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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43화 (343/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43화>

    잘 지내지?

    어젯밤 자느라 확인하지 못한 문자 한 통.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진 않지만, 낯이 익은 전화번호에 홍선은 이를 악물었다.

    대체 왜 연락을 한 걸까.

    또 뭘 바라는 걸까.

    “……욱!”

    홍선은 화장실로 뛰어가 변기를 붙잡았다.

    “웨에엑!”

    *   *   *

    아침의 특별수사팀이 약간 부산해진다.

    “카메라랑 캠코더 다 챙겼죠? 배터리는?”

    정장을 입은 종혁이 카메라 가방 안을 살피며 묻자 오택수가 툴툴거린다.

    “3번이나 확인했다, 짜샤. 재수는?”

    “먼저 출발했어요.”

    오늘 별도의 지시를 받고 먼저 떠난 최재수.

    무전기 세트까지 확인한 종혁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들었다.

    -네, 여보세요…….

    거의 죽어 가는 목소리.

    “어, 유언아.”

    오택수가 잠시 몸을 멈추며 종혁을 본다.

    “아침부터 연락해서 미안하다.”

    -……아니요. 무슨 일이신데요.

    “아, 다름이 아니라 손연아 선수가 우리랑 계약 맺은 거 알지? 그래서 그런데 혹시 나한테 피겨에 대해 좀 알려 줄 수 있겠냐? 그래도 명색이 스폰서인데 피겨가 뭔지는 알아야 손연아 선수가 활약할 때 디테일한 홍보 기사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 종혁의 말에 유언은 입을 다문다.

    “오늘 뭔 종합 대회가 열린다던데 별다른 일 없으면 거기 가서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는 종혁의 눈이 흉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자, 네 물주에게 안내해 봐라. 네 물주와 척을 지는 인간들에게도!’

    한편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 전화를 끊은 유언은 핸드폰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부럽다.

    이런 대우를 받는 손연아가 미치도록 부럽다.

    “그깟 주니어 세계선수권 대회가 뭐라고…….”

    주니어 시절 잘나지 않은 선수가 있을까.

    유언 자신도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했었다.

    하지만 기술적인 면에서 여성보다 훨씬 더 월등한 피지컬을 요구하는 남자 피겨. 세계의 벽을 넘어서지 못해 입상하지 못했다.

    세계엔 신체적으로 월등한 선수들이 너무 많았다.

    “나도 여자로 태어났으면 연아보다 더 잘났을 거라고…… 알아? 아냐고!”

    그랬다면 환상의 기술인 쿼드러플 악셀에 도전하다가 무릎이 박살 나지도 않았을 거다. 여자 피겨는 트리플 악셀도 높이 쳐주기에.

    빠득!

    이를 간 유언은 교수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 계산은 끝난 거 아니었니?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제가 이렇게 연락을 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유언은 종혁에게 들은 걸 설명했고, 잠시 수화기 너머가 침묵에 휩싸인다.

    -흐응. 그래? 공무원이 별일이네.

    뭘 해도 대충 살피고, 현장 답사도 제대로 안 한 채 결재 도장을 찍는 공무원.

    -그래도 잘됐네. 잘 연락했어.

    “……?”

    -손연아 고것도 같이 데려와.

    “연아를요?”

    -그래. 부상을 핑계로 대회 출전을 거부하면서 나와 협회를 엿 먹인 그 깜찍한 것도.

    올해부터 시니어 대회에 출전하게 된 손연아.

    빙상연맹에서는 그런 손연아의 첫 대회를 이번 국내 종합선수권 대회로 장식하려 했는데, 그녀가 부상을 이유로 불참을 선언해 버렸다.

    본디 국내 종합선수권 대회의 1등에게 주어지는 세계 선수권대회의 출전권.

    하지만 손연아는 국내 대회를 통해 실력을 증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독보적이었다.

    세계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이기에, 빙상연맹에서는 형평성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대회에 출전하지 않은 손연아에게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권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것이 벌써부터 엄살이나 부리고 말이야! 걔가 불참하면서 티켓 판매량이 어떻게 됐는 줄 아니?!

    대중들에겐 인지도가 전혀 없지만, 피겨계에선 제법 인지도가 높은 손연아.

    작년에 엄청난 성적을 거두고 경찰이 홍보대사로 임명하면서 언론도 주목하려 들기에 협회도 관람 티켓 판매량을 기대했는데, 손연아가 불참을 선언하면서 그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든 데려와. 알았어?

    “예. 알겠습니다, 교수님.”

    전화를 끊은 유언은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곤 손연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연아야. 내가 너무 빨리 전화한 건가? 아, 그래? 다름이 아니라…….”

    이렇게 자신이 쓰임이 있는 것을 계속 어필하면 교수도 원하는 것을 빨리 내줄 터.

    유언은 오직 그것만 생각하기로 하며 달콤한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   *   *

    제61회 전국남녀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 대회가 열리는 아이스링크의 복도.

    “후욱! 훅!”

    신체를 늘리며 뜨거운 숨을 뱉은 사람들과 감독들의 응원이 울려 퍼지는 그곳에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쓴 소녀가 나타난다.

    몰려 있는 소녀들의 뒤로 다가가 한 소녀의 등을 확 미는 마스크 소녀.

    “워!”

    “너……!”

    “히히히. 연아 왔져용.”

    “꺄악!”

    서로 얼싸안고 방방 뛰는 소녀들.

    “뭐야, 너 오늘 부상 때문에 출전 안 한다면서?”

    “맞아, 맞아.”

    “그래도 너희가 출전하는데 어떻게 안 와?”

    손연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찔렸다.

    행복의 쉼터 재단이 지원해 준 메디컬 닥터가 말하길 오늘부터 MRI 등 심층 검사를 해야 하기에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했는데 이렇게 놀러 와 버렸기 때문이다.

    ‘힝. 유언 오빠만 아니었어도.’

    “그, 그런데 저 오빠는 누구야?”

    “여긴 관계자 아니면 막 못 들어오는데…….”

    호리호리한 남자 피겨선수들과 달리 떡 벌어진 어깨와 잘생긴 얼굴. 물씬 풍기는 어른의 향기가 십대 어린 소녀들의 방심에 불을 지른다. 그래서 그런지 종혁의 옆에 서 있는 유언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반가워요, 학생들. 손연아 선수의 스폰서인 대한민국 경찰청의 최종혁 경정입니다.”

    “아! 연아가 말했던 그!”

    “아, 안녕하세요!”

    “어이쿠, 이거 미인들께서 한꺼번에 말씀하시니 정신이 없네요.”

    꺄르르 웃음이 터진다.

    “앞으로도 우리 연아 선수 잘 부탁해요. 이건 우리 연아 선수 잘 봐 달라는 뇌물!”

    종혁은 피겨스케이트화로 명성 있는 브랜드의 상품권을 한 장씩 쥐여 주었고, 그 액수를 본 손연아의 지인들은 입을 떡 벌렸다.

    “오, 오빠! 잠깐 저 좀 봐요!”

    종혁의 팔을 잡아 구석으로 이끈 손연아는 허리에 손을 얹었다.

    “아니, 어쩌자고 그런 걸…… 월급 받으면서…….”

    종혁은 걱정과 당황으로 얼룩진 손연아의 얼굴에 웃음을 터트렸다.

    “손연아 선수, 이 시계가 얼마짜리인 줄 알아요?”

    “……배, 백만 원?”

    손연아의 기준에선 가장 비싼 액수인 백만 원. 그녀가 사용하는 선수용 피겨스케이트화 가격이 그 정도다.

    “거기에 공을 하나만 더 붙여요.”

    “끄헉!”

    “걱정 마요. 제가 계급이 높아 월급이…….”

    “탐관오리!”

    휘청!

    순간 몸의 균형이 무너진 종혁은 한 발 물러나는 손연아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이 4차원.’

    “그리고 애당초 그 상품권은 권 이사장님께서 주신 겁니다. 혹여 손연아 선수와 함께 다니게 될 일이 생기면 손연아 선수 기 좀 세워 주라고요.”

    아니다. 오늘 이런 상황을 대비해 종혁이 따로 구입한 거다.

    “헉! 이사장님께서요? 와…….”

    손연아는 세심한 배려에 멍해졌다.

    그때였다.

    “어머, 연아야!”

    콧속을 파고드는 지독한 향수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낯살을 찌푸렸던 손연아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중년 여성의 모습에 떨떠름해지는 표정을 억지로 숨기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안녕하세요, 교수님.”

    종혁은 교수란 단어와 마치 칭찬을 바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 유언의 반응에 눈을 빛냈다.

    ‘이 양반인가?’

    유언의 물주가 말이다.

    “여긴 웬일이야? 허리 아파서 못 온다고 하지 않았어?”

    복도를 까랑까랑 울리는 목소리.

    그에 복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어? 쟤 손연아 아니야?”

    “뭐야, 쟤 오늘 불참하는 거 아니었어? 하, 이거 봐라?”

    “그래, 아주 저만 잘났지?”

    기록을 써 내려가는 손연아를 향해 쏟아지는 질시와 악의들.

    손연아의 낯빛이 흐려진다.

    “그, 그게…….”

    “아픈 게 맞습니다.”

    “꺅?!”

    앞으로 나선 종혁은 손연아의 티셔츠를 살짝 들어 올렸고, 교수는 손연아의 허리에 채워진 척추보호대에 입을 다물었다.

    종혁은 싱긋 웃었다.

    “오늘도 겨우 시간을 낸 거죠.”

    “……그쪽은?”

    “손연아 선수의 스폰서인 대한민국 경찰청의 최종혁 경정입니다.”

    “아하!”

    교수는 부드럽게 웃으며 명함을 교환했다.

    “유민정이에요. 그런데 어쩌죠? 여긴 관계자 외 출입금지인데.”

    어제 유언에게 듣고 따로 알아보니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팀이라는 곳은 별 볼 일 없는 한직이었다.

    이번에 자살카페 사건을 해결하며 살짝 유명세를 탔다지만 딱히 겁먹을 이유는 없었다.

    “연아 너도 그래. 안 그래도 이번에 너한테 세계 선수권대회 출전권을 주면서 말이 많았던 거 알잖아. 그런데 네가 여기에 오면 다른 선수들 심정이 어떻겠니?”

    “그, 그게……!”

    손연아 그녀 자신도 이번 일이 형평성에 어긋나며, 다른 선수들에겐 기회조차 박탈되는 일이 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의 의도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기에 조금은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손연아 선수를 졸라서 말입니다. 이게 실례가 될 줄은 몰랐군요. 지금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호호. 그래 주시겠어요? 그리고 유언이 넌 오랜만에 봐 놓고도 모르는 척하는 거니?”

    “아! 오, 오랜만입니다, 교수님…….”

    종혁은 이쪽을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에 손연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실례 많았습니다. 가시죠, 손연아 선수.”

    “네에…….”

    ‘나도 유언 오빠 아니었으면 안 왔을 건데…… 진짜 오기 싫었는데…….’

    괜히 유언 때문에 종혁까지 한 소리를 들었다.

    손연아는 울상을 지었다.

    “저 예의를 밥 말아먹으신 분은 누굽니까?”

    “……네? 푸핫! 있어요. 엄청 무서운 분이에요.”

    피겨계에선 존재 자체가 거의 법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교수이자 협회 임원.

    어린 선수들의 여린 가슴을 사정없이 헤집는 독설을 입에 달고 살기에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걸 종혁에게 말할 수는 없기에 손연아는 말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습니까?”

    ‘유민정이라…… 개명한 건가?’

    나이답지 않은 이름. 개명을 한 게 분명했다.

    그렇게 별 의미 없는 생각을 하던 종혁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을 발견하곤 입술을 비틀었다.

    형광색 조끼에 자원봉사자증을 목에 건 최재수.

    서로를 보며 살짝 웃은 그들은 이내 모르는 사람인 양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아, 그런데 객석은 어디로 가면 됩니까?”

    “이쪽이요!”

    종혁과 손연아는 오택수가 기다리고 있을 객석으로 향했다.

    한편 복도를 걷던 유민정은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응. 계속 깝죽거리네.”

    “손연아 말입니까?”

    뒤에서 그림자처럼 따르던 삼십대 사내, 코치의 말에 유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한국 피겨계에서 자신의 말을 거스르는 사람은 없었고,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손연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경찰이 그녀를 후원하기로 나섰다.

    스폰서가 없어서 빙상연맹에 모든 걸 의존해야 되는 상황에서도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는데, 스폰서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거슬려.”

    손연아와 종혁 모두 말이다.

    “부숴 버릴까요?”

    움찔!

    몸을 굳히는 유언을 본 유민정은 혀를 찼다.

    “놔둬. 아직은 이용 가치가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유언이 너도 이제 그만 가 봐. 가서 연아가 쓸데없는 말 못하게 하는 거 잊지 말고.”

    비록 별 볼 일 없는 부서의 형사지만, 그래도 경찰이다.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예. 그럼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유민정은 손을 저었고, 허리를 꾸벅 숙인 유언은 얼른 객석으로 향했다.

    “……흐응. 저것도 많이 영악해졌네.”

    “조치를 취할까요?”

    “응. 왕따건 뭐건 자기 발로 이 바닥 뜨게 만들어.”

    “예. 그럼 저놈이 취직할 곳에 전화해 놓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발을 떼려던 유민정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자원봉사자, 아니 최재수를 발견하곤 눈을 빛냈다.

    ‘미국 드래곤모터스의 창립자가 우리나라에 만든 중고차 회사에서 나왔다고 했지?’

    피겨선수들과 스폰서 계약을 맺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해 온 한국 최고의 중고차 매매 회사.

    하지만 자신들과 계약을 맺을 선수는 자신들이 직접 인성과 실력을 파악하고 싶다면서 직원을 파견하겠다고 했다. 그게 바로 저 자원봉사자 최재수다.

    이는 협회 임원인 그녀밖에 모르는 정보였다. 아니, 그녀가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입단속시킨 정보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 역시도 손연아의 영향이 컸음이 분명했다.

    유민정은 슬그머니 최재수에게 다가갔다.

    “어머, 자원봉사자이신가요? 일이 힘들지는 않아요?”

    “아, 안녕하십니까!”

    “어휴. 젊어서 그런지 목소리가 우렁차네. 그런데 우리 피겨가 얼마나 좋기에 이렇게 자원봉사를 신청한 거예요?”

    “예? 아, 하하. 마, 많이 좋아하죠. 막 새 한 마리가 얼음 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어머나. 젊은 분이 너무 낭만적이다. 그런 시적인 말도 할 줄 알고.”

    “하하. 감사합니다.”

    “흐음…… 그래, 그러면 되겠네. 따라와요.”

    “네?”

    “내가 우리 피겨 좋아해 주시는 젊은 분을 위해 선수들을 소개시켜 주려고요. 혹시 싫으신가요?”

    “헉! 정말입니까? 가, 감사합니다!”

    “호호, 뭘요. 아, 일단 저 선수는 실력이 별로.”

    “뭐요?!”

    선수 대신 그 옆에 있던 감독이 발끈한다.

    “웁쓰. 들렸나요. 그럼 쏘리.”

    “이봐요, 유 교수!”

    “호호. 난 바빠서 이만. 가요, 최재수 씨.”

    최재수를 향해 손을 까딱이며 몸을 돌린 유민정 교수는 입술을 비틀었다.

    ‘아무도 모르게 선수를 고르고 싶다고?’

    그럼 그녀 자신의 제자나 그녀가 이끄는 파벌의 선수만 저들의 선택지에 넣으면 되는 거다. 다른 파벌, 다른 놈들은 모두 깔아뭉개고 짓눌러서라도 말이다.

    그녀의 눈이 뱀처럼 번뜩이기 시작했다.

    *   *   *

    “와아아아!”

    한 마리의 새가 빙판 위를 활공하자 관객들이 환호성을 보내고, 손연아도 귀에 이상한 걸 끼고 있는 종혁의 팔을 붙잡아 흔든다.

    “저게 더블 토룹이에요, 오빠!”

    “아, 그래요?”

    “……지금 내 말 안 듣죠?”

    “아뇨. 듣고 있습니다. 더블 토룹…… 음. 이름이 어렵네요. 아. 잘 찍고 있습니까, 오 경감님?”

    “말 시키지 마. 찍느라 바쁘니까!”

    비록 찍는 대상은 빙판 위를 노니는 선수가 아니지만 말이다.

    -7시. 40대. 배불뚝이. 우정국. 유민정을 욕함.

    종혁은 마치 속삭이듯 들리는 소리에 오택수를 툭 쳤고, 오택수는 카메라를 돌렸다.

    그러자 유민정 교수를 향해 얼굴을 구기고 있는 사십대 남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야, 이건 뭐…….’

    타깃으로 삼은 범죄자가 제 몸을 난도질할 비수들을 소개하고 있다. 오랜 형사 생활에서도 몇 번 없었던 진귀한 경험.

    그래도 알아서 알려 준다는데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 그렇게 다 알려 줘라. 더! 더!’

    아주 싹 다 알려 주는 거다.

    “저게 스핀이라는 건데…….”

    “오오오오!”

    “안 듣는 거 맞잖아요!”

    “아닌데요?”

    종혁은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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