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54화 (354/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54화>

90. 과거를 이용하는 자

-하하하하하!

병상에 누워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TV를 보는 사채업자의 표정이 멍하다.

교도소.

절대 가고 싶지 않은 장소.

이미 확정된 일이니 그러려니 하려고 해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하. 일개 경찰서였으면 어떻게든 비벼 봤을 건데…….”

그 나이에 본청 소속 수사팀 팀장이다. 엘리트 중 엘리트라는 소리였다.

물론 엘리트라고 뇌물을 안 받아먹는 건 아닐 테지만, 문제는 지금껏 다른 경찰들에게 뿌려 왔던 돈을 푼돈으로 여길 만큼 부자이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도대체 이런 부자가 왜 경찰을 하는 것인지 의문일 정도.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건 겸허히 조사를 받고 처벌을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봐야 했다.

“하, 이번엔 몇 년이나 받으려나…….”

그는 답답해지는 가슴에 담배를 물며 일어섰다.

드륵! 쾅!

“흡?!”

깜짝 놀라 병실 문을 바라본 그는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무릎을 꿇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정말 잘못했습니다.”

“……어어, 그래.”

종혁은 고개까지 깊이 숙이는 사채업자의 모습에 살짝 당황했다.

쩝쩝쩝!

“임학수?”

족발을 먹던 그가 급히 고개를 끄덕인다.

“예, 임학수요. 자신을 임학수라고 말했습니다.”

명동의 돈귀신 권회수, 권 노인과 더불어 사채 시장의 전설이었던 구 여사의 심복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임학수.

시장 바닥에서 일수나 걷던 그에겐 너무 큰 행운이었기에 돈을 빌려주겠다는 제의를 승낙하였고, 이렇게까지 클 수 있었다.

“그래? 정말 구 여사의 심복 맞아? 구 여사는 금융실명제 때 은퇴했잖아.”

“아이고, 형사님. 아무리 은퇴하셨다지만 이 바닥에서 구 여사님 이름 함부로 팔고 다니면 칼 맞아 죽습니다! 그분에게 은혜를 입은 사채업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어디 사채업자뿐일까. 은혜를 입은 사람을 죄다 불러다 모으면 대학교 하나는 가득 채울 거다.

종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희한하네. 난 왜 구 여사가 복귀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지? 그리고 다 내려놓고 은퇴한 거 아니었어?”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하잖습니까. 거기다 당신께서 복귀한다는 소문이 돌면 불편해할 사람들이 많을 테니 절대 비밀로 하라고 당부를 받았죠. 아마 저 말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당부를 받았을 겁니다.”

어디 구 여사가 그에게만 돈을 빌려줬을까.

물론 입이 싼 인간은 어디든 있기에 구 여사가 복귀했다는 소문이 잠시 돌았지만, 곧 헛소리로 치부되면서 사라졌다.

“그런데 그 큰돈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덥썩 물었다고?”

“당연하죠. 구 여사님도 구 여사님이지만, 95년도가 어떤 시기입니까. 격동의 시기 아닙니까!”

가만히 있어도 돈이 저절로 새끼를 까던 시절.

애기 엄마가 주식을 하겠다고 사채업자 사무실을 찾던 시절이니 그 돈을 빌리지 않는 놈이 미친놈이었다.

“자랑이다, 새꺄.”

빡!

“윽! 아, 거기 눈썹은 좀 더 짙고 깁니다.”

“이 정도요?”

“아뇨, 그것보다 짧게…… 예, 그 정도요.”

몽타주를 전문적으로 그려 주는 대원과 이야기를 나눈 사채업자는 콜라를 들이켰다.

“어후. 살겠네.”

“그래서. 더 말해 봐.”

“어…… 이게 끝입니다.”

이외엔 딱히 말할 게 없다.

갑자기 구 여사의 심복이 찾아와 쩐주를 해 주겠다고 했고, 그를 승낙한 뒤 사무실 앞에 10억이 든 사과박스가 배달됐다.

그걸 끝으로 임학수와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다.

종혁은 뭐 이런 놈이 있냐며 쳐다봤다.

“이자를 잘도 지불했네…….”

“구 여사님 돈 아닙니까. 그분 돈을 떼먹고도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 입술은 좀만 더 얇게요.”

“그딴 정신머리로도 사람 얼굴은 잘 기억하고.”

“제가 사람 얼굴 기억하는 게 특기다 보니…… 하하.”

돈 떼먹고 튀는 놈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특기가 되어 버린 특기.

“예. 그 얼굴입니다. 딱 그 얼굴!”

“여기 있습니다, 최 팀장님.”

몽타주를 넘겨받은 종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야, 이건 너무 평범하잖아. 정말 이 얼굴 맞아?”

과장을 조금 붙이면 번화가를 한 시간만 걸어도 30명은 볼 법한 외모였다.

“뭐 특별한 점은 없었어?”

“글쎄요…… 아, 귓불 끝이 살짝 잘려 있었습니다! 마치 날카로운 것에 베인 것처럼!”

종혁은 눈을 빛냈다.

“그리고?”

“없습니다!”

“에라이!”

사채업자는 다급히 몸을 숙였고, 그 위로 종혁의 손바닥이 스쳐 지나갔다.

종혁은 그냥 확 때려 버릴까 하다가 관뒀다. 더 이상 때렸다가는 사채업자도 반발할 수 있었고, 그러면 자칫 독직폭행으로 걸릴 수 있었다.

“후우. 그럼 그 이자를 입금했다는 은행과 계좌는 뭐야?”

“예. 세진은행 094…….”

“……뭐? 어디?”

종혁은 다급히 사채업자를 응시했다.

*   *   *

지이잉! 지이잉!

잠을 깨우는 핸드폰의 진동.

뒤척이다 눈을 뜬 긴 생머리의 이십대 초반 여성이 새하얀 천장을 멍하니 응시하다 옆을 본다.

밤사이 온기가 있었지만, 식어 버린 옆자리.

희미하게 방 안을 맴도는 올드한 스킨냄새.

여성은 다시 천장을 바라본다.

“……춥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날 만큼 보일러가 돌아가고 있지만 추웠다. 가슴에 커다랗게 뚫린 구멍 사이로 차디찬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힘들어.”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여성은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대에 수표 몇 장이 올려져 있지만 여성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쏴아아!

쏟아지는 물줄기에 씻겨 내리는 어젯밤의 흔적.

누군지도 모를 늙은이의 흔적.

여성은 어젯밤 함께한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 똑같았기 때문이다.

두 달 전 자신을 산 어젯밤의 늙은이뿐만 아니라 8개월 전 자신을 샀던 늙은이도, 1년 5개월 전 샀던 늙은이도, 그 전에도, 그 전에도 얼굴이 다 똑같았다.

그냥 다 주름 가득하고 배 나온 요괴였다.

망태 할아버지. 그냥 요괴의 얼굴이었다.

“후우.”

거울에 낀 뿌연 수증기를 닦아 낸 여성은 서글피 웃었다.

“넌 누구니?”

이건 누굴까.

거울에 비춰지는 저 얼굴이 정말 자신의 얼굴인 걸까.

성형외과 한 번 간 적 없는데, 이젠 자신의 얼굴조차 기억나질 않는다.

“안녕, 언니? 난 17살 유지영이야. 떡볶이에다가 순대튀김을 찍어 먹는 거랑 친구들과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데, 정말 좋아하는 건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 오빠…… 미친년.”

교통사고를 크게 내 사람을 반신불수로 만든 오빠.

세상에 혈육이라곤 하나뿐인 오빠.

겨우 한 살 어린 동생을 먹여 살린다고 학교를 관두고 신분을 속여 가며 택배 일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낸 것도 모자라 자기도 하반신 마비가 되어 버린 병신 머저리.

그런 오빠의 합의금을 만들고자 오빠와 함께 사채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이렇게 됐다.

“머저리 새끼. 차라리 그때 죽어 버리지…….”

원망 한 점 스며 있지 않은 눈으로 욕을 하던 여성은 몸을 돌렸다. 누군지도 모를 얼굴을 계속 보는 건 너무 괴로웠다.

알몸에 수건만 두른 채 나온 여성은 몸에다 화장품을 펴 바르기 시작했다.

습관처럼. 기계적으로. 살결이 좋아야 배불뚝이 늙은이의 지갑이 열리니까.

띠디디디! 띠디디디!

“……아, 오늘 피부과 가는 날이구나.”

다리를 쓸어내리던 여성은 몸을 일으켜 옷을 챙겨 입었다.

겨울임에도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얀 블라우스 위에 코트를 걸친다.

이것이 이번 늙은이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여기로 택시 한 대 보내 주세요.”

전화를 끊은 여성은 마지막으로 핸드백을 챙겨 들곤 집을 나섰다.

“후우.”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사이로 빠르게 흩어지는 담배 연기.

얇고 긴 담배의 끝이 빠르게 타들어 간다.

“늦네. 추운데…….”

텅! 텅!

바로 앞 주차된 차에서 내리는 남성들을 힐끗 본 여성은 아파트 입구를 보며 발을 굴렀다.

그때였다.

“유지영 씨?”

흠칫!

“누구……?”

생기 한 점 없는 목소리에 최재수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오택수는 씁쓸히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경찰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후욱!

갑자기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털썩!

*   *   *

“그래. 더 생각나는 거 있으면 바로바로 밖에 있는 경찰에게 말하고.”

병실 밖으로 나온 종혁은 오늘 협조해 준 경찰에게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건 약소하지만 담뱃값이라도 하세요.”

“어이구, 감사합니다. 그럼 또 불러 주세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그를 배웅한 종혁은 차에 타며 오택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최 팀장. 여긴 세 분 확보했다.

각 지방청에 협조 공문을 돌려 놨으니 나머지 피해자 13명도 속속 구해 내게 될 거다.

-그런데…….

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던 오택수가 한숨을 탁 내뱉었다.

-이거 피해자들께서 댁으로 돌아가지 않으시려고 한다? 위태로워…….

모두 유지영처럼 얼굴에 생기 한 점이 없다.

그 말에 종혁의 입에서도 한숨이 튀어나왔다.

“후우. 본청 근처에 있는 제 빌라 아시죠? 일단 거기서 쉬게 하세요. 한 공간에서.”

그래야 혹시 모를 이상한 선택을 하지 않을 거다.

-오케이. 넌 어떻게 됐어? 구 여사는 찾았어?

종혁의 표정이 대번에 굳는다.

“오 경감님, 죽은 사람의 대리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게 무슨…… 야, 설마?

“예. 구옥순 씨는 이미 13년 전에 사망한 분이십니다.”

1994년, 12월 31일. 구옥순은 새해의 해를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그리고 이 새끼가 구옥순 씨에게 원금과 이자를 송금한 은행이 세진이네요.”

세진은행 사건.

해커들에 의해, 아니 그 조직의 놈들이 작정하고 털어 버렸던 세진은행이 다시 등장했다.

-미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거!

“일단 재수랑 함께 제가 알려 드리는 주소로 가서 권 이사장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구옥순 씨를 찾은 적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시간대는 1995년 1월 1일부터 4월까지.”

사채업자가 스스로를 구옥순의 대리인이라고 밝힌 임학수란 인물을 만난 게 5월 초라고 했다.

-넌?

“세진은행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만나려고요.”

단순한 우연일 수 있지만 왠지 느낌이 쎄했다.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영광아. 지금 어디야? 혹시 시간 되니?”

세진은행 사건 때 그 조직 놈들의 수작에 얽혀 세진은행을 해킹했던 고영광. 그의 기억을 다시 더듬어 봐야 할 것 같았다.

“후. 권 이사장님이 허튼짓을 하면 안 될 텐데…….”

자신이 찾겠다며 절대 함부로 움직이지 말아 달라 간곡히 부탁했지만, 그게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다른 이라면 모르되 명동의 돈귀신이었던 양반이다.

“어떻게든 어르신보다 먼저 찾아야 해.”

이제야 과거에 묻힌 피와 원망을 씻어 내기 시작한 사람이다. 다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순 없었다.

종혁의 눈이 매섭게 빛나기 시작했다.

과르릉!

종혁의 차가 도로를 향해 튀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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