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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71화 (371/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71화>

    청담동에서 유명한 한정식집.

    한강우가 건물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편다.

    ‘100억…….’

    이 연예계 바닥에서 이런 계약금을 받은 존재가 있던가.

    한강우 본인보다 훨씬 일찍 톱스타가 된 이들도 받지 못한 금액.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어난다.

    “후우.”

    “형, 약속 시간 다 됐어요.”

    “그래……. 잠깐 한 대만 피우고 가자.”

    내디뎌지려는 발을 수습한 한강우는 얼른 담배를 물었고, 매니저는 얼른 그를 차로 안내했다.

    여배우도 아닌 남배우가 담배를 피우는 건 그리 큰 흠이 아니지만, 한강우의 이미지가 이미지다.

    바른 생활의 미남 배우.

    사소한 이슈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형, 그런데 괜찮을까요? 라이트 엔터요.”

    빛가람파의 라이트 엔터테인먼트.

    한 번 찍으면 어떻게든 소속으로 만들고야 마는 무서운 존재들.

    그런 그들이 계약 의사를 타진해 왔기에 다른 엔터에서도, 계약 기간이 고작 하루밖에 남지 않은 현 소속사에서도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장 오늘 12시, 앞으로 3시간만 지나면 계약이 종료가 됨에도 말이다.

    그런데 냉큼 JC와 계약을 맺는다?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지 걱정이었다.

    철렁!

    “누, 누가 바로 계약을 맺겠대?”

    매니저의 말처럼 한강우도 라이트 엔터테인먼트가 무섭다.

    조폭을 자주 볼 수 있는 연예계에서 살기에, 조폭들이 수틀리면 어떻게 나오는지 알기에 미치도록 무섭다.

    그래도 일단 말을 들어 보려는 거다.

    정말 그런 계약금을 줄 수 있는지,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지…….

    라이트 엔터테인먼트의 김가람 대표는 그 노숙자 소녀가 갑작스런 교통사고 때문에 죽은 거라고 했지만, 그걸 누가 믿겠는가. 분명 자신들이 차로 받아 죽여 버린 거다.

    즉, 그쪽도 찔리는 게 있단 소리였다.

    ‘그럼 그쪽도 쉽게 나설 수가 없지. 거기다 증거도 없다고 했으니까…….’

    증거가 있었다면 이미 그걸 가지고 협박을 하지 않았겠는가.

    어차피 사고가 난 차는 폐차시켜서 결정적인 증거도 사라진 상황.

    김가람 대표가 대체 어디서 한강우 본인이 낸 사고를 알아차리고 접근을 한 건지는 모르지만, 마냥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아니 이제 한강우 본인은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을 만큼 깨끗한 사람이 되었다.

    ‘여기에 만약 JC가 날 보호해 줄 수 있다면?’

    다른 곳도 아닌 JC 엔터테인먼트다.

    국내 업계 1위의 JC 엔터테인먼트.

    ‘그럼 이야기가 달라지는 거지.’

    한강우는 눈을 빛냈다.

    “후우우. 가자.”

    ‘씨발. 100억이라니!’

    구강청결제와 향수를 뿌려 담배 냄새를 제거한 한강우는 한정식집 안으로 들어갔다.

    “엇?”

    “하하. 예, 안녕하세요. 정영탁 님으로 예약이 됐을 겁니다.”

    “아, 예! 확인됐습니다. 이쪽으로.”

    예약된 방으로 안내 된 한강우.

    문이 열리자 정영탁이 몸을 일으킨다.

    ‘정영탁 대표!’

    전 국민이 IMF라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때, 홀연히 이 바닥에 등장해 고작 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업계 1위가 된 것도 모자라 가요계 2대 엔터테인먼트인 JYK를 자회사로 둔 입지적인 인물.

    컨택하는 연예인마다 업계 정상급 스타로 만드는 미다스의 손.

    ‘한강우.’

    대중들에겐 바른 생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개차반.

    제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나고 스타성이 좋다하더라도 인성에 문제가 있으면 결코 계약하지 않는 JC와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거기에 그 라이트 엔터테인먼트가 욕심을 내고 있다.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이 자리를 만든 건 종혁의 부탁 때문이었다.

    100억이라는 계약금까지 내놓으며 한 종혁의 부탁. 그러며 걸었던 조건들.

    그에 상황을 대충 눈치챈 정영탁은 마음껏 어울려 주기로 하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사진보다 훨씬 더 미남이시군요. 정영탁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표님! 한강우입니다!”

    둘은 각자의 마음을 숨기며 악수를 했다.

    “앉으시죠. 여기 음식들 좀 내와 주세요.”

    밖을 향해 외친 정영탁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이번에 개봉한 작품은 인상 깊게 봤습니다. 눈빛의 호소력이…… 왜 사람들이 한강우, 한강우 하는지 알겠더군요. 아, 데뷔작이 99년 단막극 집으로였던가요?”

    “헛! 그걸 보셨습니까?”

    “그럼요. 그때 딱 보고 아, 저 배우 뜨겠구나 싶었죠.”

    그렇게 시작된 입발린 말.

    한강우의 입이 주욱 찢어지기 시작한다.

    “하하. 저도 대표님을 얼마나 만나 뵙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저를요?”

    둘은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칭찬을 늘어놓으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 갔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강우는 조금씩 초조해져 갔다.

    ‘아씨, 얼른 본론을 꺼내라고!’

    그런 한강우의 얼굴을 본 정영탁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래도 배우라고 표정에 변화는 없지만, 그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한강우.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큼. 예.”

    “일단 계약금은 앞서 전달했다시피 100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끈!

    “배우님을 모셔 오려면 그 정도는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제가 그럴 역량이 될지…….”

    “엔터 사업이 뭐겠습니까. 연예인의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게 바로 엔터 사업 아니겠습니까. 전 배우님의 미래 가치를 100억으로 판단했을 뿐입니다. 배우님께서 그 수준이 되도록 만들 자신도 있고요.”

    ‘와, 씨발. 역시 업계 1위는 달라도 다르구나!’

    속으로 혀를 내두른 한강우는 때가 됐다며 연기를 시작했다.

    “하하. 저, 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순간 머뭇거리며 어두워지는 낯빛.

    누가 여자의 무기가 눈물이라고 했던가. 한강우 같은 미남의 눈시울이 붉어지자 정영탁의 가슴에도 절로 안타까움이 일어난다.

    모든 상황을 눈치채고 있는데도 말이다.

    ‘배우는 배우군.’

    “말씀은 감사하지만 이 자리에서 확답은…….”

    “배우님.”

    “예?”

    고개를 든 한강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전의 서글서글한 미소는 어디로 간 건지 냉혹하기 짝이 없는 눈빛.

    “JC가 어째서 업계 1위가 될 수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야 당연히…….”

    한강우는 입을 다물었다.

    높은 사람이 JC의 뒤를 봐주는 거 아니냐는 항간의 소문.

    정영탁은 마치 그게 맞다는 듯 차가운 미소를 짓는다.

    “라이트 엔터라……. 글쎄요. 그런 깡패 나부랭이들 때문에 갈등을 한다면 제 자존심이 좀 상할 것 같군요.”

    오싹!

    ‘미쳤다!’

    역시 생각대로다.

    이제 된 거다. 계약만 하면 라이트 엔터건 뭐건 해코지를 당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

    한강우는 찢어지려는 입을 겨우 추스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전 그런 의도가…….”

    “자, 그럼 제 의지도 전달했으니 다시 계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계약서를 검토하시면서 이야기를 나눠 보죠.”

    “아, 예!”

    정영탁이 내민 계약서를 받아 든 한강우는 살짝 놀랐다.

    파격, 파격, 또 파격.

    업계 최정상의 배우라고 한들 이런 계약서를 받아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나다.

    거슬리는 점은 딱 하나.

    [갑의 귀책 사유로 본 계약이 파기될 시 갑은 을에게 계약금의 3배에 해당하는 위약금을 지불한다.]

    계약금이 100억이니 무려 300억.

    현재 소유한 자산을 모두 판다고 해도 지불할 수 없는 액수.

    “아, 귀책 사유란 마약이나 미성년자 성매매, 살인 등 초대형 사고들을 말하는 겁니다.”

    움찔!

    “미, 미성년자 성매매요? 사, 살인?”

    “저희가 커버할 수 없는 상황, 즉 언론에 대서특필이 됐을 때를 이야기하는 건데……. 흠, 왜 그렇게 놀라시는 겁니까?”

    다시 몸이 굳은 한강우는 이내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그런 참담한 짓을 벌이는 사람이 이 바닥에 있나 해서요…….”

    “아.”

    정영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있지요. 참 많이. 혹시……?”

    한강우의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그 발언은 좀 불쾌하군요.”

    “하하, 죄송합니다. 당연히 아닐 건 알지만, 워낙 그런 사람이 많다 보니……. 물론 배우님께 그런 일이 있다고 한들 계약서에 사인만 하신다면 저희가 케어할 테지만요. 다만 미리 말해 주셔야 저희가 케어할…….”

    “절대 아닙니다. 절대로!”

    있다고 해도 어떻게 밝힐까. 계약 조건을 떨어트릴 말을 할 만큼 한강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러면 이런 우울한 이야기는 관두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아무튼 저희 JC의 입장은 그렇습니다.”

    정영탁은 다시 눈빛을 차갑게 가라앉혔고, 한강우는 불쾌한 표정을, 아니 순간 철렁였던 심장을 다독이며 계약서를 훑어봤다.

    “아무튼 그 계약서에 사인만 하신다면 배우님을 적극 보호할 예정입니다.”

    흠칫!

    “……보호라고 하신다면?”

    “물리적부터 정신적까지 배우님을 위협하는 모든 상황에서 보호를 해 드리겠다는 겁니다.”

    “헛!”

    “그러니 어떻게…… 이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악마, 아니 천사의 유혹이 이럴까.

    한강우는 내밀어진 황금으로 된 만년필을 쥔 정영탁의 손을 떨리는 눈으로 응시했다.

    “하, 진짜 왜 안 나오는 거야. 벌써 1시가 되어…… 강우 형!”

    주차장에서 초조하게 담배를 피우던 매니저는 정영탁과 환한 얼굴로 악수를 나눈 후 이쪽으로 걸어오는 한강우를 발견하곤 다급히 달려갔다.

    “형, 어떻게 됐어요? 한다고 했어요?!”

    “……종성아.”

    “네?”

    “그동안 고마웠다.”

    “헉! 사, 사인했어요? 했군요!”

    “그런 조건인데 안 할 리가 없잖아!”

    어디 사인만 했겠는가. 통장에 계약금 100억이 꽂히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온 길이다.

    한강우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참지 못했다.

    “으아아아아! 이제 내가 한국 최고 배우다-!”

    “와아아아아! 축하드려요, 형!”

    둘은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와, 씨! 이런 날엔 한잔 제대로 빨아 줘야 하는데 내가 내일 기자들 앞에 서야 하니까 참는다, 참아!”

    “헐? 웬일?”

    “뭐, 새꺄. 닥치고 운전이나 해!”

    “아, 예!”

    둘은 재빨리 차에 올랐고, 한강우는 운전석에 앉는 매니저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그런 그는 슈트 안주머니에 꽂아 넣은 황금 만년필을 만지작거렸다.

    계약을 하자마자 시작 된 JC 엔터테인먼트의 케어.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벽녘 고요하기 짝이 없는 오피스텔 주차장에 도착한 그들.

    드르륵!

    매니저는 한강우가 탄 뒷좌석의 문을 열며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어요. 들어가서 푹 쉬세요!”

    “그래, 너도 잘 들어가라. 아, 그리고 종성아?”

    “네?”

    한강우는 운전석으로 향하는 매니저를 불러 세우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동안 수고했다.”

    “헤헤. 아뇨, 형이 더 수고…….”

    “퇴직금은 섭섭지 않게 넣어 줄게.”

    “네?”

    지금 자신이 뭘 들은 것일까.

    매니저는 멍하니 한강우를 응시했지만, 한강우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더 짙어졌다.

    “이제부터 업계 1위의 케어를 받아야 하는데, 고작 이 바닥 3년 차인 너를 계속 매니저로 둘 순 없잖아.”

    주차장을 왕왕 울리는 소리에 매니저는 눈을 껌뻑였다.

    “에, 에이. 장난이죠? 그러지 마요. 정말인 줄…….”

    “진짜 수고했다. 그럼 간다.”

    “형? 형! 야, 한강우 이 개새끼야-!”

    등 뒤에서 욕설이 터져 나옴에도 한강우는 돌아보지 않았고, 매니저는 망연자실 한강우를 태우고 사라진 엘리베이터를 응시했다.

    주륵!

    “씨발…… 개씹새끼…….”

    그동안 수도 없이 지랄을 떨었어도 그래도 내 배우였던 한강우.

    처음으로 전담을 맡았기에 더 애틋했던 내 배우.

    지난 2년여의 함께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오래했으면 최소한 미안하다고는 할 수 있잖아, 개새끼야……. 최소한은…….”

    하지만 뭘 할 수가 없다. 그는 배우고, 자신은 지금 회사에 소속된 매니저였으니까.

    이런 게 사회의 쓴 맛인 걸까.

    매니저는 눈물을 훔치며 차에 올랐다.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부우웅!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승합차를 응시하는 중형차 안.

    목에 문신이 있는 한 사내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이야, 이 개새끼. 깡 좋네. 아니, 대가리가 멍청한 건가?”

    그의 전신에서 넘실거리는 짜증과 살의. 그건 운전석과 보조석에 앉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내는 핸드폰을 들었다.

    “예, 사장님. 지금 올라가는 거 봤습니다.”

    -정말 JC와 계약한 거 맞아?

    “제가 두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사장님?”

    -……푸흐. 우리 배우님께서 조폭을 물로 보시네.

    조폭이 왜 조폭인지 모른다면, 알게 해 주면 되는 거다.

    -잡아 와.

    “예, 사장님.”

    탁! 탁! 타타탁!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차에서도 내리는 조폭들.

    그들은 목을 풀며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멀리 세워진 차 안에서 그걸 지켜보던 어떤 사내들은 다급히 핸드폰을 꺼냈다.

    “최 팀장님! 흥신소입니다!”

    *   *   *

    클래식 선율이 울리는 BAR.

    문을 열고 들어온 정영탁이 테이블에 앉아 오렌지주스를 홀짝이는 종혁의 맞은편에 앉는다.

    “오셨어요?”

    “한강우 배우가 계약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자신은 살인이나 미성년자 성매매를 저지른 적 없다며 정색하더군요.”

    마치 이거냐는 듯 정영탁의 눈빛이 차가워진다.

    종혁이 100억을 내놓으며 걸었던 조건 중 하나.

    범죄 사실에 대해 물어봐라.

    종혁은 모두 눈치를 챈 듯한 그의 눈빛에 움칫 몸을 굳혔다.

    “그런가요…….”

    종혁은 씁쓸히 웃었다.

    한강우는 결국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놈은 결국 그런 놈이었던 거다.

    뿌득!

    ‘어차피 용서할 수 없는 놈이었지만, 정말 씨발 개새끼였다는 거네.’

    종혁이 CCTV에서 마지막으로 발견한 것.

    그건 바로 웬 빌라에서 교복을 입은 어린 여성을 끌어안고 나오던 한강우의 모습이었다.

    거나하게 취한 듯 비틀거렸던 한강우.

    이날 그는 3차까지 술을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표님의 신념에 위반되는 행동을 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몸을 일으킨 종혁은 진심을 담아 허리를 숙였다.

    “어이쿠, 아닙니다! 팀장님의 부탁이라면 이보다 더한 것도 해 드려야죠!”

    JC가 여기까지 클 수 있었던 이유가 뭐던가.

    종혁의 주머니에서 무제한으로 나오던 돈 덕분이다. 지금의 JC 엔터테인먼트를 만든 건 종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종혁은 정영탁에게 앞으로의 인생을 전부 바쳐도 빚을 다 갚을 수 없는 은인이었다.

    “그렇게 절 어려워하시면 더 이상 이런 부탁 못 들어 드립니다.”

    “하하.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그럼 더 이상 사과하지 않겠습니다.”

    종혁이 허리를 온전히 펴자 정역탁의 표정이 풀어진다.

    종혁은 그런 그를 향해 입술을 비틀었다. 사과가 끝났으니 이제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를 할 차례였다.

    “돈은 약속한 대로 50억은 가져가시고, 나머지 250억만 행복의 쉼터 재단에 기부해 주시면 됩니다.”

    곧 한강우에게 뜯어낼 위약금 300억. 종혁은 그중 50억을 주겠다고 흔쾌히 약속했었다.

    “어이구, 말 몇 마디 했을 뿐인데 그렇게 많은 돈을……. 그런데 왜 250억이나 재단에……?”

    “그 돈은 한강우에게 당한 피해자들에게 쓰일 겁니다.”

    한강우의 차에 치어 죽은 할머니의 유가족과 죽을 뻔한 정미정.

    앞으로 행복의 쉼터 재단에서 그들을 적극적으로 케어하며 부족함 없는 삶을 살게 해 줄 터였다.

    “정말 한강우가 그런 짓을 저지른 겁니까?”

    “아, 그게…….”

    지이잉! 지이잉!

    “잠시만요? 예, 최종혁…… 아, 그래요?”

    섬뜩!

    순간 낮아진 주변의 기운.

    심장을 엄습하는 살의에 정영탁이 눈을 크게 뜰 때,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누군가에게 다시 전화를 걸며 정영탁에게 미안함을 담은 미소를 보냈다.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군요. 예, 대장님. 최 팀장입니다. 삼겹살 움직였습니다.”

    종혁의 눈이 흉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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