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57화>
띠이! 띠!
한 대학병원, 산소호흡기 등 온갖 기계를 단 중환자를 가만히 응시하던 특수범죄수사과 김종두 과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 거라고요?”
그의 옆에 선 의사가 침중한 표정을 짓는다.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솔직히 수술 중 사망하지 않은 게 기적일 정도다.
‘천벌을 받은 건가…….’
서민의 피와 눈물을 빨아먹으며 제 살을 불리던 사채업자.
대법원의 판결 이후 단속을 벌이라는 공문이 내려오기에 특수범죄수사과도 그동안 예의주시하던 사채업자들을 상대로 단속 및 수사에 들어갔는데, 그중 한 명이 이렇게 교통사고를 당했다.
정확히는 얼마 전 제보를 받고 출동한 사채업자다.
빚을 갚지 못한 여성들을 지방이나 섬에 팔아 버린 악독한 인간.
천벌을 받았다고 봐야 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나온 김종두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뒤따라 나오는 젊은 형사의 목을 두드렸다.
종혁이 특별수사팀으로 인사이동을 한 후 인사발령 받아 온 초임 형사. 계급은 경장이다.
“괜찮아, 인마. 범죄자를 쫓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지. 아니, 정확히는 쫓은 것도 아니었잖아.”
미행을 하던 중 갑자기 덤프트럭이 달려와서 사채업자가 탄 차를 들이받았단다.
졸음운전이 원인이 된 사고사.
“넌 좀 괜찮아? 놀란 것 좀 가라앉았어?”
코앞에서 사고를 목격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죄송합니다.”
“그래, 가자.”
김종두는 이 사채업자의 사무실로 향했다.
영장을 받은 형사들이 한바탕 뒤집고 있는 사채업자 사무실. 이 사채업자는 영장을 받기 바로 직전에 사고를 당한 거다.
“뭐 좀 나왔어?”
“예. 이 새끼 아무래도 쩐주가 있나 본데요?”
“쩐주? 누구?”
“임학수란 놈인데…… 이놈이 임학수에게 돈을 송금한 은행이 세진은행입니다.”
“세진은행?”
김종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리고…….”
김종두는 팀원이 보여 주는 웬 이름과 상호명이 적힌 수첩과 웬 남성이 어떤 여성을 만나는 사진 등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이 새끼가 임학수?”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박스에 이름까지 써서 따로 모아 놨는데?”
캐비닛 맨 아래 서랍에서 발견한 낡고 허름한 이름 적힌 박스.
“그럼 이 여자는 누구야?”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신분을 나타낼 뚜렷한 무언가는 없지만, 일단 여성이 탄 차량 번호를 추적중이다.
“알았어. 일단 자세히 알아보고…….”
“과장님!”
“왜?”
“그 명단에 있는 놈들 중 한 놈은 이미 종혁이가 잡은 것 같은데요?”
“……뭐?”
김종두의 연락을 받고 특수범죄수사과로 다급히 올라온 종혁.
“여, 왔냐?”
“어떻게 된 거예요?”
생각지도 않았던 김종두의 입에서 임학수란 이름이 흘러나왔다. 종혁의 표정은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종혁의 표정을 본 김종두 역시 낯빛을 굳히며 일어섰다.
“일단 회의실로 가자. 커피?”
“새로 내려 주세요.”
“그냥 주는 대로 처먹어, 인마.”
탕비실에서 커피를 따라 회의실로 가져온 김종두는 종혁의 앞에 내려놨다.
둘은 잠시 말없이 커피 타임을 가졌다.
“임학수 누구냐?”
“과장님은 어떻게 아셨는데요?”
“종혁아.”
“과장님부터요.”
둘은 서로를 무심한 눈으로 응시했다.
여차하면 사건이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 서로의 부서가 다르기에 제아무리 서로의 친분이 짙다고 한들 쉽게 정보를 오픈할 수는 없었다.
송곳처럼 뾰족한 기세가 서로의 심장을 겨누었다.
“……후. 그래. 내가 졌다, 졌어.”
그동안 받은 은혜가 얼마인데 날을 세울까.
김종두는 사건의 개요에 대해 처음부터 설명했다.
“잠깐, 도주한 여성이 과장님께 신고를 했다고요?”
“말을 들어 보니 내가 TV에 나왔던 걸 기억하셨더라고.”
“아.”
김종두가 기자들 앞에서 사건을 브리핑을 한 게 몇 번이던가.
“그래서요?”
“그래서…….”
김종두는 말을 이었고,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종혁은 어느 대목에서 다시 표정을 굳혔다.
“교통사고요?”
“어.”
이미 피해 여성의 진술만으로도 영장이 나오기 충분했지만, 확실히 잡아내기 위해 숨겨 둔 재산 등이 있나 미행을 하던 와중에 당한 교통사고.
‘이 새끼들 설마?’
종혁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고, 김종두는 말을 계속 이어 갔다.
“그래서 그렇게 된 거야.”
말을 끝낸 김종두는 종혁을 노려봤다.
“이제 네 차례다, 종혁아.”
“후우…… 임학수는 1995년도부터 구옥순 여사, 구 여사의 심복이라고 말하고 다닌 놈입니다.”
쿠당탕!
“구 여사? 내가 아는 그 구 여사?”
“예. 1994년도에 사망한 구옥순 여사님이요.”
“……뭐? 잠깐, 잠깐! 그게 무슨 말이야! 구 여사가 죽었어? 언제? 그럼 이 새끼는 뭐야?!”
“사망하신 구옥순 여사를 사칭하고 다닌 새끼죠.”
“미친! 그럼 그 새끼가 이 새끼 맞냐?”
김종두는 얼른 증거물 봉투에 담긴 사진을 보여 줬고,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교통사고 당한 그 사채업자 책상 서랍에서! 아, 맞냐고!”
“……맞을 겁니다!”
몽타주와 굉장히 흡사한 외모.
“그럼 이 여자는? 알아?”
“……어?”
종혁은 김종두가 꺼내는 다른 사진에, 임학수가 웬 화려하게 생긴 여성에게 허리를 숙이는 사진에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여자 설마?”
“뭐야! 누군데, 인마!”
‘하, 이 새끼들 봐라?’
“……구 여사가 사망한 후, 구여사가 은퇴 후 머물던 곳으로 찾아왔던 사람입니다. 잠시만요.”
사진을 향해 핸드폰을 들이밀어 사진을 찍은 종혁은 재빨리 오택수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그 주지 스님을 찾아가게 했다.
마음 같아선 주지 스님께 사진을 보내 이 얼굴이 맞냐고 묻고 싶지만, 권회수가 안테나를 세우고 있을 게 뻔하기에 그럴 수가 없다.
‘후. 머리 아프…….’
김종두를 봤던 종혁은 탄식을 터트렸다.
어떤 확신으로 가득 찬 눈.
“이 새끼들, 그 새끼들 맞냐?”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고, 김종두는 담배를 물었다.
‘하, 이 새끼들 봐라?’
종혁의 몸에 구멍을 뚫은 놈들이자 대한민국에 드리워진 거대한 악.
얼마 전 중앙경찰학교에 간 종혁이 가르쳤던 애들이 싹 다 실종이 되어 추궁을 하니 종혁은 이놈들에 대해 거론했었다.
어이없다는 듯 웃은 김종두는 사진들을 만지작거리고 뒤집다가 피식 웃었다.
통통!
책상을 두드린 김종두는 사진 한 장의 뒷면을 가리켰고, 종혁도 피식 웃었다.
성미란. 사진 뒷면에 그 이름 석 자와 웬 주소가 적혀 있었다. 참 노골적인 놈들이 아닐 수 없었다.
“죽은 구 여사를 찾아왔다라……. 작정하고 사기 친 새끼들이네. 넌 얼마짜리디?”
종혁은 눈을 빛냈다.
“10억이요. 과장님은요?”
“우리도 10억. 그런데…….”
툭!
김종두는 임학수라는 이름이 적힌 박스에서 발견된 수첩을 던졌고, 받아 든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열한 명이라…….”
“우리가 잡은 놈까지 합하면 총 열두 명이지. 임학수 뒤에 있는 놈이 누굴 거 같냐?”
“어디 이 시절에 돈 많은 새끼들이 한둘이겠습니까? 그런데 함부로 구 여사 이름을 쓴 거 보면 사채 쪽 애들은 아닌 것 같네요. 뭐, 어느 뒤 구린 놈이 적금 들었다고 봐야겠죠. 그게 이 성미란이란 여자일 수도 있고요.”
“그렇지? 어떡할래?”
“이 은혜 꼭 갚을게요.”
“그런 뜨뜻미지근한 말 말고, 짜샤.”
“오케이. 회식비 지원에 100억짜리 사건 하나.”
“200억.”
종혁은 얼굴을 구겼다.
여기엔 진심이 좀 섞여 있었다.
“아, 진짜 우리 사이에 이러…….”
“싫음 말고.”
“콜!”
“우리 쪼잔하게 냉동삼겹살이나 곱창 안 먹는 거 알지?!”
“제가 언제 냉동삼겹살 취급하던가요? 걱정 마십쇼. 이 사건 담당한 분들에게도 선물 쫙 돌릴게요.”
“당연히 그래야지!”
후다닥 회의실 문을 연 김종두는 크게 외쳤다.
“야! 종호야!”
“예, 과장님!”
종혁은 김종두의 부름에 달려오는 사십대 형사의 모습에 얼른 담배를 꺼내 들었다.
“햐. 우리 종혁이 많이 컸네. 이 삼촌 사건도 뺏어 가고…….”
“에이, 제가 크게 보답한다니까요. 자자, 이건 우리 조카 용돈. 에헤이! 넣어 둬요, 넣어 둬.”
“……정말 신화호텔이랑 레스토랑 언제든 쓸 수 있는 거 맞지?”
“연락만 하십쇼! 집부터 리무진 풀코스로 그냥!”
“씨부럴 놈. 가져가.”
“감사합니다!”
종혁은 냉큼 핸드폰을 들었다.
“어, 재수야. 지금 알려 주는 주소 등기부등본 좀 떼 봐. 1990년도부터. 그럼 수고하십쇼!”
그렇게 임학수라 적힌 박스를 챙겨 들며 특수범죄수사과를 나온 종혁은 냉소를 터트렸다.
‘새끼들. 대가리 무쟈게 굴리네.’
얼마나 굴리는지 이쪽 머리가 터질 정도였다.
고개를 저은 종혁은 사무실로 향했다.
* * *
쏴아아!
뜨거운 물줄기가 쏟아지는 샤워기 아래.
세수를 하듯 얼굴을 쓸어 올리던 노년의 여성이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풀썩 웃는다.
“성형 끝난 지가 언젠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새 얼굴이 완전히 자리 잡은 지도 몇 달이 흘렀지만, 지금도 거울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니 말이다.
너무도 오랜만에 한 성형.
“후우.”
물에 젖은 머리를 털며 화장실을 나선 그녀는 안방으로 들어가 출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향수까지 뿌린 여성, 성미란 전 지부장은 집 앞에 세워진 차에 올랐다.
탁!
그녀는 뒷좌석에 타자마자 옆에 놓인 커피부터 입에 가져갔다.
차에서의 커피 한 잔은 그녀의 하루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루틴.
구수하고 쌉쌀하며 시큼한 맛이 혀를 감싸자 그녀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커피 맛이 다르네?”
“오늘 그 카페가 개인 사정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알았어. 출발해.”
“예.”
부르릉!
부드럽게 나아가는 고급 세단.
자동차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들으며 눈을 감고 있던 성미란은 살짝 눈을 떴다가 서글피 웃었다.
평소 가던 코스가 아닌 출근길.
지독한 감기에 걸린 것처럼 축 처져 버린 몸.
‘역시…….’
커피 맛이 왜 다르나 했다.
“나 오늘 은퇴당하는 날이니?”
“……죄송합니다.”
“누구니? 조 지부장이니?”
“본사입니다.”
“본사?”
순간 흔들렸던 성미란의 눈동자가 빠르게 체념을 머금는다.
“……그래. 볼륨 좀 높여 보렴.”
“예.”
다시 눈을 감은 성미란의 얼굴에 드리운 서글픔이 짙어진다.
‘그렇게 직원들에게 해고 통보를 했으면서도 커피 맛이 달라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까먹다니…….’
현장에서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나 보다.
‘도망칠까? ……아니야.’
그러면 최종혁 때문에 생이별을 해야 됐던 자식들에게까지 피해가 간다. 제아무리 목숨이 귀하다고 한들 배 아파 낳은 자식들보다 귀할까.
그녀는 몸에 힘을 빼며 커피를 입에 가져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짬뽕이라도 한 그릇 먹고 나올걸.’
그녀가 최고로 좋아하는 음식인 짬뽕.
지독히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머니가 처음으로 사 줬던 외식 음식.
그에 그녀 역시도 자식들의 첫 외식 음식으로 짬뽕을 사 줬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부산을 벗어난 차가 경상북도의 어느 외진 바닷가에 멈춰 선다.
스르륵! 벌컥!
“부축하겠습니다.”
“됐어.”
힘겹게 손을 뿌리치며 차에서 내린 성미란은 코앞에 서 있는 열 명의 사내들을 보곤 입술을 비틀었다.
“영광이네. 본사에서 처리조까지 다 오고. 시나리오는?”
“쩐주 프로젝트에 대해 기억하십니까?”
“……아, 그래. 내 불찰이네.”
아무리 지부를 폐쇄하느라 바빴어도 뒷정리는 했어야 했다.
“누가 내 꼬리를 밟았니? 갈 땐 가더라도 나 엿 먹인 씹새끼는 누군지 알고 가야지.”
“최종혁입니다.”
뚝!
“아아아아아악! 아아악! 이 씨발 새끼야-!”
본사 처리조는 분노를 마치 비명처럼 쏟아 내는 성미란을 가만히 응시했고, 오랫동안 그녀를 모셨던 직원들은 무너지는 철의 여인의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하아…… 개씹새끼.”
이를 간 성미란은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찢어 죽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성미란은 피가 나도록 이를 갈며 근처 나무의 나뭇가지에 묶여 있는 올가미를 노려봤다.
“저거니?”
“가시죠.”
“……그래.”
성미란은 모든 걸 포기하며 올가미로 비틀비틀 다가갔고, 처리조는 그녀에게 어떤 약과 물을 넘겨주었다.
“과거 어떤 살인사건의 진범이지만 신분을 세탁했던 성미란 지부장님께선 경찰의 좁혀 오는 수사망에 이 수면제를 복용하신 후 정신이 몽롱해질 때쯤 자살을 하셨다는 걸로 꾸며질 겁니다. 목을 매기 힘들다면 도와 드리겠습니다.”
“사인까지 알려 주다니…… 본사 직원들은 친절하네.”
“남기실 말은 있습니까?”
“어르신과 내 가족들에게 안부 전해 주렴. 그리고…… 최종혁 그 새끼는 꼭 죽여. 어떻게든.”
“잘 가십시오.”
“퉤! 그건 또 대답 안 하지.”
침을 뱉은 그녀는 수면제를 물로 넘긴 후 스스로 목을 맸고, 이미 먼저 먹은 약물에 의해 몸이 풀릴 대로 풀린 그녀의 다리는 몸을 지탱하지 못한 채 퍼져 버렸다.
저 멀리서 봄이 찾아오는 늦겨울,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흐릿한 하늘이 그녀의 망막에 머물렀다가 흐려진다. 비릿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입안을 머물렀다가 사라진다.
“켁! 케엑!”
사람들은 발버둥 치는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툭!
결국 숨이 끊기며 늘어진 손.
사람들은 그녀의 숨이 멎고도 20분을 더 지켜본 후에야 돌아섰다.
본사 처리조는 성미란의 수족이었던 직원들을 바라봤다.
“당신들은 나를 따라 연수원으로 갈 겁니다. 불만 있습니까?”
성미란의 직원들은 고개를 저었고, 처리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 직원들 연수원에 데려다줄 테니 너희들은 현장 꾸미고 본사로 복귀해.”
“예!”
“가시죠.”
성미란의 직원들은 본사 처리조가 타고 온 차로 향했고, 곧 외진 바닷가는 다시 조용해졌다.
끼룩끼룩 우는 갈매기만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