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07화 (307/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07화>

흠칫!

소년은 자신을 가리고도 한참이나 남는 커다란 등을 멍하니 쳐다봤다. 마치 북한 사람이 아닌 듯 다른 발음의 사내.

소년의 눈이 크게 흔들린다.

하지만…….

“일없습네다. 그리고…… дякую, що врятував мене.”

구해 줘서 고맙다는 나지막한 말.

종혁은 입술을 깨문 채 골목 입구로 향하는 소년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소년의 얼굴을 보곤 순간 동요하더니 슬그머니 비켜서는 순영 때문에 더.

“미안합네다.”

“……후. 다신 그러지 말라. 가자.”

보호하는 자와 보호받는 자의 모습을 보이며 멀어지는 그들.

종혁은 순영에게 다가갔다.

“아는 사람들입니까?”

“아, 공화국에 관광 온 외국인 같습네다. 요원들이 저리 붙어 있는 걸 보니 아마 꽤 지체 높은 가문이겠디요.”

“흐응. 그래요?”

순영은 마치 진실을 말하듯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지만, 종혁은 그걸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곧 대한민국 및 전 세계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는 북한. 그리고 옛 소련의 영토였던 우크라이나의 말을 쓰는 혼혈 소년.

골치 아프기 그지없는 그림이 그려진 퍼즐의 한 귀퉁이가 맞춰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쪽을 보는 순영의 시선에 종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쯧쯧. 그럼 답답해서 도망친거겠네요. 에휴, 저렇게 보호를 받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도 모르고……. 배가 불렀네, 불렀어.”

“아하하하. 그렇게 생각하십네까?”

“그럼요. 자, 이제 돌아가죠! 아직 배 채우려면 멀었잖아요?”

식당 주인이 곧 굴림만두라는 걸 만들어 주기로 했다.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이라 무척 기대가 되었다.

“네. 돌아가야디요. 호텔로.”

“……네?”

“벌써 오후 3시입네다. 아무리 편한 차림으로 가도 된다지만 술 냄새를 풍기며 갈 수는 없지 않갔습네까?”

“아니?”

“아니는 없습네다.”

“있습니다! 지금 굴림만두가! 수제 맥주가!”

“내일 드시라요. 자, 갑시다.”

손목이 잡힌 종혁은 그대로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   *   *

부우우웅!

한국으로 치면 퇴근 시간인 7시임에도 차가 별로 없는 평양의 도로. 종혁을 태운 검은색 세단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교통경찰이 많네.’

이렇게 차가 없는데도 신호등 불이 꺼진 교차로마다 제복을 입은 여성들이 삑삑 호루라기를 불며 수신호를 보낸다.

가로등 불이 켜진 곳도 별로 없는 도로.

북한의 생활상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부스럭부스럭.

옆을 본 종혁은 피식 웃었다.

흰색 민소매 드레스를 입은 순영이 훤히 드러난 어깨가 어색한지 어깨를 만지작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웃지 마시라요.”

“왜요. 예쁜데요. 이거 림학철 소좌가 보는 눈이 좋은데요?”

마치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듯 순영과 굉장히 어울리는 드레스는 림학철 소좌가 호텔로 보낸 것이었다.

“……림 소좌는 한 번 다녀왔습네다.”

“아, 죄송합니다.”

“몰라서 그런 거니 이해하겠습네다.”

새초롬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모습에 볼을 긁던 종혁은 아차 하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가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까?”

파티 형식의 설명회는 가끔 가 봤지만, 이런 형식의 파티는 처음인 종혁.

“그런 건 없을 겁네다.”

단단히 주의를 줬는데 이상한 짓을 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없다.

“혹여 있더라도 그냥 부모 잘 만난 애새끼들의 재롱이라 생각해 주시라요.”

“아, 그래요?”

순영의 얼굴을 보니 어떤 파티인지 예측이 된다.

모든 걸 종혁 본인에게 맞춘 파티.

‘그럼 편히 있어도 되겠네.’

마음을 편하게 먹은 종혁은 점점 어두워지는 도로를 가만히 응시했다.

“내가 다시 한번 말하겠디만은…….”

“한 번만 더 들으면 백 번이다! 그만하라!”

“……진짜 하디말라. 나 교화소에 가기 싫다.”

“아, 거 아새끼래…….”

친구가 단단히 주의를 주기에 그럴 마음도 없었지만, 이런 모습을 보니 더 장난칠 마음이 사라진다.

찌르면 찌르는 대로 반응하는 친구 림학철.

고개를 저은 그는 파티장을 둘러봤다.

-비바람이 부는 길가에…….

종혁의 마음을 붙들기 위해 단단히 준비한 듯 한국 발라드가 흘러나오는 거실에서 웅성거리는 미남미녀들.

그리고 진취적인 성향을 가진 2세, 3세들과 북한 주재 대사의 자녀들. 러시아는 무려 대사 본인이 왕림해 있다.

여기에 친러시아계 젊은 간부들과 해외에서 영입한 과학자들까지.

비록 그 숫자는 다 합쳐도 서른 명이 될까 싶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급이 높다.

림학철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아니디. 아버님 능력이디.’

“하, 대체 언제 오는 기야?”

친구는 창밖을 보며 초조해하는 림학철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이 아새끼는 다 좋은데 호랑이처럼 대범하디 못해…….’

“왔다!”

얼굴이 확 밝아진 림학철은 재빨리 문으로 다가가 기다렸고, 친구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래도 친구라서 그는 옆에서 함께 기다려 주기로 했다.

그런데…….

또각또각!

부드럽게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오는 하얀 원피스의 여인.

“흡!”

“헉!”

헛숨을 삼킨 둘의 눈이 파르르 떨리자, 이제 십대 후반이나 됐을 하얀 원피스의 소녀가 새빨간 입술을 비튼다.

“림 동무가 재밌는 연회를 연다고 해서 와 봤습네다. 혹시…….”

깊은 호선을 그리는 소녀의 눈.

“내가 못 올 곳을 온 거 아니겠디요?”

“……아, 아닙네다!”

“예. 어서 오시라요!”

북한 어느 곳을 간다고 해도 꿇리지 않는 배경을 지녔음에도 굽실거리는 그들.

그럴 수밖에 없다.

눈앞의 소녀는 백두혈통, 이 나라 지배자의 혈통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숨겨진 혈통이었다.

*   *   *

해가 온전히 저물고 나서야 평양 외각 림학철의 저택에 도착한 종혁은 저택의 규모를 보며 눈을 빛냈다.

‘위세가 대단한데?’

“하하. 어서 오시라요! 역시 리 소좌! 내 어울릴 줄 알았어!”

“……감사합네다.”

고개를 돌리는 순영의 모습에 빙구처럼 히죽 웃은 림학철이 종혁을 본다.

“오시는 데 불편하진 않았습네까?”

“보내 주신 차 덕분에 편히 왔습니다. 아, 편한 차림이어도 된다고 해서 평소처럼 입고 왔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종혁의 옷차림을 살핀 그는 활짝 웃었다.

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와도 감지덕지일 텐데도, 마치 이쪽을 배려하듯 슈트를 입어 주었다.

딱 봐도 보통 명품이 아니라는 듯 선이 매끄럽고 유려한 슈트. 시계는 놀라 뒤로 넘어질 정도였다.

‘파, 파텍필립이지 않네?’

림학철조차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명품 중 명품.

종혁이 지닌 부를 새삼 깨닫게 된 림학철의 어깨가 그 본인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나, 날이 덥습네다. 안으로 들어오시라요.”

싱긋 웃으며 저택 안으로 들어오던 종혁은 순간 흥미진진한 눈으로 이쪽을 보는 한 소녀를 발견하곤 자신도 모르게 굳어 버렸다.

‘어? 저 여자는?’

“최 동지?”

“아, 집이 너무 잘 꾸며져서 잠시 놀랐습니다.”

“으하하핫! 그렇습네까?!”

시작이 좋다.

입가에 함박웃음이 피어난 림학철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검지를 까딱였다.

“언젠가 동지가 받을 공화국의 선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디요. 자, 이리 오시라요. 내 친하게 지내는 동무들을 소개시켜 주갔습네다.”

오늘 초대를 하며 처음 보는 이들이 대다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 친한 친구였다.

슬그머니 멘트를 던진 그는 누가 지켜보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종혁을 안내했다.

‘흐응. 저자가…….’

소녀의 눈이 종혁과 순영을 모두, 아니 순영을 더 담는다.

리순영. 공화국이 낳은 괴물이자, 공화국이 키운 천재.

고작 이십대의 나이에 소좌가 된 여장부.

공화국 역사상 이런 파격이 있었던가.

리순영은 같은 여자로서 꼭 만나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아무도 몰래 이 자리를 찾아온 것도 바로 순영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직은 누군가를 사사로이 부를 정도의 권력이 쥐어지지 않은 그녀.

‘그래. 지금은 그렇디.’

하지만 대학에 입학할 내년부터는 달랐다.

의미심장하게 눈을 빛낸 소녀는 그제야 종혁을 온전히 눈에 담았다.

“저치가 리 소좌를 구했다고 했네?”

“그렇습네다. 기런디 그 방법이라고 알려진 게 골 때리는 거이…….”

“됐다. 알고 있다.”

남한의 부유한 경찰. 러시아와 깊은 연관이 있다지만,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

“먹디 못할 떡은 욕심내는 게 아니디.”

“예?”

손을 저어 친구의 입을 다물게 한 소녀는 종혁에게 신경을 끄며 언제 다가가야 할까 순영을 응시하며 타이밍을 쟀다.

파티장 한구석에 자리한 혼혈 소년과는 달리 말이다.

“저 사람은?”

놀란 소년의 우크라이나어에 옆에 서 있던 큰 덩치의 오십대 금발 외국인이 반응한다.

모국인 우크라이나의 독립에 소련의 연구소에서 실직하였다가 이곳 북한에 스카우트를 받아 넘어온 친구가 이곳에서 결혼해 낳은 아들.

그 자신과 달리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를 연구하는 친구다 보니 가족은 보호란 명목 아래 새장에 갇힌 새가 됐는데, 그 사정이 안타까워 이 파티에 데려온 그로서는 기꺼울 수밖에 없다.

갇혀 사는 신세에 친구도 가지지 못해 뭘 하든 심드렁해하거나 반항만 하던 친구의 아들이기에 더.

친구가 스카우트될 때 옆에서 바람을 넣은 사람이 바로 본인이기에 더욱더.

“아는 사람이냐? 어떻게? 누군데?”

“……그냥 아까 시장에서 잠깐 본 사람이에요.”

쪽팔리게 소매치기 패거리에게 당했다는 걸 어떻게 말할까. 어리지만 소년도 남자였다.

“아무래도 러시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스트가 저 사람인가 봐요.”

“아, 그건 싫군.”

지금도 소비에트 연방이었던 시절을 잊지 못한 듯 우크라이나를 괴롭히는 러시아. 당의 높은 간부의 자식인 림학철의 초대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 자리에 오지 않았을 거다.

물론 그것과는 상관없이 보다 여러 가지를 겪게 해 주려고 소년을 데려온 것이지만 말이다.

‘이런 걸 두고 우연이라고 하던가?’

우연, 인연, 필연.

한창 그런 것에 빠질 나이인 소년으로서는 이 말도 안 되는 우연에 눈을 초롱초롱 빛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종혁과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랐다.

그건 종혁도 마찬가지였다.

콰악!

“반갑습니다, 동지!”

누가 러시아인 아니랄까 봐 악수조차 힘이 넘치는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가 종혁의 볼에 뽀뽀를 하려는 듯 몸을 기울인다.

“이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진 않던가요?”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

난생처음 보는데도 이렇게 걱정을 해 준다는 것에 묘한 표정을 지은 종혁이 고개를 저으며 러시아어로 답했다.

“절 귀화시키려고 이런 자리를 만든 것 말고는 딱히?”

“……하. 되지도 않는 욕심을 부리는군요.”

‘아니, 흠. 나쁘지 않을지도.’

무려 러시아의 2인자가 어떻게든 보호하라며 연락을 해 올 정도로 중요한 인물인 종혁.

메드베제프가 친구라고 칭한 이상 종혁은 러시아의 친구였다.

그런 종혁이 북한에 귀화를 한다?

그럼 러시아도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생각을 정리한 러시아 대사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저들이 선을 넘을 것 같으면 지체 없이 달려오십시오.”

“……감사합니다.”

무조건적인 호의에 가슴이 몽실해진다.

하지만…….

“그런데 제가 그쪽에 가지 못할 상황이 되면 어떡합니까?”

장난을 치듯 짓궂은 물음에 러시아 대사의 얼굴이 굳는다.

“구하러 가겠습니다.”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요?”

“그렇다고 해도요. 러시아는 결코 친구를 버리지 않습니다.”

“……든든하군요.”

“별말씀을. 아, 이쪽은…….”

러시아 대사는 친히 북한의 친러시아계 젊은 간부들을 소개시켜 줬고, 종혁은 웃으며 그들과 악수를 나눴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모르고 있다? 흐으응…….’

눈을 가늘게 뜨던 종혁은 순간 손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움에 정신을 차렸다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얜 또 뭐야? 중국인?’

생김새가 딱 그렇다.

“분명 우리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말이죠.”

그렇게 영어로 말한 이십대의 청년은 종혁의 옆에 서 있는 림학철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고, 림학철은 경기를 일으키듯 반응했다.

“무슨!”

‘푸핫! 얘 봐라?’

아무것도 모른 채 왠지 림학철이 공을 들이는 것 같으니 냅다 재부터 뿌리는 거다. 그러다 종혁이 중국으로 넘어오면 그제야 종혁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고약한 심보.

“흠. 글쎄요. 요새 중국의 경제가 많이 발전하고 있다지만…….”

“그렇지.”

종혁이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러시아 대사가 재빨리 나선다.

“아니, 요새 좀 무리하고 있지 않나? 대북 지원이 좀 줄었다는 말이 나오던데.”

“근거 없는 헛소문입니다.”

“증거가 있는데도?”

“헛소문입니다.”

‘대북 지원이 줄었다?’

눈을 빛낸 종혁은 영어로 싸우기 시작한 둘을 가만히 응시했고, 사람들은 그 진귀한 장면에 슬금슬금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이게 아닌데?’

종혁에게 귀화를 하면 맨날 이런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만든 자리인데, 공화국으로선 넘볼 수 없는 두 나라가 종혁을 가지기 위해 싸우고 있음에 림학철은 울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와 달리 조용히 서 있던 순영은 터지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가만히 있어도 무리의 중심이 되는, 그것도 모자라 말 몇 마디에 두 거대한 나라가 싸우게 만들었는데 어찌 대단하다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더 이상 놔뒀다간 직무 유기이기에 순영은 림학철을 쿡 찔렀다.

“다른 분들도 소개시켜야디 않갔습네까?”

“아! 기, 길티! 기래야디! 고조 잠시 실례하갔습네다! 최 동지도 이쪽으로 오시라요.”

냉큼 종혁의 손을 잡은 림학철은 러시아, 중국과 상관없는 사람들을 향해 이끌었고,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툭툭 나오는 단서에 눈을 빛내던 종혁은 아쉬워하며 몸을 돌리다 순간 눈이 마주치는 소년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어? 쟤는?’

마침 눈이 마주친 소년도 흠칫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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