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93화 (293/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93화>

    예지가 울음을 터트리기 몇 시간 전, 이선경의 손을 잡은 채 마트에서 나온 예지의 걸음이 다시 느려진다.

    여전히 놀이터에서 신이 나게 뛰어노는 아이들.

    같이 놀고 싶다. 미끄럼틀을 타고 싶다.

    그 작은 욕심이 다시 예지의 발을 붙들었다.

    예지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어, 엄마. 놀이터에서 놀아도 돼요?”

    “뭐?”

    순간 차가워진 이선경의 눈이 예지를 가만히 응시한다.

    “노, 놀이터에서 놀고…….”

    “……쳤나. 헛소리 말고 따라와.”

    확 잡아끌리는 몸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예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자, 잘못…….”

    “따라와.”

    예지의 손을 잡아끌며 집으로 도착한 이선경은 내던지듯 예지를 거실로 밀쳤다.

    “악!”

    “김미나, 엄마가 잘못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혼이 난다. 반사적으로 베란다를 본 예지는 경기를 일으켰다.

    “힉! 자, 잘못했어요! 엄마, 잘못했어요!”

    “흥. 늦었어.”

    다시 예지를 잡은 이선경은 베란다로 향했다.

    예지는 더 크게 울며 힘주어 버텼지만, 6살 아이가 성인의 힘을 이겨 낼 수는 없었다.

    결국 베란다 화장실에 내동댕이쳐지며 변기에 부딪친 예지.

    “거기서 내일까지 반성하고 있어.”

    “엄마! 엄마! 미나가 잘모해써여! 다시…….”

    텅! 쾅쾅쾅!

    “엄마! 엄마!”

    꽈앙!

    “힉!”

    깜짝 놀란 예지는 그대로 굳어 버렸고, 화장실 문을 걷어찬 이선경은 조용해진 소음에 짜증이 가득 담긴 혀를 차며 돌아섰다.

    “이래서 애들은 풀어 주면 안 된다니까.”

    꽝!

    이선경은 베란다 문을 닫으며 거실로 향했고, 남겨진 예지는 필사적으로 울음이 터지려는 몸을 감쌌다.

    울면 안 된다. 울면 더 혼난다.

    “우, 울면 나쁜 아이.”

    울면 엄마가 예지를 더 싫어할 것이다.

    겨우겨우 울음을 참은 예지는 변기 위로 올라가 무릎을 끌어모았다.

    ‘아, 아파……. 추워…….’

    바들바들 떨리는 몸에 예지는 눈을 꼭 감았다. 아프고 추울 때마다 이렇게 웅크리고 눈을 감으면 덜 아팠기에.

    엄마의 화가 얼른 풀리기를 바라며 예지는 눈을 감았다.

    한편 냉장고에 장을 봐 온 것을 대충 쑤셔 넣은 이선경은 베란다를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컴퓨터를 켰다.

    띵동! 띵동!

    “누구지? 누구세요!”

    -택배입니다!

    “택배? 올 게 없는데?”

    의아해하며 현관문을 연 그녀는 깜짝 놀랐다.

    “선경아!”

    “짜잔! 놀랐지?”

    샴페인이나 케이크 따위를 들며 환하게 웃는 여성들.

    “언니! 애들아!”

    2001년 졸업한 야간 대학의 동기들.

    “연락도 없이 여기까진 무슨 일이야?”

    치미는 짜증을 누른 그녀는 태연히 웃었고, 여성들의 표정이 묘해진다.

    “내가 이년 이럴 거라고 했지? 이년아 너 오늘 생일이야. 몰랐어?”

    “……아닌데? 다음 주가 생일인데?”

    “어?”

    여성들의 시선이 오늘 일의 주동자에게로 몰렸다.

    이선경은 한숨을 내뱉었다.

    “헤휴. 이번에도 착각했어? 언니 진짜 산부인과 가 봐라.”

    “……아, 몰라몰라. 일주일 먼저 한다 쳐!”

    억지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이선경은 그들을 안으로 초대했다. 어찌 됐건 생일을 축하해 주러 온 사람들 아닌가.

    그녀들의 손에 들린 선물 꾸러미에 이선경의 눈이 빛났다.

    “어서 와. 이렇게 올 줄 알았으면 음식이라도 사 놨을 텐데.”

    “배달시키면 되지?”

    그녀들은 꺄르르 웃으며 이선경의 이른 생일잔치를 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욱!’

    오늘 이선경의 집을 찾은 여성들 중 한 명이 갑자기 둔중한 충격이 발생한 아랫배를 붙잡고 일어선다.

    덜컹.

    그러나 문이 잠긴 화장실. 여성의 낯빛이 새하얘진다.

    쿵쿵쿵!

    -안에 있어요.

    “유, 윤정 언니, 나와 봐. 나 급똥!”

    -아직 멀었어, 이년아. 베란다로 가.

    ‘아, 베란다도 있었지? 거긴 싫은데.’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녀는 얼른 베란다로 달려가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꺅?!”

    놀란 여성보다 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예지.

    “넌 누구니?”

    “아, 안녕하세요. 김미나입니다. 6살!”

    “아.”

    베란다에서 들리는 소리에 그제야 예지를 베란다 화장실에 가둬 놨음을 깨달은 이선경은 재빨리 일어섰다.

    지인들에겐 보여 주고 싶지 않았던 예지.

    그녀들의 표정이 놀람과 당황으로 일그러지자, 이선경은 얼른 화장실로 달려가 지인을 화장실로 밀어 넣고 예지를 거실로 데려와 선수를 쳤다.

    “반성 다 했어?”

    “……녜.”

    “그럼 엄마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놀이터 가서 놀아.”

    “네?”

    “엄마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녜! 안녕하세요. 김미나입니다! 6살!”

    예지는 혹여 엄마의 마음이 바뀔까 얼른 집을 뛰쳐나갔고, 이선경은 몰리는 시선에 어깨를 으쓱했다.

    “얘가 오늘 큰 잘못을 해서.”

    “……너 또 입양한 거야? 언제?”

    “얼마 안 됐어. 눈에 너무 밟히는데 가만 놔둘 수는 없고…….”

    “아니, 그래도 전에 그 입양한 아이를 보낸 지……. 어휴, 이 미련한 년아. 세상 착한년아.”

    지인들의 얼굴이 울상이 되어 가자 이선경은 속내를 감추며 씁쓸히 웃었고, 놀이터로 달려가던 예지의 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놀이터에서 놀고 싶은 건 맞다.

    하지만 혼자 놀고 싶은 건 아니었다.

    “꺄하하하하!”

    “꺄르르르!”

    “딸, 조심해! 뛰다가 다쳐!”

    “응, 아빠!”

    “엄마! 엄마! 시소! 시소!”

    “어휴. 그럼 엄마랑 시소 탈까?”

    “응!”

    바람이 추운데도 따뜻하고 샘이 나는 놀이터.

    “예, 예지두 엄마랑 놀고 싶은데…….”

    하지만 그 말을 했다가는 또 혼날 것이다.

    “예지는…… 아니, 미나는 착한 아이니까.”

    조르면 안 됐다.

    조르면…… 착한 딸이 될 수 없었다.

    예지는 놀이터 한구석으로 걸어가 쪼그려 앉아 엄마아빠와 뛰어노는 아이들을 멍하니 응시했다.

    다음에 엄마와 함께 놀이터에 왔을 때 어떻게 노는지 알려 주기 위해서.

    예지는 치미는 설움을 누르며 쳐다보았다.

    “예지야?”

    움찔!

    고개를 돌린 예지는 종혁을, 얼굴에 걱정이 가득한 종혁을 발견하곤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참아야 하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흐에에에에엥!”

    예지는 종혁에게 달려가 안겼다.

    *   *   *

    “훌쩍, 훌쩍!”

    ‘어이구.’

    뭐가 그렇게 서러워 울었던 걸까.

    왼쪽 가슴조차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작은 이 아이가 왜 그리 울고 있었던 걸까.

    또 왜 혼자 놀이터에 있는 걸까.

    형사라서 그런지 좋지 못한 의문이 생겨남에 종혁은 애써 아직 아무것도 확인이 안 됐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예지를 더 꼭 끌어안았다.

    “우리 예지 왜 울어. 누가 괴롭혔어? 쟤들이 괴롭혔어?”

    “……으응.”

    “그럼 아저씨가 보고 싶었어?”

    “으응…….”

    “뭐?”

    예지를 본 종혁은 충격을 받은 얼굴을 했다.

    “아저씨 안 보고 싶었어? 아저씨는 예지 엄청 보고 싶었는데? 진짜로?”

    “……보, 보고 싶었어요.”

    눈을 데구루루 굴리더니 인심 썼다는 듯 대답하는 예지.

    더 충격받은 얼굴을 한 종혁은 벤치에 털썩 주저앉으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에휴. 내가 이런 말 들으려고 선물까지 사 들고 온 건가…….”

    “선물?”

    “이 자식 봐라? 선물 하니까 눈이 똥그래지네?”

    “무슨 선물이요? 예지, 아니 미나 선물이에요?”

    ‘미나? 아, 이름이 바뀌었구나.’

    입양이 됐을 때 이름이 바뀌는 건 흔한 일이기에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볼을 내밀었다.

    “응, 선물. 하지만 그냥 줄 순 없으니까 아저씨 뽀뽀해 주면…….”

    쵹!

    볼에 닿는 감촉에 깜짝 놀란 종혁은 ‘주세요’ 양손을 공손히 내미는 예지의 모습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래서 딸이 최고라고 하는가 보다.

    ‘요망한 것.’

    “자.”

    “와아! 핑키 공주님이다! 힉!”

    소꿉놀이 세트까지 있다. 고아원에 있을 땐 언니들만 가지고 놀아서 언제나 부러웠던 소꿉놀이.

    “좋아?”

    “녜! 감사합니다!”

    종혁은 선물을 끌어안고 행복해하는 예지의 모습에 푸근히 웃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싶지만…….’

    아직 완전히 진정이 안 된 상태라 다시 울음을 터트릴 수 있기에 종혁은 치미는 질문들을 꾹 눌렀다.

    “아저씨! 우리 소꿉놀이 해요!”

    “소꿉놀이?”

    “미나는 진짜진짜 소꿉놀이가 하고 싶어요!”

    “그래? 그럼 그러지 뭐.”

    움찔!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몸을 들썩이며 파랗게 질리는 주위 아버지들.

    ‘아, 안 돼!’

    다급한 절규가 그들의 마음속에서 터져 나온다.

    ‘뭐야, 왜 저래?’

    육아 경험이 전무한 종혁은 스스로 지옥의 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무한반복지옥 안으로 말이다.

    ‘난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혼이 빠져나간다는 게 이런 걸까.

    맨손으로 소도 때려잡을 수 있는 몸뚱이에 힘이 빠진다. 가만히 앉아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두뇌가 삐걱거리며 파업을 선언한다.

    “여보옹, 다녀오셨어요?”

    벌써 32번째 반복되는 레퍼토리.

    이젠 인사에 기교까지 넣고 있다.

    이미 날은 저물었고,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은 모두 사라져 그들만이 놀이터에 온기를 전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너 거기서 뭐하냐?”

    “아, 아빠?!”

    ‘아빠? ……겁먹었다?’

    “넌 또 뭐고?”

    마치 찍어 누르듯 어깨를 펴며 얼굴을 험악하게 구기는 사내.

    ‘껄렁한 폼이 딱 양아친데…… 흠.’

    종혁은 일단 몸을 일으켜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최종혁 형사입니다.”

    움찔!

    “혀, 형사님이요?!”

    벌어졌던 어깨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다.

    “예. 본청 간편신고관리과의 최종혁 형사입니다.”

    “보, 본청…… 본청 형사님이 여길 왜…….”

    종혁은 주눅이 든 그의 모습에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아, 제가 이번에 이곳에 이사를 오게 됐는데…… 하하, 이게 인연이 어떻게 되려는지 제가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는 고아원의 아이가 이곳에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지와는 어떻게?”

    “……딸입니다.”

    “아아, 아버님이셨군요? 원장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종혁은 냉큼 명함을 내밀었고, 남편도 눈을 부릅떴다.

    ‘트, 특별수사팀? 팀장?!’

    명함에 적힌 글귀에 화들짝 놀랐던 남편은 뒤늦게 아차 하며 허둥지둥 자신의 품을 뒤졌다.

    “여, 여기 제 명함입니다.”

    “대현 F&M? 이야, 이거 대기업에 다니시는 분이셨군요? 퇴근하시는 길인가 봅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크흠. 아직 안 했습니다.”

    종혁은 애써 의연해하는 그를 향해 손뼉을 쳤다.

    “그거 잘됐군요! 저도 아직 식전이거든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식사하시죠?!”

    “예에? 아,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살 테니 가시죠? 예지는 뭐 먹을래? 갈비? 오케이, 갈비. 아버님도 갈비 괜찮으시죠?”

    손을 이리저리 꼼지락거리던 남편이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예.”

    *   *   *

    시끌시끌. 왁자지껄.

    사람들과 고기 굽는 냄새로 가득한 소갈비집.

    이선경이 남편을 보며 입술을 달싹인다.

    “미쳤지?”

    지인들과 잘 놀고 있다가 불려 나온 것도 짜증 나는데, 무려 형사다.

    “그럼 씨발 어떡하라고. 형사가 가자는데 뿌리치라고?”

    분명 어떻게든 따라올 기세였다.

    이선경은 예지를 죽일 듯 노려봤다.

    “어떻게 된 거야?”

    “아, 아는 아저씨요.”

    “자세히!”

    “히끅!”

    겁먹은 예지는 얼른 알고 있는 사실들을 다 털어놨고, 이선경과 남편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니, 씨발 꼬여도 어떻게 이렇게 꼬이냐…….”

    “……됐어. 우리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없…… 지?”

    “그럼 닥치고 의연하게 행동해. 괜히 이상한 말 해서 꼬투리 잡히지 말고. 김미나, 너도 허튼소리 하면…… 알지?”

    이선경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지자 예지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구, 안 드시고 뭐하세요?”

    “어머. 사 주시는 분께서 자리에 안 계시는데 어떻게 저희가 먹어요.”

    화사하게 밝아지는 그녀의 얼굴에 종혁은 죄송하다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팀장님이시라고요?”

    “하하, 예. 제가 경찰대를 졸업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어머님은 따로 하시는 일 있으세요?”

    “휴우. 저도 뭘 하고 싶은데 우리 미나랑 여기 남편이라는 아들놈을 키우느라 뭘 할 틈이 없네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혹시 있을까요?”

    “하하하. 그러시다면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주로 어떤 업무를 하세요?”

    “그, 그게 지원 쪽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지원이지 거의 심부름꾼이지만요, 뭐. 하하.”

    “아아, 그러시구나. 저도 그래요. 말이 수사팀이지 인터넷에 접수된 사건만 검토한다니까요. 그 인터넷 신고 사이트 아시죠?”

    “아.”

    이선경과 남편의 눈이 순간 빛났고, 종혁은 그런 그들을 향해 술병을 들었다.

    “아버님, 어머님. 한잔 받으시죠?”

    “가,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형사님도 한잔 받으세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차를 가져와서…… 하하. 대신 고기를 아주 맛깔나게 구워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런 거 잘 하거든요!”

    치이익!

    종혁은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고기를 불판에 올렸고, 귀에 꽂히는 고기 굽는 소리에 이선경과 남편은 방금 전 짜증도 잊고 모든 신경을 고기에 집중했다.

    이게 얼마 만의 꽃등심이란 말인가.

    “어이구, 역시 소고기라서 그런지 빨리 익네요. 자, 한 점씩 무장하시죠.”

    종혁은 이선경과 남편의 접시에 구운 고기를 한 점씩 놓아 주었고, 음료가 담긴 컵을 들었다.

    “그럼 건배할까요? 제가 만나서 선창하면 다 같이 반갑습니다 하는 겁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채채쟁!

    허공중에서 경쾌하게 부딪치는 잔들.

    허둥지둥 예지도 뒤늦게 잔을 들어 올린다.

    “으음!”

    “와. 정말 맛있네요. 형사님이 사 주셔서 더 그런가?”

    “하하. 그런가요? 많이 드세요.”

    ‘이 사람들 봐라?’

    속으로 눈을 가늘게 뜬 종혁은 예지의 빈 접시에 소고기를 올려 주며 이선경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정말 훌륭한 결정을 하셨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셨을 텐데. 혹시 예지에게 형제가 있는 건가요?”

    흠칫!

    “……아니요. 원래는 있었을 텐데…….”

    “아, 아니요. 더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종혁은 애써 당황하며 말렸고, 이선경은 씁쓸히 웃으며 술잔에 술을 따랐다.

    꿀꺽!

    “후.”

    그녀는 예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처롭게 응시했다.

    “원래 미나 전에 한 아이가 있었어요. 아니, 두 아이겠죠. 첫 번째로 잃어버린 아이는 제가 배가 아파 낳은 보물이었고요.”

    그렇게 시작된 푸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삶이 말라 가는 입술을 통해 내뱉어진다.

    “솔직히 첫 입양 때 말이 좀 있었어요. 못 먹이고 못 입혀 키우는 것 같다고. 그래서 함께 옷을 사러 가던 길에 그만…….”

    “괜찮습니다, 어머님. 더 말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흑. 형사님, 이젠 우리 미나가 제게 전부예요. 정말…… 흐윽! 미나야!”

    돌연 껴안는 이선경의 행동에 화들짝 놀란 예지는 이내 떨리는 눈을 꼭 감으며 들썩이는 엄마의 등을 토닥였다.

    “……죄송합니다, 형사님. 제 아내 주량이 소주 한 잔이라서요.”

    “아이고, 전 그것도 모르고…….”

    “소고기 먹을 거야! 내놔!”

    갑자기 일어나 젓가락을 드는 그녀.

    ‘허허, 거참.’

    종혁은 더 이상 뭘 물을 수 없을 것 같음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스르륵!

    이선경과 남편, 예지가 사는 집이 있는 맨션 앞으로 차가 선다.

    “이, 이거 끝까지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취하셨는데 그러실 수 있죠.”

    “아우. 2차 가자, 2차!”

    “어이구, 이 진상.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라며 손을 저은 종혁은 꾸벅꾸벅 조는 예지를 힐끔 봤다.

    “이거 아버님께서 한 번에 옮기시지 못할 것 같은데 제가 도와 드릴까요?”

    “예? 그, 그게…….”

    “괜찮습니다. 괜히 깨우면 애가 울잖아요.”

    “……으음. 그래 주시겠습니까? 이거 너무 죄송해서.”

    “죄송할 거까지야. 그럼 올라가시죠?”

    뒷문을 열어 예지를 안아 든 종혁은 눈짓을 했고, 남편은 ‘에라이’ 하며 이선경을 부축해 계단을 올랐다.

    띠디디디디! 띠리릭!

    “하하. 좀 어수선하죠?”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죠. 예지가 자는 곳은 어딥니까?”

    “이쪽 안방 침대에 놓으시면 됩니다.”

    “예.”

    ‘흠.’

    “우웅.”

    안방을 빠르게 스캔한 종혁은 침대에 눕혀지자 칭얼거리는 예지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전 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뵐 때는 이웃으로 뵙겠네요.”

    “하하. 예,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예. 그럼.”

    다시 한번 거실을 스캔한 종혁은 집을 나섰다.

    그 순간이었다.

    술주정을 하듯 침대를 뒹굴다 눈을 번쩍 뜬 이선경이 종혁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남편을 노려본다.

    “갔어?”

    “어. 갔어. 크, 역시 내 마누라 연기는…….”

    이선경이 중간중간 술주정을 부리면서 말을 끊는 바람에 말실수를 하지 않았고, 굉장히 어색해한 자리가 이어지다 끝이났다.

    꽃등심을 배불리 먹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형사에게 말실수를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내가 너 때문에…….”

    “미안하다니까.”

    “됐어. 이거나 작은 방에 던져다 놓고 와. 깨우지 말고! 아직 형사 안 갔을 텐데 깨우다 울면 어쩌려고?”

    “씨발. 가지가지 하네.”

    얼굴을 구기며 짐짝들 듯 예지를 들어 작은 방에 놔둔 남편은 안방으로 돌아와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제야 남편의 양복이 눈에 들어온 이선경은 눈을 빛냈다.

    “그보다 오늘 어땠어?”

    “아, 맞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응?”

    “내가 오늘 뭘 봤는지 알면 너도 깜짝 놀랄걸?”

    오늘 본 신세계를 떠올리자 흥분한 남편은 두서없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고, 이선경의 눈은 점점 커져 갔다.

    맨션 밖에서 종혁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그들은 새로 접한 신세계에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찰칵! 치이익!

    타들어 가며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는 담배를 문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촉이 더러운데…….”

    자신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던 예지. 눈에 밟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른 의미로 이선경, 김종학 부부 역시 눈에 밟혔다.

    아이가 사는 흔적이라곤 빨래밖에 없던 집안 내부.

    거기다 아까 고기 첫 점을 먹을 때도 이선경, 김종학 부부는 예지보다 자신들부터 먹고 음미했다.

    부모라면 그럴 리가, 아이를 원해서 입양을 한 이상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

    이후에야 아차 하며 예지를 챙기긴 했지만, 구린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코를 긁은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납니다, 권 이사. 대현 F&M에 대해 알아봤어요?”

    아까 소고깃집에서 화장실에 갔을 때 알아보라고 한 내용.

    -네. 대현 어디를 뒤져 봐도 그런 이름의 계열사는 없었어요.

    전국 어느 곳에도 말이다.

    “그래요?”

    ‘그럼…… 김종학, 넌 뭐지?’

    “너흰 진짜 뭐지?”

    아이가 부모라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눈치를 보는 부모.

    당연한 보살핌조차 기대하지 않는 아이.

    종혁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불이 켜진 이선경의 집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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