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53화>
“언니이!”
김리나는 달려들 듯 안기는 윤아에 헛기침을 뱉었다가 이내 그녀를 꽉 안았다.
윤아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지금쯤…….
“고마워, 윤아야. 정말…… 고마워.”
“괜찮아요. 다 끝났어요.”
토닥토닥!
“……흑! 윽! 윽!”
아까 전에도 쏟아 낸 눈물이 왜인지 다시금 쏟아져 내린다.
‘무, 무서웠어.’
너무나 무서웠다.
그게 이제야, 숙소로 돌아온 지금에야 제대로 실감이 나고 있었다. 마치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혼난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더 크게 울어 버리는 것처럼.
‘아…… 나 숙소를 집으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세상 모든 위협에서 보호해 줄 보금자리.
멤버들은 가족이었다. 어느새 그렇게 여기고 있었던 거다.
그걸 깨닫게 된 김리나는 윤아를 붙잡고 펑펑 울었고, 윤아는 그런 그녀의 등을 말없이 토닥여 주었다.
그렇게 꽤 시간이 흘러 김리나가 진정되자 윤아는 종혁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삼촌.”
“걱정 많았지?”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거칠고 따뜻한 큰 손에 윤아의 눈에 눈물이 핑 돈다.
종혁의 말대로였다.
숙소 멤버들에게 김리나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나갔다는 말을 전한 이후 윤아는 걱정으로 끙끙 앓았었다.
“이제 놈들이 김리나 양을 괴롭힐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서로 힘들었을 테니 숙소에 들어가면 서로 좀 다독이고. 휴일 되면 여행도 가 보고. 겨울이니까 스케이트도 좋겠지.”
종혁은 그러며 그녀의 손에 쿠폰 같은 것들과 카드 한 장을 쥐여 주었다.
“이걸로 써.”
“아, 아니요!”
“괜찮아. 사건이 해결된 피해자를 케어하는 것도 경찰의 일이거든. 그럼 간다. 푹 쉬어.”
손을 흔든 종혁은 몸을 돌렸고, 윤아는 그런 종혁을 멍하니 바라보다 입술을 달싹였다.
“짜, 짱이다…….”
아무래도 새로 생긴 삼촌은, 할아버지는 슈퍼맨인 것 같았다.
“저기 윤아야…….”
“네?”
“저기 저분이…… 네 삼촌 맞아?”
‘아, 잠깐?’
종혁의 넓은 등을 몽롱하게 바라보는 김리나의 눈. 윤아는 자신의 삼촌을 노리는 여우의 등장에 낯빛을 굳혔다.
김리나가 힘든 일을 당할 뻔한 건 한 거고, 이건 이거였다.
한편 차에 올라탄 종혁은 오택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 좀 더 나왔어요?”
-아직 쩐주가 누군지는 나오지 않았는데, 이 씹새끼가 팔아 버린 여성이 김리나 양뿐만이 아닌 것 같다.
얼굴을 구긴 종혁은 바로 시동을 걸었다.
“피해자 현재 위치는요?”
* * *
퍼억! 퍽! 퍽!
어느 대학 병원의 1인실. 팔에 깁스를 한 사채업자 배 위에 놓인 책 위로 종혁의 주먹이 후려쳐진다.
그러다 책을 치운 종혁은 새우처럼 몸을 둥글게 마는 사채업자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야.”
“끄으윽!”
“씨발아.”
“예, 예!”
종혁은 고통과 공포로 물든 사채업자를 보며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입 다물고 있는 게 과연 좋은 선택일지 잘 고민해라.”
인신매매를 했다는 정황은 장부를 통해 확인됐으나, 그들이 어디로 팔려 나갔는지는 입을 꾹 다무는 사채업자.
발견된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진술한다면 형량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기에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계급이 경정이야. 직급은 팀장이고. 이게 뭘 말하는 것 같냐?”
움찔!
“형량 조금 줄이려고 청장까지 치고 올라갈지 모르는 나란 놈을 적으로 돌릴래, 아니면 싹 다 불고 좀 길게 살다 나와서 네 생활 즐길래? 다시 돈놀이해야지?”
사회의 필요악인 사채업자.
세상을 좀먹는 해충이나 다름없지만, 이들이 기여하는 부분도 없잖아 있다.
한순간만 극복하면 낭떠러지에서 기어오를 수 있음에도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
정부에서 이 모든 이들을 지원해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이상 그런 이들을 위해 사금융권의 존재는 필요하긴 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부터 너한테 마킹을 붙일 거거든? 혹여나 나한테서 도망치겠다는 꿈은 버려라.”
일가친척을 비롯해 지인, 부하, 구치소에서 함께 방을 쓰는 사람, 면회객 모두에게 말이다.
“세상에 돈이면 안 되는 거 없는 거 알지? 그런데 그 돈이 썩어 넘쳐 나는 게 나야. 보여?”
“……!”
손목에 채워진 파텍 필립 시계를 보여 준 종혁은 사납게 웃었다.
“넌 씨발 내가 책임지고 인생, 아니 삶 자체가 좆되게 해 준다. 네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철렁!
“혀, 형사님!”
“왜?”
“……불겠습니다.”
종혁의 입가에 푸근한 미소가 피어난다.
“그래, 잘 생각했어. 이렇게 협조해 주니 얼마나 좋아? 어? 괜히 입 다물어서 맞기나 하고, 어린놈한테 협박이나 듣고.”
“…….”
종혁은 얼굴이 구겨지는 사채업자를 보며 킬킬 웃었다.
“최재수.”
“예!”
“이 새끼 쩐주가 누군지까지 다 밝혀내.”
“예!”
“흡?!”
종혁은 담배를 끄며 밖으로 나왔고, 밖에서 졸고 있던 오택수가 기지개를 펴며 일어섰다.
“어우, 죽겠다.”
“비상금 날아간 게 그렇게 타격이 크세요?”
“아, 몰라. 요새 부쩍 기력이 좀 떨어지는 게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봐.”
어쩌면 종혁을 쫓아 본청에 들어온 이후 거의 쉼 없이 움직이며 쌓인 피로가 지금 올라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흠…… 여기요.”
“이건 뭐야?”
“청담동 에스테틱 회원권인데, 형수님이랑 가서 한번 받아 봐요. 신세계가 따로 없을 테니까.”
“어, 땡큐. 그래서 어떻게 됐어? 불었어?”
“재수가 취조하기로 했어요.”
“아, 그래?”
이젠 형사다운 티가 제법 나는 최재수.
아직 한참 멀었지만, 종혁이 요리했을 게 뻔한 놈에게 취조를 받는 건 초임 순경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었다.
“그럼 커피나 마시자. 어후, 명절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장인어른은 어찌 된 게 퇴직하고 나시니까 더 정정해져?”
종혁은 나지막하게 투덜거리는 그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뒤따랐다.
‘그나저나 쩐주는 누구려나…….’
보통 사채업자의 쩐주는 더 큰 사채업자.
종혁은 오늘 검거한 사채업자가 부디 권회수가 남긴 흔적이 아니기만을 빌었다.
“구옥순?”
“예. 구옥순이라고 했습니다.”
“구옥순이라…….”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그건 오택수도 마찬가지였다.
“구옥순…… 구옥순……. 아! 구옥순이란 사람 혹시 구 여사 아니야?”
“그래요! 구 여사!”
한때 압구정동에서 구 여사의 땅을 밟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알려진 유명한 투기꾼이자 사채업자.
한강 위에 돈귀신이 있다면, 한강 아래엔 구여사가 있다는 말이 전설처럼 나돌 때가 있었다는 말을 회귀 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구 여사 이 양반 금융실명제 때 나가리됐을 텐데?”
“……그러게요?”
종혁도 그렇게 알고 있다.
“설마 이 양반 복귀했나? 아닌데. 설사 복귀했다고 한 들 이런 부류의 새끼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구 여사 스타일이 아닌데?”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돈귀신 권회수가 돈을 위해 무슨 짓이라도 했다면, 구 여사는 사람을 깐깐히 살피고 진짜 없이 사는 이들을 도와줄 사채업자를 골라 돈을 빌려줬다.
측은지심과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사채업자만 골라서.
사채업자가 그런 걸 가지고 있다는 게 꽤 우스웠지만, 권회수도 회개한 마당에 구 여사 같은 사람도 있을 순 있었다.
“아…… 이 양반은 우리 사이즈로 힘든데.”
최소 검찰 지검장쯤 돼야 만날 수 있을까.
비록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다고 한들 경찰이 비벼 볼 사람이 아니었다. 본청 차장 정도면 몰라도 말이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재산을 모두 정리하고 잠적했다는 구 여사.
“뭐 그건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봐야죠.”
“응?”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권 이사장님. 혹시 구옥순 여사가 현재 어디에 사는지 아십니까?”
-……일단 만나지.
“음?”
종혁은 왠지 심각한 권회수의 말투에 미간을 좁혔다.
* * *
똑똑똑똑똑!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경기도 외곽의 어느 작은 절.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는 스님의 뒤로 권회수가 노구를 움직여 거대한 불상을 향해 절을 올린다.
종혁도 그 옆에 앉아 가만히 불상을 응시한다.
약속 장소를 이곳으로 잡다 못해 절을 하는 권회수.
그 행동이 이해될 듯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릿속이 좀 복잡하다.
‘비구니가 되신 건가…….’
그럴 수 있다.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가진 재산을 거의 잃고 떠났던 구 여사라면, 최소한의 도리를 따지던 그녀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합장을 하며 눈을 감았다. 이왕 온 김에 가족들의 건강이나 빌어 볼 참이었다.
‘부디 어머니 건강하게 해 주시고, 우리 철이 잘되게 해 주시고…….’
그렇게 얼마나 빌었을까.
목탁 소리가 점점 잦아들기 시작하다 멈춘다.
“사바하…….”
스륵스륵!
가사를 흔들며 일어선 늙은 스님이 어느새 땀으로 범벅이 된 권회수에게 합장을 한다.
“수고하셨습니다, 시주님.”
“아닙니다. 스님께서 수고하셨지요. 절에 별일은 없습니까?”
“속세와 많이 떨어진 이 외딴 절에 무슨 별일이 있겠습니까. 올겨울도 시주님께서 기름을 보내 주셔서 참 따뜻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럼 편히 둘러보다 가십시오.”
“예, 스님.”
마주 합장을 한 스님이 대웅전을 빠져나가자 권회수도 종혁을 툭 치며 대웅전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말없이 걸었다.
사박! 사박!
어젯밤 내린 눈에 덮인 자갈 발바닥에 뭉개지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 절 특유의 나무 냄새가 그들을 둥글게 감싼다.
종혁으로선 좋아하지 않게 된 냄새였지만 말이다.
절이나 성당의 나무 냄새와 비슷했던 향.
자신과 어머니를 죽인 그놈에게서 맡은 향수 냄새이니 좋을 리가 없었다.
“어떠신가. 겨울의 산사도 썩 고즈넉하지 않나?”
“……그러네요. 향냄새가 참 좋습니다.”
“그게 좋다는 건 늙었다는 것인데…….”
“하하.”
“하긴 아직 한창때인 최 팀장이 늙었을 리 없지. 좀 앉겠나?”
종혁은 점퍼를 벗어 그가 앉을 곳에 깔았고, 고맙다고 웃으며 앉은 권회수는 경내임에도 담배를 꺼내 들었다.
“끊으신 거 아니었습니까?”
“그거야 서울은 공기가 탁해서 그런 거고.”
아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졌기에, 이 피 묻은 손이라도 절실한 사람들이 많아졌기에 권회수는 담배를 끊어 버렸다.
“경내에선 피워도 되고요?”
“내가 이 절의 최대 후원자니 괜찮을 걸세. 아까 그 스님이 주지 스님인데 내 말이면 아주 껌뻑 죽거든.”
그렇다 한들 예의가 아니지만, 종혁은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권회수의 눈이 뽀얗게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아련히 좇는다.
“……구 여사는 어쩌다 알게 된 건가?”
종혁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는 건 분명 어떤 심각한 이유일 터.
“이번에 미성년자들을 변태들에게 팔던 사채업자 한 명을 잡았는데, 그 쩐주가 구 여사더군요.”
“……그러신가? 허허. 어떤 개새끼인지 모르지만 참 개새끼구만.”
콰드득!
권회수가 짚은 지팡이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울린다.
그에 종혁의 낯빛도 굳는다.
“이보게, 최 팀장.”
“예.”
“방금 주지 스님이 왜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외웠는지 아시는가? 비명에 간 불쌍한 사람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네.”
위령제.
“……!”
“그래. 구 여사, 아니 옥순 누이는 옛날에 죽었어.”
종혁은 경악하며 권회수를 봤고, 그는 하늘을 보며 옛 추억을 더듬어 갔다.
-그러다 칼 맞을 거다, 이 돈귀신아.
젊은 날, 오직 돈만 좇던 권회수의 머리에 꿀밤을 날리며 훈계를 했던 여장부 구옥순.
어디 만석꾼의 외동딸인 그녀는 권회수와 태생부터 달랐다. 그래서인지 참 많이 부딪쳤고, 싸웠더랬다.
그러다 권회수가 명동 사채시장을 장악하니 훌쩍 강 아래로 떠나 버린 그녀.
“그 시절 만석꾼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아는가?”
“……친일을 했다는 거군요.”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이 많았다.
구옥순의 아비는 명백한 후자였다.
“고 이석영 선생께서 독립운동을 위해 가진 재산을 모두 급하게 처분하실 때 사기꾼처럼 입을 털어 그 토지를 넘겨받고 기어코 만석꾼이 된 양반이지. 옥순 누이는 그런 양반의 늦둥이 외동딸이고.”
구옥순은 그랬던 아비가 6.25전쟁의 영향으로 죽자, 가진 자산을 모두 정리해 부산에 있다가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상경해 집과 일터를 잃은 사람들에게 사채를 놓기 시작했다.
“사채를 놓은 것도 대가 없는 공돈은 사람을 죽인다는 이유였지.”
그랬던 사람이다. 자신만의 철학이 단단했던 사람.
“아마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문민 정부 때문에 옥순 누이가 은퇴를 당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게야. 그렇지 않으신가?”
“아니었단 말입니까?”
“아니지.”
구옥순은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자 이제야 겨우 권력자들이 제 배만 불리지 않을 수 있게 된 세상이 왔다며, 서민들도 제 삶의 대가를 온전히 받으며 살 수 있겠다며 모든 걸 내려놓고 은퇴를 하였다.
은퇴를 당한 게 아니라 그녀 스스로 은퇴를 한 거다.
“모든 걸 내려놨단 말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 대단했던 압구정동의 반 이상을 소유했던 누이가 이런 작은 절에서 얼어 죽었겠는가?”
어디 압구정동 뿐이겠는가. 한강 이남의 10퍼센트가 그녀의 땅이었다.
만약 구옥순이 권회수 본인처럼 독한 성격이었으면 아마 현재 강남이라 불리는 땅 전체를 그녀가 소유했을 거다.
그랬던 그녀는 세상에 밝혀지지만 않았을 뿐 가진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속세를 떠난 거다.
“아…… 그래서 구옥순 여사께서 돌아가신 걸 아무도 몰랐던 거군요.”
“사망 신고도 하지 않았으니 더 그럴 걸세.”
혹여 부고 소식이 퍼지면 그 추운 날 찾아올 조문객들이 걱정돼서 그런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그리고 그 유언을 전달받은 사람이 권회수였다.
“끝까지 참 미련하고 미련했던 누이였지. 그런데…….”
까드득!
“어떤 씹어먹을 종자 따위가 감히 누이의 이름을 팔고 다니는 건가?”
어렵고 힘들게 사는 이들을 위해 몸을 웅크리고 낮췄던 제왕이 살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