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35화 (335/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35화>

웅성웅성.

폴리스라인이 쳐진 버려진 창고.

빠드득! 빠드득! 빠각!

“……퉤!”

종혁의 입에서 하얀 이가 섞인 피가 튀어나온다.

흰옷을 입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과학수사대 대원들, 읍소하며 부탁해 스페셜리스트로만 구성한 대원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어, 최재수. 소연지 씨는 좀 어때?”

-바, 방금 정신을 차렸어요! 지금 MRI 찍으러 간답니다.

“아…….”

“괜찮아, 최 팀장?!”

종혁은 다급히 부축하는 과수대 대장의 어깨를 콱 잡으며 눈물을 그렁거렸다.

살았다. 살렸던 사람이 죽지 않는다.

그 안도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 주었다.

“알았어. 지금 간다.”

통화를 끊은 종혁은 과수대 대장을 봤다.

“여긴 나한테 맡기고 가. 내가 씨발 벼룩 똥이라도 찾아낼 테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언론도 결코 냄새를 맡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알았으니까 어서 가.”

허리를 꾸벅 숙인 종혁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경찰차에 올라타 있는 코치를 일견하며 소연지가 이송된 병원으로 향했다.

삐이! 삐!

산소마스크를 쓴 채 죽은 듯 잠들어 있는 소연지.

종혁은 혈색이 도는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감사해 했다. 살아 있어 줘서 정말 감사했다.

그는 가까이 다가온 의사에 몸을 일으켰다.

“소연지 씨 상태는 어떻습니까.”

“다행히 뇌손상은 없을 겁니다. 외상이 조금 있긴 하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아아…….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다 심폐 소생술이 빠르게 이루어진 덕분이죠. 전 그저 진단을 내린 것뿐입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겸양을 떨고 있지만, 소연지를 살리는 데 어찌 의사의 수고가 없었을까.

허리를 깊이 숙였고, 손을 저은 의사는 부끄러운 듯 얼른 자리를 떴다.

“최재수.”

“예, 팀장님. 아니, 본부장님!”

“소연지 씨 깨어나면 VIP실로 옮기고 몽타주 받아. 그런 후에 다른 형사와 교대하고 복귀해. 언론엔 절대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하고.”

“예!”

“이따가 보자.”

“충성!”

최재수의 어깨를 두드린 종혁은 돌아섰고, 곧바로 수사본부로 향했다.

벌컥!

문이 거칠게 열리며 종혁이 나타나자 하던 일을 멈추고 정자세를 취하는 형사들.

단상으로 향한 종혁은 마이크를 잡았다.

“방금 전 소식은 다들 들으셨을 겁니다.”

빠득!

“이 개새끼들…….”

“죽일 놈들!”

코치가 몸싸움 도중 우발적으로 소연지를 살해한 후,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녀가 자살한 것처럼 꾸며져 있던 사건 현장.

두 사람 사이에 원한 관계는 익히 알려져 있었기에 살해 동기는 충분했다.

웬만한 형사였으면 깜빡 속았을, 종혁만 아니었으면 완벽했을 설계였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그래서 분노가 더 뜨겁게 끓어올랐다.

종혁은 단상을 반으로 접을 듯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현 시간부로 자살카페 운영진 자살 관여에서 소연지 씨 살인미수로 수사 전환합니다. 이 개새끼들…… 씹어 먹읍시다.”

“충성-!”

쾅 끼이익!

마이크를 던져 버리며 단상을 나선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어디에서 놓쳤다고요?”

코치를 끌어들여 완전 범죄를 꿈꾼 놈들이다.

언론을 통해 사건이 드러나지 않으면 놈들은 안심하고 계속 활동을 할 터.

시간을 벌었으니 단숨에 몰아쳐야 했다.

*   *   *

“도, 도련님!”

“닥치고 구급상자나 가져와.”

산을 내려오는 동안 계속 코와 입을 막고 있어서 피범벅이 된 장갑을 수행원에게 던진 이동하는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피는 산을 내려오는 동안 멎었지만, 피범벅이 된 코와 입 주변. 입술도 찢기고 앞니에선 통증도 있었다.

“빌어먹을 년.”

다시 돌아가 칼로 난자를 해 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증거를 남길 수 있기에 참기로 한 이동하는 수도꼭지를 틀었다.

쏴아아아!

“큭. 씨발. 씨발.”

그는 얼굴에서 일어나는 통증에 욕을 뱉었다.

“윽!”

“괘, 괜찮으십니까? 그, 그냥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시는 게…….”

“닥치고 계속해.”

살벌한 이동하의 눈빛에 코에 거즈를 마저 붙이고, 입술에 연고를 바르는 수행원.

이동하는 다시 치미는 아픔을 무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모레? 그래, 모레 송 씨 그 머저리를 불러내야겠군.’

방식은 이번과 비슷하면서도 다를 거다.

‘송 씨를 괴롭히던 일진들에게 이사한 송 씨의 주소를 알려 주고…… 아니, 송 씨 그 머저리를 좋아한다는 가상의 여자를 만들까?’

머릿속에서 다시 살인 계획을 세우는 그.

오늘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치밀하게 계획을 짜내려 가던 이동하는 이내 도출된 시뮬레이션 결과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수행원도 구급상자를 들고 물러났다.

“도, 도련님. 일단 간단하게 치료는 했지만 내일…… 죄송합니다.”

노려보는 이동하의 시선에 고개를 숙이는 수행원.

“쯧. 됐고, 엄마 생신 때 드릴 선물은? 수배됐어?”

그림이나 도자기를 좋아하는 어머니.

“아……. 그, 그게…….”

이동하는 손에 잡히는 걸 수행원에게 던져 버렸다.

빠악!

“악!”

“병신 새끼. 그런 쉬운 것도 못하면서 어떻게 내 수행원이 된 거지? 꺼져. 너 같은 놈 필요 없으니까.”

“죄, 죄송합니다! 제, 제발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동하는 회장님의 아들이다. 곧 요직에 앉을 하늘 위의 존재.

그런 이동하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면, 집값이 천정부지로 뛴 이 경제난에 실직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동하는 무릎을 꿇고 엎드린 수행원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 그래도 전에 있던 놈이 일은 잘했는데…….’

수면제에 대한 일이 새어 나가지만 않았다면 계속 써먹었을 거다.

“쯧. 경매장 쪽이나 알아봐.”

“겨, 경매장이요? 아, 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알아보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콧방귀를 뀐 이동하는 방으로 향했고, 남겨진 수행원은 전임자에게 물어봐야 되나 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털썩!

침대에 누운 이동하는 미간을 좁혔다.

‘……여전히 애매하네.’

진료실을 나서며 감격에 젖었던 소연지.

분명 살려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창고에서의 반응도 그랬다.

“얼른 송 씨 그 머저리를 만나야겠어.”

그래야 사이트를 없앨지 유지할지에 대해 알게 될 거다.

오늘의 경험을 통해 그동안 애써 가꿔 온 사육장에 대한 애정이 좀 많이 떨어지게 된 이동하.

어차피 하루에 한 번 접속하지 않으면 언제든 카페가 폭파될 수 있도록 설정해 놓았기에 걱정도 없었다.

모든 게 착착 맞물려 돌아감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이동하는 돌연 달뜬 신음을 뱉었다.

방금 전의 살인이 떠올라서다.

눈앞에서 끊겨 가던 사람의 숨결.

증오로 가득하다 공포로 일그러지던 얼굴.

“하아. 하!”

크게 부푼 사타구니를 매만지는 이동하의 심장이 옥죄이는 것처럼 격한 쾌감을 준다.

이동하는 아까 따로 숨겨 뒀던 캠코더를 다시 켰다.

-좆까, 이 씨발놈아-!

“하아! 하윽!”

이동하의 신음 소리는 더욱 격해져 갔다.

*   *   *

쏴아!

어두운 밤, 찬바람이 불어오는 충북 외진 곳의 어느 공터.

과수대의 조명을 한껏 받고 있는 뼈대만 남기고 검게 타 버린 자동차를 본 종혁이 입술을 핥는다.

‘그놈 같은데…….’

흥신소가 미행을 놓친 장소 인근 원룸 CCTV에 희미하게 찍힌 놈. 분명히 유정은, 소연지 등이 입원한 병원의 엘리베이터에서 봤던 놈 같았다.

‘쯧. 그건 소연지 씨가 깨어나면 알게 되겠지.’

종혁은 다시 자동차를 봤다.

“건질 것도 없겠네.”

그래도 흥신소가 큰일을 해 줬다.

흥신소가 미행을 놓치기 전 번호판을 외우고 어느 방향으로 향했는지 말해 줬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찾을 수 있었다.

놈을 놓치고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겨우 5시간. 정말 빨리 찾은 거였다.

종혁은 다 타 버린 자동차의 근처의 땅을 훑었다.

단단한 흙과 살짝 파인 두 개의 고랑.

이곳에 한 대의 차가 더 있었단 소리다.

“하, 이 새끼들 봐라? 대가리 겁나 잘 쓰는데?”

그동안 전국 자살 사건을 조사하느라 지리산 사건에 함께하지 못했던 오택수가 재밌다는 듯 웃는다.

“이거 아무래도 대포차겠지?”

“번호가 허 넘버니까 그럴 확률이 높죠.”

렌트카가 주로 쓰는 번호인 허 넘버. 대포차도 허가 들어가는 번호판이 많다.

“대포차 수배는 다른 분에게 맡길 테니까 오 경감님은 여기에 있던 다른 차를 쫓아 주세요. 반경 30킬로미터 내의 CCTV도 모두 수거해서 올리시고요.”

“염병…….”

반경 30킬로미터면 못해도 수만 개다.

꼼꼼한 종혁이라면 차량 블랙박스에 외부로 나온 ATM 등 모든 감시카메라를 필요로 할 테니 어쩌면 수십만 개. 그냥 죽었다고 봐야 했다.

씩 웃으며 오택수의 어깨를 두드린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재수야, 소연지 씨 깨어났어? 알았어. 지금 갈게.”

“흑! 가, 감사합니다.”

종혁의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던 소연지가 다시 눈물을 보인다.

“감사는 운 좋게 그 근처를 지나던 등산객분들에게 하셔야죠.”

제아무리 이들을 위한 일이었다지만, 함부로 감시를 붙였다는 걸 용납될 수 있을까. 이럴 땐 그냥 잡아떼는 게 옳았다.

“전 그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것뿐입니다. 아무래도 하늘이 소연지 씨 보고 살라고 그분들을 보내셨나 봐요.”

“……흐윽!”

“에고.”

종혁은 또 눈물을 터트리는 그녀에게 휴지를 건네며 어깨를 토닥였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애타게 구해 줄 사람을 찾았을까.

차라리 이렇게 울어 버리는 게 나았다.

울어서라도 가슴의 상처를 씻어 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곪고 썩어 문드러질 테니 말이다.

빠득!

“아,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오히려 대신 화를 내 줘서 고마웠다.

“후우…….”

쫙!

스스로 양 볼을 때린 소연지는 눈빛을 굳혔다.

“이제 됐어요.”

“힘드시면 내일 하셔도 됩니다.

“아니요. 그 새끼, 분명 자살카페에 대해 물었어요.”

자신이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런 소연지의 말에 주먹을 불끈 쥔 종혁은 숨을 가다듬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어떻게 된거냐면요…….”

소연지는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그때의 상황, 놈이 한 말에 대해 최대한 기억이 나는 데로 말했다.

그녀가 기억을 잘 떠올릴 수 있도록 맞장구를 치면서도 터지려는 분노를 겨우겨우 삭이던 종혁은 하나의 단어에 미간을 찌푸렸다.

“잠깐만요. 내 카페요? 정말 내 카페라고 말했습니까?”

“아, 네! 분명히 그랬어요!”

‘미친!’

카페장이다. 소연지를 죽이러 온 건 자살카페의 장이었다.

물론 이 말이 두 개의 뜻을 품고 있기는 하다.

하나는 놈이 카페장이 아님에도 카페에 애착이 심하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정말 카페장 본인인 것.

어떤 것이든 이놈이 지독히도 오만하고 카페에 집착이 심하다는 건 분명했다.

그런데 이놈이 소연지를 불러낸 방식이나 말투, 소연지가 반항을 못하도록 수갑을 채우는 등의 살해 방식을 생각하면 이놈은 결코 남 밑에서 일할 부류가 아니었다.

거의 80퍼센트. 이놈이 카페장이었다.

“형사님?”

“아, 죄송합니다. 이놈이 그렇게 말했다는 거죠?”

종혁은 자신이 도착하기 전 그녀의 도움을 받아 그린 몽타주를 보여 주었고, 소연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네. 이놈 맞아요. 이놈이에요.”

‘빌어먹을.’

그때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봤던 놈이 카페장으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놈이었다. 그런 놈을 코앞에 두고도 놓쳤다는 것에 종혁은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생각지도 못한 단서를 얻었다. 정말 엄청난 단서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하실까요? 그래서 그 말 이후에 어떤 말을 하던가요?”

“아, 그게요…….”

소연지는 다시 말을 이어 갔다.

“그렇게…… 그렇게 말을…….”

마치 즐거운 놀이를 즐기는 것처럼 환한 미소로 주절주절 떠들던 놈.

자신의 죽음과 그 이후의 일을 흥겹게 풀어놓던 괴물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르자 소연지는 순간 목이 탁 틀어막히는 걸 느꼈다. 아까처럼 목에 밧줄이 걸린 것 같았다.

“끄흑?! 꺽! 꺼어억!”

목을 긁으며 발버둥 치는 소연지.

종혁은 다급히 그녀의 양팔을 잡으며 그 몸을 내리눌렀다.

“숨 쉬어요! 숨! 간호사! 간호사-!”

드르륵! 쾅!

“헉! 환자분! 선생님-!”

간호사의 외침에 의사가 뛰어  들어와 종혁 대신 그녀의 전신을 누르자 그제야 물러난 종혁은 괴로움에 발버둥 치는 그녀를 응시하며 이를 갈았다.

빠드득!

“그래. 카페장이 맞아.”

코치가 범인으로 지목되게끔 현장을 꾸미는 솜씨.

거기다 혹시 모를 정말 만에 하나 경찰이 쫓을 걸 생각하고 대포차를 마련한 치밀함까지.

그 용의주도함은 그동안 수사본부에서 쫓던 자살카페의 운영진과 모습이 매우 흡사했다.

지난 형사 생활을 모두 걸고 장담할 수 있었다. 이젠 백 퍼센트였다.

‘잠깐, 그렇다면?’

“아!”

순간 종혁의 머릿속에 불똥이 튄다.

지난 시간 보고 듣고 겪은 모든 단서들이 하나로 맞물려 돌아간다.

“하, 씨발.”

종혁은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본부장입니다. 지금 당장 정선, 설악산, 지리산 사건의 마지막 수신지 반경 1킬로미터 내의 CCTV와 지리산 피해자들이 입원한 병원 CCTV를 모두 확보해 주세요! 역추적에 들어갑니다!”

놈이었다. 정선, 설악산, 지리산 사건에서 피해자들과 통화를 한 것도 카페장, 이놈이었다.

종혁은 진정제를 맞고 잠이 드는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며 병실을 뛰쳐나갔다.

드디어 꼬리가 보였다.

계속 암막 뒤에 숨어 지휘만 했더라면 오랜 시간이 지나야 잡았을 놈의 꼬리가 드디어 드러난 것이었다.

종혁은 병원 복도를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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