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91화>
79. ……달칵
“다시 이런 일 생기면 그땐 정말 안 봐 드릴 테니까 술도 끊으시고요. 아셨어요?”
“네, 네.”
“소환장 받았는데도 경찰서에 출두 안 하시면 제가 쫓아갈 겁니다. 제 전화 안 받으셔도 마찬가집니다.”
“예, 예! 그, 그럼 가 보겠습니다.”
술이 깨자 어수룩해진 장년인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멀어졌고, 종혁과 오택수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훈방이겠지?”
“아무래도 그렇겠죠.”
상해도 아니고 상해 미수다.
그것도 흉기를 꺼내기도 전에 종혁에게 검거가 됐고, 깊게 반성하는 모습도 보이기에 훈방 내지는 집행 유예로 끝나게 될 확률이 높았다.
실적에 정신 나간 검사가 사건을 배정받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보다 대체 넌 왜 거기 있었던 거냐?”
“말했잖아요. 마침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거기 갔다가 마침 선거 유세를 하기에 구경을 했는데, 정말 우연히 거동이 수상한 저 양반을 발견하고 제압부터 했다고? 그 말을 믿으라고?”
“네.”
오택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종혁의 뻔뻔한 모습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건 뭐 진짜 자석도 아니고…….”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다.
만약 저 남성이 선거 유세 지원을 나온 경찰들을 뚫고 박정애 의원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땐 서울 경찰 전체가 뒤집어졌을 터.
그 지역 경찰서장뿐만 아니라 서울청장, 이택문 경찰청장의 목까지 줄줄이 날아갔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놈도 그냥 상해 미수로 꾸민 거지.’
이건 언급조차 안 되는 게 맞았다.
‘서울 경찰 전체가 이놈에게 목숨 빚을 졌네. 하, 이런 건 알려야 하는데. 그럼 징계의 수위가 낮아질 텐데…….’
“뭘 그렇게 생각합니까? 안 가요?”
“……그래. 가자, 가! 야,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는 어떻게 생각하냐? 박빙이지 않냐?”
“박빙이죠.”
회귀 전엔 보수당에서 개가 나와도 당선 될 거라는 말이 나왔던 이번 지방선거. 그러나 현재의 양상은 달랐다.
종혁이 해결한 여러 사건들 때문에 진보 쪽이 살짝 우세한 상황이었다.
‘진짜 어느 쪽이 과반을 차지할까?’
아무래도 지켜볼 맛이 있을 것 같았다.
“씨발? 생각해 보니 이거 다 우리 덕분 아니야? 한번 훈장 건의해 봐?”
“됐어요. 괜한 말 했다간 더 찍힙니다.”
“그건 너 때문이잖아, 인마! 너 때문에!”
“얼씨구? 그럼 그동안 상여금 받은 건 누구 덕분인데요?”
둘은 투덕거리며 최재수가 있는 오피스텔을 향해 차를 몰았다.
* * *
뚜벅뚜벅.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차들이 양측으로 주차된 골목길.
검은색의 수수한 단화를 신은 사십대 중반의 통통한 여성이 옅은 향수 향기를 풍기며 걷고 있고, 종혁이 그 옆에서 따르고 있다.
일단은 실태 조사를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됐기에 오택수, 최재수와 찢어진 종혁.
‘흠. 이 동네 시세가 얼마였더라.’
“형사님, 혹시 결혼하셨어요?”
“아뇨. 아직 안 했습니다.”
“어머, 왜? 이렇게 키 크고 몸 좋고, 능력까지 좋으신데? 주위에서 가만 놔둬요? 아, 경찰서라 여자들이 없나? 애인은 당연히 있죠?”
“하하. 아직은 생각이 없어서요.”
“그건 좀 여자들에게 너무하다. 너무 빼면 여자들이 싫어…… 아니, 환갑이 돼도 여자에게 인기 많으실 텐데!”
“아하하하.”
‘수다가 많으시네.’
이곳까지 이동하는 와중에도 입을 쉬지 않고 놀린 그녀.
이런 부류의 사람은 맞장구를 쳐도, 치지 않아도 입이 쉬질 않기에 다루는 방법은 한 가지다.
“제가 조심해야 될 건 없습니까?”
순간 여성의 눈이 빛났다.
“……성격까지 좋으신 분이네요. 오케이, 합격. 내 애인 할래요?”
“네?”
“호호호호! 농담이에요, 농담. 딱히 주의할 건 없는데, 입양이라는 단어만 주의해 주세요. 아이들 모두 부모님이 양부양모인 걸 모르니까.”
그녀의 목소리가 진지해지자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유념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그보다 지금 가야 할 가정의 남편분과 아내분의 직업이 어떻게 됩니까? 아이 나이는요?”
“그건 왜요?”
“그래야 저도 나름 판단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녀의 눈빛이 묘해진다.
“……아휴. 이거 너무 욕심나서 어쩌지? 남편분은 비뇨기과 의사시고, 아내분은 산부인과 간호사예요. 아이는 올해 5살. 글쎄 대학병원에서 인턴 때 눈이 맞았대요. 대학병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더니 다 거짓말인 것 같지 않아요?”
종혁은 뜨악했다.
“비뇨기과 의사에 산부인과 간호사신데 입…… 아니, 그걸 하셨다고요?”
“에휴. 어쩌겠어요. 삼신할머니가 점지를 안 해 주시는데.”
“쯧. 이래서 아기는 하늘이 점지해 준다 말하는가 보군요.”
“어휴. 진짜 왜 이렇게 마음에 들지? 잘생겨서 그런가?”
“그런 기본도 묻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렇죠. 그게 이상하죠.”
“음?”
종혁은 그녀의 갑작스런 변화에 의아해했다.
“아, 여기예요. 여기.”
한 주택을 가리킨 그녀는 냉큼 초인종을 눌렀다.
삐리리, 삐리리리리!
뻐꾸기 새소리를 내며 울어 대는 초인종 소리와 동시에 주택 안에서 우당탕 거친 소리가 흘러나온다.
-네, 네! 누구세요?
“어머니! 저예요, 김향기!”
-버, 벌써 오셨어요?! 자, 잠시만요! 진짜 잠시만요?
다시 쿠당탕 소리가 들리는 주택.
공무원 김향기는 싱긋 웃으며 종혁을 봤다.
“담배 태우시려면 태우셔도 돼요. 아마 한 10분 정도 걸릴 테니까.”
“예, 그럼.”
몇 발 물러난 종혁은 담배를 물며 2층짜리 주택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동안 많은 아동 범죄를 접해 봤지만, 입양 가정은 처음이기에 눈에 밟히는 모든 걸 빠르게 스캔하는 종혁.
‘일단 겉으로는 여타 다른 집들과 다를 게 없네.’
중요한 건 집안 내부다.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후우우.”
-드, 들어오세요!
띠이!
“들어가요, 형사님!”
“아, 예.”
종혁은 활짝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여름이라 잡초가 무성한 작은 정원을 지나 주택 안으로 들어가니, 땀으로 범벅을 한 삼십대 중반의 여성이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그들을 맞이한다.
“헉헉! 오셨어요……?”
“어머, 내 정신 좀 봐. 정신이 어머님, 이번에 그날이 재정된 거 아시죠? 그래서 따라오신 경찰분이세요.”
“그 인터넷으로 신고하는 사이트 아시죠? 그 사이트를 관리감독하는 간편신고관리과의 형사인데, 쉽게 민원 업무를 상담하는 공무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최종혁입니다.”
“아…… 그래요? 아참, 내 정신 좀 봐! 안으로 들어오세요.”
한결 표정이 누그러진 여성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고, 종혁은 빠르게 거실을 스캔했다.
‘카펫과 장난감 박스 두 개, 그리고 미끄럼틀과 동화책.’
한구석에 양주 등 고급술이나 담금주 등이 전시된 진열장과 소파를 제외하면 이 넓은 거실은 오직 아이들만을 위해 꾸며진 공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너저분하네.’
나름 치운다고 치운 것 같지만 여기저기에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고, 책도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구겨진 양말도 보이고, 방금 전 방향제를 뿌린 건지 냄새가 독했다.
그러는 사이 여성이 음료를 쟁반에 받혀 들고 나오자 종혁은 냉큼 촉촉한 바닥에 앉았다.
“오늘 오시는 줄 알았다면 더 좋을 걸 사 놨을 텐데.”
“아니에요.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제 잘못이죠. 그보다 정신이는 잘 크죠?”
“네! 잘 크고 있어요! ……너무 잘 커서 문제지만.”
순간 여성의 얼굴이 10년은 늙어 버렸고, 종혁은 자신이 이 집의 아이가 아님에도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비록 종혁이 애를 가진 부모는 아니지만, 7살 사내아이가 어떤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김향기가 자지러지듯 웃는다.
“호호호! 7살 사내아이가 쉽지 않죠?”
그 말에 여성의 눈이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번뜩인다.
“사내애는 원래 그래요? 시어머니께 물으니까 제 남편은 엄청 조용했다는데…….”
“그래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렇죠? 그런 게 아니죠?!”
음료를 들이켠 종혁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짜식이 적당히 좀 휘젓고 다니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고, 나무에서도 떨어져 보고, 피 좀 흘려 봐야 사내아이라지만 그래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정신이가 유치원에서 어땠다고요?”
“아, 정신이가요!”
아이의 이야기로 한순간에 수다 삼매경에 빠진 두 사람.
종혁은 그녀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이내 집 안의 풍경을 쓱 훑었다.
‘흐음…….’
“안녕히 가세요!”
“빠빠이!”
실태 조사 도중 하원을 한 남자아이에게까지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 김향기는 종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보셨나요?”
“평범한 맞벌이 부부의 집이더군요. 그것도 굉장히 바쁜.”
방금 전 설거지를 한 듯 물기가 가득한 싱크대와 그릇들, 찌게가 넘친 흔적이 가득한 가스레인지 위의 냄비, 온갖 것들이 처박힌 냉장고.
정말 평범한 맞벌이 부부가 있는 집의 풍경이었다.
“와아. 관찰력이…….”
“다만 어머님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것 같더군요.”
“……네?”
신경성 두통이 있는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가끔씩 미간을 좁히며 뒷목과 관자놀이를 눌렀다.
“심각할 정도는 아니신 거 같은데, 휴식이 필요해 보이시더라고요. 역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건 힘든가 봐요.”
“어머, 어머!”
“왜 그러세요?”
“대화를 나누시면서 그런 것도 살펴보신 거예요?”
“형사라면 기본이죠. 전 저보다 김 주사님이 대단하시던 걸요?”
“네? 제가요?”
“정신이란 아이가 뭘 했는지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셨잖아요.”
정신이란 아이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녀 나름대로, 아니 꽤 영리하게 돌려 질문하며 확인을 한 거다.
웬만한 사람들로선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화법이었다.
이런 종혁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김향기는 이내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는 잠시 멈추며 하늘을 응시했다.
“형사님, 혹시 입양된 아이들 중 약 20퍼센트가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파양되는 거 아시나요? 심지어 이것도 굉장히 낙관적으로 낸 통계인데도 말이죠.”
“……파양이 아닌 가출로 집계되는 부분이 있어서겠죠.”
“아, 아시네요?”
파양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불가능하다. 양자가 미성년자일 경우엔 더더욱 그렇고 말이다.
그에 파양 절차를 밟지 않고 그냥 아이를 내쫓는 경우가 이 당시엔 종종 있었다.
문제는 그럼에도 이렇게 파양률이 높다는 점이었다. 종혁도 이 정도로 높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종혁은 그녀의 눈에 서글픔이 맺히자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왜 계속 정신이의 행동에 대해 물어보신 겁니까?”
단순히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자 함은 결코 아니었다.
“……파양하는 부모들이 말하는 이유 중 가장 많은 게 그거거든요.”
시도 때도 없이 울어 대거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거나, 말을 듣지 않는 등 아기와 아이라면 당연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다.
“……하, 그럴 거면 차라리 개를 키우지.”
종혁은 반사적으로 담배를 찾았다.
“동감이에요. 나쁜 사람들.”
“그러면 태기가 있냐고 물어본 이유도 혹시?”
김향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아이가 없어 입양을 했는데, 아이가 생긴 경우. 그게 파양을 하는 두 번째로 많은 이유였다.
“거의 이 두 가지 이유로 파양이 돼요.”
‘진짜 씨발이네.’
“그럼 보건복지부에선 부모에 대한 인성 조사 같은 건 안 하는…… 의미 없겠네요. 빌어먹을.”
어제까지만 해도 천사였는데, 내일이면 악마로 변하는 게 사람이다.
“호호.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좋아졌어요. 국내 입양률이 높아졌거든요.”
“확실히 이번 입양의 날을 재정한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죠.”
“이왕이면 해외보단 국내가 좋으니까요.”
잔인한 말이지만, 해외로 입양되면 인종 문제도 겪어야 한다. 그런 의미로 보면 국내가 낫긴 했다.
국내에도 입양아를 좋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은 있지만 말이다.
‘그건 아마 예지도 마찬가지겠지.’
이번에 성격도 좋고, 직업도 좋은 부부에게 입양이 됐다는 예지.
그동안 아이가 없던 부부에게 갑자기 6살 아이가 나타났다. 주위 시선이 어떨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조만간 연락해 봐야겠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푸근히 웃었다.
“그렇겠죠. 김 주사님 같은 분께서 이렇게 케어를 해 주는데, 해외보다는 국내가 낫지 않겠습니까?”
“어머머. 그렇게 아부하셔도 아무것도 안 나와요. 저는 평균이에요, 평균. 이 정도도 못하면 어떻게 사회복지 담당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무얼 바라고 한 말은 아닌데요?”
“희한하네. 진짜 왜 여자친구가 없지? 말해 봐요. 성격에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죠?”
“하하. 그럼 다음 집으로 가시죠!”
둘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 입양 가정으로 향했다.
* * *
나름 깔끔하게 꾸며진 20평대의 작은 맨션.
한 삼십대 여성이 예지 앞에 쪼그려 앉아 입을 연다.
“김미나, 좀 있다가 어떤 아저씨가 오면 뭐부터 해야 한다고 했지?”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안녕하세요, 김예…… 아, 아니 김미나입니다! 6살!”
여성의 눈이 살짝 일그러졌다가 펴진다.
“……자는 곳은?”
“안방!”
“오늘 아침에 먹은 건?”
“된장국, 계란, 소시지!”
“어제 저녁으로…….”
“아, 그만 좀 해라. 그렇게 안 해도 된다니까?”
“야! 내가 나 좋자고 하는 거야?! 그리고 곧 담당관 올 텐데 아직까지 추리닝 입고 있으면 어떡해! 지금 백수티 내는 거야, 뭐야!”
“아, 씨발. 알았다고!”
쾅!
사내는 안방 문을 닫으며 들어갔고, 여성은 귀를 막고 있는 예지의 팔을 거칠게 끌어내리며 어깨를 잡았다.
“다시 점검해 보자. 내 이름이 뭐야?”
“이선경!”
“이선경입니다지!”
“이선경입니다!”
띵동!
“왔다! 김미나, 너 이 아줌마가 가르친 거 말고 다른 말 하면 아주 혼날 줄 알아. 알았어?”
“……네.”
“좋았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여성은 엉덩이를 씰룩이며 현관문으로 걸어갔고, 순간 예지의 입술이 축 처지며 들썩였다.
하지만 울면 안 된다.
‘울면 안 돼. 울면 또…….’
띠리릭!
“어머. 어서 오세요. 호호호!”
“안녕하세요, 어머님! 우리 꼬마 아가씨도 안녕?”
“아, 안녕하세요! 김미나입니다! 6살!”
양손가락을 펴서 숫자 6을 만드는 예지의 손길엔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