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58화 (358/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58화>

타다닥!

종혁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과수 복도를 내달린다.

그 뒤를 오택수와 최재수가 따른다.

그토록 찾고 싶었던 성미란. 그녀가 국과수 부산 분소에 시신으로 실려 온 것이다.

“여어. 왔어, 최 팀장? 오랜만이야?”

형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장년인이 종혁을 반긴다.

그에 종혁도 고개를 숙인다.

“잘 계셨죠? 어떻게 된 일입니까? 부검 결과는요?”

“자살. 수면제를 먹고 목을 맸어. 확실하고 아프지 않게 죽으려고 한 것 같아.”

종혁은 국과수 직원이 건네준 부검소견서와 현장 사진을 보곤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알몸으로 누워 있는 사진 속 노년의 여성.

그가 알고 있는 성미란의 얼굴과는 완전히 달랐지만 본능이 말했다. 이 여성은 틀림없이 성미란이라고.

“시신 좀 볼 수 있겠습니까?”

“그 전에 인사는 해야지.”

“예? 아.”

종혁은 국과수 직원 옆에 있던 형사들을 보곤 아차 했다.

마음이 너무 급했다.

“본청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팀 1팀장 최종혁 경정입니다.”

“예에. 울진서 강력반 김철우 형사라예.”

종혁이 이렇게 젊을 줄 몰랐던 형사들이 혀를 내두른다.

종혁은 오택수와 최재수가 인사를 나누는 걸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발견 당시 상황은 어땠습니까?”

“꽤 이상했지예.”

사람이 나무에 목을 맸는데 발이 바닥에 닿아 있었다.

누가 봐도 이상한 현장이었다.

거기다 나무 아래 놓인 핸드백을 뒤져 봤더니 두 개의 주민등록증이 나왔다.

“그중 하나가 성미란이라는 거군요.”

“예에! 그때 딱 촉이 서는 거라예! 아, 이 사람 뭔가 있구나!”

그래서 신원 조회를 했더니 성미란은 이미 사망한 사람의 것이었고, 대뜸 종혁이 연락을 해 온 거다.

“대체 뭡니꺼? 성미란이 누구기에 본청에서 나선 겁니꺼? 넘길 땐 넘기더라도 뭔지는 알고 넘겨야 할 거 아입니꺼.”

구수한 사투리 속에서 눈빛이 칼날처럼 빛난다.

“100억 원대 사기사건의 용의자입니다.”

“……!”

눈을 부릅뜬 형사는 아쉬워하며 현장 사진을 넘겼다.

무려 본청이다. 사건은 이미 자신들의 손을 떠났다고 봐야 했다.

종혁은 사건 현장 사진을 빠르게 살피다 마른세수를 했다.

“하.”

너무도 깔끔한 현장 사진. 누가 봐도 성미란이 혼자 자살을 한 것 같은 모습이다.

‘사건을 덮으려는 건가?’

어째서 김종두를 통해 성미란의 존재를 드러낸 것인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제야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놈들은 성미란을 구 여사 사칭범으로 보이게끔 만든 후 살해하여, 이번 사건이 더 파헤쳐지기 전에 덮으려는 것일 터였다.

“이건 소지품이라예.”

종혁은 증거물 봉투 안에 들어 있는 성미란의 소지품을 응시했다.

‘이걸 볼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꾸며져 있을 소지품들.

“감사합니다. 이 은혜 꼭 갚죠.”

“뭐, 그러이소.”

사건을 뺏겨서 그런지 말투가 썩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종혁은 무시했다.

“최재수, 네가 가지고 있어.”

“예!”

종혁은 이제 성미란을 보자며 국과수 직원을 바라봤다.

“따라와.”

국과수 직원은 종혁을 부검실 안으로 안내했고, 종혁은 이내 곧 성미란의 시신을 살필 수 있었다.

“푸후우.”

라텍스 장갑을 빌려 낀 종혁은 목을 맨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성미란의 목 주변을 살폈다.

‘목걸이를 차고 다닌 흔적이 있고.’

사로잡은 김 대리 등을 비롯한 놈들의 조직원들이 말하길, 여성은 대부분 목걸이에 회사의 징표가 새겨져 있다고 했다.

종혁은 그녀의 손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양손에 차고 다닌 반지는 총 네 개.’

몸 이곳저곳 다른 흔적이 있나 살핀 종혁은 한숨을 무겁게 내뱉었다.

“아으으! 씨발-! 후,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뵙죠.”

인사를 하고 부검실을 나선 종혁.

그리고 문을 닫는 순간 종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 이 새끼들이 재밌는 짓을 해 줬네…….’

그런데 정말 모든 흔적을 지웠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종혁의 입술이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딱! 딱!

“음?”

국과수 건물을 나선 종혁은 지팡이 짚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과는 다른 의미.

권회수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참 인맥이 넓으시네요.”

이곳에서 성미란의 신분 조회를 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최대한 빠르게 달려왔는데, 거의 비슷하게 도착했다. 경찰 내부에 권회수의 끈이 있단 소리다.

“맞는가?”

차갑게 불타오르는 권회수의 눈.

“맞을 겁니다.”

“그렇단 말이지…….”

콰드득!

지팡이가 부셔져라 움켜쥔 권회수는 종혁을 노려봤다.

“비켜 주시겠는가? 내 얼굴은 봐야 할 것 같으이.”

“……그러시죠.”

종혁이 그를 안내하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후다닥!

“예! 아, 알겠심더! 예!”

건물을 뛰어 나오던 형사는 종혁을 발견하곤 화들짝 놀랐다.

“무슨 일입니까?”

“하, 그게…….”

형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하기 싫지만 말해야 했다.

“후우. 성미란 지문감식 결과가 떴는데…… 이년이 과거 어떤 범죄의 유력한 용의자라 캅니더.”

“……범죄요?”

형사는 방금 들은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고, 종혁은 다시 헛웃음을 터트렸다.

1988년, 서울 어느 재벌 일가족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당시 금괴 현금 등 금고와 집에 보관되어 있던 모든 게 사라지면서 강도 살인으로 판명됐는데, 그 시기 그 집의 가정부 역시 종적을 감추면서 유력한 용의선상에 오르게 됐다.

하지만 이내 범인이라는 증거를 찾지 못해 미제사건이 되어 버렸다.

‘그러냐. 이렇게 꾸미겠다는 거냐.’

그 엄청난 돈의 출처가 나타났다.

꼬리를 확실하게 끊으려는 놈들의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종혁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권회수를 봤다.

‘다행이네.’

이 정도면 권회수도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들어가시죠.”

“……그러세.”

*   *   *

“실장님, 1시간 전 국과수 앞에서 최종혁과 권회수가 접촉했고, 10분 전 성미란 전 지부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신청됐다고 합니다.”

“그래? 알았어. 그 외에는?”

“조희구 지부장이 갑자기 인력을 빼 가면 어쩌냐며 작게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실장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욕심만 많은 놈이 선을 넘으려는 건가?’

부하 직원의 말처럼 귀여운 푸념일 수 있지만, 일단 기억은 해 놓기로 한 실장은 손을 저었다.

“알았어. 나가 봐.”

고개를 숙인 부하 직원이 나가자 실장은 창가로 걸어가 기지개를 켰다.

“끄으. 이제 다 끝났나?”

본사에서 꾸며 놓은 성미란의 집을 뒤져 봤자 건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터.

“최종혁 한 놈 때문에 대체 몇 사람이 고생을 하는 건지.”

그래도 끝났다. 이 정도면 다 끝났다고 봐야 했다.

한숨을 폭 내쉰 그는 담배를 물었다.

“푸후. 날 좋네.”

창밖 하늘은 무척이나 화창했다.

*   *   *

부우우웅!

달리는 차 안, 운전대를 잡은 이영창 변호사가 백미러로 뒷좌석을 보며 입을 연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않네.”

어찌 괜찮을 수 있을까.

감히 구옥순의 이름을 더럽힌 여자의 얼굴을 봤음에도 꼬여 버린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터트려야 할 대상이 사라져 버린 분노가 가슴을 들끓게 한다.

이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대로 잠재워야 하는가.

‘옥순 누이…….’

권회수는 언제나 답이 있던 구옥순을 떠올리며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일단…… 88년도에 일어난 살인사건과 장물 시장을 뒤져 보시게.”

“장물 시장을 말입니까?”

권회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밝혀진 것만 백억이 넘는다.

그때 당시 백억이면 어마어마한 액수. 원 소유주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성미란이 제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현물을 처분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을 터.

뒷세계는 권회수 본인의 영역이니 만큼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거다.

“미안하네. 이것까지 확인을 해 봐야 납득을 할 수 있을 것 같으이.”

“아닙니다. 돌아가는 대로 지시해 놓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권회수는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   *   *

웅성웅성.

마치 이사를 하듯 박스에 물건을 집어넣고, 또 그 박스를 바깥으로 옮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성미란의 집.

“티, 팀장님!”

담배를 펴고 있던 종혁은 다급한 최재수의 부름에 서재로 들어갔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열린 금고.

“와씨, 와!”

수북하게 쌓인 달러에 엔화, 원화, 무기명 채권, 금붙이, 보석 등으로 가득한 금고.

이 안에 있는 것만 합해도 족히 30억은 될 것 같다.

“여기 있는 것들 싹 다 감식 보내고, 장물인지 아닌지 대조해 봐.”

“이, 이걸 다요?”

“어.”

무심하게 대답한 종혁은 장부 같은 허름한 책을 꺼내 들어 살피곤 피식 웃었다.

“서대명.”

종혁이 잡은 사채업자의 이름이다.

그놈이 돈을 붙인 기록이 여기 다 남아 있다.

‘치밀하다, 치밀해.’

이 정도면 더 뒤져 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았던 압수수색이지만, 맥이 빠진 종혁은 다시 집 밖으로 나가 주위를 주욱 둘러봤다.

도시 외곽의 주택가에 위치한 주택.

“좋은 데 살았네.”

높다란 담벼락이 좀 답답하지만, 쏟아지는 햇볕과 넓은 정원에 심어진 나무들이 내뿜는 향기가 제법 상쾌하다.

‘그런데 정말 살았던 건 맞는 건지…….’

모든 흔적이 성미란이 거주했음을 말해 주고 있지만, 그래서 더 의심이 든다.

‘아무래도 놈들이 안가를 개조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목격자가 있을 텐데…….”

사람은 집에서만 살 수 없는 법이다.

생필품이 떨어지면 마트에 가야 하는 게 사람.

그렇게 눈에 힘이 들어가는 그에게 오택수가 다가섰다.

“야, 주변 탐문을 해 보니 골 때린다.”

“어떤데요?”

“언제나 마스크랑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다는데?”

“예?”

“뭔 피부병이 있어서 온몸을 꽁꽁 싸매고 다녔대.”

낮엔 거의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어쩌다 나온다고 해도 성미란의 육성을 들어 본 사람도 극히 소수였다.

성미란은 나쁜 의미로 이 동네의 명물이었다.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놈들답게 치밀했다.

“어쩔까? 더 탐문해 볼까?”

“꽁꽁 싸매고 다녔다는데 뭘 더 탐문해요.”

더 해 봐야 의미가 있을까.

“됐습니다. 철수하죠. ……왜요?”

왜인지 눈을 가늘게 뜬 채 종혁을 보던 오택수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하늘을 봤다.

“아니, 좀 찝찝해서.”

죽었다지만 배후가 잡혔는데 뭔가 미진한 느낌. 마치 똥을 싸고 뒤를 닦지 않은 느낌이었다.

“허탈하기도 하고.”

종혁을 만난 후 해결했던 사건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허무한 결말이 아닐 수 없었다.

“넌 어때?”

종혁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뭐 저럴 때가 있으면 이럴 때도 있는 거죠. 그래도 미제사건 범인 잡은 걸로 만족합시다.”

“정말? 정말 그걸로 만족해?”

“……아니요.”

그럴 리가. 이렇게 큰 엿을 주었는데 어찌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

미제사건 해결?

아닐 거다. 진범은 따로 있을 거다. 엿만 푸지게 먹다가 끝난 거다.

인정한다. 이번엔 졌다.

하지만 완벽하게 진 건 아니었다.

지이잉!

-믿을 만한 사람들로 팀을 꾸리느라 시간이 걸렸어. 이제부터 계좌 추적 시작하지.

국정원 차장이 보내온 핸드폰 문자를 확인한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고영광의 팀원이 말해 줬던 그 계좌.

이학수의 계좌에서 돈이 흘러간 계좌.

‘지금쯤 완벽하게 마무리했다고 파티를 벌이고 있겠지.’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다.

반격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안심하고 있을 놈들의 뒤통수가 훤히 보이는 것 같음에 종혁은 맥이 빠졌던 몸에 힘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우리 기분 전환이나 하러 갈까요?”

“갑자기? 뭘로?”

“이럴 땐 뭐니뭐니 해도 머니죠! 투자자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러 갑시다!”

“……응?”

종혁은 의아해하는 오택수를 뒤로하며 권회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전에 일단 전화부터.’

“예, 어르신. 어디십니까? 저 좀 보시죠?”

떠나기 전 한껏 불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던 권회수.

혹시 모를 상황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를 그를 말려야 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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