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45화 (345/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45화>

    “왜 오긴! 우리 홍선이가 카페에 취직했다는데 당연히 형으로서 팔아 주러 와야지!”

    개구지게 웃는 종혁의 모습에 홍선은 풀썩 웃었다.

    ‘재밌는 형.’

    그래도 친구와 지인들 중 가장 먼저 찾아와 준 형.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그런다고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오세요?”

    “왜, 싫어? 싫으면 가고. 아, 이 집 장사 못하네. 알바를 잘못 들인 것 같습니다, 사장님.”

    “아, 아니에요! 네! 주문 받겠습니다!”

    “음. 본청에 도착할 때까지 식어도 괜찮은 게…….”

    종혁이 고민을 하자 사장이 웃으며 나섰다.

    ‘내가 좋은 애를 뽑았네.’

    선하게 생겨서 뽑긴 했는데, 이렇게 훤칠하고 잘생긴 지인이 굳이 찾아와 줄 정도로 인망이 있는 걸 보면 제대로 뽑은 것 같다.

    “먼 곳에서 오셨다면 아이스티 종류가 좋아요. 저희 카페엔 복숭아 아이스티랑 레모네이드가 있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그걸로 반반씩 해서 8백 잔만 주세요. 카드 되죠?”

    “……네?”

    뿌다당!

    마지막 퀵이 떠나자 사장과 홍선은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사장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아직 해가 중천인 밖을 보며 갈등하던 사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몰라! 오늘 장사 끝! 홍선이 넌 가게 문 닫고, 형님분이랑 놀다가 집에 들어가! 청소는 내일 해!”

    “예? 아, 아뇨!”

    “그럼 난 간다! 어이구, 팔 빠지겠네. 재밌게 놀다 가세요.”

    “하하. 예, 들어가세요.”

    딸랑!

    팻말을 손수 CLOSED로 돌린 사장이 카페를 나서자 홍선이 원망 어린 시선을 보내며 종혁에게로 향한다.

    얼마나 얼음을 저었는지 팔에 감각이 없다.

    “뭐야, 큰손한테 그런 눈빛 보내도 돼?”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요?”

    “괜찮아, 괜찮아. 아까도 말했듯 형이 거물 범죄자들을 많이 잡아서 위에서 부식비를 많이 내려 줬거든.”

    거기다 팀원이 겨우 2명이고, 이 부식비도 커피 같은 거 외엔 아무렇게나 쓸 수 없다 보니 계속 쌓이고 있다.

    ‘이 형은 다 좋은데 허세가 좀…….’

    “그리고 얌마. 그때 그렇게 가는 게 어디 있냐? 화장실 나와 보니 너랑 유언이 모두 가 버려서 내가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 문자라도 남기든지.”

    “아, 그땐 죄송했어요. 급하게 일이…….”

    “유언이랑 싸웠으면 유언이만 보내면 될 것이지 말이야.”

    “혀, 형들이 말했어요?!”

    “인마, 형이 형사야. 그래서 너한테 미안하고. 알아봐 주지 못해서…….”

    “예?”

    종혁은 테이블 위에 올려놨던 두꺼운 서류철을 뒤집었다.

    [유민정(유명자) 교수 및 피겨계 비리 사건 파일]

    “……?!”

    순간 하얗게 질린 홍선이 종혁을 봤다.

    대체 어떻게 들킨 걸까.

    누가 그 장면을 본 걸까.

    대체 어디까지 아는 걸까.

    ‘아, 다 아는구나. 모두 다…… 알아버렸구나.’

    어느새 일그러진 종혁의 눈이 그렇다는 걸 말해 주고 있다.

    그러자 왜인지 마음이 편해진다.

    감추고 싶은 비밀이 들통났는데도 왜인지 후련해진다.

    “형, 나 이제 말해도 돼요?”

    ‘더 이상 언제 들킬까 괴로워하지 않아도 돼요? 그래도 돼요?’

    종혁은 홍선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며 씁쓸히 웃었다.

    “한잔할래?”

    “……네, 할래요.”

    *   *   *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과 달리 전국 대학 어디서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과가 없는 피겨스케이팅.

    고등학교와 중학교도 마찬가지다.

    비인기 종목인 피겨스케이팅을 가르치는 운동부가 있는 학교가 극소수, 아니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유민정 교수의 입김이 강한 거다. 유학파인 그녀만이 제대로 된 피겨를 가르치기에.

    “제대로 된?”

    “현재 국내에선 쿼드러플 점프에 관한 노하우를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어요. 아니,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람이 최고예요.”

    아는 안무가도 많고, 스폰서도 많다. 에이전시도 많이 알고, 국제빙상연맹에 아는 인물도 많다.

    그걸 꽉 쥐고 휘두르는 거다.

    그러니 남자 피겨선수들은 그녀에게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점프야말로 피겨의 꽃이기에 점프를 배우기 위해 그녀의 밑에서 수학하길 원한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을 거부할 수가 없다.

    무슨 짓을 하든…….

    “아시겠지만, 피겨는 귀족 스포츠예요.”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인 피겨스케이팅.

    “그런데 정작 부자들은 몇 명 없어요.”

    심지어 그런 부자들은 국내에서 엎치락뒤치락 안 한다. 다 해외로 유학을 떠나 버린다.

    “돈은 없는데 기술은 배워야 해요. 좋은 안무가에게서 안무를 받아야 해요. 그런데 그 좋은 안무가 태반이 유민정 그 사람과 알고 있어.”

    그런데도 거부할 수 있을까?

    꿀꺽!

    소주를 들이켠 홍선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절대 못해요. 이 바닥 뜰 생각 아니면.”

    먼 지방의 아이스링크에서도 일 못한다.

    “그런데 형도 아시잖아요. 왜 운동선수가 뻔히 자기 재능이 부족한 걸 알면서도 운동을 그만 못 두는지.”

    “……미련이지.”

    그리고 집착이다. 집안 재산 다 깎아 먹으며 힘들게 운동을 했기에 더 놓을 수가 없는 거다.

    포기해 버리는 순간 평생 동안 흘린 피와 눈물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버리기에, 어느덧 깊은 주름이 생긴 부모님을 뵐 낯이 없기에 포기할 수 없는 거다.

    종혁도 술을 들이켰다.

    “그래서구나.”

    “……네.”

    노가다 막노동을 하며 아들의 꿈을 계속 키워 준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위해 어떻게든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스폰서를 끌어와야 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어 영웅이 되어야 했다.

    “그, 그런데…….”

    박박박!

    홍선은 허벅지를 긁었다. 팔을 긁었다.

    유민정의 손이 닿은 모든 곳을 긁었다. 옷이 헤지려고 해도 홍선은 멈추지 못했다.

    “홍선아!”

    다급히 홍선의 양팔을 잡은 종혁.

    홍선은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종혁을 응시했다.

    “그, 그건 정말 아닌 것 같더라고요. 못하겠더라고요.”

    늙고 더러운 송충이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혀, 형! 나 아빠한테 미안해서 어떡해요? 효도해야 되는데 못해서 어떡해요!”

    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상처를 입었으면 아프다고 해야 할 텐데, 치료부터 해야 되는데 다른 이부터 걱정하는 이 착한 놈이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다.

    이런 홍선을 짓뭉개고 유린하려고 했던 유민정의 행태를 참을 수가 없다.

    종혁은 발버둥 치는 그를 꽉 끌어안았다.

    “걱정 마. 형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줄게.”

    “으흑! 흐으윽! 어어엉!”

    홍선은 상처 입고 썩어 가던 고름을 목 밖으로 토해 냈다.

    “어이쿠! 홍선아!”

    “죄송합니다, 아버님. 제가 술을 좀 많이 먹여서요.”

    “아, 아니에요.”

    그렇게 말했지만, 그래도 원망이 서린 눈빛을 보내던 홍선의 아버지는 아차 하며 홍선을 업은 종혁을 홍선의 방으로 안내했다.

    홍선을 눕히고 이불을 덮은 종혁은 홍선의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늦은 시간에 결례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친구 같은데…….”

    “아, 친해진 지 얼마 안 됐습니다.”

    “그래요?”

    홍선의 아버지는 신기해했다.

    활달한 성격이지만 낯을 좀 가리는 아들 홍선. 이렇게 술에 진탕 취해 온 건 1년 전 이후로 처음이다.

    대체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작년 갑자기 운동을 그만둔 뭔지 모를 이유 때문이 아닐까.

    홍선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버지의 눈에 걱정이 서린다.

    종혁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작게 갈등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경찰 일을 하는 최종혁입니다. 이번에 저희 경찰에서 손연아 선수를 후원하는데 어쩌다 보니 아드님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어이쿠. 예, 예. 연아 알지요.”

    “아이고, 홍선이 아버님이시면 제게도 아버님이시니 편하게 대해 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허허. 예, 그럴게요. 그리고 우리 홍선이를 데려다줘서 고맙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그럼 전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니 이렇게 왔는데 음료수라도 마시고 가시지…….”

    “다음에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고개를 숙인 종혁은 신발을 신으며 몸을 돌렸다.

    덜컹!

    “형사님.”

    종혁은 발을 멈췄다.

    “우, 우리 홍선이 별일 있는 건 아니지요? 그렇지요?”

    “……예. 이제 아무 일 없을 겁니다.”

    끼이익! 쿵!

    문을 닫은 종혁은 홍선의 방 쪽으로 멀어지는 기척을 느끼며 씁쓸히 웃었다.

    ‘역시 부모는 속일 수 없는 건가.’

    부모님도 조금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경찰 신분에 대해 밝혔는데, 역시나 곧바로 자식에게 무슨 일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제 남은 것은 홍선이 아버지께 마음을 여는 거다.

    경험상 이런 일은 절대 홀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

    종혁은 발을 떼며 핸드폰을 들었다.

    “예. 어떻게 됐습니까?”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러 간 오택수와 최재수.

    -피해자 증언 확보했다. 나도, 재수도 모두…… 씨발, 최 팀장아. 종혁아!

    그도 술을 마셨는지 혀가 좀 꼬인다.

    -이년 꼭 죽이자, 진짜.

    “예, 그러죠. 죽입시다.”

    종혁의 목소리도 살의를 머금기 시작했다.

    *   *   *

    촤악! 촤악!

    검은 옷을 입은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빙판 위를 날아다닌다.

    커다란 S를 그리며 우아하게 팔을 휘젓는 청년.

    슬그머니 눈이 감긴 얼굴에 고혹적인 미소가 피어난다.

    “야!”

    화들짝 놀라 한쪽을 바라보는 청년.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유민정 교수의 모습에 청년의 눈이 흔들린다.

    “야, 내가 뭐라고 했어?! 허리를 좀 더 젖히랬잖아! 허벅지랑 엉덩이에 힘주고!”

    콱!

    허벅지와 엉덩이를 움켜쥐는 우악스런 손길.

    “손끝은 더 우아하게!”

    척추부터 쓸어 올라와 손끝을 잡아 비트는 손에 청년은 애써 웃었다.

    “이, 이렇게요?”

    “그래. 그렇게! 발끝부터 손끝까지 우아하게! 다시 해!”

    “예!”

    발끝에 힘을 준 청년은 스케이트를 밀기 시작했고, 물러난 유민정은 다시 스텝을 밟는 청년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아까 하던 이야기 계속해 봐.”

    “예. 현재 성과금을 주지 않은 부모가 총 2명이고, 후원금도 4명이 미납한 상태입니다. 나머지는 다 납부했습니다.”

    “이유는?”

    “언제나 같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유민정은 코웃음을 쳤다.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했지.”

    사정사정해서 기껏 국내 종합선수권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해 줬더니 입을 닦는 모습이 참 가소롭기 그지없다.

    “그 은혜 모를 짐승들 자산 상황은?”

    “다 자영업을 합니다. 아무래도 유학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래. 성적 좀 나왔으니 일본이나 미국에 비벼 보려는 거겠지.”

    한두 번이 아닌 일이기에 유민정은 심드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그녀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거기가 더 빡센 거 아나 몰라?”

    미국와 일본, 인종 차별이 참 심한 나라들이다. 일본은 특히나 심한데, 한국인이라면 아예 경기 출전 자격조차 얻지 못한다.

    “성과금 안 낸 애들은 명단에서 제외시키고, 후원금은 조금만 더 기다려 준다고 해. 이번 달 넘어가면 걔들도 제외시켜.”

    명단. 유민정 교수 파벌의 코치들, 즉 대회에서 가산점을 받게 할 사람들이 적힌 명단이다.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절대 받아 주지 마. 한 1억쯤 싸 들고 오면 몰라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전달할 내용을 살펴보던 남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달할 건 다 전달했다.

    “아, 그리고 오전 11시에 협회 정기 회의가 있으십니다.”

    “벌써? 장소는?”

    “청담동 한정식집입니다.”

    “아, 난 거기 종업원들 다 여자라서 별로던데. 알았어. 야!”

    누군가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른 유민정은 빠르게 거리를 좁혀 다가가 한 청년의 허벅지 안쪽을 콱 쥐었다.

    “내가 여기에 힘주라고 했지!”

    “큽! 죄, 죄송합니다.”

    “넌 어떻게 계속 까먹니? 이러면 나도 개인 교습을 할 수밖에 없잖니. 너 오늘 저녁에 남아.”

    “예에?!”

    “왜? 동계체전에 나가기 싫어?”

    은근히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는 손길에 파랗게 질린 청년은 주위를 둘러봤다가 낙담했다.

    모른 척하거나 부럽다는 듯 쳐다보는 선후배들.

    “……네.”

    “그래. 우리 메달 따자?”

    톡톡 엉덩이를 두드린 유민정은 입술을 핥으며 몸을 돌렸고, 남겨진 청년은 가만히 서서 바들바들 떨었다.

    스르륵!

    한지로 예쁘게 꾸며진 문을 열고 들어온 유민정 교수는 먼저 와 있는 2명의 장년 남성을 바라보며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배시시 웃었다.

    “어머. 제가 제일 늦게 온 것 같네요.”

    “아닙니다, 유 교수. 우리도 방금 막 왔습니다. 그렇죠, 장 교수님?”

    “호호. 죄송해요.”

    자리에 앉은 유민정은 장 교수, 한국체대의 장성구를 바라봤다.

    “죄송해요, 장 교수님.”

    “……아닙니다. 그럼 식사를 시작하죠.”

    그 말에 다른 장년인이 얼른 호출벨을 눌렀다.

    스르륵!

    “네, 손님.”

    “음식 가지고 와, 아가씨.”

    “네, 알겠습니다.”

    스르륵 문이 닫히자 남성은 얼른 유민정에게 차를 따라 줬다.

    “요새 피겨는 좀 어때요? 그 손연아인가 뭔가 하는 애 때문에 회장님께서 단상에 서신 거 알죠?”

    아무리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지만 시니어는 다르지 않냐, 그런데 왜 그냥 출전권을 주는 거냐 등 손연아의 특혜 논란 때문에 빙상협회의 회장이 기자회견까지 열어야 했다.

    “걱정 마세요. 걔라면 그래도 입상은 해 줄 테니까.”

    그러니 그 망종을 봐주는 거다.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었다.

    “이번엔 저도 가서 케어할 테니까요.”

    그녀의 뜻을 전혀 따라 주지 않은 손연아지만, 그래도 손연아 때문에 한국 피겨가 부흥을 하려고 한다.

    그녀가 잘될수록 파이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곰이 알아서 재주를 넘어 준다는데 단장으로서 도와야지 않겠어요?”

    “으하핫! 그럼 경찰도 문제없는 거지요?”

    “공무원이 언제 일을 하던가요?”

    “푸하핫……! 맞네요, 맞아!”

    “그보다 손연아 걔가 성적을 거두면 상무 추진해 주는 거 잊지 마세요.”

    피겨로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보다 많은 남성들이 피겨를 택하게 될 거다.

    “걱정 마십시오. 어떻게든 해 볼테니! 요새 손연아 고것 때문에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떻게든 한 발 걸칠 수 있을까 하는 인간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을 동원하면 병역 혜택을 받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말한 남성은 장성구를 바라봤다.

    “난 됐습니다. 개는 개처럼 키우자는 주의라서.”

    개들에게 줄 달콤한 먹잇감은, 목표에 대한 열망은 매달로 충분하다. 그 외의 것이 있으면 통제하기만 힘들 뿐이다.

    “어머, 그런가요? 그런 것치고는 요새 꽤 예뻐하는 개가…….”

    “유 교수.”

    장성구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유민정을 봤다.

    “나대지 마.”

    “……!”

    “누구 때문에 태릉하고 한체대 아이스링크를 이용하는지 벌써 잊었나?”

    서울, 경기에 사는 그녀의 파벌 코치 선수들이 이용하는 태릉과 한체대 아이스링크. 그것은 그녀가 파벌을 늘리고 휘두를 수 있는 무기 중 하나다.

    입술을 깨문 유민정은 장성구를 죽일 듯 노려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맞아.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하는 걸 잊었네요.”

    “음?”

    “그동안 참 감사했어요, 장 교수님. 어휴, 전 속이 안 좋아서 먼저 일어날게요.”

    “어? 유 교수!”

    “다음 회의 때 봬요.”

    고개를 까딱인 유민정은 방을 나갔고, 망연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성은 슬그머니 장성구를 봤다가 이마를 잡았다.

    가만히 노려보는 장성구의 눈빛.

    “후. 이번에 태릉 피트니스센터가 전 지점에 아이스링크를 개장한다더군요. 아마 그것 때문일 겁니다.”

    “그렇습니까?”

    피식 웃은 장성구는 식어 버린 차를 들이켰다.

    “재밌네.”

    불과 얼마 전까지 만해도 꼬리 흔드는 개처럼 굴던 늙은 년이 이를 드러냈다.

    ‘치워 버려야겠군.’

    장성구는 눈을 빛냈다.

    *   *   *

    “개새끼.”

    빠드득!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교수님?”

    “대학으로 가.”

    “……예.”

    사내는 빠르게 대학으로 차를 몰았고, 차가 멈춰 서자 빠르게 내린 유민정은 아이스링크로 향했다.

    촤악! 촤악! 촤아악…….

    유민정은 자신이 나타나자마자 자유롭게 빙판을 누비다 멈춰 서는 제자들의 모습에 더 짜증이 치솟는 걸 느꼈다.

    ‘이것들이!’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혼낼 기분이 아니었다. 가슴속에서 끓는 이 짜증과 화부터 풀어야 했다.

    “야! 너 이리와!”

    움찔!

    아까 남으라는 말을 들은 청년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안 와?!”

    “부, 부르셨습니까. 교수님.”

    “당장 스케이트화 벗고 따라와.”

    “네? 어, 어디…….”

    “야, 너 운동 그만둘래?”

    오싹!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무정한 눈.

    떨리는 턱을 다물며 겨우 침을 삼킨 청년은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아이스링크를 빠져나갔고, 유민정은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어이쿠, 어디 가십니까? 그것도 제자를 강제로 끌고서?”

    유민정은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무언가에 고개를 들었다가 종혁의 얼굴을 보곤 이를 악물었다.

    ‘이건 또 뭐야!’

    “야! 경찰이면 경찰답게 행동해! 어디 남의 훈육에…….”

    “혹시…… 샹그릴라 호텔?”

    섬뜩!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선 유민정은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덥썩!

    그녀의 머리를 움켜쥐는 우악스런 손길.

    비명을 지른 유민정은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분노와 경멸, 살의로 얼룩진 맹수의 눈.

    “어디 가냐, 이 쌍년아.”

    “나, 난…….”

    “좆까.”

    종혁은 그녀의 팔을 휘감아 그대로 메쳤다.

    콰앙!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