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15화>
“오늘부터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여기서 지내시면 됩니다.”
“여, 여기서요?”
조우선은 식겁했다.
집이 나빠서가 아니다. 너무 좋아서다.
2002년 완공되며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타워팰리스.
진짜 부자들만 입주할 수 있다는 부의 상징이었다.
“본청 신변 보호 프로그램이 좀 좋죠?”
아니다. 신변 보호 프로그램도 거짓. 아쉽게도 아직 명백한 살해 위협을 받지 않은 사람을 프로그램에 등록시킬 순 없었다.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삼전그룹 임원들이나 고위 공무원, 정치인, 연예인, 재벌들이 다수 거주하는 곳이라 여기보다 보안이 좋은 곳은 없고, 건물 안에 여러 편의 시설도 있으니 지내시는 데 불편함은 없을 겁니다. 방치된 지 좀 오래돼서 청소를 하셔야 할 테지만요.”
조우선이 구매하는 물건은 모두 영수 처리를 할 거라는 말을 덧붙인 종혁은 최재수를 가리켰다.
“그래도 필요한 게 있으면 여기 최 형사에게 말하시고요.”
“아뇨, 아뇨, 아뇨! 피, 필요한 게 있을 리가요!”
화장실에서 자도 그 옥탑방보단 나을 것 같은 타워팰리스.
“그럼 오늘은 일이 많았으니 푹 쉬시고…… 아차차, 이걸 물어보는 걸 깜빡했네요. 혹시 그 사이비 종교 이름은 아십니까?”
“어…… 아, 맞아! 새진리 아브라함의 지주라고 했어요!”
종혁은 눈을 껌뻑였다.
‘어디야, 거긴?’
“감사합니다. 내일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네, 네!”
고개를 숙인 종혁은 최재수의 옆구리를 치며 현관을 빠져나왔다.
띠리릭!
문이 닫히자 최재수가 굳은 얼굴로 종혁을 본다.
“네, 팀장님.”
“방금 말했듯 보안이 뚫릴 일 없고 조우선 씨도 호되게 당해서 어딜 나가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잘 감시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우리 외에 다른 전화는 받지 말고.”
“예!”
“혹여나 술 처먹고 조우선 씨 놓치면…… 뒤진다, 진짜.”
“예, 옙!”
“들어가 봐. 1시간마다 문자로 보고하고.”
보호와 감시의 목적도 있지만, 심적으로 불안해할 조우선을 케어하기 위해 최재수를 붙인 거다.
거수경례를 한 최재수는 집 안으로 들어갔고, 종혁과 오택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야, 이런 거 얼마나 하냐?”
“글쎄요? 10억? 20억? ……30억이었던가?”
“네가 사 놓고도 몰라?”
“오 경감님은 몇 년 전에 먹은 빵이 얼마짜린지 기억해요?”
“……이걸 죽이고 사표를 써?”
“날 죽일 수나 있고요?”
“아오오! 됐고, 이 작은 외삼촌이란 새끼는 어떻게 조질래?”
당장 걸고넘어질 수 있는 혐의라곤 협박과 갈취 미수 정도에 불과했다.
지금 엮어 봤자 기껏해야 집행 유예로 끝이 날 터.
그건 조우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하, 그 새끼들이 뭔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데…….”
외삼촌 부부가 조우선의 돈을 모두 빼앗을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경찰이 나서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는 없었다. 유산 상속을 두고 가족 간의 다툼에 경찰이 개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결국 피해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 오택수는 답답했다.
“거기다 아마 그 새끼들까지 조우선 씨의 유산에 대해 냄새를 맡았을 거다. 외삼촌 부부를 어찌어찌 쳐낸다고 해도, 그 새끼들은 이미 조우선 씨가 상속받은 유산을 자기들 거라고 여기고 있을걸?”
그 새끼들, 새진리 아브라함의 지주.
문제는 결국 이거였다.
상식을 벗어난 놈들, 신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서슴치 않고 저지르는 사이비 놈들이 엮여 있는 이상 문제가 터진 뒤에는 너무 늦을지도 모르니까.
참 개 같은 말이지만,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종혁은 피식 웃었다.
“그러니 견적을 내 봐야죠.”
오택수의 말처럼 정말 그렇게 여기는지, 여기지 않는지.
새진리 아브라함의 지주는 대체 어떤 성향의 사이비인지.
어차피 싹 다 죽여 버리기로 마음먹은 이번 사건.
어설프게 접근했다간 도리어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에, 종교란 탈을 쓴 독버섯은 확실히 제거하지 않는 이상 다시 자라나기에 견적부터 치밀하게 뽑아야 했다.
‘그래야 어디를 어떻게 찌를지 답이 나오겠지.’
종혁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 * *
-착수비는 돌려주겠습니다. 그럼.
“뭐, 뭐요?! 이보세요! 이봐요!”
출고된 지 족히 10년은 넘었을 법한 낡은 승용차 안,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던 배불뚝이 장년인은 이내 얼굴을 와락 구겼다.
“이 새끼들이!”
“뭐래요? 찾았대요?”
“찾았대?”
“지금 그런 것처럼 보여?!”
보조석에 앉은 파마머리를 한 뚱뚱한 부인과 뒷좌석에 앉은 딸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른 장년인은 생각에 잠겼다.
“대체 왜?”
한 곳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 총 세 곳의 흥신소에 의뢰했는데, 그중 두 곳이 마치 짠 것처럼 동시에 의뢰를 관뒀다.
둘 다 이 이상 인력을 투입하면 손해라는 이유였다.
그에 추가금을 지급한다고 했음에도 한사코 마다하니 장년인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 새끼가 지 엄마 보험금을 쓴 건가? 아니, 그것밖에 없어.”
조우선이 자신들이 제시한 의뢰비보다 몇 배 많은 돈을 준 게 틀림없다.
“이 개새끼가 감히 누구 돈을 함부로 쓰고 지랄이야! 그게 어떤 돈인데!”
“대체 무슨 일인데요! 같이 좀 알자고요!”
“그래, 아빠!”
“닥치고 있어 봐, 쪼옴!”
씩씩거리며 액셀을 밟은 그는 이내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는 한 작은 주택 앞에 멈춰 섰다.
그에 골목과 집을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던 사람들이 눈을 빛내며 몰려들었다.
“정 집사님!”
차에서 내린 조우선의 작은 외삼촌, 정관우를 보며 활짝 웃는 그들.
벌써 며칠째 씻지 못한 건지 꾀죄죄한 모습으로 땀을 뻘뻘 흘리는 그들의 모습에 정관우의 답답해지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 한 놈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고생할 분들이 아닌데…….’
많은 차량이 세워진 좁은 골목, 살랑 불어오는 여름날 무더운 바람에 섞인 퀴퀴한 냄새가 그를 더 마음 아프게 한다.
정관우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다들 힘드신 건 알지만, 이 모두 우리가 훗날 약속의 땅으로 향할 때를 위함이니 조금만 더 참고 견뎌 주십시오. 제가 할 일이 많아 여러분과 함께할 수 없어서 정말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아, 아닙니다! 정 집사님께서 할 일이 얼마나 많으신데요!”
“그럼요! 이런 일은 저희에게 맡겨 주세요!”
오히려 더 시켜 줬으면 싶었다.
오늘의 이 고생이 훗날 약속의 땅,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신 목사님의 대지 아브라함에서 더 큰 집과 더 많은 금화로 돌아올 테니 말이다.
거기다 정관우는 지금도 하는 일이 많지만, 아브라함에 가서도 자신들을 위해 봉사해야지 않던가.
그곳에 가서도 고생할 정관우를 생각하면 이 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정관우에게 마음고생을 시키는 그 조우선이라는 놈이 미울 뿐이었다.
이런 그들의 마음이 전해지자 정관우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할렐루야.”
“아멘.”
그들 사이를 감싼 경건한 분위기.
붉어진 눈시울을 매만진 정관우는 아내에게 눈짓을 줬다. 그러자 그녀가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음료수, 직접 싼 김밥이 든 봉지를 차에서 꺼냈다.
“어이구. 저희가 출출한 건 또 어찌 아시고!”
“와아! 잘 먹겠습니다!”
“역시 정 집사님의 따님답군요. 마음씨가 참 고와요. 요새 선교 활동은 잘 하고 계시나요?”
“호호. 그럼요!”
그렇지 않아도 덥고 배가 고파 힘들었던 그들. 배가 채워지고 입에 시원한 게 물려지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 정관우는 입을 열었다.
“그보다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네.”
조금 더 생각하던 교인들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도 무지몽매한 경찰들이 감히 저희를 해산시키려 한 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조우선의 집에서 쉬고 있던 교인들도 쫓겨나게 됐지만, 어디 인간 세상의 경찰 따위가 아브라함에서 지주가 될 자신들에게 손을 댄단 말인가. 한바탕 혼을 냈더니 부리나케 도망쳤더랬다.
제아무리 영광된 일을 위해서지만, 그래도 마냥 기다리는 게 힘들어 조를 나누어 쉬기로 하며 조우선의 집 담을 넘어 문을 강제로 뜯은 그들.
“한 번만 더 그러면 가택 침입? 하! 뭐 그런 인간 세상의 법으로 처벌할 거라던데 그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그래도 잡혀 들어가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지기에 참는 중이었다.
그제야 대문에 쳐진 폴리스라인과 골목에 주차된 차들 사이에 박스를 편 채 쪽잠을 자는 나머지 교인을 발견한 정관우는 이를 악물었다.
‘정말 넌 못쓰겠구나, 우선아.’
“목사님의 위대한 뜻을 모르는 그 불쌍한 아이도 나타나지 않았고요. 어휴, 그 아이도 얼른 목사님의 품에 안겨 아브라함에 함께 가야 할 텐데.”
움찔!
정관우는 그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 돈은 그렇게 쓰일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 자신들을 사이비라 매도하며 목사님을 욕보였던 불신자 따위를 아브라함으로 인도할까.
정관우는 장례식 때의 그 치욕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조카 조우선은 이미 구제할 수 없는 악마의 주구였다.
그러나 그걸 말할 순 없었다.
이런 죄업은 아브라함에서 봉사자로 일할 자신이 짊어지면 되는 것이기에.
그래야 아브라함에서 큰일을 할 하나님의 아들이신 거룩한 목사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일이기에.
“다들 걱정 마세요. 저도 더 돈을 써서 찾아볼 테니 우리 힘들어도 조금만 더 참고 인내해 봅시다.”
“할렐루야.”
“아멘.”
“그럼 전 바빠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예! 조심히 가십시오!”
고생하는 교인들이 걱정되어 쉬이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애써 돌린 정관우는 다시 차에 올라 골목을 빠져나갔고, 남겨진 이들은 다시 입을 꾹 다문 채 골목과 조우선의 집을 매서운 눈으로 쳐다봤다.
한편 그들 근처에 세워진, 선팅이 짙어 안이 보이지 않는 차 안에 앉은 종혁과 오택수가 혀를 내두른다.
“와아.”
일단 견적을 내려면 이번 사건의 시발점인 정관우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했기에 새벽부터 그의 집 앞에서 대기하다 미행한 그들.
‘그런데 이런 엄청난 말을 들을 줄이야…….’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저런 말을 태연히 할 수 있다는 것에, 그것도 다 들으라는 듯 크게 말한다는 것에 정말 저들과 자신이 같은 사람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최재수가 같이 들었다면 인간 혐오에 걸렸을 수준.
종혁은 출발하는 정관우의 차를 쫓아 차를 출발시켰다.
“조우선 씨 거처를 거기다 마련한 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진짜!”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외진 곳에 안가를 마련했어도 어떻게든 찾아냈을 집착을 보이는 저들. 정관우도 돈을 더 쓰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종혁의 선택은 정말 탁월했다.
박수까지 치며 감탄을 하던 오택수는 돌연 혀를 찼다.
“이건 뭐 봐도 견적도 안 나오고…….”
겨우 반나절 지켜본 것뿐이지만 답이 나온다. 너무 똘똘 뭉쳐 있어서 찌를 만한 빈틈이 없다.
“아직 그쪽에서 보고 안 들어왔지?”
새진리 아브라함의 지주에 대한 조사를 맡긴, 종혁이 자주 이용하는 흥신소에 대한 이야기다.
“오겠습니까?”
“하긴…….”
오택수는 너무 답답해서 성급했다는 걸 인정했다.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구멍은 보이네요.”
“뭐?”
“저렇게 똘똘 뭉쳤잖아요. 그러니 더 똘똘 뭉치게 해야죠.”
그럼 아마 더 빠르고 정확하게 견적을 낼 수 있을 거다.
“뭔 개소리야? 뭉쳐서 골치 아픈 놈들을 더 뭉치게 만든다고? 왜? 아니, 어떻게?”
종혁은 오택수를 보며 눈을 빛냈다.
“오 경감님, 정관우 직업이 뭐였죠?”
“벌써 치매 오냐? 회사원이잖아, 회사원!”
제법 잘나가는 중견 기업의 부장.
오늘 아침 회사에 출근하는 걸 확인했다. 외부 출장이란 명목으로 이렇게 땡땡이를 치는 것까지 모두 말이다.
“역시 기억력 좋으시네.”
“야, 계속 말 빙빙 돌릴…….”
“그럼 여기서 질문. 그렇게 큰 기업은 사원의 사생활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그리고 허용할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일까요?”
“어? 뭐? ……야, 잠깐?”
종혁은 하얗게 질리는 그를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이것부터 알아보자고요.”
그래야 저들을 똘똘 뭉치게 만들 첫 번째 스텝이 완성될 테니 말이다.
물론 이를 위해 없는 사실을 지어내진 않을 거다.
돈을 뿌려 선동과 날조도 하지 않을 거다.
그럴 필요도 없다. 어차피 저절로 그렇게 될 테니 말이다.
그저 종혁 본인은 지극히 형사답게 팩트만 가지고 움직이면 된다. 법에 접촉되거나 형사로서의 선을 넘지 않는 방법.
다만 이 팩트에선 아주 중요한 한 가지가 빠지게 될 거다.
‘조카 눈에서 눈물을 뽑았다면, 피눈물을 흘려야 합당한 이치지.’
종혁은 오랜만에 막 나가는 열혈형사가 되어 정관우에게 악몽을 선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