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55화 (355/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55화>

부우웅! 빵빵!

우글우글! 시끌시끌!

높은 빌딩과 사람들로 가득한 어느 거리.

그 입구로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하얀 두루마기를 걸친 노인, 권회수가 서 있기 때문이다.

대체 무엇을 멍하니 보는 걸까.

권회수의 눈엔 현재의 빌딩 숲이 아니라 과거 이곳의 풍경이 비춰진다.

그리 먼 과거도 아니다.

고작해야 십 몇 년 전. 그때 이후로 참 많이 변해 버렸다.

“이 변, 저기에 뭐가 있었는지 기억하시는가?”

권회수의 전속 변호사 이영창이, 현재는 중앙지검이라 불리는 서울검찰청의 검사장까지 보냈던 노인이 아련히 웃는다.

“방앗간이 있었죠.”

“그래. 언제나 이 거리에 왔을 때 가장 처음 나를 반겼던 건 참기름, 들기름 냄새였지.”

권회수의 눈이 더 먼 과거의 거리를 비춘다.

70년대, 80년대 참 많은 게 부족했지만 정이 살아 있던 그때의 거리를.

“예, 기억납니다. 저도 그 냄새에 홀려 꼭 이곳에 들를 때마다 한 병씩 사 들고 갔었죠. 나중엔 집사람이 방앗간집 딸하고 바람났냐고 손톱을 세우더군요.”

“이 변도 그랬는가? 나도 그랬네! 거 어찌나 손맛이 날카롭든지!”

껄껄껄 웃은 권회수는 발을 내디뎠다.

“기억나십니까? 저기에 문방구가 있었습니다.”

“암. 기억하고말고.”

그때 그 시절 서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크면서도 좋고 싼 물건들로만 가득했던 문방구. 아니, 일제 물건들을 염가에, 국산 제품보다 싸게 팔았던 곳이었다.

“소영이 애미나 아영이 필기도구도 다 여기서 샀었지.”

“저도 그랬습니다.”

그렇게 옛 추억을 곱씹으며 걷던 그들은 갑자기, 금이나 어떤 경계선이 쳐진 것도 아닌데도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멈춰 섰다.

여전히 과거를 투영하는 그들의 눈에 거대한 대문과 긴 담장이 비춰진다.

“……가지.”

성큼!

갑자기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온 그들은 옆의 빌딩을 끼고 돌고 그 안쪽의 골목길을 나아가, 결국 주택가 사이 작은 나무문이 달린 주택 앞에 멈춰 섰다.

그그극!

녹슨 경첩이 힘겹게 돌아가는 소리가 나며 열리는 나무문.

겨우 한 뼘이나 될 법한 좁은 앞마당엔 빈 화분들이 가득하다.

원래는 개나리라든지, 진달래라든지 들꽃들이 피어 있던 화분들.

“금으로 집을 지을 양반의 취미가 참…….”

여기였다. 누이 구옥순이 돈을 빌리러 오는 이들을 맞이하던 사랑채이자 안방이.

그 고래등처럼 넓은 집을 소유했음에도 구옥순은 오직 이곳에서만 생활했더랬다.

“옥순 누이가 왜 그렇게 넓은 집을 지었는지 아시는가?”

“돈은 어렵고 힘들게 빌려야 그 가치를 안다고 해서였죠.”

맞다. 그래서 구옥순은 성격에도 맞지 않는 그런 기와집을 지었다. 넓고 큰 집으로 채무자의 기를 죽인 거다.

그렇게 현명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모든 걸 내려놓고 절에 들어갈 때 권회수는 이곳만큼은, 어떻게든 이 작은 공간만큼은 사수하고 사람을 써서 관리를 했다.

“맞아. 그것만큼은 나와 뜻이 통했지. 아니, 어쩌면 내가 옥순 누이에게 배웠는지도 몰라.”

어구구 앓는 소리를 내며 먼지 한 톨 없는 마루에 앉은 권회수는 마당처럼 한 뼘짜리 사각형인 푸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입술을 뗐다.

“찾으시게.”

감히 누이 구옥순의 이름과 명예를 더럽힌 놈을.

감히 그녀를 이용한 놈들을.

종혁은 나서지 말라고 했지만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찾아서 내 앞에 데려오시게.”

오랜만에, 굉장히 오랜만에 옛날의 돈귀신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권 노인, 권 영감이라 불리던 그때로.

“……예.”

순간 눈빛이 스산해진 이영창 변호사는 갑자기 태산처럼 커진 권회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도 추억을 더럽히려는 놈을 가만둘 생각이 없었다.

“최 팀장보다 빨리 찾으려면 부리나케 움직여야 할 게야.”

껄껄껄껄 웃음소리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는 메마른 겨울 하늘을 울려 퍼졌다.

*   *   *

박카스와 커피캔, 과자나 컵라면 따위가 이리저리 널브러져 돼지우리가 따로 없는 사무실.

“씨발! 돌려! 제껴!”

순철과 고영광을 비롯한 몇 명의 사람들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거친 말들을 쏟아 낸다.

“조금만 더 버텨! 오케이! 그래, 그래…… 그렇지이!”

“아자-!”

“와아아아!”

서로 얼싸안고 방방 뛰는 그들.

그럴 수밖에 없다. 방금 전 대현중공업의 서버를 해킹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구성한 해킹팀 ‘한반도’에 정식으로 들어온 의뢰.

“쉿쉿! 예. 피드백은 일주일 안까지 작성해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이쿠! 예,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전화를 끊은 삼십대 남성은 이내 사람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내일 입금해 주신단다-!”

“우와아아!”

“캬아! 역시 대기업! 형, 치킨! 치킨 시켜!”

“난 족발!”

“오케이. 또 뭐?”

“난 청소.”

“그래, 청소…….”

이 기쁜 분위기를 망치는 놈이 누군지 고개를 돌렸던 그들을 그대로 굳어 버렸다.

가슴 앞에 팔짱을 낀 채 삐딱한 미소를 짓고 있는 종혁.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이게 정녕 사람이 사는 공간이란 말인가.

종혁은 순철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이렇게 살라고 이 사무실을 얻어 준 게 아닐 텐데 말이야……. 내 말이 틀리니, 철아?”

“자, 잠시만! 제 말 좀 들어…….”

“치워.”

“예!”

“영광이는 뭐하니?”

“이미 치우고 있습니다!”

종혁은 아직 범죄자 신분인 다른 팀원들을 응시했다.

세진은행 해킹 사건 때 고영광과 함께 연루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받은 그들.

비록 해킹이라는 중범죄에 연루되긴 했지만, 의도적이지 않았다는 점과 모두 진실로 반성을 하고 있었기에 이 정도의 형량만 받았다.

고영광은 청소년이라 사회봉사 20시간의 3호 처분을 받았다.

화들짝 놀란 그들은 재빨리 몸을 날리며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고, 종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런 그들을 응시했다.

‘이들에게 정보가 있기를.’

*   *   *

한편 그 시각.

종혁과 권회수가 있었던 절에 도착해 주지스님과 마주 앉은 오택수와 최재수는 엉덩이를 들썩였다.

“있었단 말입니까, 스님?”

“예. 보살님께서 승천하시고 한 보름쯤 지났을까요? 어떤 분께서 찾아오셔서 보살님의 행방을 묻더군요.”

권회수 외에 구옥순을 찾아온 사람은 처음이라 기억하고 있다.

주먹을 불끈 쥔 오택수는 오는 길 잠시 파출소에 들러 팩스로 받은 몽타주를 보여 주었다.

“호, 혹시 이렇게 생긴 사람이었습니까?”

“아니요.”

“예?”

“아닙니다.”

오택수는 눈을 부릅떴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하, 한 번만 더 자세히 봐 주십시오, 스님.”

그들은 간절함을 담아 외쳤지만, 주지스님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스님!”

주지스님은 몸을 크게 들썩이는 최재수의 모습에 푸근히 웃었다.

“성별부터가 다른데 보고 자시고 할 일이 있겠습니까.”

쿵!

“……예?”

“아마 40대 중반 정도 됐을까요? 어쩌면 그보다 더 연배가 많았을 수도 있을 겁니다.”

화장을 하지 않았지만 마치 세심하게 키운 장미처럼 화려하고 강단 있던 여성이었는데, 외모와 달리 옷차림이 허름해서 더 기억한다.

관상과 전혀 다른 옷차림이었으니까.

“과, 관상이요?”

“허허. 하찮은 재주일 뿐이지요.”

아니다. 보통 중이 되어 마흔쯤 되면 거의 다 이런 재주를 가지게 된다.

어디 무당이나 철학원에서만 사주팔자를 보던가. 절에서도 봐 준다. 운영비를 벌기 위해서다.

“절이란 곳이 원체 놀거리가 없다 보니…… 허허허. 아무튼 여기 젊은 시주님의 말처럼 시간이 너무 오래되어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독특한 관상만큼은 기억하고 있지요.”

어둠 속에서 어둠을 품었음에도 빛을 발하는 칼과 같은 관상을 가진 여성.

반골과 간신의 상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재물복에 자식복도 있었다.

“저보다 더 법력이 깊으셨던 구 보살님이라면 결코 관계를 맺지 않을 상을 지닌 분이었지요.”

그런 여자가 대뜸 나타나 구옥순의 행방을 묻는데 어찌 의심이 가지 않겠나.

그래서 몰래 미행해 그녀가 타고 온 차와 차번호를 적었다.

“스님!”

“허허. 여기 있습니다.”

다급히 확인한 최재수는 오택수를 봤고, 오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최재수는 종혁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방을 뛰쳐나갔다.

“죄송합니다.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서 말입니다.”

“허허. 아닙니다. 비록 빈승이 속세를 등졌다고는 하지만 그런 놈들은 때려죽여야지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모든 걸 꿰뚫는 것 같은 깊은 눈.

흠칫 놀랐던 오택수는 고개를 숙이며 지갑에 든 돈을 모두 꺼내 놓았다.

“협조 감사합니다.”

“……두 분께서 부처님이셨군요. 허허허!”

“더 생각나는 부분이 있으시면 이 번호로 연락 주십시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스님.”

“시주님.”

“예?”

“빈승은 시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이걸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

“아마 그에 대한 답은 최 시주님께서 가지고 계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오택수는 부리나케 방을 빠져나갔고, 남겨진 주지스님은 눈을 감으며 손안에 쥔 염주를 굴렸다.

오택수와 최재수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작고 희미한 검은 기운.

둘뿐만 아니다. 종혁과 권회수에게도 모두 그런 기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말을 함으로써 어떻게 변해 버릴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해서 그 화를 막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더 큰 화가 들이닥친다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   *

“알겠습니다.”

-대체 누군데?

“권 이사장님이요.”

-역시 그분이었냐? 알았어!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결국 움직이셨네.”

비록 강제적으로 은퇴를 당하였다지만, 권회수는 명동 밤의 황제였다.

정재계, 경검 등을 비롯해 조폭까지 그 인맥이 닿아 있었던 사람.

아마 명동파부터 시작해 서울 및 수도권의 모든 조폭들이 움직일 거다. 80년대 조폭과의 전쟁 때부터 명줄을 이어 온 조폭들이.

이제부터는 누가 먼저 놈을 찾냐, 그 싸움이었다.

“돌겠구만.”

그런데 여기서 더 돌아버릴 것 같은 부분이 하나 더 있다.

놈에게 조력자가 있다는 것.

즉, 놈에게 세력이 있단 소리다.

10억이란 거금을 시장에서 일수나 하는 놈에게 뿌렸는데도, 아니 무려 구옥순의 심복을 사칭하는 놈이 나타났는데도 아무도 몰랐다? 알아볼 생각을 안 했다?

헛소문 등의 이유로 알아볼 생각을 안 한 것인지, 못하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이는 이 세력이 꽤 치밀하다는 증거였다.

‘마치 그 조직처럼…….’

그래서 이들을 찾아온 것이었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이들이 알고 있는 게 있을까 해서.

당시 이들이 다칠까 해서 조서에 기록하지 않았던, 그놈들이 뒤져 본 사회 각계 인사들의 계좌들.

보지 말아야 할 걸 봤다는 죄만으로도 사람이 죽어 나가는 세상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거기다 문제는 더 있다.

해킹 사건 이후로 협조를, 뭔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경찰에겐 협조를 잘 하지 않게 된 세진은행이다.

확실한 증거만 있다면 계좌를 열어 보는 거야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지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정황이다.

공문을 보냈다지만, 세진은행은 협조를 하지 않을 거다. 이게 또 어느 권력가의 계좌일까 해서.

‘한다고 해도 늦장을 부리다가 뒤늦게야 해 주겠지.’

그게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쯧.”

“형.”

고영광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종혁은 이제야 사람 사는 곳처럼 변한 사무실 풍경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러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종혁은 자기가 나서지 않고 고영광을 보낸 순철을 째려본 후 고영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 밥은 잘 먹고 다니고?”

“헤헤. 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종혁은 눈을 초롱초롱 뜨는 고영광을 보며 살짝 난감해했다.

그놈들에게 입막음으로 죽임을 당할 뻔한 이들. 그 살벌한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음…… 일단 밥 안 먹었으면 밥부터 먹을까?”

원래 열렸어야 할 파티보다 더 성대한 파티가 열리자 그들은 마치 걸신이 들린 것처럼 음식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대현중공업에서 한 의뢰에 집중하느라 거의 한 달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던 그들.

“푸하! 살겠다!”

“아으!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제대로 된 음식이냐! 그래, 이게 사는 거지!”

종혁의 눈에 걱정이 번진다.

“그래도 밥은 좀 먹고 하지.”

“헤헤. 원래 저희 같은 사람은 한번 뭔가에 집중하면 그 외의 모든 걸 신경 쓰지 않게 돼서요.”

“그렇습네다. 거기다 과자와 라면에 얼마나 많은 영양분이…….”

“철이, 다물어. 넌 이따가 엄마한테 혼날 줄 알아.”

“……!”

스스로 뭔가를 해 보려기에 믿었더니 이렇게 살고 있었다. 이건 혼나야 할 일이었다.

억울하다는 듯 눈으로 항변하는 순철을 무시한 종혁은 젓가락을 들었다.

“그래서요?”

“음?”

“세진은행에 관련된 일인가요?”

움찔!

고영광의 눈을 본 종혁은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단단하고 투명하게 빛나는 고영광의 눈.

“그냥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면 안 믿겠지?”

“그런 것치고는 아까 형 표정이 너무 심각했어요.”

“짜식이, 청소하는 와중에 한눈팔 정신은 있었나 보네.”

“흐흐.”

“후. 이번에…….”

종혁은 사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고, 고영광과 팀원들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혹시 그때 이 계좌를 본 적 있는지 물어보러 온 거야.”

우연치곤 참 공교로운 우연.

계좌와 계좌주의 이름을 가만히 응시하며 기억을 뒤지던 고영광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처음 보는 계좌예요. 형이나 누나들은 본 적 있어요?”

“뭔데? 누군데?”

우르르!

고영광의 말에 몰려든 팀원들은 계좌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런가. 우연이었나…….’

다행이면서도 다행히 아니기도 한 상황.

‘결국 세진은행이 협조를 해 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건가.’

종혁이 한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어? 나 이 계좌 아는데…….”

종혁은 다급히 팀원 중 한 명을 바라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