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66화>
삐용! 삐용!
구급차와 사람들이 찾아드는 응급실.
지이잉!
문이 열리며 경찰 정복을 입은 정용진 과장이 굳은 얼굴로 들어온다.
그러다 응급실 한구석 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종혁을 발견하곤 발걸음을 옮긴다.
뚜벅! 뚜벅!
“아아. 아, 거 좀 살살 감읍…… 어? 어이구, 오셨습니까? 아, 거참 쪽팔리게.”
십대에게 얻어맞은 게 뭐 자랑이라고 이렇게 찾아온 걸까.
붕대나 파스를 붙인 종혁의 상처 부위를 무심한 눈으로 응시하는 정용진.
“괜찮습니까?”
“아, 예. 어디 부러진 곳은 없고 단순한 타박상입니다. 저보다는 뭐…….”
빠악!
“악! 왜, 왜 때리세요!”
“그냥 좆같아서. 이놈들이 문제죠.”
깁스를 한 놈의 팔을 후려친 종혁은 씩 웃었고, 정용진은 깁스나 붕대를 한 주위 학생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 무정한 시선에 몸을 움츠리며 시선을 피하는 아이들.
정용진은 다시 종혁을 봤다. 그제야 그의 입가에 평소처럼 푸근한 미소가 맴돈다.
“많이 다치지 않았다니 다행이군요. 일주일 정도 푹 쉬고 출근하세요.”
“옙! 충성!”
고개를 끄덕인 정용진은 몸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과장님.”
멈칫!
종혁은 멈추는 정용진을 보며 씩 웃었다.
“판 깔았습니다.”
“……쉬세요.”
뚜벅뚜벅!
종혁은 멀어지는 정용진을 응시하다가 근처에 있던 의사를 불렀다.
“들었죠? 일단 오늘만 좀 신세 집시다, 선생님.”
“아니, 환자분은 굳이 입원을 하지 않으셔도…….”
“VIP로!”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종혁은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 드는 의사의 모습에 낄낄 웃으며 몸을 뉘였다.
‘어이구, 좋다.’
한편 응급실 밖으로 나온 정용진은 잠시 완연한 봄의 시원한 바람을 맞다가 피식 웃었다.
판을 깔았다는 종혁의 말.
“대체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는 건지…….”
유능한 부하는 좋다지만, 이렇게까지 유능하면 섬뜩하기만 하다.
물론 그래서 더 좋지만 말이다.
정용진은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청장님. 간편신고관리과의 정용진 과장입니다.”
-판이 깔렸나 보군.
“예. 이번에도 최 팀장이 예쁘게 깔았습니다.”
-……경찰에 인재가 이렇게 없나 싶군.
어떻게 걸려도 또 종혁이 걸린 걸까.
얼마 전 청원 경찰 폭행사건으로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십대들의 폭력성.
민중의 지팡이로서 결코 좌시할 수 없고, 또 이번에 세운 학교폭력센터의 활성화를 위한 것도 있기에 고위 간부들끼리 은밀한 협의하에 유능한 경찰들을 위험성이 다분한 학교들에 급파했다.
하지만 반반이었다.
솔직히 몰아칠 증거나 명분이 생기면 좋고, 생기지 않으면 어쩔 수 없던 이번 일.
혹여 이 악물고 달려들었다가 학생 인권을 탄압하는 경찰, 교육부의 영역을 월권하는 경찰, 독재 경찰 등의 기사 제목이 써지면 안 되기에 파견하는 경찰들에게도 사정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파견된 경찰들 가운데 종혁이 가장 먼저 성과를 올렸다.
-쯧. 알았어. 시작해. 최 팀장에겐 내가 따로 전화해 놓지.
“예. 그럼 현 시각부로 학교폭력과의 전쟁 특별수사본부 설치하겠습니다. 충성.”
쿵!
그랬다. 이 일은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할 만큼 중요하게 다룰 일이었다.
그렇게 통화를 종료한 정용진은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힐끔 응급실을 응시한 정용진은 피식 웃으며 발을 떼었다.
* * *
청원경찰 집단 폭행? 도를 넘은 십대들!
경찰! 학교폭력과의 전쟁 선포? 아니, 십대 범죄와의 전쟁 선포!
학교폭력신고센터, 학폭 신고 받는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소년 범죄!
현몽준 당대표, 소년법 개정안 발의!
박명후 대통령 후보, 선거 공약 수정!
현몽준 당대표와 박명후 후보의 밀회 포착?!
여야의 만남! 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2007년 대선 시즌, 종혁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휘유. 난리가 아니구만?”
바깥뿐만 아니라 세정고도 마찬가지다.
훈방 조치 등으로 풀려난 학생들의 사건까지 전면 재조사에 들어가며 세정고 학생들 가운데 반수 이상이 경찰서로 끌려가게 되었다.
범죄 사실이 없어 끌려가지 않은 학생들도 자숙을 하니 세정고 선생들은 평생 오늘만 같으라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그나저나 이 양반은 언제 이런 걸 준비했대?”
현몽준이 발의한 소년법 개정안.
꽤 제대로였다.
촉법소년 보호 연령대를 낮추는 것부터 시작해, 가난한 가정사에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대책, 미성년자가 담배나 술을 구입하면 판매한 업주뿐만 아니라 구입한 미성년자까지 처벌하는 내용 등 거의 소년법을 뜯어고치는 수준의 개정안이었다.
‘촉법소년 연령대 낮추는 건 2022년에나 가시화됐던 건데…….’
“진짜 징글맞게 쌓아 둔다, 쌓아 둬.”
사건이 터지자마자 개정안을 내놓는 게 무슨 의미겠는가.
정치권에선 이미 예전에 이 일을 논의했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지금까지 묵살되었다는 소리다.
“뭐 그래도 나로선 땡큐지.”
개정안이 발의된 게 어딘가.
아니, 멀지 않은 미래 제17대 대통령이 되는 박명후와 은밀한 회담을 나눴으니, 뭘 주고받았을지는 모르지만 서로 웃으며 헤어지는 장면이 사진에 찍혔으니 이 소년법 개정안은 통과될 확률이 높다.
미래보다 십수 년은 앞선 법 개정.
이로써 억울한 피해자들은 더욱 줄어들게 될 거다.
“허흠.”
“음? 아, 교장 선생님.”
비치 체어에 누워 낄낄거리던 종혁은 다가온 교장의 모습에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저번 주에 꽤 다치셨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말입니다.”
병원에 입원하느라 토요일에도 빠졌던 종혁.
“걱정해 주신 덕분에 다 나았습니다.”
“커흠.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돌아선 교장은 잠시 몸을 멈췄다.
“……합니다.”
“예?”
“어흐흠!”
교장은 발을 빠르게 움직였고, 종혁은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라…….’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도 말한 교장 선생님.
“그래, 저런 선생님도 계셔야지.”
학생은 선생이 계도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선생이 말이다.
종혁은 나른하게 웃으며 드러눕다 돌연 얼굴을 구겼다.
“아니, 생각할수록 열 받네? 왜 나는 특수본에 참가하지 못하는 건데?”
간편신고관리과 정용진 과장이 본부장인데, 산하 수사팀 1팀장이자 이번 일에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한 종혁 본인은 합류 명단에서 제외됐다.
고생했으니 쉬라는 의미였지만, 그 안에 정치적인 의미가 깔려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는 종혁이었다.
너무 잘나가는 종혁을 보호하기 위해 잠시 현장에서 떼어 놓은 경찰 상부, 아니 이택문 경찰청장과 정용진 과장.
종혁의 경쟁자, 다른 경정들의 경계심을 늦추기 위한 의도일 테지만…….
“내가 뭔 애새끼도 아니고…… 에라이, 씨부럴.”
어찌 됐든 자신을 위한 일에다 인사고과도 두둑하게 받았기에 종혁은 아쉽지만 여기서 참고 넘기기로 했다.
“그러니 올 거면 얼른 와라. 사내새끼들이 좀스럽게 숨어 있지 말고.”
움찔!
조립식 건물 코너에 숨어 있던 박유성과 패거리들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하, 하. 안녕하세요.”
종혁은 낯빛이 붉어진 박유성을 심드렁히 응시했다.
“고맙다.”
“……예?”
“고맙다고.”
그런 상황에서 약자의 편을 든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사정이 어찌 됐든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불의를 참지 못하게 된 것만으로도 경찰로서 고마웠다.
특히나 주먹을 휘두르며 세상을 제 것처럼 여기며 살아왔던 아이들이기에 더욱더.
이런 부류의 아이들이 정신을 차리는 건 보통 사십대가 되어서다.
더 이상 힘으로 세상을 어찌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나이.
완력이 떨어지는 나이. 먹고살 돈조차 없어지는 나이.
그래서 이들의 변화가 너무 놀라웠다.
‘아니면, 어쩌면 원래 이런 아이들이었을 수도 있지. ……나도 참 편견이 많아.’
1짱을 가린다며 쌈박질이나 하는 놈들이라고 무시했던 거다.
종혁은 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
“왜? 나처럼 되려면 어떡해야 되냐고?”
“어, 으! 네!”
“초등학교 점수는?”
“네?”
“너희가 초등학교 때 시험 평균 점수가 얼마였냐고. 그렇게 쌈박질하기 전에.”
“……자, 잠시만요! 엄마! 나 초등학교 때 시험 평균 점수가 얼마였어?”
“엄마, 난데!”
종혁은 곧바로 엄마부터 찾는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90점? 응! 알았어! 90점이래요!”
“전 91점이요! 100점 맞은 것도 있대요!”
“뭐? 91점? 그럼 난 92점!”
“구라 치지 마! 네가 92점 맞았다고?”
“뭐!”
종혁은 다투기 시작한 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으로 대가리들은 있네.”
수많은 운동선수들 가운데 메달을 따는 선수가 따로 있듯이 공부 역시 재능이다. 제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넘지 못할 선이 있다.
“어? 그럼?”
“공부하고 운동해.”
“……네?”
“아, 이 말을 빼먹었네.”
비치 체어에서 몸을 일으킨 종혁은 눈빛을 차갑게 굳히며 박유성들을 응시했다.
“정말 뒤질 만큼 이대로 계속하다간 정말 뒤질 만큼 하루에 코피 한 번 이상 쏟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공부하고 운동해. 그럼 나처럼 될 수 있다. 난 그렇게 했어. 3년 동안.”
어디 운동과 공부를 겸하는 게 쉬울까.
경찰대에 가기 위해 정말 죽어라 노력했다.
“그, 그렇게나요?”
“그럼? 세상에 공짜로 얻는 것도 있어?”
박유성들이 뭘 원하는지는 모른다.
경찰일 수도 있고, 단순히 멋지고 잘나 보이는 모습을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이든 노력을 하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그렇게 못하겠다면 그냥 여태까지 너희가 그래 왔던 것처럼 다신 오지 않을 십대를 즐기다가 아무 대학이나 가고 밑바닥 인생 살아.”
아무 때나 주먹 휘두르고 술 마시는 삶.
누구도 좋아해 주지 않는 밑바닥 인생.
“너희가 좋아하는 폭주라도 뛰면서.”
박유성의 패거리들은 송곳보다 더 아프게 가슴을 후벼 파는 종혁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한 말과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이런 말을 할 거라면 왜 고맙다고 한 것일까.
“……그렇게 하면 돼요?”
“음?”
종혁은 눈빛이 굳어 가는 박유성을 봤다.
아직 말랑말랑 흐물거리지만 단단해지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렇게 하면 정말 형사님처럼 멋지게 될 수 있어요?”
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 충분히.”
“……네, 알았어요. 기대해요. 꼭 그렇게 될 테니까.”
박유성은 주먹을 꽉 쥐며 돌아섰고, 종혁은 그런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곧 중간고사지? 중학교 때보다 20점만 올려 봐. 그럼 이 형이 선물 준다!”
“……!”
이까지 악문 박유성들은 힘차게 걸음을 옮겼고, 종혁은 꿈을 꾸기 위해 노력을 시작하려는 그 작은 등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20점. 말은 쉽다.
하지만 여태까지 어떤 시험을 치르든 찍었을 게 분명한 저들이라면 아마 머리가 터져 버릴 만큼 힘들 거다.
제로에서 시작해야 될 테니 말이다.
“어디 한번 해 봐.”
그게 얼마나 되든 저 수준에서의 노력은 결코 배신을 하지 않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도 얻는 건 있을 것이다.
“어우. 이젠 정말 쉬어 볼…… 응?”
등을 뒤로 젖히던 종혁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미정을 발견하곤 다시 미소를 지었다.
“생각은 좀 해 봤어?”
오늘도 다정함이 가득 담겨 있는 말.
울컥한 미정이 입술을 깨문다.
“……할래요. 하게 해 주세요.”
지난주 종혁에게 따뜻한 제의를 받은 이후 모든 게 힘들어졌다.
거리에서 자는 것도, 굶주리는 것도, 쓰레기통을 뒤져 끼니를 때우는 것도, 심지어 씻지 못해 가려운 것도 이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뭐든지 할 테니 제발…….
미정은 간절함을 담아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래. 그러자.”
“지, 진짜요?!”
“뭘 그렇게 놀래? 내가 먼저 권했는데.”
“아저씨…….”
“아저씨 아니고 오빠…… 아니다, 됐다.”
액면가로는 열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속에 든 내용물은 거의 환갑이 다 되어 가는 아저씨였기에 종혁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읏챠, 그럼 가 보실까?”
“네? 어딜요?”
“어디긴 어디야. 네가 살 곳 계약하러 가야지. 나 막 노동자에게 숙소도 주지 않는 그런 악덕업주 아니다.”
“네에?! 아, 아뇨! 저는 여기서 살아도 충분…….”
“밤에는? 새벽에는 어쩌려고?”
경찰인 종혁조차도 늦은 밤, 이런 곳에 혼자 있으라면 꺼려진다.
“그, 그냥 문 잠그면…….”
따악!
“악!”
“시끄러워, 쨔사. 여자애가 뭔 조심성이 그렇게 없어? 너 그렇게 조심성 없이 살다간 진짜 큰코다친다.”
“……흑!”
꿀밤이 아팠던 것일까.
또다시 울려고 하는 미정의 모습에 씁쓸히 웃던 종혁은 아차하며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CCTV에서 뽑아낸 거라 그리 좋지 못한 화질의 사진.
“야, 미정아. 너 이 사람 아냐?”
“……아뇨?”
“그래?”
‘그럼 이건 누구야?’
새벽녘 조심스럽게 교문을 넘던 미정과 청소를 마치고 다시 교문을 넘던 미정을 끝까지 지켜본 인물.
종혁은 사진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넌 또 뭔데?’
갑자기 고약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