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37화 (337/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37화>

“와아아아!”

“이야아아아!”

드디어 범인을 잡았다.

한 달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어떻게든 잡고 싶었던 놈.

특별수사본부에 모인 형사들은 미쳐 날뛸 수밖에 없었다.

탕탕!

“자, 자! 잠깐 모두 조용해 주세요! 우리 본부장님께서 한 말씀 하시겠답니다!”

갑작스런 오택수의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종혁은 소고깃집 테이블에 앉아 뜨거운 시선을 보내오는 형사들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원래는 수사본부로 썼던 연회장에서 통돼지 바비큐를 구우며 뒤풀이를 하려고 했지만, 형사들이 격렬하게 거부를 바람에 급히 잡은 소고깃집.

종혁은 한 달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동거동락했던 그들을 주욱 둘러봤다.

“면상들이 참 볼만하네요.”

“푸핫!”

“크크크.”

“나름 씻었다고 해도 본판이 안 되니 다들 노숙자가 따로 없습니다.”

“이봐요, 본부장님! 말로 때리는 것도 폭행입니다!”

“그래! 이거 명예훼손이에요!”

“사실적시도 명예훼손입니까?”

“푸하하하하!”

웃음을 터트리는 그들의 모습에 종혁도 풀썩 웃었다.

“그래도 모두 이런 몰골이 될 때까지 사건에 매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의 일처럼 매달려 줘서.

몸이 망가져가는 데도 결코 포기하지 않아 줘서.

그래서 이동하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고, 수많은 이들을 구해 낼 수가 있었다.

이동하뿐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엔 음지에 숨어 힘든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 버리는 놈들이 너무 많았다.

이동하를 제외하고도 수사본부가 잡아들인 자살카페의 운영진이 총 34명, 폐쇄시킨 자살카페의 수가 8개, 해결한 사건이 총 141건.

아직 4천 개가 넘는 사건들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모두 여기 모인 사람들이 악착같이 달려들어서 해결할 수 있었다.

나지막한 종혁의 형사들이 여운에 잠긴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채찍질만 하며 달리던 기억들이 그들의 머릿속을 스친다.

“우리 강현석 간부후보생도도, 타국에서 오신 경찰분들도 모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내일 공개적으로 수사 종결을 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후엔 다시 서로의 회사로 떠나게 되겠지만, 거기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지만 서로가 함께 의지했던 기억은 잊지 말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피해자가 있음을 기억합시다.”

피해자는 경찰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생겨난다.

참 오랜 격언이다.

형사들의 표정이 진지해지자 종혁은 푸근히 웃었다.

“어린놈이 말이 길었네요.”

형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종혁을 어찌 어리다고 폄하할 수 있을까.

시종일관 수사본부의 장으로서 중심을 지키고 누구보다 더 뜨겁게 사건에 임했던 종혁. 이런 동료가 있음에 그들은 든든할 수밖에 없었다.

‘팀원이 부족하다는데 한번 지원해 봐?’

‘아, 저런 간부가 우리 서로 오면 좋을 텐데…….’

종혁은 눈이 뜨거워지는 그들을 향해 입을 크게 열었다.

“자, 그럼 다들 잔들 채워 주십시오!”

드르륵! 졸졸졸! 챙챙!

“제가 성과급을 선창하면 만세라고 후창하는 겁니다. 성과급-!”

“만세!”

“특진!”

“만세에!”

“청장님! 휴가 보내 주세요-!”

“푸하핫! 만세에-!”

채재재재쟁!

“크아!”

“좋다-! 아줌마, 여기 모둠 하나 추가요!”

“여기도!”

다시 시끌벅적해지는 형사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은 종혁은 맞은편에 앉은 현석에게 술을 따라 줬다.

“수고했다.”

현장 실습이 종료됐음에도 주말마다 찾아왔던 현석.

“오자마자 한 사건에만 매달렸는데 뭘 좀 제대로 배웠는지 모르겠네.”

“아, 아임니더! 억수로 많이 배웠심더! 진짜로!”

형사로서의 마음가짐, 수사의 방식, 피해자를 대해야 할 방법 등 이 외에도 너무 많은 것을 배워 제대로 체화시킬 수 있을지가 의문일 정도였다.

‘이 행님 와 이리 크노.’

현장에서 일하는 종혁은 커도 너무 컸다.

“오히려 지가 한 게 있을까 싶습니더…….”

“너? 도움이 많이 됐지.”

현장 실습이 종료됐음에도 주말마다 찾아왔던 현석 덕분에 수사본부의 형사들이 더 이를 악물 수 있었다. 현석이 잔일을 도맡아 해 주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현석이 이번 수사본부에서 한 일은 너무도 많았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네가 딱 오니까 이동하 이 새끼를 찾았잖아.”

“고, 고작 그거예? 아니, 하…….”

종혁이 도움이 됐다기에 내심 크게 기대를 했던 현석은 밑바닥을 파고들었고, 종혁은 눈을 껌뻑였다.

“어라? 얘 봐라? 너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구나? 너 저 양반들 둘러봐.”

종혁의 말이기에 구시렁거리면서도 형사들을 둘러본 현석은 당황하고 말았다.

형사들이 현석 본인을 향해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탐이 나는 먹잇감을 노리는 눈빛들.

“……뭐, 뭡니꺼. 내는 토템입니꺼?”

“인마, 그런 미신을 믿어서라도 범인을 잡고, 피해자를 구하고 싶은 게 경찰이야.”

“아…….”

“그리고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너한테 형사로서 한 사람 몫을 해낼 거라고 기대한 적 없어. 어디 현장도 제대로 겪어 보지 못한 놈이 경찰이라고 말이야.”

“너, 너무합니더!”

종혁은 킬킬 웃다가 돌연 낯빛을 진지하게 굳혔다.

“그러니 얼른 현장으로 와라, 현석아. 가르칠게 많다.”

……뿌득!

“기대하이소. 내가 딱 데뷔하자마자 바로 형님을 재낄 거니까네!”

“오. 나 이런 말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아.”

종혁은 최재수를 봤고, 최재수는 엉덩이를 들썩였다.

“전 그런 말을 한 적 없는데요!”

“말이라는 게 꼭 말로 해야만 말이 아니잖아. 어우, 내가 그때 얼마나 웃겼는지 모르지?”

“아 씨, 후배 앞에서 너무하시네!”

“그 후배가 내년에 졸업하면 너보다 상관이다, 짜샤!”

빠악!

“때리지 말라고!”

최재수는 눈을 뒤집으며 오택수를 덮쳤고, 둘은 이내 데굴데굴 구르며 먼지를 피웠다.

종혁은 일행이 아닌 척 등까지 돌리며 무시했고, 그건 현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이제 남은 사건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꺼?”

“일단 각 서와 청에 이관될 테지만, 아무래도 자살 사건만 전담으로 수사하는 수사팀이 만들어질 확률이 높지.”

이번 수사본부의 수사로 인해 드러난 피해 사실 때문에 상부에서도 심도 깊게 생각하는 중이다.

각 지방별로 떼어 놓으면 얼마 안 되지만, 모아 놓으니 상상을 초월한 단위가 되어 버리는 자살 사건. 그리고 피해자가 자살을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들.

상부도 당연히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쥑이네예.”

“뭐가?”

“제가 생각하는 경찰처럼 훌륭해서예.”

‘글쎄다.’

그건 또 아니었지만, 종혁은 자라나는 꿈나무를 위해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러면 이제 다 끝난 겁니꺼?”

“그렇지. 다 끝이…….”

지이잉! 지이잉!

모르는 발신번호.

종혁은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예. 최종혁…….”

-나 서울 서부지검장인데, 당신이 이번 특별수사본부의 책임자요?

종혁은 천장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왜 안 튀어나오나 했다.’

시총이 수백억대인 기업의 아들을 잡았다.

비록 자식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래도 자식은 자식이었다.

저들의 공격이 시작된 것 같았다.

*   *   *

양팔이 병원의 침상에 구속되어 있는 이동하가 천장을 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대체 어디에서 내가 단서를 흘린 걸까?’

이동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소연지? 아니야, 훨씬 그 전이야.’

소연지나 최은영 등이 자살을 하기 훨씬 전이다. 그래야 경찰이 말한 44명에 관한 자살 방조에 관한 혐의라는 게 말이 된다.

경찰은 분명 자신의 자살카페에 대해 훨씬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조사를 했던 게 분명했다.

그것도 대유그룹의 정보력이 닿지 않는 곳에서.

‘대체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빌어먹을. 일단 재판부터 받고 나서 알아봐야겠군.”

어차피 형량을 받아 봤자 길어야 몇 년이다. 법조계나 정계에 인맥이 넓은 아버지라면 집행유예도 받을 수 있을 거다.

“그런 후 조사를 마치고…… 죽인다.”

감히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최종혁을 죽인다.

마취의 영향인지 얼굴에 감각이 없지만, 그래도 얼굴 전체가 붕대에 감긴 건 느껴진다. 아니, 아까 전부터 코와 광대가 칼로 긁듯 점점 아파지고 있다.

‘그놈도, 그놈 애미도…….’

빠득!

드르륵!

눈을 돌린 이동하는 낯빛을 굳혔다.

‘아버지!’

“오셨습니까, 아버지.”

절그럭!

손에 걸리는 수갑에 미간을 좁힌 이동하는 낯빛이 딱딱하게 굳은 아버지의 모습에 최대한 죄송한 표정을 지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제가…….”

“정말이냐.”

뚜벅뚜벅 다가온 이동하의 아버지, 이정한 회장이 복잡한 눈으로 이동하를 응시한다.

그 눈빛을 본 이동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모두 오해입니다, 아버지. 제가 마침 그곳에 있었던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건 제 전 수행원이었던…….”

“네가 벼랑 끝에 서 있던 44명의 등을 밀고, 한 명을 죽이려 했어?”

“아버지,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제가 왜 그 수행원을 쫓아냈다고 생각하십니까?”

“못난 놈.”

“……!”

아버지의 눈을 다시 본 이동하는 눈을 부릅떴다.

방금까지 여러 감정이 뒤엉켜 복잡했던 아버지의 눈이 오직 서늘함만 머금고 있다.

오싹!

“아, 아버지!”

“내가 왜 너를 군대에 보냈는지 아느냐? 왜 다른 자식들보다 차갑게 대했는지 알아?”

기회를 줬던 거다. 엄하게 키우다 보면 정신을 차릴 거라고 믿었던 거다.

그러나 이동하는 자신의 기대를 배신했다.

‘수면제를 다량으로 구입하고 버렸다기에 이제 사람이 되나 싶었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수면제를 구하나 싶었고, 수면제를 버린 것 같다기에 살려고 발버둥을 친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들은 이미 구제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이젠 정리해야 됐다.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져도 정리를 해야 됐다.

남은 가족을 위해서, 그룹을 위해서.

그런 의지를 담은 이정한 회장의 눈빛에 이동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 무슨? 아, 아버지? 아, 아니죠, 아버지?”

아니다. 지금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아니어야 했다.

하지만…….

“그룹의 도움을 바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할 거다.”

쿠웅!

“아버지-! 난 당신의 자식입니다! 이러시면 안 되죠! 설마 그 최종혁 때문입니까?! 그놈이 미국과 러시아에 끈이 있다고 해서 그래요?!”

미국과 러시아에서 곡물을 들여와 국내의 식품 기업에 납품하는 대유그룹.

원래는 국산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으나 이동하의 형이 그룹의 본부장이 된 이후 가성비를 들먹이며 국산 곡물의 비중을 줄이고, 미국과 러시아산의 비중을 높이고 있었다.

“그놈이 아무리 끈이 있어 봤자 그게 그룹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그럽니까! 예-?!”

이정한 회장은 무너지는 작은 아들을 응시하다 몸을 돌렸다.

“먼 훗날 다시 볼 수 있으면 보자.”

이동하는 이를 악물었다.

“날 위해서였다고요? 개소리하지 마-! 다 형을 위해서잖아! 형만 사랑해서잖아!”

기업명이 글로벌화가 되어야 한다면서 본래 사명이었던 대유제분을 대유그룹으로 바꾼 것이 형의 작품이었다.

그러기 위해 필요치도 않은데 만들어야 했던 자회사가 몇 개던가.

그럼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형만 감싸고돈다.

“내가 정말 당신 자식이 맞긴 해?! 맞긴 하냐고-! 으아아아아!”

드르륵, 쾅!

문을 닫고 나온 이정한 회장은 안에서 들리는 절규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야기는 잘 나누셨습니까.”

“아.”

이정한 회장은 다가온 종혁을 응시했다.

‘최종혁 경정.’

경찰이 키운 괴물.

아니, 경찰이 된 괴물. 러시아와 미국에 긴밀한 끈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 각국이 노리는 세기의 천재.

‘이자의 손에 몰락한 국회의원이 몇이고, 기업이 몇 개던가.’

이동하의 말은 어느 정도 맞다.

오늘 이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상대가 누구든 기어코 몰락시켜 버리는 종혁에 대한 무서움도 있었다.

종혁이 진심으로 달려들어 그룹이 망가지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동정표를 얻는 게 낫다고 판단한 이정한 회장.

이정한은 한 가정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수천 명의 직원을 데리고 있는 그룹의 회장으로서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문 이정한 회장은 종혁은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제가 식사를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싶으시다는데 당연히 허락해 드려야죠.”

그래도 서부지검장을 동원한 건 너무했다.

“그렇습니까? 이렇게 흔쾌히 허락해 주실 줄 알았다면 그냥 연락을 드릴 걸 그랬습니다. 허허.”

“면회는 권리인걸요.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종혁의 차가운 눈이 이정한 회장을 살핀다.

언제든 이쪽을 물어뜯으려는 포식자의 눈.

이정한 회장은 주먹을 쥐었다.

“자식을 제대로 훈육하지 못한 부모로서 이 이상 어떤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법대로 처벌해 주십시오.”

“법정 최고형을 받게 할 겁니다.”

그렇게 만들 거다.

그게 죽어 간 피해자에게 형사인 종혁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이기에 어떻게든 종신형을 받게 만들 거다.

“……동하의 죄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요. 그럼.”

다시 고개를 숙인 이정한 회장은 종혁을 지나쳐 복도를 걸었고, 그런 그의 곁으로 이동하의 형이 따라붙었다.

“아버지, 동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제 다신 안 보는 거 맞죠? 하, 진짜 이 또라이 새끼. 어떻게…….”

이동하의 형을 본 이정한 회장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동하를 왜 그렇게 회사로 들이려 했던가.

첫째가 이렇게 못나서였다.

어딘가 어긋났지만, 영특했던 이동하가 그룹 일을 맡고 승승장구하면 첫째도 정신을 차리고 노력을 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더 아쉽구나, 아쉬워.’

종혁이 사위가 되지 않은 게 말이다.

종혁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을 땐 이미 너무 커 버린 종혁.

“정말 아쉬워.”

“예에?! 뭐가요? 설마 동하 그 새끼를 아직도 자식이라고…….”

“가자.”

이정한 회장은 걸음을 옮겼고, 이동하의 형은 옆에서 쨍알거리며 뒤따랐다.

그런 그들을 빤히 응시하던 종혁은 머리를 긁었다.

“정말 진심인가 보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던 이정한 회장의 얼굴엔 작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

천륜을 끊어 내면서도 회사를 지키려는 비정한 슬픔.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접니다, 권 이사.”

-아, 마침 잘 전화하셨어요. 방금 막 대유그룹에 대한 조사가 모두 끝났거든요? 이런 곳이라면…….

“아닙니다. 포기하죠.”

-네?

“굳이 비즈니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요.”

만약 이정한 회장이 외적인 힘을 이용해, 비즈니스를 하며 쌓은 인맥을 이용해 경찰을 압박하고 이동하를 빼내려고 했다면 종혁은 이정한 회장을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의 법칙으로 응수했을 거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의 회사가 도산하고 생겨나는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

하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다.

-흠. 아쉽네요. 곡물 쪽도 진출하나 했는데.

“하하. 조만간 밥 한번 먹죠. 내년에 할 일에 대해 이야기도 나눠야 하고요.”

-후후. 알았어요. 기대할게요, 보스.

전화를 끊은 종혁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음?”

종혁은 미간을 좁혔다.

“이 양반이 왜…….”

법무법인 새벽의 차애라 변호사.

의아해하던 종혁은 이내 종료 버튼을 꾹 누르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응. 지금 어디야? 노래방? 3차? 알았어, 거기로 갈게.”

종혁은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편 은은한 조명이 드리워진 한적한 BAR.

전화가 도중에 종료된 걸 깨달은 차애라는 어이없어하다 한숨을 폭 내쉬며 맞은편에 앉은 장년인을 응시했다.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오십대 후반의 장년인.

“아무래도 제가 많이 밉보였나 봐요, 아저씨.”

“경찰이 변호사를 좋아할 리 없지.”

“칫. 어떡할까요?”

“어쩔 수 있나. 따로 전달하는 수밖에.”

아들이 구함을 받았는데 부모로서 은혜를 갚아야 했다.

상부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했던 아들 조우선.

“최 팀장이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거의 20년 만이다. 눈앞의 장년인이 자신을 다시 찾은 게.

가난한 법대생이었던 그녀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줬던 장년인. 솔직히 얼굴이 너무 변해서 처음엔 몰라봤었다.

장년인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사건의 해결로 더 확신이 생겼지.”

그게 어떤 확신인지는 말해 줄 수 없었다.

“그럼. 나중에 볼 수 있으면 또 보지, 차 변호사.”

장년인은 빈 잔을 내려놓으며 일어섰고, 차애라는 등을 돌리는 장년인을 보며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체 아저씨가 소속된 곳이 어딘가요?”

“……평생 모르는 게 좋을 거야.”

그게 차애라의 삶에, 아니 차애라가 목숨을 부지하는 길이었다.

장년인은 잔뜩 피로한 미소를 지으며 BAR를 나섰고, 차애라는 맞은편에 놓인 잔을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며 일어섰다.

그렇게 그들이 앉았던 테이블에 침묵이 내려 앉았다.

그리고 다음 날.

“나왔다!”

촤라라라라라!

수사본부에 차출했던 백여 명의 형사들과 본청 입구에 선 종혁은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와 멀리서 눈물을 글썽이거나 허리를 숙이는 최은영 등 피해자 유족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곤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자살카페 특별수사본부 본부장 최종혁 경정입니다. 저희 경찰은…….”

이제 완연한 겨울.

어디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종혁은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   *   *

“……연쇄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과 다름이 없는 바 본 법정은 피고 이동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땅땅땅!

며칠 전 들은 환청이 울리는 독방.

싸늘하다 못해 얼어 버릴 것처럼 차가운 콘크리트벽에 등을 기댄 이동하가 실없는 웃음을 흘린다.

“아니야…… 푸흐흐. 아니라고…….”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놈들 몇 명을 죽였을 뿐인데 무기징역이다. 말도 안 된다.

“아니라고-! 으아아아아아!”

철문으로 달려든 이동하는 쇠창살을 붙잡아 흔들며 절규했다.

아무도 듣지 않을 절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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