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72화>
흙먼지와 쇳가루 냄새가 가득 풍기는 폐차장.
네모난 블록이 되어 산처럼 쌓인 자동차 잔해 앞에 선 최철호 대장이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흩날린 흙먼지에 손을 젓는다.
“쿨룩! 쿨룩!”
“대장님.”
“뭐 좀 찾았어?”
서울청 광수대 대원이 고개를 젓는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벌써 3일째다. 이 폐차장을 이 잡듯 뒤진 게.
그럼에도 종혁이 말한 차량은 흔적조차도 찾을 수가 없다. 고유의 일련번호가 적힌 차량의 부품조차도.
분명 이곳 폐차장의 관리대장에는 폐차를 시켰다고 나와 있는데도 말이다.
차종과 차량 번호만 알면 알 수 있는 차량의 부품 일련번호들. 보통 폐차장은 쓸 만한 부품들을 떼어 내 중고로 판매함에도 티끌조차 찾을 수 없다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이미 부품을 다 팔아 버렸거나…….’
최철호는 멀리서 뒷짐을 진 채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배불뚝이 대머리 폐차장 주인을 응시했다.
‘저 사장 새끼가 뒤로 빼돌린 거겠지.’
최철호의 촉은 사장이 뒤로 빼돌렸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아니라면 일련번호가 적힌 부품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쯤 그 차, 종혁이 찾으라는 한강우의 차는 아마 삼겹살의 손에 들려 있을 확률이 높다.
왕왕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멀쩡해 보이는 차를 폐차 하는 척 뒤로 빼돌리는 일들이.
최철호는 입술을 비틀었다.
‘좋군.’
이 차를 어디에 숨겨 뒀을지는 모르지만, 아마 삼겹살의 구역 내에 있을 거다. 온전한 모습으로.
“대장님, 그런데 대체 한강우의 차가 삼겹살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요?”
최철호는 담배를 물었다.
“글쎄…… 뭐든 최 팀장 말처럼 비수가 될 만한 것이긴 하겠지.”
얼마 전부터 빛가람파가 공을 들이기 시작한 한강우.
그리고 2년 전 신차를 구입해 잘 타고 다니다가 얼마 전 급하게 폐차를 한 한강우와 그런 한강우의 차가 삼겹살의 비수가 될 거라 말한 종혁.
이 말이 뜻하는 게 뭐겠는가.
한강우가 그 차를 가지고 사고를 크게 쳤다는 거다.
‘아마 교통사고 아니면 뺑소니…….’
그리고 삼겹살은 그걸 은닉해 주는 척 이 폐차장 주인과 공모해 한강우의 차를 뒤로 빼돌린 게 분명했다.
즉, 이것만으로도 범죄 은닉에 해당한다. 삼겹살의 안방으로 치고 들어가기에 충분한 단서.
“거참 이래서 최 팀장이 자세한 설명을 안 해 준 거구만?”
그저 한강우의 차를 확보만 해 달라고 부탁한 종혁.
삼겹살을 욕심내지 않을 테니 광수대도 한강우를 욕심을 내지 말라는 신호였다.
“캬. 똘똘하다, 똘똘해. 이러니 그런 실적을 올리는 거겠지!”
이런 형사가 부하면 얼마나 좋을까.
입맛을 다신 최철호는 다시 사장을 노려봤다.
“어후. 저 새끼를 다그칠 수만 있었어도 이런 개고생은 안 했을 텐데.”
한강우의 차가 아니라 다른 차량의 번호를 말하며 폐차장을 뒤진 최철호 대장.
아무래도 그렇게 둘러대길 잘한 것 같다.
이쪽이 한강우의 차를 찾는 뉘앙스를 풍겨 삼겹살로 하여금 경계심을 가지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구르는 게 나았다.
혹여 삼겹살이 영영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 버리면 정말 골치 아파질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지난 사흘간의 고생이 눈앞을 아른거리자 입안이 텁텁해진 최철호는 폐차장 주인에게 다가갔다.
“정말 그런 차가 들어온 적이 없습니까?”
“몇 번을 말합니까! 그런 차는 들어오지도 않았다니까!”
“희한하네. 분명 여기에서 폐차를 시켰다고 했는데…….”
“뭐, 뭐요?! 그 말 뜻은 뭡니까! 지금 내가 폐차할 차를 뒤로 빼돌렸다는 거요, 뭐요! 이 사람이 정말! 뭔 범인을 잡는다기에 영장이 없어도 3일 동안 참아 줬더니만?! 나도 이제 못 참아! 당신 어쩔 거야! 지금까지 내가 본 손해는 어쩔 거냐고!”
마치 찔리는 게 있는 듯 크게 화를 내는 듯한 그의 모습에 최철호는 끓는 화를 가라앉히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답답해서 제가 말이 헛 나왔나 봅니다. 손해 보신 것은 저희 서울청 광수대로 청구해 주십시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됐으니까 얼른 가 보쇼! 다신 오지 말고!”
‘개새끼. 넌 내가 무조건 딴다.’
그렇게 폐차장을 빠져나온 최철호는 담배를 물며 먼지투성이가 된 광수대 대원들을 응시했다.
“다들 사흘간 수고했고, 퇴근하기 전에 사우나 들러서 씻고들 가자. 오늘 누가 꼬미 설 차례지?”
빛가람파의 간부를 감시하는 잠복근무.
“용성이네랑 지호네요.”
“그래. 용성이랑 지호는 좀 더 수고해 주고…….”
띠리링! 띠리링!
“잠시만? 어, 최 팀장님! 미안한데…… 뭐?! 알았어요! 지금 갑니다!”
전화를 끊은 최철호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진짜 능력 좋다, 능력 좋아.”
삼겹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종혁의 연락.
종혁이 구태여 이 사실을 전달해 주었다는 건, 삼겹살이 뭔가를 저지르려 한다는 것일 터였다.
밥상을 차려 주는 것도 못 받아먹는다면 서울경찰청의 자랑인 광역수사대의 체면이 서질 않았다.
“뭐해! 얼른 시동 걸어!”
“예!”
그들은 다급히 차에 올라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폐차장 주인은 갈등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에이, 굳이 연락할 필요는 없겠지. 한강우 그 사람 차를 찾는 것도 아니고.”
* * *
쿰쿰하고 시멘트 흙먼지가 가득한 어느 공간.
피투성이가 된 한강우가 만세를 한 채 매달려 있다.
촤악!
“어푸! 어푸푸!”
“하, 새끼. 잠이 오냐?”
“헉!”
갑자기 들이민 험악한 얼굴에 기겁한 한강우.
그는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내가 왜…… 아.’
등기가 왔단 소리에 의아해하며 문을 열었던 그. 그 순간 그가 본 건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쇠파이프였다.
그리고 그 이후 기억이 없다.
‘자, 잠깐 그럼 여긴?! 이 사람들은?’
검은 정장을 입은 채 이쪽을 씹어 먹을 듯 노려보는 험악한 인상의 사람들.
철렁 심장이 내려앉는다.
“라…… 이트 엔터?”
“푸흐. 이봐요, 배우님. 이제야 좀 상황 파악이 되세요?”
“자, 잠깐! 잠깐만요! 이건 제가 다 설명드릴 수…… 우픕!”
입안에 천 뭉치가 들어온 한강우.
그의 심장에 공포가 엄습한다.
“읍! 으으읍!”
“팰까요?”
“놔둬. 곧 큰 형님, 아니 사장님 오신다.”
최대한 때리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이 뭐겠는가.
빛가람파의 보스, 삼겹살 자신이 직접 죽여 버리겠다는 뜻이다.
그 순간이었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흡?!’
저벅 저벅!
덩치들을 대동한 채 느긋이 걸어 들어오는 삼겹살.
“뭐야. 얘 상태 왜 이래? 내가 패지 말라고 했잖아.”
“끌고 올 때 맞은 겁니다, 사장님!”
“그래? 야, 이 새끼 내려.”
도르륵! 도르륵!
삼겹살은 눈앞까지 끌려온 한강우를 향해 씩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한 배우님? 그래, JC와 계약을 하셨다고?”
“읍! 으읍!”
삼겹살은 천 뭉치를 뺐다.
“푸하! 기, 김 대표님! 제가 다 설명…… 우붑!?”
콱!
한 손으로 한강우의 입을 틀어쥔 삼겹살.
“맞아요? 아니에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 한강우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우우우…….”
‘그건 맞지만!’
“우붑?!”
천 뭉치를 다시 입안에 욱여넣은 삼겹살.
한강우의 항문에 힘이 풀린다.
푸드드드!
“우우웁! 웁!”
‘살려 주세요! 살려!’
고약한 냄새가 풍기자 삼겹살의 미소가 더욱 흉악해진다.
“하, 이런 겁쟁이 새끼가 어떻게 조폭의 뒤통수를 칠 생각을 했을까. 왜? 지금까지 말로만 하니까 만만해 보였어?”
‘그, 그게 아닙니다! 저는……!’
“개새끼. 야, 이 새끼 잡아.”
“예, 사장님.”
부하들이 달려들어 한강우를 붙잡자 재킷을 벗은 삼겹살은 그대로 손뚜껑 같은 주먹을 휘둘렀다.
퍼어억!
튀어나올 듯 커진 한강우의 눈.
그와 동시에 다시 변이 쏟아진다.
푸드드득!
“……우우우우!”
아프다. 아팠다.
왜 이런 놈들과 연관이 된 걸까.
그냥 자수를 했으면 어땠을까.
뒤늦게 찾아온 후회에 한강우는 눈물을 쏟아 내며 고개를 저었지만, 삼겹살의 마음은 티끌만큼도 흔들리지 않았다.
“꽉 잡으라고, 새끼들아!”
뻐어억!
‘꺽! 꺼어억!’
마치 갈비뼈가 부러진 듯한 아득한 고통.
그러나 폭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끄으. 끄.”
“후우.”
“수고하셨습니다, 사장님.”
부하가 넘겨준 수건으로 땀에 젖은 얼굴과 피 묻은 주먹을 닦은 삼겹살은 피투성이가 된 한강우에게 침을 뱉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사장님?”
삼겹살은 혀를 찼다.
이미 그 영향력이 연예계뿐만 아니라 정재계에 고루고루 뻗어 있는 JC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었다.
“JC 뒤에 대단한 쩐주가 있다고 했던가?”
“예. 그렇지 않은 이상 JC 설립 당시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 바닥에 등장을 하자마자 압도적인 돈의 힘으로 연예계를 접수해 갔던 정영탁 대표.
심지어 나날이 덩치를 키워 가던 JYK의 지분을 모두 인사하여 JC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로 만들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쩐주가 누군지 밝혀지지 않았다. 빛가람파의 정보력으로도 말이다.
이건 삼겹살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거물이 쩐주라는 소리.
“쯧. 거지 같구만. 일단 이 새끼 JC와 계약 기간 동안 아무 짓도 못하게 만들어 버려.”
다리를 분지르든 교통사고를 내든 나을 때마다 중상을 입혀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드는 거다.
“그리고 계약 만료되면 장기 하나씩 뗀 후에 일본에 남창으로 팔아 버리고.”
한류스타로 일본에서 유명한 한강우.
분명 수요가 있을 거다. 이를테면 일본 변태 늙은이들에게 말이다.
“이 새끼 차는 잘 보관하고 있지?”
운이 좋아도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한강우가 차를 폐차시킨 폐차장 사장이 바로 삼겹살 본인과 꽤 인연이 깊은 인물이었다.
갑자기 연예인이 박살 난 차를 폐차시킨다기에 부리나케 달려갔던 그. 교통사고를 크게 낸 것 같은, 나름 세차를 한 것 같지만 혈흔이 남아 있는 차를 보고 한강우를 슬쩍 떠봤더니 알아서 불었다.
그래서 냉큼 차를 확보했었다.
“예, 사장님! 이곳 지하주차장에 잘 주차되어 있습니다!”
“계속 보관해 놔. 그게 저놈의 평생 목줄이 될 테니까. 그럼 저놈 병원에 던져 버리고 뒷정리…… 음?”
삼겹살은 한강우의 발치 아래 굴러다니는 황금 덩어리를 발견하곤 냉큼 집어 들었다.
“뭐야, 이건? 만년필?”
만년필 따위가 여기에 왜 있을까. 어울리지 않게 말이다.
“아, 이 새끼 건가? 하, 새끼. 좋은 거 들고…….”
후다닥!
“사장님! 형님-!”
뛰듯이 달려 들어오는 부하.
“뭐야? 지금 사장님과 이야기하는 거 안 보여?!”
“죄송합니다! 하지만 짭새가 떴습니다!”
순간 삼겹살의 얼굴이 구겨진다.
“……진짜 오늘 일진 거지 같구만.”
“모시겠습니다. 너, 너, 너! 이 새끼 둘러메고 따라오고, 나머지는 짭새들 못 쫓아오게 막아!”
“예!”
“가시죠.”
“쯧.”
여유롭게 재킷을 걸친 삼겹살은 부하 몇 명과 함께 탈출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서울 외곽의 허름한 6층 빌딩.
방치된 지 오래된 듯 외벽의 칠이 모두 벗겨진 건물을 멀리서 지켜보던 종혁이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들에 몸을 돌린다.
“오셨어요?”
그제야 주변 건물들의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최철호 대장과 서울청 광수대 형사들.
“삼겹살이 저기로 들어간 거요?”
“예. 그리고 오늘 다른 기획사와 계약을 맺은 한강우도 저기로 끌려갔죠.”
“……!”
최철호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종혁의 말은 지금 저곳이 납치 및 특수폭행의 현장이란 뜻이었다. 삼겹살 김가람을 구속, 아니 실형을 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삼겹살 김가람은 빛가람파라는 조직폭력배의 두목. 오늘 검거하면 못해도 12년이다.
“올 7월 인사이동 땐 어디로 갑니까?”
“예? 아, 외사국으로 갑니다.”
“에이, 텄네. 그다음엔 우리 광수대도 생각해 보쇼. 아니면 총경 달고 차장님으로 오시든가.”
“하하. 예, 생각해 보겠습니다.”
빈말이라도 좋기에 고개를 끄덕인 최철호는 빌딩을 응시했다.
“그나저나 뭔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한강우 이놈이 바보 같은 짓을 했구만?”
경찰이 왜 조폭을 싫어하겠는가. 이놈들에겐 법이 없기 때문이다.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가면서도 제 꼴리는 대로 사는 버러지들. 빛가람파는 그런 버러지들 가운데에서도 지독한 버러지다.
한강우가 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아주 큰 오판을 한 것이다.
“그럼 여기 계쇼. 밥상을 이렇게 떡하니 차려 줬는데, 떠먹여 달라고는 할 수 없으니.”
최철호의 불타는 눈을 본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한 게 별로 없는 서울청 광수대.
종혁은 선배 경찰의 체면을 세워 주기로 했다.
“그럼 전 뒤에서 도망치는 놈 있나 감시하고 있겠습니다. 한강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쇼.”
고맙다는 듯 웃어 준 최철호는 서울청 광수대의 전 대원들을 응시했다.
“삼겹살 집 셔터 내릴 준비됐냐!”
“예!”
캉, 캉! 따악!
광수대 대원들의 손에 들려 흉악한 빛을 내는 야구방망이나 각목들. 든든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최철호는 담배를 물며 몸을 돌렸다.
“가자.”
우르르!
‘휘유.’
“저건 좀 부럽네.”
명령 한 번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수십 명의 경찰들.
종혁이 바라는 모습이었다.
“와아아아!”
“죽여!”
“막아!”
종혁은 금세 소란이 일어나는 건물을 응시하며 담배를 물었다.
“외사국엔 믿을 만 한 놈이 좀 있으려나…… 응?”
지잉! 지잉!
종혁은 뒷주머니에서 갑자기 울리기 시작한 사각형의 기기를 꺼내 들었다가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
한강우에게 넘긴 황금만년필, 아니 녹음기 겸 위치추적기가 갑자기 움직이고 있다.
종혁은 한참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 광수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체면은 못 세워 주겠네.”
종혁은 핸드폰을 꺼내 들며 걸음을 옮겼다.
“예, 대장님. 삼겹살 도망치고 있습니다. 저 지금 거기로 가고 있으니까 대원들 좀 보내 주세요.”
한편 무사히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온 삼겹살이 저 멀리 한구석 박스들이 쌓여 있는 쪽으로 향한다.
“여깁니다, 사장님.”
덜컹!
박스들로 가려져 있던 문을 열자 다시 계단이 나타난다.
설계 미스로 인해 엄한 곳에 만들어 놓은 출입구.
조직에 피해를 주는 이들을 다그치기 위한 용으로 이 건물을 매입한 이후 이곳을 발견한 빛가람파는 그때부터 이곳을 비밀통로로 쓰기로 했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올 수 있는 4개의 계단 중 하나의 출입구도 모두 틀어막으며 말이다.
“너는 박스들 정리하고 위에 합류해.”
“예, 형님.”
“가시죠, 사장님.”
“음.”
뚜벅! 뚜벅!
계단을 올라갈수록 점점 커져 가는 소란.
“안가에 도착하면 변호사에게 연락해서 애들 빼 올 준비하고……. 이번엔 누가 들어갈 차례지?”
한강우가 지금 함께 있다지만, 저 빌딩에는 혈흔들이 너무 많다. 그중 반은 거의 실종 처리가 된 상태.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면 자수할 사람이 필요했다.
“현식이네 식구들이 들어갈 차례입니다.”
“그럼 현식이한테 넘길 업장들 정리해서 올리고, 내일까지 안가로 불러.”
“예.”
그러는 사이 계단을 모두 올라온 삼겹살은 아무도 없는 골목을 둘러봤다.
“차는?”
“저쪽으로 조금만 가시면 됩니다. 안내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삼겹살은 발을 뗐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그들의 눈에 어느 주택 앞 작은 공터와 커버가 씌워진 차량 두 대가 들어온다.
“음?”
공터에 발을 디디려는 순간 멈춘 삼겹살.
다급히 뒤를 돌아본 삼겹살을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들이 걸어온 길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그림자.
찰칵! 치이익!
“푸후우. 이야, 깡패 새끼들이 별짓을 다한다? 그거 한강우 씨 맞지? 살아 있냐?”
“……죽여!”
“이야아아압!”
한강우를 내려놓으며 달려드는 두 놈.
종혁은 느릿한 시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놈들을 향해 달려가 사이좋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빠각! 쩍! 쿠우웅!
종혁은 뒤에서 무너지는 놈들을 무시하며 삼겹살을 응시했다.
“가십시오, 사장님! 여긴 제가 막겠…….”
“비켜. 네 상대가 아니니까.”
다급히 막아서는 부하를 옆으로 밀어내며 앞으로 나서는 삼겹살.
“불도저?”
어디 종혁 같은 체격이 흔할까.
거기다 사진으로 본 얼굴이다.
“이야, 깡패 새끼가 내 얼굴도 다 알고 있고. 이거 영광이라고 해야 하냐?”
“저 새끼 때문이겠군.”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결국 한강우에게까지 도달한 거다.
‘쯧. 결국 저 애새끼를 죽이지 않는 이상 발목이 잡힌다는 소리군.’
주위에 다른 경찰이 없는 걸 보면 공명심에 혼자 온 게 분명해 보였다. 생각을 정리한 삼겹살은 재킷을 벗으며 사납게 웃었다.
종혁은 우람한 덩치를 드러내며 안 그래도 흉악한 얼굴을 더 흉악하게 구기는 삼겹살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휘유. 비계가 좀 두둑한데? 사료 좀 많이 드셨나 봐?”
“새끼!”
땅을 박찬 삼겹살은 종혁을 향해 달려들었고, 종혁 역시 그에게 달려들었다.
두두두두!
코뿔소가 두 마리가 서로를 달리면 이럴까.
서로를 부숴 버릴 듯 달려든 둘의 주먹이 허공에서 교차한다.
뻐어억!
주춤!
“어?”
“호오?”
사이좋게 한 발씩 물러선 종혁과 삼겹살은 서로를 놀랍다는 듯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