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99화>
말도 안 되는 망상이다.
실현 가능성조차 가늠이 안 가는 허황된 발명품들이다.
그러나 종혁의 곁에서 그가 그리는 그림들을 보아 온 권아영에게 있어서는 아니었다.
‘보스는 결코 만들지 못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아! 그렇다면?’
이것들이 현실이 된다면 에너지 한 분야의 생태계가 바뀐다. 다른 분야의 생태계도.
권아영은 목 뒤로 넘어가려는 마른침을 물과 함께 삼키며 팔뚝을 쓸어내렸다.
‘미친 인간 같으니!’
온몸을 내달리는 전율.
그런 그녀의 입가에 화사한 미소가 걸렸다.
“재밌는 장난감들이네요.”
와그작!
사장과 전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오랜 꿈이 무시를 당했는데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그러건 말건 요상한 부품들이 가득 붙은 차에서 시선을 돌린 권아영은 자동차 배터리 옆 핸드폰 배터리를 톡톡 두드렸다.
“너였구나. 그분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게.”
자동차 배터리로 향하려는 시선을 겨우 참아 내며 피식 웃은 권아영은 사장과 전무를 보았다.
“그럼 올라가서 서로가 원하는 가격을 써 보도록 할까요?”
일그러진 사장과 전무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쾅!
“이, 이게 무슨……!”
1200억.
권아영이 써 낸 가격이었다.
탁자를 치며 일어난 전무가 볼을 푸들푸들 떨었다.
“어머, 왜 그러시죠? 전 이것도 많이 쳐준 거라 생각하는데요.”
“지, 지금 우리 시총이 얼만지 아십니까?!”
“오늘 3700억을 넘어섰죠. 작전 세력에 의해.”
움찔!
“제 제의를 무시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러세요. 그런데…… 과연 지금의 주가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천장이 없는 듯 치솟는 루에보의 주가였지만, 사장은 지금이 최고점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고점에 도달했다는 건, 작전 세력이 물량을 털어 낼 시기가 다가왔음을 의미했다.
작전 세력이 물량을 털어 내기 시작하면 주가는 순식간에 곤두박질을 칠 터. 그 전에 자신들도 어서 가지고 있는 지분을 팔아넘겨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주가가 37000원이라고 한들, 그 가격에 모든 물량을 다 털어낸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가격을 한참 낮추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설령 그런다고 한들 모두 매도하기 전에 주가가 폭락할 게 뻔했다.
그래서 권&박 홀딩스에서 만나자는 이야기를 해 왔을 때 그렇게 기뻐했던 것이 아닌가?
장외 거래로 한꺼번에 지분을 인수해 주겠다고 한다면 장내 거래보다는 훨씬 짭짤하게 팔아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1200억이라니!’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낮은 금액이었다.
그녀의 말에 틀린 점은 없지만, 이걸 받아들이기엔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욕심은 너무나도 거대해져 있었다.
……빠득!
“나, 나가 주십시오. 내가 존대를 관두기 전에!”
달그락!
“관심이 있으면 연락 주세요.”
찻잔을 내려놓으며 일어선 권아영은 1200억이란 숫자가 적힌 종이를 톡톡 두드렸다.
“당신들의 가치가 이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만발하는 장미처럼 다시 화사하게 웃은 그녀는 돌아섰고, 사장과 전무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후 왁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문 밖.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겠지.’
1200억조차 작전 세력에 의해 거짓으로 만들어진 가치였으나, 이미 그것을 손에 쥐고 있는 입장에서 욕심을 버리긴 쉽지 않을 터.
하지만 권아영은 그들이 얼마 못 가 백기를 들 것이라 확신했다.
“그때 한입에…….”
꿀꺽!
마치 진미를 음미한 것처럼 나른하게 웃던 권아영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한 중년인에 살짝 놀랐다가 이내 눈을 빛냈다.
“생각은 정리하셨나요?”
오 상무는 생긋 웃는 권아영을 일그러진 눈으로 응시했다.
까드득!
“나쁜 새끼들.”
믿었다.
믿었기에 함께 꿈을 꾸자며 내민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함께 꿈을 꾸었다.
부족한 연구비에도 시간과 영혼을 불태우며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15년이나.
그러나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힘들다 생각한 적이 없다.
언제 완성이 될지 불분명하지만, 분명 세상이 기절초풍할 것이기에 그때만을 고대하며 참고 또 참았다.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세 명이서 함께 받을 그날을 위해.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한 것처럼 만든 이 루에보의 이름으로.
함께하자 손을 내민 둘도 그래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에 그놈보다 똑똑한 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개새끼들! 내가 당신들에게 얼마나 해 줬는데!”
이곳 공장의 배터리 설비를 만든 게 오 상무 자신이다. 연구비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부족하면 안 되기에 매일매일 노력을 했다.
“내가 아니면 기술의 기 자도 모르는 너희 따위가 이런 공장을 차릴 수라도 있었을 것 같아?!”
빠드득! 빠드득! 빠득!
‘날 버린다고? 하!’
헛웃음을 터트린 오 상무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버려지기 전에 내가 너희를 버려 주지.”
그는 사장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물어 오는 권아영을 복잡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의 사이를 흔든 여자.
그리고 저들의 더러운 말을 함께 들었음에도 모른 척한 여자.
‘하지만 이 여자가 아니더라도…….’
일어났을 일이었다.
그걸 모를 정도로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날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당신이 아니라 루에보의 진짜 주인을 기다린 거죠.”
그게 오 상무일뿐이다.
말장난이었지만, 오 상무는 순간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그랬다. 이제 사장과 전무에게는 루에보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내 연구의 가치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글쎄요…… 음, 이 작은 머리로 그 가치를 가늠할 순 없겠네요. 그래도 1조는 가볍게 넘지 않을까요?”
“헉?!”
세상을 놀라게 할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그 정도의 액수는 기대조차 안 했던 그.
권아영은 경악과 혼란도 잠시 점점 사내다워지는 그의 얼굴에 재밌다는 듯 웃으며 명함을 내밀었다.
‘역시 보스가 고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다니까.’
이는 오해였지만, 그녀로선 알 길이 없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당신을 데리러 올 테니까. 오 상무님, 아니 오성득 씨가 만든 이곳을 예쁘게 포장해서. 그럼.”
“…….”
또각또각!
오상무는 윙크를 하고 멀어지는 권아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리고 루에보를 나선 권아영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사이로 보이는 종혁의 차를 발견하곤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다시 치미는 전율에 빠르게 발을 놀려 다가가 차창을 두드렸다.
쿵쿵쿵!
차창을 내리며 그녀의 얼굴을 살핀 종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싱긋 웃었다.
그에 권아영은 미간을 좁혔다.
“진짜 얄미워! 먼저 말해 주면 어디 덧나요?”
“큭큭. 어땠습니까?”
“……정말 실현 가능하긴 한가요?”
“불가능해 보이던가요?”
“그랬죠! 그 누가 전격Z 작전 같은 일이 가능해질 거라고 믿겠어요! 자율주행을!”
오싹!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자율주행 자동차. 아니, 정확히는 전기 배터리로만 주행이 가능한 자율주행 전기자동차.
상용화만 시킨다면 무려 두 곳의 생태계를 바꿔 버릴 괴물이었고, 오 상무는 마치 소설 속 괴물을 만들어 낸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그걸 만들어 내고 있었다.
종혁이 아니었으면 콧방귀 뀌었을 망상.
그리고 종혁은 그걸, 세상 사람들 그 누구도 모르는 그걸 앉은 자리에서 내다보고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 미친 사람.”
“큭큭.”
이거였다.
미래에도 어떤 이유로 빛을 받지 못하고 사장이 된, 루에보의 진정한 가치가.
‘정말 우연히 알게 됐지.’
당시 전기차가 한참 난리일 때 특집 기사로 짤막하게 나온 적 있다.
경찰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루에보 사태와 관련된 일이라 기억하는 일. 특히 당시엔 지능범죄수사대 소속이었던지라 더 기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영세한 인터넷 신문사의 특집 기사라 관심을 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권 이사가 판단한 가격은요?”
순간 종혁의 눈빛이 차가워지자 권아영의 눈에서도 감정이 사라진다.
“1200억이요.”
“……최대 주주 둘은 별 볼 일이 없다는 거군요.”
함께할 사람에겐 결코 돈을 아끼지 않는 종혁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권아영이다.
만약 사장과 전무가 함께 가야 할 인재라고 판단했다면, 루에보가 지닌 진짜 가치에 걸맞은 금액을 제시했을 터.
즉, 루에보의 진정한 주인이 따로 있단 소리였다.
‘오성득, 그 사람이겠지.’
“직원들 상태는요?”
“음. 낯빛이 어둡기는 한데, 다들 묵묵히 일하는 것 같았어요.”
빈자리도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시설의 노후화가 꽤 진행되어 있었다.
“그리고 주차장에 고급 세단들이 있더라고요. 딱 두 대.”
그 말이 나타내는 뜻은 하나였다.
그리고 종혁이 낼 수 있는 결론도 하나였다.
사장과 전무를 제외한 루에보는 외부에서 폭풍이 몰아쳐도 묵묵히 참고 견디며 할 일만 하는 것이다.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말이다.
찰칵! 치이익!
‘시부럴.’
세상은 왜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걸까.
참 거지 같은 세상이었다.
“그럼 그대로 진행해 주세요.”
권아영은 뿌옇게 퍼지는 담배 연기를 안쓰럽다는 듯 응시했다.
“……그보다 보스. 작전 세력들 일망타진할 수는 있나요?”
종혁과 오택수, 최재수 세 명이서 말이다.
“못하죠.”
셋이선 절대로 불가능하다.
셋이 먹기엔 사이즈가 너무 크다.
“이거 우리 셋이서 꿀꺽한다면 전 총경 건너뛰고 경무관이 될 걸요?”
2계급 특진. 죽어야만 가능한 특진을 하게 될지 모른다.
그 정도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만약 놓친다면?
그땐 계급 강등이다. 그리고 지옥에 빠진 피해자들 때문에 굉장히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럼 어쩌려고요?”
종혁이 작전 세력을 일망타진해 줘야 일이 편해진다. 아니, 원활하게 진행된다.
“뭐가 걱정이에요. 치트키가 있는데.”
“치트…… 키?”
“식구라는 치트키죠. 얼추 친척 비스무리한 분도 계시고.”
종혁은 의아해하는 권아영을 보며 짓궂게 웃어 주었다.
“아무튼 수고했습니다. 그럼 전 그 식구들과 밥이나 한 끼 먹으러 갑니…….”
탁!
“응?”
“어딜 가시려고요? 나 오늘 스케줄 빼놨다니까요?”
“아…….”
아무래도 본청에 가는 건 하루 늦춰야 할 것 같았다.
* * *
본청의 소회의실.
종혁의 브리핑이 끝났음에도 선뜻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
……후룩!
모두의 시선이 찻잔을 내려놓는 정용진 과장에게로 향한다.
“얼마 전에도 이런 말을 한 것 같은데…… 최 팀장은 참 알아서 일감을 잘 찾으시네요.”
“하하.”
일감을 배정하지 않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일감을 잘 찾을까.
그런데 이번엔 그 일감의 사이즈가 남다르다.
몸뚱이인 JU그룹을 뒤로하더라도 현재 한창 부풀어 오르고 있는 루에보가 지금 당장 터지기만 해도 피해 규모가 3천억이 넘는다.
만약 이들이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걸 경찰이 인지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놓쳤다?
명예로운 퇴직이 약속된 이택문 경찰청장부터 줄줄이 목이 날아갈 거다.
“그래서…….”
정용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래서 계획은 뭔가요?”
어색하게 웃던 종혁의 낯빛도 진지하게 굳는다.
“일단 우린 3천 7백억이라는 이 무지막지한 액수에 주목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루에보라는 곳에 얽힌 세력이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군요.”
정답이다.
하나의 세력으로선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액수.
실제로도 총 여섯 개의 세력이 루에보 사태에 가담했던 걸로 조사되었다.
“그럼 문제는 꼭꼭 숨어 있는 놈들을 어떻게 찾느냐는 건데…….”
종혁은 심각해지는 정용진을 보며 피식 웃고는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 중 경찰이 아닌 이를 가리켰다.
“그래서 이렇게 게스트를 초대했지 않습니까.”
“음?”
모두의 시선이 종혁을 따라 강철선에게 닿는다.
종혁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루에보, 아니 JU. 특수부에서 주시하고 있는 것 맞죠?”
피해액이 수조 원에 이를 초거대 다단계 그룹이다.
이미 옛적에 특수부 혹은 대검 중수부의 레이더에 걸렸다고 봐야 했다.
‘사건이 터진 후 바로 주영도 회장이 검거된 걸 보면 그게 맞아.’
회귀 전, 루에보를 흔들던 세력이 주식을 던지자마자 곧바로 계좌를 동결하며 주영도 회장을 소환해 징치한 검찰.
“쯧. 와 내를 부르는가 캤드만…….”
점쟁이가 따로 없다.
“니 진짜 점집 찾아가 보래이. 이 정도면 신내림 받아야 된다 아이가?”
“큭큭. 네, 그럴게요. 그래서요?”
다시 혀를 찬 강철선은 입을 열었다. 입을 다물기에는 종혁에게 받은 은혜가 너무 컸다.
강철선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총 3곳. 3곳의 상호저축은행이 그놈아들과 연결되어 있다.”
후끈!
순간 소회의실의 공기가 달아오른다.
경찰은 모르는 걸 검찰이 알고 있었다는 소리에 정용진의 미간이 좁혀지고, 그걸 본 종혁은 강철선을 보며 입술을 핥았다.
“어떻게 하실래요? 공조…… 하실래요?”
강철선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리 궁지로 몰아 놓고 제의를 하는 기가? 치아라, 마.”
만약 여기서 어깃장을 놓으면 어떻게 될까.
종혁에게 뺏긴다. 이 말도 안 되게 거대한 먹잇감을 말이다.
검찰이 아는 정보 따윈 단 이틀도 안 돼서 알아낼 종혁의 그 정체불명의 정보력. 그걸 바탕으로 종혁이 놈들을 낚아채면 검찰은 망신을 당하게 되는 거다.
뭐 이게 아니라도 어차피 은혜를 갚겠다 생각한 강철선의 선택은 한 가지였지만 말이다.
“주영도만 내놔라. 그럼 하나 맡아 줄게.”
“거래 성립입니다.”
그렇게 경검 합동 수사가 결정되었다.
“아, 그런데 어데서부터 칠 끼고?”
종혁은 일어서다 멈칫한 강철선의 말에 생각할 게 뭐 있냐는 듯 바로 입을 열었다.
“당연히 은행들부터죠.”
수풀을 건드려야 숨어 있던 뱀이 나오는 법.
뱀뿐만 아니라 참 많은 것들이 기어 나오게 될 거다.
‘자, 그럼 놈들이 더 분탕 치기 전에 따 보실까?’
종혁의 입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