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40화>
“이야, 이게 얼마 만이야?”
종혁의 은사이자 동일고 유도부 감독이었던 신성일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종혁을 발견하곤 함박미소를 짓는다.
“최종혁, 엎드려.”
순간 돌변하는 신성일의 표정.
“에이 씨.”
종혁은 다급히 엎드렸고, 다가온 신성일이 종혁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쫘악!
“누가 어? 그런 위험한 곳에 들어가라고 했어! 내가 TV 보다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작년에 일어났던 우봉리 사태.
시위대에 경찰 간부가 잡혀갔다며 종혁의 사진이 나왔을 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아우, 내가 정말 그때만 생각하면!”
뒷목에서 식은땀이 좔좔 흐른다.
“일어나!”
“흐흐흐.”
“썩을 놈이 웃기는…….”
“하하. 잘 계셨죠? 이쪽은 제 팀원들이요.”
“학창 시절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오택수 형사입니다.”
“최, 최재수 경장입니다!”
종혁을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란 최재수.
신성일은 푸근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 막 나가는 놈과 어울리느라 고생들 하십니다. 유도협회 부회장 신성일입니다.”
그랬다. 신성일은 어느덧 유도협회의 부회장이 되어 있었다.
회귀 전, 학창 시절 막 나가려던 종혁을 때리고 얼러 가며 어떻게든 엇나가지 않게 만들려고 노력했던 은사 신성일.
또 회귀 후에는 종혁의 하고자 하는 걸 적극 지원해 주었던 감독님.
종혁은 그 은혜를 갚고자 그를 유도협회의 협회장으로 만들려고 했고, 그 작업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에 있었다.
“일단 내놔.”
종혁은 손을 까딱이는 신성일의 모습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뭘요?”
“뭘 물어보려고 온 거 아니었어? 애들 회식비 내놔라, 인마.”
“허! 누가 보면 회식비 맡겨 놓은 줄 알겠네. 이 양반 왜 이렇게 밝히게 된 거지?”
“이 양반? 이 양-반? 이놈의 자식이!”
“여기 있습니다.”
종혁은 냉큼 신성일의 손바닥 위에 1억짜리 수표를 올려놨고, 신성일은 혀를 내둘렀다.
“크! 역시 졸부는 씀씀이가 달라도 달라?”
“졸부라뇨. 옛 제자한테 그런 나쁜 말을 해도 되는 겁니까?”
“옛 제자가 아니라 지금도 제자다, 짜샤. 그리고 너한테 역사가 있냐, 철학이 있냐? 그런 거 없으면 싹 다 졸부야, 인마.”
코웃음을 친 그는 전화기를 들어 비서를 불렀다.
“네, 부회장님.”
“이거 30퍼센트는 유도 발전기금으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유도 꿈나무 육성기금에 넣으세요. 아, 천만 원은 국대 회식비로 돌리고 이놈 앞으로 기부영수증 끊어 주세요. 이놈이 누군지는 알죠?”
“허억! 예, 예! 알겠습니다!”
비서가 나가자 신성일은 자리를 권하고는 사무실 안에 비치된 온장고에서 음료수를 가져왔다.
“이거 대접할 게 이것뿐이라 죄송합니다.”
“아이구, 제가 꿀차를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아시고…….”
“잘 마시겠습니다!”
종혁은 따뜻한 솔잎차를 넘겨받으며 얼굴을 구겼다.
“줘도 뭘 이런 걸…….”
“주는 대로 먹어, 인마.”
“끙. 요새 좀 어떠세요?”
“어떻긴. 곧 2차 선발전이라 죽을 맛이지.”
2007년 9월에 열리는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그 출전 선수를 뽑기 위한 2차 선발대회가 2월에 열린다.
1차 선발대회는 전국대회 이후에 열리는 회장기 대회다.
“이후엔 너도 알다시피 자체 선발전 열어야지, 또 선수권 대회가 열리는 브라질 현지에 가서 적응 훈련을 시켜야지, 숙소 잡아야지, 아주 일감이 산더미야.”
그러니 얼른 말하라는 신성일의 눈빛에 종혁은 느긋이 솔잎차를 들이켰다가 얼굴을 구겼다.
“쯧. 다른 문제는 없으시고요?”
“다른 문제?”
“청탁이나 파벌 싸움이요.”
움찔!
신성일의 낯빛이 굳는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지 몰랐던 오택수와 최재수도 종혁을 보며 기겁한다.
“……경찰이 칼을 뽑은 거냐?”
“아직 여긴 아니고요. 빙신이요.”
“빙상연맹?”
대한빙상경기연맹. 빙상협회 혹은 빙상연맹.
일부에선 하도 병신 짓거리를 많이 해서 빙신이라고도 부른다.
“후. 하긴 그쪽이 지랄 맞긴 더럽게 지랄 맞지. 아, 그래서 날 찾아온 거구…… 이 시꺄!”
빠악!
돌연 종혁의 팔뚝을 후려친 신성일이 씩씩거린다.
“감히 하늘 같은 스승을 시험해?!”
방금 전 준 1억. 그건 종혁의 시험이었다.
종혁은 불같이 화를 내는 그의 모습에 뜨끔했지만, 이내 정말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감독님을 시험을 할 거였으면 고작 1억을 내놨겠어요? 한 10억쯤 내놨지? 우리 엄마가 한 달에 버는 돈이 얼만데.”
“……쓰벌. 일리 있는 말이라 뭐라 할 수도 없고. 조심해. 지켜본다.”
“사랑합니다.”
“난 안 사랑해.”
콧방귀를 뀐 신성일은 담배를 물었다.
정말 형사다워진 종혁의 모습에 흐뭇함이 들기도 하거니와 지금부터 할 말은 꽤 복잡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요? 태릉에서 자주 부딪치니까 잘 아실 거 아니에요?”
“흠…… 일단 빙상 파벌이 한체대와 비한체대로 나뉘는 건 아냐?”
“네, 뭐. 어렴풋이 알 수밖에 없었죠.”
종혁은 태릉선수촌 때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체전에 함께 출전하는 선수들끼리도 무리가 나뉘어 움직이던 선수들.
이는 비단 빙상 스포츠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스포츠에 만연한 문제이지만 유독 빙상의 경우가 심하다 할 수 있었다.
대중매체를 통해서만 선수들을 접하는 대중들과 달리, 현역 선수로서 생활했던 종혁은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회귀 전 터졌던 이슈들을 기억하고 있기에 피부로 체감했던 것 이상으로 종혁은 여러 가지를 알고 있었다.
신성일은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을 이었다.
“그게 선수들끼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코치들을 중심으로 파벌이 나뉘어져 있는 거라 훈련도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을 거다. 한국 유도는 네가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던 거지.”
종혁이 개발하고 배포한 최첨단 훈련법으로 선수를 훈련시키는 현 유도계.
물론 지금도 일부 감독들은 자기 입맛대로 검증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훈련법으로 선수를 혹사시키지만, 대부분은 종혁이 배포한 훈련법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그 결과가 이번 도하 아시안게임의 성적이다.
남녀 유도 전 체급 메달 획득. 금메달만 8개가 쏟아졌다.
그런 그들, 신성일이 봤을 때 빙상의 훈련은 주먹구구식 그 이하였다. 협회 운영도 말이다.
“솔직히 툭 까놓고 말해서 빙상은 선수들이 잘나서 유지되는 거야. 타고난 놈들이 워낙 많아서.”
거지같이 지원해도 알아서 메달을 따 오니 지원을 늘릴 이유가 있을까. 빙상협회는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었다.
“아무나 찌르고 들어가도 고구마 줄기 엮이듯이 줄줄이 딸려 나올 거다. 흠……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신성일은 비록 종목은 다르지만 그래도 스포츠란 카테고리 안에 있는 협회의 임원이기에 알 수 있는 정보를 떠올리려고 노력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일단 지금 기억나는 건 이 정도인 것 같네.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니요. 이 정도도 훌륭한걸요.”
종혁이 오택수와 최재수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정보는 모두 전해진 셈이었다. 원하던 목적은 이루었으니 충분했다.
“아무튼 주류는 한체대라는 거죠?”
“그렇지. 더 기억나는 거 있으면 연락할게.”
“네, 부탁드릴게요. 감독님도 도움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말해 주시고요.”
“필요한 거야 당연히 많지. 일단 강의 좀 부탁하자. 네가 인마, 대한 유도계의 선구자 아니냐!”
현 유도계는 종혁의 등장 전과 후로 나뉜다.
거기다 종혁은 현대 유도계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
“하하. 예, 알겠습니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해야죠.”
“무르기 없기다-!”
‘푸흐흐.’
변함없는 신성일의 모습에 안도의 웃음을 흘린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술 줄이시고, 담배도 줄이시고요.”
“너나 술 마시고 담배피우지 마, 이 자식아!”
“하하. 갈게요.”
“종혁아.”
“예?”
“정말 아직이지?”
“……갑니다.”
돌아서는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야아.”
유도협회 건물을 나선 오택수가 혀를 내두른다.
윗물부터 아랫물까지 싹 다 썩었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 팀장.”
“예?”
“믿을 만하냐?”
“감독님이요?”
협회 건물을 본 종혁은 피식 웃었다.
“저분을 믿을 수 없다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인간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종혁에게 신성일은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유도 협회의 있을지 모를 비리는 별개의 이야기. 부디 신성일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했다.
“그럼 일단 타깃은 정해진 것 같으니 거기서부터 찔러 보죠.”
“비한체대?”
“예. 비주류는 주류가 되기 위해 발악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아마 주류들의 여러 비리를 가득 모아 놨을 거다.
물론 정말 순수하게 선수를 육성하는 선한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빙상협회의 협회장부터 중학교의 감독과 코치까지 모두 수사 대상이었다.
“그럼 주도하는 세력이 누군지도 알게 될 테죠.”
“주도하는 세력이요? 회장이지 않을까요?”
“이런 씨. 넌 조직의 수장이라고 다 그런 줄 아냐?!”
깨갱한 최재수가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근데 이 정도 정보는 손연지 씨 등 자살카페 피해자…….”
빠악!
오택수가 결국 최재수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씨발. 그분들이 우리가 오는 걸 잘도 좋아하겠다! 물론 반겨 주시기야 하겠지. 하지만 우리가 가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에겐 트라우마가 자극되는 거야!”
“헉! 죄, 죄송합니다.”
종혁은 낯빛이 검게 죽는 최재수의 모습에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상황을 파악하는 데 최재수가 말한 방법이 가장 빠르긴 하기 때문이다.
“재수야.”
“예.”
“범인 잡자고 괴물이 되진 말자.”
“죄송합니다…….”
“그래. 우리가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되는 거야.”
그러면 되는 거다.
“그와 비슷한 의미에서 피해자들을 괴롭힌 그 가해자 새끼들도 만날 수가 없는 거고.”
현재 그들은 빙상협회를 노리고 있는 중이다.
파벌 어쩌고저쩌고를 언급했다가 그게 협회의 귀에 들어가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귀찮더라도 발품을 팔아야 했다.
“아오, 어디서부터 뒤져 봐야 되는 거냐.”
빙상협회에 원한을 가진 비주류 체대의 선수.
그러면서도 운동에 미련이 안 남은 사람.
일단 이런 사람부터 확보를 해야 이번 수사를 시작할 수가 있었다.
“뭐, 체대들을 뒤지다 보면 발견할 수 있겠죠.”
그게 언제가 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일단 오늘은 이쯤하고 해산합시다. 꽤 장기전이 될 것 같으니까 집에 가셔서 가족들과 시간 보내고 내일 8시까지…….”
띠리링! 띠리링!
발신자를 확인한 종혁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충성. 경정 최종혁.”
-어, 최 팀장! 나야!
“예, 홍보담당관님. 무슨 일이십니까?”
“……?!”
오택수와 최재수가 다급히 종혁을 봤다.
-아니, 최 팀장이 정리해 준 선수 명단 있잖아. 그 중에 손연아 선수에 대해 잘 아나?
“세계그랑프리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기에 추천을 했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아니, 아니! 문제는 없고, 어린 친구가 너무 대단하고 기특해서! 그래서 일단 시범적으로 이 어린 친구부터 지원을 해 볼까 하는데 최 팀장 생각은 어때?
“……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한 번에 여러 팀을 창설할 수 없으니 일단 손연아를 지원해 본 후 그 결과에 따라 이후 일을 진행하겠다는 뜻.
“그런 거라면 잘 고르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워낙 기량이 뛰어난 선수이다 보니 분명 다음 대회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거둘 겁니다.”
다음 대회에서 손연아 선수가 입상만 해 줘도 언론 플레이가 쉬워질 터.
“흠. 그런데 그러려면 일반적인 지원이 아니라 그녀의 대외 활동에 어느 정도 지분을 가질 수 있는 계약을 맺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래야 방송국과의 기싸움에서 유리해질 수가 있다.
-……들어와.
“예?”
-이번 계약 최 팀장이 맡아.
종혁은 눈을 크게 떴다.
“괜찮겠습니까? 선배님들께서 반발을 하실 텐데요.”
-누가? 최 팀장한테? 최 팀장이 이렇게 밥상을 다 차려 줬는데 양심 없이 숟가락만 얹겠다고? 최 팀장, 우리 애들 그렇게 양심 없지 않다.
“하하. 알겠습니다. 곧 복귀하겠습니다. 충성.”
전화를 끊은 종혁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오택수와 최재수를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흠. 이거 잘하면 정보를 조금 얻을 수 있을 것 같네요.”
“……?”
종혁은 어리둥절해하는 그들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 *
“우, 우와.”
커다란 본청의 건물을 본 손연아가 쌍꺼풀 없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주위를 지나다니는 제복을 입은 경찰 아저씨, 언니들 때문에 더 멋지고 웅장해 보이는 건물.
“어, 엄마. 저, 정말 여기서 스폰서 계약 맺는 거 맞아?”
“으, 응. 분명히 여기로 오라고 했어.”
“아니, 왜?”
“그, 글쎄?”
그건 손연아의 어머니도 의문이다.
그저 대한민국 경찰, 이 한국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곳에서 지원을 해 주겠다기에 왔을 뿐 그 의도를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뚜벅뚜벅.
“손연아 선수?”
“헉! 네!”
손연아는 갑자기 나타난 전봇대, 아니 경찰 정복을 입은 종혁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고, 종혁은 푸근히 웃었다.
“팬입니다.”
“제, 제 팬이요?”
“예. 세계에서 활약하는 모습 잘 지켜보고 있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사진이랑 사인을 요청해도 될까요?”
“그럼요! 네! 해 드릴게요!”
지인을 제외한 한국 사람에겐 난생처음 해 보는 사인.
눈이 번뜩 빛난 그녀는 얼른 사인을 했고, 종혁과 사진도 찍었다.
“감사합니다.”
“아뇨! 제가 더 감사하죠! 으히히!”
해맑게 웃으며 모친을 향해 마치 ‘나 사인했다’라는 듯, ‘나 이런 딸이야’라는 듯 장난스럽게 콧대를 세우는 그녀의 모습에 미소가 짙어진 종혁은 본청 건물을 가리켰다.
“그럼 가실까요?”
“네?”
“아, 제 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이번 손연아 선수와의 계약을 담당하게 된 최종혁 경정입니다.”
“……?!”
종혁은 놀라 바라보는 손연아 선수의 모습에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