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46화>
본청 지하의 특별수사팀.
“내가 어? 돈이 떨어져서 담보를 잡았다는데!”
“아, 진짜 딱 한 대 때린 것뿐이라니까요!”
시끌시끌. 웅성웅성.
어제까지 만해도 조용하기 그지없었던 사무실이 시끄럽다.
수갑을 찬 채 2팀과 3팀 앞에 앉아 억울함을 토하는 사람들. 점점 높아져 가는 목소리에 2팀과 3팀 형사들이 관자놀이를 누른다.
그때였다.
“야-! 너 이거 풀어! 안 풀어?!”
복도를 울리는 뾰족한 비명이 사무실을 가득 채우던 소란을 꿰뚫는다.
그와 동시에 유민정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종혁.
사무실 풍경을 본 유민정의 눈이 크게 흔들린다.
흉악한 얼굴들과 험악한 분위기.
하얗게 질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젖혔다.
하지만…….
콱!
그런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일으켜 세우는 종혁.
“꺄아악! 놔! 이거 안 놔?!”
“하, 이년이 또 이러네.”
방금 전 본청 입구 앞에서도 뒤로 눕더니 지금도 누우려 든다.
“년?! 야! 너 몇 살이야-!”
“스물일곱 살입니다. 그러니까 한 번만 더 아가리 털면 찢어 버린다.”
‘흑?!’
어디서 이런 취급을 당해 봤을까.
더 거칠어진 종혁의 모습에 하얗게 질린 유민정은 입을 다물었고, 종혁은 그녀를 자신의 옆 의자에 던지다시피 앉혔다.
“너, 너 지금 실수하는 거야! 내가 연락만 하면……!”
외투를 벗던 종혁은 내선 전화기를 내밀었다.
“뭐, 뭔데, 이건?”
“연락하시다면서요. 빽이든 변호사든 마음껏 연락하세요.”
“……하!”
무덤덤한 눈빛에 정신을 차린 유민정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방금 전까지야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해서 평소답지 못한 모습을 보였지만, 정신을 차리게 된 지금은 아니다.
방금 전 놀라면서도 고소해하던 제자들의 눈빛을 떠올린 유민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대체 이 치욕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그녀의 눈에 독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너 정말 나 감당할 수 있겠니?”
“아, 거 말 많네.”
“옷 벗는 걸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예, 예. 그쪽도 전화기 드려?”
종혁은 오택수에게 끌려 온 유민정의 비서를 쳐다봤다.
그러자 비서는 대답 대신 안주머니에서 연락처 수첩을 꺼내 유민정에게 넘겨줬다.
“……가지가지 한다.”
고개를 저은 종혁은 외투를 옷걸이에 걸고는 자리에 앉아 담배를 물었고, 수화기를 붙들고 있던 유민정의 얼굴이 순간 밝아졌다.
“어머, 여보…… 야!”
휙!
전화기를 뺏은 종혁은 스피커 모드로 돌렸다.
-여보세요? 유 교수?
“예, 수고하십시다. 본청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팀 1팀장 최종혁 경정입니다. 지금 유민정 씨께서 뇌물수수 및 탈세, 횡령, 배임, 성추행, 성폭행 등등의 혐의로 잡혀 오셨거든요? 전화를 받으신 분은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바쁘니까 얼른 신원 밝히고 끝냅시다. 전화번호 있으니까 바로 끊을 생각마시고요.”
-……어흠. 그런 것인 줄 몰랐군요. 그냥 아는 사이일 뿐이니 마음대로 하십시오. 죄를 지었다면 죗값을 받아야지요.
달칵! 뚜, 뚜, 뚜.
종혁은 눈을 크게 뜬 유민정을 봤다.
충격과 배신감으로 얼룩진 그녀의 눈.
“계속해요.”
“너…….”
“계속하라고.”
빠득!
유민정은 다시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종혁은 다시 방금 전의 행동을 반복했다.
그렇게 몇 곳이나 전화를 걸었을까.
-난 모르는 사이입니다! 왜 전화했는지 모르겠군요!
“…….”
종혁은 거대한 충격을 받아 부서지기 일보 직전인 유민정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왜? 운동에 목맨 애들, 부모들이 안절부절못하니까 세상이 자기 거 같았지? 자기가 여왕 같았지?”
우물 안의 개구리. 유민정은 우물 안에서 내가 왕입네 하고 개굴개굴 울던 개구리일 뿐이었다.
“2팀장님!”
“왜? 뭔 일이여?”
“걔 얼마짜리예요?”
“이 새끼? 50억짜리여! 전세 사기!”
종혁은 다시 유민정을 봤다.
“들었냐? 넌 좆도 아니야.”
스타 선수가 손연아뿐인 피겨.
제대로 된 병사 한 명 없는 세상의 여왕인 유민정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모자란 년아.”
쿵!
“너…… 너어어!”
찰칵! 치이익!
“후우. 마지막으로 기회 줄게요. 그러니 정말 당신을 빼 줄 수 있을 만한 사람에게 연락해 봐요. 이번엔 그냥 들어 줄 테니까.”
입을 꾹 다문 유민정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무슨 수작인지 모르지만, 이젠 정말 마지막 기회.
그렇게 생각하자 한 사람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그 인간은…….’
방금 전 한바탕하고 나왔지 않던가.
유민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종혁은 그런 그녀를 보며 눈을 빛냈다. 이제 유민정이 어디로 연락을 할까.
‘당연히 협회겠지.’
개인의 힘으로 안 되면 단체의 힘을 빌린다.
그건 상식이었고, 그래서 유민정을 이렇게 궁지에 몬 거다. 협회가 그녀의 비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종혁은 느긋이 의자를 뒤로 젖히며 담배 연기를 뿜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까득!
이를 악물며 종혁을 원망스럽게 노려본 유민정은 결국 전화기를 들었다.
‘이 번호를 누르는 순간 난 그 인간의 개가 되겠지.’
하지만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다.
뚜르르! 뚜르르! 탁!
-여보세요?
“……나예요, 장 교수님.”
-벌써 선물이 준비된 건가? 그럼 받았다 치지.
짜증조차 담겨 있지 않은 무심한 말투.
유민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도…… 요.”
-뭐?
“도와줘요. 경찰에 잡혔어요.”
-……유 교수.
방금 전의 말투는 환청이었다는 듯 따스함이 가득 담긴 말투.
유민정의 눈에 희망이란 점이 찍힌다.
이제 개가 될 테지만, 그래도 자신의 영역인 피겨에선 여전히 왕으로 군림할 수 있다는 꿈이 가슴속에서 피어난다.
-유 교수.
“예, 장 교수님!”
-난 사람을 고쳐 쓰지 않아.
달칵!
“……장 교수님? 장 교수님! 장 교수-!”
“어이쿠.”
종혁은 무너지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보여 주었다.
“끝이네?”
“자, 잠깐! 잠깐만! 아직 연락할 때가…….”
“오 경감님.”
“오케이.”
몸을 일으킨 오택수는 유민정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아, 아냐! 연락할 곳이 있다고! 이게 끝이 아니라고! 야아-!”
“자, 갑시다.”
“놔! 놔아-!”
종혁은 사무실 내의 유치장으로 질질 끌려가는 유민정을 일견하곤 그녀의 비서를 봤다.
움찔!
시선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그.
종혁은 피식 웃었다.
“유민정, 아니 유명자 밑에서 한 10년쯤 일했다면서요?”
흠칫!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보셨으니 알 테고…….”
10년. 한 사람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는 유민정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살기 위해 어떤 발악을 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답은 뻔했다.
종혁은 그를 향해 담뱃갑을 밀었다.
“뒤통수 맞기 전에 치시죠?”
협회가 그녀의 비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유민정을 궁지에 몬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답을 해 줄 사람은 유민정이 아니라 바로 이 비서였다.
파르르!
종혁은 떨리기 시작한 그의 눈빛에 푸근히 웃었다.
마치 네 편은 나뿐이라는 듯 말이다.
* * *
“뇌물수수와 성추행 말입니까?”
-그렇다니까! 장 교수, 이거 문제없는 거지?
“흠. 자세히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연락 기다릴게!
고요한 사무실, 통화를 종료한 장성구 교수는 책상을 두드리다 검찰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경찰 본청의 최종혁 팀장이라고 알아? 흠, 그래?”
장성구는 이어지는 검찰 지인의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알았어. 고마워. 별일은 아니야. 그래. 날짜 잡지.”
전화기를 내려놓은 장성구는 다시 책상을 두드렸다.
“미친개라…….”
한번 목표를 정하면 상대가 누구라도 물어뜯는 미친개. 그것도 상부의 사랑을 가득 받는 미친개.
“그런 미친개가 유명자 그 모자란 년을 물어뜯었다라…….”
톡. 톡. 톡…… 통!
“손연아 때문이군.”
경찰이 손연아를 후원하기로 하며 피겨계의 실상을 알게 된 거다. 그래서 청소를 하기로 결심하고, 미친개를 푼 것이다.
시청이나 도청 같은 행정 조직이 아니라 이 나라의 치안을 수호하는 경찰이 뻔히 비리가 보이는데도 무시한다? 그게 나중에 드러난다?
“그땐 그 계약을 주관한 간부들의 목이 줄줄이 날아가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장성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걱정을 했군.”
유민정이 전화를 걸었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그것만 가지곤 장성구 본인의 영역까진 쳐들어오지 못한다. 같은 협회 임원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전화이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장성구는 핸드폰을 들어 다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애들 입단속시켜. 병신 돼서 은퇴한 애들까지 모두.”
통화를 종료한 장성구는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눈엔 걱정이라곤 단 한 점도 들어 있지 않았다.
* * *
“장성구?”
본청 근처의 빌라.
종혁은 눈을 빛냈다.
“유민정이 마지막으로 전화한 사람이 장성구라고요?”
장성구. 아는 이름이다.
빙상협회를 조사할 때 가장 먼저 나온 이름이자, 회귀 전 들어 본 이름.
‘당시에 부회장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빙상 경기의 관심도가 현재보다 훨씬 높아진 2020년도에나 겨우 드러난 인물.
그러나 당시 종혁은 지능범죄수사대에 있었을 때라 수사 영역이 달라 이 장성구란 인물이 뭔 짓을 했는지가 잘 기억나질 않았다.
팔보채를 오물오물 씹던 유민정의 비서는 공부가주로 입안을 내용물을 삼키곤 입을 열었다.
“예. 한체대 교수인데 일명 한체대 라인은 이 사람이 관리합니다.”
불끈!
종혁은 주먹을 쥐었다.
뚫렸다. 빙상협회로 가기 위한 길이 뚫렸다.
장성구 이놈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조사를 하다 보면 뭐가 나와도 나오게 될 터.
종혁은 중식 풀코스에 입이 가벼워진 유민정의 비서를 사랑스럽다는 듯 응시했다.
그런데 아직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협회의 진짜 실세도 이 장성구 교수입니다.”
쿵!
둔중한 충격이 종혁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래, 맞아! 빙상 실세 장성구!’
이제야 좀 기억이 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끙. 돌겠네.’
종혁의 흔들리는 눈을 본 유민정의 비서는 입을 꾹 다물었고, 눈썹이 꿈틀거린 종혁은 이내 혀를 찼다.
“오케이. 3개월간 사식은 내가 책임집니다. 형량 거래는 꿈도 꾸지 말고요.”
“…….”
“반년. 내가 존댓말로 할 때 거래합시다.”
유민정이 머리라면, 손과 발은 이 비서다.
“닭대가리들만 가득한 닭장 뒤에 숨어 있는 호랑이입니다.”
종혁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일개 교수가 그럴 능력이 되는 겁니까?”
“그 교수가, 한체대에서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을 담당하는 그 교수가 맨날 금메달을 협회에 안겨 주면서 뒤로는 정적을 제거했다면요?”
“호오…… 꼬리 흔드는 사냥개처럼 위장을 한 호랑이다?”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쭈우욱!
“크으. 아마 당한 인간도 모를 겁니다. 장 교수 그 양반의 인맥이 어마어마하거든요. 아, 그 인간 때문에 선수 생명 끊겨서 은퇴한 선수들이라면 어느 정도 알지도 모르겠네요. 피도 눈물도 없는 그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선수 생명을 끊었다고요? 교수가?”
눈에 핏발이 서는 종혁을 본 비서가 말을 이었다.
“혹시 운동선수 연금 제도에 대해 아십니까?”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운동선수 출신이다 보니 연금제도에 대해 아주 잘 알았다.
“장 교수는 어떤 선수가 메달을 몇 개 따든 관심 없습니다. 연금 점수를 꽉 채우면 무조건 아웃. 이후 후배 선수들을 위한 비료로 삼습니다.”
페이스메이커, 혹은 대회에서 후배들이 메달을 딸 수 있게 만드는 희생양.
그렇게 무리를 하다가 신체가 박살 나 은퇴를 한다.
십자인대 파열은 대수롭지도 않은 수준이다. 무릎 연골이 다 닳는 건 예사고, 근육이 찢어져 평생 장애를 얻는 경우도 있다.
빠득!
“그걸 알면서도 선수들은…… 씨발.”
말을 하던 종혁은 바닥을 내리쳤다.
“예. 기록 때문입니다. 기록이 높아지는 게 눈에 뻔히 보이고, 그를 통해 메달을 따는데 어떻게 장 교수에게 반항합니까?”
연금 점수만 꽉 채우면 평생 백만 원이 넘는 연금이 나오고, 또 그렇게 강제적으로 은퇴당한 선수들의 취직자리도 알아봐 주는 데 말이다.
“비한체대 라인?”
비서는 코웃음을 쳤다.
“비슷한 기록이라면 동계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가 한체대가 7, 비한체대가 3입니다.”
비한체대가 따지고 들어도 한국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선수를 육성하는 곳이 한체대다. 빙상협회는 이런 명분을 내놓으며 비한체대의 분노를 달랜다.
“가끔은 한체대 4, 비한체대 6을 할 때도 있고요.”
“와.”
‘제대로 미친 새끼네, 이거?’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놈이다.
뚫린 길만 보고 협회를 덮쳤다가는 나가리 될 뻔했다.
“더 필요한 거 있어요?”
“그 사우나를…….”
“개소리는 하지 말고요.”
“……그럼 술 좀 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맛있네요, 이거.”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아, 접니다, 사장님. 방금 배달해 주신 빌라로 술 좀 가져다주세요. 있는 중국 술들 전부 다.”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비서를 봤다. 더 할 이야기가 있으면 계속하라는 뜻.
비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워낙 철두철미한 인간이라 자기가 책잡힐 문제, 그러니까 성추행 같은 문제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흠. 아닐 건데…….’
문제가 있기에 경찰의 수사망에 걸렸을 거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이 머릿속만 간질간질한 종혁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오늘 하루는 푹 쉬어요. 내일부턴 유치장에 있어야 할 테니까.”
그리고 검찰로 넘겨져 구치소에 갇히게 될 거다.
“또 그리고…… 아니, 쉬세요. 영악한 새끼 님아.”
……씨익!
의뭉스럽게 웃은 비서는 잘 가라며 고개를 숙였고, 종혁은 몸을 돌리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지금 비서는 무슨 의도인지는 몰라도 일부러 장성구 교수를 언급한 거다.
그렇기에 장성구에게 풀어 달라고 말하지 않을 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치는 취해 놔야겠지.’
문 앞을 지키는 경찰들에게 수고하라고 말하며 빌라 건물을 나선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장성구라…….”
아무래도 이번 수사의 최종 목표가 이놈 같다.
한체대가 있는 방향을 응시하는 종혁의 눈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