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32화 (332/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32화>

    86. 기회

    웅성웅성. 와글와글.

    단풍이 저물었어도 지리산과 화엄사를 오가려는 사람들, 그리고 주민들로 인해 시끌시끌한 구례의 시외버스터미널.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 어묵을 입에 문 종혁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다.

    수사본부가 설치된 이후 마치 우연처럼 활동을 줄여 버린 자살카페의 운영진.

    ‘우연일 가능성이 높지만…….’

    “하압!”

    우적우적!

    꼬불이 어묵을 한입에 쑤셔 넣은 종혁은 뜨거운 어묵 국물로 입안을 적셨고, 종혁의 옆에 딱 붙은 현석은 수북하게 쌓인 빈 어묵 꼬치에 고개를 저었다.

    “휴게소에서 뭘 먹지 못해서 그래.”

    “누가 뭐랬심꺼? 그냥 현희처럼 손 큰 사람 아니믄 행님 먹성 감당 못할 것 같아서 그랬심더.”

    현석의 여동생 현희.

    “오. 확실히 현희가 손이 크긴 크지.”

    “형제가 몇인데요. 어디서 뭘 배웠는지 엄마보다 더 큽니더.”

    “그렇구나. 그런데 은근슬쩍 현희 어필하지 마라, 짜샤.”

    “……쳇.”

    피식 웃은 종혁은 게이트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착할 때가 됐는데…….’

    띠리링! 띠리링!

    ‘왔다!’

    발신자를 확인한 종혁은 냉큼 전화를 받았다.

    “아, 지금 들어오는 버스요? 예, 보입니다.”

    부르릉 소리를 내며 느릿하게 도착 홈으로 들어오는 버스 한 대.

    종혁은 손목을 입에 가져갔다.

    “1번 타깃 도착했습니다. 전체 대기.”

    순간 터미널 곳곳에 긴장이 내려앉고, 그와 동시에 멈춰 선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종혁은 그중 등산복을 입은 삼십대 여성과 그 뒤를 따르며 터미널 이곳저곳을 향해 손을 흔드는 흥신소 직원을 발견하곤 입을 다물었다.

    상사의 횡령을 고발하였지만, 도리어 그 죄를 뒤집어쓰고 퇴직을 당하여 직장과 명예를 잃다 못해 5년 사귄 애인과의 결혼식마저 파투가 나면서 삶의 의지를 잃은 정의롭고 불쌍한 사람.

    “1번팀. 도착 홈에서 제 쪽으로 걸어오는 30대 여성, 안경, 뒤로 묶은 머리, 등산복 1번 타깃입니다. 마킹 준비.”

    그 말과 함께 근처 벤치에 앉아 신문을 보거나 음료를 마시던 형사 두 명의 시선이 1번 타깃을 따라가고, 종혁은 현석의 어깨를 감싸 몸을 돌리게 했다.

    “쳐다보지 말고, 긴장 풀고.”

    “예.”

    같이 몸을 돌린 종혁은 새 어묵을 들어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터벅터벅.

    무겁디무거운 걸음이 그의 뒤를 지나쳐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편의점 앞에 멈춰 섰다.

    종혁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꿀꺽.

    달콤한 편의점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맨날 마시던 믹스커피보다 고급스러운 맛.

    “아, 커피숍 커피 살걸.”

    이젠 얼마 마시지도 못할 커피인데 평소 습관처럼 사 버리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려면 돈을 모아야 했기에 정말 간절할 때나 한 번씩 사 먹던 사치.

    “……개새끼. 내가 왜 아득바득 돈을 모았는데.”

    모두 신혼집 사는 데 보태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직장에서 잘리자마자 애인은 파혼 통보를 해 버렸다. 그리고 고작 한 달 만에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 버렸다.

    “진짜 개새끼.”

    첫사랑. 첫 남자친구. 왈칵 차오르는 눈물을 닦아 낸 그녀는 커피를 쓰레기통에 버려 버리곤 커피숍을 찾아 움직였다.

    쪼오옥!

    “아, 좋다!”

    왜 이런 맛을 모르고 살았을까. 이게 진짜 사치일까. 커피숍에서 최고로 비싼 메뉴라서 그런지 마치 설탕으로 만든 예쁜 구름을 삼키는 것 같다.

    “리더 정 님?”

    흠칫!

    그녀의 활동명 ‘난 정의로웠다’에서 딴 이번 여행에서 쓸 이름. 고개를 돌린 그녀는 작은 체구의 십대 소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그냥 정 씨라고 불러 주세요.”

    “아, 안녕하세요. 송 씨라고 불러 주세요.”

    자신감 없이 축 처진 어깨와 왜소한 체격.

    왜인지 송 씨의 사연을 알 것 같지만, 정 씨는 모른 척하기로 했다. 각자의 사연을 묻는 건 여행의 룰이 아니기에.

    그런데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던 정 씨는 이내 생각하기를 관뒀다.

    ‘귀찮아.’

    누군가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귀찮았다. 그건 송 씨도 마찬가지인 듯 웬 게임기 같은 것을 꺼내어 막 누르는 송 씨.

    “재밌다……. 맞아, 이래서 하고 싶었는데…….”

    정 씨는 촉촉이 젖어 가는 목소리를 못 들은 척 외면했고, 그런 그들에게 탄탄한 체구의 한 여성이 한쪽 다리를 끌며 다가왔다.

    “리더 정 님?”

    “정 씨라고 불러 주세요.”

    이후로 세 명의 남녀가 더 그들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러자 정 씨는 핸드폰을 꺼냈다.

    “네, 카페장님. 저희 다 모였어요.”

    -모두 통성명은 나눴습니까?

    “네.”

    -그럼 점심시간이니 식사를 하러 움직이죠. 지금부터…….

    “네. 예.”

    정 씨와 이번 여행을 함께할 일행들은 카페장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종혁은 버스정류장을 벗어나는 그들을 보며 소매에 부착한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댔다.

    ‘6명.’

    신원 파악이 불가능해 마킹을 할 수 없었던 이들도 나타났다.

    그러나 인원이 몇 명이든 상관없다.

    ‘무조건 구한다.’

    무조건.

    “1팀과 3팀이 따라붙고, 2팀과 4팀이 백업합니다. 우리…… 구합시다.”

    -라져.

    그 대답과 함께 터미널 곳곳에서 일어나는 8명의 형사들.

    그걸 다 먹었냐는 듯 함박웃음을 짓는 사장에게 돈을 건넨 종혁과 현석도 터미널을 빠져나와 근처에 세워진 검은색 승합차에 올랐다.

    그런 그를 굳은 얼굴로 맞이하는 형사들.

    “출발.”

    피해자를 구하기 위한 미행이 시작됐다.

    *   *   *

    “후욱! 훅!”

    거친 숨이 토해진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정착지, 지리산 노고단.

    고작 20분 거리 아래에 주차를 하고 올라왔건만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카페장의 지시이기 때문이다.

    터벅터벅!

    갈수록 줄어드는 말. 정 씨는 힐끗 다리가 불편한 육 씨를 향해 손을 뻗으려다가 관뒀다.

    그때였다.

    “아이고. 추운 날 고생하네요.”

    “조금만 올라가면 정상이에요. 파이팅. 노을이 아주 멋져요.”

    서로에게 의지하며 위에서 내려오는 노부부.

    그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에 정 씨들의 표정이 굳는다.

    ‘또야.’

    이곳 구례에 와서 무척이나 희한한 경험을 한 그들.

    어딜 가든 사람들이 따뜻한 말을 건네 왔다.

    맛있게 먹어요, 파이팅.

    우리 소원 성취해요,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왤까. 어째서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뭔가 불합리하다. 짜증이 난다.

    지난 5일 동안 들은 파이팅에 힘을 얻으려는 것 같아서인지, 나는 너무 아파서 죽으려는데 저들은 해맑게 웃어서인지.

    뭔지 모를 속마음에 더욱 표정이 굳은 그들은 입을 꾹 다물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등산객들의 파이팅을 무시하며 나아간다.

    그러다…….

    “아…….”

    “와아.”

    온 세상을 주홍빛으로 물들인 노을을 보자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얼마나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을까.

    너무도 아름다웠던 노을이 점점 어두워져 간다.

    생애 마지막으로 보는 노을이 저물어 감에 지난 5일여간의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화엄사, 천은사, 재첩국, 참게탕 등 맛있던 전라도의 음식들. 산속 나무들 사이 수줍게 숨어 이제야 단풍을 떨어트리던 느림보 단풍나무.

    그 모든 즐거운 추억들이 어두워지는 하늘처럼 까맣게 물들어 간다.

    아득히, 아득히.

    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작은 의문마저 어둡게 물들어 간다.

    점점 마음의 준비를 해 간다.

    “아따. 이걸 보려고 요로코롬 살아 있었나 보구마잉.”

    흠칫!

    정 씨들은 쩌렁쩌렁 울리는 사투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신들처럼 등산복을 입은 네 명의 남자들.

    ‘저 사람들은?’

    자신들이 머무는 펜션에 놀러 온 사람들이다. 몰라볼 리가 없다.

    이 추운 가을에 내기를 해서 계곡물에 뛰어들거나 격파 대회를 하는 등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음과 노래가 끊이지 않던 사람들.

    “지럴! 요딴 멋도 없는 노을이나 보게 만든 사람이 말이 많네잉! 노고단은 새벽 운해가 와따인 거 모르요?!”

    “이런 염병! 오늘 못 보믄 내일 보면 되제! 그라고 노을이 왜 멋이 없어야?! 씁쓸한 인생의 커피처럼,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센치한…… 뭐여, 노을 이 씨벌것들 다 어디 갔어?”

    풋 웃음이 정 씨들 사이에서 튀어나온다.

    “하이고, 센치고 지랄이고 찾다가 얼어 뒤지겄네. 그리고 형님이 퍽이나 내일 오겄소! 안 그러냐?”

    “뭐 어때요. 오늘 못 보면, 내일 보면 되고. 내일 못 보면 겨울에 보면 되죠. 봄여름가을겨울 아무 때나 다시 와도 되잖아요.”

    다시 올 생각만 있다면 언제든 와도 된다.

    어느 날 문득 충동이 들어 훌쩍 떠나와도 된다.

    버스를 타고 와도 되고, 자전거를 타고 와도 되고, 차를 렌트해서 와도 되는 그런 곳.

    “혹시라도 시간 때가 안 맞아 노을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잖아요. 이런 풍광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노을이나 새벽 운해만이 노고단의 풍경이 아니다.

    사시사철 언제나 변함없는 이 풍경이 바로 노고단이다. 마치 가족처럼, 친구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날 기다려 주는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내 꼴이 어떻든 반겨 주는 사람들.”

    움찔!

    “……아따 말 좋네. 그라제. 살아만 있으면 노을이야 언제든 보러 올 수 있는 거제.”

    움찔!

    여운에 잠긴 듯 네 명이 입을 다문 채 번져 가는 어둠을 응시하자 정 씨들도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긴다.

    “흐흐. 이제 내려갑시다. 추워 뒤지겠네요.”

    “난 담배 피우고 싶어 뒤지겄다. 얼른 가자.”

    기지개를 쭉 편 이들이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남겨진 정 씨들은 그들을 복잡한 눈으로 빤히 응시했다.

    그러다 이내 어색하게 웃었다.

    “그, 그럼 우리도 내려가죠. 육 씨는 다리 좀 어때요? 버틸 만해요?”

    “그냥 뭐…… 그럭저럭이요. 어차피 근처까진 차로 왔고.”

    무언가 싱숭생숭한 분위기.

    입술을 깨문 정 씨는 이제 어둑해지는 지리산의 풍경을 응시하다 몸을 돌렸다.

    그렇게 말없이 산길을 내려가는 그들은 몰랐다.

    먼저 내려간 사람들의 발길이 한없이 느림을.

    노고단에 있던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정 씨들이 무슨 짓을 하든 바로 잡을 수 있게 지근거리에서 뒤따라오고 있음을.

    부우웅.

    승합차에 앉아 떠나는 렌트카를 지켜보던 종혁은 뒤에 탄, 방금 전 정 씨들을 싱숭생숭하게 만든 네 명의 사내들에게 하얀 봉투를 나눠 줬다.

    “수고했어요, 배우님들.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아닙니다. 심리치료사로서 이런 일이라면 당연히 협조해야죠. 그런데…….”

    종혁은 미간이 좁혀지는 그를 보며 씁쓸히 웃었다.

    “저도 압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죠.”

    당장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이제 남은 건 저들의 선택뿐이다.

    ‘부디 좋은 선택을 하기를…….’

    어두워진 밤. 희미한 입김이 바람을 타고 멀어졌다.

    정 씨들에게 닿기를 소망하며.

    *   *   *

    카페장의 지시에 따라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것들을 어렵사리 공수해 먹은 정 씨들은 방의 중앙에 모였다.

    저녁을 먹을 때부터 입을 꾹 다문 채 심란한 표정을 짓던 그들.

    어제까지만 해도 시끌벅적 난리를 치던 다른 방 사람들이 조용해서 그런지 지금의 침묵이 더 고요하게 느껴진다.

    탁탁탁.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가 그들의 귀에 꽂힌다.

    “그럼…… 우리 이제 시작할까요?”

    움찔!

    한 남성의 말에 몸을 굳힌 그들은 이내 슬프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날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한들 자신의 일엔 공감을 하지 못한다.

    이 아픔, 고통, 슬픔, 좌절, 절망.

    처음부터 그들이 있음을 알아차렸더라면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이젠 너무 늦었다.

    아니, 있다고 한들 달라졌을까.

    “혹시 후회가 남는 분 계시나요?”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크게 동요하고 있는 송 씨를 봤다.

    움찔!

    “저, 전…….”

    송 씨의 눈이 흔들린다.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빼앗는 악마들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었건만, 밖으로 나와 보니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이들로 가득했다.

    혹시 자신이 이 세상의 일부만 보고 판단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힘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가슴을 치던 엄마가 눈에 밟힌다.

    세상 그 어떤 위험에도 지켜 줄 수 있을 거라 여겼던 부모님. 그러나 지켜 주지 못한 부모님.

    그래서 살 의지를 잃었는데, 갑자기 눈에 밟힌다. 그리고 정말 죽을 순간이 되니 무서웠다.

    “죄, 죄송해요. 저, 저는…….”

    터억!

    송 씨는 양어깨에 닿는 정 씨와 육 씨의 손에, 다 이해한다는 일행들의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괜찮아. 송 씨는 우리랑 다르게 아직 가진 꿈도 도전해 보지 못했잖아.”

    “다음 생엔 만나면 웃으며 인사하자, 송 씨.”

    “우리 몫까지 잘살아, 송 씨! 죄책감 가지지 말고!”

    “……흐으윽!”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송 씨는 가방을 챙겨 든 채 자리를 박차며 펜션을 빠져나갔다.

    후회와 공포와 죄책감의 눈물을 펑펑 쏟아 내는 그를 싸늘하게 감싸는 늦가을의 바람.

    그 순간이었다.

    휘익! 덥썩!

    “헉?!”

    “쉿.”

    눈이 부릅떠진 송 씨는 그대로 납치되어 옆옆 펜션의 이층으로 향했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눈을 부릅떴다.

    ‘이, 이 사람들은?’

    마치 조폭을 연상시킬 만큼 인상이 험악한 사람들.

    그런 그들이 대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정신이 없는 송 씨로선 느끼지 못했다. 그들 옆에 더 이상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 구급대원?’

    웬 기계들 옆에 구급대원들이 눈을 부라리며 서 있고, 심지어 그 옆엔 의사와 간호사까지 있었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뚜벅뚜벅.

    송 씨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덩치 큰 종혁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다 이내 눈을 크게 떴다.

    “감사합니다.”

    살아 줘서, 그리고 살아가기를 선택해 줘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희로 하여금 당신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종혁은 정말 진심을 담아 허리를 숙였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학생의 사연은 이미 조사 중에 있으니 나머지는 저희 경찰에게 맡겨 주십시오.”

    “……네?”

    이해를 할 수 없는 말. 쉬이 귓가에 닿지 않는 말.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송 씨는 이내 깨달았다.

    이젠 살아도 된다는 것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어어엉……!”

    송 씨가 결국 울음을 터트려 버리는 순간이었다.

    -모두 정말 후회 없습니까?

    “헉?!”

    송 씨는 울던 것도 잊은 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커다란 검은색 기기, 도청 장치를 바라봤다.

    일반적으로 감청은 불법이지만, 몇몇 경우에는 감청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자살카페의 운영진은 벼랑 끝에 몰린 이들에게 자살을 종용하여 죽음으로 몰아넣은 살인자다. 살인자를 체포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종혁은 감청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결국…….”

    종혁은 그리고 형사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도청장치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노력했지만, 기회를 줬지만 결국 마음을 바꾸게 하지 못했다. 실패했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전신을 감쌌다.

    그때였다.

    -여보세요?

    변조된 듯 기계음처럼 들려오는 목소리.

    “……!”

    형사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탄식을 했다.

    드디어 놈의 육성을 듣나 했더니 변조 음성. 당연히 맥이 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찰나다.

    -네, 카페장님.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도청 장치를 죽일 듯 노려봤다.

    빠득! 빠드득!

    저들이 내뱉는 사연에 형사들의 이가 갈린다.

    하지만 오직 저들만의 사연 때문만이 아니다.

    -부디 그곳에선 행복하시고, 다음 생엔 좋은 부모 밑에서 부자로 태어나시길…….

    “개새끼.”

    “이 씨부럴 새끼.”

    -잘 자요.

    그 말과 동시에 종혁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을 살리는 건 무척이나 지난한 일이다. 기껏 살렸어도 다시 자살을 선택할 수 있기에.

    그렇기에 종혁은 이 순간까지 기다린 것이다.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도 임사 체험을 하면 살아갈 의지를 얻을 확률이 높기에. 진정으로 살릴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얻을 수 있기에.

    그래서 의사들의 조언을 받아 기다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과다 복용을 한 수면제가 다 녹기 전에, 피운 번개탄이 숨을 멎게 만들기 전에 얼른 구해야 했다.

    그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아직 통화가 끊기지 않았습니다!”

    빠득!

    “이 개새끼가……!”

    통화가 끊기지 않은 이유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놈은 기다리는 거다. 단발마의 비명을.

    ‘씨발, 넌 무조건 뒈진다.’

    종혁은 다급히 입을 열어 크게 외쳤다.

    “됐어! 전 팀 진입! 의료진도 투입! 빨리! 빨리! 빨리-!”

    종혁의 외침과 함께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정 씨들이 머물던 방으로 달려 들어갔고, 종혁도 그 뒤를 쫓았다.

    쿠당탕! 쿠당탕!

    “비켜요, 비켜!”

    형사들을 밀어젖히며 피해자들에게 달려드는 의료인들.

    종혁은 잠이 든 것처럼 평온하게 누워 있다가 뒤집어지는 피해자들 사이, 그 중앙에 놓인 핸드폰을 들었다.

    ‘기다려라, 개새끼야.’

    종혁은 후일을 노리며 부숴 버릴 듯 핸드폰을 닫았다.

    *   *   *

    “웩! 웨웨엑!”

    강력한 위세척과 주사에 오바이트를 하는 이들.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들에게 산소마스크가 우악스럽게 씌워지고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옮겨진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전혀 없도록 살려 냈지만, 혹시 모를 후유증과 안정 때문에 얼른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그런 그들을 따라간 종혁은 구급차 옆에서 하얗게 질려 멍하니 정 씨들을 보는 송 씨를 일견하며 마지막으로 실리는 정 씨의 팔을 잡았다.

    “리더 정 씨, 아니 유정은 씨.”

    “……?!”

    마치 위장을 뽑아내는 듯한 고통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정 씨가 본인의 이름에 반응한다.

    “서형도. 나이 42세.”

    횡령을 한 것이 유정은에게 적발되어 고발당했지만, 도리어 그 죄를 그녀에게 덮어씌운 서형도.

    “으읍!”

    더 크게 반응하는 정 씨, 아니 유정은.

    “그놈이 유정은 씨가 겪은 지옥보다 훨씬 더 지독한 지옥을 겪게 만들겠습니다. 저희 경찰이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살아 주십시오.”

    목소리에 담긴 간절함이 전달된 것일까. 그녀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흑! 흐으윽!”

    살라고 한다.

    한 번도 듣지 못한 말.

    한 번도 듣지 못한 위로.

    “끄억! 꺼어억!”

    유정은은 쌓이고 쌓여 문드러져 가던 슬픔과 설움을 모두 쏟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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