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14화>
끼이익!
어느 골목길에 자리한 다가구 주택의 옥탑방, 경첩이 녹슨 철문이 슬그머니 열리며 한 이십대 초반의 남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겁을 먹은 토끼처럼 주위를 경계하며 몸을 낮춰 옥상 난간으로 다가간 남성은 고개만 내밀어 골목을 살핀다.
“휴우…….”
다행히 아무도 없는 골목길.
어제와 똑같은 차들만 세워져 있다.
작은 안도가 그의 다리에 일어설 힘을 준다.
하지만 막상 나가려니 덜컥 겁이 나서 발이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울컥 차오르는 짜증과 서러움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된 걸까.
“엄마…….”
엄마. 얼마 전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가 차려 준 밥이 먹고 싶고, 그 품에서 자고 싶다.
이럴 줄 알았다면 엄마가 하지 말라는 짓을 하지 말걸 지독한 후회가 그의 심장을 짓누른다.
“훌쩍!”
결국 흐른 눈물을 닦은 그는 이내 곧 몸을 움직였다.
골목에 아무도 없는 지금이 기회였다.
숨을 고르며 이를 악문 그는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부다당! 빠앙!
뒤에서부터 달려와 앞을 스쳐 지나가는 배달 오토바이에 화들짝 놀라 몸을 돌린 남성은 멀어지는 오토바이를 계속 응시하다가 이내 걸음을 재촉했다.
“태, 택시!”
끼익!
어느 은행 앞에 멈춰 선 택시에서 내린 남성은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곤 재빨리 은행 안으로 들어가 ATM에서 돈을 찾았다.
하지만…….
“아.”
도로에 대기하고 있어야 할 택시가 없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하얗게 질리는 순간이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기운이 좋아 보이셔서…….”
‘흡?!’
다급히 고개를 돌렸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붙든 또래의 두 남녀.
‘개새끼들.’
증오 어린 눈으로 거리 전도를 하는 이들을 노려본 그는 마침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빈 택시를 향해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
“택시-!”
끼이익! 탁!
“후우.”
택시에 올라타고 목적지를 말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남성은 그런 자신의 모습에 다시 울적해졌다.
추적을 당할까 무서워 카드조차 쓰지 못하는, 이렇게 은신처에서 먼 곳까지 와서 돈을 찾아야 하는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엄마…….’
남성은 다시금 떠오르는 어머니의 얼굴에 고개를 저었다.
생각만 해 봐야 울적해지고 답답해지는 마음.
그는 애써 밝은 생각을 하기로 하며 돈 봉투가 든 가슴을 더듬거렸다.
‘그래도 돈을 무사히 찾았으니 다행이야.’
이 돈이면 앞으로 한 달은 무사히 버틸 수 있을 터.
사내는 작은 위안을 얻으며 은신처로 향했다.
누군가 뒤를 따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 * *
부우웅!
어딘가로 달리는 차 안. 운전대를 잡은 최재수가 입을 연다.
“그런데 사이비가 24살의 대학생을 왜 찾을까요?”
24살. 이제야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젊다 못해 어린 나이.
“이유야 많지.”
경찰 일을 하면서 사이비에 빠진 인간들을 제법 보아 온 오택수가 냉소를 짓는다.
“그런데 결론만 보면 하나야.”
“뭔데요?”
“그건…… 이따가 보면 알거다.”
“아, 뭔데요!”
키득키득 웃은 오택수는 뒷좌석에 뻗어 있는 종혁을 봤다.
“야, 최 팀장. 살아 있냐?”
“몰라요. 죽을 것 같아요.”
어젯밤 퇴근할 때 슬그머니 찾아온 서울경찰청의 수사계장이 술을 샀다. 이유는 당연히 윤경진을 넘겨 달라는 것.
경찰대 선배에다가 여차하면 상사로도 만날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어울려야 했는데…….
“치사한 양반. 그런 자리에 팀원들을 데려와?”
술로 죽여서 기어코 윤경진을 넘기겠다는 말을 들으려던 비열한 수작. 결국 그들 8명을 모두 술로 죽여 버리긴 했지만 종혁도 그 여파가 상당했다.
“휘하 형사들을 죄다 술고래로만 뽑았나……. 아니, 이건 서울청의 내로라하는 술고래들만 모아서 데려온 거야. 확실해.”
“큭큭. 욕봤다. 그래도 어쩌겠냐. 네가 팀장인데.”
“……그렇죠. 내가 팀장이죠.”
팀을 위해 방패가 되어 주고, 여차할 땐 몸을 불살라야 하는 팀장.
“힘들면 그냥 넘겨 버리지그래?”
오늘까지야 애원과 읍소에 가깝지만, 내일부터는 협박에 가까운 압박이 들어올 거다. 오택수에게는 실적보다 종혁이 다치지 않는 게 우선이었다.
“미쳤어요?”
다 합해 거의 2년 치 실적.
종혁은 코웃음을 쳤다.
“어디 데려갈 수 있으면 데려가 보라고 해요.”
여차하면 많은 피를 흘릴 뻔했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데려온 놈들이다. 그동안은 좋게 좋게 나눌 건 다 나눴지만 이번엔 어림도 없다. 이택문 경찰청장이라고 해도 상응하는 대가를 내놓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케이. 그럼 집에다 상여금 나올 거라고 말한다.”
“언제는 안 그랬나. 그리고 상여금 나오면 한턱이나 쏴요. 이런 걸로 퉁치려고 하지 말고.”
부스럭.
발치에 놓인 봉지에서 숙취해소제를 꺼낸 종혁이 투덜거린다.
“장미 핑계도 하루 이틀 아닙니까?”
“인마, 너도 애 아빠가 되어 봐라.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보다 자식이 우선이 된다니까? 거기다 뭐 이번엔 아, 아베 뭐? 엉덩이에 러브라 적힌 핑크색 추리닝 바지를 사 달라는데…….”
엉덩이 라인이 도드라지는 그 망측한 걸 정말 사 줘야 하는지 아버지로서, 형사로서 깊은 고민이 든다.
“응? 이건 또 왜 이래?”
“흐흐. 네?”
종혁도 평소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이는 최재수에 의아해한다.
“아, 아뇨. 이번에 받을 상여금과 그동안 저축한 것에 대출을 끼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인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할머님이랑 사는 집? 전세라고 하지 않았어?”
“제가 2층에서 살잖아요.”
종혁은 최재수가 하려는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연세에 2층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못할 일이었다.
“잘 생각했네. 돈 필요하면 말해. 무이자로 빌려줄 테니까. 괜히 피 같은 이자 내지 말고.”
“가, 감사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다시 뒷좌석에 드러누웠다.
‘사이비라…….’
종혁은 방금 전 오택수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사이비가 노리는 건 오직 하나뿐이니까.
“도착하면 깨워요. 전 좀 더 자야…….”
지이잉! 지이잉!
갑자기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을 본 종혁은 순간 고민에 빠졌다.
전화번호부에 등록되지 않은 번호.
받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깊이 고민하던 종혁은 이내 받기로 했다. 어쩌면 신고 전화일지 모르니 말이다.
-최종혁 팀장? 나 광주청 박동현 계장이여. 어제 우리 새끼들이 실례를 좀 했제? 어디당가? 마침 일이 있어서 서울에 왔는디 별일 없으믄 저녁에 만나서 이야그 좀 하자고.
‘에라이.’
종혁은 얼굴을 구겼다.
아무래도 오늘도 술을 마셔야 할 듯싶었다.
* * *
해가 어스름이 저물어 가는 오후.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옥탑방에서 보글보글 라면이 끓는다.
며칠 만에 먹는 따뜻한 음식.
시작 된 여름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지만, 지난 며칠 동안 부탄가스조차 사러 가기 무서워 라면을 부숴 먹어야 했던 남성의 얼굴엔 행복 가득한 미소가 맴돈다.
도시가스는커녕 난방조차 기름으로 떼야 하는 옥탑방.
“계란도 넣고, 참치도 넣고, 대파도 넣고!”
마트에서 장을 봐 온 오늘 같은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진수성찬에 군침이 꼴깍하고 목구멍을 넘어간다.
“아!”
아차 한 그는 입고 있던 팬티를 벗어 던지며 화장실로 달려가 재빨리 찬물을 끼얹었다.
쏴아아아!
“어흐으!”
마치 감기에 걸릴 듯 차가워진 몸.
그에 맞춰 다 끓은 퍼진 라면.
꼬들꼬들한 면보다 푹 퍼진 걸 좋아하는 남성이 불을 끄고 냄비를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쿵쿵쿵!
현관의 불투명한 유리를 깨 버릴 듯 거친 두드림.
그대로 얼어 버린 남성은 철렁 내려앉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귀를 세웠다.
“뭐야, 없나?”
“없긴 왜 없어. 아까 들어가는 거 봤잖아.”
쿵쿵쿵!
“조우선 씨, 안에 있는 거 알거든? 잠깐만 나와 보쇼.”
‘미친! 어, 어떻게?!’
“라면 냄새 죽이네! 나와 보라니까?”
쿵쿵쿵! 쿵쿵쿵!
“자꾸 이러면 문 깨고 들어갑니다. 셋 셉니다. 하나, 둘…….”
‘미친! 미친!’
어디로 도망쳐야 할까. 변변한 창문도 없이 현관문에 달린 불투명한 유리가 전부인 옥탑방.
‘시발!’
궁지에 몰린 남성은 자신도 모르게 식칼을 쥐며 현관을 향해 겨눴다.
“세엣……!”
그때였다.
“동작 그만!”
“뭐야, 니들…… 헉?!”
“저기서 대가리 박고 있어.”
“옙!”
‘뭐, 뭐야! 또 뭔데-!’
뭔지 모를 이상한 상황에 내려앉은 심장이 터져 버릴 듯 부푼다.
쿵쿵쿵!
“조우선 씨? 경찰입니다.”
“겨, 경찰?”
눈이 크게 떠졌던 조우선은 이내 이를 악물며 칼을 꽉 쥐었다.
“겨, 경찰이고 뭐고 꺼져! 내가 너희를 믿을 것 같아?! 드, 들어오기만 해! 다 죽여 버릴 테니까-!”
“……비켜요.”
“야, 잠깐…… 이런 씨!”
꽈아앙!
굉음과 함께 유리를 폭발시키며 쓰러지는 문.
경악에 굳어 버렸던 조우선은 눈을 질끈 감으며 안으로 들어오는 종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이야아아압!”
덥썩!
“주, 죽어! 죽어!”
양 손목이 모두 잡혔음에도 계속 팔을 흔들며 반항하는 조우선.
종혁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윽?! 놔……! 제발 날 좀…….”
“괜찮습니다. 이제부터 저희 경찰이 지켜 드리겠습니다.”
움찔!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탱그랑.
“끄흑! 흐어어어어엉!”
“꺼흑! 어우,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아침 북엇국을 냄비째로 들이켰는데도 풀리지 않았던 속이 이제야 풀리는 것 같다.
“역시 해장엔 라면이 최고라니까. 아, 라면 잘 끓이시네요.”
“쿨쩍!”
애써 끓인 진수성찬이 찰나에 사라진 걸 망연히 바라보던 조우선은 어색하게 웃었다.
“더 끓여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다른 음식들도 있는데요, 뭘.”
종혁은 옥탑방 평상에 차려진 중국 음식을 가리켰다.
중국 요리라고 해 봐야 탕수육, 짜장 짬뽕이 전부인 조우선으로선 난생처음 보는 요리들이 술과 함께 평상을 뒤덮고 있다. 이래서 애써 끓인 라면을 빼앗겼어도 아깝지가 않았다.
“일단 먹고 이야기하시죠.”
“가, 감사합니다.”
후루룩!
짬뽕의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에 조우선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얼마 만에 먹어 보는지 모르는 중국 요리.
그는 눈물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흡입을 하기 시작했고,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청년이 그 조우선이었다니…….’
얼굴이 직접 보니 이제야 떠오른다. 얼마 후 경기도 지방의 경찰서를 발칵 뒤집는 사건이.
일명 대학생 살인 사건.
경기도의 어느 작은 마을 입구에 알몸으로 버려진 시신 한 구.
어머니의 사망 보험금을 찾은 직후 시체로 발견된 조우선. 사망 보험금이 든 가방이 사라져 강도 살인으로 추정은 되나, 범인의 DNA나 지문이 발견되지 않아 미제로 남은 사건이다.
종혁은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낑낑거리고 있는 흥신소 놈들에게로 향했다.
‘이놈들이겠지.’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아마 조우선은 오늘 이들에 의해 끌려갔을 거다.
“기상.”
“기, 기상!”
“사장, 전화.”
“옙!”
얼른 사장에게 전화를 건 한 놈은 핸드폰을 종혁에게 내밀었다.
-어. 확보했냐?
“확보는 내가 했고.”
-……누구?
“본청 수사팀 팀장.”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내가 너 따위한테 안부 인사를 받을 레벨은 아니고. 선택권을 준다. 이대로 의뢰 포기하고 자수할래, 아니면 내가 너 뒤를 파 보게 해서 없는 죄까지 뒤집어쓸래? 살인, 장기 매매 말만 해.”
-포, 포기하고 자수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알고 끊는다. 아, 정말 혹시나 해서 하는 이야긴데 고작 돈 몇 푼 따위에 본청 형사가 데려갔다느니 뭐니 그런 인생 고달파지는 말 따윈 하지 마라.”
-옙! 걱정 마십쇼!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핸드폰을 던지곤 손을 저었고, 흥신소 직원들은 고개를 꾸벅 숙이곤 도망을 치듯 사라졌다.
“괜찮을까요, 팀장님?”
“어, 괜찮을 거야.”
사람을 찾아봐야 백만 원, 이백만 원 받는 게 흥신소다.
고작 그 푼돈 따위에 본청 형사를 적으로 돌린다? 그 바닥 생활을 접겠다는 소리밖에 안 됐다.
종혁은 요리를 입 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 조우선에게 술병을 기울였다.
“술도 마시면서 드세요.”
“으우어이어!”
꿀꺽!
“흐으. 흐으응…….”
다시 눈물을 흘리는 조우선의 모습에 종혁은 한숨을 내뱉으며 담배를 물었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가슴이 답답해지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한 병, 두 병.
그동안 고생했던 걸 보상받기라도 하듯 음식과 술을 입으로 밀어 넣던 조우선도 배가 터질 듯하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일단 한숨 주무실래요?”
“……아니요.”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누우면 바로 잠들 정도로 잠이 쏟아지지만 자신을 보호해 주러 온 형사들 앞에서 그럴 순 없었다.
종혁은 애써 버티는 그를 향해 담배를 내밀었다.
“가, 감사합니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먹는 돈도 아껴야 했기에 몇 달 만에 피우는 담배.
눈앞이 핑 돌았다.
“그, 그런데 절 어떻게 찾으신 거예요?”
배가 부르고 안심이 되니 이제야 찾아드는 의문에 조우선은 눈을 껌뻑였다.
이렇게 쫓기게 됐을 때 가장 먼저 찾아갔던 곳이 경찰서다. 그런데 보호자라며 경찰이 부른 그 끔찍한 인간들이 찾아온 이후 더 이상 경찰을 믿을 수 없게 됐다.
“아까 그놈들 말고도 다른 흥신소들이 조우선 씨를 찾고 있어서 조우선 씨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윤경진의 흥신소에 조우선을 찾아 달라고 의뢰한 의뢰인들이 다른 흥신소에도 의뢰를 한 거다.
“아…….”
“그러니 대체 그동안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왜 이렇게 쫓기게 됐는지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움찔!
몸을 굳힌 조우선은 걱정만이 가득한 종혁의 눈동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작은 외삼촌 때문이에요. 이렇게 숨어 살게 된 게.”
어릴 적 말없이 집을 나가 버린 아버지 때문에 식당일을 하며 힘들게 자신을 키워 온 어머니.
“그렇지 않아도 허약하신 분이라 잔병을 달고 사셨는데…….”
난데없이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말았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도 서로만 의지하며 살았던 그들 모자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안 건지 작은 외삼촌이 찾아왔더라고요. 아버지가 집을 나간 이후 연락을 끊고 살았는데도요. 그때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모르지만, 아니 이젠 알 것 같지만 엄마가 엄청 화를 내며 작은 외삼촌을 내 쫓아 버리더라고요.”
그렇게 다시 연이 끊긴 거라 생각하고 조우선도 신경을 껐다. 아니, 작은 외삼촌에게까지 신경을 쓰기엔 어머니의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었다.
“결국 엄마는…… 엄마는…….”
“그 부분은 넘어가셔도 됩니다.”
“쿨쩍. 감사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엄마 장례식을 치를 때 다시 그 인간이 찾아왔어요. 이번엔 숙모랑 사촌 누나도 같이.”
종혁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들이 할 말이 예상이 가서 그랬다.
“앞으로 자신들이 나를 돌봐 주겠다 막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더라고요. 난 성인인데. 그러면서 슬그머니 엄마 보험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때 눈치를 챘다.
아, 이 인간들의 속셈이 돈이었구나.
당연히 화를 내며 쫓아냈다. 당시엔 조문을 온 친구들이 있어서 쉽게 쫓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날부터였다.
“장례식장에 웬 교인이라고 이상한 사람들을 데려와선 찬송가 따위를 부르길래 우리 집은 불교라고 그만두라고 막았더니 막 악을 쓰고, 염을 하러 오신 스님에게는 술을 뿌리고…….”
장례식장이 난장판이 됐다. 발인은 어떻게 했는지, 화장을 어떻게 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만큼 난리였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어머니를 납골당에 모시고 난 후 집에 돌아온 뒤에 벌어졌다.
장례식에 찾아온 친구들을 만나 감사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강도가 든 듯 집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돈이 될 만한 건 싹 다 사라져 있었다. 후에 며느리 생기면 줄 거라면서 엄마가 소중히 간직했던 당신의 결혼 예물까지 모두.
만약 어머니의 사망 보험금이 든 통장과 인감 도장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다.
심지어 그날 저녁부턴 모르는 사람들이 집 주변을 얼씬거렸다.
그때 딱 느꼈다.
“아, 이거 잘못하면 죽겠구나.”
빠드드드드득!
“어, 어떻게…… 어떻게 사람이…….”
살벌하게 이를 가는 최재수를 고맙다는 듯 본 조우선은 주먹을 부르르 떨고 있는 종혁을 봤다.
“그래서 이렇게 도망 다닌 거예요. 누구도 찾지 못하도록.”
그런데 찾았다. 이렇게 쉽게 말이다.
종혁은 후련해하면서도 씁쓸해하는 조우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고, 앞으론 저희 경찰이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어, 어떻게요? 이런 일로는 무슨 보호 프로그램이 안 된다고 하던데…….”
“그건 지방서 같은 작은 경찰서 이야기죠. 저희 본청은 다릅니다. 책임지고 보호해 드릴 테니 꼭 필요한 것만 챙겨서 나오세요.”
“넵!”
조우선은 혹여 종혁의 마음이 바뀔까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갔고, 종혁은 그 모습을 보며 담배를 물었다.
그런 그에게 낯빛이 차갑게 굳어 있던 오택수가 입을 열었다.
“최 팀장, 어떻게 할래?”
“푸후우…….”
허공으로 흩어지는 뿌연 담배 연기.
그 사이로 살의로 가득찬 눈이 번뜩인다.
“어떻게 하긴요. 싹 다 죽여 버려야지.”
일단은 그 작은 외삼촌 부부부터.
“다, 다 챙겼어요!”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조우선의 어깨를 감싸며 옥탑방을 내려갔다.
지금부터 그 누구라도 조우선을 데려갈 수 없다는 의지가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