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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68화 (368/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68화>

    짹짹짹.

    해가 뜨는 특별수사팀의 사무실.

    붉은 선과 동그라미가 그려진 지도가 붙어 있는 화이트보드 앞에 종혁이 서 있다.

    붉은 선과 동그라미는 지난 일주일간 정미정이 움직인 동선. 혹여 미정에게 불안감을 심어 줄까 봐 그 동네 CCTV를 모두 수거해 밤새 판독한 결과다.

    “드르렁!”

    종혁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오택수를 일견하곤 다시 화이트보드를 응시했다.

    “……단순하네.”

    단순해도 이렇게 단순할 수 있을까.

    덕분에 고작 반나절 만에 일주일 치 이동 동선을 알아내게 됐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해가 뜨고 저물 때까지 주변 편의점과 자판기, 그리고 해가 저문 뒤부터는 의류수거함과 쓰레기통.

    일요일엔 세정고 근처의 교회.

    미정은 나흘 전에 동사무소 화장실을 이용해서 씻은 것 한 번을 제외하곤 지난 일주일 동안 오직 이 루트만을 반복해서 움직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혹시 바닥에 돈이나 담배가 떨어져 있진 않나 땅만 보고 걸었다. 낮에도 밤에도.

    “흠.”

    종혁은 화이트보드를 돌렸다.

    뒷면엔 미정을 감시하던 놈의 사진과 붉은 줄이 그어진 지도가 붙어 있었다.

    “이놈이 미정이의 주위를 얼쩡거리기 시작한 게 일단 일주일 전.”

    시간이 부족해 일주일 분량만 살폈을 뿐, 어쩌면 그 이전부터 미정을 감시했을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심상치 않은 상황.

    종혁은 컴퓨터를 바라봤다.

    “그 좁은 동네에 뭔 사건사고가 저렇게 많은 건지…….”

    작년 9월부터 발생한 사건들을 죄다 살펴볼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미정이 대체 어떤 일과 엮여 있는지 모르기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둬야 했다.

    “어그그! 몇 시야…….”

    “7시예요.”

    “어으, 일어날 때가 되긴 했네.”

    쩍 크게 하품을 하며 일어난 오택수는 머리를 긁으며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그래서 이 새낀 뭐하는 놈인데?”

    “외부 동선이 파악되면 알게 되겠죠.”

    골목골목으로 튀었는지라 종혁을 보호하는 SVR 요원들도 놈을 놓쳤는데, 다행히 놈이 뭘 타고 어디서 내려 미정을 찾는지는 파악이 됐다.

    어젯밤 경찰의 검문에 도망칠 때 운 좋게 CCTV 사각으로 사라졌지만, 오택수가 일주일 치를 모두 뒤진 결과 알아내게 되었다.

    번호판 가려진 오토바이를 타고 움직인 놈. 추적에 애를 먹겠지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입술을 비틀던 종혁은 아차 했다.

    “그보다 특수본은 좀 어때요?”

    종혁 대신 특별수사본부에 합류한 오택수와 최재수.

    그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바쁜 와중에도 도와줘서 말이다.

    “어떻긴…… 아주 그냥 미쳐 날뛰고 있지.”

    종혁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일단 일진 무리부터 찾아서 족쳐라.

    특수본의 경찰들은 그동안 범죄를 저질렀어도 청소년이기에 함부로 다룰 수가 없어 쌓이기만 했던 스트레스를 모두 분출시키고 있었다.

    “푸핫! 그래요?”

    “웃을 일이 아니다, 최 팀장.”

    그렇게 일진들을 모두 잡아넣으니 그동안 일진들의 억압에 짓눌려 있던 피해 학생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고, 범죄 사실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파도 파도 끝없이 나오고 있었다.

    현재 밝혀진 것만으로도 교육부를 해체하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하아. 뭔 놈의 애새끼들 범죄가 그렇게 지독하냐?”

    강제적인 원조교제는 예사인데 그 수법이 코가 막히고 기가 막힌 수준이다. 화상채팅으로 몸매부터 보게 만들어 성매매자를 구하고 있었다.

    심지어 메신저나 미니홈피로 마약까지 팔고 있었다.

    “마, 마약이요?”

    “그뿐인 줄 아냐? 강제적으로 인터넷방송인지 뭔지도 시키더라!”

    중학생 소녀가 속옷만 입은 채 춤추는 걸 본 순간 오택수는 혈압이 터지는 줄 알았다. 거기에 섹스비디오까지.

    고작해야 십 년 전에 파란 양말이라는 미성년자 포르노 비디오가 청계천 일대를 나돌며 경찰 내부를 들썩이게 했는데, 지금은 한 놈 걸러 한 놈이다.

    포르노를 찍지 않은 놈이 없다.

    여기에 왕따와 왕따로 인한 자살, 금품 갈취, 폭행, 절도, 강도, 협박 등 차마 말로 옮길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이놈들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십대 청소년들의 범죄가 이미 성인 범죄의 영역에 들어섰다는 거다.

    “허어…….”

    ‘벌써 이 수준이라고?’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대두되기 시작하는 청소년 범죄의 잔인함.

    ‘하긴 이런 밑바탕이 있기에 미래에 그렇게 되는 거겠지.’

    범죄 수법의 진화는 결코 단계를 훌쩍 뛰어넘지 않는다. 계단을 밟듯 조금씩 진화해 가는 거다.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단계를 훌쩍 뛰어 버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뿐이었다.

    “지금 이것 때문에 상부랑 특수본이 뒤집어졌잖아. 시도 의원들이나 국회의원, 부자들의 전화가 아주 빗발치더라.”

    “……하?”

    종혁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누굽니까? 어떤 씨부럴 새끼들이 과장님과 청장님을 괴롭히는 겁니까?”

    “흐흐. 왜? 살생부 쓰게?”

    “오 경감님은 안 쓰시게요?”

    “난 이미 목록 정리했지. 좀 더 지켜보다가 싹 다 정리해서 브리핑할게.”

    “오케이.”

    순간 눈빛이 흉흉해졌던 둘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기지개를 켰다.

    “어그그그! 그럼 수고해라. 지원 필요하면 말하고.”

    “오 경감님도 열심히 수고하세요.”

    오택수는 머리를 긁으며 수사본부로 향했고, 종혁도 자료들을 싹 다 챙겨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   *

    부르릉!

    세정고 뒤편 조립식 건물 앞에 오토바이를 탄 종혁이 멈춰 서자 미정이 문을 벌컥 열고 나온다.

    “아저씨!”

    “뭐야, 뭐 이렇게 일찍 왔어?”

    등굣길에 태워 주기 위해 8시에 연락을 했더니 이미 학교라 말한 미정. 어젯밤 얼마나 뽀득뽀득 씻은 건지 더 이상 노숙자라고 볼 수 없는 말끔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유미 넌…… 어제 집에 안 들어갔냐?”

    여자아이, 김유미의 옷차림이 어제와 같았다.

    “아, 그게 어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학생이 교복도 안 입고 잘하는 짓이다.”

    “네?”

    “왜?”

    “아, 아뇨. 어…… 원래 어른들은 이럴 때 외박했다고 뭐라 하지 않아요?”

    종혁은 코웃음을 쳤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무슨. 됐고, 옜다.”

    “네? 카, 카드는 왜?”

    “지금부터 난 잘 테니까 알아서 점심 시켜 먹으라고. 참고로 토요일도 중식 제공이고, 간식은 냉장고랑 싱크대 찬장에 있다. 그럼 수고해라. 하아암.”

    하품을 크게 한 종혁은 조립식 건물 안에 놓인 침대에 몸을 던졌고, 10초도 되지 않아 곯아떨어졌다.

    그런 종혁의 뒤를 쫓아온 미정과 유미는 그 모습에 어이없어하다가 이내 미정의 손에 들린 카드를 빤히 응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종혁이 카드를 쓰라고 했음에도 살짝 꺼려진 둘은 슬그머니 냉장고를 열었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와!”

    냉장고 안에 마트가 있었다.

    띠리링! 띠리링!

    “아저씨, 전화…….”

    번쩍!

    미정이 부르기도 전에 눈을 뜬 종혁은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예, 최종혁입니다.”

    방금까지 잤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또렷한 목소리.

    -떴습니다.

    씨익.

    “그래요?”

    종혁의 눈에서 잠이 달아났다.

    *   *   *

    -아이러니,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아이러니, 말도 안 돼.”

    종혁이 얻어 준 미정의 숙소가 잘 보이는 도로의 승합차 안.

    선팅이 짙어 안이 잘 보이지 않은, 일명 축제차량이라 불리는 차 안에 앉은 사내가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미정의 숙소를 응시한다.

    어제 불시검문을 당한 이후 급히 구해 끌고 온 대포차.

    하지만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다.

    사내는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는 다리를 움켜쥐었다.

    ‘사라졌다.’

    지금쯤 한참 자판기를 뒤지고 있어야 할 미정인데, 동네를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다.

    감쪽같이 증발했다.

    “빌어먹을! 아침에 왔어야 했나.”

    하지만 대포차를 구하느라 어쩔 수가 없었다.

    “씨발. 이제 곧 정기 보고인데!”

    잠깐은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미정을 놓쳐 버린 것 같아 사내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제발 저 원룸에 있어라. 제발…… 어?”

    무언가를 발견한 사내는 눈을 부릅떴다.

    ‘그놈이다!’

    어젯밤 본 종혁이다.

    그리고 미정이다.

    어딜 다녀온 건지 어슬렁거리며 걷는 종혁을 보며 꺄르르 웃는 미정을 보니 분노가 울컥 솟는다.

    “저 씨발년이……. 하아, 다행이다. 다행이야.”

    죽다 살아난 기분.

    미정을 놓쳤더라면 한 덩이 시멘트가 되어 인천 앞바다에 수장됐을지도 모른다.

    시간을 확인한 사내는 얼른 핸드폰을 들었다.

    “예, 사장님. 노숙자년 정말 가출팸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상 없습니다.”

    -알았어. 끊어.

    뚝 끊긴 전화를 보조석에 던진 사내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식은땀을 닦았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미정을 죽일 듯 노려봤다.

    “개 같은 년.”

    사내는 그제야 귓속에서 들리는 노래를 음미할 수 있었다.

    -로꾸거 로꾸거!

    달칵!

    원룸 건물의 불이 모두 꺼진 걸 확인한 사내는 그제야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켰다.

    우두두두두둑!

    “아으으! 씨발, 뒈지는 줄 알았네.”

    아무래도 내일은 다른 놈에게 감시를 맡겨야 할 것 같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장시간 앉아 있느라 부러질 것 같던 척추를 푼 사내는 돌연 꼬르륵 울리기 시작하는 배를 움켜쥐었다.

    “그러고 보니 뭘 제대로 먹지도 못했네.”

    이전에야 미정의 동선을 모두 다 알고 있기에 잠시라도 밥 먹을 시간을 냈지만, 동선이 모두 틀어진 지금은 그럴 수조차 없었다.

    고작해야 삼각김밥과 컵라면.

    그것도 원룸 건물이 잘 보이는 곳에 편의점이 있었기에 컵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었던 거다.

    아니었다면 빵과 우유만 먹었어야 했을 거다.

    “근데…… 가출팸 맞나?”

    어제는 장을 보더니 오늘은 TV나 컴퓨터, 화장품들을 샀다. 아무리 봐도 종혁은 역시 포주 같다.

    “새끼 사람 장사 좀 할 줄 아네.”

    대가리가 어느 정도 있는 이십대야 언제 튈지 몰라 숙소를 잡아 줘도 별도로 감시를 해야 하지만, 십대는 필요한 걸 사 주고 같이 지내는 사람만 있으면 도망치지 않는다.

    특히나 저렇게 가출했다면 백 퍼센트다.

    그리고 저렇게 먹이고 살찌운 후에야 몸 장사를 하게 만든다.

    한 번 몸을 굴리기 시작하면 투자한 돈을 뽑아내는 건 순식간.

    “아무리 봐도 이쪽 바닥에서 좀 굴러 본 놈 같은데…… 쯧. 내가 뭔 상관이야.”

    자신은 그저 미정을 감시만 하면 된다.

    “가자, 가.”

    차에 오른 사내는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는지도 모른 채 시동을 켰다.

    부르릉!

    골목을 빠져나가는 차.

    그와 동시에 근처에 있던 두 대의 차에도 시동이 걸리고, 그중 한 차는 사내의 뒤를 쫓는다.

    “하, 씨파 새끼. 이 나이에 컵라면 같은 거 자꾸 먹으면 골병드는데.”

    “그러게 한 명씩 교대로 먹자고 했잖습니까.”

    “시끄러워. 전화할 거야. 예, 형사님. 이 새끼 출발했습니다. 2조가 따라붙었습니다. 예, 예. 이따가 뵙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사내는 운전석에 앉은 다른 청년을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출발해.”

    “옙!”

    부르릉!

    *   *   *

    부아앙! 빵빵!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번잡하기 그지없는 6차선 도로가에 멈춰 선 새빨간 오토바이 한 대.

    헬멧을 벗은 종혁이 오토바이를 만지며 아쉬워한다.

    혹시 모르기에 출근길에 타고 왔던 오토바이.

    이렇게 미행이 쉬울 줄 알았으면, 그것도 고작 하루 만에 나타날 줄 알았다면 어젯밤 오택수를 부르지 않을 걸 그랬다.

    “아, 씨부럴 새끼. 괜히 빚만 졌잖아.”

    검문도 당했으니 당분간, 어쩌면 아예 나타나지 않을 거라 여겼던 놈.

    “개새끼.”

    종혁은 오토바이에 헬멧을 올려놓은 후 근처에 세워진 승용차에 다가섰다.

    그와 동시에 열리는 승용차의 문.

    “오셨습니까, 형사님!”

    고개를 끄덕인 종혁이 도로 맞은편에 세워진 건물들을 응시하며 담배를 문다.

    찰칵! 치이익!

    서늘한 바람에 흩어지는 담배 연기.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저기라고요.”

    죄다 7층 이상의 건물들이다.

    평균 월세만 천만 원이 넘는 동네의 도로가에 위치한 건물. 건물 매매가는 못해도 60억 이상일 거다.

    ‘진짜 누구와 얽힌 거냐, 미정아…….’

    심장에서 스멀스멀 불길함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괜찮아. 미정이에게 피해가 가기 전에 모가지 돌리면 돼.’

    종혁은 애써 가슴을 두드리며 손을 뻗었다.

    “어떤 건물입니까? 저겁니까?”

    “아뇨. 그 옆에. 그 옆에…… 예, 그겁니다! 그 건물 4층이요.”

    “네? 저기요?”

    건물의 간판을 확인한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저곳에서 미정이를 감시한다는 말인가?

    “예! 저기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걸 똑똑히 봤습니다! 올라가는 것도요!”

    종혁은 멍하니 흥신소 직원이 가리킨 건물의 4층을 봤다.

    [LIGHT entertainment]

    연예기획사였다.

    ‘미정아, 너 진짜 뭐하는 놈들과 얽힌 거냐.’

    종혁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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