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56화 (356/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56화>

시선이 모이자 당황했던 남성은 이내 종혁이 손을 덥썩 잡자 화들짝 놀랐다.

“아신다고요?!”

“예…….”

당시 놈들, 자신들을 속이고 죽이려 했던 그놈들은 사회 각계 인사들의 계좌를 열람하면서 한편으로는 돈도 가로챘는데, 그 와중에 다른 이상한 일도 저질렀다.

당시엔 너무 무섭고 당황스러워 종혁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지금 다시 이 계좌주 이름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종혁은 그의 입이 열리자 눈을 부릅떴다.

“금융 거래 내역을 삭제했다고요?”

“예. 그 계좌들을 다 외운 건 아니지만 이 이름은 기억나요. 가장 먼저 삭제됐거든요. 계좌까지도요.”

“……예?”

“이거 이제 세상에 없는 계좌라고요.”

백업 서버까지 깔끔하게 지웠기에 다시 복원도 못할 거다.

쿵!

“무슨…….”

“아마 그러면서 여기에 있던 돈을…… 혹시 볼펜 있으세요?”

“여, 여기 있습니다!”

종혁이 내미는 펜을 받아 든 그는 임학수의 계좌 밑에 이름과 계좌번호를 적다가 미간을 좁혔다.

“으음…… 죄송합니다. 계좌번호는 이 정도밖에 기억이 안 나네요.”

“아닙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은행명과 계좌주만으로도 충분하다.

“혹시 그때 삭제된 다른 계좌도 기억하십니까?”

“아, 네! 다는 아니지만…….”

남성은 다시 몇 개의 이름을 적었고, 그걸 본 종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애먼 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뻔했다.

종혁의 뜨거운 악수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남성은 이내 아차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런 건 금감원만 뒤져 보면 나오지 않나요? 막 갑자기 어떤 통장에 고액이 입금되면 금감원에 신고가 간다던데…….”

“그렇죠. 신고죠.”

“예? 아!”

맞다. 은행에서 뭔가 이상하다고 신고를 하지 않으면 금감원은 알 수가 없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철아, 이걸로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그럼 난 먼저 간다!”

후다닥 사무실을 빠져나온 종혁은 다급히 핸드폰을 들려다가 멈췄다.

뿌득!

돌연 부셔질 듯 악물어지는 어금니.

종혁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다.

“하, 이 개새끼들…….”

아닐 확률도 있지만, 놈들일 확률이 너무 크다.

“더럽게 치밀하다 싶더니…… 후우.”

들끓기 시작한 분노를 애써 누른 종혁은 오택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접니다.”

-어! 야! 지금 그 차량 조회 결과 떴거든? 그런데 이거 아무래도 대포차인 것 같다! 차번호가 등록이 안 되어 있어. 쫓아?

종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뇨. 아마 쫓아 봤자 찾지 못할 겁니다.”

-……너 뭐 알아냈구나? 그렇지?!

“예. 그러니 1995년도에 전국에서 순직한 경찰과 사망한 사채업자에 대해 알아봐 주세요.”

구옥순 여사가 다시 복귀하는 거 아니냐는 소문이 생겨났다가 사라진 시기.

무려 구옥순의 심복을 사칭하는 놈이 나타났는데도 아무도 몰랐다? 알아볼 생각을 안 했다?

아니다. 정말 이 일에 놈들이 얽혀 있다면 그걸 조사한 사람들 모두 제거를 당한 거다. 그게 놈들의 수법이기에.

-뭐야, 씨발! 대체 무슨 일인데!

“세진은행 해킹 사건 때 영광이 죽이려고 온 놈들 기억하죠?”

종혁은 방금 알아낸 걸 설명했고 오택수는 잠시 말을 잃었다.

-……푸하하하핫! 와, 미치겠네. 이 새끼들 뭐지?

어이없다는 듯 웃던 오택수는 이내 표정을 지웠다.

-알았어, 끊어.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처럼 차가운 분노.

종혁은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바라보다 다른 곳을 향해 전화를 걸었다.

“예, 수고하십니다.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팀 최종혁 팀장입니다. 계좌를 하나 열어 보고 싶은데요.”

‘이걸로 앞섰기를…….’

정말 놈들이 이 일에 얽혀 있다면 절대 권회수가 알면 안 된다.

그의 목숨이 위험했다.

“말해 봤자 더 이 악물고 달려드시겠지.”

그러면 정말 죽는다. 권회수가 불러들였을 사람들 가운데 놈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품 안까지 들어온 칼에 권회수가 죽을 수 있었다.

“가장 베스트는 이사장님이 진실을 알기 전에 내가 따는 건데…….”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은 종혁은 액셀을 밟았다.

“대포차인 걸로 나왔습니다. 당시 대포차 다루던 놈들을 싹 다 뒤져 볼까요?”

이영창은 장년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고, 서대명이라고?”

“예.”

종혁이 검거한 사채업자 서대명.

종혁은 분명 이 사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영창은 결국 알아내고 말았다.

“그놈 계좌 거래 내역은?”

“분기마다 세진은행으로 돈을 입금한 계좌가 있는데, 알아보니 없는 계좌로 나오더군요. 그럼에도 이 서대명은 계속 송금했다고 나옵니다.”

작년부터 없는 계좌이기에 송금한 돈이 반환된 내역이 있다.

“자동 이체군. 계좌주는?”

“임학수란 놈인데, 현재 사망한 걸로 나옵니다. 거기다 이놈이 금융 거래를 한 내역도 찾을 수 없습니다.”

마치 누군가 깔끔하게 지워 버린 것처럼 말이다.

이영창은 그렇게 말하는 장년인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게 전부인가?”

장년인은 씩 웃었다.

“당연히 아닙니다. 세진은행에서 VIP전담관리팀이었다가 퇴직한 사람이 말하길, 임학수의 계좌는 마치 비자금이 스쳐 지나가는 통로 같았다고 합니다.”

임학수의 계좌에 돈이 들어온 순간 소액으로 쪼개져 다른 은행들의 계좌로 이체되었다고 한다.

“흠. 희한하군. VIP의 계좌가 사라졌는데, 은행 놈들이 몰랐다는 건가? 서대명이란 놈에게 통보도 안 하고?”

“오래된 계좌이기도 하고, VIP라지만 입금되는 액수가 소액이라 관리 등급이 낮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다 작년엔 큰일도 겪었고요.”

언론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뒷주머니 찬 양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세진은행 해킹 사건.

이때 꽤 많은 정보가 유실됐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다.

“쯧쯧. 일하는 꼬라지하고는…….”

“원래 VIP 계좌는 봐도 못 본 척해야 하는 거잖습니까.”

은행 입장에선 그저 그 계좌들을 온전히 보관하는 게 중요할 뿐이다. 그 외엔 알아서도 안 되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 퇴직한 사람도 인수인계를 받다가 우연히 알았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그 퇴직한 사람도 이들이 찾아오기 전까지 그동안 잊고 살았던 거다.

“알겠네. 그럼 그 분산 이체된 계좌들도 쫓아 주고, 흠…… 혹시 모르니까 구 여사님이 복귀한다는 소문이 돌던 때 순직한 경찰과 사망한 사채업자, 기자, 검사에 대해서도 알아봐.”

무려 구 여사님이 복귀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 소식이 금세 잠잠해졌다. 뭔가 느낌이 쎄했다.

“예.”

“가 봐.”

고개를 숙인 장년인이 나가자 이영창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어르신.”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건가.

“그 전에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정말 당시에 그 소문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이보게, 이 변.

“예, 어르신.”

-이빨과 발톱이 잘린 호랑이에게 다가오는 놈은 어떤 부류라고 생각하는가?

사냥꾼이다.

거기다 그땐 정권의 감시가 심했던 시절. 바깥과의 연락을 차단했을 때였다.

제아무리 측근이었더라도 조심했어야 했기에 권회수가 일부러 연락을 끊었다.

-게다가 알지 않나. 옥순 누이가 죽고 난 후 내가 뭘 했는지.

“……그렇군요. 한 반년 정도 해외에 계셨다가 오셨지요.”

-그럼에도 그 빌어먹을 놈의 정권의 개들이 쫓아와 감시를 하더구만. 거 어찌나 눈치를 주던지. 허허.

그게 질려 반년 만에 여행을 때려치우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래서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예. 그게…….”

이영창은 현재까지 조사된 부분을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프로젝트 진행 사항은 지금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아니, 아직까지 접선을 안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대리님, 이것 좀 봐주시겠습니까?”

높은 톤의 목소리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한 한국의 어느 모처 사무실.

커피 한 잔을 든 채 복도에 서서 열심히 일하는 부서 직원들을 흐뭇한 눈으로 응시하던 중년인은 갑자기 다가오는 부하 직원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왜?”

“방금 전 보안팀에서 연락이 왔는데, 쩐주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해서 말입니다.”

“쩐주 프로젝트?”

“예, 실장님. 95년도에 저희 제2기획실에서 기획한 프로젝트였다고 하는데 알고 계신 거 있으십니까?”

“쩐주…… 쩐주 프로젝트라……. 아, 그건가?”

기억난다.

1995년도 사망한 어떤 대단한 사채업자의 이름값을 이용해 사채업자들을 대상으로 이자 놀이를 한 장기 프로젝트.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은 내용 중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 실요성이 없다고 판단되고, 프로젝트 진행 기간이 너무 길어져서 내가 세진은행 때 함께 폐기…….’

순간 심장에 불길함이 스친 중년인은 부하 직원을 응시했다.

“그거 담당한 지부가 어디였는데?”

“현재 조희구 부산 지부장과 함께 있는 성미란 전 지부장이 진행한 프로젝트입니다.”

“지랄 맞네.”

하필이면 세진은행 때 종혁에게 걸려 지부를 폐쇄한 그 지부장이다.

“그 프로젝트에 접근한 놈은?”

“이영창이란 변호사인데…… 중앙지검이 서울검찰청이었던 시절 검사장까지 지낸 인물로 나옵니다.”

“이영창? ……권회수?!”

‘최종혁!’

권회수. 전설적인 사채업자이자 종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인물.

그리고 그가 기억하기로 이영창은 그런 권회수의 심복이었다.

“잠깐, 잠깐. 갑자기 그 이름이 왜 튀어나와?”

“저도 그게…….”

“비켜!”

다급히 본인의 자리로 뛰어 간 그는 내선 전화기를 들었다.

“창고죠? 제2기획실 실장인데, 세진은행 해킹 때 폐기 된 쩐주 프로젝트에 관한 자료들 싹 다 올려 주세요!”

전화를 끊은 그는 따라온 부하 직원을 응시했다.

“넌 이영창이 어떻게 이 정보에 접근했는지 알아보고, 최종혁도 여기에 연관되어 있는지도 알아봐! 빨리!”

“예!”

자리로 뛰어가는 부하 직원을 응시하던 그는 이내 담배를 물었다.

“빌어먹을. 대체 어디서 뻑이 났기에 폐기된 프로젝트를 쫓는 놈들이 생겨난 거야?”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창고, 폐기된 프로젝트나 정보 등 따위가 보관되는 창고에서 자료가 올라오자 살핀 실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우.”

구옥순. 통칭 구 여사.

쩐주 프로젝트에 이용 된 이름이다.

권회수와 더불어 서울을 평정했던 전설적인 사채업자.

“일하는 꼬라지하고는……. 아니, 어쩌자고…….”

물론 이해는 간다.

당시 금융실명제로 권회수 역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으니 당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책임자는 아마 그녀의 이름을 쓴다고 한들 문제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을 거다.

거기다 권회수가 마침 국내에 없던 상황이지 않던가. 충분히 해 볼 만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떤가.

당시 프로젝트에 이용당한 사채업자 20명 가운데 8명을 제거했고, 구옥순의 복귀 소문이 돌자 이를 조사한 경찰과 기자 12명을 제거했다.

이 정도면 프로젝트가 폐기되어야 맞지만, 살아남은 사채업자들이 내는 수익에 프로젝트 폐기는 잠시 유보.

이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근래까지 유지되어 있다가 결국 세진은행 때 폐기하기로 했다.

“하. 이게 말이 돼?”

중년인은 자신 이전의 제2기획실의 실장이었던 사람을 떠올리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 새끼, 설마 성미란 지부장과 내연 관계였던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면 본사 기획실장이라는 인간이 이걸 폐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제아무리 이목을 끌 확률이 있다고 해도 이건 폐기가 옳았다.

그리고 프로젝트 폐기를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은 성미란 지부장의 잘못도 컸다.

‘아니면 전임 실장의 역량이 부족했거나.’

은퇴를 한 게 아니라 은퇴를 당한 전임 제2기획실장.

은퇴를 당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아, 알았습니다!”

“뭔데?!”

“최종혁입니다!”

“……뭐?”

또다시 들린 이름에 순간 조용해지는 사무실.

부하 직원은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빠르게 설명했고, 한숨을 푹 내쉰 실장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아니, 씨발 뒷정리를 왜 그따위로 하는 거야!”

프로젝트를 폐기했다면 회사 직원을 제외한 관련자 전원을 제거하는 게 철칙.

“그때 성미란 지부장의 지부가 폐쇄돼서 미처 제대로 처리하지…….”

쾅!

“아, 지랄 났네. 지랄 났어!”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이게 뭔 난리인지 모르겠다.

중년인은 어떻게 할 거냐며 눈으로 물어 오는 부하 직원을 보며 다시 담배를 물었다.

“후우우. 됐고, 성미란 지부장 은퇴시킬 준비해. 그리고 제거되지 않은 사채업자들 최종혁한테 던져 줘.”

“권회수가 아니라 최종혁에게 말입니까?”

“밤의 제왕이라 불렸던 인간이 퍽이나 그놈들로 만족하겠다.”

아마 당시 프로젝트를 진행한 직원들을 찾기 전까지는 결코 멈추지 않을 거다.

종혁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권회수까지 자신들의 뒤를 쫓는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권회수가 그걸로 멈추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최종혁도?”

“그땐 뭐…….”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대답을 대신한 중년인은 손을 저었다.

“가 봐. 뭐해! 일들 해!”

“예!”

중년인은 다시 바빠지는 사무실의 정경을 보며 담배 연기를 뱉어 냈다.

“후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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