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27화>
다음 날, 출근을 하던 오택수가 특별수사팀 입구에서 멈춰 서서 눈을 껌뻑인다.
숨이 막힐 만큼 가라앉은 사무실, 아니 팀의 분위기.
먼저 출근한 강현석과 타국의 초임 경찰들도 눈치만 보고 있다.
오택수는 슬그머니 최재수에게 다가갔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하아. 그게요…….”
최재수는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줬고, 오택수는 얼굴을 찌푸렸다.
“씨발?”
“오셨어요?”
뒤에서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다가오는 종혁.
“어제 물먹었다며?”
그 말에 최재수와 현석들이 기겁을 하고 종혁은 얼굴을 구겼다.
“……아오, 씨! 겨우 잊었는데!”
피해자 최은영으로 하여금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게 만든 문자 내역을 확보한 이상 놈들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대형 로펌의 변호사가 붙으며 어그러졌다.
‘피해 사실을 입증할, 정확히는 놈들이 남겼을 피해 사진이나 영상을 확보했다면 이렇게 화가 나지도 않았을 텐데…….’
그런 부류의 놈들은 대부분 마치 트로피를 장식하는 것처럼 꼭 그런 영상이나 사진을 찍는데, 이젠 그마저도 기대를 할 수 없게 됐다.
새벽 정도 로펌의 변호사가 그런 증거물들을 가만 놔둘까.
“거의 첫 패배 아니냐?”
“아, 진짜!”
맞다. 말 그대로 거의 첫 패배다.
그래서 이 치솟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다.
하지만 폭발하면 솜방망이 처벌이라도 내릴 수가 없어서 겨우 누르고 있는데, 오택수가 성질을 건드리고 있다.
“큭큭큭큭.”
배꼽을 잡고 웃던 오택수는 돌연 장난은 여기까지라는 듯 엄한 표정을 지으며 서류를 내밀었다.
“지랄 똥은 그만 싸고 이거나 봐.”
“뭔데요?”
“황승연. 아니, 강복자 서류.”
“엥? 강복자?”
“일단 봐. 어제 밤을 샜더니 피곤해 죽겠다.”
정말인지 눈 밑에 다크서클이 그득한 오택수.
종혁은 재빨리 서류를 살폈다.
이름 강복자, 나이 34세.
사기 전과 7범.
“씨발? 34살이요? 이십대라면서요?”
오택수는 대답 대신 강복자와 김수환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 줬다.
눈에 확 띄는 미인은 아니지만, 정말 엄청난 동안.
‘음?’
뭔가 거슬리는 걸 발견한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지만, 그걸 못 본 오택수는 입을 열었다.
“알아보니까 이년 아주 유명한 꽃뱀이더라고.”
“……그 꽃카페는요?”
“김수환 씨를 설계하려고 진짜 꽃카페 사장에게 잠깐씩 빌린 거더라고.”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는데, 가끔 그 남자를 데려올 때만 자신이 사장인 척을 해 줄 수 없냐고 부탁한 강복자.
자주 찾아오던 손님이 돈까지 주며 부탁하니 꽃카페 사장은 마지못해 승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알바가 그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서 김수환 씨에게 다 들킨 거지. 아주 난리가 났단다.”
그게 한 달 전이다.
꽃카페 사장의 증언을 들은 오택수는 곧바로 아는 형사들에게 사진을 돌렸고, 꽤나 유명한 년이었는지 저녁에 연락이 온 것이다.
수고했다고 고개를 끄덕이던 종혁은 돌연 의아해했다.
“근데 날은 왜 샌 거예요?”
“아, 김미자 씨 때문에.”
시간이 남아 조사를 해 보니 김미자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사연이 나왔다.
4년 전 남편과 사별한 김미자. 그리고 얼마 전 도박알선죄로 현재 복역 중, 아니 병원 치료 중인 김미자의 친구.
“병원 치료?”
“일단 들어 봐.”
오택수는 김미자의 사연에 대해 설명했고, 종혁은 결국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는 사연이었다.
“후우…… 그럼 그 친구란 년은 왜 가서 그딴 말을 했답니까? 갑자기 삶이 시시해져서 그랬대요? 김미자 씨보고 아예 죽어 버리라고 그랬답니까?! 그럼 원하는 대로 됐네, 씨발!”
쾅!
남편을 잃고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어쩌면 슬픔을 털어 내고 다시 살려는 의지를 가지게 됐을지도 모른다. 4년이란 시간을 버텼다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친구란 년은 그런 김미자를, 절벽 끝에 서 있다가 이제야 안쪽으로 걸어 나오려는 그녀를 절벽 밖으로 밀어 버린 거다.
오택수는 종혁의 담배를 낚아채 물었다.
“췌장암 말기란다. 그래서 고백했대. 모두 자기가 김미자 씨 인생을 망치려고 한 짓이라고.”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무책임한 속죄.
그뿐이었던 것이다.
순간 종혁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말을 잃는다.
“……하하. 지랄이네, 진짜.”
마른세수를 한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납니다. 사장님, 전국에 수배 좀 때립시다. 이름 강복자. 꽃뱀. 확실치는 않지만 마약도 하는 것 같아요.”
김수환 씨와 찍은 사진 속 강복자의 얼굴에서 마약 중독자 특유의 흔적이 희미하게 보였다. 화장으로도 가릴 수 없는 흔적.
종혁은 깜짝 놀라는 오택수를 외면하며 말을 이었다.
“사진은 곧 보내 줄 테니까 이년 좀 최대한 빨리 찾아 줘요. 현상금은 3일 안에 찾으면 1억.”
“헉!”
“미친!”
“예, 사장님. 나도 너무 과한 거 압니다.”
사람 한 명 찾는 데 정말 많이 들어 봐야 겨우 5백만 원 정도다. 이마저도 물가 상승으로 이쪽 바닥도 의뢰비가 올라서다.
“그런데 내가 씨발 이년이라도 씹어 먹지 않으면 눈깔이 뒤집힐 것 같거든.”
빠드득!
어젯밤은 너무 화가 나서 잠을 잘 수조차 없었다.
“내일 안까지 찾으면 5천 추가입니다.”
탁!
거칠게 전화를 끊은 종혁은 새 수건을 챙겨 몸을 돌렸다.
“나 운동하러 갑니다.”
“또?”
“청장님이 불러도 찾지 마요. 현석아, 따라와! 운동하러 가자!”
운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 * *
1억 5천만 원.
전국의 모든 흥신소가 눈을 뒤집고 달려들기에 충분한 액수였고, 강복자의 현재 위치가 파악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하루 반나절에 불과했다.
한 주택가 골목, 주차한 차에 기댄 종혁은 저 멀리 보이는 한 건물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담배 연기를 뿜은 종혁은 옆을 봤다.
“저기에 있다고요?”
“예, 형사님! 강복자 이년이 원래 이쪽 바닥에선 유명한 호구거든요. 남자 공사 쳐서 번 돈을 모두 도박으로꼬라박는, 아니 도박을 하기 위해 공사를 치는 또라이년입니다.”
오늘 새벽 기어 들어가는 걸 확인했고, 지금까지 감시했다.
다시 들어도 어이가 없는 말.
“그럼 저기서 약도 팔겠네요?”
“뭐…… 그렇다고 봐야겠죠. 도박하는 새끼들이 약에 손대는 게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요샌 경제가 어려워지니 하우스에서도 마약으로 손님을 끌어모으기도 한다. 체력적으로 지칠 때 먹는 각성제 한 알이 다시 도박을 할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그러다 중독돼서 사고 치면 뭐…… 병신 만들어서 경찰서에 던져 버리고요.”
그리고 하우스를 옮겨 버린다.
요샌 그런 경향이 좀 심하다. 전국 투견 도박판이 싹 쓸려 버렸기 때문에 뭔가 좀 이상하다 싶으면 굳이 약 문제가 아니라도 바로 옮겨 버린다.
“후. 수고했어요. 현상금은 강복자 그년 확보하면 보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럼 또 이용해 주십시오!”
허리를 꾸벅 숙인 흥신소 직원이 멀어지자 종혁은 건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 경감님이랑 재수는 퇴로 차단하고, 현석이랑 둘은 나 따라와. 오 경감님.”
“왜?”
“좆같이 굴면 그냥 죽여 버려요.”
“오케이.”
“예!”
금속 배트로 어깨를 두드리며 사납게 웃는 둘.
종혁은 담배 꽁초를 버리며 발을 내디뎠다.
“갑시다.”
“쿨룩쿨룩!”
담배에 찌든 폐인의 기침이 여기저기서 울리는 공간.
“으랏챠!”
“씨발!”
누군가는 승리의 기쁨에 함성을 지르고, 누군가는 떡진 머리를 움켜쥐며 둥근 테이블에 머리를 박는다.
그렇게 시끄럽지만 누구도 그걸 신경 쓰지 않는다.
그건 강복자도 마찬가지였다.
“호호. 이거 미안해서 어째?”
코앞에서 쓸려 가는 돈뭉치에 눈에 핏발이 선 그녀.
앳된 얼굴이 중년의 여성처럼 주름져 있다.
“씨발. 끗발 좆같이 안 붙네.”
“호호. 복자 씨, 끗발 안 붙으면 붙이고 와. 저기 삼촌들 많잖아.”
끗발이 붙지 않을 땐 섹스를 해라. 도박판에 유명한 미신이다.
몇 시간 만에 천만 원을 꼬라박아 순간 혹했던 강복자는 이내 코웃음을 쳤다.
“너나 열심히 하세요, 아줌마.”
“호호. 꽃뱀이 별걸 다 따지네?”
“난 와꾸랑 몸매가 돼서 아줌마처럼 돈으로 사지 않아도 바지들이 침을 질질 흘리거든.”
“뭐야?!”
중지를 치켜든 그녀는 담배를 물며 테이블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는 심부름꾼을 불렀다.
“예, 누님! 부르셨습니까!”
“가서 박카스랑 도리도리 가져와.”
“옙!”
돈을 받은 심부름꾼은 후다닥 달려갔다가 이내 곧 엑스터시와 박카스를 가져왔다.
꿀꺽꿀꺽!
“크!”
정신이 번쩍 드는 박카스의 시원함.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뜨겁고 침침해지던 눈이 번쩍 떠지자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곤두선 온몸의 솜털이 모두 느껴질 만큼 예민해진 감각.
“오케이. 나 준비 완료.”
그녀는 5만 원을 테이블 중앙에 던지며 판에 참가를 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에게 던져지는 화투패 한 장.
패를 확인한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울긋불긋 단풍나무 아래 서 있는 사슴 한 마리. 10이었다.
“10.”
“받고 10 더.”
“받고 20 더.”
빠르게 돌아가며 테이블 위에 수북하게 쌓이는 돈들.
이어 던져진 화투패를 잡은 그녀는 살짝 놀랐다.
찌릿!
확인을 하지 않았는데도 손끝에서 흐르는 전류.
‘이건 떴다.’
오랜 도박에서 오는 직감. 그런 직감이 들었다.
마치 바늘귀에 실을 끼워 넣는 것처럼 패를 확인한 그녀는 비명이 튀어나오려는 목구멍을 겨우 눌렀다.
‘됐다. 됐어!’
드디어 떴다. 장땡이었다.
그녀는 황급히 다른 사람들 모르게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시작된 레이스.
강복자는 계속 레이스를 했고, 그래서인지 십만 원 단위의 돈이 어느덧 백만 원을 넘겼다. 어느새 테이블 위에 쌓인 돈만 무려 2천만 원.
“어우 좋은 패 들어왔다고 너무들 지르시네. 난 죽습니다.”
“나도요.”
이제 판에 남은 건 둘.
아까 전 강복자에게 아줌마라고 놀림 받던 중년 여성이 끝까지 따라온 강복자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좋은 패가 들어왔나 봐?”
“누가 내 패 좋아서 덤비나 상대가 개패일 것 같으니까 덤비지?”
“……호호. 이번에 제대로 하나 작업 쳤다며? 얼마 벌었어?”
“아줌마가 몸뚱이 굴려서 버는 것보다 몇 백 배 많이.”
코웃음을 치며 담배를 물었지만, 그녀의 속은 천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씨발. 그 개 같은 년만 아니었어도 더 땡길 수 있었는데!’
그 나이 먹도록 여자 한 번 못 만나 본 호구 중 호구 김수환.
아버지 병원비 때문에, 엄마 병원비 때문에, 프렌차이즈 사업을 하려면 종잣돈이 필요해서 등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돈을 주던 끝내주는 ATM이었다.
사채까지 쓰게 했다면 최소 3억은 더 땡길 수 있었는데, 알바년의 실수로 정체가 들통나 버렸다.
“와아. 몇 천억이나 벌었어? 능력 있다, 우리 복자 씨.”
“어머나. 자기 가치를 너무 높게 잡는다. 밤에 아저씨는 만족시켜 줘? 호빠 애들도 언니는 거절할 것 같은데. 물렁물렁 물풍선이라서.”
“풉!”
“……쌍년. 받고 천!”
“오케이, 콜!”
걸려들었다. 이제 이 돈은 모두 자신의 것이었다.
그때였다.
“우와아아아!”
갑자기 시끄러워지는 입구쪽.
“죽여! 씨발, 죽이라고!”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 도박쟁이들이 입구 쪽을 보는 순간이었다.
꽈앙!
“꺄악!”
“으악!”
문을 부수며 날아와 테이블을 헤집는 삼촌, 아니 이 하우스의 관리자.
질질질!
“아윽! 아아아!”
사람들은 이 하우스를 관리하고 지키는 기도의 머리채를 잡은 채 끌고 들어오는 덩치 큰 종혁을 보곤 마른침을 삼켰다.
얼굴과 슈트가 피범벅인 종혁.
그는 주위를 주욱 둘러보며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눈깔 파 버리기 전에 다들 대가리 박아라.”
스르륵. 드륵!
조폭이다. 항쟁이다.
의자에 앉은 그들은 테이블에 머리를 박으며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제아무리 도박에 미쳐 부모 아내 다 팔아먹는 그들이라도 목숨이 소중한 건 알았다.
그건 강복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하우스가 조용해지자 종혁은 들어오는 순간 눈이 마주쳤던 강복자에게 걸어가다가 테이블에 쌓인 돈을 보곤 헛웃음을 터트렸다.
“씨발. 돈을 아주 물 쓰듯 쓰네.”
이 돈은 김수환 씨의 목숨이자 믿음.
그게 이렇게 허무하게 낭비되는 걸 목격하자 눈앞이 아찔해질 만큼 열이 오른다.
종혁은 그녀가 앉은 의자를 툭툭 쳤다.
“야. 야, 황승연.”
“뭣?!”
왜 여기에 오냐, 얼른 다른 데로 꺼져라 속으로 간절히 빌던 강복자는 들려선 안 될 이름이 들리자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어, 어…… 그, 그…… 누, 누구세요?”
“나?”
종혁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그녀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짭새.”
“……씨발!”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강복자는 다급히 몸을 날렸다.
하지만…….
콱!
머리가 잡혀 붕 떴다가 바닥에 처박히는 그녀.
쿠웅!
“커헉?!”
“어디 가, 이 개 같은 년아.”
종혁은 손바닥을 높이 쳐들었다.
쩌억!
* * *
‘씨발. 씨발!’
특별수사팀 사무실에 앉혀진 강복자.
얼굴 한쪽이 퉁퉁 붓다 못해 시퍼렇게 죽어 가는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잡힌 것도 잡힌 거지만, 애써 작업해 번 돈을 다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떡해야 할까. 어떡하면…….
퍼억! 쿠당탕!
“악!”
바닥을 뒹군 강복자는 반사적으로 종혁을 노려봤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섬뜩!
‘무, 무슨!’
그저 가만히 내려다볼 뿐인 무심한 시선.
하지만 죽는다. 정말 죽는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의자를 일으켰고, 종혁은 덜덜 떨기 시작한 그녀를 보며 혀를 찼다.
“어차피 법정 최고형 받게 만들거니까 잔대가리 굴리지 맙시다.”
“네에?!”
온몸을 잠식하는 공포도 잠시 잊게 만드는 말.
“왜요? 억울해?”
강복자는 태연히 반박하는 종혁의 모습에 말을 잊었다.
억울했다. 물론 범죄를 저질렀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게 형사가, 그것도 무려 본청에서 이렇게 젊은 나이에 팀장까지 달 만큼 능력 있는 형사가 이를 악물고 달려들 만큼 큰 죄는 아니었다.
“아, 아니…… 하, 알았어요. 내가 나쁜 년인 거 맞으니까, 등쳐 먹은 거 맞으니까 수환 씨를 만나게 해 줘요.”
“하!”
고개를 든 종혁은 애써 치솟는 화를 눌렀다.
잔머리 굴리지 말라니까 굴리고 있다.
‘정말 죽일까?’
“후우. 그래, 참자. 참아.”
애써 마음을 다독인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왜요! 나도 합의를 할…….”
“너 때문에 자살했거든. 김수환 씨가.”
“……아?
강복자는 눈을 껌뻑였다.
지금 이 형사가 뭐라고 지껄이는 걸까.
“누, 누가…… 아, 아니, 난…… 그, 그럴 생각이…… 왜?”
“너 같은 년한테는 5억이 그냥 돈처럼 보였겠지만, 그 사람에겐 아니었거든.”
강복자를 잡아 돈을 돌려받고, 노력하고 노력하다 보면 어떻게든 변제했을 금액 5억.
그러나 그 5억은 김수환 씨가 그녀에게 주었던 걱정이고 사랑이며, 함께 꾸려 갈 미래였다.
그렇기에 자살이라는 선택을 한 게 분명했다.
“이제 이해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니다. 이해 못한다.
왜 그깟 5억에 죽어 버린 건지, 여자한테 속은 게 뭐 잘나서 죽어 버린 건지 전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여태껏 여러 남자를 등쳐 왔지만, 그 때문에 누군가 죽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한 그녀로서는 지금 이 모든 상황이 몰래카메라 같았다.
‘그래, 이 형사 새끼가 어떻게든 실적 올리려고 나한테 구라 치는 걸 거야. 그 사람이 죽긴 왜 죽어!’
호구지만 누구보다 성실했던 김수환.
절대 죽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난 구치소에서 기다리다가 그 사람이랑 합의하면 돼. 남은 돈이 아깝지만 그거라도 주고 형량 낮춰야지.’
그녀는 애써 진실을 외면하며 어깨에 힘을 풀었다.
그 순간이었다.
“어? 쟤는?”
옆에 세워진 화이트보드에서, 화이트보드에 붙여진 사진을 보고 고개를 모로 기울이는 그녀.
“아씨. 저건 또 누가 돌려놓은 거야.”
박철 등의 사건을 정리해 놓은 화이트보드. 보면 화만 날 것 같아서 돌려놨는데, 누가 원상복귀를 시킨 것 같았다.
종혁은 그냥 아예 치워 버리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쟤 하우스에 놀러 오는 앤데?”
“뭣?”
순간 강복자에게 몰리는 시선들.
“왜, 왜?”
“야, 다시 말해 봐. 너 저 새끼 알아?”
종혁의 눈이 흉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