찰청장이 내민 한 장의 쪽지에 입을 다물었다.

[가제: 불량아 갱생 프로젝트]

“주변 환경 탓에 일탈하게 된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선도한다는 기획이야. 방송국, 교육부와 연계할 예정이고. 이거…… 자네가 맡아 봐.”

“……예?”

이택문은 미간을 좁히며 바라보는 종혁을 향해 술 주전자를 들었다.

“어느덧 최 팀장을 알게 된 지 2년이 되어 가는군. 그동안 도움을 참 많이 받았어.”

벌써 2년. 이제 후임에게 이 무거운 자리를 인계할 때다.

이택문의 눈앞으로 지난 2년의 순간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경찰 개혁을 이뤄 냈다는 거다.

솔직히 미흡한 점이 많지만 고작 2년 만에 이 정도까지 해낼 수 있었다는 것에 그는 만족하고, 종혁에게 감사했다. 그러니 이 권력이 사라지기 전 종혁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청장님…….”

‘하, 이 양반도 가긴 가는구나.’

그놈의 임기제한제.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욕심이 난다.

그러나 이번 청소년들과의 전쟁에서 종혁 본인이 한 일은 별것이 없다. 그저 물꼬만 터 줬을 뿐, 가장 고생한 건 정용진이었다.

이택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정 과장도 동의한 일이야. 아니, 정 과장이 먼저 제안을 했지.”

종혁은 다급히 정용진을 쳐다봤다.

술잔을 들어 입에 가져가는 그.

“지난 1년간 이 부족한 사람을 믿고 따라 줘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 선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 홍보도 고마웠어, 최 팀장.”

‘이 사람들 참…….’

가슴이 울렁거린 종혁은 풀썩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종혁의 표정이 단단해졌다.

“죄송하지만 받을 수 없겠습니다.”

“최 팀장.”

“잠시 헤어지는 길, 제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전 그저 이름만 올려 주십시오.”

“아니…… 허어.”

그들은 알고 있다. 종혁이 이런 표정을 지을 땐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종혁은 입을 다무는 그들의 모습에 싱긋 웃으며 쪽지를 봤다.

‘선도한다라…….’

종혁의 머릿속에 미정이 스쳐 지나갔다.

가정 환경 탓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타의에 의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미정.

“여기에 이런 걸 추가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어떤 걸?”

아이디어 뱅크인 종혁.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종혁은 그런 그들을 보며 검지를 세웠다.

“스스로도 모르고 있던 재능을 알게 해 주는 겁니다. 가능성이라는 희망을.”

“호오?”

이택문과 정용진, 홍보담당관은 종혁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   *   *

“으하아아암!”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토요일.

전날의 숙취로 인해, 이택문이 아니라 다른 이와의 술로 인해 출근을 하자마자 곯아떨어졌던 종혁이 배를 긁으며 일어난다.

“끄악! 아저씨! 옷! 옷!”

종혁은 CCTV 모니터 앞에 앉아 파닥거리는 미정을 보며 피식 웃었다.

“왜? 멋지냐? 더 보여 줘?”

“꺄아아악!”

“큭큭큭큭큭!”

웃음을 흘린 종혁은 미정의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양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는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

이제 이 아이를 볼 날이 얼마나 있을까.

종혁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미정아.”

“안 봐요. 절대 안 볼…….”

“나 다음 주로 끝이다.”

움찔!

몸을 굳힌 미정이 다급히 종혁을 본다.

“세정고로 오는 건 다음 주 토요일이 마지막일 거야.”

쿠웅!

“어…… 네?”

지금 이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끝? 다음 주?’

“자, 잠깐만요. 그, 그게 무슨 말이세요? 저 잘 이해를 못하겠어요.”

“이제 이 아저씨도 범인들 잡으러 가야지. 그렇다고 아예 못 보는 것도 아니니까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 네가 원하면 언제든 볼 수 있으니까.”

미정은 종혁이 머리를 쓰다듬고 있음에도 느끼지 못하는 듯 망연히 쳐다봤다.

‘정말 끝이라고? 이렇게?’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갚아야 할 빚이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끝이라니…….

잘못 들은 말일 거다. 미정은 정말 그렇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 아뇨. 아니에요. 아직은…….”

-아아! 정미정 학생? 정미정 학생은 지금 당장 교무실로 와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전파합니다.

종혁은 본관 건물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빛냈다.

‘왔구나.’

앞으로 미정의 삶을 케어해 줄 행복의 쉼터 직원이 말이다.

“저, 전 일단 가 볼게요!”

종혁은 마치 도망치듯 조립식 건물을 뛰쳐나가는 미정을 따라나서며 담배를 물었다.

“후우. 뭐 곧 받아들이겠지.”

방금 전 종혁 자신이 한 말처럼 영원히 못 보는 건 아니다. 서로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

다만 서로의 삶이 치열해진다면 보기 힘들어질 뿐이었다.

“그래. 그저 그뿐이지…….

세상에 영원한 이별이란 죽음밖에 없기에 그저 그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담배 맛이 좀 썼다.

그 순간이었다.

웅성웅성.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는 세정고.

“아, 저기도 왔네.”

종혁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카메라와 여러 사람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최 팀장님!”

“아저씨!”

“왓썹, 브로-!”

야생 버라이어티 예능으로 지금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나연석 PD와 손연아, 준형이 형, 그리고 그 외 자신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를 세정고 학생들을 위한 각 분야의 멘토들.

세정고를 시작으로 전국 중고등학교를 순회할 선생님들이다.

경찰청과 교육부가 후원하는 프로그램.

미정은 이제 저들의 멘토링을 통해 삶을 즐기며 살아갈 재능을 찾게 될 터.

종혁은 미정이 사라진 건물을 보며 푸근히 웃었다.

“이제 행복하자, 미정아.”

아무 걱정 없이.

종혁은 담배를 튕기며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어느덧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온 여름의 햇빛이 종혁을 뜨겁게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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