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06화 (306/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06화>

82. 사람뿐인 나라

짹짹짹짹.

자기 전 커튼을 걷어 놓았는지 창문을 통해 햇볕이 쏟아져 내린다.

“……어그그그!”

썩 만족스럽지 못한 침대라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선 종혁은 옆을 보곤 피식 웃었다.

옷을 입은 채 잠들어 있는 작은 체구의 여성.

스스로를 여대생이라 밝힌 여성으로, 어젯밤 순영이 보낸 선물이자 이대로 돌아가면 자신은 수용소에 갇힌다고 울고불고 매달려서 어쩔 수 없이 한 침대에 재울 수밖에 없었던 여자다.

‘웃기고 자빠졌네. 미인계, 그것도 요원인 게 뻔히 보이는데 여대생은 무슨.’

어느 여대생이 어제와 같은 상황에서 묻는 것도 많고, 북한에 대해 좋은 이미지만 심어 주려 할까.

어젯밤 짧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북한 유람 한 번 제대로 다녀왔을 정도였다.

“어이구, 이불은 또 언제 걷어 차셨대. 감기 걸리게.”

이불을 다시 멍석처럼 말아 준 종혁은 화장실로 향했고, 그사이 눈을 번쩍 뜬 여성은 미간을 좁혔다.

“고자는 아닌데…….”

아까 살짝 깼을 때 본 그 우람한 산봉우리.

슬쩍 얼굴을 붉힌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여대생의 신분으로 위장했으니 부끄러움 많은 여대생처럼 누군가 보기 전에 도망을 친다는 이미지를 보여야 했다.

메모로 전화번호를 남기며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온 그녀는 1층의 카페로 향했다.

그곳엔 순영이 있었다.

“소좌 동지.”

“어젯밤은 어땠네?”

순영은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채 물었다.

순간 여성의 눈이 반짝였다.

“소좌 동지! 남조선 남자들은 다 저렇게 봄바람처럼 살랑살랑한 겁네까?”

“……응?”

순영은 눈을 껌뻑였지만 여성에겐 보이지 않았다.

분명 그녀의 목적이었던 뜨거운 밤은 아니었지만, 다른 의미로 뜨거웠던 밤.

그저 여자라면 눈이 벌게져 달려들고 남자라는 권위만 앞세우는 북한 남자들과 달리, 자신의 말을 들어 주고 공감해 주며 함께 욕해 주었다.

그 박력 있던 모습과 가슴께를 간질이던 서울말. 북한 남성에게선 볼 수 없는 떡 벌어진 어깨와 잘생긴 외모.

딱 한국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라 몸이 절로 뜨거워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드라마가 영 후라이 까는 건 아니었구나.”

순영은 몽롱하게 젖어 가는 요원의 눈을 보며 이마를 잡았다.

꼬시라고 보내 놨더니 꼬드김을 당해 버렸다. 아니, 홀랑 넘어가 버렸다.

“이 에미나이 사상 교육 좀 시키라. 일주일짜리로.”

“예.”

“헉! 아, 아닙네다! 살려 주시라요, 소좌 동지! 살려 주시라요-!”

순영은 끌려가는 요원을 보며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였다.

“응? 영희 씨는 어디 가요?”

흠칫!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순영은 눈을 부릅떴다.

마치 오래 입은 것처럼 늘어져 딱 젖꼭지만 가린 채 근육을 다 드러낸 민소매 셔츠와 말보다 더 역동적인 다리 근육을 여실히 드러낸 사각 팬티 같은 반바지.

“그, 그 흉측한 모습은 뭡네까!”

“응? 운동복인데요?”

“아, 아니 무슨 운동을…….”

“흠 여긴 그렇게 안 입나 보네요. 아무튼 전 운동할 테니 이따가 봐요. 영희 씨도 적당히 하고요.”

움찔!

역시나 눈치챈 듯한 종혁이 멀어지는 걸 멍하니 응시하던 순영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손부채질을 했다.

얼굴이 너무 뜨거워 터질 것 같았다.

“시, 심장엔 나쁜 동무구나야.”

여자를 홀리는 요물임이 틀림없다.

그녀도 여자였다.

그것도 혈기 넘치는 이십대 여자.

*   *   *

“와, 진짜! 하!”

“우와아!”

찰칵! 찰칵!

통일부 직원과 최재수의 셔터 소리가 울리는 조용한 거리.

듬성듬성 오가는 사람들이 그들을 힐끔거리며 신기해한다. 평양 시내에서 남한 사람을 본 적 없기 때문이다.

말로만 듣던 남한.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했다.

그러나 서로에게는 다가가지 못한다. 둘의 근처에서 이건 찍으면 안 된다, 저건 찍으면 안 된다 말리는 군인들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일견한 종혁은 도시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상쾌한 공기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 비해 많은 게 낙후되어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인 듯 입가에 미소가 매달린 북한.

뚜벅뚜벅, 또각또각.

옆에서 나란히 걷는 순영의 구둣발 소리까지 기분 좋은 소음을 낸다.

“일단 한 가지 말하자면, 강의 몇 번으로 기법 자체를 이해시키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렇다 할 수사 기술이나 범죄학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말한 그녀. 어제와는 이야기가 좀 다르지 않냐는 듯 순영이 쳐다보자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배운 사람조차 난해해하는 프로파일링과 행동심리학을 기본으로 둔 수사 기법이다. 겉핥기로나마 두 개의 학문을 배우는 데만 해도 최소 2년은 걸린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 보지 않으려면 그래야 한다.

“꽤 오래 걸리는군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다고 하잖아요?”

순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요원들도 꽤 오랫동안 교육을 받긴 합네다.”

“그러니 개념과 기법을 관통하는 맥락 정도만을 가르칠까 해요. 이미 논문으로 발표된 것이니 나머지 자료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을 테고, 부족한 게 있으면 보내 드리도록 하죠.”

뼈대만 올바르게 세워 두면 살을 붙이는 건 비교적 어렵지 않다.

물론 비교적이지 아마 많은 범죄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할 거다.

“그리고…….”

종혁은 순영을 봤다.

“순영 씨가 바라는 것도 이 정도인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정확히는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 제공 및 동기 부여.

만약 이 이상을 바란다면 종혁은 손을 털 수밖에 없었다.

움찔!

“……이것도 그 수사 기법입네까?”

“흐흐. 이 눈을 피할 사람은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작정하고 속이는 놈까지 잡아내기 힘들죠.”

특히나 소시오패스가 그렇다.

“소시오패스?”

처음 듣는 단어인지 순영뿐만 아니라 주위를 따르는 군인들의 귀가 쫑긋 솟는다.

“사이코패스에 대해 아세요?”

한국에서조차 그 개념이 전파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사이코패스.

역시나 순영은 고개를 저었고, 종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사이코패스에 대해 설명했다.

“그, 그럼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아새끼들이?”

“70퍼센트 이상이 사이코패스라고 봐야겠죠.”

“하!”

북한이라고 왜 연쇄살인이 없겠는가.

그러나 검거율을 극악하다. 이마저도 수사를 통해 잡아내는 게 아니라 의심 가는 놈들을 죄다 데려가 고문을 하다가 얻어 걸리는 거다. 인력, 시간, 돈까지 모든 게 낭비였다.

‘그런데 이 미친 또라이 놈들이 정형화되어 있다니!’

“이런 놈들은 의외로 골라내기가 쉽습니다. 참을성이 없고, 과시욕이 많고, 시기심이 많으며, 무리에서 리더가 되려 하는 등등. 하지만 소시오패스는 아니에요.”

“뭐, 뭐가 아니라는 겁네까?”

순영은 어느새 종혁의 말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 단점이 거의 사라진, 제 목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일반인들과 어울리며 인내를 할 줄 아는 괴물. 감정이 결여된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모든 걸 통제하려 드는 게 바로 소시오패스거든요.”

“헉!”

순간 하얗게 질렸던 순영은 이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네. 특수부대원들.”

움찔!

“그들이 온갖 노력을 통해 갖추게 된 통제력과 잔혹성을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

‘그런 괴물이 공화국 내에 돌아다닌단 말이야?’

등골이 오싹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놈들을 골라내기 위해선?!’

종혁은 다급히 자신을 보는 그녀를, 아니 그들을 향해 씩 웃어 줬다.

“어떤가요? 제 짧은 강의는 마음에 들었나요?”

“……?!”

“이런 식으로 가르칠 예정인데, 순영 씨 생각은 어때요?”

“……판돈을 깎을 수가 없을 것 같습네다.”

모든 지식을 갖추고 현장을 뒹군 형사의 강의다. 글로 보는 것과는 와닿는 게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걸 여실히 깨닫는 중이었다.

종혁은 멍하니 바라보는 그녀를 보며 쿡쿡 웃었다.

“이거 미인을 앞에 두고 삭막한 말만 한 것 같네요.”

“아, 아닙네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네다.”

“그럼 다행이고요. 자, 그럼 이제 어디로 가는 건가요?”

순영은 기대감이 가득한 종혁의 눈에 짓궂게 웃었다.

“어딜 가고 싶습네까? 여자가 많은 곳을 원하면…….”

“재수! 오 경감님! 어디 가고 싶으세요?”

종혁의 외침에 다가온 사람들이 미간을 좁힌다.

“아니, 그렇게 물어도 북한에 대해 아는 게…….”

“저요! 저!”

사람들은 손을 번쩍 든 통일부 직원을 봤다.

“장마당에 가보고 싶습니다!”

“장마당?”

“한국으로 치면 시장 같은 곳인데요…….”

슬그머니 다가온 직원이 종혁의 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북한 장마당에선 집에서 직접 만든 밀주를 판대요.”

흠칫!

눈을 동그랗게 뜬 종혁이 진짜냐며 직원을 본다.

“시중에서 파는 술은 비싸서 그런다는데…… 밀주에 촤라라라 기름에 지진 지짐과 뜨끈한 국물, 어떠세요?”

“……하!”

딱 봐도 유혹하는 게 보이는 모습에 헛웃음을 터트린 종혁은 낯빛을 굳혔다.

“콜.”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걸 넘어간다는 건 죄악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평양에서 제일 큰 장마당으로 향했다.

웅성웅성, 왁자지껄.

사려는 사람들과 팔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마당.

종혁과 일행들은 그 광경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린민들이 많아서 그럽네까?”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타나면 난리가 나기에 어느새 사복으로 갈아입은 순영의 질문에 종혁과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궁핍한 북한. 그러나 이곳만 보면 그런 모습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종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얕잡아 봤다는 걸 깨닫고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흠칫!

갑작스런 사과에 놀랐던 순영은 이내 푸근히 웃었다.

“오늘 림학철 소좌가 초대한 걸 기억하시지요? 조금만 드시라요.”

“흐흐. 걱정 마세요. 아주 조금만…….”

“평범한 동무들 기준으로.”

“……너무하네.”

“사내 주제에 말이 많습네다. 이쪽으로 오시라요. 음식 잘하는 곳을 압네다.”

마치 친구에게 맛집을 소개시키는 사람처럼 들뜬 그녀의 모습에 종혁은 미소를 지으며 뒤따랐다.

“건배!”

“캬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 낯선 맛의 술도 꿀떡꿀떡 넘어간다.

달러의 위력에 얼굴에 미소가 한가득이 된 사장은 구슬땀이 흐르는 것도 모른 채 메뉴에 있지도 않는 음식들을 만들어 내고, 그 냄새에 이끌린 허름한 옷을 입은 술꾼들이 슬그머니 주위를 기웃거린다.

그 간절한 눈빛을 이기지 못한 종혁이 결국 지갑을 여니…….

“으하하핫!”

“잘 먹겠소, 남조선 동무들!”

장마당에 잔치가 열린다. 고작 백 달러면 잔치를 열수 있다는데 지갑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시골의 오일장 같네.’

술 냄새와 시골 잔치 특유의 음식 냄새, 행복의 냄새.

“다음부턴 이러지 마시라요. 버릇 나빠집네다.”

“좀 나빠지면 어때요. 웃고 즐기면 그만이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만날 범죄자의 뒤만 쫓는 삭막한 삶.

평범한 사람들의 아무 걱정 없는 미소는 크나큰 힐링이다.

물론 이런 것에 빠져 나태해진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가끔은 이런 이벤트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 개운한 미소에 더 말하기를 관둔 순영은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둘러보다 이내 피식 웃으며 술을 홀짝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도 이 모습 이 광경이 참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돈 걱정 없이 푸짐한 음식으로 웃고 떠드는 처음 보는 모습이.

……피식!

“응? 왜 그래요?”

“아닙네다.”

어차피 회유될 이유가 없는 종혁.

그렇기에 그저 북한을 찾아온 친구에게 북한의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했는데, 종혁이 만든 좋은 모습을 보고 있다.

“싱겁기는…….”

‘응? 화장실 가나 보네.’

다급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통일부 직원이 어디론가 달려가자, 보위국 직원도 슬그머니 일어나 그의 뒤를 쫓는다.

혀를 찬 종혁은 순영을 봤다.

“그런데 오늘 파티는 림학철 소좌가 여는 거예요? 아니면…….”

“림 소좌가 여는 겁네다.”

“따로 드레스코드는 없고요?”

“그런 건 없습네다. 말이 파티지 편한 차림으로…… 응?”

후다다다닥!

그들의 근처로 웬 남자가 누군가에 쫓기듯 스쳐 지나간다.

그때였다.

“저, 저놈 잡으라-!”

‘어?’

남자의 뒤를 쫓는 사람이 익숙하다. 자신들을 호위하던 요원이었다.

순간 눈이 마주친 종혁과 오택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리를 박차며 뛰어나갔다. 남의 나라지만, 이건 본능에 새겨진 행동이었다.

최재수도 반 박자 늦게 땅을 박찼다.

“아, 잠깐?! 뭐하네! 날래 쫓으라!”

“예!”

요원들도 다급히 종혁의 뒤를 쫓았다.

“비켜요! 비키세요!”

“으악!”

“꺅!”

평균 키보다 머리 한 개 반이 큰 거구가 불도저처럼 달려드는데 감히 그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앞이 뚫리니 종혁은 온전히 속도를 높일 수 있었고, 이내 곧 소매치기의 거친 숨소리가 들릴 거리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잡았…….’

콰악!

뒷덜미를 낚아챈 종혁.

“다, 이 새끼야!”

그대로 놈을 땅바닥에 처박은 종혁은 휴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 새끼. 기분 좋게 술 마시는 사람 땀 빼게 하고…….”

“넌 뭐이네?”

놈을 쫓다 보니 어느새 들어오게 된 좁은 골목.

딱 봐도 뒤통수부터 처박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놈의 패거리 같아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옆엔 한 소년이 널브러져 있다. 구타를 당한 듯 여기저기 새겨져 있는 폭행의 흔적.

“어, 그래. 잠깐만?”

이미 골목에 들어섰을 때부터 패거리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던 종혁은 일단 수갑을 찾았다.

후다다닥!

“야, 잡았냐!”

“아, 오 경감님. 수갑 있어요? 나 수갑 놓고 온 거 같은데?”

“어? 그래? 야, 나도……. 이런 씨. 여기 북한이잖아, 인마! 수갑을 챙길 이유가 없잖아!”

“아.”

“너흰 뭐냐고 묻지 않네-!”

촤좍!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의 외침에 골목 안에 있던 3명의 사내가 식칼과 손도끼를 꺼낸다.

“어후으. 씨발, 무서워라.”

“그러게. 어휴, 이 동네 험하네.”

“……이 종간나 새끼들이!”

“아, 뭐냐고? 뭐긴 뭐겠냐.”

우르르르르르!

“팀장님!”

“최 동지! 괜찮습네까!”

움찔!

종혁은 뒤이어 도착한 요원들에 굳어 버리는 놈들을 향해 씩 웃었다.

“짭새지.”

“…….”

“이리 와, 새끼들아.”

*   *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통일부라 북한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을 양반이…….”

화장실을 다녀오다 뭐가 예뻐 보여 달러가 가득 든 지갑을 꺼냈단다. 내 돈 가져가라고 광고한 거다.

비록 북한뿐만 아니다. 해외에 가면 절대 지갑을 함부로 보여선 안 된다.

“죄송합니다…….”

“에휴. 뭐 없어진 건 없어요?”

“네. 없는 것 같습니다. 돈도 그대로고, 사진도 그대로네요.”

이제 이십대 후반인데 벌써 결혼을 한 건지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사진을 소중히 쓸어내리는 직원의 모습에 종혁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직원에겐 저 사진이 돈보다 소중한 보물일 테니 말이다.

“다음부턴 조심합시다.”

“예, 예! 감사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정신을 차리는 십대 중반의 소년에게 다가갔다.

‘어? 눈이?’

붉은색에 가까운 밝은 갈색 눈. 이목구비도 혼혈처럼 보인다.

“괜찮니?”

“Дякую…… 아, 일없습네다.”

‘우크라이나어?’

눈을 빛낸 종혁이 입을 열려던 그때였다.

“비키라우!”

“너흰 또 뭐이네?”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는 골목 입구와 그쪽을 보더니 몸을 굳히는 소년. 골목 입구를 본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비슷한 냄새가 나는데?’

종혁과 일행들을 호위하기 위해 나선 보위국 요원들과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이들이 골목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종혁은 소년을 슬그머니 뒤로 숨기며 입을 열었다.

“보호해 줄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