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50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왜 들통이 난 것일까.
구치소에 수감된 장성구는 한참을 고민해 봤지만 답이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괜찮다. 이럴 때를 대비해 인맥을 쌓아 놓은 것 아니겠는가.
기자들 앞에서 끌려오긴 했지만, 곧 나가게 될 거다.
그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나가서 알아보면 되겠지.’
그리고 이번 일에 연관 된 사람은 전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의 가슴에 흉심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4068번, 뭔 죄로 들어왔소?”
“놔둬. 아주 학이여, 학.”
‘버러지 같은 것들.’
그는 허리를 세우며 다른 범죄자들을 무시했다.
“4068번? 접견이다.”
‘왔군.’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매달린 그는 몸을 일으켰다.
덜컹! 그그긍!
싸늘한 냉기가 불어오는 복도.
철창이란 우리 속에 갇힌 인간 이하의 짐승들이 보내는 시선을 무시하며 접견실로 간 그는 먼저 도착해 있는 변호사 지인을 보곤 푸근히 웃었다.
하지만 변호사 지인은 그를 반기지 않았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가슴에 박히는 불길한 기분을 애써 무시한 장성구는 빈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구치소 안에 있으니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코치들은커녕 제자들도 면회를 오지 않는지라 더욱 그렇다.
‘배은망덕한 놈들.’
장성구는 나가면 이들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다짐했다.
변호사가 입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후. 어렵습니다, 장 감독.”
“……음?”
장성구는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착각을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페이퍼 컴퍼니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건…….”
“중앙지검장이 나섰어요.”
지금 특수부 검사들에 의해 빙상협회가 뒤집어지고 있다.
“……그래서요?”
장성구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중앙지검장이 서울 다른 지검의 지검장들보다 한 끗발 높다지만 그래 봤자다.
“중앙지검장이 전에 있던 곳이 중수부입니다.”
“……!”
중앙수사부.
장성구 같은 권력가에겐 저승사자라 불리는 곳이다.
철렁!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장성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무심하던 얼굴이 무너져 내린다.
“하, 하지만 빙상에 나를 대체할 존재가 없을 텐데요! 현재 코치들만으로는 메달을 딸 수 없을 겁니다! 문체부, 문체부는 뭐라고 합니까!”
변호사는 대답 대신 담배를 물었다.
“대, 대체 누가…….”
“남영익. 그가 돌아왔습니다.”
쿵!
자신의 등을 찌르고 미국으로 넘어간 남영익.
그제야 모든 상황이 파악된 장성구는 결국 밑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 씨발 새끼가! 으아아아아악!”
변호사는 처참하게 무너지는 장성구를 보며 담배를 깊게 빨았다.
‘나도 이제 이자와 관계를 끊어야겠군.’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는 사람은, 그것도 그 독한 인간에게 찍힌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게 좋았다.
담배를 비벼 끈 변호사는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 어디 가, 이 새끼야-!”
“접견 끝났습니다.”
“야, 이 개새끼야-!”
무너진 자의 발악은 추할 뿐이었다.
* * *
“조속히 빙상협회를 정상으로 돌리겠으며…….”
연단에 서서 연설을 하는 남 감독과 강직한 표정으로 그런 그의 뒤를 받치는 다른 코치들을 응시하던 종혁은 싱긋 웃으며 돌아섰다.
이제 빙상협회도 정상으로 돌아가게 될 거다.
선수는 선의의 경쟁을 할 거고, 그렇게 뽑힌 이들은 태극전사가 되어 대한민국을 빛내 줄 거다. 그러며 각자의 성적에 맞는 부와 명예를 얻게 될 거다.
“야, 아깝지는 않냐?”
그 말에 최재수도 아쉬움을 드러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종혁과 자신들이 다 했기 때문이다.
종혁은 그런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아깝긴요.”
중앙지검이 나서지 않았다면 이렇게 깔끔하게 끝났을까?
절대 아니다. 아마 사방에서 몰아치는 온갖 압력에 장성구를 풀어 줬어야 했을 거다.
종혁은 다른 과로 인사이동을 당했을 거고, 오택수와 최재수는 서로 찢겨져 어디 지방서로 발령이 났을 거다.
“하긴…… 동부지검장에다 국회의원이면 그럴 힘이 있지.”
장성구의 뒤를 봐주는 사람에는 국회의원도 있었다.
중앙지검장이 나섰다는 소식에 장성구와의 관계를 부정했지만 말이다.
“어그그! 그럼 이제 끝인 건가?”
“아뇨. 이제부터 시작이죠.”
종혁은 눈을 빛냈다.
빙상협회를 무너트렸으니 이제 다음은 유도협회를 비롯한 스포츠 협회 전부를 뒤져 봐야 한다.
타의에 의해 꿈이 박탈당한 선수들.
그 피해자들을 구제해야 됐다.
“어휴……. 그래. 가자, 가. 씨벌. 이거 설날 전에 끝나면 다행이겠네.”
“설날 전에 끝내도록 노력해 봐야죠.”
불가능한 일일 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종혁의 발걸음은 꽤 가벼웠다.
* * *
겨울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2월.
한창 스포츠 협회 수사로 인해 바쁜 종혁이 잠시 시간을 내어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다.
정확히는 CIA에서 제공한 화상채팅 사이트다.
그곳엔 권아영과 박태규, 나탈리아와 린치가 먼저 접속해 있었다.
“전조가 보이기 시작했다고요?”
빠르다. 회귀 전 기억보다 훨씬 더 빠르다.
그러나 여태껏 해 놓은 일들이 있기에 놀랄 일은 아니었다.
-예. 이제 조금만 밀어도 우르르 무너질 겁니다.
너무도 급격히 쌓은 모래성, 중국. 자신들이 그 모래성을 무너트릴 파도가 되어 줄 거다.
박태규의 말에 종혁은 나탈리아와 린치를 봤다.
-우린 모두 준비됐어요, 최.
-우리도.
짧지만 참 오랜 기다림.
흥분으로 빨갛게 물든 그들의 얼굴처럼 견딜 수 없는 종혁은 입술을 비틀며 입을 열었다.
“그럼 바이 차이나 프로젝트, 본격적으로 시작합시다.”
쿵!
-예!
종혁은 바빠지기 시작한 사람들을 보며 느긋이 담배를 물었다.
‘이번엔 뭘 살까?’
행복한 고민이 시작됐다.
* * *
부우웅!
종갓집으로 향하는 차 안.
보조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최기룡 전 청장이 돌연 입을 연다.
“그런데 정말 시간 되는 거야?”
빙상협회와 유도협회를 시작으로 축구협회까지 뒤집은 종혁.
그 행보가 협회를 지닌 스포츠 전 종목에 닿으려 하고 있었기에 최기룡은 이번 휴가에 우려를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아, 괜찮아요.”
현재 이택문 경찰청장의 명령 아래 서울청을 비롯한 전국 지방청에 일감이 나눠졌다.
스포츠 협회들이 증거를 인멸하기 전에 몰아치기 위해서다.
종혁은 애초부터 그럴 계획이었기에 승낙을 했고, 그로 인해 종혁의 수사는 끝. 여유롭게 명절 휴가를 계획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축구협회도 현몽준 당대표님께서 적극 협력을 해 줘서 수사가 빨리 끝난 거지, 아니었으면 지금도 수사를 하고 있었을걸요?”
축구협회 협회장인 현몽준 당대표.
그가 적극적으로 협력을 해 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최기룡은 창밖, 눈이 녹는 도로를 보며 입을 열었다.
“택문이가 이제 5개월 정도 남았나?”
“네. 그 정도 남았죠.”
“다음은 누가 될 거라는 말은 있고?”
“일단 서울청장님과 부산청장님이 물망에 오르고 있는데…….”
“부산청장이 될 확률이 높겠군.”
“아무래도요. 정권이 바뀌면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고.”
경찰청장의 임기가 2년이라지만,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회귀 전, 임기를 제대로 채우고 물러난 경찰청장이 몇 명이나 되던가. 빠르면 8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경찰청장도 있었다.
임기를 온전히 마친 최기룡이 운이 좋은 거였다.
“그렇군. 벌써 선거야.”
시간이 참 빠르다 싶었다.
“몇 번 찍을 거냐? 1번? 2번?”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최기룡을 봤다.
“공무원한테 정치색을 드러내라는 겁니까?”
“인마, 네가 그냥 공무원이냐?”
“예. 그냥 공무원이에요. 대통령이 누가 되든 무슨 상관입니까? 범죄자만 잘 잡을 수 있으면 되지.”
“얼씨구? 너만 경찰이지?”
“흐흐.”
피식 웃은 최기룡은 차창을 내리며 담배를 물었다.
‘하긴 이놈 말이 맞지.’
정권이 달라진다고 범인 검거도 달라진다면 그게 어떻게 경찰일까. 경찰은 그냥 평소처럼 그 자리에서 범인만 때려잡으면 되는 거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니 문제인 거다.
‘박종명…….’
권력지향형인 박종명 부산청장.
그가 정권의 개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뭐 이놈이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박종명이 취임할 때쯤이면 종혁도 외사국으로 옮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외사국에 있으면 박종명 부산청장도 종혁을 이용할 순 없을 거다.
‘그럼 된 거야.’
“후우우.”
종혁은 창밖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는 최기룡을 힐끔 보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박종명…… 그 양반 의외로 선은 지켰지.’
회귀 전 경찰청장이었던 박종명.
정권의 개처럼 굴 때가 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선은 절대 넘지 않았다. 이택문 경찰청장처럼 경찰 처우 개선에 앞장섰고, 공권력 강화에 열을 올렸던 그.
그렇기에 종혁도 별생각이 없는 거다. 박종명과 서울청장 중 누가 경찰청장이 되든 큰 상관은 없으니까.
그건 차기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양반이지만, 의외로 경찰은 별로 건드리지 않았던 그.
‘하지만 그 말이 많은 게 문제인데……. 경찰로서 무시할 수도 없고…… 아, 복잡하네.’
갑자기 심란해진 종혁은 차창을 열며 뜨거워지는 머리를 식혔다.
“할머님!”
“어이구, 최 팀장 왔어?”
“잘 계셨죠? 몸은 좀 어떠세요?”
“며칠 전에도 통화해 놓고 또 물어봐?”
잘 있다는 듯 팔뚝을 두드리는 손길에 종혁은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억지로 폈다.
작년보다 훨씬 힘이 약해진 손길, 가빠진 숨.
얼굴에도 검버섯이 피며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보내 드린 홍삼은 계속 드시고 계시죠?”
“그럼, 누가 보내 준 건데. 걱정 마. 갈 땐 가더라도 우리 최 팀장 장가가는 건 보고 가야지!”
“어이쿠. 그럼 20년은 더 사시겠네요!”
“그렇게나? 어휴, 그러면 못 써. 어머님 생각도 해야지.”
“저희 여사님은 딱히 그런 걸 생각하지 않는 분이시라…….”
“그래도 자식이라면 응당 얼른 결혼해서 손자를 안겨 줘야지. 그게 자식의 도리…….”
종혁은 시작된 그녀의 일장연설에 자신이 말을 잘못했구나 자책하면서도 ‘예, 예’ 대답만 해야 됐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힘이 붙인 할머님이 가 보라는 듯 손짓하자 인사를 하고 나온 종혁은 종부를 찾았다.
“아, 종혁아. 할머님은 뵙고 온 거야?”
“예. 그런데 할머님 건강검진은 하신 거예요?”
그 말에 종부의 입가에 씁쓸함이 맺힌다.
“너도 느꼈니?”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요?”
“아무래도 슬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결국…….”
무거운 한숨을 내뱉은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학이 나날이 발전한다고 한들 어쩔 수 없는 천명이다.
“그래도 티 내지는 말고. 할머님이 종혁이 너 신붓감 고르신다고 매일매일 즐거워하시니까.”
“결혼할 생각도 없는데 무슨……. 알겠습니다. 그래도 뭔 일 있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서울에 아는 병원 많으니까.”
“그래. 말만이라도 고맙다. 어서 가 봐. 어르신들께서 종혁이 너 언제 오나 목 빼며 기다리고 계시니까.”
“푸흐. 재밌는 이야기 찾을 거면 인터넷을 하시라니까.”
“그 연세들에 그게 쉽나. 어여 가 봐.”
“예. 술 좀 많이 넣어 주세요.”
걱정 말라는 듯 손을 젓는 종부를 뒤로한 종혁은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사랑방으로 향했다.
“저 왔습니다-!”
“어이쿠! 어서 와, 최 팀장!”
“오는데 힘들지 않았지? 이쪽으로! 이쪽으로 와!”
종혁은 새하얀 한복을 입은 채 버선발로 맞이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씩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 * *
“자자, 이것도 먹어!”
부욱 찢은 전을 건네는 손길에 온정이 가득 담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르헨티나에서 사업을 한다는 놈에게 사기를 당할 뻔한 것도 막아 주고, 좋은 투자사를 소개시켜 줘서 자식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는커녕 두둑한 지갑에 집안 가장 큰어른으로서의 권위도 든든히 지키는 중이다.
이 외에도 사이비가 얼마나 무서운지, 묻지마 투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직원들 처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 주면서 어쩌면 그들을 덮쳤을 우환을 막아 주었다.
그들에게 있어 종혁은 단순히 같은 문중 사람이 아니라 귀인이었다.
“어허, 어딜! 우리 최 팀장에게 그런 지짐 따위를 먹이려고? 이런 고기 정도는 돼야지!”
“하하. 감사합니다. 어이쿠! 잘 먹겠습니다.”
종혁은 얼굴에 새겨진 웃음을 지우지 않으면서 최기룡에게 도와 달라고 눈빛을 보냈지만, 최기룡은 이미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다.
‘에라이.’
종혁은 왜 설날 당일이 아니라 하루 전에 왔을까 작게 자책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이번에 정부 쪽에서도 빙상 스포츠에 크게 지원을 한다니까 혹시 그쪽 운동에 관심 있는 애들 있으면 한번 해 보라고 하세요.”
“어이구, 그래? 나라에서 지원을 해?”
“이미 협회에 300억 상당의 지원이 들어간 상태예요.”
종혁이 준 200억에 정부 추가 예산 300억.
이번 장성구와 유민정 사건으로 인해 빙상 스포츠에 대한 정부 지원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인식한 정부는 큰 출혈을 감수하기로 했다.
그리고 현재 아이스링크를 짓고 있는 태릉피트니스 센터에서 피겨와 쇼트트랙, 아이스하키, 컬링 등 빙상 스포츠를 보다 친근하게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짜는 중이기에 지금보다 더 양질의 선수들을 배출할 수 있게 될 거다.
“그렇지! 잘한다, 잘해! 이제야 내가 내는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 것 같구만!”
“어허? 세금도 내시오? 세금을 타 먹는 게 아니고? 이젠 타 먹는 게 더 많지 않나?”
“여태까지 낸 세금! 이놈이 그래도!”
“어익후, 치시게? 쳐 보쇼. 이참에 북망산 한번 넘어봅시다!”
“아이고, 왜들 이러세요.”
여든이 넘은 노인들이 멱살을 잡는 모습에 종혁은 식겁하며 말렸고, 사랑방은 순간 난장판이 됐다.
그런 사랑방으로 사십대 남성이 웬 처음 보는 소녀와 함께 들어섰다.
그러자 멱살을 잡던 어르신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근엄한 표정을 짓고, 거나하게 취해 드러눕거나 허리가 아파 삐딱하게 앉아 있던 어르신들도 얼른 신색을 바로 했다.
‘푸흐. 미치겠네. 다들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난생처음 보는 소녀가 왔다고 다들 무게 잡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그런데 저 조카님은…….’
아는 얼굴이다. 데려온 소녀도 왜인지 낯이 익었다.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그래, 왔나?”
“뭘 이렇게 빨리 와. 내일 와도 될 것을. 그런데 그쪽 여식은 뉘일꼬?”
“하하, 제 딸입니다. 윤아야, 인사드려. 우리 문중에서 가장 큰 어르신들이야. 너에겐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뻘 되겠다.”
“헥! 안녕하세요! 최윤아입니다!”
“어이쿠. 뉘집 딸인지 목소리 한번 장군감이다! 그래, 이리 온?”
절로 입가에 미소가 감돈 어르신들은 저마다 쌈짓돈을 꺼내기 시작했고, 안 그래도 사슴처럼 큰 눈이 크게 떠진 소녀는 냅다 엎드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으허허허! 그래, 예쁘장한데 인사성도 밝아서 좋구나. 앞으로 공부 잘하고, 부모님 속 썩이지 말고. 친구들과 좋은 관계 맺고.”
“네!”
“허허허허허!”
“아이고, 형님만 독차지하지 말고 이 아우들에게 넘겨주시오.”
“어디 사람을 넘긴다 만다 하는가. 그래, 윤아라고 했지? 가서 얼른 용돈 벌거라.”
“헤헤. 넵!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낯설다는 단어는 사전에 없는 건지 소녀는 넙죽넙죽 인사를 했고, 주머니에 돈이 쌓일 때마다 그 목소리는 더욱 커져 갔다.
그러다 종혁의 차례가 됐다.
“아…… 어…….”
이제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종혁에 당황하는 소녀.
소녀의 아버지가 피식 웃는다.
“아저씨도 계셨습니까?”
“예. 어떤 분 때문에 하루 일찍 오게 됐습니다, 조카님.”
종혁은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아 가며 술을 마시는 최기룡을 가리켰고, 소녀의 아버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풀썩 웃었다.
“윤아야, 인사드려라. 이분이 네게는 할아버지뻘 되시는 분이다.”
“히엑?! 아,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요. 윤아 양도…….”
‘아, 최윤아!’
이제야 저 화장기 하나 없는 앳된 얼굴에 미래의 스타가 덧씌워진다. 2010년도 중반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최고의 걸그룹이라 불렸던 걸그룹의 멤버.
‘얘가 우리 문중이었어?’
전혀 몰랐던 일이라서 놀랐던 종혁은 이내 의아하게 쳐다보는 윤아의 모습에 푸근히 웃으며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래요. 윤아도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이건 할아버지로서 주는 세뱃돈.”
“가, 감사합니…… 억? 에에엑?!”
종혁이 준 백만 원짜리 수표 다섯 장에 경악을 한 윤아는 그걸 아버지에게 보여 줬고, 소녀의 아버지도 당황했다.
“너, 너무 많습니다, 아저씨.”
“한창 때일 나이 아닙니까. 돌아서면 배고플 나이인데, 주머니가 두둑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형님?”
“허허허. 그렇지. 암, 우리 윤아처럼 예쁜 아이는 더 그래야지!”
“윤아야! 어른이 줄 때는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야! 그 아저씨가 많이 부자니까 그래도 된다!”
“가, 감사합니다.”
“그래요, 그래.”
‘최윤아라…… 흠.’
회귀 전 국내 최정상의 스타였음에도 별다른 말이 없던 최윤아.
‘이거 잘하면 방송국 멱살을 다시 잡기가 훨씬 편해지겠는데?’
종혁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