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12화 (312/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12화>

터벅터벅.

‘그 남조선 보안원…… 날 의심하고 있었디.’

그 어두운 저녁에 강경도를 봤다면, 류명진도 봤을 거라던 말을 하며 빤히 살피던 눈에 미약한 의혹이 서려 있었다.

그 순간 철렁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멍청하고 안일한 보안원들과는 다른 종자.’

쓸데없이 예리하고 경계심이 많았다. 툭툭 던지는 자신의 질문에 별거 아니라며 손을 젓던 모습이 그 증거다.

그랬기에 당황하면서도 첫 목격 진술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강경도를 유력한 용의자로 밀어붙이는 그 진술을.

“이런 일은 범인을 정해 줘 버리는 게 최고디.”

멍청하고 안일한 보안원이라면 강경도가 뭐라고 항변을 해도 언제나처럼 고문을 하고 범인으로 만들 테니 말이다.

목격 진술이 곧 증거인 북한.

그래서 강경도만 봤다고 증언했다. 류명진도 함께 봤다고 증언하면 멍청한 보안원들이라고 해도 의심을 할 테니까.

이러니 말을 바꿨다면 종혁은 분명 의심을 하게 됐을 것이다.

“이게 최선이었어. 그러니 멀리멀리 도망치라, 강경도.”

감히 자신이 노리던 꽃을 꺾으려 했던 악적.

조남명은 입술을 비틀며 강의실의 문을 열었다.

웅성웅성.

“오, 남명이 왔네?”

조남명은 머리를 밝은 갈색으로 염색하고, 귀에 귀걸이를 한 동무들을 보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초급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7년여 동안 꽃을 선별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동무들.

숙제나 과외만 좀 해 줬을 뿐인데 이렇게 대학에 진학시켜 준것도 모자라 기숙사가 아닌 집에서 통학을 할 수 있게 해 준 바보 같은, 부모 잘 만난 개새끼들.

‘너희들 덕분이디.’

이들이 꽃을 선별하면 조남명 자신은 그 꽃이 더 강인하게 클 수 있도록 옆에서 작은 호의를 베풀었다.

그래야 빨리 시들지 않기에, 더 강인하게 크기에.

진짜는 자신이 취했다는 것을 지금까지도 모르는 멍청이들을 보니 웃음만 나왔다.

“남명아, 좀 이따가 학교 끝나고 화면반주음악실 어떠네?”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실 수 있는 화면반주음악실이란 말에 군대를 다녀온 주위 늙은 대학생들의 귀가 쫑긋 솟는다.

“일없다.”

며칠 전 꽃을 꺾은 만족감 때문인지 당분간은 누굴 만나거나 뭔가를 할 생각이 없는 것도 있지만, 오늘 보안원이 찾아온 이상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거리를 둬야 했다.

그런 그의 매정한 말에 동무들이 미간을 좁힌다.

자신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배경도 나름 괜찮고 평양 전체에서 1등을 할 정도로 머리가 좋아 부모들이 친하게 지내라 옆구리를 찔렀던 조남명.

그러나 언제나 거리를 두며 숙제나 과외만 해 준 그.

하지만 그래도 초급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7년 동안 함께한 정이 있기에 그들은 참아 주기로 했다. 한 번만 더 이러면 박살을 내 버리겠다고 다짐하며 말이다.

“……뭐 그래라. 우리 남명이 련애하는데 방해할 순 없디.”

“뭐? 련애? 언제?”

“몰랐네? 남명이 련애할 때마다 우리랑 더 거리를 뒀잖네.”

그렇지 않아도 자신들과 거리를 두던 조남명은 연애를 할 때마다 더 거리를 뒀다.

연애에 대한 증거는 조남명이 학교에서 몰래 쓰던 편지였다. 그 내용은 혹여 조남명이 화낼까 알아보지 않았지만, 남자가 학교에서 편지를 쓸 일이 뭐 있겠는가.

흠칫!

몸을 굳히는 조남명의 모습에 친구들의 표정이 음흉해졌다.

“이 아새끼래. 그런 거 하면 이 형님한테 말해야디 않갔어? 와 한 번도 안 보여 주네?”

“너 같으면 보여 주갔어? 초급중학교부터 죄 죽어…… 음.”

움찔!

친구들이 말을 꺼낸 친구를 노려보며 혀를 찬다.

자신들이 장난감으로 삼았다 하면 죽어 버리는 여자들. 자살을 했다 한들 뭐 문제겠냐마는 그때마다 새로 구하느라 귀찮을 뿐이다.

인간성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건 재밌지만 말이다.

“흠. 그러고 보니 이제 똥개는 이만 풀어 주는 게 어떻갔…… 네? 응? 와 그라네?”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다시 몸을 굳히는 조남명을 의아하게 쳐다봤다가 이내 신경을 끄며 대화를 이어 갔다.

“류명옥 그 에미나이를 말하는 거이네?”

“길티. 이제 슬슬 질리는 것도 있디만, 우리도 대학생인데 고급중학생을 데리고 놀아야 되갔어?”

대학생. 새삼 깨닫게 된 자신들의 나이에 친구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옳은 말이구나야. 그래, 우리도 대학생이디.”

대학생이 됐다고 다 잘살까?

아니다. 대학생 중에도 가난한 이들은 많다.

가령 류명옥처럼 몸을 팔면서까지 대학에 다니려 애쓰는 여자들이 말이다.

순간 그들의 눈에 붉은 기운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아, 그러면 우리 남명이가 좀 서운할 수 있갔디.”

은근히 쳐다보는 시선에 조남명의 미간이 좁혀진다.

“남명이가 와? 무슨 일 있네?”

“몰랐네? 남명이가 그 똥개들 이리저리 챙겨…….”

드르륵! 쾅!

문을 거칠게 열며 안으로 난입하는 보안원들의 모습에 강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란다.

“여기 서구연이란 아새끼 어디 있네.”

휙!

모든 학생들의 눈이 조남명의 친구들에게로 향하고, 그들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뚜벅뚜벅!

“서구연?”

“뭡네까?”

“내 말에 답하라. 네가 서구연이야? 너이 류명옥에 대해 알디?”

“……류명옥?”

“그 에미나이가 며칠 전에 죽었어. 기런디 그 에미나이가 쓴 일기장에 너희들이 나와 있었단 말이디?”

‘일기장?!’

경악한 그들은 서로를 바라봤다가 낯빛을 굳혔다.

“하아. 그게 누군디 모르겠디만…… 어이, 보안원 동지. 너 내 아바디가 누군디 알고 이러는…….”

콱!

순간 놈의 머리를 붙잡은 보안원이 그대로 책상에 찍어 버린다.

콰앙!

“컥!”

“이 공화국을 좀먹는 벌레 같은 아새끼래…….”

잘근잘근 씹어 버릴 듯 살의가 가득한 말에 다른 친구들이 벌떡 일어선다.

“다, 당신들 뭐이야! 이, 이래도…….”

퍼어억!

“컥?!”

구둣발로 배를 얻어맞고 쓰러진 다른 놈.

몽둥이를 꺼내 든 보안원들의 눈빛이 살의를 머금는다.

“이 반동분자들을 모두 연행하라! 그리고 학교를 샅샅이 뒤져 일기장에 나온 다른 놈들도 연행하라-!”

“예!”

빠아악!

“아악! 와 와이럽네까!”

“닥치라!”

퍼억! 퍽퍽!

“아아악!”

그렇게 인간이 아닌 쓰레기들의 비명 소리가 강의실에 울려 퍼졌고, 조남명은 그런 그 모습을 떨리는 눈으로 지켜봤다.

그리고 꽤 시간이 흐른 후.

‘빌어먹을!’

대학교를 나서는 조남명의 걸음이 급하다.

“일기장이라니!”

그들과 류명옥의 관계를 들켰다.

그건 곧…….

이를 악문 그는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집에 거의 도착한 그는 아무도 없는 집,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사전을 펼쳤다.

“후우.”

다행히 아직 보안원이 쳐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혹시 모르기에 가방에 사전을 챙기고 집을 나선 그는 평양 외곽의 어느 허름한 민가로 향했다.

멍청한 악마들이 초급중학교 시절 아지트로 삼았던, 덩치가 커지며 지금은 더 이상 찾지 않게 된 빈집이었다.

어느새 어두워진 밤, 주위를 살핀 조남명은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가 안방의 두꺼운 커튼을 걷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기이한 공간.

흐릿한 불빛 아래 시큼한 냄새가 그의 코를 찌른다.

쓰레기통에 카메라 필름통 구겨진 편지지를 일견한 조남명은 안타까운 얼굴로 사전을 꺼냈다.

“……잠잠해지면 다시 찾으러 오갔어.”

애정 어린 손길로 사전을 쓰다듬다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조남명은 입술을 깨물며 집을 나섰다.

그 순간이었다.

콱!

“켁?!”

갑자기 튀어나와 목을 옥죄는 거대한 손.

“여기냐? 네 트로피를 보관하는 곳이?”

“케에?!”

‘어, 어떻게?’

종혁은 떨리는 그의 눈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살해당한 후 옷이 갈아입혀져 있던 류명옥.

과연 초범이 이토록 치밀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이 점을 염두에 두었기에 순순히 조남명을 보내 준 후 그 뒤를 밟은 종혁.

역시나 조남명은 의도대로 움직여 줬다.

그러니 이제 확인해야 했다.

놈이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그래. 들어가자.”

딱 봐도 의심스러운 암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간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시큼한 냄새에 이어 눈에 들어오는 휴지통 속 구겨진 편지지를 꺼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킥.”

순간 초점이 흐릿해진 종혁의 눈이 목이 잡혀 발버둥 치는 조남명에게로 향한다.

“널 어떡해야 할까…….”

죽일까, 살릴까.

이런 놈이 살 가치라도 있을까.

“케엑! 케에엑!”

그런 종혁의 마음이 전해진 건지 조남명은 더욱 발버둥을 쳤다.

그러다…….

터억!

손과 발을 이리저리 흔들다 쳐 버린 사전이 공중을 돌며 펼쳐진다. 시간이 느릿해진다.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진들에 종혁은 말을 멈췄다.

말뿐만 아니라 몸이, 심장이 멈췄다.

“어…….”

연쇄일 거라 예상은 했다.

예상은 했지만…….

바닥에 널브러진 백여 장의 사진.

그리고 다섯 명의 피해자.

‘다섯 명?’

꽃을 채 피우지 못한 나이의 소녀가 다섯 명.

뚝!

종혁의 머리에서 무언가 끊겼다.

“……넌 안 되겠다.”

눈이 뒤집힌 종혁은 하얗게 질린 조남명을 향해 주먹을 잡아당겼다.

“죽어.”

부웅! 콰드득!

주먹을 통해 여실히 느껴지는 뭉개지는 살과 뼈의 감촉.

표정이 사라진 종혁은 다시 주먹을 잡아당겼다.

그는 이 순간 짐승이 되었다.

“자, 잡아!”

“놔! 놔아-!”

*   *   *

출렁!

의자에 앉은 노인의 몸이 크게 흔들린다.

“지금 뭐라고 했네? 강간? 내가 아는 그 강간?”

“저, 정확히는 연쇄강간살인입네다. 거기다 마치 진열대에 상장을 장식하듯…… 사진을 찍었다고 합네다.”

림학철의 아버지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남조선 최종혁 동지가 말하길 사이코패스라고…….”

“닥치라! 지금 생각 중이지 않네!”

일반 연쇄살인조차도 눈앞이 먹먹한데 연쇄강간살인이다.

그런 반동분자가 더 설치기 전에 잡아 줘서 고맙기도 한 한편, 모든 게 어그러졌다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공화국의 체면이 더 상하기 전에 사건을 해결한 종혁이 아니었다면 크게 다쳤을 수도 있는 아들 림학철.

혹여 이번 일이 림학철의 소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적들은 이 사건으로 림학철을 물고 뜯었을 거다.

노인 자신과 경쟁 중인 정적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먹잇감이었기에, 그를 실각시키기 위해서라도 이 이야기를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엮어 위에 고해 바쳤을 거다.

그렇게 됐다면?

거기에 러시아가 말을 보탰다면?

섬뜩!

“……최종혁 동지 보내라우.”

“예? 하, 하디만…….”

“보내라디 않네! 날 은혜도 모르는 개새끼로 만들 셈이네?!”

“죄, 죄송합네다!”

부하가 후다닥 달려 나가자 림학철의 아버지는 몇 년 만에 식은땀이 맺힌 이마를 문질렀다.

“그래, 이게 낫디.”

한국군 포로까지 무리하여 송환시켰음에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종혁을 그냥 돌려보낸다?

그의 정적들은 이를 문제시하며 물어 뜯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공화국을 망신시킬 뻔한 반동분자를 검거했다는 실적을 올렸기에 작금의 상황을 무마시킬 수는 있을 터였다.

“이게 나아.”

그는 떨리는 손으로 시거를 물었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   *   *

‘패 죽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종혁에게 흠씬 두들겨 맞으며 경추가 어긋나 평생 병상에서 못 일어나게 된 조남영.

혹여 법의 심판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면 어느 정도 만족이다. 절대 죽지 못하도록 생명 유지를 시켜 달라고 돈도 한 아름 안겨 주고 왔으니 말이다.

지옥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후회하고 회개할 때가 올 거다. 교화소에 보내진 그 패거리들도.

“저 때문에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느덧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

이별은 짧은 게 좋았다.

“수고는 우리 최 동무가 해 줬디요. 만약 그 아새끼가 계속 범죄를 저질렀다면…….”

아마 자신은 더 강등을 당하거나 어쩌면 교화소에 갔을 거다.

부르르 떤 림학철은 마주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다음에 올 때엔 더 좋은 공화국을 보여 주갔습네다. 그때 기대 단단히 하고 오시라요.”

“하하.”

‘미쳤냐? 다시 여길 오면 어떻게 될지 뻔히 아는데?’

분명 코가 꿰게 될 거다.

종혁은 슬그머니 무시하며 순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수고하셨어요.”

“……종혁 동무가 공화국 경찰들에 많이 실망한 것을 압네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 공화국도 많이 달라질 테니 너무 걱정 마시라요.”

“그럼 다행이죠.”

비록 적국인 나라지만, 선량한 시민들이 억울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데 경찰로서 어찌 기쁘지 않을까.

그런데 보급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북한에서 그게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그런 기색을 눈치챈 순영은 싱긋 웃었다.

“공화국은 인민이 전부이니 인민을 갈아 넣어야겠디요. 이번에 참 많은 걸 배웠습네다.”

첨단 과학수사가 아님에도 척척 범인을 유추하고 검거한 종혁. 그 수사 기법을 제대로 익힐 수만 있다면 아마 공화국의 치안은 보다 나아지게 될 거다.

‘그리고 그 선두엔 여기 림 소좌와…….’

순영은 저 멀리에 세워진 차량을 응시했다.

이제 몇 년 후면 북한 정치계에 등장할 백두혈통.

정점을 차지하기까지 경쟁할 사람이 수두룩한 그녀에게 종혁은 무조건 쥐어야 하는 끈이었다.

“……이별을 짧을수록 좋다고 하디요. 전 이쯤에서 물러나갔습네다. 철이와 희야에게 안부 전해 주시라요.”

순영은 눈이 떨리는 혼혈 소년 안드리와 류명호, 류명진에게 바톤을 넘기며 물러섰다.

“이,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디 모르갔습네다…….”

누이 명옥을 처참하게 죽인 범인을 잡아 준 것도 모자라, 장례까지 대신 치러 주었다. 정말 평생 갚아도 못 갚을 은혜를 입었다.

그건 안드리도 마찬가지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을 자신을 위해 마치 자기 일처럼 나서 준 종혁.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렇기에 종혁이 한 말이 더 크게 다가온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

‘네. 앞으로 많은 게 변할 거예요.’

아주 많은 게 변하고 바뀌게 될 거다.

그러나 그게 꼭 북한에 도움이 되진 않을 거다.

안드리는 류명호 류명진 형제와 함께 종혁에게 신문지로 싼 무언가를 내밀었다.

“드릴 건 없고, 이거라도 받아 주시라요! 술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저희 셋이 준비한 겁네다!”

“꼭 받아 주시라요!”

“어이쿠! 뭘 이런 걸 다!”

황급히 받아 든 종혁은 환하게 웃다가 이내 눈물을 터트릴 듯한 울상을 짓는 그들을 보며 따뜻하게 웃었다.

“그래. 잘 마실게. 혹여 분단선에 배치돼도 총구는 겨누지 마라.”

“도, 동지!”

“큭큭.”

류명호, 류명진 형제와 안드리의 머리를 헤집은 종혁은 마중 나온 이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그럼 잘 놀다 갑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혹여 통일되면 봅시다-!”

“잘 가시라요!”

“다음에 또 봅시다!”

부르릉!

종혁을 태운 버스는 다시 금강산으로 향했고, 배웅을 나온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서로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류명호, 류명진 형제와 안드리 역시도 말이다.

그리고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던 김단은 멀어지는 버스를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리순영 소좌에게 오늘 내가 보자고 전하라.”

“예!”

한편 금강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

“야, 최 팀장. 걔들이 무슨 술을 준 거야? 한번 보자.”

“에헤이. 어딜.”

“와, 씨. 쪼잔하게 이럴래?”

“예. 이럴래요.”

‘절대 못 주지.’

마치 뭔가가 있다는 듯 안드리가 톡톡 두드리며 준 술병. 만약 종혁 본인의 짐작이 맞다면 그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물건이다.

종혁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거 한국에 가면 할 일이 많겠네…….’

굉장히 많을 듯싶었다.

‘안녕이다, 북한!’

다신 오고 싶지 않았다.

“아, 그런데 그 새끼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요?”

“그 새끼?”

피식 웃은 오택수는 낄낄 웃었다.

“뒤질 맛이겠지.”

*   *   *

11살, 초급중학교 시절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고 싶어 억지로 어울리게 된 이들이 소개해 준 장난감.

악마들은 원래부터 그런 새끼들임을 알았기에 그들이 사람을 장난감으로 다루는 인간을 벗어난 모습은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소개해 준 장난감에겐 호기심이 생겼다.

쟤는 어째서 저렇게 버티는 걸까.

왜 도망치지 않는 걸까.

……가진 것도 없고, 힘주어 꺾어 버리면 꺾여 버릴 하루살이 인생들이 어떻게 버티는 걸까.

그런 호기심은 곧 흥미가 되었고, 애정이 되었다.

짓밟히고 유린당해도 끝까지 버티는 모습은 마치 시리고 추운 겨울을 버티며 따사로운 봄날을 기다리는 꽃과 같았다.

그 강인함, 그 아름다움.

만개시키고 싶었다.

시들기 전에 개화시켜 꺾어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을 뿐이었다.

‘그랬을 뿐인데…….’

조남명은 겨우 뜬 한쪽 눈으로 몸을 내려다봤다.

움직이지 않는다. 목 아래로 감각이 없다.

“아으…….”

심지어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철렁 심장이 내려앉고,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간다.

아득한 절망과 공포가 온몸을 잠식한다.

그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며 차가운 눈빛이 림학철이 들어온다.

“이 아새끼 절대 죽게 하디 말라. 늙어 죽기 전에 죽으면 니들도 따라 죽게 될 기야. 알갔어?!”

“예, 예!”

섬뜩!

“아으! 아으으!”

“뭐하네! 혀 깨물기 전에 재갈부터 채우라!”

“예!”

“아아아아아아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