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00화>
부르릉!
중후한 멋을 자랑하는 억대의 외제 중형 세단이 한 저축은행 근처의 주차장에 들어선다.
“으흐응.”
어젯밤 화끈했던 밤에 콧노래를 부르며 차에서 내린 중년 남성은 몰고 온 차의 자태를 보며 몸을 떤다.
“크으으! 딱!”
차를 향해 마치 총을 발사하는 시늉을 한 중년 남성은 B가 크게 박힌 차키를 손가락으로 돌리며 주차장을 나섰다.
“아! 안녕하세요, 과장님!”
콧속을 훅 파고드는 풋풋한 향기.
단발머리의 이십대 여성을 본 중년 남성의 얼굴이 확 펴진다.
마치 강아지를 연상시키는 귀여운 외모와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육감적인 몸매 때문에 입사를 한 순간부터 모든 남직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여성.
중년 남성도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어, 그래. 예진 씨, 지금 출근해? 오늘도 버스?”
“헤헤, 네! 과장님은요?! 왜 여기 주차장에 나오세요?”
중년 남성은 대답 대신 손을 올리며 차키를 꾹 눌렀다.
빵! 빵!
“우, 우와! 저 차가 과장님 차예요?!”
“점장님보다 좋은 차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여기다 세우는 거지. 이게 다 사회생활의 일환이랄까?”
“와아아! 과장님 능력 좋으시다! 과장님 짱! 짱!”
“으하핫! 이 나이에 저 정도 타고 다니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인데, 뭐.”
한껏 어깨를 추켜세우는 과장의 모습에 김예진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내 곧 물개 박수를 쳤다. 그녀도 사회생활이었다.
“대단하세요! 막 작년부터 스타일도 좋아지시고! 정말 애인이라도 생긴 거 아니세요?”
“으하하핫! 그래 보였어? 그런데 이거 어쩌지? 난 아직 솔로인데?”
“말도 안 돼! 왜요? 주위에서 가만 안 둘 텐데 왜요?”
“글쎄……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일까?”
“……아하하. 누, 누군지 몰라도 행복하겠어요!”
“그러게. 누군지 몰라도 정말 행복하게 해 줄…….”
“야, 야! 김 대리! 루에보 샀어?!”
흠칫!
순간 입을 다문 중년 남성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회사원들을 봤다.
“어제 바로 샀지! 와 씨, 파도가 예술이던데?”
“그치? 내가 말했잖아! 지금 하락세에 접어들긴 했는데, 그것도 잠깐이라니까? 당장 내일이라도 반등할 수 있어. 그래서 얼마나? 얼마나 샀는데?”
“한 3천?”
“미친!”
호들갑을 떨며 그들의 앞을 스쳐 지나가는 두 회사원.
김예진의 표정이 묘해진다.
“과장님.”
“……어? 응, 왜?”
회사원들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과장이 뒤늦게 반응한다.
“아니요. 요새 루에보가 참 뜨겁긴 한 것 같아서요.”
“흐응.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저희 엄마도 무조건 두 배 간다고 적금을 깨셨거든요! 아, 저도 곧 넣으려고요!”
주위 사람들이 다 곧 반등할 거라고 외치고 있다.
조금이라도 싸졌을 때 빨리 사야만 했다.
“응?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아니…… 뭐, 잘해 봐. 응원할게.”
‘그래야 오늘부터 시작될 털기를 당했을 때 더 좌절할 테니까.’
그동안 대한민국 주식판을 어지럽힌 수많은 작전 세력들의 마지막 개미 털기와는 개념자체부터 다른 자신들의 개미 털기.
아마 김예진은 곧 밑바닥 아래에 지하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거다. 그런데 이건 고작 피날레를 위한 밑밥일 뿐이다.
이 마지막 털기 이후 다시 급속도로 부풀기 시작한 폭탄이 터진 순간, 루에보에 돈을 투자한 사람들은 지하 아래에 있는 지옥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때, 사회초년생을 위로해 주는 게 사회생활 선배의 역할.
“네!”
과장은 자기 미래도 모른 채 해맑게 웃는 강아지 같은 김예진을 향해 속으로 비릿하게 웃어 주었다.
“그럼 갈까?”
“앗! 신호예요! 과장님, 뛰어요!”
지이잉!
“과장님, 진동 울리는데요?”
“어? 아.”
핸드폰을 확인한 과장은 순간 이를 악물었다.
‘시작됐다.’
꺄아악! 크아악!
어디선가 들려오는 환청이 마치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처럼 강렬하게 귀를 때리는 듯했다.
문자를 확인한 그는 다급히 키보드를 두드리곤 모니터를 빤히 바라보다가 주먹을 불끈 쥐며 일어섰다.
‘됐다!’
“나 잠깐 담배 좀.”
“옙!”
은행 뒤편으로 향한 과장은 담배를 물며 들고 나온 핸드폰의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시작 5분전.]
[시작. 여러분 모두 재산을 지켰기를 바랍니다.]
“……푸흐흐.”
지켰다. 아주 잘 지켰다.
문자를 삭제한 그는 담배를 던지며 다시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이었다.
“꺄아악!”
“뭐, 뭐야. 왜 그래?!”
‘쯧쯧.’
과장은 혀를 차면서도 김예진을 손에 넣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부를 떨었다.
“아, 김 과장. 잠깐 나 좀 보지.”
“예, 부장님.”
과장은 의아해하며 부장의 자리로 향했다.
그러자…….
“그 JU 말이야. 문제없지?”
“……아, JU 말입니까? 예, 문제없습니다. 이자도 꼬박꼬박 넣어 주고 있고, 정해진 날에 전액 상환해 주겠다는 약속도 다시 받았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하, 아니야. 가 봐.”
“예.”
고개를 숙인 후 돌아서는 과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설마 눈치챘나?’
아니다. 부장은 그렇게 능력 좋은 사람이 아니다.
오직 끈질긴 아부와 접대로 저 자릴 차지한 무능력자.
과장은 주인이 없는 김예진의 자리를 힐끔 보곤 다시 업무에 매진했다.
오늘 낸 수익에 손이 떨려 잘 집중은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진즉에 셔터를 내린 그들 은행에도 퇴근의 공기가 불어닥친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과장님!”
“훌쩍! 수,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힘내. 내일 봐, 예진 씨.”
다정하게 어깨를 토닥인 과장은 미련을 접으며 돌아섰다.
마음 같아선 오늘 위로해 주며 꿀꺽해 버리고 싶지만, 그건 마음이 조급한 하수나 하는 짓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색으로 물들여야지.”
빠앙!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는 제 중형 세단에 어울리는 여자가 되도록 말이다.
과장은 큭큭 웃으며 차문을 잡았다.
그 순간이었다.
“어이구, 씨발. 중2병 걸린 애새끼도 아니고.”
흠칫!
“뭐, 뭐야! 누구야!”
어둠이 내려앉은 주차장. 차들 사이에서 덩치 큰 사내 종혁이 걸어 나온다.
“그러게? 이 야심한 시간에 사십대 홀애비를 찾으러 온 나는 누굴까?”
“다, 당신, 아니 당신들 뭐야!”
종혁의 뒤로 안경을 낀 날카로운 인상의 삼십대 남성도 걸어 나온다.
“아, 질문이 잘못됐구나. 다시 물을게? 이 야심한 시간에 JU라는 범죄 단체에 돈을 빌려준 씹새 홀애비를 찾아온 나는 누굴까? 10초 준다. 맞춰 봐.”
철렁!
순간 과장의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간다.
‘겨, 경찰! 씨발, 어떻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일단 이 자리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는 다급히 태연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내게 용무가 있으면…….”
퍼억!
‘어?’
순간 배가 쑥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눈앞이 까매졌던 과장은 콱 가슴을 내려찍는 바윗덩이에 새된 소리를 내며 번쩍 눈을 떴다.
“켁?!”
종혁의 발에 가슴이 밟혀 버둥거리는 그.
종혁은 발에 힘을 주어 집중을 하라고 신호를 주며 실실 웃었다.
“아아, 다 알아보고 왔으니까 수작 부릴 생각은 하지 마세요.”
알아볼 것만 알아봤겠는가. 3일 동안 미행을 하며 혹여 이놈을 보호하거나 감시하는 이는 없는지도 다 파악한 후에 나타난 거다.
“거기다 이쪽분께서 중앙지검 특수부 검사님이시거든? 들어는 보셨나, 특수부?”
한 번 잡혀 들어가면 폐인이 되어 나온다는 중앙지검 특수부. 80년대를 겪은 과장에겐 대검 중수부와 함께 공포의 상징이다.
“그리고 난 본청 수사팀 형사님이시고. 그러니 야. 야, 이 개새끼야.”
순간 종혁의 얼굴이 사납게 굳는다.
“너한테 돈 빌린 새끼 연락처 가지고 있지?”
주가 조작의 자금 관리책 혹은 총책.
어쩌면 사기꾼 주영도의 손발.
이곳 저축은행들에서 흘러나온 돈이 주가 조작에 쓰인 걸 이미 알고 있는 종혁으로선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언제 그쪽에서 또 돈을 빌려야 할지 모르니까 가지고 있을 거잖아, 그치?”
종혁은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걔들 지금 어디 있냐?”
* * *
서울의 어느 작은 사무실.
“예, 회장님. 며칠 전 말씀드린 대로 작업 들어갔습니다. 아마 오늘부터 개미들…… 롤러코스터 제대로 탈 겁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
조금 있으면 바뀌겠지, 내일이면 바뀌겠지 지옥 속에 살게 될 거다. 그의 경험상 이걸 2주일 이상 버티는 놈은 없었다.
뱀처럼 찢어진 눈을 번뜩이던 오십대 작은 체구의 장년인은 이어진 통화상대의 말에 눈을 번뜩였다.
-쌍봉 이후 다시 하한가 잊지 않았겠지?
“하하. 걱정 마십시오. 제가 그 아름다운 예술을 잊을까요.”
하락, 반등, 하락.
보통 이 단계를 거친 후 작전 세력은 반등을 넘어 고공행진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진 주식을 모두 던져 버린다.
하지만 이번 작전은 그게 아니다.
마지막 하락 이후 다시 하락.
작전 세력의 방식에 대해 알아 끈질기게 달라붙은 개미들이나 슈퍼개미, 다른 투자사들도 끝까지 쥐고 있던 주식을 죄다 던지게 만들 거다.
그 후 떨어진 주식을 모두 쓸어 담으면?
그때부턴 진짜 폭탄 돌리기 시작이다.
‘흐흐흐. 이런 게 예술이지.’
-관리 잘해. 하나라도 딴마음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걱정 마십시오. 아무리 친한 놈들만 모았다고 해도…….”
그는 탕비실이라 적힌 문을 스윽 밀었다.
그러자 컵라면을 흡입하던 메마른 기운을 뿜어내는 사내들이 행동을 멈추며 장년인을 응시한다.
피 맛을 본 굶주린 맹수들.
장년인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사시미칼이나 대검을 보곤 입술을 비틀었다.
“돈으로 장난치는 놈들 따윈 믿지 않으니까.”
‘당신도.’
-……믿지. 자금 조달도 확실히 하고.
“예. 받는 만큼만 하겠습니다.”
딱 약속된 금액만큼만 일해 주면 되는 거다.
돈에 미쳐 괴물이 되는 놈들만 있는 이 바닥.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금방 시체가 될 뿐이니 말이다.
전화를 끊은 장년인은 탕비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컵라면 남은 거…….”
지이잉! 지이잉!
“쯧. 음? 김 과장? 아이고, 김 과장. 안 그래도 내일 추가 대출 때문에 연락을 좀 드리려고 했는데…… 아, 오늘? 선물을?”
눈을 동그랗게 떴던 장년인은 이어지는 말에 피식했다.
“예. 그럼 맨날 만나던 거기로 보내 주십시오.”
통화를 종료한 장년인은 핸드폰을 빤히 보다가 손을 저었다.
“그거 그만 내려놓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사내들이 연장을 챙기며 몸을 일으켰다.
* * *
-이제 다시 사랑 안 해-!
애절한 노랫소리가 달리는 차 안.
노란 가로등 불빛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차창으로 특수부 검사 김윤재의 얼굴이 비춰진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특수부를 나서기 전 선배 검사가 한 말이 떠오른다.
-잘 지켜봐. 마산 시골에서 썩던 양반을 고작 10년도 안 되어 특수부 부장검사까지 올린 놈이니까.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유도 영웅 최종혁.
2004년 경찰대 졸업 후 경위로 시작해 고작 2년 만에 경정을 달았다.
해결한 초대형 사건만 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라며, 요 몇 년 사이 경찰 내부에서 일어난 경찰 개혁의 참모이자 선봉장이고, 최근엔 우봉리 사태를 조기에 종결시킨 미친 괴물이다.
‘이런 괴물을 지켜봐라?’
“후우우.”
차창에 그의 답답함이 번져 간다.
그런 김윤재를 힐끔 본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아까 밥을 너무 많이 먹였나?’
그렇다면 좀 억울했다.
빼지 않고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더 시켜 줬을 뿐, 과식은 오직 김윤재 본인의 선택이었다.
‘거 아무리 나한테 뭔 목적이 있는 것 같다지만 적당히 좀 하지.’
볼을 긁적인 종혁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이번에 법무부에서 보호관찰을 강화하겠다는 말이 나오던데, 좀 들으신 거 있습니까?”
“아, 말 그대로 기존에 있던 보호관찰을 약간 강화하는 수준이라더군요.”
“쯧. 획기적인 뭔가는 없다는 거네요.”
김윤재는 툴툴거리는 종혁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형사라는 걸 몰랐다면, 부모 잘 만났음에도 사회에 불만이 많은 애새끼로 보이는 종혁.
“그럼 최 팀장은 생각한 것이 있습니까?”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놈들 모두 아프리카로 봉사활동 보내는 거?”
김윤재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그 사건들을 이놈이 다 해결한 거 맞나?’
“그게 상식적으로 가능 할 것 같습니까?”
종혁은 무시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 눈을 가늘게 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이제 검사 몇 년 차랑 아옹다옹해서 뭐하나.’
“인지도가 절실한 저가 항공사 하나랑 봉사단체 하나 골라잡아서 협업 맺자고 하면 얼씨구나 하고 달려들걸요?”
“……어?”
“아니면 이미지 마케팅이 필요한 대형 항공사나 대기업에 의사를 타진해도 되고. 무려 법무부 소속 공무원들을 죄다 고객으로 끌어모을 수 있는 기회인데 미쳤다고 거부할까요.”
충격을 받은 김윤재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그보다 오늘 주가가 3천 원이나 빠진 거 들었죠?”
이런 우연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권아영이 루에보에 들른 다음 날부터 하루에 300원, 500원씩 사흘 연속 미약한 하락세를 이어 가던 루에보의 주가가 오늘 하루 만에 무려 3천 원이나 빠졌다.
놈들이 본격적인 개미 털기에 들어갔단 소리였다.
“하지만 곧 반등이 일어나겠죠.”
“오. 주식에 대해 좀 아시네요?”
“특수부 검사가 작전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거 누가 영감님 아니랄까 봐 겁나게 딱딱하구만?’
그렇다면 다행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인 종혁은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예, 과장님. 최 팀장입니다. 다른 은행 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예? 아니, 아직까지 지켜보면 어떡합니까!”
-특수부 검사님들께서 신중하게 가자는군요.
‘지랄 염병 났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임을 알기에 종혁은 더 말할 수가 없었다.
“후, 알겠습니다. 저희요? 저흰 약속 장소에 거의 도착해 갑니다.”
부아아앙!
종혁은 앞에서 속도를 내어 달리는 퀵 오토바이를 보며 눈을 빛냈다.
부다당!
공사가 중단된 지 오래인 어느 공사장 앞, 퀵 오토바이가 멈춰 선다.
지이잉!
[얼른 끝내고 밥 먹읍시다.]
“먹깨비 새끼.”
피식 웃은 배달기사는 마스크를 추켜세우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퀵인데요! 아, 지금 오고 계실 거라고요? 예, 알겠습니다!”
어깨를 으쓱인 배달기사는 마스크를 내리며 담배를 물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20분이 지나도 사람이 나오질 않자 배달기사는 혀를 차며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아, 정말 연락한 거 맞…….”
“퀵?”
“씨발, 깜짝아! 퀴, 퀵 받으시는 분?”
소리 없이 나타난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까딱이자 혀를 찬 배달기사는 뒤에서 작은 박스를 꺼내 내밀었다.
“예. 여기에 성함 적어 주시고요. 거기요, 거기.”
슥슥슥!
송장에 이름을 적은 사내는 박스를 들고 방금 전 걸어 나왔던 골목으로 들어갔고, 배달기사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두드렸다.
“씨발. 뭔 사람 눈빛이…….”
순간 눈빛이 낮아진 그는 방금 전 사내가 만진 볼펜을 조심히 가슴팍에 집어넣고는 핸드폰을 들었다.
“어. 나 지금 일 끝났거든? 아, 여기로 올 필요는 없고, 내가 거기로 갈게.”
왠지 느낌이 쎄했다. 당장 이 자리에서 벗어나라고 육감이 맹렬하게 외치고 있었다.
배달기사는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그러나 멀리 가진 않았다.
차에서 나와 있는 종혁의 옆에 멈춰 선 배달기사는, 아니 오택수는 입을 열었다.
“위치 추적은?”
놈에게 넘긴 건 택배가 아니라 GPS 발신기였다.
맨날 그 공사장 앞에서 만났단 소리에 종혁은 안전하고도 확실한 그 방법을 택했다.
“안 그래도 슬슬 연락해 보려고 했습니다.”
아무리 의심이 많은 놈이라도 황금 만년필 세트를 버리진 않을 터.
“연락하고 후발대랑 합류하면…….”
“이럴 줄 알았지.”
섬뜩!
종혁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5명의 사내를 보곤 혀를 찼다.
“잘하시네요. 미행이나 당하고.”
“……쯧. 요새 너무 늘어져 있었나?”
이놈들의 조심성이 너무 많은 것일 수도 있다.
종혁은 다급히 차 손잡이를 잡는 김윤재를 만류했다.
“안에 계세요. 다치니까.”
정말 다친다.
중년인 뒤에 서 있는 4명, 눈이 마주치자마자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4명의 사내는 예사 놈들이 아니었다.
종혁의 입술이 메마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