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98화>
“약 한 달 반 만에 5천만 원…….”
JU그룹이 창립된 이래 일개인이 이렇게 단시간 만에 5천만 원이나 되는 물품을 구매한 적이 있던가.
“어젠 2천만 원어치를 더 긁었습니다.”
“뭐?!”
서울의 어느 카페를 코앞에 둔 사십대의 중년인이 안경을 추켜세우며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장난감이나 생활가전 위주였는데,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고아원이나 노인정에 기부를 한답니다.”
“그걸?”
“예. 그따위 걸요.”
중년인이나 그를 보좌하는 듯한 이십대 청년이 비릿하게 웃는다.
죄다 중국산이거나 택갈이를 한 중소기업 싸구려들. ‘호구 중 호구’란 단어가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니지. 우리 JU의 소중한 다이아몬드 등급 회원이지.”
그들 JU그룹이 나눈 회원 및 영업사원등급에서 최상위 등급.
“직업은?”
“청담동 건물주 아들이랍니다. 저기 저 건물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마치 군계일학처럼 우뚝 솟은 25층의 고층 빌딩.
‘씨벌. 누군 부모 잘 만나서…….’
“쯧. 들어가지. 소중한 회원님을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예!”
“아, 그런데 다른 팀에도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다이아몬드 등급이 된 회원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쪽은 인터내셔널 잡이랍니다.”
“인터내셔널 잡?”
그 회사는 사십대 중년인도 들어 본 적이 있다.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무조건 거친다는 초대형 직업 알선 회사. 지인이 말하길 그쪽 바닥은 인터내셔널 잡이 거의 잡아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알선 사기를 할 수 없다고 했지…….’
때문에 알선 사기가 주 종목인 사기꾼들이 죄다 해외로 날랐다고 했다. 해외에서 작업을 치기 위해서 말이다.
“거기도 왕호구를 물었네.”
딸랑!
킬킬 웃으며 카페 안으로 들어간 둘은 텅 빈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최재수를 발견하곤 눈을 빛냈다.
‘구찌, 돌체앤가바나…….’
전신을 최고급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청담동 건물주 아들다운 위엄이 절로 넘치는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최재수 회원님 되십니까?”
달그락.
커피잔을 내려놓은 최재수는 살짝 굳었지만 거만한 얼굴로 그들의 위아래를 훑었다.
그러나 그 속, 심장은 미칠 듯 뛰고 있었다.
‘시발. 잘하자, 재수야! 나가리 되면 너 죽는다!’
연기 학원에서 연기까지 배웠는데 나가리 되면 종혁과 오택수에게 맞아 죽을 수가 있었다.
오싹!
종혁의 우악스런 주먹을 떠올린 최재수는 정신을 번뜩 차렸다.
‘팀장님만 따라 하는 거야. 팀장님만!’
벌써 몇 년째 종혁의 넓은 등을 보며 현장을 누볐던가. 언제 어디서나 여유롭고 거만한 종혁을 떠올린 최재수는 긴 다리를 꼬며 말을 툭 내뱉었다.
“JU?”
“예! JU그룹의 서정대 부장입니다. 이쪽은 제 팀의 직원인 김대형 대리입니다.”
“김대형 대리입니다, 회원님!”
그들이 내민 명함을 힐끗 본 최재수는 테이블을 검지로 두드렸다. 내려놓으라는 뜻.
순간 얼굴이 살짝 굳었던 그들은 재빨리 표정을 풀었다.
“불만?”
“하하, 아닙니다.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 아프신가 봅니다?”
최재수의 얼굴에 땀이 가득하다.
‘흡!’
“……쯧!”
순간 철렁한 최재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종혁은 언제나 이랬다. 뭔가 아니다 싶으면 그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었다.
“아이고, 아닙니다! 아니에요!”
얼른 명함을 내려놓고 최재수의 맞은편에 앉은 그들은 투자 서류를 꺼내어 내밀었다.
“먼저 통화로 말씀드렸지만, 저희 JU그룹은 그룹의 매출을 신장시켜 주시며 다이아몬드 등급이 되신 최재수 회원님께…….”
“됐고. 수익이 얼만데? 종목은?”
‘씨부럴 새끼!’
“하하. 일단 차차 설명을 드리자면…….”
“됐다.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최재수가 다시 자리를 박차려 하자 중년인은 다급히 그를 붙잡으며 빠르게 설명했다.
“천 원짜리가 4만 원이 됐다고? 루에보?”
‘어디서 들어 봤는데?’
분명 최근에 들은 이름이었다.
최재수가 미간을 찌푸리자 중년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현재 3만 원 중반이지만, 저희 JU그룹 전략기획실의 의견에 의하면 못해도 지금의 2배까지 뛴다는 예측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즉, 1억을 넣으면 2억!”
흠칫!
최재수의 눈이 크게 요동친다.
“……그럼 10억을 넣으면 20억이란 소리네?”
“정확하십니다! 역시 다이아몬드 등급 회원님답게 이해력이 좋으시군요!”
“크흠. 자세히 말해 봐요.”
최재수는 슬그머니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고, 중년인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물었다!’
개호구가 먹잇감을 물었다.
“그럼 차익 실현이 완료되면 찾아뵙겠습니다!”
최재수는 입을 꾹 다문 채 손을 저었고, 중년인과 청년은 허리를 연신 숙이며 카페를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최재수는 참았던 숨을 뱉어 냈다.
“푸하! 허억! 헉!”
가슴을 두드리며 숨통을 틔우려 노력하던 최재수는 이내 주먹을 꽉 쥐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친! 미치인!”
성공했다. 드디어 종혁처럼, 오택수처럼 제대로 속여 냈다.
짜리릿!
전율이 온몸을 내달림에 최재수는 방방 뛸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빠아악!
오택수의 손바닥이 최재수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혹여 최재수가 실수를 하면 백업을 하기 위해 숨어 있던 오택수.
“뭐가 그렇게 좋아서 처웃고 자빠져 있냐?”
“……흐흐흐.”
평소라면 발끈했을 테지만, 지금의 최재수는 아니었다.
최재수는 지금 그딴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오 경감니임.”
“뭐, 뭐야?!”
“나 어땠어요? 죽이지 않았어요?! 와, 씨. 나 연기에 소질 있는 듯?”
“……지랄.”
헛웃음을 터트린 오택수는 이내 입술을 비틀었다.
“야, 너 방금 1억이 2억 된다는 소리에 흔들렸지?”
흠칫!
“…….”
최재수는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에라이.”
“크흠흠! 아, 그보다 루에보란 이름 익숙하지 않아요?”
“이 새끼가 말 돌리네, 라고 하고 싶지만…….”
순간 오택수의 표정이 사납게 굳는다.
“익숙하네. 루에보.”
익숙할 수밖에 없다. 김종학이 몸담은 작전 세력이 작업을 하던 곳이 바로 그 루에보였으니 말이다.
오택수는 핸드폰을 들었다.
“어, 최 팀장. 지금 어디야? 이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정말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 *
일명 루에보 사태.
주가가 깡통이나 다름없어 깡통주 혹은 동전주로 불리던 회사가 코스피 시총 순위 20위까지 올라갔던 말도 안 되는 사태.
정부가 육성 정책을 발표해 테마주로 엮이거나 신기술이나 신소재를 개발했거나 영업이익 상승 등 호재가 없음에도 연일 상한가를 치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는 이슈가 되었다.
누가 봐도 작전이었지만, 어디 인생역전에 눈이 돌아간 사람들에게 그런 게 보였을까.
오직 빨간 그래프만 보고 루에보에 이사 자금을, 결혼 자금을, 부모님 수술비를, 대학 등록금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지옥으로 떨어졌다.
“IMF와 닷컴버블에도 배운 게 없어서…… 푸후우!”
IMF야 연도의 앞자리수가 다르다지만 닷컴버블은 2001년, 고작해야 5년 전이다.
당연히 사기를 치는 놈들이 나쁜 거지만, 탐욕에 눈이 멀어 불과 몇 년 전 일조차 잊은 이들의 모습에도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후우.”
뿌옇게 흩어지는 담배 연기가 종혁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지금 어디야? 지금 맨션에 도착했는데.
-충성! 연기파 형사 최재수! 임무를 성공리에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크으! 아까 제가 그놈들을 어떻게 속이는지 팀장님도 보셔야 했다니까요?!
-……지랄! 돈에 흔들린 새끼가 뭐? 아주 씨발. 한 번만 더 그래 봐라.
-그, 그건 오해시라니까요!
-좆까. 너 내가 지금부터 지켜본다.
‘풋.’
대화만 들어도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떠오르는 것 같다.
“잠시만요.”
대답도 듣지 않고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현재 보고 있는 건물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찰칵! 찰칵!
종혁은 찍은 사진을 오택수에게 보냈다.
그러자 곧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야, 이거 뭐냐?
“시총 3천 5백억짜리 회사요?”
-……미쳤냐? 100억이나 나오면 다행이겠다.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진 공장 단지의 조용한 가로수길 사이로 세워진, 세월의 때와 봄날 꽃가루가 잔뜩 묻어 노랗게 변한 허름한 건물 외벽과 희미하게 들려오는 공장 소음.
저 건물까지 포함해도 100억이나 받을까.
“루에보. 한 해 매출 70억에서 90억 사이의 중소 기업으로, 주력 사업 아이템은 배터리.”
하청의 하청의 하청을 받는 작은 회사다.
“지난 몇 년간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이게 요새 대한민국을 달구는 루에보의 진실이다.
미래를 던진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알아보지 않은 진실.
-미친…… 그게 말이 돼?
“그러니 작전이죠.”
-……씨발, 좆같네.
“그럼 전 좀 둘러보다가 들어갈 테니 쉬고 계세요.”
만약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아주 바빠지게 될 테니 말이다.
전화를 끊은 종혁은 다 피운 담배를 도로에 던졌다.
그 순간이었다.
과르릉! 끼이익!
굉음을 내며 달려오던 한 대의 잘 빠진 빨간 스포츠카가 종혁의 앞에 서며 차창을 내린다.
“얘, 버스 정류장 찾고 있니? 이 누나가 데려다줄까?”
“푸핫!”
“히힛!”
마치 십대 소녀처럼 귀엽게 웃으며 차에서 내린 권아영이 또각또각 에나멜 구두로 아스팔트를 짓밟으며 다가온다.
“오랜만이에요, 보스.”
“오랜만입니다.”
이전에 그녀가 범했던 실수를 만회한 후 이렇게 얼굴을 맞댄 건 처음이다.
담배를 꺼내 문 권아영은 방금 전까지 종혁이 바라보던 루에보를 보며 눈을 빛냈다.
“저기서 제가 할 일은요?”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파악해 보세요. 이후 판단은 권 이사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녀의 판단에 의해 종혁의 선택 역시 달라질 것이다. 그게 어떤 것이든.
“보스의 생각은요?”
“인수.”
이왕이면 사장까지 전부를 원하지만, 불가능하다면 사장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가져와야 된다. 기술자와 직원, 설비, 하물며 컴퓨터 쓰레기통에 있는 것까지 모두.
그 말에 권아영의 눈빛이 돌변한다.
“……보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저곳에 재밌는 게 있나 보군요. 아, 설마 그래서?”
작년, 천 원에서 천백 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루에보의 주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할 때 권&박 홀딩스를 통해, 정확히는 미국 쪽 라인을 통해 은밀히 주식을 매입해 온 종혁.
그는 놀라는 권아영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가 보면 꽤 골 때리는 게 있을 겁니다.”
이 당시엔 터무니없다고 무시당하고 미래엔 어떤 이유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아마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권아영이라면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들의 가치를.
흥미로 가득한 그 눈빛 속에서 신뢰를 발견한 권아영은 살풋 웃으며 돌아섰다.
“오늘 다 같이 한잔해요. 이후 스케줄은 모두 빼놨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레이디.”
“푸하핫!”
웃으며 발을 내딛는 그녀의 얼굴이 다시 변화한다.
‘실수를 만회했다고 하지만, 아직 멀었어.’
종혁은 용서했어도 그녀 자신이 용서 못한다.
그녀는 낯빛을 차갑게 굳히며 루에보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 * *
루에보의 사장실.
두 중년인이 소파에 앉아 담배를 뻑뻑 펴고 있다.
“크으!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얼마 전, 권&박 홀딩스라는 곳에서 한번 만나자는 제의를 해 왔다.
증권 바닥에서조차 아는 사람만 아는, 하늘 위의 하늘에서 노는 투자사.
그런 곳에서 이런 상황에 연락을 해 온 이유가 뭐겠는가. 다른 회사와의 합병 제의일 게 분명했다.
“사장님, 아니 형. 우리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2천억? 3천억?”
“우리가 가진 지분이면 잘해 봐야 1500억이지.”
“뭐? 겨우?!”
“후우. 동재야, 넌 이 미친 현상이 언제까지 갈 것 같냐?”
오늘 자로 주가가 3만 7천원을 갱신했다. 그가 생각하기엔 지금이 최고점이었다.
곧 자신들의 루에보를 가지고 흔들던 작전 세력이 물량을 털어 내기 시작할 터.
루에보의 주가가 5천 원을 넘어섰을 때부터 작전에 대해 공부해 온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즉, 자신들도 돈을 벌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그런데 만약 한 주당 4만원에 넘길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돈으로 새로 시작하는 거야.”
동재라 불린 중년인은 치솟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만약 우리 생각대로 저쪽에서 합병 의사를 타진해 오면 지금까지 개발한 것들은 들고 나가지 못할 텐데?”
“야, 다른 놈들이 우리가 그리는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90년도 초에 이미 개발된 기술조차도 허황되다고 무시당했다. 그리고 그건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었다.
“아니, 그보다 돈이 있는데 뭐가 문제야? 그 돈으로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면 되는데!”
“아아! ……음, 그럼 오 상무는?”
“당연히 데려가야지.”
자신들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선 꼭 필요한 존재.
그저 망상만 가득하던 이십대 시절, 오 상무로 인해 꿈을 꿀 수 있었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이젠 오 상무가 그리는 미래가 자신들의 미래이자 꿈이었다.
“그런데 오 상무가 우리를 따라오려고 할까?”
어디든 연구만 할 수 있으면 오케이라는 오 상무.
“야, 방금 말했듯이 다른 놈들이 우리가 그리는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냐? 오 상무는 무조건 따라온다. 그리고 혹시라도 따라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세상에 그놈보다 똑똑한 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건 그러네.”
어차피 얼개는 다 알고 있다. 이젠 오상무가 없어도 충분했다.
똑똑!
“들어가겠습니다.”
흠칫!
둘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덥수룩한 머리의 사십대 사내에 화들짝 놀랐다. 방금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오 상무였기 때문이다.
“왜? 무슨 일이야?”
“권&박 홀딩스라는 곳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아! 얼른 들어오시라고 해!”
“들어오시죠.”
“어머, 감사해요.”
‘헉! 여, 여자?’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온 권아영은 놀라 굳는 둘을 향해 싱긋 웃어 주었다.
“이렇게 두 분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워요. 권&박 홀딩스의 권아영 이사라고 해요. 피차 서로의 용건에 대해선 대충 아는 것 같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화끈한 그녀의 말에 둘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 * *
루에보의 사장과 전무, 그리고 오 상무는 회사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하하, 어떠십니까! 저희 회사가 겉으론…….”
“흐으응.”
“왜, 왜 그러십니까?”
“아니요. 혹시 이게 전부인가요?”
“마음에 안 드시는 거라도 있으신지?”
고개를 저은 권아영은 다시 공장을 둘러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뭐야, 그냥 작전에 농락당하는 곳일 뿐이잖아? 그분은 왜 이런 곳을 원하는지 모르겠네. 요새 부쩍 배터리에 관심을 가지셔서 그러나?”
하지만 낭비다. 이 정도 규모의 공장이라면 큰돈을 쓸 필요가 없다. 작전 세력이 털고 나갈 때, 주식을 주워 담으면 될 일이었다.
움찔!
그녀의 냉철한 읊조림에 순간 낯빛이 딱딱하게 굳은 사장과 전무는 이내 곧 서로를 보며 눈을 빛냈다.
‘그분?’
중요한 단서를 들은 것 같다고 느낀 둘의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하하. 이거 아직 보여 드리지…….”
“사장님, 전무님.”
여태까지 가만히 뒤만 따르다 돌연 그들을 막아 세운 오 상무의 눈빛이 차가워진다.
“말하실 겁니까? 저와 한 약속을…… 어기실 겁니까?”
이들과 꿈을 나누면서 약속한 게 있다.
끝까지 자신이 개발하게 해 줄 것. 그리고 보안 유지를 해 줄 것.
“……후. 오 상무, 잠시 이야기 좀 나눌까?”
사장이 슬그머니 오 상무의 어깨에 팔을 두른 순간 오상무의 눈에서 실망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그는 매정하게 팔을 쳐 내며 돌아섰다.
“아닙니다. 됐습니다. 맘대로 하십쇼.”
“야, 오 상무!”
사장과 전무는 발을 굴렀고, 권아영은 눈을 빛냈다.
‘역시 뭔가 있긴 있구나!’
“하하. 이거 똥고집 한 명 때문에 못 볼 꼴을 보였습니다.”
“됐어요. 뭐, 한번 보도록 하죠.”
“으하하! 정말 화통하시군요! 그럼 가실까요?!”
사장과 전무는 그녀를 공장의 한구석으로 안내했다.
마치 정리정돈을 안 하는 사람의 차고 같은 연구실.
“이게 뭐냐면 말입니다…….”
그녀는 그들이 가리킨 차를 보며 속으로 입을 떡 벌렸다.
‘맙소사. 이거였구나!’
종혁이 말하던 골 때리는 것들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