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39화>
정용진 과장의 사무실에 모인 간편신고관리과와 특별수사팀 팀장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올해 신년사 들은 사람 있어?”
“듣기만 했겄습니까? 그놈의 부동산값은 왜 또 건드리려고 지랄이래. 염병할, 난 아직도 전센디……. 1팀장은 좋겄네! 부동산값 오르면 월세도 오르잖여!”
“하나 싸게 넘겨 드릴까요? 강남 8학군 쪽으로?”
“형! 싸장님!”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됐다며?”
“산림청이랑 119 애들만 죽어나는 거지, 뭐.”
손에 커피나 차를 든 채 웅성거리는 그들.
철컥!
문이 열리며 정용진이 들어오자 모두 입을 다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잔뜩 피로한 정용진의 얼굴을 본 그들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욕보셨습니다.”
이택문 경찰청장이 주관하는 고위 간부 회의에 다녀온 정용진 과장.
올 한 해 주의하거나 유의할 점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간단한 회의지만, 높으신 양반들이 있는 자리라 참관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가 빨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웃음도 잠시다.
마치 나만 힘들지 않을 거라는 듯 의미심장하게 웃는 정용진의 모습에 팀장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에 정용진은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가 돌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아까 시무식 청장님 연설에서도 들었겠지만, 올 상반기가 지나기 전 전국 지청에 자살 사건 전담반과 자살예방 센터, 학교폭력 상담센터가 신설될 겁니다.”
“이야, 그게 생기긴 생기네.”
“빠른데? 진짜 뭔 일이래?”
종혁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살 사건 전담반을 제외한 나머지 센터는 빨라도 1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저희 간편신고관리과도 하나로 엮였으니 그렇게들 아시고…….”
“아아!”
“아이고.”
피해자들이 어디로 신고를 하겠나. 112 아니면 인터넷 신고다.
그제야 정용진이 짓던 미소의 의미를 알게 된 신고 관리 및 모니터링 팀장들은 앞으로 폭증할 신고에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아무튼 상부 지시 사항은 이러니 모두 유념해서 업무에 임해 주세요. 자, 그럼 해산. 수사팀은 남으시고요.”
“수고하십쇼.”
“수고해.”
그렇게 특별수사팀 팀장들만 남겨지자 정용진이 세 개의 서류를 꺼낸다.
“하나씩 골라잡으세요.”
새해 첫 사건.
첫 사건을 잘 만나야 올 한 해 다른 사건들도 잘 만나고 또 잘 풀린다는 미신이 있기에 긴장을 하며 서류가 담긴 노란 대봉투를 본 팀장들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청소년] [사기] [비리]
“이런 장난을 좋아하시는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종혁의 말에 김판호와 윤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새해 첫 사건이니만큼 약간의 재미를 줘 봤습니다.”
전혀 재미가 없지만, 그래도 종혁을 비롯한 셋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아니, 서로 눈치를 봤다.
분명 셋 다 심각한 사건일 거다.
하지만 미신은 미신이기에 그들은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따 그럼 골라 보실…….”
턱!
“협의도 없이 그러면 안 되지, 2팀장.”
“얼레? 나 2팀장인디? 찬물도 위아래가…….”
“그럼 1팀장인 제가 먼저…….”
턱턱!
“에헤이. 가장 어린 양반이 이러면 안 되제. 장유유서, 노인공경 몰러?”
“노인공격은 압니다만?”
순간 팽팽하게 당겨지는 공기.
살벌하게 웃는 세 팀장의 모습에 정용진은 흐뭇하게 웃으며 녹차를 들이켰다.
“……그냥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하죠.”
“오케이! 안 내면 술래! 가위, 바위, 보!”
“아자!”
“에이.”
“그럼 전 이걸 맡겠습니다.”
승자가 된 종혁은 ‘비리’라고 적힌 사건을 끌어왔고, 김판호와 윤선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일 골치 아파 보이는 단어를 종혁이 가져갔기 때문이다.
“아따, 최 팀장이 저거 가져갈 거라고 생각했으믄 이렇게 싸울 필요도 없었는디……. 그럼 난 이걸로 할까나?”
“우연이네요. 나도 처음부터 이걸 고르려고 했는데.”
김판호가 ‘사기’를 가져가고, 윤선빈은 ‘청소년’을 가져가자 정용진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손뼉을 짝 쳤다.
“그럼 모두 불만 없을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럼 업무 시작하세요.”
“예. 과장님도 수고하쇼잉.”
“수고하십쇼.”
서류를 옆구리에 끼며 일어서는 그들.
그런 그들과 함께 일어서던 정용진은 순간 아차 했다.
“아, 최 팀장.”
“예?”
“홍보담당관님께서 찾으십니다. 홍보부로 가보세요.”
“……왜요?”
종혁은 눈을 껌뻑였다.
* * *
“충성. 경정 최종혁.”
“어이쿠! 어서 와. 어서 와!”
사무실을 너구리 소굴로 만들 만큼 담배를 뻑뻑 피우던 홍보담당관이 양팔 벌려 맞이한다.
“내 사무실은 처음 오지? 뭐 마실래? 녹차? 커피? 이번에 보성에서 아주 질 좋은 녹차가 들어왔는데, 그거 마실래?”
순간 종혁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최고위 간부가 너무도 기껍게 반긴다. 느낌이 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셔도 홍보부는 아직 생각 없습니다.”
“아, 왜! 아, 아니 그것 때문에 부른 게 아니고…… 그런데 왜?”
“어차피 청장님께서 물러나시면 담당관님도 인사 이동을 하시지 않습니까. 담당관님도 안 계실 텐데 와 봤자…….”
청장이 바뀔 때마다 교체되는 홍보담당관.
지금 눈앞에 있는 홍보담당관이야 최기룡 전 청장의 파벌이고 현 경찰청장인 이택문과 긴밀한 끈이 있어 계속 홍보담당관으로 있었지만 이젠 그것도 한계다.
올 7월 이택문이 경찰청장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 다른 부서로 이동해야 했다.
작은 아부에 홍보담당관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으허헛! 그런 거였나? 최 팀장이 날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는지 몰랐구만?”
“하하.”
“앉아, 앉아.”
종혁이 자리에 앉자 홍보담당관은 녹차를 타 왔다.
“잘 마시겠습니다.”
후룩!
고소하고 씁쓸하게 입안을 적시는 녹차의 향이 시무식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느라 쌓인 피로를 덜어 준다.
그렇게 종혁의 표정이 풀어지자 홍보담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간부 회의 내용은 들었지?”
“예. ……아, 혹시?”
홍보담당관은 헛기침을 했다.
“흠. 청장님 임기가 몇 달 안 남았다 보니까 방송국 이놈들이 간을 보나 보군요.”
“작년에 주한빈 그 역적 놈이 거하게 말아먹은 것도 있고.”
종혁이 애써 다져 놓았던 경찰의 이미지를 광대로 만든 주한빈.
작년 경찰의 날 특집 예능은 또 어땠는가.
잘해 보고자 편집에 관여했다가 시청률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재미가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방송국이 더 콧대를 세우는 중이었다.
‘어이구. 그러니까 편집은 최소한만 관여하라니까.’
하지만 주한빈이 경찰 이미지에 똥칠을 해 버리는 바람에 편집에 깊이 관여를 해서라도 경찰 이미지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종혁은 이해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냅다 족쳐 버리자니…….”
별다른 명분이 없는 지금으로선 언론에 대한 탄압이란 말이 나오게 될 위험성이 컸다.
‘하, 이 새끼들 봐라?’
종혁 본인이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에서 물러난 지 1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도 과거를 잊고 나대는 꼴을 보니 속이 뒤집어진다.
“무슨 방법이 없겠어?”
“아니, 그걸 홍보부 소속도 아닌 제게 왜…….”
종혁은 일단 발을 뺐다.
“이 은혜 꼭 갚지. 아니, 내가 어디에 있든 최 팀장이 해 달라는 거 다 해 줄게.”
“일단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공익광고부터 찍으시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말에 홍보담당관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역시 최 팀장! 이 꾀주머니! ……그런데 운동선수를?”
“이번 도하 아시안게임이 도하의 기적, 아니 어게인 방콕이라 불렸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잖습니까.”
게다가 운동선수의 이미지가 뭐던가.
바로 끈기와 열정, 성실이다.
“오?! 그거…….”
“예. 저희 경찰의 이미지에 부합됩니다.”
“좋군. 추천해 줄 만한 선수 있나?”
홍보담당관은 금세 종혁의 말에 빠져들었다.
“일단은 김태환 그 친구가 있겠죠.”
“아, 마린보이? 그렇게 불리는 맞지?”
“예. 그 친구도 있고…… 흠.”
순간 종혁의 머릿속에 한 선수가 스쳐 지나간다.
불과 며칠 전 봤던 어린 소녀. 훗날 피겨 여왕이라 불리는 선수.
“최 팀장?”
“아, 다른 선수도 많습니다. 그들 중 인성에 문제없는 선수만 골라서 명예 경찰 임명 및 경찰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그중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저희 경찰이 산하 스포츠팀을 만들거나 지원을 하는 겁니다.”
“경찰청 야구단이나 축구단처럼?”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종합성적 2위를 거둔 한국이다.
비인기 종목에서도 메달이 나와 줬기에 가능한 성적.
아직 도하의 기쁨이 사라지지 않은 상황이니 비인기 종목을 지원할수록 정부 예산을 더 끌어올 수 있었다.
여기에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비인기 종목을 경찰이 지원하는 거니 명예까지 얻을 수 있는 상황.
홍보담당관의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또?”
“e스포츠 게임단은 특히 설립해야 됩니다.”
“e스포츠? 아, 컴퓨터 게임? ……그걸?”
“요새 10대, 20대들이 대통령님 이름은 몰라도 e스포츠 선수 이름들은 쫙 꿰고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이라고 무시하시면 안 됩니다. 저희와 세대가 다릅니다.”
“에이, 설마.”
“작년에 공군이 왜 게임단을 만들었습니까? 바로 e스포츠에서 전설이라 불리는 한 선수 때문이었습니다.”
“……맞아. 그랬지. 그랬어.”
그땐 공군이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종혁의 말을 들어 보니 아닌 것 같다.
홍보담당관은 눈을 빛냈다.
“만약 우리가 산하 게임단을 만든다면 20대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군?”
“의경 지원율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겁니다.”
보통 의경 생활을 하다 순경으로 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지원자가 많아질수록 경찰은 보다 더 양질의 경찰을 뽑을 수 있기에 일석이조라고 봐야 했다.
“훌륭해. 역시 최 팀장이야.”
겨우 말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하하. 그보다 이미지 마케팅팀 애들은 좀 어떻습니까?”
“청장님이 선별하고, 최 팀장이 키운 애들인데 어련할까.”
“하하하.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후. 방송국 쪽 일도 좀 고민해 줘. 부탁한다.”
“일단 스포츠 선수 명단도 추려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아, 그래 줄래? 하, 진짜 이 신세 꼭 갚을게.”
종혁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 명단에 작은 욕심을 부릴 것이기 때문이다.
‘손연아 선수를 여기다 넣으면 되겠지.’
피겨 여왕 손연아. 훗날 대한민국을 대표할 선수를 경찰이 먼저 알아보고 지원을 하는 거다.
힘들 때 도와줘야 더 뇌리에 남는 법. 손연아 선수나 경찰 모두 윈윈 하는 일이었다.
의미심장하게 웃은 종혁은 경례를 하곤 돌아섰다.
* * *
‘흠. 나도 따로 지원을 해 볼까?’
그녀가 성공한다고 해서 딱히 이득이 되는 건 없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해 그 늦은 밤에서야 겨우 스케이트를 타려는 모습을 보자니 좀 안쓰러웠다.
‘그래. 그냥 전용 링크장 하나 지어 주자. 그래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인데…… 응?’
“뭐야. 다 어디 갔어?”
종혁은 텅 비어 버린 사무실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몰라요. 과장님께 다녀오시자마자 다 데리고 나가시던데요?”
“아, 그래?
‘과장님께서 주신 사건들 때문인가 보네.’
“그런데…….”
“응?”
“2팀장님이나 3팀장님 모두 나가실 때 팀장님 자리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가시더라고요.”
“내 자리를? 왜?”
“그, 글쎄요?”
“흐음. 알았어.”
‘뭐지?’
종혁은 의아해하며 자리에 앉았고, 최재수는 눈을 빛냈다.
“그런데 팀장님은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아, 난 잠시 홍보담당관님이 불러서.”
“홍보담당관님이요? 왜요? 혹시 저희 이번 달에 부서 옮겨요? 다음 인사 이동 때 옮긴다면서요?!”
의자를 뒤로 젖힌 채 눈을 감고 있던 오택수도 벌떡 일어난다.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잠깐 다른 이야기 나눌 게 있어서 다녀왔던 거야.”
“아…….”
가슴을 쓸어내린 최재수는 다시 하던 일을 시작했고, 몸을 일으킨 오택수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래서 올해 첫 사건은 뭔데? 그거야?”
“아, 예.”
“얼른 까 봐. 무슨 사건인데?”
“아, 거 더럽게 급하네.”
“뭐 인마?”
“알았어요. 확인합니다, 해.”
고개를 저은 종혁은 대봉투에서 사건 파일을 꺼냈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 이거 소연지 씨 사건 파일 아니에요? 어? 다른 피해자 파일도 있…… 이 사람은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네요?”
최재수는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몰랐지만, 오택수는 단번에 새해 첫 사건이 뭔지 알아차렸다.
“……아, 이거 그거네! 지금 빙상협회 비리를 조사해 보라는 거지? 맞지?”
“예……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요.”
‘푸핫! 이거 봐라? 방금 전 홍보담당관에게 운동선수를 추천했는데, 스포츠 협회를 조사하라고?’
왠지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진다. 그러며 동시에 김판호와 윤선빈이 왜 자신의 자리를 묘한 눈빛으로 봤는지도 이해가 된다.
분명 그들이 맡은 사건도 자신처럼 자살카페의 피해자들과 연관이 됐을 터.
‘하, 이 양반.’
종혁은 지금쯤 웃고 있을 정용진 과장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빙상협회라…….’
종혁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