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60화>
91. 편견
부우웅! 빵빵!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출근길.
-추적은 거의 다 되어 가는 것 같아. 어떡할까?
“일단 묻어 둬야죠.”
놈들을 찌를 최적의 타이밍.
그때까지 묵혀 둬야 했다. 묵히면 묵힐수록 더 많은 게 드러날 테니 말이다.
-그러지. 출근 잘하고.
“예. 차장님도 오늘 하루 파이팅입니다.”
전화를 끊은 종혁은 라디오를 켰다.
-한미 FTA 협상이 공식 타결됨으로써…….
-다음 소식입니다. 북악산이 45년 만에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되면서 봄나들이를 위해 찾은 등산객들이 많아졌는데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종혁이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느새 가로수 아래 피기 시작한 꽃들.
“어제까지만 해도 겨울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시간이 참 빨리 흐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따뜻한 봄이 왔음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 종혁은 부드럽게 차를 몰아 본청으로 향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으. 좋은 아침입니다…….”
“하. 진짜 말로 할 때 좀 불자. 어?”
날을 샌 형사들과 아침부터 취조를 받는 범죄자들로 시끄러운 특별수사팀 사무실.
벌써 출근해 운동을 간 건지 의자에 외투가 걸쳐져 있는 최재수와 오택수의 자리를 힐끔 본 종혁은 자신의 자리에 놓인 한 장의 쪽지를 발견하곤 눈을 껌뻑였다.
출근하자마자 대회의실로 오시랍니다.
“뭐야, 이건.”
일단 최재수의 필적이 확실했다.
“아따, 대가리 깨지……. 어, 최 팀장. 출근했어?”
“어제 숙직실에서 주무셨나 봐요?”
“아, 어제 한잔혀 가지고…… 한 번만 더 술 취해서 들어오면 내쫓는다고 했거든. 그런디 그건 뭐여?”
“글쎄요?”
종혁은 쪽지를 보여 줬고, 2팀장 김판호는 눈을 크게 떴다.
“어? 나도 그 연락 받았는디?”
“그래요? 어디서요?”
“생활안전국이라던디? 어떤 젊은 시키가 뭔 일인지는 설명 안 한 채 일단 모이랴. 염병. 우리가 뭔 즈그들 똥개여, 뭐여?”
“흠.”
생활안전국이 수사팀의 팀장들을 소집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뭐, 급한 일인가 보죠. 같이 가시죠.”
“아, 잠깐 머리 좀 말리고. 슬슬 머리가 빠지는 게…….”
“어이구.”
안쓰럽다는 듯 쳐다본 종혁은 이내 김판호뿐만 아니라 때마침 출근한 윤선빈과도 함께 대회의실로 향했다.
먼저 와 있는 팀장들로 가득한 회의실.
수사팀의 팀장들뿐만 아니라 행정팀의 팀장들까지 모두 와 있다. 교통국에 외사국, 경비국까지 모두 말이다.
“대체 뭔 일이야?”
“글쎄요? 야, 생활안전국!”
“우리도 모릅니다. 국장님 지시래요!”
“국장님이? 어, 최 팀장 왔어?”
“안녕하십니까. 충성. 충성.”
종혁과 김판호, 윤선빈은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진짜 무슨 일이지?’
회귀 전 기억을 더듬어 봐도 이 시기에 큰일이 벌어진 적이 없었기에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때였다.
벌컥!
“어우. 아침부터 모두 수고…….”
쾅!
문을 열고 들어오다 회의실 내부 모습을 보고 굳어 버리더니 다시 문을 닫은 생활안전국장.
팀장들은 눈을 껌뻑였다.
“……뭐야, 방금?”
“글쎄요…….”
-야, 이 개새끼야-! 내가 청소년계랑 수사팀만 모으라고 했지 언제 다 모으라고 했냐-! 어쩐지 다른 국장들이 왜 전화하나 했다-!
-아윽! 악!
팀장들은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흐뭇이 웃었다.
“에이, 씨부럴 염병.”
“어쩐지 통빡이 안 굴려진다 했다! 난 무슨 전쟁이라도 터진 줄 알았네!”
“난 너무 당당하게 부르기에 우리 과장님이랑 이야기 된 줄 알았어!”
“나도!”
정보 전달의 오류.
어이없다는 듯 웃은 팀장들은 몸을 일으켰고, 그때 다시 생활안전국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후. 미안하다, 미안해. 이번에 새로 본청으로 온 놈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빨리 와서 사과 안 해, 이 새끼야!?”
“죄, 죄송합니다!”
들어오자마자 폴더폰처럼 허리를 숙이는 이십대 후반의 젊은 경찰.
“어이구. 본청에 처음 왔으면 그럴 수도 있죠. 그럼 저흰 가 보겠습니다. 충성.”
“다들 수고해라. 충성.”
아침부터 똥개훈련을 해서 기분이 나빴지만, 까마득한 상사에게 그런 걸 표현할 수 없기에 팀장들은 웃으며 소회의실을 빠져나갔고, 남겨진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생활안전국장을 응시했다.
“허흠. 아침 댓바람부터 이렇게 불러서 다들 놀랐을 거야. 국장들에게 먼저 협조를 구하긴 했지만, 너희들에게 말한다는 걸 잊고 있었네. 이 부분은 사과하지.”
팀장들은 자세를 바로 했지만 짐작 가는 부분이 있어서 눈살을 찌푸렸다.
청소년계와 수사팀.
“단속인 것 같지?”
“아무래도 그렇겠죠.”
“자자, 집중. 모두 바쁠 테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저번 달부터 교육부에서 학교폭력이 상습적으로 일어나는 학교에 청원경찰을 투입하기로 했어. 이건 다들 알고 있지?”
종혁과 팀장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상습적인 학교폭력이지 그냥 수도권에서 유명한 꼴통학교, 구제불능만 모아 놓는 학교들에 경찰 인력을 투입시킨 거다.
경찰에 학교폭력 상담센터도 생겨 난 와중이라 교육부와 경찰이 합심해서 일단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기로 하였는데, 은퇴를 앞둔 노년의 경찰들이 이 청원경찰로 가기로 했다.
“……아, 설마? 아니죠, 국장님?”
팀장들은 아니어야 한다며 국장을 응시했지만, 그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엊그제 한 명이 맞아서 병원에 입원했다.”
“이런 씨발!”
“아, 이 애새끼들 보소?! 이것들을 죽여, 살려? 어?!”
순식간에 살벌해지는 분위기.
“일단 기사는 막아 놓긴 했지만, 지금 경찰 위신이 말이 아니야.”
팀장들은 얼굴을 구겼다. 다음 나올 말이 예상되어서다. 그리고 생활안전국장은 역시나 그들이 생각한 말을 쏟아 냈다.
“그래서 우리가 나서야 할 것 같다.”
“아니, 저희가 왜요!”
“맞습니다! 서울청과 경기청은 뭐하고 본청인 저희가 나서는 겁니까!”
경찰이 맞은 건 맞은 거고, 이건 이거다.
“그 서울청과 경기청도 나설 거야. 아무튼 그렇게들 알고, 각 수사팀에서 1명씩 차출할 수 있도록 해. 어차피 그래 봤자 일주일에 하루 정도일 뿐이니까 너무 짜증 부리지 말고. 그리고 최 팀장.”
“……경정 최종혁.”
“넌 무조건 차출. 이유는 짐작하지? 학교폭력 상담센터를 건의한 게 최 팀장이잖아. 너도 이번 일에 지분 있어.”
종혁은 얼굴을 구겼다.
“그건 좀 억지 같습니다만?!”
“까라면 까라고 말하고 싶지만…… 순회 돌기 전에 하는 몸풀기 운동이라고 생각해. 진급 전에 최대한 경험을 쌓게 하라는 청장님의 지시야.”
“아니…….”
“자, 그럼 다들 그렇게 알고 해산! 이런 말은 직접 얼굴 보고 해야 할 것 같아서 소집한 거니까 너무 화내지들 말고!”
“에혀. 수고하십쇼. 충성.”
“충성…….”
맥 빠진 얼굴로 일어선 팀장들은 이택문 경찰청장의 관심을 한몸에 듬뿍 받지만 이번엔 썩 부럽지 않은 종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남겨진 종혁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오, 씨!’
* * *
서울에서 유명한 꼴통 학교 중 한 곳인 세정고등학교.
웅성웅성.
여기저기 페인트칠이 벗겨진 허름한 교실 안, 수업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학생들은 떠드는 데 여념이 없다.
“야, 학교 뒤에 공사하는 거 봤냐? 아까 뭔 컨테이너 박스 같은 거 가져다 놓던데?”
“학교 뒤? 선배들 흡연장?”
“씨발. 선생들이 뭔 짓이지? 아, 설마 우릴 위해 아지트 만들어 주는 건가?”
“븅. 그게 말이 되냐?”
“그보다 그거 들었어? 선배들이 짭새 깠다는 거?”
“뭐, 진짜? 그 늙탱이 말하는 거지? 와, 씨발 내가 먼저 깔라고 했는데!”
“지랄. 네가 잘도 깠겠다.”
드르륵! 쾅!
“야야야! 나와 봐! 정배랑 유성이랑 뜬다!”
우당탕!
순간 입을 다물며 눈을 동그랗게 뜬 학생들이 다급히 복도 쪽으로 뛰어간다.
호기심과 흥분이 가득한 그들의 눈이 저 멀리서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전투적으로 걸어오는 두 남학생들에게 꽂힌다.
봉선중 1짱 김정배와 구로중 1짱 박유성.
“캬. 드디어 한 달 만에 1학년 짱이 결정되는 건가?”
빅매치 중 빅매치.
입학 후 서열 정리 때문에 한 달 동안 끊이지 않았던 싸움이 드디어 종지부를 찍으려는 것 같다.
몸이 한껏 달아오른 1학년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향하는 둘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1학년뿐만이 아니다. 2학년 몇 명도 흥미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어슬렁 뒤를 따른다.
그렇게 학교 뒤편으로 걸어간 김정배와 박유성.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둘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서로를 노려봤다.
“오늘 이기는 놈이 1짱인 거다.”
“씨발. 지고 딴소리하지 마라. 그땐 진짜 죽여 버린다.”
서울에서 싸움 하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세정고의 1짱을 정하는 자리.
결코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거친 바람이 몸을 휘감자 교복 마이를 벗은 그들은 곧바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뒈져, 씨발놈아!”
“좆까!”
서로를 향해 날아가는 주먹.
“우와아아아!”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헉! 헉헉!”
“씨발. 씨발.”
얼굴과 교복이 피투성이, 먼지투성이가 되어 상대를 죽일 듯 노려보는 둘.
“하, 씨발 좀 친다?”
“왜? 이제 좀 후달리냐?”
“아닌데? 이제 시작인데? 들어와. 들어와 봐, 씨발!”
“좆까! 네가 들어와 보시지?!”
언제든 반격할 준비를 한 채 서로를 도발하는 그들.
하지만 속마음은 좀 달랐다.
‘씨발. 이러다 지는 거 아냐?’
‘2짱은 가오가 안 사는데!’
솔직히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다음을 노리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솟는다.
그러나 지켜보는 학생들이, 앞으로 꼬봉이 되어야 하는 1학년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물러날 수는 없었다.
싸움이 오래돼서 그런지 슬슬 지루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 1학년들. 눈에서 흥미가 떨어져 가는 2학년 선배들.
‘이 씨발 새끼들이?!’
‘이 싸움만 끝나면 보자!’
이를 악문 그들은 이제 정말 끝을 내기로 생각했다.
‘씨발! 죽자!’
‘죽여 버린다!’
그렇게 달려드려는 순간이었다.
“꺼어어억!”
순간 타이밍을 뺏는 거대한 트림 소리.
김정배와 박유성을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가 당황한다.
인의 장막 맨 앞에 쪼그려 앉아 과자와 음료수를 손에 들고 있는 덩치 큰 사내.
종혁은 입을 막으며 한껏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웁쓰. 쏘리. 너무 재밌다 보니 과자를 뜯고 말았네. 역시 좆밥들 싸움이 제일 재밌다니까. 아, 난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
정말 계속하라는 듯한 손짓에 김정배와 박유성은 얼굴을 구겼다. 둘은 자세를 풀며 종혁을 노려봤다.
이참에 숨을 고르기 위해서다.
“아저씨는 또 뭐야?!”
“아아, 난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라니까?”
종혁은 이제 제대로 구경하겠다는 듯 아예 땅바닥에 엉덩이를 붙였고, 학생들은 그런 종혁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저 미친 또라이는 뭘까.
대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서는 이 재미난 구경거리를, 산통을 깨 버리는 걸까.
결국 종혁의 뒤에 서 있던 2학년이 얼굴을 구기며 종혁의 어깨를 잡았다.
턱!
“어이, 아저씨. 요즘 십대들 무섭거든요? 그러니 잔말 말고…….”
뿌드득!
“악! 아아악!”
어깨를 잡은 손을 그대로 꺾어 앞으로 가져온 종혁은 딸려 온 2학년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어이? 어이가 없네. 그 무서운 십대가 커서 된 게 나다, 씹새야.”
쩌억! 부웅! 쿠당탕!
순간 침묵이 내려앉은 공터.
학생들의 시선이 종혁에게서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향한다.
갑자기 북이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2미터 밖에서 구른 선배. 그러다 못해 정신을 잃은 채 꿈틀거리고 있다.
“헉!”
“히익!”
“뭐,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종혁은 다급히 물러나는 주위 학생들을 무시하며 아연실색하는 김정배와 박유성을 응시했다.
“계속하라고. 이 똥강아지들아.”
안 그래도 없는 시간을 쪼개게 만든 꼴통들.
교육청이 공인한 꼴통들.
거기다 여긴 감히 경찰을 구타한 놈들이 있는 학교인 데다가 오자마자 아무 의미도 없는 싸움을 봤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김정배와 박유성, 그리고 학생들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포식자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