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92화>
“네, 수고하셨습니다.”
질의응답 서류를 정리한 남성이 따라 일어서는 예지의 법적 모친인 이선경을 향해 푸근히 웃는다.
그런데 그 눈 깊숙한 곳에 안쓰러움이 스친다.
“참 대단한 분들이십니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사고로 아이를 잃은 후 그 충격에서 벗어나자마자 입양을 결정했던 이선경 부부. 그런데 그 입양된 아이도 사고로 잃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폐인이 됐을 텐데, 이렇게 또 입양을 결정하였다. 강화된 입양 절차에 아버님은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다. 정말 하늘이 내려 주신 천사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뭘요. 아, 이건 가시면서 동료분들과 목이라도 축이세요.”
“어이구, 뭘 이런 걸 다. 감사합니다. 꼬마 아가씨도 또 봐요?”
“아, 안녕히 가세요!”
띠리릭!
문이 닫히자 나긋나긋 웃던 이선경의 눈이 표독스러워진다.
그녀는 방금 담당자에게 준 돈을 아까워하는 남편을 노려봤다.
“야, 이 화상아. 내가 말실수하지 말랬지! 뭐? 현대? 현대는 어디에 있는 회사니!”
얼른 대현으로 바꿔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아하하. 그, 그보다 거봐! 그렇게까지 유난 떨지 않아도 잘 넘어간다고 했잖아!”
“닥쳐! 어휴. 내가 너 때문에 아주 늙는다, 늙어. 얼굴만 잘생기지 않았어도…….”
“으흐흐. 얼굴만 잘생겼어?”
순간 다가오는 남편의 모습에, 오랜만에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그 모습에 이선경의 볼이 발그레 붉어진다.
“미, 미나는 방으로 들어가. 아, 그리고 미나야.”
“네?”
“잘했어. 우리가 미나를 사랑해서 데려온 거 알지?”
“……녜!”
날카로운 눈매에 퍼지는 따뜻한 미소.
며칠 전 고아원에 자신을 데려왔을 때 짓던 그 미소.
너무 기뻐 발음이 센 예지는 부엌 옆 작은 방으로 향했고, 이선경은 남편의 묘한 눈빛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네가 애 키우는 것에 대해 알긴 아니?”
“애 키우는 건 몰라도 이건 잘 알지?”
슬그머니 엉덩이를 쥐는 억센 손길.
“흑! 어, 얼른 안방으로 가.”
“왜? 여기가 더 좋지 않아?”
“……미친놈.”
“싫어?”
“아니, 좋아.”
이선경은 다급히 남편의 얼굴을 잡으며 입술을 들이밀었고, 뜨겁고도 농후하게 퍼지는 신음 소리에 작은 방에 앉은 예지는 슬그머니 양 귀를 막았다.
‘나도 좋아해요, 엄마.’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무서워졌지만 엄마, 아빠라서 좋았다.
자신에게도 엄마, 아빠가 생겨서 좋았다.
예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 *
“으음.”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에 이선경의 남편이 눈을 떠 옆을 본다. 돌아누운 채 자고 있는 이선경이 둥실한 엉덩이와 매끈한 허벅지를 드러내고 있다.
순간 남편의 눈에 음흉한 웃음이 번진다.
짝!
손에 감기는 탄탄한 엉덩이의 감촉.
남편은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향했고, 미소를 지으며 눈을 뜬 이선경은 부엌 옆 작은 방으로 향했다.
달칵!
“일어났니?”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이불까지 개어 놓고 배꼽인사를 하는 예지.
“나와.”
얼른 발을 떼는 예지의 손을 잡아끈 이선경은 예지를 부엌 앞에 세우며 입을 열었다.
“네가 이 집에 온 지 얼마나 됐지?”
“녜?”
숫자가 약한 예지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허둥지둥 접는다.
“유, 육 일이요!”
“그래. 벌써 6일이나 됐네. 이제 이 집에 대충 적응한 것 같으니까 이 집의 룰을 알려 줄 거야. 그동안 내가 가르친 게 뭐지?”
“어…… 음. 7시에 일어나야 한다. 자기 이불은 자기가 개야 한다. 자기 옷은 자기가 입어야 한다. 엄마, 아빠 설거지를 해야 한다. 만나면 인사. 청소는 아침 10시!”
“……잘 외우고 있네.”
퉁명스럽고 낮은 말투에 예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럼 이제 한 가지 더 가르쳐 줄 거야. 앞으로 우리가 일어나기 전에 네가 해야 될 일이지.”
“네!”
가르쳐 주는 걸 잘 해낼수록 엄마가 좋아하기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예지는 이 집에 온 첫날에 배운 것처럼 의자를 싱크대 앞에 가져다 놓았다.
“오늘은 처음이라서 시범을 보일 건데, 다음부터는 네가…… 뭐야, 왜 없어? 칫. 어쩔 수 없나?”
냉장고를 연 이선경은 계란을 싱크대에 던지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다.
“잘 보고 외워. 태우면 혼날 테니까.”
촤르르르르!
뜨거운 기름에서 튀겨지듯 익어 가는 계란. 고아원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계란이라서 예지의 침이 꼴깍 넘어간다.
“못 먹고 자란 티를 내는 것도 아니고.”
혀를 찬 이선경은 움찔 몸을 굳히는 예지를 외면하며 큰 대접에 밥을 푸고 계란과 참치를 얹은 후 간장과 참기름을 끼얹었다.
“후우. 시원…… 음, 계란 냄새.”
“다 씻었으면 얼른 밥 먹어.”
“뭐야, 간장계란밥이야? 나 오늘 첫 출근인데?”
“저녁에 맛있는 거 해 줄 테니까 얼른 먹기나 해.”
“그냥 차라리 외식하자.”
“돈은 있니?”
입을 다문 남편은 뚱한 얼굴로 식탁에 앉았고, 이선경도 싱크대 앞에 세워 둔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예지도 얼른 숟가락을 들고 걸어오다 매서운 이선경의 눈빛에 멈춰 서야 했다.
“내가 뭐라고 했지?”
“어, 엄마, 아빠 밥 드신 후에 미, 미나가 먹고 치운다.”
“왜?”
“의자가 두 개라서…….”
“기다려.”
매정히 일견한 이선경은 간장이 끼얹어진 계란을 콱콱 누르며 밥을 비볐고, 예지는 그 모습을 처량히 쳐다보았다.
이윽고 밥을 다 먹은 이선경과 남편은 몸을 일으켰고, 예지는 냉큼 이선경이 앉은 자리에 기어 올라가 앉았다가 낙담했다.
깔끔하게 비워진 그릇.
‘나두 계란…….’
먹고 싶었다. 하지만 먹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우리 예지도 엄마, 아빠가 생기면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고, 시키지 않는 것도 하면 안 돼. 그래야 예쁜 아이가 되는 거예요. 알았지?
원장님이 언제나 하시던 말씀.
예지는 입술을 꿈틀거리다 식탁 위 밥통을 열어 밥을 퍼 맨밥에 참치와 김치를 반참 삼아 수저를 뜨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달그락, 달그락.
설거지 소리가 울리는 집.
“으이그. 넥타이 하나 제대로 못 매니? 이리 줘 봐.”
“흐흐. 나 진짜 우리 선경이 없으면 어떡하냐.”
“흥. 아부해도 나오는 거 없거든?”
비실 웃으며 목을 맡긴 남편은 부엌의 풍경을 보곤 입술을 비틀었다.
“쟤는 똘똘하네.”
“내가 어련히 잘 골랐겠어?”
“네, 네. 알아서 모십죠.”
“다 됐다. 그럼 다녀와. 또 성질 못 이겨서 사고 치지 말고. 쟤 데려오기 위해 취직한 거라지만, 이왕 취직한 거 잘해야지 않겠어?”
“잔소리는 그만 좀 해라. 그럼 다녀올게.”
“조심히 다녀와!”
띠리릭! 쿵!
문이 닫히자 이선경의 눈썹이 하늘로 솟았다.
그녀는 쿵쿵 부엌으로 향했다.
“넌 아빠가 가는데 인사도 안하고 뭐하니!”
“헉!”
“늦었어! 어서 옷이나 입어! 장 보러 가야 하니까!”
“네, 네!”
냉큼 방으로 들어간 예지는 옷을 입고 나왔고, 그런 그녀를 위아래로 살핀 이선경은 콧방귀를 뀌며 손을 내밀었다.
“손.”
“네? 네!”
고아원에서 떠날 때 잡은 것을 빼면 처음으로 잡는 손. 여전히 차갑지만, 예지에겐 세상 그 무엇보다 따뜻했다.
그렇게 집을 나선 둘은 맨션 단지 근처의 마트로 향했다.
“어머, 선경 동생! 걔가 이번에 걔야?”
“호호! 네! 우리 딸 예쁘죠?”
“하이구, 예뻐라. 아가야, 이름이 뭐야?”
“김미나입니다. 6살!”
“호호호. 똘똘하기도 하지. 그런데 어디 가?”
“마트에 장 보러 가요. 제가 바쁠 땐 미나가 대신 심부름을 가야 할 텐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려 줘야죠.”
“……가만 보면 선경 동생은 참 그런 거 잘 가르쳐. 내 새끼는 10살이나 됐는데도 아직 심부름 하나 잘 못 가는데. 비법이라도 있어?”
“비법은요. 미나가 영특해서 가르치는 거죠.”
그녀를 불러 세운 삼십대 후반 여성이 부러워하자 슬쩍 콧대를 세운 이선경은 이별을 고하며 가던 길을 갔다.
“귀찮은 년.”
“네?”
못 들어서 눈을 깜빡이는 예지.
이선경은 대답 대신 손을 낚아채듯 끌며 마트로 향했다.
그때였다.
“꺄르르르르!”
“와아아아!”
꾀꼬리 재잘대는 것처럼 예쁜 소리들이 울리는 놀이터.
이사하기 전의 고아원에 살 때도 보지 못했던 놀이터의 모습에 예지의 시선이 뺏긴다.
모래 바닥과 놀이기구를 뛰어다니며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들과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아줌마들.
예지의 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뭘 보고…… 어휴, 진짜. 얼른 안 와?”
“윽! 녜!”
끌려가면서도 예지의 시선은 놀이터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한편 어느 허름한 건물의 앞에 선 이선경의 남편은 1층 PC방 간판을 보며 숨을 가다듬는다.
이곳이다. 앞으로 자신이 일을 해야 할 곳이 말이다.
“씨발, 쫄 거 없어. 다 아는 형님들이잖아.”
그리고 원래대로 따지면 자신은 이미 1년 전부터 이 회사의 사원으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 아는 형님이 명의를 좀 빌려 달라고 해서 빌려준 것이지만 말이다. 그 대가로 다달이 용돈을 받았으니 불만은 없었다.
그러다 예지를 데려오기 위해선 일하는 모습을 검사받아야 하기에 딱 한 번 출근을 했는데, 그게 운 때가 맞은 건지 이번에 일손이 부족하다고 불러 주었다.
‘원래는 저기 2층이었는데…….’
뭘 하는지 모르지만, 지금도 2층에선 사무실이 운영되는 걸로 알고 있다.
“……됐어. 신경 써서 뭐해.”
어차피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심부름 같은 잡일만 해 주면 월급을 준다고 했으니 그것만 받으면 장땡이었다.
심호흡을 한 그는 1층 PC방 문을 활짝 열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타다라라라락!
“아, 씨발. 뭐하냐! 매도 안 하냐? 호가 상승하잖아!”
“좆까. 아침 장 열리면 호가 상승하는 걸 아직도 모르냐, 빡대가리야?”
시끄럽게 떠들며 컴퓨터를 두드리는 7명의 사내들.
뭘 하는지 짐작이 안 갈 정도로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이선경의 남편은 어리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 왔어? 이리와!”
“예, 예!”
이선경의 남편은 냉큼 안쪽에 있는 덩치 큰 사내에게 다가갔다.
한때 조폭이었던 아는 형님.
“좀 너저분하지? 전에 말한 것처럼 쟤들이 필요하다는 걸 가져다주는 게 네 일이거든? 담배나 맥주 따위를 사다 주고 청소만 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하루 7시간, 일주일에 5일만 일하면 월 150만 원이다.
‘와씨. 놀고먹으면서 150만 원?’
아무리 일하기 싫다지만 이런 걸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때 그 담당관인가 뭐시긴가 온다고 했을 때 너 일하는 모습 보고 사장님이 괜찮을 것 같다고 해서 어렵게 만든 자리니까 사고 치지 마라. 어디 가서 여기 이야기는 하지 말고.”
“가, 감사합니다, 형님!”
“과장님이라고 불러, 새꺄. 그런데 그건 뭐냐, 대체.”
“제, 제 아내가 아이를 좋아해서요. 그런데 배 아픈 건 싫다 하고…….”
“음? 흠.”
남편의 눈을 본 덩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고만 안 치면 되지.’
“씨벌, 여자가 지랄을 하네. 알았어. 앞으로 잘해 보자, 김 대리.”
“예, 예! 과장님!”
대리.
허리를 깊이 숙인 남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 * *
“김종학, 이선경 부부.”
1994년 8월 둘 모두 20살에 결혼해 그해 유산.
1997년 어렵사리 딸을 출산했지만, 1999년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
2002년, 3살 된 여자아이를 입양하였지만…….
“2004년 교통사고로 사망…….”
이다음이 예지다.
“미친. 아니, 뭔…….”
하늘이 미워해도 이렇게 미워할 수 있을까.
거기다 두 부부에게서 묘한 집착이 느껴진다.
3살 때 딸을 잃은 부부가 3살이 난 여자아이를 입양하였다가 6살 때 사망을 하니, 6살 된 여자아이를 입양했다.
“슬픈 집착을 하는 건가…….”
처음 김향기와 들렀던 집 다음으로 들른 집이 딱 이랬다.
죽은 자식을 입양아에게 투영시키며 키우던 부모들.
이름도 똑같이 지어 주고, 옷도 죽은 아이가 입던 걸 입혔으며, 죽은 아이가 좋아하던 걸 먹였다.
참 몹쓸 짓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비단 입양 가정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가 다른 자식에게 떠나보낸 자식을 투영시키며 키우는 케이스를 종혁은 제법 겪은 적이 있다.
‘그 결론은 세 가지지.’
가출 혹은 현실을 깨달은 부모의 자살, 그리고 존속 살인.
“아니야.”
아직 확실하지가 않다. 자료만 보고 확신을 하는 건 금물이었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쯧.”
씁쓸해진 입안 때문인지 담배 맛도 써서 그냥 꺼 버린 종혁은 차에서 내려 등록된 주소지로 향했다.
“좋아하겠지.”
그 나이 또래 여자아이가 좋아할 선물이 담긴 종이백을 두드린 종혁은 하얀 저층 맨션들이 가득한 맨션 단지를 거침없이 걸었다.
“꺄르르르!”
“이번엔 내 차례란 말이야!”
활발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종혁의 고개가 절로 돌아간다.
“어이구.”
PC방이고, 오락실이고 주위에 널려 있는데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절로 흐뭇해진다.
“그래, 너희 나이면 그렇게 뛰어놀아야 맞는 거지.”
그러다 정글짐에서 떨어져 뼈도 부러져 보고, 그네에서 떨어져 코피도 흘려 봐야 건강하게 크는 거다.
“음음. 잘하고…… 응?”
종혁은 놀이터 한구석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예지?”
놀이터 한구석 화장실 옆에 쪼그려 앉아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을 부럽다는 듯 쳐다보는 예지.
종혁은 다급히 예지에게 다가갔다.
“예지야?”
움찔!
몸이 크게 흔들린 예지의 눈이 느릿하게 돌려지다 종혁에게 고정된다.
짧지만 아주 긴 시간이었던 침묵.
예지의 눈이 흔들리며 흐려지기 시작한다.
“……흐에에에엥!”
까득!
종혁은 자신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리는 예지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