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96화>
80. 화창한 여름이 오면
끼이이익! 끼이익! 쾅! 쾅!
삐용삐용!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도로.
사람들이 사고 현장으로 몰려들고, 이선경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꺄악!”
“어, 어떡해! 사, 사람이 치였나 봐!”
“괘, 괜찮으십니까-!”
황급히 차를 박차고 나온 운전자가 튕겨 나간 이를 향해 달려간다.
“이봐요! 괜찮습니까?”
“끄으으. 괘, 괜찮습니다. 헉! 예지야!”
온몸이 부서지는 충격에도 종혁은 품속의 예지부터 찾았다.
몸을 둥글게 만 채 얼어붙어 있다가 고개를 드는 예지.
“아, 아저씨?”
종혁은 예지의 떨리는 눈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아저씨야. 경찰 아저씨. 아저씨가 전화하면 달려간다고 했지?”
“……흐에에에엥!”
예지는 울음을 터트렸다.
구해 준 게 고마워서.
더 이상 엄마, 아빠랑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아서.
예지는 종혁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상실의 눈물을 펑펑 쏟아 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예지를 살려 줘서. 예지가 다치지 않아서.
종혁은 예지를 꼭 끌어안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얼어붙어 있는 이선경을 향해 걸어갔다.
“나, 난…… 어, 어머, 미나야! 아악! 우리 미나 다친…….”
“예지야, 눈 감아.”
종혁은 허겁지겁 손을 뻗으며 달려오는 이선경을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
쩌어억!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튕겨지듯 옆으로 2미터를 날아간 이선경. 허공에 뿌려지는 피와 이를 보며 종혁은 예지를 내려놓았다.
“절대 눈 뜨지 마, 예지야.”
‘지금부터는 관람 불가니까.’
양손으로 눈을 가리는 예지를 뒤로한 종혁은 이선경을 향해 다가가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봤다.
“아으으…….”
공포에 질린 눈으로 종혁을 보는 이선경.
“일어나.”
형사로서의 촉이 서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다급히 국정원에게 연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시간 맞춰 발견해 가까운 거리에서 미행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시속 이십여 킬로미터에서도 죽는 게 저 또래의 아이다. 어쩌면 영안실에서 예지를 보게 됐을지도 몰랐다.
그걸 생각하니 살의가 차갑게 들끓기 시작했다.
‘하늘이 너희 개쌍년놈들을 미워한 이유가 있구나.’
“일어나라. 일어나지 않으면 대가리 부숴 버린다.”
섬뜩!
“크흡!”
심장이 멎는 공포에 이선경은 몸을 일으키려 애쓰고 또 애썼다.
“아으…… 읍!”
“그래. 수고했다.”
종혁은 겨우 몸을 일으킨 그녀의 목을 잡고 다리를 걸어 그대로 맨바닥에 메다꽂았다.
뻐어억!
눈알이 튀어나올 듯 커진 채 굳어 버린 이선경.
“쯧. 아쉽네.”
종혁은 그녀를 뒤로 돌려 눕혀 팔이 부러져라 꺾었다.
“이선경 씨, 당신을 아동 학대 및 아동 살해미수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이 지금부터 하는 모든 이야기는 법정에서 불리한 작용을 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체포구속적부심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알았냐, 이…… 아! 김예지! 귀 막아!”
눈을 감은 채 황급히 양손으로 귀를 막는 예지.
종혁은 이선경의 머리를 휘어감아 들어 올리며 그 귀에 속삭였다.
“이 씨발년아?”
“아으으…… 아이야…… 우이어으에 아이야…….”
“기대해. 넌 내가 어떻게든 무기징역 받게 해 준다.”
종혁은 곁눈질로 변명하는 이선경을 향해 씹어먹듯 말을 뱉어 냈다.
* * *
“……알았어.”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진 오택수는 최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거의 도착했는데 왜요? 팀장님께서 빌려주신 차만 팀장님 집에…….
“그거 그대로 끌고 나 있는 곳으로 와.”
주소를 문자로 찍어 준 오택수는 누군가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형님! 이게 얼마 만이에요? 살아는…….
“닥치고, 20분 준다. 내가 찍어 주는 주소로 달려와서 어떤 새끼들 미행 좀 해. 2백.”
-……15분만 기다리십쇼!
지이잉!
[20분!]
핸드폰을 옆으로 던진 오택수는 담배를 물며 차를 빠져나와 허름한 건물의 2층 건물을 보며 목을 꺾었다.
뿌드득!
“후우. 그럼 가 볼까?”
오택수는 2층 건물로 올라가 대현 F&M이란 간판이 걸린 문을 그대로 걷어찼다.
뻐엉!
“뭐여?!”
“씨발?! 당신 뭐야!”
놀라 굳는 십여 명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벌떡 일어나는 양복 입은 3명의 덩치들.
‘씨파 새끼들. 내 이럴 줄 알았다.’
딱 봐도 조폭이나 그쪽에 관련된 불법 사업체 같았다. 맞다는 것에 경찰 인생을 걸 수 있었다.
“뭐긴 뭐야, 짭새지. 개새끼들아.”
“짭새? 뭡니까. 경찰이면 이렇게 남의 업장에 함부로 들어와도 됩니까?”
오택수는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트리며 다가오는 덩치에게 명함을 날렸다.
“본청 짭새. 거기 보이지? 특별수사팀. 지금부터 입 열지 마라. 나 여기 불 지르기 싫다.”
“…….”
“사장이…… 아, 저기 있겠네.”
사무실 안쪽, 사장실이라는 문을 박차고 들어간 오택수는 퍼팅 연습을 하는 중이었는지 골프채를 든 채로 굳어 버린 오십대 장년인을 무시하며 소파 상석에 앉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예의가…….”
“더 이상 아가리 열면 여기 털어 버린다. 난 지금 너희가 어디 식구인지, 뭘 파는지 궁금하지 않아.”
“……무슨 일이십니까, 형사님?”
오택수는 장년인을 가만히 응시했다.
“내가 지금부터 질문을 몇 개 할 거야. 참고로 난 경고 따위 두 번 안 하거든? 생각 잘하고 대답해라.”
오싹!
감정이라고는 한 점 들어 있지 않는 무심한 눈.
‘무, 무슨?’
장년인은 식겁하면서도 자세를 공손히 했다.
“물어보십시오, 형사님!”
“여기에 김종학이란 새끼가 직원으로 있을 거야. 한 1년여 전에 입사한 놈이야.”
‘김종학?’
장년인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참고로 여기를 대현 계열사로 소개한 씹새끼야.”
“아!”
장년인은 그제야 김종학이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입양인지 뭔지 때문에 사무실을 시끄럽게 한 놈.
오택수는 그런 그를 빤히 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 대현 계열사 아니지?”
“……예.”
“여기 CCTV 없지?”
“예!”
오택수는 입에 문 담배를 소파에 비벼 끄며 새 담배를 물었다.
“데려와.”
구멍난 소파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 장년인은 다급히 사무실을 달려 나가 김종학을 데려오라고 외쳤고, 잠시 후 어깨를 잔뜩 움츠린 김종학이 얼떨떨해하며 사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큰형님! 처음 뵙겠습니다! 김종학입니다!”
‘이 시발 새끼가!’
“무, 무슨 소립니까! 큰형님이라뇨!”
큰형님이란 소리에 장년인이 기겁하자 오택수는 몸을 일으켜 김종학에게 다가갔다.
“덩어리, 넌 나가.”
“옙!”
“김종학 씨, 나 알지?”
“어? 너, 너는……?”
철컥!
“김종학, 널 입양 사기 및 사문서 위조, 아동 살해공모 혐의로 체포한다. 할 말 있어?”
김종학은 눈을 부릅떴다.
이제야 상황이 모두 파악 된 그.
“자, 잠깐만요! 잠시만요, 형사님! 이, 이건 모함입니다! 예! 미나를 데려오기 위해 법을 속인 거 인정합니다! 하, 하지만 살해공모라뇨! 전 그런 적 없습니다! 증거도 있어요!”
“증거?”
“여, 여기 핸드폰이요! 다 녹음되어 있습니다!”
오택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크큭. 너흰 진짜 다 왜들 이러냐.”
왜 이런 놈들은 반성이라는 걸 모를까.
왜 이렇게 비겁한 걸까.
그는 가슴속에서 끓고 있는, 겨우 누르던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 개새끼야-!”
오택수는 그대로 김종학의 멱살을 감아쥐며 땅을 향해 업어쳐 버렸다.
쿠웅! 뿌득!
어깨부터 땅에 처박힌 김종학이 눈을 부릅떴다.
* * *
“멋지네요.”
한쪽이 시퍼렇게 죽은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 목에 깁스를 한 이선경이 본청 취조실에 앉아 있고, 그걸 본 정용진 과장은 박수를 쳤다.
“훌륭해요! 우리 최 팀장, 특별수사1팀! 아주 칭찬합니다!”
일감을 배정하지 않겠는다는 상부의 결정이 내려졌는데, 알아서 일감을 찾은 것도 모자라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었다.
전치 12주. 어금니 두 개와 앞니 네 개가 날아갔기 때문이다.
깨진 게 아니라 뽑혔다. 전치 12주도 정말 아득바득 우겨서 최소한으로 잡은 것이었다.
“최 팀장, 이번 기회에 딱 까놓고 이야기 해봅시다. 나 싫습니까?”
아니라면 그런 징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사고를 칠 수가 없다. 이건 분명 정용진 자신을 싫어하지 않으면 벌일 수 없는 짓이었다.
이미 뒷목에 식은땀이 가득한 종혁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쯧. 그보다 어떻게 할 겁니까?”
김종학은 철저하게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사문서 위조로밖에 처벌을 못할 터.
그마저도 예지를 입양하기 위해, 딸로 받아들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기를 쳤다는 명분으로 호소하고 있기에 법정에서 집행유예 처분을 내릴지도 몰랐다.
그것조차도 뒷목이 뻣뻣해지는데, 잘못하면 김종학의 양부 자격이 유지될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 공무원이라면 그럴 확률이 높았다.
이런 정용진의 말에 종혁은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걱정 마세요. 1시간 안에 결단 날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종혁의 한 손엔 노트북이 들려 있었다.
덜컹! 끼이익!
종혁은 흠칫 놀라는 이선경의 맞은편에 앉으며 담배를 물었다.
“아직도 우연이었다고 주장할 겁니까? 발을 헛디뎌 밀치게 됐다고?”
“며, 몇 번 말했지만 그게…….”
“그래요. 예, 예. 다 알겠으니까, 일단 그 변명들로 조서 꾸미기 전에 영화나 한 편 감상합시다.”
노트북을 켠 종혁은 하나의 영상 파일을 틀어 주었고, 영상 속에 등장하는 김종학을 본 이선경은 눈을 부릅떴다.
-정말입니다! 제가 왜 그 여리고 착한 아이를 죽이는 일에 동참을 했겠습니까! 제가 아무리 날백수였다지만 선은 아는 놈입니다!
-그럼 이 녹음은 뭔데?!
‘녹음?’
철렁 심장이 내려앉을 만큼 불길함이 엄습한 이선경은 이내 흘러나오는 녹음 내용에 얼어붙어 버렸다.
-누가 알았겠어! 걔가 이렇게 도움이 될지! 이, 이게 대체 얼마야?
-……서, 선경아, 이래도 될까?
-뭐래. 자기도 좋아해 놓고? 자, 이거 봐. 몇 천만 원인지 보여?
‘이, 이……!’
기억이 난다.
이날의 대화가.
너무 사랑해 야반도주를 했지만, 훔쳐 온 돈이 밑바닥을 드러내자 한량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김종학.
그런 남자친구라도 좋았고, 결국 애를 가지게 되어 결혼도 했다.
하지만 유산을, 아니 낙태를 할 수밖에 없었다. 김종학이 너무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였다.
그녀의 인생에서 자식을 제외시켜버린 게.
그렇게 살다 다시 아이가 생겼다.
당시엔 낙태할 돈도 없어서 열 달 동안 힘들어해 가며 딸을 낳았지만 애물단지였다. 애물단지로 여겨야 했다.
그리고 어느새 진심으로 아이를 싫어하고 귀찮게 생각하게 됐다. 아니, 맨날 울고 말을 안 들으니 싫어졌다.
그러다…….
“부, 분명히 이때는 걔도 좋아했는데…….”
술에 취한 상태에서 답지 않게 움츠리기에 별생각 없이 불어난 통장 잔고에 기뻐했었다.
“그, 그런데 언제 녹음을? 왜?”
배 아파 낳은 딸이 남긴 거라 허투루 쓸 수 없어 현재 사는 집을 샀다. 그때 툴툴거리면서도 좋아하던 남편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그때부터였다. 애가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된 게.
“그, 그랬는데, 자기도 하자고 했는데…….”
그런데 그런 내용이 하나도 없다.
이선경 본인은 세상에 둘도 없는 악마였고, 김종학은 그런 그녀를 말리는 천사였다.
이선경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대화에 부들부들 떨었다.
“아, 아니잖아. 너도 좋아했잖아! 야, 김종학! 왜 이래!”
‘어이구, 지랄을 하네.’
-알았어. 걱정 마. 오늘 할 거니까.
-그래. 너무 무리하진 말고.
그날의 그 전화다.
김종학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재촉하기에 어쩔 수 없이 실행하게 된 그 전화. 그 전화마저도 녹음이 되어 있었다.
뚝!
이성의 끈이 끊긴 이선경은 멍하니 모니터를 봤고, 종혁은 노트북을 덮으며 담배를 물었다.
“감상평은 어때? 재밌어?”
초점이 없는 이선경의 눈이 종혁에게로 향한다.
“무, 무슨…… 아, 아니 난…… 이, 이건 모함이에요, 모함! 이 새끼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그런데 희한하네. 난 왜 당신이 조종을 당한 것 같지?”
덜컥!
“……조종?”
“잘 생각해 봐. 네가 일을 벌이기 전에 김종학이 부추긴 적 없어?”
종혁이 김종학의 취조 녹화본을 본 순간 떠올린 게 바로 이 점이었다.
처음 봤을 때 그 어수룩한 모습이 아니라 어수룩하고 착한 남편, 아빠를 가장한 사기꾼. 여자의 등골을 빨아먹는 기둥서방.
“어?”
있다.
가끔씩 답지 않게 똑똑해지던 남편 김종학.
생각해 보니 모두 이럴 때였다.
돈이 필요할 때.
그리고 이선경 본인을 부추길 때.
‘나, 나 지금 속은 거야? 언제부터? 처음부터? 그럼 평생?’
종혁은 그런 그녀를 향해 쐐기를 박았다.
“그게 아니라면 얘가 왜 녹음을 했을까.”
충격을 받은 뒤통수부터 머리가 하얗게 변해 간다.
“……이 새끼 지금 어디 있어?”
‘끝났네.’
종혁은 속으로 씨익 웃었다.
“이 개새끼 어디 있냐고-!”
종혁은 대답 대신 몸을 일으켜 문을 열어 주었고, 이선경은 의자를 박차며 취조실을 빠져나갔다.
“그쪽이 아니라 저쪽. 저 방. 쪼기 저 문.”
후다닥! 벌컥!
“야 이 개새끼야! 너도 좋아했잖아! 네가 부추겼잖아-!”
“헉?! 서, 선경아! 악! 악!”
순간 난장판이 된 김종학의 취조실.
그 문 앞에 선 종혁의 곁으로 김종학을 취조한 후 잡아 놓고 있던 오택수가 선다.
“쌍년이 쌍놈 새끼를 물어뜯네.”
“이런 걸 보고 부창부수라고 하는 거죠.”
똑같은 것들끼리 모여 개 같은 짓거리를 한 거다. 하늘조차 용서할 수 없는 그런 짓을.
“이 씨발 쌍년이?!”
짜악!
“네가 한 거 맞잖아, 이 개년아!”
“그래, 죽여! 죽여어-!”
콰악!
“아악! 아아악! 씨, 씨발 물어?! 난 못 물 줄 알고?!”
“아, 너 취조하는 중이라 연락 못했는데, 보건복지부에서 사람이 왔대. 부장이라던데?”
“……씨부럴. 걔들은 또 왜 왔대.”
혀를 찬 종혁은 머리를 긁으며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